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화 〉 196화 : 잿더미가 품은 것 (2)
* * *
밤낮으로 헛소리를 떠들고, 세상 떠나가라 소리를 질러대는 걸 듣다 보면 사람이 어떻게 될까?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내 옆에 앉은 이 엘프처럼 되겠지.
즉, 미치기 일보 직전이 되는 것이다.
“낮에는 그나마 나아. 그냥 쉴 새 없이 중얼거리거든. 오늘 같은 여름엔 소리도 좀 질러. 해가 너무 뜨겁다고.
푸흐, 밤이 진국이야! 제대로 잠도 못 잔다? 꺼이꺼이 울면서, 괴롭다고, 죽여달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애원해.
그리고 안 죽여준다며 저주를 퍼붓지.”
그의 집은 묘지에서 떨어져 있다.
게다가 숲 안에 있으니 아무리 소리가 잘 퍼지는 밤이라 해도, 묘지 중앙에서 울리는 소리를 듣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인간에게는.
그러나 내 옆에 웅크려 앉아 있는 이 아저씨는 엘프였다.
그것도 귀가 기가 막히게 잘 들리는, 초월적인 능력을 지닌 구세대 엘프.
……그 탓에 그는 밤낮으로 나무의 광기에 시달렸고, 결국 견디다 못해 도끼를 들었다.
“근데…… 흐핫, 날이 안 박히더라? 원한이 쌓여서 그런가, 평범한 나무가 아니게 됐나봐.”
“대화가 되는 시점에서 그다지 평범하진 않은 거 같은데요.”
“응? 음…… 하긴, 저 노인네처럼 유창하게 떠드는 나무는 별로 없긴 해. 그래도 그 전엔 나뭇가지 자를 수 있었거든? 근데 그것도 안 되더라.”
그래서 죄다 불태워버릴까 생각했던 때에, 그는 블루벨에게 귀마개를 선물받았다.
느릅나무의 목소리는 영혼들의 목소리마냥 귀를 막아도 들렸기 때문에, 본래는 아무 소용없을 것이었는데……
“근데 신기하게 안 들렸어. 정말, 몇 년 만에 푹 잤는지……. 내가 저 노인네한테 자장가를 부르기 시작한 것도 그 애 덕분이야.”
어느 날, 별 생각없이 그녀에게 푸념했더니, 그녀가 의외의 대답을 들려주었던 것이었다.
“무서운 꿈꿔서 잠이 안 오면, 블루스타가 노래를 불러줬대. 그랬더니 잘 잤다고 하는 거 있지?
푸핫, 그때 일 얘기하면 블루벨 녀석, 얼굴 새빨개져선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자네도 나중에 한번 해봐.”
“호오…….”
좋은 이야기인데?
아마 그녀가 정신연령이 아직 어릴 때였으리라.
응, 나중에 로나 있을 때 얘기 꺼내야지!
맑고 밝은 마음으로 다짐한 후, 나는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근데 자장가를 굳이 불러야 돼요? 귀마개 덕분에 안 들리게 됐다면서요.”
“하…… 저 미친 노인네의 지랄병이 주변 꽃에도 퍼지거든. 원한을 내뿜는 건지 노인네한테서 무슨 이상한 기운이 나오는데, 꽃들 중 일부가 그거 뒤집어쓰고 미치더라.”
알고 보니 전부 처형당한 엘프들의 꽃이었다면서 한숨을 푹 쉰 후,
“그러니까…… 카엘, 자네가 저 노인네 좀 그만 보내줬으면 해.”
돌에렛에게 안식을 줬던 것처럼.
……피곤에 절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그는 다시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그런 그에게 대답하기 전, 나는 잠시 고민해야 했다.
그 부탁을 수락하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말이 있었던 것이다.
이윽고, 내 입에서 나 자신도 놀랄 만큼 조심스럽게 말이 흘러나왔다.
“그…… 성검은 제가 꺼내고 싶을 때 꺼낼 수 있는 게 아니라서요……. 지 필요할 때만 나오는 거라…….”
“그래? 한 번 뽑아 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검을 뽑았고,골든로드는 검을 쥔 나를 향해 어깨를 으쓱였다.
“나오네.”
“……”
이 놈 봐라?
아니 나온 건 좋은데, 왜 나온 거야?
죽은 나무에 잡귀 들러붙은 것도 아니잖아.
저 나무가 뭐, 본연의 영혼을 지녔고, 그게 썩어서 악마 비슷한 게 됐다는 거야, 뭐야?
나 참, 이거 기준을 알다가도 모르겠네…….
‘잘 아네.’
실실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아무튼, 이제 내가 마음을 먹는 것만 남았군.
나는 검을 비스듬히 바닥에 박고, 그 칼자루를 쥐며 내 무게를 실었다.
그렇게 검을 지팡이 삼아 땅을 짚은 채, 나는 시커멓게 뒤틀린 느릅나무를 쳐다보았다.
……‘부엉이탑’근방의 숲에서는 성검을 통해 정령들을 봤었지?
그러나 저 느릅나무는 여전히 시커멓게 뒤틀린 나무로만 보인다.
흠, 그러고보니 그 돌에렛도 그냥 나무로만 보였던가?
골든로드는 엄청나게 다른 모습을 본 것 같던데.
이것도 무슨 기준이 있나?
‘보고 싶어?’
아니.
또 다시 들려온 속삭임에 단호히 대답했다.
안 그래도 힘든데, 가능한 좋은 것만 보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자, 어쩐지 그게 기준이라는 뜻 모를 소리가 들려온 것 같았다.
살짝 고개를 흔들어 그 생각을 지웠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골든,”
나무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나는 입을 열었다.
“돌보는 게 힘들어서 내버리려는 거에요?”
나를 노려볼 것 같아서 일부러 나무를 쳐다보며 물은 건데, 의외로 옆에서 어떤 강렬한 시선도 날아오지 않았다.
기가 막혀 하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희한하네.
시선을 힐끗 옆으로 돌리니, 그가 멍청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저 너무나도 망연해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을 뿐인 모양이었다.
멍하니 나를 보던 갈색 눈이 천천히 움직였다.
비스듬히 시선을 내린 후, 그는 씁쓸히 웃었다.
“……그런 의도도 있다는 걸 방금 알았어. 응, 맞아. 더럽게 힘들어. 조만간 진짜 미칠 거 같아. 그러니 그만하고 싶어.”
“……”
“그래도…… 역시, 난 저 노인네가 편히 쭉 잠들길 더 바라는 거 같아.”
그는 다시 시선을 들어 느릅나무를 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멀쩡한 동안엔 괜찮겠지. 하지만 그 다음은? 내 후임이 똑같은 노래를 부른다고 같은 효과를 보리란 보장이 없어.”
골든로드의 목소리는 영혼에게도 닿는다.
그러니 느릅나무에게 자장가가 통한 것이리라.
혹은, 그가 저 나무와 알고 지내서 효과가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가 없는 이후, 느릅나무가 광기를 흩뿌리는 걸 막지 못한다면……?
골든로드는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이 몸서리를 쳤다.
“저 노인네의 원한이 어디까지 뻗을지 누가 알겠어? 어쩌면 떠도는 원귀까지 불러올지도 몰라.
그러니…… 이렇게 기회가 있을 때, 깔끔하게 보내주고 싶어.
내가 미칠 거 같은 건 그 다음이야. 자네가 믿을지 모르겠지만.”
……물론 믿는다.
물러터진 놈이니까.
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 후, 자리에서 일어나 성검을 들고 그를 돌아보았다.
“꽃들도 같이 타버릴 수도 있어요. 괜찮아요?”
“미친 꽃들? 괜찮지, 그럼.”
“아뇨,”
이상하게 목이 살짝 메어와, 한 번 가다듬고 다시 말을 꺼냈다.
“그…… 만약 여기가 텅 비면요?”
“응?”
“저 나무도, 엘프들의 유해도 전부 없어지면…… 당신은 앞으로 뭘 할 거죠?”
물론 그런 일이 벌어질 거란 확신은 조금도 없다.
썩은 영혼을 전문으로 처리하는 무기이니까, 아마 저 느릅나무랑 미친 꽃들만 없애겠지.
그래도 나는 묻고 싶었다.
그는 이제 사백 살이니, 내가 죽고 한참이나 더 지난 뒤에도 살아있을 거다.
그러니앞으로 여기에 새 꽃이 심겨지지 않는다면……
어쩌면 그가 아직 살아있는 중에, 여기가 텅 빌 수도 있으니까.
골든로드는 놀란 듯이 눈을 끔벅거렸다.
“어…… 생각 안 해봤는데.”
“그래요? 그럼 제가 제안하죠. 음, 저 나무를 보내는 조건으로요.”
“조건? ……이런 건 무상으로 해야 되는 거 아냐?”
뚱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그에게, 나는 일부러 코웃음치며 대꾸했다.
“무상이라니 뭔 말도 안 되는…….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것도 있어야죠! 그게 세상 법칙이라니까요?”
“하이고, 말은 잘해요. 그래서 조건이 뭔데?”
어처구니없어 하는 그를 보며, 나는 빙긋 웃었다.
“책 쓰세요.”
“뭐?”
“책 쓰시라고요.”
멀뚱히 나를 쳐다보는 갈색 눈동자를 향해 말을 이었다.
“저 나무 보내면 이제 시간 많아질 거 아니에요? 어차피 밖에 나가지도 않을 거,책이나 실컷 쓰세요. 아는 이야기들 전부, 토씨 하나 빠뜨리지 말고요.
역사서를 제일 먼저 쓰시는 게 좋을 거 같네요.”
말을 잇는 중에, 나는 그의 눈이 놀라움으로 점차 커져가는 게 보였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엘프의 역사……. 아마 당신밖에 못 쓰겠죠.
그 이야기를 기억하는 건 이제 골든, 당신뿐이니까.”
그 자신이 지나가듯이 말했다.
태고의 엘프에 대한 이야기는 왕에게만 대대로 전해내려온다고.
그러니 본래라면 몇 시간 전에 내가 목숨을 끊은 왕, 아코나이트만 알고 있어야 할 터.
그러나 골든로드 역시 그 이야기를 이어받고 있었다.
어떻게? 뻔하지.
선대 왕의 꽃에게 들은 것이다.
여전히 멍하니 나를 올려다보는 그에게 미소를 건네며, 나는 말을 덧붙였다.
“음, 저희 종교의 가르침 중에 ‘만사는 곧 필연’이라는 말이 있어요.
세상에 우연히 일어난 일은 없고, 다 창조주의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의미이죠.”
신을 믿으니까 그렇게 가르친다고 치부하기엔, 지난번에 그 섬에서 만난 정령도 똑같은 소리를 했었다.
그럼 종교를 떠나, 세상의 이치나 다름없는 것 아니겠는가?
……세상을 보는 시점이 낮고, 앞일을 알 수 없으니 우연으로 보일 뿐.
세상 모든 일은 ‘그렇게 되도록 설계된 것’일지도 모른다.
뭐, 여긴 악마도 있고, 잡귀도 있으며, 정령도 있고, 뭣보다 ‘전능자’가 존재하는 세상이니까.
세상 일을 설계하는 존재가 없는 게 오히려 이상할 거야.
“그 말은……”
“당신이 영혼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또 계속 묘지기로 살아온 건…… 후대에 이야기를 전하기 위한 거였다는 거죠.”
마침 한 번 들으면 잊지 않는, 초월적인 기억능력도 가지고 있고.
……물론, 이야기에는 그걸 전하는 사람의 생각이 섞이기 마련이다.
그러니 완전무결한 역사서는 못 되겠지.
하지만, 적어도 인간이 생명수를 죄다 없앴다는 말도 안 되는 역사가 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큰 뿌리만 잘못되지 않으면 괜찮지 않을까?
그 말을 전하자, 골든로드 역시 엷게 웃었다.
씁쓸함이 묻어 있는 웃음이다.
“……그게 내 삶의 목적이라는 거니?”
“글쎄요. 저는 신이 아니라서요. 그냥 그렇지 않을까 하는 거죠.”
자신이 무얼 위해 태어난 건지, 무얼 위해 살아야 하는지……
그걸 명확히 아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 대부분은 그냥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을 거다.
……내가 고향에서, 아버지를 이어 마을의 필경사로 살겠거니 하고 멍하니 생각했던 것처럼.
“음, 아무튼 저는 당신이 책을 썼으면 해요.”
“……내가 알겠다고 말만 하고 안 하면?”
“그럼 어쩔 수 없죠. 손해보는 건 엘프들이지, 제가 아닌걸요.”
“……나 참.”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웃으며,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나를 향해 한쪽 손을 내밀며 빙긋 웃었다.
“좋아. 받아들일게. 자네 말대로 시간 널널할 테니 소일거리로 삼지, 뭐.”
“거래 성립입니다.”
마주 웃으며 그 손을 힘있게 잡았다.
……그 후, 그는 느릅나무를 어루만지며 무어라 중얼거렸다.
하도 작은 목소리로 하는 터라,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나를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한 발짝 물러났고, 나는 심호흡을 한 후 그 나무에 검을 찔렀다.
혹시 튕기지 않을까 살짝 걱정했는데, 성검은 별 어려움없이 나무 깊숙이 꽂혀 들어갔다.
“……”
조용히, 검게 비틀린 느릅나무에 하얀 불꽃이 피어올랐다.
나무 꼭대기까지 하얀 빛에 휩싸이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가지 끝에서, 하얀 불똥이 꽃밭 여기저기에 내려앉아, 또 다른 불꽃을 피우는 게 보였다.
바로 옆에 붙은 꽃에 나눠줄 생각이 없는지, 저 홀로 끌어안듯이 조용히 불타올랐다.
……평안한 안식을.
그 하나하나의 불꽃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
햇살을 담은 바람이 또 다시 지나간다.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꽃들이 흔들리며 부스스 떠는 소리가 들린다.
나무에서 나는 소리라 하기엔, 너무나도 가까이서 들리는 소리.
그에 섞여, 어제보다도 한층 더 또렷한 흐느낌이 들려온다.
……묵묵히 그 소리들을 들으며, 흩날려가는 하얀 재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축 늘어진 골든로드를 질질 끌며 부엌에 들어서자, 검을 닦던 메린이 눈을 살짝 동그랗게 떴다.
“뭐야? 더위 먹었대?”
“아니, 절여졌어.”
만면에 물음표를 띄우는 그녀를 내버려두고, 나는 눈물과 여러 감정으로 절여진 아저씨를 의자에 대강 올리고, 테이블에 엎어뜨렸다.
로나는 아직 안 온 것 같고……
이제 오후 한 시가 조금 지났으니 차를 마시기에도 이르다.
……아니지, 그 전에 점심을 아직 안 먹었구나.
“메린, 배 안 고파?”
“고파.”
그러면서 전혀 안 그런 것처럼 칼날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래도 바로 대답한 걸 보면 어지간히 고픈 게 아니겠지.
……근데 웬일로 먼저 안 먹었대?
“배고프면 먼저 먹지.”
“응…… 별로 안 땡겨서.”
“뭐?!”
세상에, 쟤가 식욕이 없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그녀에게 물었다.
“너 어디 아프냐? 아까 뭐 독이라도 맞은 거 아니야?”
“아닌데.”
“그럼 왜?”
“내가 아냐?”
덤덤한 말투로 쏘아붙이며, 그녀는 손질이 끝난 검을 검집에 꽂아 넣었다.
그런 뒤, 기지개를 쭉 켜면서 입을 열었다.
“너 아까 거의 뻗어 있었잖아. 그거 보니까 뭐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던데.”
“………아, 그래.”
……내가 기운이 없어서 입맛이 없었다…는 게 아닐 수도 있잖아!
얼굴 너 임마, 설레발 좀 치지 마!
“그럼 대충 간단히 수프 끓인다.”
왠지 겸연쩍어서 내던지듯 말하자, 메린이 기지개를 켜다가 우뚝 멈추었다.
그대로 의자에 기댄 채, 그녀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 고기파이.”
“뭐? 별로 안 땡긴다며.”
“갑자기 먹고 싶어졌어. 만들어주라.”
“어…… 지금? 그거 시간 좀 걸리잖아.”
재료 손질 생각하면 대강 한 시간은 잡아야 할 텐데.
그동안 저 녀석이 배고프다며 테이블 갉아먹을지도 몰라!
“기다리는 동안 수프 끓여 먹으면 되지.”
“……”
고기파이 필요 없잖아.
어이가 없어서 그녀를 멀거니 쳐다보자, 그녀가 테이블에 엎드려 나를 보며 빙긋 웃었다.
……눈을 가늘게 뜨며 미소지은 모습이 왠지 요염해보여, 얼굴이 더워지는 게 느껴졌다.
그대로, 그녀가 속삭이듯이 중얼거렸다.
“네가 만든 파이, 간만에 먹고 싶어.”
“……저번에 먹었잖아.”
“그건 호박이었고. 너 고기파이 잘하잖아. 해줘.”
나를 빤히 보면서 그녀가 눈을 깜빡였다.
……어쩐지 쳐다보고 있기 힘들어, 나도 모르게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려버렸다.
얼굴이 덥다.
여름햇살을 쬐었던 게 이제 올라오는 모양이다.
……아닌 거 알아.
그래도 어쨌든 그런 거야.
“…………뭐, 그렇게 먹고 싶다면야……. 아.”
괜히 창 밖을 쳐다보며 중얼거리다, 중요한 사실을 떠올렸다.
“여기 고기 없잖아.”
짐승들과 대화할 수 있는 탓에, 골든로드는 육식을 꺼린다고 했었다.
생고기는 위슨 배낭에나 있을 텐데, 그 녀석은 지금 왕궁에 있잖아.
어이씨, 이거 사냥부터 해야 되나?
“고기? 창고에 있어.”
오오, 이 싸한 느낌……!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내가 넣었으니까.”
“……그새 뭐 잡았냐?”
“아니, 왕궁에서 가져왔지. 사슴고기 많더라.”
“……”
이거 뭐부터 지적해야 되나?
남의 집 식량을 멋대로 가져온 것?아니면 남의 집 창고에 멋대로 식량을 보관한 것?
그보다 왕궁 창고는 또 언제 뒤진 거야?
아니 그 전에 왜 뒤졌…… 아, 이 자식 혹시……!
왕이랑 싸웠으니까 왕궁을 적진으로 본 거 아냐?!
돌겠네, 진짜.
무슨 말부터 할지 팔짱을 끼고 잠시 생각한 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골든.”
“……됐어…….”
고기는 입도 안 대는 집주인이 처량하게 중얼거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