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1화 〉 외전 3) 잊지 않는 기억 (Side : Merin) (2)
* * *
항상 그랬듯이, 이번에도 카엘의 열병은 아무 전조도 없이 말끔히 나았다.
미열조차 남기지 않고, 그의 기력마저 몽땅 빼앗은 채.
때문에, 열병이 나았더라도 하루 정도는 계속 간병을 해야 했다.
더군다나, 대축일 행사의 감독을 떠맡은 엘리아스는 축제의 뒷정리까지 살펴야 한다.
빨리 돌아와야 자정이고, 늦으면 내일 새벽에나 돌아올 터.
그러니 그녀가 내일까지 그를 돌봐야 한다는 사실은 여전했다.
‘할 게 없네.’
점심은 먹고 그 뒷정리까지 다 했고, 바닥 청소까지 끝내버렸다.
그 다음 그녀가 할 만한 일이라 하면, 열 때문에 땀에 푹 젖었을 카엘의 몸을 닦고 옷을 갈아 입히는 것이지만…….
‘나중에 시끄럽단 말이지…….’
사나흘 이상 앓을 때가 아니면, 그는 ‘그러지 말라고 했지 않느냐’, ‘고작 하루이틀인데 왜 손을 대냐’며 꼭 난리를 친다.
빨래하는 김에 하려고 했다는 등등, 그녀 나름의 이유를 다 대어도, 평소와 달리 귀담아 들어주지 않는다.
그저 귀까지 빨갛게 물든 얼굴을 손으로 덮은 채, 바닥에 엎드려서 앓는 소리를 낼 뿐.
그리고 그때마다 그녀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단지 창피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렇게 생난리를 피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알몸을 보이는 거나 마찬가지인 게 창피한 것이리라.
사람들은 대개, 알몸을 보이는 걸 수치스럽다고 생각하니까.
그러나 여전히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 몸을 보이는 게 창피하다니, 대체 왜……?
‘이미 다 봤구만.’
나이를 먹은 지금에야 하루이틀만 앓아 눕지만, 예전에는 며칠씩 침대에서 지내곤 했다.
물론 그때는 그의 어머니가 주로 보살폈지만, 여유가 없을 때는 메린, 그녀가 그의 병수발을 들었다.
그리고 작년…… 그는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른 후, 정말 오랜만에 일주일이라는 긴 시간동안 앓았다.
일 때문에 바쁜 엘리아스 대신 그녀가 그를 간호했고, 그때 옷도 손수 갈아 입혔다.
물론, 속옷까지.
별 대수롭지 않게 일을 진행하는 그녀를, 엘리아스가 복잡한 눈으로 보았던 것 같은 기억이 있다.
그리고 직접 말은 하지 않았지만, 카엘도 그녀가 그때 자신을 간병했다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을 터.
그런데도 발광을 해대니, 그의 말버릇마냥 돌아버릴 것 같았다.
결국 반박하기도 귀찮아져, 그녀는 그냥 그의 고집을 들어주기로 한 것이었다.
그 덕분에, 지금 그녀는 정말 할 일이 없었다.
조금도 졸리지 않으니, 카엘처럼 테이블에 엎드려 낮잠을 잘 수도 없다.
‘그나저나 잘 자네…….’
아무리 베개로 받쳤다 해도 테이블이니 딱딱해서 불편할 텐데, 그는 침대에 누워서 잘 때처럼 무척이나 편안한 얼굴로 잠들어 있다.
그녀가 머리를 만지작거려도 깨지 않을 만큼, 아주아주 깊이.
그런 그가 신기해서, 이따금 볼을 쿡쿡 찔러보는 등, 곤히 잠든 그를 건드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똑똑똑.
“……?”
또 다시 바깥에서 발소리가 울리더니,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노크를 한 시점에서 엘리아스는 아니다.
그러나 이 시간에, 그것도 바깥에선 한창 축제가 벌어지고 있을 때에 누가 이 집을 찾아온단 말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문을 열자, 옅은 금발머리를 틀어 올린 여자와 짙은 갈색머리의 여자가 서 있었다.
금발머리 여자는 두 손에 천으로 둘둘 싼 무언가를 들고, 어쩐지 안절부절한 얼굴로 시선을 내리깔고 있다.
반면, 짙은 갈색머리 여자는 표정을 찡그린 채, 금발머리 여자를 향해 한숨을 쉬고 있었다.
메린은 두 여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의아함에 눈을 깜빡이며, 그녀는 두 여자의 이름을 차례로 입에 올렸다.
“슐 언니에 뮤티 언니? 웬일이야?”
촌장의 다섯째 딸인 슐. 그리고 넷째 딸 뮤티.
이 두 사람이, 왜 이 시간에 이곳을 찾은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어? 메린……? 아, 아아, 그렇지. 에스트렐 씨는 아버지 돕고 계시니까, 응, 네가 있는 게 당연하구나.”
어째서인지 금발머리 여자, 슐은 메린을 보고 화들짝 놀라며 횡설수설했다.
그 모습에 메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한번 웬일이냐고 묻자, 슐은 꾸러미를 쥔 손을 꼼지락거릴 뿐, 좀처럼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의 옆에 서 있던 짙은 갈색머리 여자, 뮤티가 다 들으라는 듯이 한숨을 푹 쉬었다.
“진짜 못 봐주겠네. 야, 카엘 있지? 좀 볼게.”
“자는데.”
“그래? 그럼 더 잘됐네. 아무튼 얼굴 좀 보고 갈 테니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좀 비키지?”
그리고는 메린이 무어라 대답을 하기도 전에, 문을 홱 열어젖히고는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가버렸다.
“어, 언니! 실례잖아! 근데…… 응? 카엘?”
허둥지둥 그 뒤를 따라 들어간 슐이, 테이블에 엎드려 있는 카엘을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저기, 메린……, 얘 왜 여기서 자고 있니?”
“열이 내리니까 기어나왔어.”
“어……? 그런데 그냥 두는 거야……?”
“아저씨가, 어차피 방에 넣어봤자 도로 나올 거라고 그냥 두래.”
“아…….”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후, 슐은 몸을 낮추어 테이블에 엎드린 카엘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이내, 그녀는 푸흡 하고 작게 웃으면서 다시 몸을 일으켰다.
“되게 잘 자네. 테이블 딱딱할 텐데.”
“신기하지?”
“응. 아, 방에서 나왔다고 했나? 아마 혼자 누워있기 싫은 걸 거야. 나도 그러거든.
아, 메린, 이거……”
슐이 들고 있던 꾸러미를 메린에게 건네려는 찰나,
“으으……”
“푸핫, 이래도 안 일어나네.”
그녀의 귀에, 무척이나 신경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렸다.
카엘이 끙끙 앓는 소리, 그리고 조금 전에 그녀를 밀치고 들어갔던 뮤티가 즐거워하는 소리.
얼굴을 찡그리며 다시 고개를 돌리자, 뮤티가 씨익 웃는 얼굴로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거나, 볼을 잡아당기는 등, 카엘을 이리저리 건드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그가 괴롭혀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곧바로 그 여자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언니……!”
뒤쪽에서 슐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신의 언니가 무례하게 군 것을 책망하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 그녀에게 끌려나가는 걸 보고 놀란 것인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어차피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그녀는 문을 열고 뮤티를 바깥에 내동댕이쳐버렸다.
“꺄앗! 무, 뭐하는 거야?!”
“내가 할 소리인데. 잘 자는 애를 왜 뜬금없이 괴롭히고 지랄이야?”
“괴롭히긴 누가 괴롭혔다고……! 그냥 좀 건드린 것뿐인데 왜 난리야?!”
그냥 조금 건드린 것뿐.
그냥 조금 놀린 것뿐.
그냥 조금 논 것뿐.
그녀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이 여자와 그 패거리들이 그 논리를 펼치며 웃고 떠드는 동안, 그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를.
어째서 그가 여러 사람에게 주목받는 걸 싫어하는지를, 그녀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쟤가 싫어하잖아, 그게 안 보여? 언니, 눈깔 병신이야? 하, 아니지, 눈깔 문제가 아니라 대가리 문제겠구나.”
“뭐야……?! 이 년이 말이면 다인 줄 알아……!”
“뭐. 말 말고 손으로 해줄까? 그래, 대가리에 맞춰서 아주 병신을 만들어주지, 뭐.”
입꼬리를 비틀며 말하는 메린의 시선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가는 여자의 얼굴이 비쳤다.
그러고보니 이 여자는 그녀에게 어떤 해코지도 당한 적이 없다.
항상 뒤에서 웃고, 부추기고만 있었으니까.
그 기록이 마침내 깨지려는 순간,
“아, 자, 잠깐! 잠깐, 메린! 아, 안 돼, 그러면 안 돼!”
여전히 꾸러미를 손에 든 슐이, 두 사람 사이를 비집고 끼어들어왔다.
“내, 내가 대신 사과할게! 미안해! 이, 이번은 그냥 넘어가줘! 뭐해, 언니, 얼른 사과하지 않고!”
“우, 웃기지 마! 내가 사과를 왜 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오히려 내가 사과를 받아야지, 위협당했는데!
너, 너 두고 봐! 어머니한테 다 말씀드릴 거야!”
“언니!”
뮤티는 새파래진 얼굴로 말을 내뱉고는 쏜살같이 뛰어가버렸다.
그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멀거니 보던 슐은, 제자리에 힘없이 쪼그려 앉더니 제 다리에 얼굴을 묻었다.
“………정말 싫어. 다들 끔찍해.”
“……”
잠시 그대로 긴 숨을 쉬고 또 내쉰 후, 슐은 다시 일어나 메린과 마주섰다.
살짝 붉어진 눈으로 미소를 지으며, 슐은 재차 꾸러미를 내밀었다.
“……이거, ‘조쉬의 푸딩’이야. 오늘이나 내일, 카엘이랑 같이 먹어.”
조쉬의 푸딩.
본래 겨울축제 때마다 먹던 건데, 최초의 대언자 조슈아가 생전에 즐겨 먹었다는 이유로 그의 이름이 붙어버린 음식.
재료는 밀가루, 양이나 소 지방, 건포도를 위시한 말린 과일들, 다진 고기, 술 등등.
재료도 재료지만, 만드는 방법 자체도 여타 푸딩과 별 차이 없다.
이 요리를 특별하게 만드는 건 딱 하나.
약 한 달 전에 미리 만들어서 축제일까지 재워 둔다는 것이다.
덤으로, 테이블에 낼 때에 술을 약간 뿌려서 불을 붙이는 작은 연출도 벌인다.
그리고 그 연출을 통해, 광장에 열린 축제의 낮과 밤을 가른다.
날이 저물고, 미리 만들어 둔 거대한 푸딩이 광장에서 타오르는 순간, 아이들의 시간은 끝이 난다.
광장 중앙에는 커다란 모닥불이 피어오르고, 곳곳에 설치된 테이블엔 더 많은 술잔이 오가기 시작한다.
이후는 류트와 피리, 백파이프의 연주에 춤을 추고, 술을 퍼 마시는 어른들의 시간인 것이다.
……카엘이 언젠가 그렇게 말했던 것을, 그녀는 기억하고 있었다.
아무튼 미리 만들어야 해서 번거로운 음식인데, 슐은 굳이 그걸 준비해서 가져왔다.
아버지와 아들 둘이서만 살고 있으니, 이런 손이 가는 음식을 준비하지 못했을 거라 생각한 것이리라.
실제로 축제 음식은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닭이나 쇠고기 통구이도, 양고기 파이도, 심지어는 으깬 감자구이조차 없다.
게다가 지금은 환자까지 있으니, 오늘이 축제일인지 평일인지 모를 간소한 식탁이 될 예정이었다.
그래도 이 푸딩이 있으면 조금은 축제일다운 저녁이 되겠지.
“고마워, 언니.”
“……아냐, 고맙긴. 뮤티 언니가 무례하게 굴어서 미안해. 그럼 난 가볼게, 너도 얼른 들어가.”
메린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저, 저기, 메린.”
“……?”
별안간 자신을 부른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슐이 시선을 내리깐 채 손을 꼼지락거리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카엘…… 잘 부탁해……. 아, 무, 물론, 메린 너는 그 애랑 잘 알고 지내니까 잘 하겠지만……!”
또 다시 허둥대는 슐을, 메린은 의아한 눈으로 지켜보다가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카엘이 걱정돼?”
“어?! 아, 그…… 으, 응……. 아, 이, 이상한 의미가 아니야! 카엘 그 애, 원래는 나보다도 몸이 약했잖아. 그리고, 그, 이웃이고, 평소에 나한테도 친절하게 대해준 좋은 애고…….
아, 마, 말 그대로 좋은 애라는 거야, 다, 다른 의미는 없어, 진짜야!
아, 나, 진짜로 갈게! 기쁜 축일 돼!!”
얼굴까지 붉히고 횡설수설하더니, 그대로 인사를 던지고 도망치듯 뛰어가버렸다.
‘왜 저러지?’
영문을 알 수 없는 행동이었다.
촌장 집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광장을 지나야 하니, 아마 거기서 데운 술을 한 잔 마신 것이리라.
날씨가 추우니까.
그렇게 혼자 납득하면서, 메린은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조리대 위에 꾸러미를 두고 테이블을 돌아보자, 웬 커다란 이불덩어리가 테이블 의자에 놓여 있었다.
그녀가 그 여자를 내보내는 사이에, 머리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웅크린 듯했다.
“어휴…….”
한숨을 쉬며, 그녀는 이불을 홱 걷어버렸다.
역시나, 카엘은 의자에 몸을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건조한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그녀는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야, 이러고 잘 거면 방에 가라.”
“시러………”
중얼거리며 다시 비실비실 일어나더니, 베개를 끌어안고 도로 테이블에 엎드렸다.
‘이상한 데서 고집 세단 말야…….’
한숨을 푹 쉬며, 그녀는 다시 그의 등에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리고 또 약간 시간이 흐른 후, 또 다시 발소리와 함께 노크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도 엘리아스가 아닌 손님이라는 사실에, 그녀는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축제하는 거 아니었어? 뭐 이리 사람이 자꾸 와?’
속으로 투덜대며 문을 열자,
“안녕, 메린. 별일 없지?”
“아, 사범님.”
그녀의 세 잔소리꾼 중 하나이며, 이 마을의 검술 사범인 티치가 손을 흔들었다.
한손에는 천으로 덮인 바구니를 안고 있었다.
“지나가다 들렀다. 카엘은 좀 어때? ……엥? 저거 카엘 아냐? 저 놈 왜 저기서 저러고 있어?”
훤칠하게 큰 키 덕분에 방 안이 훤히 들여다보인 모양이었다.
메린은 황당하다는 눈초리로 그를 쳐다보는 티치에게 어깨를 으쓱였다.
“몰라요. 갑자기 기어나왔어요. 열은 내렸길래 그냥 냅두기로 했고요.”
“……희한한 놈이네. 아, 이거 고기파이랑 케이크야. 에스트렐 씨나 너나, 축제 음식 준비 안 했을 거 같아서. 우리집 몫 만드는 김에 조금 더 만든 거니까 부담 갖지 말라고 전해줘.”
“와, 고마워요.”
푸딩에 고기파이에 케이크……
본의 아니게 식탁이 점점 더 풍성해지고 있었다.
어쩌면 내일 세 끼를 다 축제 음식으로 때워야 할지도 몰랐다.
‘잘됐네.’
먹을 게 풍성한 건 좋은 것이다.
식량이 넉넉하다는 사실에 그녀가 바구니를 보며 웃음을 짓자, 티치 역시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집 안을 가리키며 그녀에게 물었다.
“잠깐 들어가도 되지? 이거 말고도 받아온 게 있거든.”
“네? 아, 네.”
그녀가 문에서 비켜서자, 그는 잠시 몸을 숙이더니 나무통을 하나 들고 안에 들어왔다.
그리고 화덕과는 멀리 떨어진 벽 쪽에 그 통을 놓자, 속에서 찰랑이는 소리가 들린 듯했다.
“술이에요?”
“어. 맥주. 촌장님이 한 통 주라고 하시더라. 에스트렐 씨, 맥주 좋아하시잖냐.”
대축일 행사 감독에 대한 삯이로군.
그녀는 홀로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이런 데서 잘도 자네.”
별안간, 티치가 테이블에 엎드려서 자고 있는 카엘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리더니,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가볍게 툭툭 두드렸다.
“얌마, 카엘. 메린 귀찮게 하지 말고 얌전히 침대로 가라.”
“……”
“이 새끼, 이거 미동도 안 하네.”
헛웃음을 켜며,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럼 난 가볼게. 너 좀 보고 온다니까 클로다가 이를 박박 갈았거든. 나 참, 홀대하는 것도 아닌데 뭐 그리 질투가 많은지, 원.”
클로다는 이삼 년 전에 그와 결혼한 여자의 이름이다.
메린이 검술 훈련장에서 티치를 도와 다른 아이들의 검술을 봐주고 있을 때, 어째서인지 매번 찾아와서는 그녀를 매섭게 쏘아보는 이상한 여자였다.
여태까지 그러는 이유를 몰랐는데, 질투라니…….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질투요?”
“내가 널 너무 신경 쓴다고 어찌나 쪼아대는지……. 그것만 빼면 완벽한데 말야.
아무튼 간다. 저 놈 너무 오냐오냐 해주지 말고 그냥 방에 던져버려.”
“아저씨가 냅두래서요. 안녕히 가세요.”
“에스트렐 씨가 문제로구만. 그래, 그럼 기쁜 축일 되렴!”
시원스럽게 손을 저으며 티치가 떠나갔다.
그에게 받은 바구니를 조리대에 둔 후, 메린은 여전히 테이블에 엎드려서 자고 있는 카엘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물론 곤히 잠들어 있지만……
역시 테이블보단 침대에서 자는 편이 훨씬 회복이 빠를 터.
‘진짜 던져버릴까?’
팔짱을 끼고 진심으로 고민하기 시작한 순간, 아까 슐이 그를 보면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마 혼자 누워있기 싫은 걸 거야. 나도 그러거든.
혼자 방에 누워있는 게 싫다…….
그게 왜 싫은 건지는 묻지 않았으니 알 길이 없다.
‘근데 왠지 맞을 거 같아.’
카엘처럼 심각하게 골골대진 않았더라도, 슐 역시 잔병이 많은 사람이다.
적어도 그녀 자신보다는 아픈 사람의 마음을 더 잘 알 터.
그렇다면…… 그녀가 같이 있겠다고 하면 방에 돌아가지 않을까?
되든 말든, 일단은 시도해보기로 했다.
‘안 되면 진짜 던지지, 뭐.’
속으로 결정을 내린 후, 메린은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을 걸었다.
“야, 카엘, 들어가서 자. 나도 방에 있을란다.”
“……으응…….”
곧바로 그가 비실비실 일어나, 그녀보다 먼저 방에 들어갔다.
“……와, 진짜 됐네.”
역시 무엇이든 경험이 중요한 법이다.
새삼 깨달은 교훈에 눈을 끔벅거리면서, 메린은 이불과 베개를 들고 그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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