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221화 (221/475)

〈 221화 〉 214화 : 이미 시작된 변화 (1)

* * *

부스스 몸을 일으키고 일어나 앉았다.

머리가 마구 지끈거린다.

방금까지 식당에 있지 않았나……?

근데 어디를 어떻게 둘러봐도 내 방이다.

문 손잡이가 높이 달려 있는 걸 보면 ‘바위궁전’의 숙소 맞는데.

그럼 그거 꿈이었나? 어디부터 어디까지 꿈이었던 거지?

……염소 빼고 전부 자식을 못 가진다는 말부터겠지?

그게 가장 기가 막히는 소리잖아.

“어……”

와, 내 목소리 뭐야……?

가뭄 만난 밭처럼 완전 쩍쩍 갈라져 있어!

그러고보니 왠지 온 몸이 쑤시다.

어디에도 상처는 없는데…….

엥? 상처?

“우음………??”

어라, 나 왜 웃통 벗고 있냐?

여태까지 벗고 잔 적 한 번도 없는데…….

어째 눈도 뻑뻑하고……?

뭐지?

어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일단 속이 엄청나게 쓰린 걸 보면, 또 기억 날아갈 때까지 술 퍼마신 모양이다.

근데 내가 왜……?

“……”

……그리고 누군가 내 옆에 누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있다!

아니, 기분 탓이 아니야. 누가 있어……!

손에 뭐가 닿고 있다고!

입김 같은 거!

“………”

슬며시 옆을 들춰보았다.

갈색머리와 정수리 쪽에 뻗쳐 있는 더듬이 같은 머리카락이 보인다.

아, 설마.

아냐아냐아냐, 아닐 거야, 아닐 거라고!

그치만 어젯밤 일 기억 없잖아, 술 존나 꼴았잖아, 나 옷 벗고 있잖아, 이거 메린이잖아!!

이불을 쥐고 있는 손이 달달 떨리고 있다.

이 안에 진실의 편린이 잠들어 있다.

아아……, 확인하는 게 무섭다!

정말로 저지른 거면 어쩌지?

나에 대해 그런 마음이 없는 그녀를 안아버렸다는 사실을, 내가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냥 아무것도 못 본 척 다시 덮어버리고, 나중에 그녀에게 넌지시 묻는 건……

“……”

……안 돼. 그건 진짜 한심한 짓이야.

내가 정말로 술김에 그녀를 안은 개병신 짓거리를 했다면, 마땅히 그 죄값을 치러야 한다.

남자잖아, 어른이잖아!저질렀으면 책임을 져야지!

이를 악물고 이불을 홱 들추었다.

땋은 머리. 셔츠에 바지.

게다가 신발까지 신고 있다.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으로, 굉장히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 그녀의 옆 얼굴이 보인다.

아아……, 진짜로 잠만 잤구나.

아무 일도 없었어.

하, 씨발, 진짜 십년감수했네……!

그럼 나 웃통은 왜 벗고 있는 거야?

그보다 내 셔츠 어디 간 거야?

아니 지금 몇 시야?

“후……”

……침착하자.

일단 내가 술김에 여자와 자버리는 개병신이 아니라는 건 알았잖아?

그냥 술에 꼴은 병신일 뿐이니, 하나하나 차분히 처리하자고.

일단 시간.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네 시를 가리키고 있다.

메린이 오후 네 시까지 잘 리가 없으니 새벽이겠지.

어쩐지 긴장이 풀리자마자 잠이 온다 했어.

그 다음 내 옷은……

음, 날 밝으면 다시 생각하자. 졸려 죽겠다.

하지만 이 집은 지하에 있어서 그런지 좀 썰렁한 편이라, 위에 아무것도 안 입은 상태로 자면 감기 걸릴 수도 있다.

뭐 걸치고 자야지.

조심스럽게 침대를 빠져나와, 옷장에서 다른 셔츠를 꺼내 입었다.

그러면서 자연히 방을 둘러보게 되었고, 덕분에 셔츠가 사라진 수수께끼가 바로 해결되었다.

내 신발이 나뒹구는 근처 바닥에 있었던 것이다.

가만히 셔츠를 주워 보니 수프국물 범벅이 되어 있다.

이래서 벗겼구만.

“……”

아, 몰라. 아침에 해.

도로 바닥에 던져버렸다.

이제 남은 건 메린인데……

그러고보니 이 녀석은 진짜 뭐지?

술에 절은 나를 방에 옮기고, 더러워진 셔츠를 벗긴 다음……

내 옆에 누운 거야? 왜??

아무튼 깨워서 방에 보내야 한다.

아무리 상대가 나라고 해도, 다 큰 아가씨가 자꾸 남자랑 같이 자는 건 좋지 않은 법이다.

그러다 버릇 들면 어떡해?

……근데 엄청나게 푹 자고 있는 거 같던데.

그럼 더럽게 안 일어날 게 뻔하다.

무엇보다……

보내기 싫다.

……미안, 메린.

기왕 이렇게 된 거, 봐주라.

그녀의 신발을 조심스레 벗겨 바닥에 내려놓고, 침대에 누웠다.

길게 땋아 내린 머리를 그녀의 어깨 앞으로 살며시 가져왔다.

머리 끝에 묶여 있는 리본을 풀어 침대맡에 두고, 땋아진 머리를 살살 풀기 시작했다.

그저 머리를 풀어주고 있을 뿐인데, 어째서인지 가슴이 두근거리며 손끝이 살짝 떨린다.

옷을 벗기는 것도 아닌데.

마침내 다 풀어헤쳐진 머리를 손으로 빗으며 어깨 뒤로 넘겨주자, 이번엔 그녀의 셔츠가 눈에 들어왔다.

특정 부분이 약간 솟아올라 있는데,내가 아는 높이보다 확연히 낮다.

……가슴속옷, 입고 있는 거 같은데.

그거 움직임에 방해되지 않도록 가슴을 누르고 동여매는 거니까, 좀 많이 불편한 게 아닐 터.

셔츠 단추도 맨 위단까지 채우고 있잖아.

답답할 거야.

그러니 풀어주자고.

“…………”

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단추만 풀어주는 거야.

단…추만…….

그래, 단추 하나만…… 하나만 풀어주자.

이대로는 답답할 테니까, 응, 단추 하나만…….

어째서인지 덜덜 떨리고 있는 손을 겨우겨우 움직여, 힘겹게 단추 하나를 풀었다.

셔츠 목깃에 가려졌던 그녀의 어깨선이 약간 드러나며, 쇄골이 살짝 엿보인다.

“후으…….”

숨이 트인 탓일까, 그녀의 입술 사이로 긴 숨이 새어나왔다.

……입술.

벌써 몇 번이나 탐하고, 맛보아버린 그녀의 입술을 본다.

손가락으로 가만히 그 형태를 따라 그린다.

……자연히 다시 떠올랐다.

이 안에서 느꼈던 촉촉하면서도 미끄러운 감촉이, 그녀가 몸을 움찔거리며 내던 얕은 숨소리가 다시 떠오른다.

그때 그녀에게 전해졌을 내 두근거림은, 벌써 되살아나 있다.

이미 알아버린 그 야릇한 쾌락을 또 느끼고 싶다고, 마구 두근거리며 간청하고 있었다.

“……”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가만히 감쌌다.

내 음습한 욕망도 모르고 새근새근 자고 있는 그녀에게 얼굴을 가까이 대어,

그 이마에 입을 맞추고, 조심스레 감싸 안았다.

고자 새끼이신가, 하고 어이없어 하는 듯한 속삭임을 흘려버리면서, 천천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졸려서 말야. 다른 건 못해.

그렇게 변명 아닌 변명을 속으로 중얼거리며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그나저나 이제 같이 자는 거 자체는 아무렇지도 않네.

잠에 빠지기 직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시 잠에서 깼을 때, 시계는 열한 시 십오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옆에는 당연히 아무도 없다.

……다행이다.

지금까지도 옆에 있었다면 심각하게 민망했을 거야.

새벽에 깼을 때 이런저런 생각을 해서 그런지, 꿈이 아주 그냥……

……하, 덕분에 아침부터 목욕은 물론이고 빨래까지 해야 된다.

바닥에 던져뒀던 셔츠는 없어져 있다.

아마 메린이 가져간 거겠지.

……근데 진짜 어젯밤엔 뭔 일이 있었던 거지?

뭣 때문에 내가 그렇게 만취하도록 술을 마셨던 걸까?

으, 속 쓰려…….

목도 아직 칼칼하다 못해 거의 막혀버렸고.

데운 물이라도 마셔야지, 원.

그렇게 생각하며 아래층의 부엌으로 들어서자, 위슨이 찻주전자에 끓인 물을 담고 있는 게 보였다.

“오, 주정뱅이! 일어났냐?”

위슨의 어깨에 있던 파랑새가 그의 머리 위로 올라앉으며 재잘거렸다.

근데 내가 왜 주정뱅이야?

누가 들으면 맨날 술 퍼 마시는 줄 알겠네.

“너 어제 꼬라지 가관이었는데, 기억나냐? 안 나지? 그러니 주정뱅이지.”

목이 갈라져서 말을 못하고 속으로만 투덜거렸는데도, 파랑새는 속마음을 듣는 소리의 정령답게 혼자 답하고 있었다.

근데 내 꼬라지가 뭐 어땠길래……?

“메린한테 매달린 채로 푸헤헤 웃으면서 질질 끌려가던데? 걔 목에 코를 아예 박고 있더라.”

“……”

“그리고 위슨한텐 말 안 했는데, 그러고 방에 가선 ‘가지 마’, ‘무서워’, ‘내 탓 아닌 거 맞냐’ 등등, 혼자 나불대면서 울었,”

펑!

……위슨이 파랑새를 후려치는 동시에 손가락을 퉁긴 탓에, 놈은 말을 채 끝맺지 못하고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한 손에 찻주전자를 든 채, 위슨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령은 사람의 마음을 모른다니까요. 그러다 형이 또 정신 놓으면 골치 아파지는데 말이죠.]

“……”

누가 들으면 내가 툭하면 돌아버리는 미친놈인 줄 알겠네.

근데 내가 어제 진짜 그랬다고?

어이씨, 전혀 생각 안 나는데!

짤랑.

작은 방울소리가 울려 고개를 들자, 위슨의 머리 위에 또 글자가 떠올라 있었다.

[차 드시죠. 숙취를 풀어줄 거에요.]

그렇게 말하며, 녀석은 찻잔을 챙기고 부엌을 나섰다.

부엌 문간만 지나면 식당인데, 그는 구태여 티세트를 거실로 들고 갔다.

그리고 의자에 앉으라는 듯이 눈짓하더니, 찻잔 하나를 가득 채워서 내 앞에 두었다.

[마셔봐요.]

“……”

수상해. 이 녀석이 어제인가부터 자꾸 손수 차를 타주고 있다!

평소에 그런 친절을 베풀었으면 몰라, 이 놈이 그럴 놈이 절대 아닌데……!

하, 또 뭔 실험하는구만.

일단 찻잔을 들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향이 좋긴 한데 뭔 향인지 모르겠어.

위슨을 힐끗 보자, 빨리 마시라는 듯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일단 차라고 했으니 먹고 죽지는 않겠지.

조심스럽게 호로록 한 모금 마셨다.

음…… 뜨끈하고 향도 좋아서 그런지, 목이 풀려가는 기분이다.

지끈거리는 것도 아주 약간 가시는 것 같고.

그대로 한 모금을 더 마신 후, 찻잔을 내려놓았다.

[어때요?]

“음…… 좋네…….”

오, 진짜 목 풀렸다.

아직 약간 걸걸하지만, 그래도 말은 제대로 나올 수 있게 되었다.

[구체적으로요.]

“역시 실험이었냐? 하, 나 참……. 너 듣는대로 목 풀렸고, 지끈거리는 거 좀 가셨다. 속 쓰린 건…… 음, 여전한데.”

[그래요? 아직 부족하네요.]

그는 어깨를 으쓱이더니 수첩을 꺼내서 뭔가 적기 시작했다.

물약으로 모자라 이젠 차까지 손을 댈 생각인가?

이거 나중에 차 마시다가 갑자기 픽 쓰러지는 거 아냐?

……으윽, 불길한 생각 멈춰!

그런 의심이 들면 앞으로 티타임을 즐길 수 없게 된다고!

찻잔을 한 번 더 기울인 후,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근데 이거 뭘로 한 거냐?”

[비밀인데요.]

“아잇, 그 놈의 비밀 진짜……. 근데 내가 어제 그렇게 취했어?”

[네. 에코가 말한대로 메린 씨한테 끌려갔어요. 형이 방에 들어가기 직전까지는 저도 봤거든요.]

“하아아아………….”

얼굴을 감싸며 길고 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망할, 뭔 추태를 부린 거냐……?

아무리 어른으로서 위엄이 하나도 안 서 있어도 그렇지…….

[어제 얘기가 충격이었나봐요? 뭐, 저도 놀랐지만요.]

“어제 얘기……?”

멀뚱멀뚱 눈을 끔벅이자,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기억 안 나요? 염소를 제외하고 모두 불임이라니까요.]

“…………아, 그거.”

……그 이야기, 꿈이 아니었구나.

다른 의미가 담긴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래서 아침에 개발연구소 갔다 왔어요. 조사가 끝났다고 하더군요.]

“조사……? 아, ‘농장 층’ 전부 조사한다고 했던 거?”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몬스터와 짐승을 기르는 농장들은 어제랑 결과가 같아요. 염소만 빼고 전부 태가 닫혔어요. 발정은 하지만요.]

“……”

응, 알아. 정말 조금도 문제없더라.

……그러나 그 말을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근데 식물은 달라요. 오히려 소수만 망했어요.]

“소수……?”

[밀, 보리, 벼. 이 세 개만 알이 안 맺히고, 나머지는 평소처럼 익어가거나 한창 수확 중이라고 하네요.]

“……!”

위슨은 별 문제 아니라는 듯한 태도이다.

하지만 아니야. 이건……

이건 사형 선고나 다름없어.

녀석이 별안간 눈을 휘둥그레 뜨며, 찻잔을 다시 가득 채우고 내밀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몇 모금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

밀, 보리, 벼만 여물지 않는다고?

하…… 진짜 재앙답구만.

의자에 앉아 있어서 다행이다.

서 있었다면 분명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을 테니까.

[형? 괜찮아요?]

“괜찮……지는 않은데, 어. 괜찮아. 좀, 많이 놀랐을 뿐이야.”

[그거 하나도 안 괜찮은 거잖아요.]

그 글자를 본 걸 마지막으로, 나는 손으로 얼굴을 덮어버렸다.

따끈한 찻물 덕분에 마구 요동치던 속은 조금 가라앉았지만, 호흡이 흐트러진 탓에 제대로 말을 할 수 없었다.

……내 입으로 언급하고 위슨이 쐐기를 박았듯이, 나는 지금 괜찮지 않다.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벼는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겠지만,밀이랑 보리가 끝장났다잖아.

그걸 듣고 어떻게 냉정하게 있어?

밀과 보리는 여름에서 초가을 사이에 추수한다.

지금 7월이니까……올해는 낟알을 구경하지 못한다는 뜻인 것이다.

벼는 잘 모르겠지만.

즉, 많은 사람이 굶게 된다.

기근이 터지는 것이다……!

어느새 다시 파랑새를 꺼낸 건지, 이 대륙의 앞날처럼 캄캄한 시야 속에서 녀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밀이랑 보리, 벼만 맛이 간 건데, 그렇게 동요할 정도로 큰 문제냐? 다른 작물들은 멀쩡하잖아. 호밀도 멀쩡하다고.

뭐, 여기 놈들이 세상 모든 작물을 다 키우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먹을 거는 많지 않냐?”

“아냐…… 엄청 큰 문제야…….”

“왜?”

“밀이랑 보리, 둘 다 주요 곡물이거든요. 벼는 모르겠지만.”

별안간 들려온 로나의 목소리가, 나를 대신해 그에게 대답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인간 마을은 이 두 곡물을 주로 길러요. 감자나 다른 구황작물도 있긴 하지만…… 글쎄요, 버티기 힘들지 않을까요?”

“그래? 저장고 같은 것도 없어?”

“글쎄요, 영주나 왕성에 세금을 내야 한다고 들었거든요. 형편이 좋은 사람이야 세금 몫을 빼고도 집에 밀가루나 보리가루 포대를 쌓아 놓겠지만…… 대부분은 텃밭에서 기른 채소밖에 비축 못할걸요?”

……마을에 저장고가 있긴 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세금을 내기 위한 것.

영주가 있다면 영주에게, 우리 마을처럼 촌장이 있다면 왕성에 바칠 몫을 모으기 위한 것이지, 절대로 비상용으로 비축해두는 게 아니다.

만약 이 사실이 왕국에 알려진다면, ‘저장고의 식량들로 고난을 이겨내라’는 왕명이 전해질지도 모르지만…….

우리에겐 이 소식을 왕성에 알릴 방법이 없다.

사람들에게, 빨리 감자나 호밀이라도 더 심으라고 알릴 재간이 없는 것이다.

“그건 걱정 마세요, 카엘 님.”

“……?”

고개를 다시 들자, 로나가 밝게 웃는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방금 ‘걸리프’에 소식을 보냈으니까, 알스 사제님이 대신 각지에 전하실 거에요.”

“……드워프한테 전해달라고 부탁한거야?”

“아니요. ‘특별사제’끼리만 할 수 있는 연락방법이 있거든요!”

어떻게 하는지는 비밀이지만요.

로나는 키득키득 웃으며 그렇게 덧붙였다.

그 놈의 비밀 진짜……

아무래도 이 녀석들, 비밀이라고 숨기는 거 자체에 재미가 들린 것 같다.

“그렇게 됐으니, 카엘 님은 몸도 푸실 겸 점심 준비해주세요. 메린 님이 이미 하고 계시다면 다행이지만…… 블루벨 씨가 손을 댈까봐 걱정이에요!”

“어…… 얘기 끝난 거야? 더 있어야 되는 거 아냐?”

“괜찮아요! 밥이 더 중요하니까요! 지금은 밥의 목숨이 더 위험해요!! 제발 밥을 살려주세요, 용사님!!”

어째 점점 더 간절해지는데?

아무래도 블루벨의 요리가 그녀에게 굉장히 큰 상흔을 남긴 모양이다.

엘프 대단해!

어쩔 수 없지. 밥은 중요하니까.

안 그래도 식재료가 더 귀해진 거나 다름없는데, 허투루 쓰레기가 되도록 둘 수는 없다.

“……알았어. 뭐 특별히 먹고 싶은 건 없지?”

“블루벨 씨 요리만 아니라면 뭐든 상관없어요!”

“위슨도.”

“……”

오오, 편식조차도 한 방에 없애버린 건가!

엘프 요리 대단해!

……뭐, 애초에 이 두 녀석은 편식 안 했지만.

쓴웃음을 지으며 거실을 나오자, 등 뒤로 작게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뭐, 필요하다 싶으면 나중에 알려주겠지.

지금은 그 이야기를 더 듣지 않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뿐이다.

역시 난 영웅이 아니구만.

자조하며 부엌에 들어선 순간,

“응? 얘기 다 끝났어?”

“……”

아니나다를까, 블루벨이 고기덩어리에 막 칼을 대고 있었다!!

“당장 그 칼 내려놔, 이 사악한 엘프야!!”

“어? 아, 왜!”

……그렇게 나, 용사 카엘은 ‘블루벨표 특별 고기스튜’라는 독으로 일행을 암살하려던 사악한 엘프의 음모를 훌륭히 저지하고, 평화로운 점심을 맞이한 것이었다.

잘됐군, 잘됐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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