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227화 (227/475)

〈 227화 〉 220화 : 산 속이라면 꼭 하나쯤 있지 (3)

* * *

갑작스럽게 벌어진 전투로, 사망자가 무려 열 여섯이나 나오고 말았다.

물론 전부 부족민이고, 우리 중에선 다친 사람 하나 나오지 않았다.

놈들 중에 살아남은 건, 지팡이를 들고 있던 놈을 포함해 단 여덟 명뿐.

일단 숨을 쉬고 있는 것만 확인했으니, 그 중에 또 얼마나 깨어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휴우…….”

허리를 펴며 잠시 숨을 돌렸다.

계속 구부린 몸을 지탱하느라 진땀을 빼던 허리가,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듯했다.

그런 뒤, 내가 방금 눕힌 시체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입과 턱을 잇는 듯한 붉은 자국이 없었다면, 그저 깊은 잠에 든 얼굴로 보였겠지.

……아니, 자는 거나 마찬가지구나.

죽은 걸 가리켜 ‘영면에 들었다’고 말하기도 하니까.

어깨를 으쓱인 후, 나는 구덩이 바깥의 다른 시체에게 다가가, 그 발을 잡고서 질질 끌었다.

그렇게 구덩이까지 시체를 끌고 간 다음, 하늘을 보도록 똑바로 눕혔다.

그리고 또 다른 시체를 향해 가서, 또 구덩이까지 끌고 와 똑바로 눕히는 일을 되풀이했다.

세 구쯤 그렇게 옮긴 후, 또 다시 허리를 펴며 한숨 돌렸다.

하…… 뒷정리 힘드네.

“으으…… 왜 나까지 이런 일을…….”

투덜투덜대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블루벨이 부족민 시체를 하나 끌고 오고 있었다.

“진짜 어이가 없어. 신나게 죽여댈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정중하게 묻어주다니 이게 뭔 짓이야?”

“내가 언제 신나게 죽였다는 거야. 그냥 죽였거든?”

“죽인 놈이 고이 묻어주고 있는 게 이상하다고, 미친놈아!”

빽 소리지르면서도, 블루벨은 내가 했던 것처럼 시체가 하늘을 올려다보도록 똑바로 눕혀주었다.

아니 어차피 할 거 그냥 좋게좋게 하지, 왜 굳이 성질을 내는지 모르겠네.

그리고 나는 이상한 짓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누가 죽였든 간에, 나는 그저 죽은 사람을 묻어주려고 하는 것일 뿐이다.

아무리 적이었더라도 나랑 같은 인간이라 그런지, 도저히 그냥 내던져둘 수 없었다.

“그리고 나만 이러는 거 아냐. 다른 인간들도 전쟁 끝나면 적대세력 시체도 다 묻어준다고.”

“그냥 구덩이에 던지면 되잖아. 왜 일일이 똑바로 펴줘야 하는 건데!”

“기왕 하는 거 더 좋게 해주자는 거지.”

죽인 시점에서 원한이 철철 넘쳐 있겠지만, 그래도 잘 묻어주면 그 원념이 조금은 수그러들지 않을까?

저들 중엔 나한테 죽은 놈도 있을 거 아냐.

분명히 죽으면서 날 저주했을 텐데, 이 이상 더 운이 안 좋아지면 진짜 위험하다고!

또…… 구덩이에 아무렇게나 던져넣는 건, 사람 시체가 아니라 쓰레기 버리는 것 같아서 영 내키지 않았다.

그런 내 말에, 다른 시체를 구덩이에 눕힌 블루벨이 씩씩대면서 또 소리쳤다.

“아니, 할 거면 너랑 나, 둘이서 한 구씩 옮기든가! 그게 훨씬 덜 힘들 거 아냐! 왜 각자 한 구씩 질질 끌고 가야 되는 건데?!”

“댁이 키가 더럽게 작아서!”

키 차이가 좀 나야지.

위슨보다 손가락 한 마디만큼만 더 큰 사람이 지금 뭐라는 건지…….

보폭도 엄청나게 차이가 나버리니, 그녀와 손발을 맞추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뭔가 하는 건 역시 메린이 제일인데, 그렇다고 블루벨 대신 그녀를 부를 순 없다.

그건 저녁밥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이 여행이 힘들긴 하지만, 아직 나 스스로 독을 찾을 정도로 지치진 않았다.

아무튼, 그 탓에 일일이 한 구 한 구씩 정성을 들여서 옮길 수밖에 없었다.

“휴우…….”

마지막 열 여섯째 시체를 구덩이에 눕힌 후, 나는 구덩이 바깥으로 나와서 크게 기지개를 켰다.

“웡!”

“응, 도와줘서 고마워, 테라. 네 덕분에 더 빨리 끝났다.”

꼬리를 흔드는 늑대를 안고 쓰다듬으며 감사를 표했다.

진짜로 블루벨과 나 둘이서만 옮겼다면, 지금쯤 허리 아파서 끙끙 앓았을 거야.

하지만 땅을 헤엄치듯이 다닐 수도 있는 늑대가 도와준 덕분에, 내 허리가 끊어지지 않고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애초에 그녀가 없었으면 삽질부터 해야 했을 거고.

“하하…… 이제 저거 묻어줘.”

“웡!”

크게 한 번 짖은 후, 늑대는 구덩이 앞에 몸을 낮추며 으르렁거렸다.

그러자 구덩이 위로 흙이 쏟아지면서 순식간에 작은 둔덕이 만들어졌다.

휴, 이걸로 겨우 끝났구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블루벨과 늑대와 함께 모닥불가로 돌아왔다.

오늘의 저녁식사를 맡은 두 사람 중 하나인 메린이, 솥을 들여다보다가 나를 힐끗 보고는 다시 솥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했냐?”

“어. 로나는?”

“글쎄? 아직 안 나왔는데.”

“흐음.”

모닥불에 손을 쬐며 동굴 쪽을 보았다.

로나가 부족민 포로 여덟 명을 데리고 안에 들어간 지 꽤 된 것 같은데, 아직도 안 나온 건가?

들어가서 상황을 살피고 싶긴 한데……

그와 동시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강하게 일어나고 있다.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어느 정도 예상이 가니까.

……무려 악마를 숭배하던 사람을 잡은 거다.

이단과 악마를 적대하는 전투사제인 로나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는 불 보듯 뻔하다.

동굴의 맨 안쪽 끝에서 작업 중인지 소리는 하나도 새어나오지 않지만……

아마 그 진실의 의식이라는 이름의 고문을 하고 있겠지.

“끼잉…….”

“……”

내 손을 핥는 늑대의 등을 쓰다듬어주며 동굴을 빤히 쳐다보자, 모닥불에 꽂은 꼬치구이를 살피던 위슨이 말했다.

“신경 꺼. 들어갈 생각은 하지도 말고. 위슨도 좀 보기 힘들 정도야.”

“……봤냐?”

“테라 통해서 살짝. 괜히 사제님이랑 껄끄럽게 되고 싶지 않으면 얌전히 있어.”

“하아…….”

절로 한숨이 푹 터져나왔다.

방식이 고문이라 그렇지, 그게 엄연히 교단 사제의 일이라는 건 알고 있다.

로나가 고통으로 점철된 비명을 듣는 걸 즐기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즐기지 않는 걸 넘어 아예 무심하다는 게 좀 그렇지만.

그래도…… 로나는 아직 열 네 살이다.

안 그래도 또래보다 키가 작아서 더 어려보이는 애가, 사람의 관절에 못을 콱콱 박거나 손톱 밑에 바늘 넣고 있는 거다.

그걸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여길 수 있겠는가?

게다가 위슨조차 조금 보기 힘들 정도라니, 대체 뭘 얼마나 심하게 하길래…….

모닥불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는데, 눈앞에 뭐가 불쑥 확 들이밀어졌다.

나도 모르게 몸을 들썩이며 시선을 돌리자, 메린이 꼬치 하나를 든 채 멀뚱히 나를 보고 있었다.

……다 구워졌으니 먹으라는 거군.

다른 녀석들은 이미 하나씩 들고 우물거리고 있다.

나는 그녀가 내민 꼬치를 받아들면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놀랬잖아. 갑자기 들이밀지 말고 불러, 임마.”

“불렀는데?”

……이런.

너무 깊이 생각했나.

“미안, 생각 좀 하느라 못 들었어.”

“괜찮아, 뻥이거든. 안 불렀어.”

“……”

뜬금없이 농락당했다.

메린 이 자식, 되도 않는 장난을 쳐놓고 쿡쿡 웃기까지 하고 말야.

귀여우면 다야?

하, 이젠 메린 녀석까지 날 놀리는 데에 재미를 붙였네.

제기랄, 로나한테 좋지 않은 물이 들어버렸어……!

괘씸한 마음에 그녀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버렸다.

그러다 그녀에게 또 머리채를 한 번 잡혀버렸지만, 충분히 희생을 치를 만한 가치가 있었다.

“으으……”

“크크크.”

산발이 된 머리를 다시 매만지는 그녀를 굉장히 뿌듯하게 바라보며, 나는 꼬치의 고기를 뜯기 시작했다.

로나가 동굴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만 빼면,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저녁이다.

왜냐? 꼬치구이와 수프 모두 드워프의 시장에서 산 양고기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아, 일주일만에 먹는 순전한 가축 고기로 만든 요리……!

몬스터 고기 따위 한 점도 들어있지 않은 식사라니, 어찌 감격하지 않을 수 있으랴……!

“크흡……”

“응? 울 정도로 맛있지는 않은데. 내 특제 야채스튜가 곁들여져 있다면 또 몰라.”

“밥 먹는데 독 얘기하지 마라, 귀쟁아. 입맛 떨어진다.”

별안간 아웅다웅하기 시작한 위슨과 블루벨은 그대로 내버려두고, 나는 솥을 들여다보며 국자로 휘휘 저어보았다.

……음, 다 된 거 같은데.

한 스푼 떠서 맛을 본 후, 나는 한 그릇 가득 떠서 메린의 앞에 두었다.

그 다음 내 몫을 그릇에 담고, 한 스푼을 살살 떠서 입에 넣었다.

“후우…….”

역시 좀 서늘할 때는 수프가 최고야.

산 속이라 그런지, 한창 여름임에도 밤이 되면 꽤 쌀쌀하단 말이지.

드워프가 준 더블릿 덕분에 ‘춥다’까지는 느끼지 않지만, 그 뛰어난 옷도 얼굴에까지 닿는 서늘한 공기를 막아주진 못하고 있었다.

부드럽게 퍼진 건더기와 따끈한 국물이 온 몸을 덥혀주는 느낌에 또 한 차례 긴 날숨을 쉬었다.

그러자 땋았던 머리를 아예 길게 풀어버리고 리본으로 대강 묶던 그녀가, 눈썹을 살짝 추켜올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맛있냐?”

“어.”

“염장고기라서 별로라고 할 줄 알았는데.”

“네가 하는데 맛없게 될 리가 없지.”

객관적으로도 메린의 요리솜씨는 꽤 좋은 편이다.

전부터 어렴풋이 알고 있긴 했지만, 이렇게 같이 여행하니 그 사실을 확연히 깨닫게 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고향에 있을 때 좀더 먹을 걸 그랬어.

……라는 생각 따위 할 리가 있나!

이 녀석은 지 집에서 뭐 만들 때는 주구장창 몬스터 고기나 야생성 넘치는 고기만 썼는걸!

후우……, 아직도 그 충격이 잊히지 않는다.

예전에 그녀가 도시락으로 만든 샌드위치를 한 입 얻어먹었던 적이 있다.

그때, 특이한 맛이 느껴져서 뭘로 만들었냐고 물었었지.

그리고 그녀는 대답했던 것이다.

­­그거? 숲뱀.

­­?!?!

그 뒤로 그녀가 만든 요리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처음으로 제대로 먹은 게 작년 대축일인가?

……그때 그녀가 끓여준 수프는 무척이나 따뜻하고 포근해서, 굉장히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보니 희한하네.

그때 메린이 끓인 건 줄 알면서, 아무 의심도 없이 덥썩 먹어버렸단 말이지?

열병 때문에 의심할 기운까지 죄다 날아갔었던 모양이다.

“……근데 메린, 갑자기 궁금해졌는데.”

“엉?”

“작년 대축일 때 수프 끓여줬잖아. 뭔 고기로 했던 거냐?”

“글쎄? 너네 집 창고에 있던 거 대충 썼는데.”

“……쥐나 도마뱀, 뭐 이런 거 아니었던 거지?”

“너 간병하느라 너네 집에 내내 있었잖아. 우리집에 있는 걸 어떻게 쓰냐?”

그렇구나. 정말 다행이다.

그보다 메린 녀석, 집에 그런 고기를 비축해두고 있는 거야?

매일매일 사냥해서 저장해두는 건가!

이 녀석, 은근히 돈을 많이 모았다 싶었는데, 고기 사는 데에 돈을 안 써서 그랬던 거였구나……!

“그러고보니, 너희 넷 중에 요리 못하는 건 사제 꼬맹이밖에 없네.”

위슨과의 아웅다웅을 끝낸 블루벨이 수프를 한 국자 뜨면서 말했다.

“솔직히 카엘, 네가 요리를 할 줄 안다는 게 의외야. 이런 거랑은 담을 쌓고 있을 줄 알았는데.”

“잘봤어. 그냥 해야 돼서 하는 거지, 취미인 건 아니거든.”

만약 엄마가 지금도 살아 계셨다면, 나는 그저 고기를 굽는 정도만 할 수 있었겠지.

예전에도 낚시로 낚은 생선을 굽고 그랬으니까.

하지만 지금처럼 수프를 끓이거나 파이를 만드는 건 꿈도 못 꾸었을 것이다.

“그리고 로나는 요리 못하는 게 아니야. 안 하는 거지. 적어도 댁처럼 독을 만들진 않는다고.”

“맞아. 로나는 간을 안 해서 그렇지, 그쪽처럼 개밥보다도 못한 걸 만들진 않는다고.”

“너희 둘 다 내가 한 음식 먹어본 적 없잖아! 무슨 근거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억울하다는 듯이 외치는 블루벨에게,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해주었다.

“댁이 만든 무언가를 먹고 골골대던 엘프 아저씨.”

“대련하던 경계병이 너무 쫄길래, 자꾸 그러면 그쪽이 만든 밥 먹인다고 했더니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던데?”

오오, 언급만 해도 공포에 질리다니, 실로 훌륭한 무기가 아닐 수 없었다.

실제로 어느 연노랑머리 엘프를 탈진하게 만들었고, 왕궁에선 수십 명을 쓰러뜨리기까지 했다.

체질 상관없이 통하는 독이라니 무시무시하군.

이거 드래곤에게도 통하는 거 아냐?

드래곤도 입이 있고 위장이 있을 테니,블루벨이 끓인 수프를 커다란 솥 한가득 먹이면 그냥 끝나는 거 아닐까?

성검 필요 없을 거 같은데.

그리고 세기의 암살자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채 부들부들 떨며 소리쳤다.

“그때도 말했잖아. 다들 입맛이 너무 까다로워서 그런 거라니까! 나는 맛있었다고!”

“댁 혼자만 맛있는 건 맛있는 게 아니야. 댁의 혀가 맛이 간 거지.”

“크윽…… 좋아! 내일 저녁은 내가 전력을 다해서 만들 테니까 두고 봐! 극상의 맛에 놀랄 준비나 하라고!”

“조리기구 만지기만 해봐. 댁 배낭에 있는 술 전부 버려버릴 줄 알아……!”

인상을 팍 쓰며 낮은 목소리로 일갈하자, 블루벨은 곧장 입을 비죽이며 고기를 으적으적 씹었다.

술로 위협하니까 곧장 얌전해지다니, 역시 술꾼이군.

……그렇게 넷이 각자 수프 한 그릇씩 비웠을 무렵, 로나가 동굴에서 나오며 기지개를 쭉 폈다.

만족스러운 성과를 얻었는지, 그녀는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꼬치를 하나 집어 시원하게 뜯었다.

“……잘 끝났나봐?”

“네! 생각보다 잘됐어요. 마을 위치랑, 거기에 저 놈들 편이 얼마나 있는지도 다 들었거든요! 카엘 님이 붙잡으신 그 주술사가 큰 도움이 됐어요!”

음, 그 지팡이를 들고 있던 부족민이 주술사였던 모양이다.

그냥 땅 짚으려고 들고 다니는 게 아니었군.

……문득, 뒤늦게 식사를 시작한 로나에게 눈이 갔다.

옷과 장갑 등등, 주요 부위가 모두 붉은 탓에 어떤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얼굴에 붉은 얼룩이 묻어 있지 않았다면, 그녀가 동굴에서 노닥거리다가 온 게 아닌가 생각했겠지.

그녀는 그 얼굴로 헤실 웃으며 재차 입을 열었다.

“그거 아세요? 저 놈들이 여기 온 거, 카엘 님 때문이었어요! 히히, 카엘 님 덕분에 일이 훨씬 수월해진 거랍니다. 무의식적으로 악을 멸하는 길을 걸으시다니, 역시 용사이시군요!”

“엥? 나? 내가 뭘 했다고?”

“덫에 걸리셨었잖아요? 그 덫이 놈들의 은신처에 연결되어 있었대요. 거기 당번 서고 있던 놈이 우리 상황을 살피고 본거지에 알렸고요.”

아…… 그래서 숫자를 세고 부족하다고 중얼거렸던 거군?

나무 위에 있던 블루벨을 보지는 못했겠지만, 목소리는 들었을 테니까.

“아무튼 놈들의 본거지는 여기서 남동쪽에 있대요. 그래서 그런데요.”

로나는 꼬치 하나를 순식간에 먹어 치운 후, 입가를 닦으며 말을 이었다.

“내일 새벽에 잠깐 다녀올게요. 점심 넘어서 돌아오지 않을까 해요. 그래도 되죠?”

“너 혼자 가려고?”

나도 모르게 미간을 좁히며 그녀에게 되물었다.

그러나 로나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평소처럼 헤실거리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용사의 사명과는 하등 상관없는 일이니까요. 전투사제인 저 혼자만 관계된 건데, 다같이 갈 필요가 있겠어요? 가서도 안 되고요.”

“……안 되는 건 또 뭐야? 가서 뭐하려고?”

무언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어 가만히 캐묻자, 또 다른 꼬치를 손에 든 채 고개를 까닥이며 그녀가 대답했다.

“악마숭배자를 색출해서 죽일 거에요.”

“……!”

“그리고 집을 불태울 거고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하면서, 그녀는 고기를 힘차게 뜯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