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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215화 (215/475)

〈 215화 〉 208화 : 아무튼 휴가입니다 (1)

* * *

빈약하긴 해도 어쨌든 여자인 사람이 바닥에 쓰러져 있고, 좀 헷갈리긴 하지만 어쨌든 남자인 녀석이 그 위에 올라타 있다.

오후 네 시라는 화창한 오후에 걸맞지 않은 상황.

그것도 한쪽은 미성년자인 이 무시무시하게 끔찍한 광경을 보고도 큰 소리를 내지 않은 건,

“아, 카엘 님. 오셨어요? 히히, 좋은 시간 보내셨나요~?”

“……”

빨간 옷을 입은 사제님이 방긋 웃으면서 그 여자의 두 팔을 붙잡고 있기 때문이리라.

덤으로, 근처에 웬 수염이 짧은 남자 드워프가 불만 가득한 눈으로 블루벨을 노려보고 있기도 하고.

보기에 좀 그래서 그렇지, 지극히 건전한 상황인 것이다.

사제님이 있는데 당연히 건전하지.

그럼, 건전하고 말고.

“카, 카엘, 살려줘! 이 놈들이 단체로 날 범하려고 해!!”

“……”

눈물을 글썽이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뱉고 있다.

이중에 그녀에게 그런 해코지를 할 사람이 어디 있다는 것인가?

물론 그녀를 깔고 앉아 있는 어느 마법사님이 약을 먹인 적이 있지만, 자백을 받기 위한 목적이었지, 다른 뜻이 있던 건 아니다.

그나저나, 이게 뭔 상황인지 설명해주는 사람이 왜 하나도 없냐?

“얘들아, 그래서 이게 뭔……”

“그만 포기하고 받아들여. 발버둥쳐봤자 소용없다고. 다치기 싫으면 얌전히 있어.”

“싫어어어!! 캬흑!”

블루벨이 자꾸 몸부림치니까, 위슨이 그걸 막으려고 제 무게를 더 실은 듯하다.

갑자기 복부가 눌렸으니 숨이 막혀서 소리가 터져나오겠지.

음, 건전하다.

“어휴, 천장 무늬만 세면 금방 끝날 텐데, 뭘 그리 발악을 하는 거에요?”

“웃기지 마! 그 말에 속을 줄 알아?! 아, 싫어, 손대지 마! 그거 저리 치워!”

“자, 시작해볼까…….”

밧줄을 팽팽하게 쫙 펼치며, 위슨이 블루벨의 겨드랑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마 줄을 감으려는 거겠지.

건전…한가……?

“시, 싫어, 아, 아아아……! 도와, 도와줘, 카엘……!도와줘요……! 블루스타아……!”

……아잇, 진짜!

“일단 멈춰, 이 자식들아!! 돌겠네, 진짜! 뭐하는 거냐니까?!”

결국 못 참고 소리질러버렸다!

그치만 여러모로 위험한걸!특히 소리가……!

블루벨도 울기 직전이고!

빽 소리를 지르는 나를 향해, 위슨이 어깨를 으쓱였다.

“치수 측정.”

“……뭐? 치수?”

“어. 이 변태가 밖에 나가는 건 안 되니까, 대신 치수를 재서 알려달라던데.”

그렇게 말하며, 그는 벽을 향해 고갯짓했다.

그러자 거기 서 있던 드워프가 한숨을 푹 쉬더니, 고개를 까닥여 인사를 건넸다.

“의회에서 결정이 나왔습니다, 용사님. 무기와 방어구 모두 지원은 가능한데, 방어구 쪽은 아무래도 치수가 필요해서요.

일행분들께서 이 자의 몸 치수를 직접 측정해서 알려주시면, 제가 개발연구소에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물론포목점에서 출장을 나오는 게 가장 확실하고 빠르겠지만, 아무래도 거부감이 있을 터라…….”

그리고 이 드워프 역시 블루벨을 보는 시선이 그리 곱지는 않다.

암피오 의장이 말한 대로, 엘프의 수작 때문에 가족이나 친구를 잃은 드워프가 적지 않은 모양이다.

엘프들이 산에 있는 나무 밑에 어떤 부적을 붙인 짐승 사체를 묻었고, 그 탓에 나무가 밤마다 노래를 부른다고 했던 거 같은데.

혹시 그 나무들에게 잡아먹혔나?

아무튼 로나와 위슨은 블루벨의 치수를 재는 걸 돕고 있었던 듯했다.

그럼 위슨이 들고 있는 건 자이겠군.

아무리 봐도 밧줄이지만.

“어…… 근데 왜 이 꼴이 된 거죠?”

내 안의 윤리가 꿈틀거리는 광경을 가리키며 묻자, 이번엔 로나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왜긴요! 이 사람이 손 대지 말라고 빽빽 소리지르면서 도망가려고 하니까 이렇게 됐죠!

그냥 치수 재는 거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못 알아듣는다니까요!”

“웃기시네! 내가 모를 줄 알아?! 치수 재는 척하면서 여기저기 만지려는 거잖아!

목 치수 재면서 냄새 맡고, 허리 재면서 쓰다듬고, 가슴둘레 재면서……”

“일일이 설명하지 마, 이 변태야!!”

그냥 ‘만지려는 거 아니냐’에서 끝내면 될 걸, 왜 부가설명을 하고 지랄이야?!

그리고 잘 보니, 블루벨의 얼굴은 어째서인지 살짝 상기되어 있다.

아마신나게 소리지른 것 때문에 그런 거겠지.

그거 말고 달리 이유가 있겠어?

블루벨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면서 재차 소리쳤다.

“아무튼 싫어! 내 몸에 손댈 수 있는 건 블루스타 뿐이야! 치수가 필요하면 내 옷 가져가서 재면 되잖아!!”

“몸을 재는 게 더 확실하잖아, 이 꼴통아. 귀쟁이 아니랄까봐 대가리 속까지 음란하구만?”

“누, 누가 음란하다는 거야?! 여자 위에 거리낌없이 올라타는 네가 음란하지! 바, 밧줄까지 들고……!”

……저 엘프, 어째 얼굴이 살짝 더 빨개진 것 같은데.

불빛에 비춰서 그런 거겠지?

“이거 줄자라고 했잖아, 변태야. 눈금 개수 세어서 길이 재는 거라고.

그보다 허리 좀 들썩이지 마라. 아무리 위슨이라도 좀 그렇거든?”

“시끄러어어!!”

있는 힘껏 소리친 후 바닥에 엎드렸다.

빌어먹을, 블루벨이 정식 동료로 들어온 지 하루도 안 됐는데 벌써 이 꼬라지라니!

드래곤 잡기 전에 위장병 걸려서 쓰러질 거 같아……!

“차라리 서로 치고 박고 싸워, 이 썩을 놈들아! 되도 않는 음담패설 하지 말고! 아니면 나 없을 때 하든가!”

“음담패설이라뇨. 하나도 안 야하잖아요, 카엘 님. 적어도 ‘이걸로 뱃속 길이 재볼까?’ 같은 소리는 나와야……”

“너 대체 뭔 교육을 받은 거야?!”

아, 어지러…….

얼굴을 손으로 덮고 재차 숨을 고른 뒤, 나는 여전히 버둥거리고 있는 변태에게 물었다.

“하…… 그냥 로나가 재면 되지?”

“아, 안 돼! 저 사제 음흉하잖아! 더 끈적하게 만질 게 뻔해……!”

“뭔 말 같지도 않은…… 하…… 돌겠네, 진짜. 그럼 댁은 무기만 받아.”

“싫어! 나도 새 옷 받을 거야!”

“에라이, 썅!”

잠깐 참는 것도 못하겠고, 그러면서 장비는 받고 싶다고?!

아니 뭐 이딴 새끼가……!

아……

이 엘프, 혹시 날 화딱지 나게 만들어서 죽이려고 악마가 심은 첩자 아닐까?

하, 미치겠네, 이걸 어쩌지……?

이건 술로도 안 꼬셔질 거 같은데.

“재워.”

“……”

어느새 나를 따라 올라온 메린이 태연하게 말했다.

“약을 먹이든 기절을 시키든, 얌전하게 만들면 되잖아.”

“안 돼. 축 늘어져서 더 재기 힘들어.”

……이미 고려해봤구나.

허허, 무서운 자식들 같으니.

한숨을 푹 쉬고 있자, 메린이 옆에서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럼 나랑 로나, 위슨이 쟤 붙잡고, 카엘이 치수 재면 되겠네.”

“……제가요? 왜요?”

“네가 여기서 제일 기운이 없으니까.”

청천벽력 같은 제안이었다.

아, 큰 소리를 마구 질러서 기운이 다 빠졌는데…….

바질 차 마시고 숨 좀 돌리고 싶은데…….

“야, 후딱 끝내버리자. 내가 머리랑 양팔 붙잡을 테니까, 너네 둘이 다리 하나씩 맡아.”

“네~”

“카엘, 위슨이 이따 차 타줄 테니까 힘내.”

“염병…….”

위슨에게 밧줄 자를 받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조금 전까지 즐겁고 행복했는데…… 뭐냐고, 이 격차…….

이것도 천칭 맞추는 거야?

즐겁게 웃은 만큼, 한숨 쉬고 절규하라는 거야?

이런 염병할 세상 같으니.

“뭐야, 뭐야뭐야뭐야?! 왜 세우는 거야?! 아앗, 놔! 놔, 이 나쁜 새끼들아! 히, 히잇, 싫어, 싫어어엇!

카, 카엘, 어떻게, 네가……!너만은 믿었는데……! 미친놈이긴 해도 그럭저럭 좋은 놈인 줄 알았는데에에에……!”

“누가 이 새끼 입 좀 막아줘…….”

중얼거리듯이 요청하자마자, 블루벨의 입에서 더 이상 정신 나갈 것 같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물고기처럼 계속 뻐끔거릴 뿐이었다.

아, 고맙기도 하지.

물리적으로 막았다면 또 읍읍대는 것 때문에 기분 이상했을 거 같은데.

“자, 잰다…….”

……그렇게 눈금이 표시된 밧줄 자를 써서 블루벨의 몸 치수를 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야말로 구석구석 빠짐없이.

굉장히 건전한 작업이었고, 의회에서 나온 드워프는 굉장히 흡족한 표정으로 숙소를 떠났다.

“흑, 으흑…… 더, 더럽……더럽혀졌어……! 으으…… 미안…해요……, 블루스타……!”

“……”

그리고 블루벨은 침대 속에 들어가서 훌쩍이기 시작했다.

블루스타 그 양반, 지금쯤 귓병 난 게 아닐까 의심하고 있을 거야.

“흑……흐윽, 우으으……”

“……돌겠네, 진짜.”

왜 내 양심이 아파야 하는 거야……?

그냥 자로 팔이나 목 둘레 등등 쟀을 뿐인데……!

“야, 야. 그냥 냅둬. 위슨이 차 타줄 테니까 내려가자.”

“하…………”

길고 긴 숨을 내쉬며 터덜터덜, 아래층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진이 빠져버린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딱 하나.

나, 이 여행 버틸 수 있을까?

……이 생각뿐이었다.

다음날 아침, 한창 아침을 먹는 중에 이곳 최하층인 ‘생산 층’의 개발연구소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어제 블루벨이 요청했던 사항들을 다 따르면 대략 이틀이 걸린다는 소식을 전하러 온 것이었다.

“어라, 짧네요? 일주일 걸릴 줄 알았는데.”

“포목점 네 곳이 합심해서 작업하기로 했거든요. 무기도 단검 두 자루만 요청한지라, 작업량이 그리 많지 않고요.”

“허…… 그럼 사흘 뒤에 방문하면 될까요?”

그렇게 묻자, 연구원이 허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희가 여기 오려고 합니다. 그래야 귀재……엘프의 장비도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여러모로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당연한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그럼, 좋은 하루 되십시오.”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연구원은 어떤 바퀴 달린 물건에 올라타고 가버렸다.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는 뒷모습을 보니,왠지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이 살짝 들었다.

그나저나 사흘 뒤인가…….

생각보다 긴 휴가가 되겠군.

다시 테이블에 돌아와, 다른 네 사람에게도 그 소식을 전했다.

“와, 그럼 군영 훈련장에서 몸 좀 풀 수 있겠네요!”

“여기 연구자료 더 보고 싶었는데 잘됐네.”

그러자 두 소년소녀는 저마다의 이유로 기뻐하고,

“뭐?! 이틀이나 더 여기 박혀 있어야 돼?!”

한 엘프는 세상 망했다는 듯이 좌절했으며,

“야, 카엘, 나 거기 빵 좀.”

……그리고 한 아가씨는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 녀석, 얘기 듣기나 했는지 모르겠네.

“그럼 위슨, 너 외출할 거지? 언제 들어올 거냐?”

“저녁.”

……하루종일 연구자료 볼 생각인가?

모처럼 생긴 휴일인데, 좀 놀지.

뭐, 여기서 ‘목 치료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고도 했고, 드워프들이 자신의 기술에 마법을 활용하고 있으니 여러모로 참고하고 싶은 게 많겠지만…….

아주 조금 망설인 후, 그에게 말했다.

“……그러지 말고 잠깐이라도 시장 구경하지 그래? 모처럼 이종족 마을에 왔는데 아깝잖아. 현지 사람들의 문화를 체험하는 것도 여행의 재미라고.”

“알아, 임마. 그래서 저녁 때 들어온다는 거 아냐. 연구자료 좀 보고, 드워프 관찰하러 갈 거야.”

음, 그렇구나. 관찰…….

………엄청나게 불안하다!

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빵을 뜯는 로나를 돌아보았다.

“……로나야, 미안한데, 너도 같이 가서 저 놈 감시 좀 해주라.”

“네? 감시요? 왜요?”

“사람 관찰한다잖아.”

귀한 재료가 보이면 손부터 뻗는 놈이다.

드워프 관찰하다가 흥미거리가 생기면,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들지도 몰라……!

“에이, 카엘 님도 참! 너무 걱정이 많으신 거 아니에요? 위슨 씨가 그 절제 없는 마녀들 틈에서 자라시긴 했지만, 그렇게 경우 없진 않잖아요.

설마 함부로 남의 집을 엿보거나 가게 안쪽에 숨어들어가거나, 가판대나 남의 집 뜰에 자란 약초를 맘대로 가져가시겠어요?”

“마지막 건 하고도 남아. 내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니까!”

“………안 해, 미친놈아!”

하나도 믿겨지지 않는 선언은 한 귀로 흘려버렸다.

그전에 한참 뜸을 들였다가 말하는 거 보면, 위슨 녀석, 스스로 자신 없는 거 아니야?

귀한 재료에 대한 위슨 녀석의 집착은 상당하다.

어느 귀한 나비를 본 녀석이, 나비하나만 가져가겠다며 애처럼 생떼를 쓰고, 그걸 말리는 나에게 저주하겠다며 원념 어린 눈으로 노려보기까지 할 정도이다.

그냥 밖에 폴폴 날아다니는 나비였으면 안 말렸지.

하지만 그 나비는, 그 돈독 오른 도시의 박물관 전시품이었다!

안 말렸으면 확실히 죽었을 거야! 돈주머니가!

다른 때는 멀쩡한 놈이 재료만 걸리면 눈이 돌아가니, 원…….

자신의 욕망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던, 그 마녀들의 악영향을 받은 게 분명하다.

그래도 약초 절도는 어떻게 수습할 수 있으니 괜찮지만, 사람에게도 똑같이 들이대면 어떡해?

어디로 어떻게 튈지 모르는데, 관찰하러 간다는 그를 혼자 보낼 순 없다.

로나는 그런 나를 보며 의아한 듯이 눈을 멀뚱멀뚱 떴다가, 곧 방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 카엘 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잘 지켜볼게요!”

“고마워. 그리고 돈 챙겨줄 테니까, 올 때 우유랑 달걀 좀 사다줘. 아, 시장에서 맛있는 거도 사먹고.”

“아싸! 어제 먹은 그 마지팬이었나요? 그거 맛있었는데! 히히히!”

로나는 그 말랑말랑한 과자가 맘에 들었던 모양인지, 조금 전보다 한껏 더 밝은 얼굴로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과자 이야기가 나온 것에 메린도 구미가 돋았는지 이야기에 끼어들었고, 나는 두 아가씨의 말소리들을 들으며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오늘 뭐할까?

율리아 공주에게 보낼 2차 불평문을 써도 되고, 여기 오면서 땄던 바질 잎을 덖어서 말리는 것도 좋고…….

머리가 좀 자란 거 같으니 대충 다듬기도 해야겠군.

“넌 오늘 안 나갈 거지?”

시무룩한 얼굴로 수프를 마시고 있던 블루벨이 별안간 나를 빤히 보며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싱긋 웃으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질렀다.

“그럼 심심한데 한 판 붙자.”

“아침부터 술 퍼 마시고 취하면 어쩌자는 거야. 또 그러면 술 금지시킨다.”

“술 안 마셨거든! 내가 뭐 술꾼인 줄 알아?!”

“술꾼 맞잖아. 어제도 저녁까지 징징징징대다가, 증류주 두 잔에 바로 헬렐레 했으면서.”

“그, 그 술이 맛있어서 그랬던 거야! 아무 술에나 그런 게 아니라고!”

여관 맥주도 엄청나게 퍼 마셨던 사람이 뭐라는 건지…….

애초에 좋은 술 두 잔에 기분이 확 풀리는 시점에서, 그녀는 훌륭한 술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그 증류주 엄청 독했던 거 같은데, 이 엘프는 그걸 반병이나 날로 마셨으면서 숙취에 시달리지를 않네.

자신이 만든 독요리도 맛있게 소화하는 몸이라서 그런 걸까?

“아무튼! 진짜 심심해서 말하는 거야! 어제 보니까 여기 지하에 훈련장 같은 거 있더라? 밖에도 못 나가는데 거기서 운동이라도 해야지, 안 그러면 좀이 쑤시단 말야.”

“네?! 그런 게 있었어요?!”

로나도 몰랐던 모양이다.

그녀는 과자 얘기할 때보다 눈을 더 반짝반짝 빛내며, 이젠 메린에게 저녁에 대련하자고 조르기 시작했다!

세상에, 여기에 그런 사악한 공간이 있었다니!

제기랄, 지난번에 알았으면 그거 없애달라고 요청했을 텐데……!

나는 작게 심호흡을 한 후 입을 열었다.

“미안, 갑자기 외출할 일이 생겨서……”

“안 돼.”

“……”

말을 꺼내자마자 메린에게 잘려버렸다.

이 녀석, 로나랑 얘기하고 있던 거 아니었나?

황당해서 로나를 힐끗 쳐다보자, 위슨이랑 어디 갈 것인지 계획하고 있다.

아니 뭔 화제가 저렇게 쉭쉭 바뀌어?

돌겠네, 진짜.

속으로 고개를 저으며, 과일을 먹고 있는 메린을 돌아보았다.

“야, 메린, 어제 못 간,”

“지랄 마라, 새꺄. 안 가.”

“……”

적어도 말은 끝까지 하게 해줘야 되는 거 아니냐?

안 되는 거 알고 던진 거긴 한데, 그렇다고 타격을 안 받는 건 아니라고.

메린은 그런 내 속도 모르고, 스푼으로 수프 건더기를 한데 모으며 태연하게 말했다.

“너 요 며칠간 검 안 잡았잖아. 그새 감각 떨어졌을 거 아냐. 여기 머무르는 동안 다시 살려야지. 딴 거 할 생각 마라.”

“흑……”

일단 오늘은 끝났구나…….

이따 저녁 먹을 기운이나 남았으면 좋겠다…….

속으로 중얼거리며, 나는 울적하게 그릇을 뒤적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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