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9화 〉 205화 : 뜻밖의 손님 (2)
* * *
까마귀 크기가 보통 어떻게 되더라?
제일 큰 게 내 키 절반 정도였던 거 같은데.
대가리가 두 개 달렸었지만.
그리고 지금 현관 위 지붕에서 폴짝 뛰어내린 까마귀는, 대가리는 하나인 대신 크기는 그 놈의 두 배였다.
즉, 나랑 키가 똑같은 것이다!
목에 끈 달린 가방을 맨 까마귀는 까악 하고 울더니,
“참 빨리도 오는구나. 어디서 노닥이다 이제 기어들어오느냐?”
미묘하게 위엄 있는 목소리로 욕을 날렸다.
……이거 말을 가르친 수준이 아닌데?
진짜 까마귀 맞나?
“와, 안녕하셨어요, 림!”
“오냐. 여전히 땅딸막하구나.”
“키 조금 컸을 텐데요!”
“그게 큰 것이냐? 여기 시장에 던져 놓으면 구분이 불가할 터. 혹여 ‘바위의 자녀’의 피를 이은 것이 아니더냐?”
“너무해요!”
빽 소리를 지르는 로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까마귀는 입을 한 번 쫙 벌리더니 몸을 털었다.
……꼭 사람이 하품하면서 기지개 켜는 것 같군.
“소란 떨지 말고 안에나 들거라. 율리아가 너에게 여럿 보냈느니라.”
“뭔데요?”
“편지. 옷. 금화. 확인해보거라.”
“옷……? 아, 드디어 완성됐나요? 아싸!!”
흠? 교단에서 로나에게 옷을 보냈나보네.
뭐, 보나마나 사제복이겠지.
지금 그녀가 입고 있는 사제복은 억지로 품을 조정한 건데, 그녀의 몸에 맞도록 새로 지은 모양이다.
한걸음에 숙소로 달려들어가는 로나를 보며, 까마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리 방정맞아서야 원…….”
“……”
그리고는 한숨을 푹 쉬며 그녀의 뒤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음, 역시 까마귀가 아니야.
세상에 저런 까마귀가 어딨어?
“……혹시 정령인가?”
“아니야.”
“아닐걸.”
위슨과 블루벨이 동시에 대답하더니, 왜 끼어드냐는 듯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돌겠네, 진짜.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느끼며, 좀더 명백한 답변을 한 위슨을 돌아보았다.
“혹시 정체도 알아?”
“어. 근데 비밀이야.”
“염병.”
그 놈의 비밀비밀비밀비밀……
아니 뭐 죄다 비밀이야?
흥이다, 치사한 놈들아. 안 궁금해!
속으로 투덜거리며 집에 들어가자, 까마귀가 거실 의자에 앉아서 날개깃을 정돈하고 있는 게 바로 보였다.
물론 사람처럼 다리를 구부려서 앉아 있는 게 아니긴 한데……, 보고 있으니 왠지 정신이 멍해지는군.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 거실을 지나쳐 계단을 올라가려는 순간,
“이리 오너라, 용사. 어찌 손님 접대도 하지 않고 가려 하느냐?”
“……”
까마귀에게 지명당하고 말았다.
침묵이 짙게 내려앉은 거실에, 찻잔 하나와 스튜그릇 하나를 놓는 소리만 조용히 울렸다.
거실에 있는 건 나와 까마귀 단 둘뿐.
다른 녀석들은 제각기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
“……”
내 몫의 찻잔을 기울여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내려놓았다.
펄펄 끓인 물로 우려낸 차가 모락모락 김을 내고 있다.
까마귀 앞에 놓인 스튜그릇도 김이 나 있는데,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부리를 대고 할짝인 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럭저럭 괜찮구나. 허나 바질이라니, 두통이 있는 모양이지?”
“지금도 좀 있네요.”
“허다한 일에 괘념하는 까닭이렷다. 네 좋을대로 해도 좋으나, 본분은 결코 잊지 말거라.”
그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나는 지금 너무 잡다한 일에 신경을 쏟고 있어.
예를 들면, 차를 타겠다면서 블루벨이 부엌으로 가던 거나,
그런 그녀를 위슨이 막으러 가선 눈부신 빛이 마구 터진 일이나,
찻주전자와 잔들을 든 메린의 뒤로, 위슨이 축 늘어진 블루벨을 질질 끌고 간 일 같은 거.
그리고 또, 지금처럼 의자 위에 앉아서 부리로 차를 홀짝이는 까마귀가 나를 타이르고 있는 이 해괴한 상황도 있다.
덤으로 내가 그 까마귀에게 존댓말을 쓰고 있는 것도 있고.
“……”
하나도 잡다하지 않잖아!
이걸 어떻게 신경을 안 써?
그보다 이게 대체 뭔 상황이야?!
“그 아이에게 천사가 강림했던 듯한데, 어인 일로 그리하였느냐?”
“네? 그걸 어떻게……”
“다 아는 바가 있으니 토 달지 말고 답하거라.”
“……”
파랑새가 그 더러운 성질을 그대로 두고, 말투만 좀 고풍스럽게 바꾸면 이런 느낌일까?
나 참, 이러다 새에게 편견이 생길 거 같아.
작게 한숨을 쉰 후, 로나에게 천사가 깃들게 된 경위를 쭉 이야기해주었다.
까마귀는 조용히 내 말을 들은 뒤, 고개를 끄덕거렸다.
“흠, 탈타니스가 멸망했는가? 역시 그랬군. 그래서, ‘고래의 무덤’이 어디인지는 아느냐?”
“글쎄요. 로나는 남쪽 해안에 있는 마을들은 전부 해당이 될 거라고 하더군요.”
‘고래의 무덤’은 아마 폭풍고래를 잡은 마을을 가리킬 것인데, 그 고래는 은근히 정기적으로 여러 마을 앞에 나타났다고 한다.
그러니 마을을 전부 싹 다 뒤져봐야 할 거라며 한숨을 푹 쉬었었다.
“그 말만 전하진 않았을 터. 제대로 떠올려라, 용사. 어린 자가 벌써 기억이 흐릿한 게냐?”
“……대평원의 끝에서 여왕이 기다리고 있노라. 대언자의 충신이요, 전능자의 주석(??)이 그대의 길을 인도하리라.”
말을 마친 나조차 깜짝 놀랄 만큼 술술 말이 쏟아져나왔다!
세상에, 내 기억에 확실히 심겨진다더니 진짜였네!
“역시나.”
까마귀는 그제야 흡족한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하다면 ‘걸리프’로 가거라. 그곳에 알스가 자리하고 있으니, 그를 찾으면 된다.”
“알스……?”
으음, 어째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테이블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어떻게든 기억을 떠올리려 애써 보았으나, 애석하게도 아무 소용도 없었다.
“모르느냐? 거북이 등딱지마냥 율리아에게 늘 붙어있는 사제다. 너도 만난 적 있을 터.”
“아.”
고향에서 공주와 그녀를 수행하는 사제들과 같이 떠날 때……
그래, 공주가 ‘말 편하게 하라’고 했더니 바로 나를 죽일듯이 쏘아봤던 그 남자 사제님!
다른 사제들은 그냥 노려봤는데, 그 사제님만 살기를 잔뜩 둘렀었지. 맞아.
……근데 왜 따로 떨어져 나와있지?
공주는 어쩌고?
“그러고보니, 율리아 님은 잘 계시나요?”
“잘 있지. 지금쯤 방 안에서 지루하다고 혼자 찬미가를 부르고 있을 게다.”
“네? 바쁘신 거 아니에요?”
까마귀는 차를 홀짝이더니, 시큰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제까지는 분주했다. 지금은 성 꼭대기방에 감금되어 있지.”
“……네?”
지하 신전에 있어야 할 사람이, 왜 성 꼭대기방에……?
아니, 그보다 갇혀 있다고? 창조주의 목소리를 전하는 대언자가?
하필이면 한창 대재앙이 일어나고 있는 이 시기에?!
너무나도 황당해서 입을 떡 벌리고 있자, 그는 제 날개를 정돈하면서 재차 말했다.
“네가 괘념할 일이 아니다. 너는 네 길이나 가거라. 그리고 또 그 자가 무엇을 전했느냐?”
“어…… 제 동료의 목을 고칠 실마리는 ‘끝없는 장서관’에서 찾을 수 있다고…….”
“또.”
“어어…… 용사를 위한 진실이 남쪽 산꼭대기의 사원에 있다고…….”
“그렇군.”
대수롭지 않은 듯이 대꾸한 후, 까마귀는 고개를 까닥이며 말을 이었다.
“두 곳 다 이 산맥에 있다. ‘끝없는 장서관’의 위치는 이곳 ‘바위의 자녀’들에게 묻거라. 사원은 ‘장서관’으로 향하다 보면 자연히 마주하겠지.”
“……저기,”
차 한 모금을 꿀꺽 넘긴 후, 나는 그 날카로운 부리에 쪼일 각오를 품고 물었다.
“당신, 정체가 뭡니까?”
“어찌하여 묻느냐?”
“그냥 까마귀라기엔 아는 게 너무 많아서요.”
마치 로나에 깃들었던 그 천사처럼.
물론 이 까마귀는 그 천사의 말을 보충했을 뿐이지만, 그러려면 천사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지식이 있어야 하잖아.
어쨌든 예사 존재가 아닌 건 분명했다.
“너희들은 항상 진실을 좇지. 진실된 형태를 보고, 진실된 말을 듣기를 원해. 스스로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지 가늠하지도 않은 채.”
정체가 뭐냐고 물었더니, 까마귀가 갑자기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혹시 의심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상했나?
제길, 새라서 표정을 못 읽겠어.
“물론 그를 책하려는 것은 아니다. 거짓을 숭앙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 허나 때로는 그 추구가 지나쳐, 사사(??)를 괘념하느라 대사(大?)를 그르치니 통탄할 따름이다.
율리아, 그 아이도 결국은 사람인 게지.”
흠, 그냥 ‘알 필요 없다, 말 못한다’를 빙빙 돌려 말하는 건가?
푸념하듯이 한창 말을 늘어놓은 뒤, 까마귀는 한숨을 푹 쉬었다.
“내가 누구인지 물었느냐?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더냐? 나의 정체를 앎으로써 네 여정이 편해지지 않는다. 모름으로써 더 험난해지지도 않지.
사사(??)는 흘려버리거라, 용사. 그게 네 두통을 덜어줄 것이다.”
결국 안 알려준다는 거군.
뭐, 틀린 말은 아니다.
그가 정말로 천사이건 아니건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지.
어차피 천사나 그런 비슷한 위치의 초월적 존재일 게 뻔하고.
……그래도 저렇게 쏘아붙일 것까진 없잖아.
사람만 한 크기에 따끈한 차까지 홀짝이는 까마귀인데, 어떻게 정체를 궁금해하지 않을 수 있겠냐고!
“……그리고 그 아이는, 미지를 탐구하고 규명하는 것은 지성체로서 당연한 의무라며 반박했지.
참으로 당돌한 아이야. 조슈아를 떠올리는 성질머리로다.”
혼자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까마귀는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저 무심하고 무정한 검은색만 떠올라 있는 두 눈이,어떤 빛도 보이지 않는 까만 눈동자가,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허나 나의 본질은 사람의 아이가 듣고 능히 감당할 수 없다.
나는 림. 모든 대언자의 동반자요, 그 시작과 끝을 지켜보는 까마귀이다. 네가 알아야 할 것도, 네게 말할 수 있는 것도 그뿐.”
“……”
“별을 읽는 자의 후손이여, 네 핏속에 기록에 대한 열심이 흐르는 것이 보인다. 그 열정이 너를 삼키지 않도록 해라.
미지와 비밀이 풍기는 달콤한 향내에 현혹되지 말거라. 때로는 그 안에 독이 있으니 말이다.
세계를 부장품으로 삼는 것이 네 소망이라면 좋을 대로 하고.”
함부로 비밀을 캐는 것은 위험하며, 내가 죽으면 세계도 끝이니 조심하라.
그 말을 굉장히 기품 있게 비꼬아서 말씀하시는 까마귀님이었다.
음, 이 까마귀가 율리아 공주의 단짝이자 말동무라고 했던가?
이렇게 말투가 신랄하니, 말싸움이 더 많을 것 같은데?
살짝 가라앉은 분위기에 말없이 차를 홀짝이고 있는데,
두두두두두.
별안간 바닥이 마구 울리더니, 작은 그림자가 거실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로나구만? 옷 갈아입고 왔나보네.
“로나, 집 안에서 뛰면……”
“짜자아안~!”
“……!”
내 잔소리를 썩둑 자르며 크게 외치는 로나.
만면에 웃음꽃을 가득 피운 채 두 팔을 벌린 그 모습에,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빨간 포대자루였던 모습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으니까!
머리카락을 감추고 있던 베일부터 시작해, 발을 감싸는 신발까지 몽땅!
머리를 감싼 베일엔, 무슨 투구처럼 금속띠가 둘러져 있다.
붉은 빛으로 물들인 가죽조끼 중앙엔 빛을 상형한 성광이 새겨져 있고, 치마인지 뭔지 모를 하의엔 검 그림이 수놓아져 있다.
망토는 여전히 녹색인데……
아, 저거드워프들이 빌려준 그 망토구나.
아무튼 내가 생각한 사제의 차림이 전혀 아니다.
베일과 성광(?光) 자수 빼면, 그냥 갑옷 입은 병사잖아, 저거!
“어때요, 림? 잘 어울리나요?”
“품이 맞는 것 같군.”
“아니 어울리냐고요!”
“겉치레는 내 알 바 아니다.”
“어휴, 박정하기도 하지. 카엘 님 보시기엔 어때요? 이게 전투사제의 평복이거든요!”
뭐? 평복?
저게 평소에 입고 다니는 옷이라고?!
“어…… 그럼 네가 아까까지 입고 있던 건……?”
“그거요? 예복인데요. 예배나 큰 의식을 집행할 때 입는 거에요.”
그럼 뭐야, 여태 예복 입고 싸워댄 거야?! 오, 주여.
아니, 아무리 쟤한테 맞는 옷이 없어도 그렇지, 어떻게 예복을 입히고 여행을 보내냐?
진짜 어이가 없네. 편지에 한 줄 더 추가해야겠어.
“아무튼 어때요? 잘 어울리나요?”
“응, 뭐……. 움직이기 편해보이네.”
“그야 전투사제용 옷이니까요. 으음…… 카엘 님까지 반응이 미묘할 줄은 몰랐는데요.”
정말로 실망한 건지, 로나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살짝 늘어뜨렸다.
난감하네.
근데 진짜 빈말로라도 어울린다고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야, 그거 솔직히 기능이 더 중요한 옷이잖아. 순수하게 어울리는 걸로 따지면, 지난번에 입은 드레스가 훨씬 더 어울렸어.”
이미 열 네 살짜리 소녀가 보일 수 있는, 가장 어울리는 차림을 본 뒤이니까.
아니, 메린처럼 셔츠에 바지를 입었더라도 그게 더 잘 어울릴 거야.
그 어떤 차림도 사제복보다는 더 잘 어울리겠지.
의무와 복종, 그에 더해 끝없는 투쟁의 뜻이 담긴 옷 따위, 열 네 살짜리 소녀에게 어울릴 리가 없다.
내 말에, 로나는 눈을 살짝 크게 뜨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런가요? 저는 그 드레스가 더 어색했는데요. 옷을 잘못 입은 것 같아서 영 불편했는데.”
“잘만 돌아다니더만 무슨……. 뭐, 화려한 옷은 처음 입어본 거잖아. 그러니 어색했겠지.”
“어쨌든 저, 5798번째 전투사제 로나는 앞으로 이 옷을 입고 다닐 거랍니다!
……근데 진짜 안 어울려요?”
눈을 깜빡이며 작게 덧붙이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냐, 되게 강해보여.”
“아니 어울리냐고요!”
“응, 어울려. 철퇴랑.”
“철퇴? 제가 아니라 철퇴랑 어울려요?!”
입을 비죽 내밀고 혼자 투덜대던 로나는, 이내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빙그레 웃었다.
“음음, 철퇴랑 저는 한 몸이나 다름없으니까, 어쨌든 어울린다는 이야기네요. 히히!”
“아, 그래. 어련하겠냐.”
……이것도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라고 봐야 하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예복도 새로 왔어요! 입을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림, 예전 예복은 어떡해야 하나요?”
까마귀는 그릇을 부리로 물고 기울여서 차를 홀라당 마셔버린 다음,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그리고 로나와 마주서서 고개를 까닥였다.
“정화하고 태우거라. 편지는 읽었느냐?”
“아, 네! 알스 사제님이 계신 곳으로 특별사제들을 전부 보내셨다고 하던데, 왜 그러신 거죠?
율리아 님께 무슨 일이 있나요?”
“그 당시엔 아무 일 없었다. 지금은 왕성 꼭대기방에 갇혀 있지.”
“저런.”
자신의 최고상관이 험한 꼴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로나는 그저 눈을 휘둥그레 뜰 뿐이었다.
보통은 허둥대거나 화를 낼 텐데.
“그럼 조만간 왕성 공략하나요?”
“푸흡!”
간만에 차를 내뿜었다!
차라리 무반응인 게 훨씬 나았겠네!
로나 녀석, 태연하게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아서라. 율리아가 그걸 승낙하겠느냐? 제 발로 처형장에 뛰어들지 않으면 다행이지.”
“율리아 님이 그렇게 된 게 악마 때문일수도 있잖아요.”
“설령 그러하다 하여도 네가 낄 자리는 없을 게다. 네 본분이나 다하거라.”
“그럴 수가……!”
……어째 율리아 공주가 갇혔다는 소식보다 더 충격 받는 것 같은데, 내 착각인가?
저 녀석, 진짜 싸우는 거 좋아하네…….
“네가 옷을 입은 것도 보았으니, 나는 이만 돌아가마. 혹여 율리아에게 전할 것이 있느냐?”
“아, 저요. 저 있어요. 잠시만요.”
후다닥 방에 올라가, 율리아 공주 앞으로 써두었던 편지에 서둘러 한 줄을 더 썼다.
고이 접은 종이를 봉투에 넣으면서 다시 내려오자, 까마귀가 내 손을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편지인가?”
“네. 율리아 님에게 꼭 전해주셨으면 합니다.”
“호오? 흐음…… 흐흐, 좋지, 좋아. 그 아이의 의욕을 되살리기 좋겠군.”
“……?”
뜬금없이 끌끌 웃으면서 내 편지를 부리로 물더니, 까마귀는 제 목에 걸쳐진 가방에 편지를 집어넣고 끈을 당겨 묶었다.
……저 모습을 보고서도 전혀 놀랍지 않은 걸 보니 벌써 적응했나보다.
역시 인간은 적응하는 생물이라니까.
그리고 까마귀는 다시 집 밖으로 터벅터벅 걸어나갔다.
그는 기지개를 켜듯이 날개를 한 번 퍼덕이며 몸을 털고, 그를 배웅하러 나온 나와 로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럼 로나, 수고해라. 용사, 그 아이가 날뛰지 않도록 고삐를 잘 쥐거라.”
“고삐 같은 거 없거든요?!”
발끈하는 로나를 무시해버리며, 까마귀는 날개를 퍼덕이더니 순식간에 하늘로 솟구쳐 사라졌다.
흠, 저대로 동굴 천장까지 쭉 올라가는 건가?
터벅터벅 걸어서 승강기를 타는 것도 꽤 웃길 거 같은데.
“율리아 님이 감금이라니. 괜찮으실지 모르겠네요.”
“아, 걱정은 하는구나.”
“네? 아~ 아니요, 율리아 님이 아니라 다른 분들이요. 분명히 난리칠 게 뻔하거든요.
교단이 왕성을 점령하는 것도 볼 만할 거 같긴 한데요~”
태평한 말투로 무시무시한 말을 던지며, 로나는 집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머릿속에 한 모습을 그려보았다.
저마다 둔기를 하나씩 손에 들고, 성벽을 뛰어오르며 성문을 부숴버리는 붉은 사제들.
뒤에서 그들을 보조하며, 화살 하나 통하지 않도록 보호막을 펼치거나 치명상을 고쳐버리는 가지각색의 사제들.
어느 악덕 영주를 무너뜨렸다던 그 전설적인 일화가, 실제 역사로서 새겨지는 그 순간을.
“히익.”
……우와, 진짜 소름 돋았어!
그 폭풍과 같은 성스러운 군세를 대체 누가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일단 인간은 절대 못 막을 거 같다.
선포식 때 악수를 나누었던, 그 억센 손을 가진 왕이 마지막 국왕이 되지 않기를 빌며 숙소로 돌아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