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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233화 (233/475)

〈 233화 〉 226화 : 산 위의 용자(子) (2)

* * *

메린을 한껏 끌어안은 후, 나는 다시 그녀를 이리저리 살폈다.

얼굴은 창백하고, 입술은 약간 파랗다.

살짝 드러난 그녀의 어깨는, 드워프가 주었던 서코트에 싸인 채 미세하게 떨고 있다.

입을 건 다 입고 있는데……!

황급히 한 손으로 그녀의 차디찬 손을 감싸 쥐고, 다른 손으로 그녀의 뺨을 어루만졌다.

……얼음장 같아.

한겨울 냉기를 쐰 것 같은 차가움이 손바닥으로 전해져, 가슴속이 욱신거렸다.

“괜찮아? 어떻게 된 거야? 어디 아파? 다쳤어? 젠장, 왜 이리 차가워……?!

아냐, 아냐아냐, 말하지 마. 대답 안 해도 돼. 괜찮아. 응, 괜찮아. 아무 말하지 마.”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그녀를 찾았고, 그녀가 살아있다는 게 중요하지.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그녀와 이마를 맞대며 계속 되뇌었다.

……이렇게 그녀의 가까이에 있는데, 여전히 불안감은 잦아들지 않는다.

아마 그녀의 상태가 좋지 않은 탓이리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래, 참 다행이지.”

위슨, 정확하게는 파랑새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위슨이 피곤에 찌든 얼굴로 문가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방 가장자리에 사람들이 둘러서 있다는 걸 깨달았다.

검은 옷을 정갈하게 차려입은 게, 어쩐지 귀족들이 부리는 하인처럼 보였다.

혹시 내가 이 방에 들어섰을 때, 저들 중 하나가 나를 붙잡았던 걸까?

그나저나 다들 두 눈을 굳게 감고 있는데,어째서인지 미약한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로드’라 불린 그 붉은 남자, 키리오스처럼 눈을 감아도 앞이 보이는 듯했다.

위슨은 문가에서 떨어져, 나를 향해 다가오며 크게 기지개를 켰다.

“이걸로 위슨도 한숨 돌릴 수 있겠네.”

……그러고보니 이 녀석, 어디 있었던 거지?

여기까지 오면서 그의 모습을 보지 못했는데.

반대편 방들 중 하나에 있던 건가?

어쨌든 로나와 블루벨과 달리, 그는 정신을 잃지 않았던 듯했다.

걸음걸이가 살짝 불안정하긴 하지만, 그 외에는 별 이상이 없는 것 같아, 나는살짝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위슨, 무사했구나.”

“무사한 건가? 뭐, 너네보다 낫긴 하지만.”

파랑새의 말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대놓고 하품하는 위슨이었다.

그러고보니 입을 가리는 목깃을 아예 풀고 있네.

말을 못한다는 걸 숨길 생각이 없는 모양이군.

“위슨, 너……!”

“뭐.”

그가 가까이 오자, 안 그래도 검은 편이었던 그의 눈 밑이 완전히 시커멓게 물들어 있는 게 보였다.

며칠 밤이라도 꼴딱 새운 것처럼.

메린도 그렇고, 다들 이렇게 쇠약해질 리가 없는 녀석들인데……!

그 빨갱이…는 뭔가 이상하군.

그 염병할 빨간 새끼, 우리한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위슨, 이게 다…… 하,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건 직접 들어라. 위슨은 이제 한계야.”

그렇게 중얼거리며, 파랑새가 그의 어깨 위에서 날아오르더니, 허리춤의 물약 중 하나에 대고 부리를 벌렸다.

그러자 곧 뭉실뭉실한 연기와 함께 약간 커다래진 늑대가 나타나, 위슨을 등에 태웠다.

정확하게는, 휘청이는 그의 다리를 늑대가 툭 건드려서 자신의 등 위로 고꾸라뜨린 거지만.

“괜찮은 거야?”

“당연하지. 사흘간 잠을 안 잤을 뿐이다.”

“……”

……하나도 괜찮지 않은 거잖아? 뭐가 당연하다는 거야?

파랑새는 내 뚱한 시선을 본 척도 하지 않고, 불현듯 허공을 향해 말했다.

“네놈도 보았듯이, 내기는 계약자의 승리로 끝났다. 성실히 약속을 이행하는 게 좋을 것이다, 도마뱀 대가리.”

“……쯧, 어쩔 수 없군.”

갑자기 목소리가 울리더니, 방 한구석이 일렁거리며 붉은 남자, 키리오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척도 없이 나타나곤, 무언가 굉장히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이쪽을 빤히 쳐다보았다.

저 새끼가 개수작을 부린 탓에……!

“아서라. 개겨봤자 헛수고야. 저 도마뱀 대가리가 빡치는 건 이해하지만, 네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냐. 진정해.”

톡 쏘아붙이는 파랑새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늑대가 내 옷자락을 콱 물고 아래로 당겼다.

일어나지 못하게 하려는 심산인 듯했다.

“……”

………그래, 검이 있어도 모자랄 판에 맨손이잖아.

아직 어지럽기도 하고, 여전히 팔다리에 힘이 잘 안 들어가고 있다.

메린이면 몰라, 내 주먹질로 쓰러뜨릴 수 있는 놈은 절대 아니지.

……파랑새 말이 맞아. 진정하자.

우리가 전부 살아있는 걸 보면,놈은 우릴 죽일 생각이 없는 거야.

더럽게 빡치지만 지금은 참아야 한다.

“……후우.”

“그래그래, 얌전히 있으라고. 저 놈 대갈통이 텅텅 빈 건 아니니, 아무리 배알이 꼴려도 널 죽이진 못해. 그렇다고 손을 못 대는 건 아니니 적당히 개겨. 우린 간다.”

파랑새가 신호를 주듯이 째짹 울자, 늑대가 내 옷자락을 놓고 살짝 고개를 끄덕인 후, 위슨을 등에 태운 채로 문 밖으로 나갔다.

그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본 후, 나는 말없이 놈을 쳐다보았다.

무언가 할 말이 있으니 이렇게 모습을 드러낸 것일 터.

놈은 내 얼굴을 힐끗 보더니, 크게 한숨을 쉬었다.

“……전부 나가 있거라.”

놈의 명령에, 방에 자리하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 발소리가 모두 잠잠해진 뒤에야, 빨간 놈은 투덜대듯이 말을 꺼냈다.

“참으로 골치가 아프군. 네놈 때문에 나의 원대한 계획이 모두 엉망이 되었다. 그들이 혹여 이까지 미리 내다보고 택한 것이라면, 허허, 그저 웃음만 나오는구나.”

“혼잣말은 방에 가서나 하시지?대답해. 우리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냐?”

“……미리 말해두지. 어쩔 수 없었다. 싸움을 막기 위해 부득이하게 취한 조치였어. 이 점 유의하도록.”

검지손가락까지 세우며 나에게 단단히 이른 후, 놈은 살짝 어깨를 으쓱였다.

“무얼 했냐고? 공포를 뿌렸지. 쉽게 말해서 포효를 한 것이다. 내 가신들을 제압할 만큼 강하게.

그런데도 난리가 끝나지 않아서 곤란했다.”

우리 중에 놈의 포효를 듣고 완전히 정신을 잃은 건 나와 블루벨 단 둘뿐, 다른 세 사람은 잠시 후에 다시 일어났다.

여섯 마리의 드래곤조차 전부 쓰러졌는데, 인간 셋이 도로 일어난 것이다.

그때 본 그 모습이 다시 생각났는지, 키리오스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나 원, 나의 반신과 전능자의 검은 차치하고, 설마 그 어린 현자에게 정령이 붙어있을 줄이야. 그래도 용사라고 꽤나 강력한 일행을 데리고 다니는구나.”

포효는 결국 소리이니, 아마 파랑새가 힘을 발휘해서 자신의 계약자를 지킨 거겠지.

그런데 포효를 듣고도 일어난 건 셋인데, 바로 전까지 멀쩡히 서 있던 건 위슨 하나뿐이잖아.

무언가 또 수작을 부렸던 게 분명해.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키리오스는 재차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물론 조치를 하나 더 취했지. 나의 반신과 전능자의 검이 또 다시 달려들기에, 독 연기를 뿜었다.”

“독?!”

그래서 메린의 상태가 이렇게까지 좋지 않은 건가……!

그러고보니 로나도 얼굴빛이 그리 좋지 않았던 것 같아.

대뜸 독을 뿌리다니, 이 미친 새끼가……!!

“그저 힘을 빼려 했을 뿐이나…… 허 참, 인간의 몸은 생각보다도 훨씬 연약하더군. 다시 말하지만, 나는 그저 싸움을 막으려 했을 뿐이다.

그 어린 현자가 어느 정도 독을 치료했으니, 조만간 전능자의 검이 깨어날 터. 그리하면 네놈들을 완전히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니 그리 노려보지 마라, 용사.”

“……”

뭘 의도했건 알게 뭐야.

어쨌든 전부 죽을 뻔했단 거 아냐!

싸우기 싫었으면 처음부터 날 죽이려 하지 말든가!

……아니, 씨발, 생각해보니 웃기네?

지가 일을 꼬아놓고 왜 나 때문에 계획이 엉망이 됐다느니 지랄을 떤대?

대가리가 텅텅 비셨나, 뭔 개 같은 소리를 짖으신담?

키리오스는 내 얼굴을 보더니, 재차 크게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 됐다. 여하간 지금은 쉬어라. 네놈들이 모두 회복할 때까지 이곳에 머물러도 좋다.”

그렇게 말하면서 놈이 손가락을 따악 퉁기자, 방 한 가운데에 흰 앞치마를 두른 하녀가 나타나 인사했다.

“부르셨사옵니까, 로드.”

“이 자를 방으로 데려가 모셔라.”

“……필요 없어. 여기 있을 거야.”

힘없이 나를 보는 그녀의 뺨을 쓰다듬으며 단호히 말했다.

……이렇게 상태가 좋지 않은 그녀를 혼자 두고 가라고?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송구합니다만, 그분도 당신도 쉬셔야 합니다.”

“여기서 쉬면 돼.……절대 안 나가.”

어차피 나 홀로 그 방에 있어봤자 메린을 걱정하느라 편히 쉬지 못할 거고, 제대로 잠도 못 잘 게 뻔하다.

그럴 바에야, 바닥에서 자는 한이 있더라도 여기에 있는 게 훨씬 낫지.

“그래도 되지? 메린. ……난 괜찮아. 걱정 마.”

“……”

조용히 속삭이자, 내가 감싸 쥔 그녀의 손에 아주아주 약간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그런 우리의 머리 위로, 푸욱 내쉬는 큰 한숨소리가 들렸다.

“……나의 반신을 저리 만지작대다니. 형태가 그리하니 어찌할 수 없다 해도, 이거 영 보기 께름칙하군.”

“아까부터 반신, 반신, 시끄러워 뒤지겠네. 미친 빨간 도마뱀 새끼야, 메린이 왜 네 반신이야? 이 녀석은 인간이라고!”

“혈육의 문제가 아니다, 용사. 설명은 네놈이 기력을 회복하면 하도록 하지.여하간, 네 앞에 누워 있는 그 인간은 틀림없는 나의 반신이다.

……그리고 도마뱀이라 하지 마라, 털 빠진 원숭아. 설령 욕을 하더라도 드래곤이라고 제대로 부르도록.”

“알았다, 거지 같은 빨간 드래곤 새끼야.”

“잡초 같은 인간 놈이 참 환장하게 하는구나.”

근데 메린이 저 놈의 반신인 게 혈육 문제가 아니라고?

그럼 뭔데?

반려도 아니고 몸의 반쪽이라니 그게 뭔…….

……응? 반려……?

아, 맞다.마이라도 그 자리에 같이 있었을 텐데……!

“잠깐, 마이라 씨는……?!”

“네놈이 그걸 왜 묻지? 아, 그 자리에 같이 있었기에 묻는 것인가? 하, 인간의 사고방식은 여전히 알 수가 없군. 자신과 상관없는 타인의 안위를 궁금해하다니.

여하간, 나의 반려는 지금 내 침소에서 쉬고 있다. 네놈과는 이제 연이 없을 터이니 더는 묻지 마라.”

어이구, 딱 끊는 거 봐라.

그래도 마이라 역시 무사하구나. 다행이다.

……근데 잠깐, 저 놈이 지금 뭐라고 했지?

“마이라 씨가…… 어디에 있다고……?”

“귀가 먹었나? 내 침소에서 쉬고 있다고 했거늘.”

“……!!”

오, 신이시여! 이게 뭔……!

아니, 뭐, 인간들 중에도 염소나 개를 사랑하는 정신나간 사람들이 있긴 해.

엘프 중에도 있었잖아. 날개사슴이랑 결혼한 사람이……!

그러고보니 이 빨간 놈, 내가 정신을 잃기 직전까지도 인간 형태였잖아!

다른 드래곤들은 각각 도마뱀과 뱀 대가리에 날개 달린 드래곤 본연의 모습이었는데!

세상에, 이상취향을 가지는 건 종족 상관없이 모든 지성체에게 일어나는 현상이란 말인가!

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번식 본능을 뛰어넘은 쾌락까지도 추구하게 되는 것인가?!

경악스러운 사실에 입을 떡 벌리고 있자, 키리오스가 얼굴을 찌푸렸다.

“왜 그리 놀라나? 내가 그 계집을 잡아먹기라도 할 줄 알았나? 이래봬도 나는 약조를,”

“세상에, 진짜로 안았어……. 이종족이 취향이라니, 맙소사…….”

“무슨 발칙한 상상을 하는 것이냐, 용사! 이 내가 인간을 안을 리가 있겠느냐! 그저 나를 받드는 시녀의 역할을 할 뿐이다!! 끄으윽, 이러니 매번 그만하라고 이르는 것이거늘……!”

드래곤 로드는 머리를 감싸며 고통스러운 듯이 신음하더니, 이내 한숨을 푹 쉬며 이마를 짚었다.

그 짧은 사이에 무척이나 수척해진 것 같은데, 내 눈의 착각이겠지?

“……휴식이 필요한 건 오히려 나인 것 같군. 이 방에 있고 싶거든 좋을대로 해라. 나는 이만 물러가지.”

내가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그의 주위가 일렁거리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모습이 사라졌다.

자연히 아직 방에 남아있는 하녀에게 눈길이 가자, 그녀는 재차 깊이 인사하며 입을 열었다.

“저 역시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찾으시는 게 있거든, 그 종을 울리십시오.”

“종……? 아, 이건가?”

침대 머리맡에 작은 종이 놓여 있다.

……원래 여기 있었던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내 귀에, 또 다시 하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편안히 쉬시길.”

그렇게 공손히 인사한 뒤, 그녀의 모습이 그림자처럼 새까맣게 변하더니 사방으로 흩어지듯 사라져버렸다.

나 참, 사라지는 방법도 가지각색이구만.

고개를 흔들며, 나는 다시 메린을 보았다.

……여전히 손도 얼굴도 차갑고, 뺨을 감싼 손바닥으로 그녀가 아직 떨고 있는 게 느껴졌다.

입을 것도 다 입고 있고, 이불도 충분히 두툼한데.

“추워?”

“……”

살짝 고개를 끄덕인 것 같다.

이불을 한 장 더 요청해야 하나?

침대 근처에 놓인 종을 집으려는 순간, 문득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 하나 떠올랐다.

눈밭에서 길을 잃은 두 사람이, 어느 동굴에서 서로 부둥켜안은 덕분에 무사히 밤을 보냈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다.

달리 몸을 덥힐 게 없을 땐, 서로 체온을 나누는 게 가장 좋다는 뜻이었던 것 같은데.

침대 크기는 충분하니, 하려면 할 수 있을 터.

두꺼운 이불을 여럿 덮으면 무거워서 답답할 테니, 어쩌면 이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

근데 그거 알몸을 맞대는 거 아니었나?

엥? 그럼 나랑 이 녀석 둘이서……

“……으.”

아냐아냐아냐,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

지금 겨울도 아니고, 그럭저럭 따뜻한 실내잖아!

오히려 그게 더 추울 거야!

“후…….”

그녀의 입에서 파르르 떨리는 숨결이 새어나왔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자.

지금은 메린을 덥히는 게 중요하잖아.

“잠시만…….”

조심스럽게 그녀를 안아 올려 옆으로 조금 옮긴 후, 이불 속으로 들어가 그녀를 살며시 껴안았다.

어깨에 닿는 그녀의 얼굴에서 싸늘함이 느껴진다.

……이걸로조금이라도 따뜻해지면 좋으련만.

“카엘…….”

딱 달라붙어서 그런지, 그녀가 속삭이는 게 들렸다.

평소와 다른 가냘픈 목소리에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다.

……이런 꼴을 당하게 하려고 거기서 데리고 나온 게 아닌데.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울지 마…….”

“……울긴 누가 우냐? 헛소리 말고 자.”

퉁명스럽게 대꾸하며 그 등을 가만히 토닥였다.

그러다 잠시 후, 그녀가 별안간 숨을 길게 내쉬더니, 내 어깨에 이마를 부비며 몸을 꼼지락거렸다.

혹시 답답한 건가 싶어 살짝 떨어지자, 그녀가 곧바로 애달프게 속삭여왔다.

“아……,싫어……. 좀더……, 좀더 안아줘……. 추운 거, 싫어…….”

“………”

물기 어린 목소리로 애원하는 그녀를 깊이 끌어안았다.

냉기 따위 끼어들 틈이 없도록, 최대한 바짝.

“후으……따뜻해……….”

품속에서 멍하니 속삭이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등을 토닥인다.

잠시 후, 평온히 퍼져 나오는 느릿한 숨소리에 나 역시 길고 긴 한숨을 쉬었다.

어느덧 사라진 서늘함 대신, 품 안을 가득 채운 따스함에 취한 것처럼, 서서히 눈꺼풀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이번엔 제대로 잘 수 있을 것 같아.

의식이 완전히 가라앉기 전, 그런 확신이 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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