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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208화 (208/475)

〈 208화 〉 204화 : 뜻밖의 손님 (1)

* * *

다음날 아침. 블루벨을 포함한 우리 다섯 명은, 골든로드와 블루스타의 배웅을 받으며 마을을 나섰다.

나와 메린, 그리고 로나를 제외한 네 사람은 어제 완전히 진이 빠졌었는데, 진짜로 하룻밤만에 기력이 전부 회복된 모양이었다.

하나같이 경쾌하고 가뿐한 발걸음으로, 사뿐사뿐 걷고 있었다.

참 다행이야.

“하아아아아아………….”

“와, 이때까지 들은 한숨 중에 제일 긴 거 같아요!”

“시끄러, 임마아아……….”

정작 나는 기운이 쪽 빨려버렸지만……!

마을의 길을 따라 숲 경계로 나오느라, 또 다시 수많은 시선들을 받은 탓이다.

그것도 후드를 쓰지 않은 채로.

물론 처음에 나올 때는 후드를 푹 눌러쓰고 있었는데……

“역시 너무 막무가내이셨던 것 아닙니까?”

“응? 뭐가?”

“강제로 후드를 벗기신 것 말입니다.”

……골든로드가 ‘얼굴 보이라’면서 홱 벗겨버렸다!

내 완강한 저항은, 옛 엘프의 억센 힘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그리고 그게 다가 아냐.

뒤쪽에 서 있던 블루스타에겐 보이지 않았던 모양인데, 골든로드는 내가 고개를 숙이지 못하도록 턱을 붙잡기까지 했다고!

흑. 약자를 괴롭히는 나쁜 엘프 같으니라고.

“할 수 없잖아. 마을 엘프들에게 ‘용사가 여기 왔었다’는 걸 기억시키려고 일부러 마을을 통과한 건데, 얼굴을 안 보이면 금방 까먹을 거 아냐. 이건 카엘도 납득했다고.”

“예……, 끝까지후드를 쓰지 않은 걸 보면 그런 것 같긴 합니다만…….”

“그리고 내 경험상, 계속 피하기만 하면 점점 더 심해져. 물론 조금씩 익숙해지는 게 좋지만, 여건이 안 되잖아.”

골든로드는 그렇게 말한 후, 쪼그려 앉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재차 입을 열었다.

머리 위가 아닌 바로 앞에서 들리는 걸 보면, 그도 나를 따라 쪼그려 앉은 모양이었다.

“잘했어, 카엘! 얼굴이 새하얘지고 망토 깃이 엄청나게 구겨지긴 했지만, 준비없이 시도한 거 감안하면 굉장히 잘한 거야.시작이 좋은데?”

“……”

고개를 들자, 싱글벙글 웃는 아저씨의 얼굴이 마주 보였다.

그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나는 몇 번이고 되풀이했던 생각을 또 다시 떠올렸다.

“하…… 진짜 딱밤 때리고 싶다……. 앗.”

……그대로 입 밖에 내버렸다!

골든로드는 동그랗게 뜬 눈을 여러 번 깜빡이더니, 곧 웃음을 터뜨리며 내 어깨를 퍽퍽 두드려댔다.

“하하하! 카엘, 자네 지금 속마음이 줄줄 새잖아! 이야, 진짜 아쉽다. 지금이라면 별별 얘기 다 들을 수 있을 텐데!”

“……”

“아무튼, 내가 아까 말한 거 잊지 마. 자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자네 편이야.”

나는 지금 혼자 있는 게 아니다.

메린도 있고, 로나나 위슨, 심지어는 억지로 어깨 붙잡고 있는 골든로드도 내 편이다.

지켜보는 시선들은 그저 보고만 있을 뿐, 어떤 직접적인 위해도 가하지 않는다.

설령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나는 대처할 수 있고, 필요하다면 싸울 수도 있다.

……눈이 핑 도는 와중에, 그런 말들을 그가 들려주었었다.

그 말들을 계속 되뇌인 덕분에, 그가 나를 풀어준 뒤에도 후드를 쓰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죽을 맛이었지만.

골든로드는 나를 일으켜 세우며 싱긋 웃었다.

“어쩌다 자네가 시선을 무서워하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그걸 계속 되새겨. 그럼 방금 전처럼 허리 꼿꼿이 펴고 다닐 수 있을 거야. 그렇다고 너무 무리하진 말고.”

“……네.”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하자, 그는 흡족한 듯이 웃으며 내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왠지 칭찬받는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럼 여기서 작별하자구. 혹시나 인어들을 만나서 우리 도장을 찾게 되거든, 사명 다 끝난 뒤라도 좋으니까 다시 들러.”

“……지장 찍은 걸로 된 거 같다면서요?”

바다로 흘러간 도장을 찾으려면 인어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그 인어가 살던 나라는 완전히 폐허가 되어 있었고, 그래서 갈피를 잡기 위해 천사를 불러오기로 한 것이었다.

다행히 그 시도는 성공했고, 그렇게 로나에게 깃든 그 천사는 대륙 남쪽에 여왕이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아마 그 여왕이 인어의 수장인 거겠지.

어쨌든 당장 도장을 찾긴 글렀는데, 그렇다고 맹약서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로 보낼 순 없다며 골든로드는 골머리를 썩였다.

그랬다가는, 속사정은 어쨌든, 공식적으로 엘프는 용사를 돕지 않은 게 되고 마니까.

그건 절대 안 된다며, 그는 이마를 찡그릴 대로 찡그리더니,

­­아, 그래. 여기 이름도 적어야 된다며? 그럼 그 이름의 주인이 서명을 한 게 맞다는 걸 증명하면 되겠네!!

자포자기와 오기 섞인 목소리로 외치면서, 맹약서에 자신의 이름을 적고, 엄지손가락에 피를 내어 이름 위에 찍어버린 것이었다.

“그래. 적지도 않은 날짜가 뜬 거 보니 인증이 된 거 같긴 해.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하…… 자네가 어제 그 귀인한테 물어봤다면 정 좋아?”

“……”

‘그러고보니 도장 괜찮냐?’고 메린이 묻던 그 순간에 보았던 그의 표정……!

후, 지금 생각해도 간담이 서늘해진다.

그치만 어쩔 수 없는걸!

아무것도 못 들은 채로 천사와 대담했는데, 그걸 어떻게 떠올려!

‘도장 없는데 어쩌냐’고 물어보라고 미리 귀띔이라도 해주던가!

“아하하, 카엘 님은 진짜 이상한 데서 맹하시단 말이죠! 그것도 인간미인 걸까요?”

“그냥 멍청한 거 아니냐?”

“미친 짓할 땐 머리 잘 돌아가잖아. 미친놈이라서 일반적인 생각을 못하는 거 아냐?”

“너희 되게 가차없구나. 뭐, 미친놈이라는 거엔 동의하지만.”

“………커흑.”

몰아치는 공격에 가슴을 부여잡았다.

멈춰……, 폭포 쏟아지듯이 까대는 거 멈춰……!

숨이 안 쉬어진다고!

제길, 세 명이 한 번에 까는 건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는데, 한 명 더 늘어나니까 바로 대미지가 오네……!

“하하, 다들 카엘을 제대로 보고 있구나. 참 다행이야. 안 그래, 블루스타?”

“예, 스승님. 저 모습을 보니 저도 한결 더 안심이 되는군요.”

둘 다 그새 눈이 고장난 모양이다.

날 제대로 보고 있긴 개뿔, 죄다 왜곡된 시선이구만!

“아무튼 카엘, 어디서든, 누구 앞이든 당당하게 서. 자네는 그럴 자격이 충분하니까. 알았지? 몸 조심하고.”

어디서든 당당하게, 누구를 앞에 두든 등을 펴고 서라.

……내게는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쳐다본다고 찌그러지는 건……

아니, 과거의 그림자에 계속 짓눌리는 건 나도 싫다.

안 그래도 별볼일 없는 놈인데, 여기서 더 초라해지면 안 된다.

그건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까지 욕보이는 거니까.

……뭐,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으니까 문제지만.

그래도 노력하겠다는 의미로, 나는 씁쓸히 웃으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골든로드가 씨익 웃더니,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고 속삭였다.

“그리고 내가 어제 알려준 것도 잊지 말고……! 돌기, 꼭 기억해!”

돌기……?그게 뭔……

아, 우와, 와아아악……!

젠장할, 간신히 기억에 파묻어버렸는데!!

“도로 생각났잖아요, 이런 망할……!”

“어허, 귀한 가르침인데 잊으면 안 되지. 아무튼 잘해 봐.”

“아, 글쎄, 안 한다니까 자꾸 그러시네……!”

“하게 될지도 모르잖아? 그때 써먹어.”

“아잇, 진짜……!”

이 아저씨가 끝까지……!

작게 발끈하자, 성질 괴팍한 엘프 아저씨는 유쾌한 듯이 낄낄거리며 다시 몸을 곧게 폈다.

“메린, 로나, 위슨, 자네들도 모두 몸조심해. 카엘 뒤치다꺼리 수고하고. 다들 고마웠어.

블루벨 녀석, 팍팍 써먹어줘.”

“뭔 소리에요? 제가 이 녀석들 뒤치다꺼리 하는구만.”

좌우 양쪽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무시해주었다.

뭐. 왜. 사실을 말했을 뿐이구만.

“아, 평소에 그렇게 단련하는구나? 조만간 시선 무서워하는 것 고칠 수 있겠네.”

“훈련 아닌데요. 아무튼 블루벨은 걱정 마세요. 매일 고향 생각에 훌쩍이도록 만들게요.”

“너 날 어쩔 셈이야?!”

대뜸 내 멱살을 잡아 흔드는 블루벨을 무시하며, 나는 골든로드에게 손을 내밀었다.

“여러모로 감사했습니다, 골든로드. 당신의 기억과 기록이, 부디 이 엘프들에게 희망이 되기를.”

“……갑자기 이러니까 되게 어색하네. 그래, 잘 가, 빛의 대행자이자 하늘의 택함을 받은 용사님.”

그 손을 잡으면서, 그는 나를 향해 빙그레 미소지었다.

“강한 영웅이 아닌, 그저 사람일 뿐인 자네가 선택된 것엔 분명 의미가 있을 거야. 그러니 끝까지 자네 자신으로서 나아가도록 해.

용사로서 악을 무찌르기 위함이 아닌, 그저 아이들을 찾으러 여기에 왔던 것처럼.

아마 귀인도 그걸 바라고 있을 거야. 부디 사명을 완수하길 바랄게.”

굳건한 목소리에 걸맞은 굳센 악수.

임시 아닌 임시 엘프 왕은 그렇게 나를 축복해주었다.

뒤이어 블루스타에게 손을 내밀자, 그는 두 손으로 내 손을 감싸 쥐었다.

“고맙다, 카엘. 그리고 블루벨을 잘 부탁한다.”

“염려 마세요.”

짧고 묵직한 부탁. 나 역시 되도록 힘있게 답하며 그 손을 두드렸다.

이윽고 각자 인사를 나눈 후, 우리는 엘프의 숲을 뒤로 하고 평원을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뒤돌아보는 일 없이, 입을 꾹 다문 채 꼿꼿이 걸어가던 블루벨은,

“……으.”

……엘프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까지 멀어지자,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떨궜다.

음, 고향을 떠나는 건 이번이 두 번째이니 그거 때문은 아닐 거 같은데.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오는 게 좀 걸렸나?

그래도 완전히 떠나는 게 아니니 너무 마음 쓰지 말라고 하려 했는데……

“아으, 허리야……”

……개뿔, 그냥 허리가 아픈 거였다!

진짜 할망구가 됐나, 왜 갑자기 허리 타령이야?

“나 참, 잠 잘못 자기라도 했어? 아무리 그래도 ‘바위궁전’까지는 안 쉬고 쭉 갈 거니까 그리 알아.”

“맘대로 해. 뻐근한 게 풀리면 금방 따라잡을 텐데, 뭐. 으으, 역시 어제 너무 격했나…….”

“……”

뭐가 격했다는 건지는 굳이 묻지 않기로 했다.

이 변태가 상쾌한 아침부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말이 막힌 나를 대신하듯이, 위슨이 얼굴을 찌푸리면서 쏘아붙였다.

“변태 귀쟁이 아니랄까봐 대책없는 거 봐라. 어떻게 긴 여행을 떠나기 직전에 해대냐? 애 들어섰으면 어쩌려고?”

……돌겠네, 진짜.

이 녀석도 아침부터 별 소리를 다하고 있어.

그보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얘한테 애가 들어서겠냐?”

“하, 당연히 날짜 보고 한……건데, 잠깐. 야, 이 새끼야, 너 그거 무슨 뜻이야?!”

“앗.”

제길, 아직 회복이 덜 됐었나……!

목덜미가 저릿한 위험 신호에 곧바로 방어자세를 취했지만, 상대는 옛 엘프까지는 아니어도 그럭저럭 능력이 남아있는 엘프.

내가 그녀를 막아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흥!”

“으어어……”

……그 탓에 한동안 허리를 짚은 채 걸어야 했다.

그 뒤, 우리는 무사히 드워프의 나라이자 도시인 ‘바위궁전’에 도착했다.

정확하게는 입구이지만.

블루벨의 출입허가를 받아야 한다며 위병이 우리를 입구 앞에 세워둔 것이었다.

“용사님께 불편을 끼쳐드려 송구합니다. 그러나 저희 입장상 어쩔 수 없어요.”

“괜찮습니다. 이해해요.”

드워프에게 엘프는 거의 잠재적인 적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정말로 어떤 악의나 적의 없이 찾아온 게 맞는지 의심하는 게 당연하지.

“어쩌면 용사님이 계시는 동안 구금될지도 모릅니다. 미리 알아주십시오.”

“어쩔 수 없죠. 괜찮습니다.”

“야! 왜 네가 납득하는 거야?! 그리고 적어도 항의하는 척이라도 해야 될 거 아냐, 이 미친놈아!!”

“항의해봤자 안 먹힐 게 뻔하잖아. 목만 아프지.”

게다가 수틀리면 나머지 사람들도 못 들어가게 될 거다.

말이랑 여행장비 등등이 저 안에 있는데, 그건 반드시 피해야 돼!

나는 씩씩대는 블루벨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고마워, 블루벨. 우릴 위해 희생해줘서. 그래도 댁을 험하게 취급하진 않을 거야.”

“아직 결정 안 됐잖아, 미리 결론내지 마! 진짜 그렇게 될 거 같잖아!”

“사식으로 술 넣어줄게.”

“………필요 없어!”

망설였군. 역시 술꾼이야, 술에는 사족을 못 쓴다니까.

우려하던 방향으로 일이 전개돼도 술로 달래면 되겠군.

그리고 마침내, ‘바위궁전’ 안쪽에서 다른 위병이 나오더니 우리를 향해 경례했다.

“의회의 결정이 나왔습니다. 귀재……엘프를 포함하여 여러분 모두 출입을 허가합니다.

다만, 여기 머무르시는 동안, 귀……엘프는 숙소에서 나올 수 없으며, 용사님의 일행 중 한 분 이상이 반드시 숙소에 남으셔야 합니다.”

혹시라도 날뛸지 모르니 감시하라는 거군.

뭐, 그래도 감옥에 가진 않겠네.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을 쉰 후, 샐쭉해하는 블루벨을 툭 쳤다.

“얼굴 펴. 그래도 편히 있을 수 있잖아. 대신 거기 창고에 있는 술, 댁이 다 마셔.”

“……너, 내가 술이면 뭐든 헬렐레 하고 넘어가는 사람인 줄 알아? 내가 무슨 죄를 진 것도 아닌데 왜 집에 갇혀서……!”

“이십 년 된 증류주에, 벌꿀술도 있던가? 포도주가 있던 건 확실한데.”

“…………”

……이 엘프, 지금 침 삼켰어!

목이 꿀렁거렸다고!

내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니까!

“……뭐, 무언가 사정이 있는 거 같으니, 내가 좀 참아주지, 뭐.”

그리고 곧바로 기세가 누그러졌다.

……그냥 던져본 거였는데, 바로 덥썩 물어버리네.

이 주당, 술 너무 좋아하는 거 아냐?

술버릇이 어떤지 봐둬야겠어.

너무 고약하면 금주령을 내려야지.

그렇게 다짐하며 위병에게 조건을 받아들이겠다고 답하자, 그는 자신을 따라오라는 듯이 앞서 걷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따라 승강기에 올라타, 바닥이 혼자 내려가는 그 오묘한 느낌을 다시 맛보았다.

“히잇!”

그리고 승강기가 움직이자마자, 블루벨이 양 귀를 감싸며 화들짝 놀랐고,

“아.”

그녀가 뒤로 폴짝 뛰는 동시에 메린이 나를 자기 쪽으로 홱 끌어당겼다.

……아니 뭐,내가 블루벨 뒤에 서 있긴 했다.

좀 멀리 떨어져서.

쟤가 폴짝 뛴다고 나한테 붙을 리가 없는데 말이지?

실제로 블루벨이 움직인 건 반 걸음도 채 되지 않았다.

말없이 메린을 빤히 쳐다보자, 그녀가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뭐. 부딪칠까봐 그런 건데.”

“……아, 그래.”

……왠지 앞날이 두렵다!

하, 바질 잎을 미리 넉넉하게 말려둬야겠어.

그보다 위병이 자꾸 이쪽을 힐끔거리는 게 신경 쓰인다.

투구 때문에 표정이 안 보이는데, 왠지 히죽거리고 있는 거 같아.

로나 녀석은 대놓고 그러고 있고!

돌겠네, 진짜.

잠시 후, ‘바위궁전’의 1층인 ‘입구 층’에 도착한 우리는, 드워프들이 마련해준 숙소가 있는 ‘주택 층’으로 가기 위해 다른 승강기로 향했다.

잠깐 숨을 돌린 후, 의장을 만나러 갈 생각이었다.

그런 우리를 배웅하던 위병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로나를 보며 말했다.

“이런, 깜빡했네요. 사제님, 까마귀가 와 있다고 합니다.”

“까마귀요?”

“지하 신전에서 왔다고 합니다. 이름이 ‘림’이라고 한다더군요. 지금 숙소에 있습니다.”

“아, 율리아 님이 보내셨네요. 알겠어요, 감사합니다!”

율리아 공주가 까마귀를 보냈다고?

그보다 그 공주가 까마귀를 키우고 있었나?

왠지 그런 얘기를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애매모호한 기억에 머리를 긁적이자, 로나가 까르르 웃으며 말했다.

“율리아 님의 단짝이자 말동무에요! 까마귀이긴 한데, 굉장히 특별한 까마귀랍니다. 카엘 님도 보시면 깜짝 놀라실 거에요!”

“그래? 뭐, 말이라도 하나보지?”

똑똑한 새에겐 말을 가르칠 수 있다던가?

근데 수도에서 여기까진 거리가 꽤 될 텐데, 어떻게 찾아왔나 몰라.

진짜 똑똑한가보다.

속으로 감탄하며 숙소 앞에 다다른 나는,

“…………”

사람만 한 까마귀와 맞닥뜨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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