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210화 (210/475)

〈 210화 〉 외전 3) 잊지 않는 기억 (Side : Merin)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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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편 시작 전 시간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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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5일.

최초의 대언자인 조슈아의 탄생일이자, 교단의 대축일이다.

같은 이름의 축제일지라도 마을과 도시마다 그 날짜와 방식은 조금씩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대축일엔 왕국 전역이 동시에 축포를 터뜨리며, 날짜가 바뀌는 순간까지 기쁨과 즐거움으로 흘러 넘친다.

그것은 왕국의 최북단, 숲에 둘러싸여 있어 아는 사람만 아는 마을인 놋지빌도 예외는 아니다.

설령 그 의미는 오래 전에 퇴색되어 잊혔다 할지라도, 일을 쉬고 즐기는 날을 싫어할 사람이 과연 어디에 있으랴.

지난밤에 내린 함박눈 때문에 아침부터 삽을 들어야 하는데도, 사람들이 웃는 얼굴로 서로 축복인사를 나누며 즐거워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메린은, 그 모습을 보며 홀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왜 좋아하지?’

사람들이 축제를 좋아하는 것은 들어서 안다.

하지만 눈을 치우는 건 귀찮아서 다들 싫어하는 일이다.

이 둘은 별개의 일일 터인데, 어째서 축제일에 눈을 치우는 걸 저리 즐겁게 하는 것인가?

그 의문은 작년에도……

아니, 매년, 매 축제마다 품고 있다.

물론 그 답은 예전에 이미 들어서 기억하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의문은 풀리지 않고 있었다.

­­축제를 곧 즐길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서, 귀찮아 죽겠다는 생각을 덮어버리는 거야.

그렇게 대답하면서 그가 인상 쓴 웃음을 지은 걸 보면, 원래부터 그녀가 이해하기 어려운 종류의 것이겠지.

실제로 그녀는 이해가 되지 않았고, 그 풀리지 않은 의문이 속을 내리누르며 약간 답답한 느낌을 주었다.

그 화풀이를 하듯이, 메린은 솥을 뒤집어서 눈 속에 처박고 다시 꺼내 들었다.

그 솥을 살짝 흔들어 눈을 안쪽에 퍼뜨린 후, 이번에는 맨손으로 솥이 가득 찰 때까지 눈을 퍼 넣었다.

그대로 솥을 들고 집 안에 들어와, 이미 불이 지펴진 화덕에 걸었다.

이내 화덕의 열기에 눈이 녹기 시작하자, 그녀는 솥을 들어 테이블 위의 작은 물동이에 가득 부었다.

그 뒤, 솥에 다시 눈을 채우고 화덕에 걸어, 그 하얀 눈이 끓는 물로 변하도록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

그녀는 물동이에 담긴, 눈 섞인 물을 살짝 건드려보았다.

손끝이 아릴 정도로 차가운 물.

이 정도라면 물을 덜 자주 바꾸어도 되겠지.

그녀는 덤덤히 고개를 끄덕인 후, 물동이를 들고 그……카엘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

문을 열자마자, 가쁜 숨소리에 섞여 격한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뒤이어, 흐느낌 섞인 앓는 소리가 들린다.

아까 전엔 숨이 고르지 않긴 해도 조용히 자고 있었는데, 지금은 꿈…그것도 굉장히 좋지 않은 꿈에 시달리고 있는 듯했다.

‘수건이 데워졌나?’

침대로 다가가, 그의 이마에 올린 수건을 만져보았다.

뜨끈한 기운이 얼얼한 손을 풀어가는 느낌에, 그녀는 얼굴을 찌푸렸다.

역시나.

그녀는 짧은 한숨을 쉰 후, 물동이의 물을 물그릇에 붓고 열에 데워진 수건을 헹구었다.

그리고 적당히 물기를 짜, 온통 땀투성이가 된 그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하아…… 아…으……”

갑자기 닿은 찬 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꿈 때문인지, 그가 얼굴을 찡그리며 몸을 떨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일을 할 뿐이었다.

그녀는 그의 이마에 얼음장 같은 수건을 얹고, 흐트러진 이불을 다시 덮어준 뒤에야,

“쉬잇. 괜찮아, 카엘. 괜찮아.”

한 손으론 그의 머리를 쓰다듬고, 다른 손으로는 그의 가슴을 토닥이며 속삭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의 울먹이기 직전이던 그의 표정이 풀리며, 약간 가쁜 숨소리만 조용히 들리기 시작했다.

그 얼굴을 물끄러미 보며, 그녀는 신기하다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그저 흉내를 냈을 뿐.

이제는 없는, 그의 어머니가 곧잘 그를 달래던 걸 따라한 것이다.

그런데 그는 어째서 이렇게 금방 안정을 찾는 것인가?

그 의문은 아직 그에게 물은 적이 없다.

어차피 그 이유를 들어도 자신은 이해하지 못할 게 뻔하고……

그 이전에, 어째서인지 그 물음을 입에 올리고 싶지 않았다.

특히 카엘에게서는 더더욱, 답을 듣고 싶지 않았다.

“……”

잔기침을 하는 그의 머리를 한 번 더 쓰다듬은 후, 그녀는 수건을 헹구느라 빨갛게 물든 자신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쩔까?’

그냥 불을 쬐어서 녹이려면 이 방을 나가야 한다.

언제 또 그가 꿈에 시달리며 뒤척일지 모르는데, 그럴 수는 없다.

그렇다고 꽁꽁 언 채로 손을 내버려둘 수도 없다.

감사예배와 축제 준비 때문에 외출한 그의 아버지, 엘리아스가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까.

‘이거 보면 또 ‘그러다 동상 걸린다’고 잔소리하겠지.’

이 마을에서 그녀에게 잔소리를 하는 사람은 단 세 명.

하나는 눈앞에서 끙끙 앓고 있는 카엘, 다른 하나는 그의 아버지 엘리아스, 그리고 이 마을의 검술 사범인 티치이다.

이 셋 중에서, 그녀는 엘리아스에게 잔소리를 듣는 게 가장 싫었다.

다른 두 사람의 잔소리는 잠깐만 속이 가라앉는 정도이지만, 엘리아스의 것은 다르다.

항상 잔소리 끝에 어두운 얼굴로 미안하다며 뜻 모를 사과를 하는데, 그럴 때마다 그녀의 속이 땅 밑으로 가라앉는 것처럼 무거워졌다.

그 느낌이 싫어, 그녀는 엘리아스가 돌아오기 전에 손을 어떻게 녹일지 궁리하기 시작했다.

“아.”

표정을 찡그리며 고민하던 그녀의 입에서 작은 소리가 새어나왔다.

어쨌든 열에 대면 되는 것 아닌가?

마침 바로 가까이에 열을 내는 사람이 있으니, 그의 열을 식히면서, 겸사겸사 자신의 손을 데울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걸 뭐라고 하더라? 돌 하나로…… 곰 잡기? 음, 아닌 거 같은데.’

고개를 갸웃하면서, 메린은 그의 뺨에 손을 하나씩 올렸다.

‘따뜻해.’

아침에 오자마자 쟀을 때는 뜨거웠는데, 지금은 약간 따뜻한 느낌이다.

……어쩐지 그의 표정도 좀더 편해진 것 같았다.

역시 좋은 방법이었다는 생각에, 그녀의 입이 슬며시 휘어졌다.

그렇게 손바닥과 손등을 한 번씩 녹이고, 잠깐 화덕에 걸어 둔 솥을 살핀 다음, 다시 그의 뺨으로 손바닥을 녹이고 있을 무렵,

“으응…….”

카엘이 눈살을 찡그리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

초점이 잘 맞지 않는지 눈을 몇 번 깜빡이고, 무어라 입을 달싹인다.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분명하지 않지만, 그녀는 왠지 자신의 이름을 부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아침.”

늘 하던 인사를 건네자, 그가 멍하니 그녀를 보면서 목소리를 냈다.

“좋긴…… 개뿔이……. 콜록, 콜록!”

“아침인사는 그거밖에 없잖아.”

이불 위로 가슴을 토닥여주며 대꾸한 후, 다시 그의 뺨에 손을 댔다.

“하…… 뭐하냐……?”

“아저씨 대신 너 간병하는데. 오늘 대축일이잖아.”

“대축일……? 이런 망할…….”

아마 축제날에 이렇게 누워 있는 게 싫은 것이리라.

그는 얼굴을 찌푸릴 대로 잔뜩 찌푸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잠시 후, 그는 다시 눈을 뜨고 길고 긴 한숨을 쉬었다.

“근데 그거 말고…… 너…… 내 얼굴에 손…… 왜……?”

“엉? 이거? 손 시려서.”

“불 쫴…… 그러다…… 저주 옮아……”

“……”

저주.

그 말을 들은 그녀의 눈살이 찌푸려지며 눈이 가늘어졌다.

어릴 때부터 골골대던 카엘은, 나이를 먹으면서 그럭저럭 사람 구실을 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연말만 되면 열병에 걸려 드러눕는다.

그런 그를 향해 사람들이 중얼거리던 것을, 그녀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카엘은 저주를 받은 것이다.

외지인의 피가 섞인 그를, 땅이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수군대는 말들에 그녀는 표정을 찡그리며 고개를 저어왔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정말로 그가 저주를 받은 거라면, 어째서 아직 살아있는 것인가?

뱃속에서 죽든가, 흉측한 몰골이어야 하지 않은가?

아니면 숲을 쏘다니는 미치광이나 거렁뱅이처럼, 머리가 텅 비어서 태어나거나.

그러나 그는 여태 살아있으며, 얼굴도 고블린이나 오크와는 조금도 닮지 않았다.

맹한 인상이어서 그렇지, 그는 누가 봐도 사람처럼 생겼다.

그의 아버지를 따라 글씨를 쓰는 일을 할 수 있고, 그녀 자신에게 이것저것 가르쳐줄 수 있을 만큼 똑똑하기도 하다.

이따금 멍청하긴 하지만, 그건 머릿속이 빈 게 아니라 그의 성격 자체가 순하고 얼빠진 탓이다.

그리고……

정말로 이 땅과 숲이 외지인을 거부한다면, 엘리아스는 이 마을에 오자마자 죽었어야 한다.

아니면 자신의 아들처럼 병이 들거나.

그러나 엘리아스는 공동사냥에도 참가할 정도로 튼튼했다.

숲이 집어삼킨 것도, 외지인인 그가 아니라 마을 토박이인 그의 아내였다.

정말이지, 말이 맞는 게 하나도 없다.

그러니 그는 저주와는 아무 상관도 없다.

그저 병치레가 잦을 뿐, 다른 마을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사람이다.

그녀 자신과는 다른, 이상한 데 하나 없는 평범한 사람.

“……네가 뭔 저주냐? 또 헛소리하고 있네.”

‘너일 리가 없잖아.’

만약 정말로 이 마을의 누군가가 저주에 걸렸다면, 그건 카엘 에스트렐이 아닌 메린 소더일 것이다.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녀 자신이야말로, 누구보다도 ‘저주받은 자’라 할 수 있을 터.

그러나 그 말을 지금 할 순 없었다.

카엘은 평소에도 그 말만 들으면 개소리 말라며 마구 화를 냈다.

그런 그가 지금 열이 높을 때 그 말을 듣는다면……

그야말로 기름을 붓는 꼴이 되겠지.

어쩌면 울지도 모른다.

“아냐…… 나는……”

“아, 됐어. 조용히 해. 열 더 오르잖아.”

자꾸만 헛소리를 하는 게 거슬려서 날카롭게 쏘아붙이자, 그는 입을 다물고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그 표정을 보는 그녀의 얼굴도, 저도 모르게 찌푸려져 갔다.

‘아프면 다 이러나?’

그녀의 말에 겁을 먹거나 주눅들면서도, 입은 살아서 따박따박 대꾸하고 덤벼들었었는데.

지금은 그녀가 약간 짜증낸 것만으로 표정에 짙은 그늘이 낀다.

열이 나면 이렇게 확 달라지는 것인가?

감기 하나 앓은 적 없는 그녀로선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변화였다.

……아무튼 그는 아프다.

그리고 아픈 사람이 나으려면 잠을 많이 자야 한다.

말을 하는 것도 기력을 쓰니, 이 이상 그가 말을 하게 두어서도 안 될 터.

그의 말을 막아버리는 동시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잠에 들게 해야 한다.

마침 방법 하나를 알고 있으니, 곧바로 시행하기로 했다.

메린은 침대에 걸터앉아, 축 쳐진 그의 몸을 반쯤 일으켜 머리를 껴안고, 그 뒷머리를 살살 쓰다듬기 시작했다.

“아…… 야, 땀……”

“됐으니까 가만 있어.”

“……”

한 스무 번 정도 쓰다듬었을까?

그녀의 귓가에 그의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왔다.

조심스럽게 다시 그를 눕히자, 약간 가쁜 숨을 쉬면서도 표정이 한껏 풀어져 있는 얼굴이 보였다.

‘금방 잠들었네.’

그의 몸을 일으키느라 떨어진 수건을 주워, 곤히 잠든 그의 이마에 다시 얹었다.

다행히, 수건은 아직 손이 아려올 정도로 차갑다.

……역시 신기하다.

머리를 쓰다듬으면 빨리 진정되는 것도 그렇고, 지금처럼 끌어안으면 얼마 안 가 잠이 드는 것도 희한하다.

‘물어보면 알려줄 거냐……?’

속으로 중얼거리며, 그녀는 잠든 그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점심 때가 약간 지났을 무렵, 별안간 바깥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바닥 먼지를 쓸던 메린이 고개를 드는 것과 동시에, 이 집의 주인이자 카엘의 아버지인 엘리아스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가 빗자루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엘리아스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네가 여기 나와있는 걸 보니 괜찮은 모양이구나.”

“네. 자고 있어요.”

“그래……. 아, 청소는 할 필요 없어. 저 놈 부탁한 것도 미안한데, 청소까지 하면 내가 면목이 없잖니.”

"면목……? 아~ 아니요. 심심해서 하는 거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그저 움직이는 편이 시간이 더 잘 가니까 하고 있을 뿐, 엘리아스를 위해서 하는 게 아니다.

그러니 그가 사과할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런 그녀의 말에, 그는 한숨을 푹 쉬며 굳게 닫혀 있는 방 문을 쳐다보았다.

“나 참, 저 놈은 왜 하필……. 참 팔자 사나운 놈이야. 정말 미안하구나, 메린. 축제에 못 가게 되어서.”

“상관없어요. 어차피 안 가는데요.”

이번에 카엘의 열병이 시작된 건 바로 어제, 대축일 전일이었다.

평소라면 아버지인 엘리아스가 그를 돌보았을 터이나, 하필 시기가 좋지 않았다.

마을 촌장이 엘리아스에게 대축일 행사의 감독을 맡기는 바람에, 점심 이후부터 집을 비워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메린을 찾아갔고, 마침 검술 훈련장에 있던 그녀는 카엘을 돌봐달라는 그의 부탁을 듣자마자 흔쾌히 승낙했다.

병치레가 잦은 소꿉친구를 돌보는 건 익숙할 대로 익숙한 데다, 마침 눈 치우는 작업에 동원되려던 참이었기에 거절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뿐 아니라, 오늘 아침예배도 간병을 핑계로 빠질 수 있었다.

사과를 받을 게 아니라, 오히려 그녀가 고맙다고 해야 할 판이었다.

“아니, 저 놈이 이번엔 꼭 너 축제에 데려가겠다고 벼르고 있었거든.”

‘아, 그래서…….’

그래서 ‘오늘이 대축일이다’라는 말에 욕부터 내뱉은 것이었나.

축제에서 놀지 못하게 된 것 때문이 아니라, 벼르고 벼르던 계획이 어그러진 게 화났던 것이다.

그 사실을 이해한 그녀는, 곧바로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쓸데없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을 데리고 광장에 갈 생각을 하다니.

그런 짓을 하게 되면 분명 시선을 받을 게 뻔한데.

여러 사람의 시선을 받는 걸 싫어하면서, 왜 스스로 수렁에 들어가려 하는 건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엘리아스는 눈썹을 살짝 찡그린 미소를 지었다.

저걸 쓴웃음 내지는 씁쓸한 웃음이라고 했던가?

그런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쳤다.

어떤 때에 그런 웃음을 짓느냐는 그녀의 질문에, 카엘은 이렇게 답했었다.

슬프거나 한탄하거나 화를 내기는 싫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을 때 웃는다고.

즉, 엘리아스는 그녀가 ‘쓸데없이 뭐 하러 그러냐’고 대답한 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네가 항상 집에 있거나, 아니면 다른 자경대원 대신 경계 서는 게 싫은 모양이야.”

‘역시.’

아무래도 아쉽다고 대답해야 했던 모양이다.

지금이라도 ‘안 그래도 된다’는 등, 말을 꾸미면 되겠지만……

그녀는 그런 공허한 대답, 맘에도 없는 말을 입에 올리는 게 껄끄럽기 그지없었다.

다행히 엘리아스를 포함한 잔소리꾼 세 명은, 그런 그녀의 성미를 잘 아는지라 말을 꾸밀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평소처럼, 어깨를 으쓱이며 엘리아스에게 대꾸했다.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건데, 왜 괜히 신경을 쓰나 모르겠네요.”

“저 놈도 마찬가지야. 아마 너랑 같이 다니고 싶은 걸 거야. 평소엔 그냥 한 번 슥 구경하고 말거든.

하지만 네가 같이 간다면 좀더 돌아다니겠지. 과자도 먹으면서.”

“흐음……. 아저씨, 수프 드실래요? 넉넉한데.”

솥을 가리키며 무심하게 묻는 그녀의 모습에 재차 쓴웃음을 지은 후, 엘리아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바로 다시 나가야 한단다. 식사 시간에 잠시 나온 거거든.

하…… 촌장님도 참, 왜 나를 이렇게 부려먹으시는 건지 모르겠구나.”

“아저씨가 그럴 능력이 되니까 그러겠죠. 밤에 돌아오시죠?”

“그래. 뒷정리 감독도 해야 하니 아마 자정 넘어서…… 엥?”

돌연 엘리아스의 목소리가 뒤집어지더니 표정이 굳어졌다.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

침대에 누워있어야 할 그가, 비틀대는 걸음걸이로 테이블에 앉는 게 보였다.

그녀가 놀란 눈으로 그를 보는 사이에, 엘리아스가 한걸음에 다가가 테이블에 엎드린 그를 일으켜 세우려 했다.

“카엘, 임마, 왜 기어나와! 얼른 들어가!”

“시러요…….”

“싫기는, 녀석아, 열이 펄펄 끓는 놈이………응? 내렸나?”

엘리아스는 고개가 푹 꺾인 그의 이마에 손을 짚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그녀에게 손짓했다.

그녀 역시 카엘의 이마를 짚어본 후, 어깨를 으쓱였다.

“다 나았네요.”

“녀석, 사람 놀라게 하기는.”

한숨을 푹 쉬며 엘리아스가 손을 놓자, 카엘은 비실비실, 다시 테이블 위에 엎드렸다.

“인석아, 아무리 그래도 한겨울에 이 꼴로 나오냐? 추위도 잘 타는 놈이?”

“……”

“나 참…….”

대답없이 늘어져 있는 그를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엘리아스.

메린은 살짝 고개를 까닥이며 그에게 물었다.

“방에 던질까요?”

“음…… 아니, 그래봤자 도로 기어나올 거다. 그냥 냅두렴. 감기 걸리면 지 손해이지.”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엘리아스는 아들의 방에서 이불과 베개를 들고 나와, 멀거니 서 있는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하…… 저 놈 좀 부탁한다. 광장에 있을 테니, 무슨 일이 있거든 와서 알려주고.”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엘리아스는 자신의 아들을 보며 한 번 더 크게 한숨을 쉬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문이 열렸다 도로 닫히는 그 짧은 사이에, 한겨울의 차가운 기운이 방 안에 휘몰아쳤다.

그러자 테이블에 엎드려 있던 그가 잔기침을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추어…….”

“추운데 왜 나왔냐?”

“등 아파…… 혼자…시러…….”

“뭔 소리를 하는 건지…….”

열은 깨끗이 내렸는데도, 여전히 헛소리를 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한숨을 쉬며, 메린은 그의 등을 이불로 덮어주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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