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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197화 (197/475)

〈 197화 〉 193화 : 심판의 때가 왔도다 (5)

* * *

옛 엘프의 시대를 살아온 왕을 향해, 옛 엘프의 기억을 가진 골든로드가 입을 열었다.

“우린 애초에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어. 하늘의 귀인에게 맹세하기 전, 엘프는 나무에서 태어나는 한낱 요정에 불과했으니까.”

“네놈…… 그걸 어떻게……!”

“놀랐어? 하긴, 이거 왕에게만 대대로 전해지는 이야기였지?

아무튼 엘프는 그냥 요정일 뿐이었어. 하늘의 귀인에게 맹세한 후에야 지성을 얻었지.대재앙에 맞서는 병기가 되는 조건으로.”

골든로드는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로나를 바라보았다.

“맞아, 우리는 도구야. 로나, 자네처럼 말야. 하지만 자네와 달리, 엘프는 오히려 신세가 폈어.

스스로의 삶이 덧없다는 것조차 모르던 단순한 존재가, 어엿한 지성체가 되었으니까.”

“……”

로나는 그저 조용히 웃음만 띄우고 있을 뿐이었다.

골든로드는 다시 왕을 돌아보았다.

그 얼굴에 떠올라 있던 미소는, 그새 싹 사라져 있었다.

“그래, 인정해. 당신 덕분에 엘프는 이제 도구가 아니라 사람이 되었어.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조용히 읊조리던 그는, 순식간에 노란 구체에 바짝 붙어서 분노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엘프는 이제 누구도 돌보지 않아! 하늘의 귀인은 물론이고, 숲조차도 엘프를 돌보지 않겠지! 이제 엘프는 고블린이나 다름없어!!

아니, 고블린보다도 못하지. 고블린은 적어도 숲이 거부하지 않으니까!

해방되었다고? 자유로워졌다고? 천만에!그저 버려진 거야!!”

퉁.

노란 구체를 주먹으로 내리치며,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엘프가 숲에게 버려져서 살아남을 수 있을 거 같아?! 드워프가 대지의, 인어가 바다의 가호를 받는 것처럼! 엘프는 숲의 가호가 있어야 비로소 엘프로서 존재할 수 있어!!

정말로 엘프를 해방시키고 싶었다면, 당신은 반기를 들어선 안 됐어. 어머니 나무를 통해 귀인에게 부탁했어야지!”

그랬다면, 적어도 숲에게 버림받지 않았을 것이다.

비통한 목소리로 덧붙이며, 그는 그 자리에 무너지듯이 무릎을 꿇었다.

옛 이야기를 기억하는 자,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자.

……그러나 몰락을 막기엔 태어날 때부터 이미 늦어버린 자로서, 그는 진심으로 슬퍼하고 있었다.

그 슬픔을 부당하다고 일갈하며, 왕이 소리쳤다.

“허튼소리! 그리하면 우리는 다시 태초의 덧없는 존재로 돌아가게 된다! 그것이 우리의 오랜 봉사의 대가란 말이냐? 어째서 우리는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단 말이냐!

어째서 우리만 그런 꼴을 당해야 하는 것이냐!!”

쾅!

왕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골든로드가 그 구체에 얼굴을 바짝 대었다.

내 눈엔 그의 표정이 보이지 않지만, 그를 마주하는 왕이 사색이 된 걸 보면 굉장히 무서운 표정인 것 같았다.

“……그리 속삭이더냐?”

“뭐……?”

“네놈이 품은 악마가 그러더냐?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자식의 반기에 슬퍼하며 죽은 어머니를 되살릴 수 있다고, 잃어버린 권능들도 되찾을 수 있다고 꼬드기더냔 말이다!”

“무슨, 헛소리를……!”

짜내듯이 말하는 왕의 목소리는 확연히 떨리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보이던 기세등등한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아무리 구체에 스스로를 가둔 상태라 해도 그렇지, 너무 쫀 거 아냐?

“무구한 인간의 피와 육신, 그 영혼을 바치라고 누가 일렀느냐! 네놈에게 그리 속삭인 놈이 누구냐! 그 악마의 이름이 무엇이냔 말이다!”

“망상은 정도껏 해라! 모든 건 나 스스로 생각하여, 나 스스로 결정한 것이다!”

“정녕 그리 생각한다면 네놈은 아둔함의 극치이다! 내 눈에는 보인다! 네놈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시커먼 덩어리가……!

나와라! 나와서 네 정체를 밝혀라, 원수야!!”

퉁! 퉁! 퉁! 퉁! 퉁!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도 그는 계속 주먹을 내리쳤다.

탄력 있는 소리가 울리며, 이내 노란 구체에 붉은 자국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멈출 기색이 없어, 나는 황급히 그에게 다가가 그 팔을 붙잡았다.

“골든! 골든, 이 아저씨야, 그만하세요! 당신 손만 깨지고 있잖아요!”

“놔! 자네 손도 같이 찍어버리기 전에!”

“묵사발 낸다고 해도 못 놔요! 헛수고하지 말고 물러나요!”

나머지 팔도 붙잡고 구체에서 떼어내려 했다.

그러나 나 혼자서는 그가 팔을 내려치는 것만 막을 수 있을 뿐이었다.

아무리 온 힘을 당겨도 발이 꼼짝도 하지 않는다!

아니 묘지기하는 사람이 뭐 이리 힘이 세?!

거의 메린급인데, 이거!

“이거 놔! 저 머저리 속에 있는 걸 꺼내야 한다고!”

“진정하세요, 스승님! 저 구체도 깨지지 않는데 어찌 악마를 꺼낸다 하십니까?!”

“아, 몰라, 아무튼 놔아아!!”

“떼쓰지 마요, 아저씨! 보기 추하다고요!”

……결국 블루스타와 블루벨까지 합세하고 나서야, 겨우 그를 구체에서 멀찍이 떨어뜨릴 수 있었다.

그럼에도 계속 날뛰는 바람에, 그를 아예 바닥에 자빠뜨리고 눌러야 했다.

돌겠네, 적 앞에서 이게 뭐하는 짓이야?

메린에게 부탁해서 기절이라도 시켜야 하나?

근데 이 아저씨는 옛날 그 쌩쌩한 엘프 그대로잖아, 기절면역일지도 모르잖아, 이런 젠장할!

“아아아아! 자네들 죄다 두고 봐아아!!”

“괜히 화풀이하지 마요! 아잇, 진짜! 좀 진정하시라니까!”

“그래요, 골든 씨~ 사명 뺏겼다고 남의 일을 빼앗으시면 안 되죠~”

발랄한 목소리로 끼어들며, 로나가 헤실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

구체를 때리느라 상한 그의 손을 부드럽게 감싼 후, 로나는 눈을 감고 잠시 중얼거렸다.

이내 다시 말끔해진 골든로드의 손을 놓고, 로나는 그의 연노랑빛 머리를 슬슬 쓰다듬었다.

“악마를 상대하는 건 당신 일이 아니잖아요. 원수를 눈앞에 두어서 흥분하신 건 알지만, 제 일을 뺏지 마세요.”

“……”

“맞다, 그리고 있죠. 저도 신세가 나아진 거랍니다. 사제가 되지 않았다면 텅 빈 껍데기였을 거거든요. 그러니 절 가엽게 보실 필욘 없어요. 저는 지금이 최선이에요.”

부드럽게 타이르는 로나를, 골든로드는 일순 무척이나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런 뒤, 눈을 감고 한숨을 푹 내쉬며 몸의 힘을 뺐다.

“……그래, 내 신세에 누굴 동정해? 내가 가장 불쌍한데.”

“에이, 무슨 말씀이세요! 카엘 님이 훨씬 불쌍한데요!”

“어? 나?”

갑자기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놈이 되었다.

아니 왜 맨날 툭하면 날 갖고 넘어지는 거야? 내가 그렇게 만만해?!

……생각해 보니 이중에서 내가 제일 약하잖아?

존나 만만하겠군. 염병.

속으로 투덜대는 나를 보며, 골든로드가 피식 웃었다.

어딘지 서글퍼보이는 미소였다.

“……그렇네. 자네가 제일 가엾군.”

“아, 예. 제가 좀 약골이어야죠. 더럽게 약해서 맨날 존나게 구르니까 참 불쌍하겠죠, 그렇고 말고요!”

“하하, 심통부리는구나. 근데 아니야, 카엘. 자네가 가여운 건,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야.”

“……네?”

뜻밖의 말에 무심코 놓아버린 그의 팔이 내 머리로 올라왔다.

그대로 툭툭, 내 머리를 두드렸다.

“자네는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른 채 여기까지 왔어. 하지만 누구도 그걸 깨우쳐줄 수 없고, 이끌어주지도 못하지. 자네 스스로 깨닫는 건 허용되나 몰라.

아무것도 모르면서 길을 떠나다니, 가여우면서 참 대견해.”

“???”

“……난 얌전히 있을 테니까, 카엘, 자네는 가서 악마나 상대해.”

그는 끝까지 뜻 모를 말만 떠들고 벌러덩 드러누웠다.

허, 내가 대체 뭘 모른다는 거야?

그게 왜 불쌍하고?

저만 아는 이야기를 혼자 늘어놓고 드러눕는 게, 꼭 술주정부리는 사람 같다.

벙벙하여 눈만 끔뻑거리고 있는데, 로나가 내 눈앞에 손을 흔들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금빛으로 물든 눈동자가 헤실 웃었다.

“들으셨죠? 악마 상대하러 가요!”

“어…… 응…….”

로나가 내 손을 잡더니 사정없이 끌며 걷기 시작했다.

그 뒤를, 블루벨 혼자서 따라오고 있었다.

블루스타는 제 스승 옆에 남으려는 듯, 바닥에 누운 그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그 모습에서 눈을 떼고,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의외네……. 블루스타도 올 줄 알았는데.”

“왜?”

“친위대장이었잖아. 왕이랑 가깝게 지냈을 거 아냐.”

“글쎄? 나, 저 사람에게서 폐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어. 개인적인 친분은 없을걸?”

이야, 싸늘하다, 싸늘해.

괜히 냉혈한이라 불리는 게 아니구나.

어쩌면 그게 괘씸해서 왕이 그를 처형하려 했던 건지도 몰라!

“흠, 남에겐 싸늘하지만 내 여자에겐 따뜻하다는 건가?”

“아~ 알 거 같아요! 그런 남자분이 나오는 소설책 읽은 적 있거든요! 백작 가문 도련님이랑 약혼한 평민 여자가 주인공이었는데, 거기 나오는 왕자가 엄청 냉혹했어요. 근데 주인공한테는 꽃 선물하고 그러더라고요.”

“……”

뭐? 평민 여자가 백작 가문 도련님이랑 약혼했다고?

아니 아무리 소설이라도 그렇지, 설정이 너무 과한 거 아냐?

그리고 왕자는 또 왜 나와서 여자한테 꽃 선물하는 건데?!

아니 그 이전에, 어째서 신전에 그런 연애소설이 떠도는 거야?

로나 녀석이사람 마음 어쩌고 했었는데, 혹시 교재로 쓰는 건가?

하도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혀 있는데, 블루벨이 뒤에서 이상하다고 중얼거리며 말을 꺼냈다.

“거짓말을 쓰는 거야? 인간들은 희한한 짓을 하네.”

“거짓말이라뇨! 다들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걸요. 그냥 글자로 꿈을 꾸는 거에요.”

“……그럼 방금 너희가 말한 사람도 없는 거네? 남들에겐 다 싸늘하면서, 내 여자…… 호감 있는 상대에게만 잘 대해주는 사람.”

아니, 있어. 너네 아빠.

……라고 목 앞까지 튀어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꿈에는 현실이 섞여 있기 마련이에요. 그러니 당연히 그런 사람이 있죠. 그것도 바로 가까이에!”

앗. 로나 이 녀석, 이젠 블루벨도 놀리려는 건가?

관대한 나와 달리, 이 엘프는 속이 콩알보다도 작은데!

“바로 가까이? 누구?”

“메린 님이요! 얼마나 카엘 님을 신경 쓰는데요! 툭하면 열 재고, 안 그런 척하면서 카엘 님이 말하는 건 대부분 다 듣고 기억하신다니까요! 그렇죠, 카엘 님?

어라~ 왜 얼굴이 빨개지셨나요~? 메린 님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요~”

“…………”

이 녀석 속에도 시커먼 악의가 꿈틀거리고 있을 거야, 틀림없어.

나중에 골든로드에게 확인해달라고 해야지.

그렇게 굳게 다짐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다시 구체 가까이 오자, 로나는 내 손을 놓고 혼자 성큼성큼 그에 다가갔다.

노란 구체 안엔, 왕이 머리를 감싼 채 쪼그려 앉아 있다.

마치 누가 가두기라도 한 것처럼.

아마 저 안에 안전히 있으면서 우릴 공격하려고 했던 거겠지.

그러나 말에 큰 타격을 입고서 완전히 전의를 잃은 듯했다.

“아냐, 아냐아냐, 나는…… 나는……!”

“아주 정신이 나가셨네요. 현실을 받아들이는 건 항상 어려운 법이죠. 자아, 그 헛된 꿈에서 그만 깨도록 하죠!”

로나는 구체 앞에 서서 성호를 긋고, 철퇴로 땅을 쿵 두드리며 힘있게 외쳤다.

“창조주의 검이 그분의 이름을 받들어 명한다!너, 검은 심연의 백성, 영겁의 불바다에 거주하는 자여, 앞으로 나오라! 네 이름을 고할지어다!”

“아아…… 아아아……!! 아냐, 아냐! 나는, 내 이름은……!”

왕은 제 귀를 틀어막으며 처절하게 외쳤다.

그에 전혀 개의치 않고, 로나는 연이어 철퇴로 땅을 울리며 소리쳤다.

“이름을 고할지어다!”

“아코나이트! 나는 아코나이트이다! 다른 누구도 아니야!!”

쿠웅.

“이름을 고하여라!”

“아코나…… 커흑……?!”

절실히 제 이름을 외치려던 왕의 얼굴이 일순 일그러졌다.

놈은 구체 안에서 제 목을 잡고, 고통스러운 듯이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부…에, 아냐, 아냐, 아니야!! 나는 아코나이……!”

“이름을 고하여라!”

로나가 한층 더 크게 외치며 철퇴를 땅에 내려쳤다.

쿠우웅!

마치 종이 울리듯 묵직한 진동이 터져나오며, 주변 공기까지 뒤흔들었다.

그리고,

“아아, 아아아아!”

노란 구체가 깨지면서, 놈이 바닥에 철푸덕 엎어졌다.

로나가 묵묵히 뒤로 물러나고, 놈이 그대로 힘없이 늘어져 있기를 수 초,

“……할 수 없군.”

이윽고,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울렸다.

드워프의 도시 최하층보다 더 깊은 곳, 심연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데서 울리는 듯한 목소리였다.

“부에르.”

그렇게 중얼거리며 놈이 비틀비틀 몸을 일으켰다.

연한 녹색빛 머리카락도 그대로 있고, 피부도 까맣게 변해 있지 않다.

얼핏 보면, 그냥 목소리만 바뀐 것 같다.

……하지만 아니야.

지금 저기서 몸을 흐느적거리며 일어나고 있는 자는, 아코나이트라는 엘프가 아니다.

방금 전까지 있던 엘프 왕이 아닌, 완전히 다른 존재다.

그런 확신이 아주 강하게 들고 있었다.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선 후, 놈은 정중하게 허리를 굽혔다.

“나의 이름은 부에르. 지식의 전수자이올시다. 이리 만나게 되어 반갑기 그지없구려, 빛의 백성들이여.”

메아리치는 목소리로 인사한 후, 놈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본래 왕이 가졌던 가느다란 세로 모양 동공이, 가로로 찢어져 있었다.

염소의 눈…… 악마의 눈이다!

“부에르……? 아아, 학자셨군요. 괜히 이만큼 공들여서, 촘촘하게 작업된 게 아니었네요.”

로나가 무감정한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놈이 그녀를 향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흐흐…… 전능자의 검의 찬사를 받다니, 이거 영광이외다. 나 역시 그대들에게 놀란 참이오. 용케 그 난관을 뚫었으니……. 비록 대적자이나, 진심으로 경탄하오.

그나저나 검이여, 나를 아시오? 그대들의 감각으로는 꽤 옛날에 은거했을 터, 아직 내 이름이 이 땅에 남아 있소이까?”

신기하다는 듯이 묻는 악마를 무심히 마주하며, 로나가 딱딱한 말투로 대꾸했다.

“물론이죠. 학자 부에르, 당신들 72군단장의 이름이 잊힐 일은 결코 없답니다. 그 나베리우스조차 아직 기억되고 있다는 걸 참고하세요.”

“흐흐, 흐하하하! 이거 정말 놀랍군! 나베리우스조차 아직 잊히지 않았는가! 옛 지식을 품는 그 태도, 실로 훌륭하외다! 내 권속들도 그대들을 모범으로 삼는다면 좋을 것을!

아아, 그대들이 대적자의 소유인 것이정말 아쉽구려!”

놈은 정말로 유쾌한 듯이 웃음을 터뜨린 후, 지그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 가로로 찢어진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몸이 짓눌리는 느낌에 저절로 뒷걸음쳐졌다.

……그때 마주했던 까마귀 악마와는 차원이 다르다.

고향에서 그 악마를 봤을 때와 같은 느낌이야.

나도 모르게 성검의 칼자루를 꽉 쥐었다.

그런 나를 보는 게 즐거운지, 놈은 입 안으로 낮게 웃은 후 말을 꺼냈다.

“그래, 그대가 용사로군. 혹시 궁금한 것이 있소?”

“……뭐?”

멍하니 되묻자, 악마는 손가락을 퉁겨 의자를 불러내어 앉으며 대답했다.

“여기까지 온 그 수고와 무용(??)을 치하하는 뜻으로, 내 그대의 질문에 답하리다. 어떻게 이들을 떨어뜨렸는지, 내가 이들을 어찌할 생각이었는지……. 흐흐, 아직 모르지 않소이까?”

“……아, 자랑이 하고 싶으시다?”

“물론이오! 나 스스로 보기에도 꽤나 훌륭히 일이 이루어졌으니,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소? 뭐, 비록 마무리는 엉망이었지만, 그 또한 여흥이올시다.

그러니 물으시오, 카엘 에스트렐이라 이름하는 인간, 별을 읽는 자의 후손이여. 비록 본 힘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았다 하나, 대악마 아스모스를 패퇴시킨 용사여.”

그렇게 부드럽게 속삭이며, 악마가 의자에 앉은 채 한쪽 팔을 벌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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