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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194화 (194/475)

〈 194화 〉 190화 : 심판의 때가 왔도다 (2)

* * *

내 코를 세로로 두 동강낼 뻔한 은빛 섬광, 그 정체는 말할 것도 없이 칼이다.

그것도 내가 방금 전까지 딛고 있던 나뭇가지를 썩둑 잘라버릴 정도로 날카로운 칼.

그러나 내 눈동자를 크게 만든 건, 갑자기 나를 노리고 칼이 날아왔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허공에 남은 궤적 너머에 보이는 이상현상.

통나무 만큼 굵직한 나무뿌리가 땅을 뚫고 나와, 엘프를 풀어놓는 모습이었다.

저게 대체 뭔……?!

‘정신 차려!’

“……!”

마음속에서 일갈하는 목소리와 함께, 목덜미에 저릿한 감각이 도는 게 느껴졌다.

피해야 돼!

옆쪽으로 몸을 움직이자마자 무언가 쏜살같이 지나가며, 혀를 차는 소리를 남겼다.

방금 본 괴상한 광경에 대해 생각할 때가 아니야.

일단은 계속 움직여야 한다!

본능이 알려주는 신호를 따라 방향을 바꾸며, 나무 사이를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큭!”

나뭇가지들이 썩썩 잘려나가는 소리.

바람을 핑 가르며 나무줄기에 살대가 박히는 소리.

그 자잘한 소리들 사이사이에 욕설이 끼어들며 내 뒤를 따라온다.

망할, 대체 몇 명인 거지?

일단 숫자라도 파악해야 되는데, 제길, 틈이 안 생겨!

아, 맞아, 그게 있었지.

한 손만으로 계속 움직이면서, 드워프에게 받았던 끈끈이 공을 꺼내 뒤로 던졌다.

“이거나 먹어라, 치사한 놈들아!”

끈끈이 공이 가지에 닿자마자 터지며 내용물을 흩뿌렸고,

“우악?!”

이내 화들짝 놀란 목소리와 함께, 엘프 두 명의 발이 찰싹 달라붙어선 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연갈색 망토를 펄럭이며 등에 활을 메고, 단검을 손에 쥔 모습이다.

확실하진 않지만, 망토 색이 비슷하니 친위대원이겠지.

저렇게 둘,

“큭?!”

정면을 파고들며 베어오는 걸 뒤로 물러나 피한 후, 반사적으로 걷어찼다.

셋.

왼쪽으로 틀어서 달리자, 내 기준으로 오른쪽 대각선에서 화살을 쏜다.

넷.

몸을 틀어 망토로 막았더니, 이번엔 또 정면에서 두 놈이 동시에 단검과 화살로 공격해온다.

저걸로 다섯에 여섯.

……같은 놈을 여러 번 세었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대충 여섯으로 봐야겠군.

참 더럽게 많네!

“카엘!!”

목소리가 난 쪽을 슬쩍 돌아보자, 메린에게 다른 엘프 셋이 붙어 있는 게 보였다.

주변에 보이지 않지만, 아마 다른 두 녀석도 비슷한 상황이겠지.

“끈질기게……! 저리 꺼져!”

좀처럼 뿌리치기 힘든지, 그녀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소리치는 게 들렸다.

재차 힐끗 살피자, 엘프 셋이 내 쪽으로 오려는 그녀를 막아서며 맹렬하게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하, 우릴 흩뜨리려는 속셈이군?각개격파하겠다, 이거지?

근데 나한테는 여섯이나 붙였네.

내 숨통을 반드시 끊겠다는 의도가 팍팍 느껴지는군.

나는 날아오는 단검과 화살을 피하며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이 소란 속에서 잘 전해지길 바라며 크게 외쳤다.

“난 신경 쓰지 마!! 각자 붙은 녀석 먼저 처리해!!”

……특히나 지금, 엘프들의 공격을 억지로 뿌리치려 하고 있을 그녀를 향해.

“올 거면 떨거지들 전부 없애고 와!! 전부 조져버려!!”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대답을 했는데도 내가 못 들은 것일수도 있다.

말을 마치자마자 방향을 크게 틀어서 질주하기 시작했으니까.

“뭐 저리 빨라?!”

“얼마 못 갈 거야! 쫓아!”

음, 뒷말은 좀 찔리는걸?

어쨌든 이 놈들 움직임을 보니 메린은 물론이고, 다른 두 녀석도 엘프 두세 명은 거뜬히 해치울 것 같다.

이 놈들은 아까 단체로 습격했던 엘프들과는 달리, 자유자재로 나무를 타고 다닐 수는 있는 것 같다.

아마 그 글라디올러스처럼 능력을 각성한 거겠지.

하지만 속도는 블루벨보다 한참 떨어지는데다, 맨날 숲에만 처박혀 있었으니 실전 경험도 전무할 터.

그런 놈들에게 내 동료들이 당할 리가 없지.

대강 거리가 벌려졌다 싶을 때까지 달린 후, 나무 위쪽의 가지를 딛으며 몸을 숨겼다.

……귀를 기울여보았지만, 들리는 건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뿐이다.

잠깐 쉴 수 있겠군.

“후우……”

……그 녀석들, 완전히 뿔뿔이 흩어졌겠지?

뭐, 나중에 위슨을 기점으로 다시 모일 수 있겠지.

그러니 지금은 그 녀석들 말고, 나 자신이나 열심히 걱정하자고.

나 혼자 여섯 명을 상대해야 되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놈들의 움직임이 느려서 이렇게 잠깐 숨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따돌리지는 못할 것이다.

아까 보았던 그 광경,엘프 왕의 헛소리가 끝나자마자 나타났던 그 이상현상 때문이다.

분명 왕이 술수를 쓴 거겠지.

마법인지 뭔지 모르지만, 왕은 나무뿌리를 써서 우리……

아니, 내가 있는 곳으로 친위대를 데려왔다.

그러니 계속 도망만 다니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

다른 세 사람을 나에게서 멀찍이 떨어뜨린 후에도 내가 아직 살아 있다면,놈은 분명 그 대원들까지 내 쪽으로 끌고 올 테니까.

­숨어도 소용없다!!

……이거 봐, 바로 찾아내잖아.

홀로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내가 여기서 살아나가려면 이 방법뿐이다.

내 손으로, 전부 해치우는 것……!

“……후우.”

조용히 심호흡을 하는 내 귀에, 아래쪽에서 무언가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돌리자,내가 딛은 나무 근처의 땅이 불룩 솟아오르며 나무뿌리가 나타나는 게 보였다.

……첫 번째는 정해졌다.

나는 그 뿌리를 향해 갈고리를 쏘아 날아들었다.

때마침 나무뿌리가 풀어지면서 엘프의 얼굴이 드러났고, 놈의 눈동자가 곧바로 튀어나올 듯이 커지는 게 보였다.

“……!”

놈이 입을 벌린 순간, 나는 그 머리를 향해 다른 쪽 갈고리를 휘둘렀다.

무언가 썩둑 잘린 듯한 느낌이 팔을 타고 올라온다.

뭘 잘랐는지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며, 아직 풀어지지 않은 나무뿌리를 딛고 뛰어올랐다.

붉게 물든 갈고리로다시 나무 위로 올라와 주변을 뛰는데, 분한 듯한 목소리가 또 다시 울려왔다.

­네놈……! 아주 거리낌이 없구나!

“당연한 거 아냐? 안 하면 죽잖아. 얌전히 도망다닐 줄 알았냐, 이 등신아!”

­실로 제 목숨만을 귀히 여기는 인간답구나! 사람을 해하는 거에 아무런 망설임도 없다니!

말이 전해지긴 한 모양이군.

그보다 이 새끼가 지금 누구 앞에서 사람 어쩌고 지랄이야?!

“닥쳐, 악마 새끼야!! 네 녀석이 감히 사람 목숨을 들먹여?! 죄의식을 논해?! 갈아마셔도 시원찮을 놈이 감히!!”

­나는 악마가 아니다! 악마는 바로 네놈들이지! 이 세상에 뿌리내린 악의 씨앗이자 탐욕 그 자체 아니더냐!!

“하! 그래, 지금 헛소리 실컷 해둬라! 네 녀석이 악마이든 아니든 상관없어. 오늘, 반드시 네 녀석의 목을 거두어 주마……!!”

들끓는 분노를 담아 소리치자, 놈의 목소리가 그 이상 들리지 않았다.

내 선전포고를 듣고 쫄아서 튄 거라면 좀더 의욕이 솟을 텐데, 그건 아니겠지.

나는 걸음을 멈추고, 조용해진 주변을 향해 아직 식지 않은 분노를 토해냈다.

“술래잡기 시간이다, 염병할 귀쟁이들아!! 걸리는 새끼는 전부 저승으로 보내주마!!”

“힉!”

딸꾹질과 함께 부스럭거리는 소리.

마치 여기 있다며 손을 흔들듯이 바람을 타고 있는 나뭇가지.

그쪽으로 두 걸음 옮기자, 나무 뒤에 숨어있던 엘프가 허겁지겁 달아나는 게 보였다.

……그러고보니 숲이 도와준다고 했던가?

도망자를 쫓는 내 머릿속에, 막연히 그 생각이 떠올랐다.

술래잡기.

술래를 때려잡는 게 아닌, 술래가 다른 참여자들을 잡는 놀이이다.

그냥 듣기만 해도 무섭지 않은가?

이게 왜 애들 놀이인지 이해가 안 된다니까.

술래잡기를 입에 담으며 하하호호 웃는 사람들은, 쫓기는 공포나 ‘잡히면 진짜로 죽는다’는 공포를 맛본 적이 없는 사람들인 게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역시 내 고향 마을은 정신 나간 거 같아.

고블린을 술래로 세워서 술래잡기 했으면서도 ‘그땐 재밌었지~’ 하면서 웃고 떠드니까 말야.

참고로 술래가 된 고블린은 살려둘 수 없으므로, 놀이를 끝내야 할 때는 반드시 마을로 유인했다.

아니면 자신 있는 놈이 직접 죽이거나.

말 그대로 술래를 잡고 끝나는 거니, 어떤 의미에선 진정한 술래잡기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는 그딴 놀이를 하면 진짜 죽으므로 한 번도 안 했지만, 술래잡기 자체는 질리도록 했기 때문에 그 공포를 알고 있다.

머리까지 꼭꼭 숨었는데도 들키는 공포,

아무리 용을 쓰며 달아나도 쫓아오는 공포,

따돌렸다 생각했는데, 갑자기 머리 위에서 나타나는 공포.

잘 알고 있지.

그럼, 아주 잘 알고 있어.

그러니 나는 당신들을 비웃지 않는다.

꼴사나운 비명을 지르고, 소용없는 발악을 하며 덤벼든다 해도 말야.

나는 달아나는 엘프의 옆을 나란히 달리며, 그의 예상 경로가 되는 나무에 갈고리를 박아, 밧줄에 목이 걸리게 만들었다.

“커헉!”

뒤로 고꾸라지는 그의 뒷덜미를 잡고 나무에 집어던졌다.

그의 몸이 가지에 축 늘어진 것까진 봤는데, 곧 바닥에 떨어질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 놈으로 이제 네 명째……

아까 대충 셌을 땐 둘이 더 남아있을 텐데, 어디 숨어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대놓고 항복하든가, 아니면 몰래 도망쳐!! 그럼 무사히 집에 갈 수 있어!!”

그렇게 외친 후, 나무에 기대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 힘들긴 힘들다.

그나마 둘을 단시간에 해치워서 좀 낫지.

하나는 나무뿌리에서 나오자마자 보내버렸고, 또 하나는 허둥지둥 도망가는 걸 잡았다.

그 다음 둘이 좀 힘들었지?

각각 활과 단검으로 발악하며 저항하는 통에, 틈을 노리느라 꽤 많이 뛰어야 했다.

뭐…… 일단 한 놈을 작살냈더니, 다른 놈이 전의를 잃고 도망치기 시작해서 쉬워졌지만.

그리고 방금 해치운 놈이 바로 그 활 쓰던 놈이다.

“하아……”

이마를 무릎에 대고 눈을 감았다.

비릿한 쇠 내음에 속이 약간 메슥거리려는 걸, 숨을 깊게 내쉬며 가라앉혔다.

문득 눈을 뜨고 갈고리를 힐끗 보았다.

완전히 빨갛게 물든 그 단단한 날에는, 작은 덩어리 같은 것도 드문드문 묻어 있다.

……이거 맞은 놈은 죽었겠지? 그것도 끔찍한 몰골로.

물론 죽으라고 휘두른 거다.

하지만…… 하아, 이렇게 보니 칼이 훨씬 인도적이구만.

물론 제일 좋은 건 활이나 슬링 같은 원거리 공격이다.

죽일 때 얼굴 안 봐도 되니까.

……나중에는 이런 것도 다 익숙해져서, 그냥 덤덤해지는 걸까?

왠지 그렇게 되기는 싫다는 생각이 든다.

“……”

눈을 질끈 감고, 긴 숨을 조용히 내쉬었다.

……지금은 감상에 젖을 때가 아니야.

꿍얼거리거나 징징대는 건, 나중에 다같이 모였을 때 하자고.

속으로 나 자신을 다잡으며,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주변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 내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뒷목이 서늘하지도, 벌레가 기는 듯한 불길한 느낌도 없다.

진짜로 그냥 달아난 거라면 좋겠지만…….

푸드덕.

……그럴 리가 없지.

왼쪽에서 날개소리가 들리자마자 위로 뛰어오르며, 왼쪽 나무를 향해 갈고리를 쏘았다.

그와 거의 동시에, 한 엘프가 방금 전까지 내가 앉아 있던 자리를 단검으로 베었다.

갈고리에 끌려가는 내 눈에, 놈이 고개를 돌리고 나를 향해 눈을 크게 뜨는 게 보였다.

그러더니, 놈이 별안간 나를 향해 씨익 웃었다.

음, 뭐가 있나보네?

날아가고 있는 쪽을 보았다.

“……”

어이쿠, 나뭇가지가 하나도 없네.

아까 움직이는 중에 싹 다 잘라 놓은 모양이다.

뒤쪽을 힐끗 보니, 방금 그 놈이 활에 화살을 먹이고 있다.

내가 걸치고 있는 망토가 화살을 막는다는 건 알 텐데.

……견제하려는 건가? 그럼 한 놈이 더 있겠구나.

그것도 가까이에.

문득 위쪽을 보자, 나뭇가지들 사이로 무언가 번뜩이는 게 보였다.

그 너머에는 맑고 푸른 하늘이 엿보인다.

꼭 빛이 잘 들어오라고 나무가 일부러 공간을 만든 것 같다.

그건 어쨌든, 이 놈들은 내가 나무줄기에 부딪쳐서 떨어지길 기대하나보다.

아니면 갈고리를 풀고 바닥을 구르거나.

그걸 노리고 나뭇가지를 죄다 잘라버린 거겠지.

아무래도 옛 선조의 능력을 각성하면서 눈도 좋아진 모양이다.

내 움직임을 보고 이런 계획을 세우다니.

근데 어쩌냐?

나뭇가지 없어도 되는데.

줄기에 박은 갈고리를 빼자마자, 그 옆 나무의 위를 향해 갈고리를 쏘았다.

나무줄기에 도착한 후, 곧바로 그 줄기를 차면서 몸을 돌렸다.

목표는 두 말할 것도 없이, 햇빛을 쬐고 있는 엘프이다.

“뭣……!”

나무 위에 앉아있던 놈이 나를 보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렇게 움직일 거라고는 예상 못했다는 듯한 얼굴이다.

아니, 들킬 줄 몰랐다는 얼굴인가?

후자라면 운이 없던 거니 어쩔 수 없지만, 전자라면 조금 안타깝다.

목숨이 걸려 있으니, 발 부러질 거 각오하고 곡예를 펼칠 거란 생각을 했어야지.

사람이랑 싸워본 적이 없어서 거기까진 생각을 못한 걸까?

“앞으론 생각해봐.”

중얼거리며, 놈이 움직이기 전에 그 머리 위쪽으로 갈고리를 쏘아 날아갔다.

퍼억!

복부에 내 발이 꽂히며, 놈의 몸이 나무줄기에 박히듯이 거세게 부딪쳤다.

그 물컹함을 디딤돌로 삼아 더 위로 올라가자마자, 아까 건너왔던 나무를 향해 도로 뛰었다.

목표는 전부 다 체념한 듯이 멍청히 서 있는 엘프.

술래에게 먹히기 직전인 마지막 희생양이다.

놈을 처리해서 술래잡기의 승자가 되려는 순간,

“크헉?!”

옆구리에 격통이 느껴지며 내 몸이 날아가버렸다!

바닥에 떨어지면 끝장이야……!

다행히 갈고리를 쏜 게 늦지 않아, 머리가 깨지지 않고 나무 위에서 숨을 고를 수 있었다.

더럽게 아프네…… 뭐지?

내가 날아온 방향을 쳐다보자, 완전히 넋 놓고 서 있던 그 엘프의 옆에, 다른 누군가가 서 있는 게 보였다.

한 손에 검을 쥐고서 연갈색 망토를 휘날리고 있는 엘프.

그 엘프가 나를 돌아보며 이를 갈았다.

“잔학무도한 놈……! 내 동지들의 목숨을 빼앗았겠다……!”

“뭐야, 짝사랑남 A잖아…….”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

글라디올러스가 악을 쓰면서 옆사람에게 검을 마구 휘둘렀다.

어…… 그러니까, 제 손으로 동지를 마구 썰어버린 것이다.

뜬금없이 난도질을 당한 엘프는 땅으로 떨어졌고, 퍼석, 깨지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피웅덩이를 만들었다.

이건……

또 무슨 전개야……?

“아아, 아아아아……!!”

놈이 갑자기 크게 소리지르더니, 땅으로 내려가 그 시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어떻게, 어떻게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해야 되는 거냐?!”

“네……? 저요……?아니, 댁이 했잖아…….”

그러나 놈은 내 말을 싹 무시하고, 자신이 무참히 베어버렸던 엘프의 얼굴을 감싸며 제 뺨을 부볐다.

“흑, 으흑……! 내가, 내가 꼭 원수를 갚아줄게……! 네 한을 꼭 풀어줄게……!

블루벨……!!”

“……!”

오, 주여…….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미친놈을 볼 때에 느끼는 본능적인 두려움이다.

아니 왜 가는 곳마다 미친놈 하나는 꼭 만나는 거야?

근데 저 놈은 얼간이에 괴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처음엔 멀쩡했던 거 같은데?

“네놈…… 네놈만 없었다면……!”

피와 분노로 붉어진 뺨에 눈물을 흘리며, 놈이 비틀비틀 일어나 내게 검을 겨누었다.

거리가 좀 떨어져 있어서 다행이다.

놈이 움직이는 거에 대응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놈의 눈을 보지 않아도 되니까.

“절대 용서 못한다, 블루스타아아아!!”

완전히 다른 사람의 이름을 외치며, 놈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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