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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219화 (219/475)

〈 219화 〉 212화 : “당신들은 자유에요!” (2)

* * *

저녁 밥상 앞이라 그런가? 뜬금없이 수프를 왜 먹냐니…….

무언가 의도가 있을 것 같긴 한데, 내가 알 턱이 있나.

그래서 그냥 생각나는 대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왜 먹긴? 배가 고프니까 먹지.”

의혹으로 차오르는 내 눈에, 로나가 싱글싱글 웃고 있는 모습이 비쳤다.

“그렇죠? 그럼 ‘수프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이나 ‘수프를 먹는다’는 행동 모두, 허기가 유도한 거네요? 카엘 님이 갑자기 떠올린 게 아니고요.”

“어…… 그렇, 지……?”

“그럼 허기는 어째서 일어나는 거죠? 뱃속이 비어졌기 때문이죠? 뱃속이 빈 건, 이전에 먹은 것들이 죄다 소화되어서 그런 거고요.”

……그 말이 맞긴 한데, 이게 지금 관계가 있나?

누군가 내 머릿속을 열어본다면, 아마 물음표만 가득 들어있을 것 같다.

뱃속이 비었기 때문에 배고픔을 느끼고, 그걸 없애기 위해 먹는다.

위장에 채워진 음식은 소화되고, 또 다시 뱃속이 텅텅 비게 되어 허기를 느낀다.

이게…… 전지전능한 신이 날 조종하는 거 아니냐는 질문이랑 뭔 상관이지……?

“그럼 카엘 님, 대답해보세요. 그 모든 과정 중에 누군가의 의도가 느껴지나요?”

“……?”

더더욱 커진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하고 있자, 로나가 싱긋 웃으며 다시 물었다.

“밥을 먹자마자 누군가가 배를 꺼지게 하거나, 아니면 먹지도 않았는데 배를 채워주나요?

누군가가 먹으라고 명령을 내리나요? 먹기 싫은 음식을 억지로 먹도록 팔을 움직이기 하나요?”

“아니…지……?”

“또, 무언가 먹으려면 조리를 해야 되죠? 물을 끓이고, 야채를 다듬는 일련의 과정을 당신이 직접 해야 돼요.

보이지 않는 손이 대신 해주지도, 기껏 썰어둔 야채를 치워버리지 않죠.”

그리고 수프가 아닌 다른 것을 먹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반대로, 수프만 먹으라고 하는 일도 없다.

수프를 끓이려고 야채를 썰던 걸, 갑자기 전부 으깨야 한다는 생각이 마구 들며 머릿속을 지배하지도 않는다.

“물론 그런 충동적인 사람도 있어요. 근데 대개 그런 분을 미쳤다고 하잖아요. 정상이 아닌 거죠.”

“그럼 네 말은……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거야?”

내 생각, 내 행동, 그것이 전부 누군가……

전지전능한 존재가 짠 각본이 아니라는 말인가?

“당신이 배가 고파지고, 수프를 끓여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수프를 끓이는 것 자체가 전부 창조주의 의도가 아니냐고요?

맞아요. 의도에요.우리는 그렇게 움직이도록 만들어져 있으니까요.

당신이 곤경에 처한 사람을 볼 때 측은함을 느끼고, 도와주고 싶다고 느끼는 건, 당신이 그런 생각을 하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에요.

한 사람 한 사람, 그렇게 움직이도록 설계됐고 그대로 만들어진 거에요.”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땅에 심은 씨앗이 싹을 틔워서 땅 밖으로 솟아오르는 것처럼.

해가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지는 것처럼, 세상만물은 그렇게 움직이도록 설계된 것이다.

그것이 교단에서 말하는 ‘세상만물은 창조주의 뜻대로 움직인다’는 뜻이다.

붉은 옷의 사제는 그렇게 말하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위슨 씨와 블루벨 씨는 이 말이 더 와 닿으실 거에요. 자연의 섭리.”

“아.”

술병을 기울이던 블루벨이 작게 소리를 냈다.

위슨은 그 옆에서 이미 다 안다는 듯이 살짝 고개를 까닥거릴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오로지 나만이, 여전히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그럼…… 아무것도 안 한다는 거야? 그냥 흘러가는 대로 이루어지는 걸, 창조주가 뜻하셨다고 말만 하는 거라고?”

“카엘 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당신이 배가 고플 때에, 당신의 발치에 사과가 떨어진다면 무슨 생각이 드실 거 같아요?”

“신께서 날 버리지 않으셨구나…….”

“메린 님은요?”

“운 좋네.”

세상에……! 메린 녀석, 이야기를 듣고 있었구나……!

아까부터 무심한 표정으로 빵 먹고 있길래 안 듣고 있을 줄 알았는데!

“보셨죠? 카엘 님. 같은 상황인데도 두 분의 대답이 달라요. 조금이라도 신앙이 있는 당신은 창조주를 떠올리고, 그런 거 전혀 없는 메린 님은 그저 행운이라 여기시죠.

그 사과가, 천사가 나무를 흔들어서 떨어뜨린 건지, 나무 스스로 다 익은 과실을 떨어뜨린 건지 모르는데도요.”

확정할 수 있는 사실은 단 하나.

사과가 바닥에 떨어졌다는 것뿐.

그것이 어떤 초월적인 존재의 개입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건, 그 상황을 마주한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다.

즉,

“그냥 사람이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거다?”

“네. 다만, 신앙심이 강하면 그게 창조주께 닿아서 그대로 이루어져요. 그게 기도의 권능이랍니다.

보통 사람들은…… 음, 배가 고파서 죽겠으니 살려달라고 기도하고 눈을 뜨면, 별안간 저 멀리 토끼가 돌아다니는 게 보인다거나, 수프를 먹으려고 하는 순간, 지나가던 위슨 씨가 ‘그거 블루벨이 했어.’라고 전해주거나 하는 정도에요.

그저 우연에 지나지 않는 작은 도움이죠. 그 이상은 개입하시지 않아요. 그러면 섭리가 아니니까요.”

어디까지나 자연스럽게, 위화감을 일어나지 않는 선에서만 간섭한다.

세상의 섭리로서 존재하는 절대자는, 그 손을 뻗는 시점에서 섭리가 아니게 된다.

천칭이 스스로 기울기를 조정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만약, 절대자의 확고하고 확실한 도움이 필요하다면……

“그 힘을 빌릴 수 있을 만큼의 강한 신앙심……, 그분의 개입이 현실로 이루어질 거라는 굳센 믿음이 필요해요. 피를 토할 정도로 간절한 소망이 필요하죠.

카엘 님도 보셨죠? 저까지 다섯 명이 온 힘을 다해 와 달라고 빌고 빌어서, 겨우겨우 천사를 불러온 것을요. 그만한 힘을 퍼부어야만 겨우겨우 직접 계시를 받을 수 있는 거죠.”

“……그리고 그 천사가 나한테 말했지. 남쪽에 있는 고래의 무덤으로 가라고. 그건 확연한 의도가 있는 거 아냐?”

무언가 일이 이루어지길 바라기 때문에, 그 일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지시를 내린 것일 터.

그저 자연의 섭리로서 자리하고 있다 하기엔, 너무나도 명확한 개입이었다.

이번에 맞닥뜨린 재앙도 그렇고 말야.

7월 1일에 출생이 단절되도록 미리미리 조정하다니, 그게 절대자의 개입이 아니면 뭐야?

내 의혹에, 로나는 키득키득 웃으면서 대답했다.

“에이, 카엘 님, 이건 특별하고도 특별한 일이잖아요! 악마까지 대대적으로 공을 들이고 있는걸요. 저희는 알 수 없는 어떤 일이 있는 거겠죠.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건, 알아봤자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그런 것일 거고요.

하지만 카엘 님, 그 천사가 남쪽 고래의 무덤에 어떻게 가라고는 말 안 했잖아요? 며칠 내로 가라고도 하지 않았고요.

중간에 말리스로 새는 당신을 막으신 적도 없죠?”

“음……”

“이번 재앙의 소식과 그 방식에 놀라셔서 그런 것 같긴 한데, 카엘 님, 겁내지 마세요.

당신을 조종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당신들 사람은 모두 마음대로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답니다.”

그 결말이, 설령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넘기는 것일지라도, 창조주는 그 선택을 막지 않는다.

선행을 하라고 등을 떠밀지 않는다.

당신이 만든 세상에서 사람이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그저 묵묵히 지켜볼 뿐이다.

“당신들 사람에겐 자유가 있어요.”

환히 웃는 얼굴로, 두 잿빛 눈동자를 반짝이며 사제는 선언했다.

“선한 삶을 살아도 되고, 악한 삶을 살아도 돼요. 지식인이 되어도 되고, 무뢰배가 되어도 돼요. 누군가를 죽여도 되고, 사랑해도 돼요.

당신들 사람은 죄를 저지를 자유가 있어요. 그 결과와 뒤따르는 책임 모두, 온전히 당신들 사람의 것이에요.

삶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당신들 사람은 자기 자신으로서 살아갈 수 있어요……!”

두 손을 마주잡고 외치면서, 로나는 테이블에 앉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돌아보았다.

마지막에 나를 보는 그 시선은, 어쩐지 경외심마저 느껴지는 듯했다.

“인형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 당신들 사람은 드래곤보다도 더 위대한 존재에요!

세상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주체자. 세상을 자신의 주관대로 관측하고 소망하여, 종국에는 세상을 변화시키기까지 할 수 있는 세상의 주인이랍니다!”

어쩐지 열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외친 후, 그녀는 별안간 내 손을 덥썩 잡았다.

“그러니 걱정 마세요! 당신의 생각, 행동, 마음, 그 모든 것은 전부 당신의 것이에요! 우리는 그저 당신을 이끌 뿐. 결국 결정하는 건 당신 자신이랍니다.

이 여정을 매듭짓는 건, 창조주가 아닌 당신인 거에요!”

“나……?”

“네! 그러니 가고자 하는 길을 마음껏 걸어가세요! 설령 그 끝이 세계 멸망일지라도, 당신의 선택은 그대로 받아들여질 거에요. 당신은 사람이니까요!”

뭐? 내 선택이 세계 멸망이어도 괜찮다고……?

아니 그게 뭔…….

어안이 벙벙한 채 그녀를 빤히 쳐다보자, 그녀가 고개를 살짝 좌우로 까닥였다.

“왜요? 창조주의 입장을 말씀드린 것뿐인데요? 세상이 멸망하든 말든, 그게 창조주와는 상관없죠? 원하신다면, 다시 만드시면 되잖아요.”

“그건 그렇네…….”

“그런데도 창조주께선 우리가 세계 멸망을 피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주신 거에요. 피조물들을 사랑하시니까요.”

……그럼에도 어느 길을 가든 막지 않는다.

무엇을 선택하든 거부되지 않는다.

전지전능한 존재는 이치로서 세상에 그림자를 드리울 뿐, 그 일원 하나하나를 직접 통제하지 않는다.

이따금 도움을 구하는 소리가 들리더라도, 맞닥뜨린 고난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을 빌려줄 뿐, 고난 자체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설계자이자 방관자.

그것이 모든 피조물에 대한 창조주의 입장.

당신이 만든 존재들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결국……,

“……내가 괜히 호들갑을 떤 거로군?”

“그냥 호들갑일지 어떨지는 아무도 모르죠? 사람의 인식이 세상을 변화시키니까요.”

“나 참…… 근데 그런 얘기까지 해도 돼? 중간부터는 교단의 강론 같지 않았는데.”

‘사람은 진의를 몰라도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느니, ‘네 생각과 마음을 창조주가 심은 게 아니’라느니……

평신도에게 할 소리는 절대 아닐 거 같다.

그런 내 말에, 로나는 키득키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번에 약속했잖아요? 답할 수 있는 범위에서 뭐든 답해드리겠다고.

그리고 카엘 님은 이런 말씀 들으셔도 ‘그런 방임하는 신 따위 없느니만 못하다. 내가 없애겠다’면서 이상한 짓하고 그러지 않으실 줄 알고 있으니까요.”

“엥? 신을 없앨 수 있어?”

뭔 마법문이라도 열어서 천상으로 쳐들어가기라도 하나?

그보다 때리면 죽는 거야?

아니, 그 전에 때릴 수 있는 거야??

벙벙하게 눈만 끔벅이는 나를 향해, 로나가 고개를 저으면서 야유하듯 손을 휘휘 저었다.

“절대 못하죠! 애초에 창조주가 계신 천상에 가지도 못하는데! 근데 옛날에 그런 소리를 하면서 사람들을 현혹시킨 이단이 있었대요. 웃기죠?

아무튼 카엘 님, 이해되셨나요? 아니면 아직 의문이 덜 풀렸나요?”

……이런 얘기하는 걸 좋아하나?

로나가 여느 때와 달리, 눈을 빛내면서 적극적으로 묻고 있다.

음…… 교단에 대한 거나, 창조주에 대한 교리를 들은 게 별로 없으니 궁금한 게 많긴 한데.

하지만 아까 겁을 먹었던 게 풀리면서 슬슬 배가 고파지기 시작하니……

하나만 물어볼까?

나는 뺨을 긁적이며 물었다.

“다른 게 궁금한데…… 있잖아,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영혼재판 어쩌고 했던 거 같은데.”

“……!”

그러자 로나가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한 걸 물었나 싶은 순간,

“와아아아!”

갑자기 환호성을 지르면서 내 손을 잡고 붕붕 흔들었다!!

“역시 카엘 님이에요! 더 깊은 지식, 더 깊은 진리를 탐구하는 그 자세!! 네에, 저 로나, 사제로서 밤을 새서라도 잔뜩 들려드리지요!!”

“아니, 밤샐 것까진……”

“사양하지 마세요! 히히, 히히히……! 율리아 님 이래로 마음껏 토론할 수 있는 사람이 생기다니! 저 너무 기뻐요!!”

뭐, 토론?! 그것도 율리아 공주 이래로 마음껏?!

으아악, 아니야!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야, 나 초짜……”

“괜찮아요, 괜찮고 말고요! 여기서 하기엔 자료가 부족하니까, 제 방으로 가요, 카엘 님!!”

“야, 잠깐, 우와악?!”

……저항할 새도 없이, 나는 로나의 방에 끌려가고 말았다.

그로부터 시작된 신학 강론을 듣는 한편, 그녀가 조금 전에 했던 말이 머릿속에 슬며시 떠올랐다.

­­당신들 사람에겐 자유가 있어요.

자유는 개뿔…….

개미 발톱만큼도 없구만…….

열변을 토하는 로나의 말을 들으며, 멍하니 생각했다.

……그로부터 세 시간이 지나서야 로나에게 해방될 수 있었다.

자유가 담긴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며, 주린 배를 쥐고 터덜터덜 부엌으로 향했다.

수프랑 이런 건 다 치웠을 테니, 빵이랑 치즈로 간단히 때워야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부엌에 들어서자,

“엉?”

메린이 아직 화덕, 그것도 활활 지펴져 있는 불 앞에 서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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