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198화 (198/475)

〈 198화 〉 194화 : 심판의 때가 왔도다 (6)

* * *

부에르라며 이름을 밝힌 악마는 내 대답을 기다리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진짜 맘에 안 들어.

수고를 치하한다고?

질문에 답해줄 테니 물어보라고?

진짜 어이가 없네.

남의 몸에 들러붙은 기생충 주제에, 뭐가 잘났다고 윗사람처럼 지껄이는 거야?

궁지에 몰린 주제에 뭘 여유롭게 앉아 있는 거냐고.

……그래, 좋아.

그렇게 내 질문을 바란다면 주도록 하지.나는 관대하니까.

마침 지금 엄청나게 궁금한 게 딱 하나 있기도 하고.

“물어보라고? 좋아, 하나 물을게.”

“카엘 님.”

만류하듯이 부르는 로나를 뒤로 하고, 나는 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지금 네놈을 찌르면 완전히 뒤지는 거 맞냐?”

“………허?”

“못 알아들었어? 학자 양반.”

벙벙한 그 얼굴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놈의 불길한 눈동자를 마주한 탓인지, 다리가 자꾸 멋대로 뒷걸음치려고 한다.

그런 나 자신도 함께 꾸짖듯이 크게 외쳤다.

“지금 그 놈의 목을 치면 네놈도 같이 뒤지냐고!!”

놈이 눈을 부릅떴다. 심장이 죄이는 듯한 압박감이 느껴진다.

치솟는 공포를 아랫입술을 깨물어 흘려버리며, 칼자루를 부서져라 꽉 쥐었다.

금빛 염소 눈을 부릅뜬 채 놈이 입을 열었다.

무미건조한 메아리가 퍼져나왔다.

“……진정 그걸 묻는 것이오? 이들이 어떻게 몰락했는지는 알고 싶지 않고?”

“전혀 안 궁금해!”

“왜 이 자가 무구한 영혼들을 나무에 먹였는지도, 저 열매의 효능이 무엇인지도, 전혀 궁금하지 않다고?”

“그래, 이 새끼야!! 하나도 안 궁금해!!”

그거 언급해줘서 눈물나게 고맙다, 악마 새끼야!

덕분에 열불이 터져서 공포 따위 다 날아가버렸다!

“네놈의 계획 따위 개미 손톱만큼도 관심없어!! 네놈이 그 새끼를 꼬드겼든, 그 새끼랑 침대에 뒹굴었든 내 알 바 아냐!!

내가 여기 서 있는 이유는 딱 하나다! 무참히 죽어간 어린애들의 피값을 받아내는 것! 네놈의 시시한 잡담에 어울릴 생각은 없어!”

실컷 분노를 담아 퍼부은 후, 나는 몸을 살짝 낮추고 자세를 잡았다.

대화는 일절하지 않겠다는 의사표명이다.

악마는 그런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하아아…….”

한숨을 푹 쉬었다.

“정말 엉망진창인 마무리로군. 내 계획을 들은 그대들의 아연한 표정이라도 볼 수 있을까 기대했소만…….

거참 야박하구려. 좀 물어봐주면 어디 덧나오?”

“지랄하고 있네, 내가 왜 네놈에게 그딴 친절을 베풀어야 되냐?!”

“이런, 이런……, 명색이 빛의 대행자라는 자가 이리 인정머리가 없어서야! 하아, 옛날이 그립도다.

그때는 검을 들이밀기 전, 내 계획의 시종(??)을 이야기하는 게 암묵적인 의례였거늘.”

“의례는 뭔 의례야, 미친놈아!!”

그렇게 일갈하며 성검을 휘둘렀다.

검신이 허공에 궤적을 그리며, 그 모양대로 빛의 칼날이 되어 놈에게 날아갔다.

“어이쿠.”

소리와 달리, 놈은 전혀 놀란 기색 없이 옆으로 미끄러지듯이 움직였다.

그 탓에 괜히 놈의 뒤에 있는 돌에렛만 상처를 입게 되었다.

그렇게 빛이 나무줄기를 베는 순간,

키이이이이­­­!

“?!”

갑자기 째진 소음이 울렸다!

일순 몸이 휘청거려, 성검을 지팡이 삼아 땅을 짚고 버텼다.

젠장, 나무가 소리를 낼 줄이야……!

다른 사람들은?!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으……. 깜짝 놀랐네.”

메린이 두 귀를 막고 투덜거렸다.

……다행이다. 별 이상 없는 거 같아.

로나와 위슨도 갑자기 터져나온 소음에 귀가 먹먹할 뿐, 큰 문제는 없는 듯했다.

한 사람은 제외하고.

“하아……! 크으읏!”

“블루벨?!”

엘프인 블루벨은 두 귀를 부여잡은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정말로 고통스러운 듯이 식은땀까지 흘리고 있다.

……왠지 얼굴이 살짝 상기된 것 같지만 잘못 본 거겠지.

큰 타격을 입은 건 블루벨뿐만이 아니었다.

멀찍이 떨어져 있던 두 남자 엘프도, 악마에게 일제히 활을 겨누고 있던 엘프들도 모두 바닥에 엎어져 있다.

귀가 예민해서 타격이 큰 게 아닐 거야.

메린은 멀쩡하니까.

그런 내 생각을 뒷받침해주듯, 악마는 엘프들의 모습을 내려다보면서 유쾌한 듯이 웃었다.

“괴로울 테지, 아주 괴로울 것이야! 흐하하하! 이미 시들어 죽었다고 하나, 제 어미의 목소리로 내지르는 비명을 듣고 어찌 설 수 있으리오!

후, 덕분에 기분이 조금 나아졌소이다. 고맙소, 용사.”

“이 새끼가……!!”

“싸우시려고? 크흐흐흐, 나야 상관없지! 허나 이 이상 비명을 들으면 저들이 죽거나 미칠 텐데, 감당하실 수 있소이까?”

놈이 킬킬 웃으며 나무줄기에 등을 기대고 섰다.

아마 멀리 떨어질 생각은 조금도 없겠지.

우라질 놈, 진짜 악마답다.

“아아, 고통에 찬 신음…… 정말 감미롭군. 그리고 그대의 그 어찌할 바 모르는 망설임도…….

흐흐, 그거 아시오? 이 자는 그 아이들을 제물로 삼는 것에 아무런 망설임도 없었소이다.오로지 제 종족만을 위했지.”

연주 감상이라도 하는 것처럼 눈을 감고, 놈이 멋대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참으로 순진하고 열정적인 자였소. 그러니 물들이기 쉬웠지. 맑고 깨끗할수록 더러움에 약하기 마련이니…….

전능자의 검이여, 그대는 내가 여기에 공을 들였다고 했지만, 흐흐, 아니올시다. 전혀 아니고 말고!

공들일 것도, 정교하게 손을 쓸 필요도 없었소이다. 나는 이 자에게 딱 한 마디, 작은 조약돌을 던졌을 뿐.”

‘어째서’.

……특별할 것 없는, 누구나 떠올릴 법한 물음.

그 별 것 아닌 물음이 일으킨 파문으로, 엘프는 무너졌다.

“그 다음은 이 자에게 그때그때의 지식을 부여했을 뿐. 참으로 어리석은 자이지 않소이까?

명색이 전능자의 축복을 받은 자가, 제 영혼이 썩는 줄도 모르고 내달렸으니!

아아, 참으로 즐거운 볼거리였소. 무엇보다도 내 수고를 크게 덜어주었으니 고맙기까지 하지.

후…… 그대 역시, 참으로 좋은 표정이올시다.”

악마의 만족스러운 웃음소리가 엘프들의 신음과 맞물려 울려퍼졌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지만 불가능했다.

메린뿐 아니라, 로나까지 나를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탓에 놈의 같잖은 소리를 들으며, 이를 갈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음, 그래, 그대의 질문에 아직 답하지 않았지. 흐흐,비록 원하던 방향은 아니나 울적함이 풀리긴 하였으니, 내 그대의 질문에 답하리다.”

빙긋 웃으면서, 악마 부에르는 자신이 빼앗은 엘프의 가슴을 짚었다.

“이 몸을 해하더라도 나는 무탈하오. 여기 깃든 건 내 본체가 아니라 그저 조각에 불과하외다. 나는 지금 내 영지에서 그대들을 보고 있소.

흐흐, 용사여, 전능자의 검이 나를 부른 뒤 왜 물러났겠소? 왜 지금 그대를 붙잡고 있겠소? 맞설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지!”

나는 검을 내리고, 말없이 내 다리를 붙잡고 있는 로나를 힐끗 바라보았다.

무표정했던 얼굴은 불쾌함으로 온통 구겨져 있다.

적에게 속내를 들킨 게 여간 언짢은 게 아닌 듯했다.

“진짜야?”

“하아…….”

그녀는 대답 대신 땅이 꺼져라 길게 한숨을 쉬었다.

……전부 사실이구나.

지금 엘프 왕의 목을 치더라도, 죽는 건 오직 왕뿐.

진짜 원흉인 악마는 털끝 하나 상하지 않는다.

근데 그게 왜 맞설 이유가 없는 걸로 이어지는 거지?

저 새끼가 덤비면……

“부에르는 덤비지 않을 거에요.”

로나는 그런 내 속내를 읽기라도 한 듯, 재차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말씀드렸죠? 몸을 차지해봤자, 그 몸이 가진 능력 이상은 낼 수 없어요. 이 상황에서 싸워도 저 자가 이길 가능성은 없죠.

게다가 저 자는 이미 목적을 이루었어요.싸울 이유가 없는 거에요.”

악마가 던진 물음으로, 엘프는 더 이상 수호자가 아니게 되었다.

만약 그게 목적이었다면……

저 놈이 저렇게 여유부리는 것도 납득이 된다.

마무리는 엉망이라지만, 그다지 분한 기색이 없는 걸 보니 그냥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었겠지.

“그러니 저렇게 그냥 떠들고 있는 거죠. 쓸데없이 계산적이라니까요.”

“냉철하다고 해주었으면 좋겠군.”

“어휴, 시끄러워요. 떠들 거 다 떠들었죠? 얼른 연결이나 끊으세요. 뭉개버리기 전에.”

“이런, 무섭기도 하지! 뭐, 그대에게 끊기는 건 따끔하니 사양하겠소. 흠……, 하지만 그냥 얌전히 물러가는 건 재미가 없지?”

놈이 별안간 씨익 웃으며 우리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역시 싸우려는 건가?

다시 칼자루를 고쳐 잡고 자세를 잡으려는 순간,

악마 부에르는, 처음처럼 허리를 굽혔다.

“전능자의 어린 검, 무지한 용사, 소리를 잃은 어린 현자에…… 흐흐, 실로 훌륭히 완성된 텅 빈 그릇이여.

나는이만 물러가겠소이다.그대들의 길에 저주와 고통이 가득하길 기도하지.”

정중히 인사한 후, 놈이 나를 향해 빙긋 웃었다.

어쩐지 장난기가 서려 있는 미소였다.

“그러고보니 용사여, 이 자의 목을 거두고 싶어하던 것 같던데…….

내가 대신 거두어드리리다.”

“……!”

부드럽게 말한 후, 놈은 엄지손가락으로 제 목, 자신이 조종하던 왕의 목을 그었다.

그러자 날붙이가 살을 자르는 소름 돋는 소리와 함께, 검은 피가 공중에 뿜어져 나왔다.

풀썩.

엘프 왕의 몸이 땅에 엎어졌다.

순식간에 검은 물웅덩이가 생겨나 그의 주변을 검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예상밖의 상황에 나를 포함한 모두가 얼어붙은 사이, 검은 물웅덩이는 점차 더 커져갔다.

……메아리가 낀 웃음소리가 들린다.

이내 그 소리가 잠잠해지며, 물웅덩이의 빛깔이 붉은색으로 돌아왔다.

놈에게 깃들었던 악마가 드디어 떠나간 듯했다.

내 손으로 엘프 왕의 목숨을 거두는 것까지 방해하면서.

……끝까지 사람 열받게 만드는, 진정한 악마였다.

움찔.

엎어져 있던 왕의 몸이 들썩였다.

“……!”

아직 숨이 붙어있다니……, 이게 옛 엘프의 생명력인가?

“어…째…서…….”

왕은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몸을 뒤집었다.

악마가 갈라버린 목에서 피가 폭포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데, 그는 아직 움직일 수 있는 모양이었다.

“어…째서…….”

바닥을 기듯이 나무에 다가가 그 줄기에 기댄 후, 고개를 들고 우리를 보았다.

­어째서 우리는 네놈들처럼 될 수 없는 것이냐?

허공에 울리는 목소리.

그는 숲의 목소리를 빌어, 최후의 물음을 던졌다.

그 누구도, 심지어 그가 가리키는 우리…… 인간조차도 답할 수 없는 물음을.

아마 대답을 기대하진 않았겠지. 그는 곧 비통한 미소를 지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째서 우리는 사람이 될 수 없던 것인가? 어째서? 당신이 돌보는 인간과 무엇이 다르기에……?

인간은 심지어, 자신을 돌보는 당신의 존재조차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만큼 어리석거늘……!

고개를 쳐들고, 그는 푸른 하늘 저 너머를 향해 울분을 터뜨렸다.

나는 조용히 그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내 발소리를 들었는지, 왕의 귀가 움찔거렸다.

그럼에도 그는 그저 하늘을 올려다보고만 있었다.

­헌데 어째서 저들에게는 허락된 자유를, 우리에겐 주지 않은 것인가! 어째서 우리는……!

“욕심이 과하네.”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기 시작한 그의 말을 자르며, 나는 그 앞에 섰다.

“일은 하기 싫으면서 힘은 그대로 가지고 싶다? 어림없는 소리.

……이 세상에 대가 없이 주어지는 건 하나도 없어. 반대로 무언가를 주었다면, 반드시 그 대가를 받게 되지. 그게 기본이야.”

왕의 고개가 천천히 내려왔다.

뱀처럼 가늘게 찢어진 눈동자를 마주하며, 나는 성검을 들이밀었다.

“맹세를 깨뜨렸다며? 그렇다면 처벌이 내리는 건 당연지사다. 억울할 것도 없어.

네놈이 흘린 피도 마찬가지야. 물론 한참 부족하겠지만, 네놈의 죽음으로 조금이나마 갚아라……!”

푸욱.

온 힘을 다해 그의 가슴을 찔렀다.

성검의 날이 그가 기대고 있는 나무에까지 닿은 게 느껴졌다.

그러자 검신이 밝게 빛을 내며, 왕의 몸을 태우기 시작했다.

……놈이 흙더미로 돌아가는 걸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어……째서……

그 말을 마지막으로, 엘프의 왕, 아코나이트는 하얀 재가 되어 공중에 흩뿌려졌다.

그가 끝까지 기대고 있던 어머니 나무 역시, 성검이 박힌 부위에서부터 하얗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이파리에 붙어있던 파란색 열매들이 땅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과실들이 깨지며 붉은 액체 같은 내용물을 흘렸다.

……무수한 어린애들의 피와 몸으로 만들어졌을 그 열매들은, 내용물을 쏟아내자마자 그대로 녹아내리듯이 사라졌다.

덧없이.

허무하게.

“……이딴, 나무……!”

나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칼자루를 더 강하게 쥐며, 나는 오열하듯 소리쳤다.

“불타버려……!!”

성검에서 더 강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무성한 가지 끝까지, 하얀 불꽃에 휘감겨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그 쇳소리 같은 비명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새하얗게 타버린 나무가 조용히 부서지며, 바람에 휘날려 숲 곳곳으로 흩어졌다.

“……”

별안간 쏟아진 햇빛에 눈을 가늘게 뜨며 시선을 위로 향했다.

뻥 뚫린 하늘은 서글플 정도로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끝났구나.

그 실감이 무겁게 가슴을 짓눌렀다.

그 후, 나는 위슨과 함께 지하창고로 향했다.

내가 정확한 위치를 기억 못하는 탓에, 위슨이 늑대를 불러야 했다.

그렇게 찾은 작은 오두막 안, 위슨은 지하로 향하는 계단 앞에 서서 늑대의 머리에 손을 대었다.

그리고 잠시 후, 어깨를 으쓱였다.

“없네.”

“……”

뭐가 없다는 건지 구태여 묻지 않았다.

늑대가 귀를 축 늘어뜨리며 내 손을 핥았다.

가만히 그 머리를 쓰다듬었다.

“태운다.”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위슨이 다시 불러낸 스라소니가 지하창고의 중앙에 서서 몸을 낮추었다.

이내, 창고 일대에 시뻘건 불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이 다음은?”

“……무너뜨려.”

“그래.……밖에서 기다리지 그래?”

“……아니야. 봐줘야지.”

시뻘건 화염이 지하창고를 뒤덮었다.

타닥타닥 타는 소리,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

“……윽.”

……불이 꺼질 때까지 보고 있으려 했건만, 아무래도 연기가 너무 매웠던 모양이다.

결국, 그 자리에 엎드리고 말았다.

창고에서의 일을 마친 뒤, 왕궁으로 향했다.

기운이 빠져서 도저히 ‘손목 갈고리’를 쓸 수 없을 것 같아, 대신 늑대의 등을 빌렸다.

푹신한 털에 거의 파묻힌 덕분인지, 왕궁의 뒤뜰에 다다랐을 즈음엔 얼마간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뒤뜰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로나가 방글방글 웃는 얼굴로 우리를 맞이했다.

“오셨네요! 잘 끝나셨나요?”

“……응.”

“히히, 잘됐네요. 위슨 씨, 나중에 기도하러 가게, 위치 알려주세요.”

내가 알고 있을 거란 기대는 조금도 하지 않고 있군.

예리한걸?

근데 어차피 갈 거면 처음부터 같이 갔으면 됐을 텐데.

“아까 너 찾았었는데, 어디 갔었어?”

어머니 나무를 불태운 후, 왕궁에 남아있던 엘프들이 무슨 일인지 알아보러 찾아왔다.

나는 그때까지 바닥을 구르고 있던 엘프들을 그들에게 맡긴 다음, 지하창고로 가려고 위슨과 로나를 찾았다.

그런데 로나는 물론이고, 메린까지 그새 어디론가 사라져 있었다.

위슨을 통해, 끝나고 왕궁에서 보자는 말만 남긴 채.

“나 참, 우리 일행은 진짜 죄다 제멋대로야.”

“히히, 죄송해요. 어떤 엘프가 빨리 와달라고 하도 급하게 부탁해서요. 어쩔 수 없었어요.”

그렇게 말하는 로나는 밝은 얼굴로 웃고 있다.

하나도 안 미안하구만?

돌겠네, 진짜.

“그래서 뭐였는데?”

“음, 직접 보시는 게 더 빠를 거에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던지며, 로나는 내 손을 잡고 또 사정없이 끌고가기 시작했다.

영문도 모른 채, 나는 복도를 걷고 계단을 올라, 어느 문이 활짝 열려 있는 방 앞에 다다랐다.

“들어가보세요!”

그녀는 내 손을 놓더니, 등을 힘껏 밀어버렸다.

자연히 중심을 잃고 서너 발짝 앞으로 밀려나갔다.

아니 어이가 없네.

그냥 말로 해도 들어갈 건데, 대체 뭐가 있다고……?

투덜대며 고개를 든 내 눈에, 가장 먼저 커다란 침대가 들어왔다.

그 옆 의자에 앉은 메린이 나를 힐끔 쳐다본 후 도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그 주홍빛 눈동자가 향한 건 침대 위.

나란히 이불을 덮고 누워 있는, 다섯 명의 아이들이었다.

“……!”

홀리듯이 그에 다가갔다.

숨을 죽인 채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애들답지 않게 꼿꼿이 누워 있고, 얼굴빛이 약간 창백하긴 하지만……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는 게 또렷이 보였다.

눈앞이 흐려졌다.

바닥이 가까워졌다.

……이번에 엎드린 건,분명 햇빛 때문이겠지.

그늘을 짙게 드리우던 돌에렛이 없어진 탓에, 여름 햇살이 강하게 내리비추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눈이 부셔서, 앞을 제대로 볼 수 없는 거야.

이 방엔 커튼이 하나도 없으니까.

그건 그렇고,

구했구나.

……그 생각이 조용히 떠올랐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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