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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199화 (199/475)

〈 199화 〉 195화 : 잿더미가 품은 것 (1)

* * *

나뭇잎이 흔들린다.

여름햇살에 데워질 대로 데워진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숲으로 들어간다.

그래도 덥다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는다.

앉아 있는 바닥이, 머리에 드리워진 나무그늘이 차가운 탓이다.

숲에게 열을 다 빼앗겨서 도망쳐 나오는 바람 덕분이기도 하고.

“후우…….”

그에 맞추어 긴 숨을 내쉬었다.

여러 감정이 마구 뒤섞여서 요동치던 마음이, 이제야 겨우 가라앉은 느낌이다.

그러자 곧바로 머릿속에 하나 둘,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지금 나는 혼자 있는 것 같아도 혼자 있는 게 아니라는 것.

내가 눈을 감고 웅크려 앉아 있는 걸, 저 앞에 있는 연노랑머리 아저씨가 풀 뽑다가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내가 그 아저씨한테 업혀서 이곳, 처형장……묘지에 왔었다는 것까지.

하나하나 전부 기억이 났다.

“하아아……”

다른 의미로 긴 한숨을 쉬었다.

오늘이 이 숲에 온지 사흘째인데, 진짜 별의별 꼴은 다 당한 것 같아.

하루에 한 번 꼴로 의식을 잃고,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신나게 울고…….

게다가 두 번이나 죽을 뻔했지?

아니, 세 번인가?

물리적으로 죽을 뻔한 게 두 번, 그리고 부아가 치밀어서 죽을 뻔한 게 한 번.

“……”

……그 부에르라는 놈은 진정한 악마였다.

이야기책들과 성서에서 나오는 ‘미혹하게 하는 자’의 표본.

바깥에 드러나지 않은 채, 귓가에 속삭이기만 하는 것으로 함정에 빠뜨리는 전형적인 악마.

로나가 창조주의 이름으로 불러냈기에 정체라도 알 수 있었지.

맘 같아서는 놈의 영지로 쳐들어가서 줘패고 싶다.

근데 지옥이잖아.

산 사람이 지옥에 어떻게 가?

하…… 진짜 악마 그 자체인 놈이었어.

“……?”

문득, 어떤 기묘한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노랫소리…인가……?

감고 있던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

조금 전까지 밭에서 잡초 뽑던 골든로드가, 썩어 뒤틀린 나무 앞에 서서 입을 뻐끔거리고 있다.

……아니, 나무를 어루만지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거리가 떨어져 있는 탓에 들리는 건 오로지 희미한 음률뿐.

구슬프면서도 평온한 가락이, 곁들여 연주되는 악기 하나 없이 조용히 울리고 있다.

그에 이끌리듯, 나도 모르게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아주 가까이 가긴 좀 그래서, 나는 엘프들의 시신…… 꽃밭에서 한 발짝 떨어진 곳에 앉았다.

그의 귀가 쫑긋거렸지만, 그는 고개를 돌리지도, 노래를 멈추지도 않았다.

“……”

가사는 있긴 있는 것 같은데,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엘프어인가?

그런데도 아무 위화감도, 약간의 불편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반복되는 가락이 마음속까지 잔잔히, 고요히 울리는 듯했다.

……어쩐지 눈을 감으면 그대로 잘 것 같아, 무릎을 세우고 그에 엎드린 채 꽃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노래를 들었다.

이윽고 노래를 마친 후, 골든로드는 내 옆에 앉아 한숨을 푹 쉬었다.

“노인네가 대낮부터 지랄이야. 미칠 거면 좀 곱게 미치던가. 진짜 술이라도 처먹일까봐.”

“……”

이 입에서 그런 평온한 가락이 나왔단 말이지.

정말 세상 일은 알다가도 모르겠어.

덕분에 솔솔 몰려오던 잠기운이 확 달아나버렸다.

골든로드는 그런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빙긋 웃었다.

“좀 기운을 차린 것 같군.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잠깐 쉬는 데엔 집보다 바깥이 훨씬 낫지.

여긴 새도 안 날아다녀. 그러니 자네에겐 굉장히 조용하고 평화로운 꽃밭일 거야. 안 그래?

뭐…… 중앙에 썩은 나무 하나가 있긴 하지만.”

조용하고 평화로운 꽃밭.

……그 말대로이긴 하다.

여러 다양한 색의 꽃이 융단처럼 쫙 펼쳐져 있는 꽃밭.

중앙의 앙상하고 시커먼 나무가 감점요소이긴 하지만, 그조차도 꽃들의 아름다움을 완전히 퇴색시키진 못하고 있었다.

여기가 묘지이자 처형장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도, 여전히아름다운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보이는 게 꽃밖에 없어서 그런 거겠지.

뭐, 꽃이 없어도 뻥 뚫린 공터 자체가 조용히 쉬기엔 안성맞춤인 곳이다.

그러니 나를 집에 두려는 메린을 말리고 여기 굴려둔 거겠지.

덕분에 나야 편히 쉬었지만……

그의 말대로, 여긴 나에게나 조용하고 평화로운 장소이다.

나에겐 들리지 않는 소리가 들리고,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그에겐 평화와는 거리가 먼 곳일 텐데.

“그…… 죄송합니다.”

떠오르는 대로 사죄하자, 그가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뜬금없이 뭐가 죄송해? 밭이라도 밟았어?”

“아뇨, 그…… 여기, 골든에겐 불편한 곳 아니에요? 왕궁에 더 있을 거, 저 때문에 괜히 여기 온 게 아닌가 해서…….”

잠시 말없이 눈만 깜빡이던 그는, 별안간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핫! 아핫, 아하하하! 카엘, 자네 진짜 최고야! 하하하하!”

……이번엔 내가 벙벙해할 차례인 듯했다.

골든로드는 허리를 굽히면서까지 한참을 웃은 후, 잔기침을 하면서 말을 이었다.

“이야~ 기운 차리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게 남 걱정이라니! 메린도 그렇고, 괜히 자네 동료들이 자넬 싸고도는 게 아니구나.”

“어어…… 네?”

“숲을 나간 적 없지만, 바깥 세상이 어떨지 대강 짐작이 가. 언제 잡아먹힐까 전전긍긍하는 분위기 아니야?

그런 데에서 저보다 남을 먼저 돌본다? 하하, 죽기 딱 좋은 성격이잖아! 여기까지 어떻게 살아서 왔어? 메린이 고생 좀 했겠네.”

말 한 마디 했다가, 금방이라도 죽을 수 있는 개미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근데 반발심이 솟긴커녕 쓴웃음만 나온다.

실제로 물러터졌다고 메린한테 툭하면 까이니까.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안 그러려고 해도 그런 생각이 제일 먼저 드는 걸 어떡해?

나는 씁쓸히 웃으며 말했다.

“안 그래도 맨날 혼나요. 그리고 고생은 제가 더 많이 했거든요?”

“그래, 몸 고생은 자네가 훨씬 많이 했겠지. 그리고 그걸 메린이 옆에서 지켜봤을 거고. 그렇지?”

“으…….”

……그 부분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그녀가 그걸 언급하며 울적해하던 걸 보기도 했으니까.

“하하, 자네 또 미안해하고 있지? 좋은 성격이야. 좀 걱정스럽지만 말야.

그래도 그런 특별한 성격이니까 하늘의 귀인이 맘에 들어 한 거겠지.”

“어…… 네?”

골든로드는 나를 보며 피식 웃었다.

“들었어. 그 성검, 귀인에게 선택받아서 받은 거라며? 그 양반들이 제비뽑기로 누굴 고르진 않았을 거 아냐.

자네가 마음에 들었으니까 뽑은 거 아니겠어?”

그야 그렇겠지만……

나 자신은 아직도 왜 내가 뽑힌 건지 이해가 안 되는 실정이다.

어차피 무를 수 있는 것도 아닐 테니, 평소엔 그냥 생각 안 하고 있다.

덕분에 부담감은 그리 느끼지 않는데, 그만큼 사명감이 덜한 것 같기도 하다.

솔직히 사명만 따지면 여기 올 필요가 없지.

도움은커녕 화살만 맞을 게 뻔한데 뭐 하러 오겠어?

여기에 온 것도, 엘프 왕의 목숨을 거둔 것도……

결국 용사와는 하등 상관없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혼나지 않고 있으니 참 신기해.

딴 길로 새지 말라고 한 번은 잔소리를 할 법도 한데.

“뭐, 귀인이 보기엔 딴 길이 아니었나보지.”

“예에, 그런 거겠죠.”

초월자가 존재하면 이럴 때 편하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길 수 있으니까.

“어쨌든 좋은 성격이니까 고치진 마. 자네가 그런 성격이라서 어머니 나무를 태운 거라고 납득했거든.”

“……나무 생각해서 한 게 아니었는데요.”

“응? 그야 그렇겠지! 자네에겐 그저 사람, 그것도 어린애들을 잡아먹은 나무일 뿐이니까.그래서 그 애들을 대신해 화낸 거 아냐?”

……그랬던가?

솔직히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는 모른다.

땅에 떨어진 과실들이 사라지는 걸 보고, 알 수 없는 격정에 휩쓸려 저지른 것일 뿐.

어쩌면 그저 화풀이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뒤숭숭한 기분을 내보내듯 한숨을 쉰 후, 느긋하게 저 앞을 쳐다보는 그에게 말했다.

“기왕 웃은 거 한 번 더 웃으세요. 골든, 당신은 진짜 괜찮아요? 다른 엘프들은 넋이 나갔던데.”

일부러 툭 내뱉듯이 물었건만, 그는 폭소하는 대신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적절한 걱정 고마워. 난 정말로 괜찮아. 다른 녀석들도 곧 괜찮아질 테니 걱정 마.”

“……”

돌에렛의 비명을 듣고 쓰러졌던 엘프들은, 내가 그 나무를 불태운 후에도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다.

통곡하고 오열하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아마 나무가 불타는 광경을 직접 봤기 때문이겠지.

왕궁에 있던 엘프들은 기운이 없긴 해도, 제대로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아무튼 블루벨과 블루스타를 포함해, 쓰러진 엘프들은 모두 왕궁으로 옮겨졌다.

수십 명의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이 왕궁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나는 왕궁에서 나와야 했다.

경위는 어쨌든, 내가 그 나무를 완전히 불태운 장본인이니까.

­­감정은 이성대로 움직이지 않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로나는 괜한 화풀이를 당할지도 모르니 어디 한적한 곳으로 피해 있기를 권했다.

자신은 지하창고에서 위령 기도를 올린 뒤에 가겠다고 덧붙이면서.

또 동굴로 가야 하나 싶은 때에, 어째서인지 혼자 쌩쌩한 골든로드가 자신의 집으로 가자고 제안했고……

그래서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었다.

“근데 희한하네요. 당신 혼자만 멀쩡하다니.”

“사실 멀쩡하진 않아. 좀 허전하거든. 어쨌든 나에겐 그 나무가…… 음, 여러모로 끔찍했어. 그래서 타격이 덜한 걸 거야.”

“끔찍했다고요?”

이미 죽은 나무 어쩌고 했지만, 겉은 멀쩡하던데?

골든로드는 눈을 반쯤 가늘게 뜨고서 대답했다.

“음…… 상상해봐. 어떤 사람이 더 많은 피를 마시고 싶다, 토할 거 같다, 죽게 해달라, 썩어간다…… 이런 말을 계속 외치면서 미친듯이 웃는 거야.

온 몸에 썩은 기운을 마구마구 휘감고 있고. 어떨 거 같아?”

“……끔찍하네요.”

“그렇지? 그래서 그녀도 조용히 죽은 걸 거야.”

말을 마친 그는, 별안간 미소를 거두더니 생각에 잠긴 것처럼 땅을 응시했다.

“카엘.”

별안간 나를 부르면서, 그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부탁이 있는데, 들어줄 수 있어?”

“내용에 달렸죠?”

“하하, ‘뭐든지 들어드릴게요’라고는 안 하는구나.”

“……저 그런 멍청이 아닌데요.”

내가 뭔 호구도 아니고…….

게다가 이 아저씨한테 그런 말을 할 이유도 없다.

뭐든지 들어주겠다는 말은 메린에게도 못한다고!

함부로 그런 소리했다가 뒷감당을 어떻게 해?

“무슨 부탁인데요?”

“음, 자네에겐 무척 간단한 일일 거야.”

그렇게 운을 떼며,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저 나무를 죽여줘. 성검으로.”

“나무……? 어, 저기 있는 느릅나무요?”

묘지 중앙에 서 있는 앙상한 나무를 가리키자, 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왜요……?”

“미쳤으니까.”

“아니 아무리 미쳤다고 해도……”

“그냥 미친 게 아니야.”

조용히 내 말을 자르는 그의 얼굴은 무미건조하다.

이내, 그는 등을 굽혀 무릎에 턱을 올리고서 계속 말을 이었다.

“피를…… 아니, 원한을 너무 많이 먹었어. 사실 생명수보다 더 심해. 그 나무는 거의 다 죽어갈 때 당한 거니까.

저 노인네는 있지. 한창 싱싱할 때에 당했어.”

원한을 먹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애초에 그것이 느릅나무의 역할이라며 그는 말했다.

“여기가 원래 묘지라는 건 알아?”

“네. 블루스타에게 들었어요.”

애초에 골든로드 스스로 밝힌 거나 마찬가지이다.

처음에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의 직업이 ‘묘지기’라고 했었다.

이어서 ‘일터’라고 보여준 곳이 여기 공터…… 처형장이었고.

나는 기억을 더듬어가며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사명 때문에 싸우러 나간 엘프들 중, 살아남은 쪽이 죽은 사람들의 유해…… 꽃을 모아온다고 했던 거 같아요.”

“맞아. 그리고 그들의 한을 품고 정화하는 게 저 느릅나무의 역할이야. 꽃이 시들어 대지로 돌아갈 때까지.”

“그게 보통 얼마나 걸리는데요?”

골든로드는 어깨를 으쓱였다.

“남은 수명만큼.”

“……”

원래 수명이 팔백 살인데, 만약 칠백 살에 죽었다면 백 년간 피어 있다가 시든다고 그는 말했다.

……우와, 그럼 대부분 백 년 이상을 여기 피어 있었다는 소리잖아.

꽃밭이 진짜 융단을 펼친 것처럼 클 만하구만.

“근데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심심해서 알아봤지. 언제 죽었는지, 그때 몇 살이었는지 물어본 다음, 그 꽃이 시들었을 때의 시간과 비교하면 되거든.”

그는 영혼이 보이고, 그들과 대화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 조사하는 거 자체는 가능하겠지만……

“본인한테 물어본 거죠? 그걸 기억한대요?”

“하더라.”

“우와.”

엘프 대단해!

그런 걸 본인한테 묻는 이 아저씨도 대단한데, 그걸 묻는다고 또 대답해주는 당사자도 참 대단하다.

내 표정을 본 그가 킥킥 웃었다.

“다들 심심하거든. 게다가 사명 때문에 죽은 거니까 원통하지 않은가봐. 일찍 죽은 것만 아쉬워하더라.”

그래서 ‘원한’이 아니라 ‘한’이라고 했던 거구나.

아무리 그때는 사명에 투철한 시절이었다 해도, 역시 자신의 생명이 일찍 끝나는 건 슬프고 아쉬운 모양이다.

“근데 그게…… 육백 년 전부터 변했어. 블루스타에게 들었지?”

“아, 네.”

그가 태어나기 전에 일어났던 첫 번째 반란.

묘지를 ‘처형장’으로 바꿔버린 그 사건 이후, 이곳엔 원한을 호소하는 꽃이 생겨났다.

원통해하며, 분노를 내뿜는 영혼이 거주하게 되었고, 자연히그 전까지 자리하던 평화로운 분위기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느릅나무 역시 본의 아니게 엘프의 피를 마시고, 원한을 품게 된 것 때문에 화가 잔뜩 나서 성질이 더러워졌다.

골든로드가 ‘저 영감 참 부드러운 성격이었는데……’라며 오랜 꽃이 푸념하는 걸 듣고 커다란 충격을 받았을 만큼, 예전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성격이 되어버렸다.

“당신이 본 건 어떤 모습이었는데요?”

“음, 아침 인사가 보통 ‘엿 같은 귀쟁이 새끼가 잠은 또 잘 처자는구나’였어.”

충격받을 만하군.

바로 납득했다.

그래도 느릅나무는 아직 미치지 않았었다.

허허 웃는 할아버지에서 성질 더러운 노인네가 됐지만 여전히 제정신이었던 것이다.

그는 크게 한숨을 쉬며 계속해서 말을 꺼냈다.

“하지만 내가 태어나고 이십 년 뒤……완전히 미쳐버렸어.”

“……”

블루스타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엘프만의 고유 언어를 만들려 하는 왕에게 일부가 반발했고, 그게 결국 두 번째 반란으로 이어졌다.

그게…… 지금으로부터 380년 전에 일어났다고 했던가.

“처형식을 본 건 그때가 처음이야.”

골든로드는 멍하니 고목을 쳐다보며 말했다.

“죄인을 저 나무에 묶고 화살을 쏴서, 손목과 발목을 맞췄어. 목이나 심장을 맞추진 않더라. 아마 되도록 오래 고통을 느끼도록 하기 위한 거겠지.”

……그렇게 느릅나무는 또 다시 엘프의 피를 마시고, 그에 담긴 원한을 품게 되었다.

지난번에 생겨난 원한 품은 꽃들은 좀 줄긴 해도 아직 남아 있는데, 또 그런 꽃들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묘지가 한층 더 시끄러워지게 됐으니, 느릅나무는 한층 더 구수한 욕설을 퍼부으리라 다짐했겠지.

만약 나무가 이번에도 버텼다면, 어쩌면 골든로드도 나무와 함께 욕쟁이가 됐을지도 모른다.

……만약, 나무가 버틸 수 있었다면.

“120명.”

골든로드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게 한계였어. 121명째분을 먹자마자 미쳐버렸지.”

“……”

“흐흐, 흐흐흐……. 아직도 선명해. 365명이 여기서 죽었어. 365명의 피가 저 느릅나무로 흘러들었지. 내 전임자…… 교육담당의 것까지.”

무릎에 얼굴을 묻고, 그는 실성한 듯이 웃음을 흘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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