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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238화 (238/475)

〈 238화 〉 231화 : 은방울꽃이 피워낸 마음

* * *

한 입, 또 한 입, 작게 잘린 고기를 입에 넣을 때마다 말 한 마디를 대신 꺼낸다.

“이렇게 높은데도 여전히 하늘이 멀다는 게 참 신기하다니까. 야, 그래도 구름은 이 아래에 쫙 깔려 있더라. 진짜 이불 같았어.”

음울한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흩뜨리려, 일부러 더 밝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을 건네고,

“좀 팍팍 먹어라. 그래야 빨리 기운 차리지. 안 어울리게 뭘 깨작거리고 있냐? 자.”

좀처럼 먹지 못하는 그녀의 입에 음식을 넣어준 다음, 내내 말이 없는 그녀를 대신해 줄창 떠들어댔다.

위슨이 지나가던 드래곤 하나를 꼬셔서 피를 뽑더니, 일부는 술로 담그고 일부는 정제해 두었다더라.

어젯밤에 술을 퍼 마셨는지, 블루벨이 해가 중천이 되어서야 일어났더라.

그리고 로나가 대련하자며 블루벨을 끌고 가선, 별채 앞에 드래곤 한 마리가 엎드릴 수 있을 만큼 커다란 구덩이를 만들었다더라.

위슨이 그걸 메우면서 두 아가씨가 머리만 땅 위에 내놓도록 같이 파묻어버렸다더라……

내 입으로 직접 말하면서도 정신이 아득해지려 하는 이야기들을 그녀에게 전하며 웃었다.

즐거워서? 천만에. 심지어 억지로 웃지도 않았다.

그 녀석들과 계속 같이 가야 하는 내 팔자가 너무 처량해서 터진 헛웃음이니까.

……미친놈들인가, 진짜 하나같이 뭐하는 거야?

돌겠네, 진짜.

“마을 아니라고 마구 날뛰는 게 아주 그냥 골치가 아파. 누가 보면 단체로 광대버섯 처먹은 줄 알겠어.”

“……마침 잘됐네. 말썽쟁이 하나 빠져서.”

“………”

찻잔을 기울이려던 손이 우뚝 멈추었다.

그것도 잠시, 나는 마저 잔을 기울인 후, 텅 빈 찻잔을 내려놓으며 메린의 앞에 놓인 잔을 흘긋 쳐다보았다.

……역시 깔끔히 비워져 있다.

시답잖은 이야기를 펼치는 평화로운 시간은 이제 끝난 것이다.

“……마티나, 자리 좀 비켜주세요.”

“알겠습니다.”

마티나는 재빠른 손놀림으로 테이블을 정리한 다음,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한 후 방을 나섰다.

문이 굳게 닫히는 소리가 들리기까지 기다린 뒤, 나는 작게 숨을 내쉬고 메린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나가 억지로 빠지려 드니까 어긋나는 거야. 톱니바퀴처럼 말야.”

“최근에 하나 더 꼈을 뿐이야. 원래 넷이나 다름없었잖아.”

“한 명 더 들어온 순간, 그에 맞춰 돌아가도록 조정됐지. 빈 자리를 만드는 것보다 메우는 게 더 어려운 법이야.”

“그래서 말했잖아. 그 드래곤한테, 날 여기 두고 가는 조건으로 조력을 구하라고. 누구 하나 붙여달라고 해.”

어제와 같은 말을 하는 그녀.

여전히 물러설 기색을 조금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내 속은, 희한하게도 무척이나 평온하다.

어제처럼 속이 꽉 막히는 듯한 답답함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에게 전할 말을 준비해둔 덕분인지도 모른다.

……로나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 조용히 맴돌았다.

메린을 고향에서 데리고 나온 이유.

메린을 평범한 사람처럼 만들겠다고 다짐한 이유.

드물게 자기주장을 하는 그녀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이유.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 바탕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당신이 그 사람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이죠?

그에 대한 답.

이 방에 오기 전에 불쑥 고백해버린 그 작은 소망을,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서 말했다.

“난 너와 함께 있고 싶어.”

“……”

“이래저래 핑계를 댔지만, 결국 내가 바라는 건 이것 하나뿐이야.

……메린, 내 옆에 있어줘.”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이 여기 남겠다고 한다면, 이렇게까지 필사적으로 말리진 않았겠지.

오로지 실익만 따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다르다.

그녀에 대한 내 모든 행동의 기저엔, 항상 이 소망이 담겨 있었다.

……그녀를 쫓아내겠다는 말이 계기가 되어, 나는 그녀를 고향에서 데리고 나왔다.

왜?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도, 그녀를 보지 못할 것 같았으니까.

그녀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섞여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이유 역시, 내가 마을에서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덕지덕지 붙인 이유와 합리를 모두 벗겨낸 뒤에 나온 것은, 아주 작고 단순한 소망.

……그녀와 함께 있고 싶다.

그녀의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보고 싶다.

그게 안 된다면……

적어도 이 목숨이 다할 때, 마지막으로 그녀의 얼굴을 보기를 원한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난 싫어.”

스윽, 손을 빼면서 그녀는 단호히 말했다.

“너랑 같이 다니기 싫어. 더는 네 뒤치닥꺼리 하고 싶지 않아. 약한 주제에 여기저기 깝치고 돌아다니는 너 같은 등신, 이제 진절머리 난다고.”

“거짓말.”

“거짓말 아냐. 나, 진짜 여기 남고 싶거든? 여기 있으면 네 잔소리 더 안 들어도 되고, 맨날 내 잘못이라고 지랄해대는 꼴도 더 안 봐도 되잖아.

어차피 이 여행 끝나면 각자 갈 길 가자고 하려 했는데, 오히려 잘됐어. 여기엔 네가 귀에 못이 박히게 말하는 사회 규칙도 없고, 내가 신경 써야 하는 인간도 없어.

게다가 그 드래곤이 날 반신이라고 부르고 있으니, 얼마나 편하게 살 수 있겠냐?”

……이 여행이 끝나면 각자 갈 길 가자고 하려 했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미간이 절로 좁혀지는 게 느껴졌다.

“너…… 그러려고 나한테 글공부 봐달라고 했던 거냐? 나랑 따로 다니는 게 목적이었어?”

“당연하지. 그게 아니면 내가 글공부 따위를 왜 하냐? 이젠 더 할 필요도 없어졌으니 더 잘됐네.”

“……”

“왜? 충격 먹었냐? 진짜로 순수하게 너 돕고 싶어서 그런 줄 알았어? 하, 네가 그러니까 호구 등신이라는 거야.

너 나를 그렇게 보고도 몰라? 내가 언제 남 좋은 일 한 적 있다고!”

기가 막히다는 듯이 코웃음 치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하, 메린, 안 하던 짓하지 마. 어설픈 거짓말은 집어치우고 그냥 사실을 말해.”

“거짓말 아니라고 했잖아, 이 새끼야! 너랑 같이 다니기 싫어서 헤어지려 했다고!”

“그거 말고.”

내가 호구 등신이면 넌 바보 멍청이다, 임마.

지금 날 속이려고 하는 거야?

생판 남의 거짓말도 감지해내는 내가, 십여 년이나 가까이서 지켜본 네 거짓말에 속을 줄 알아?

아니, 굳이 내가 아니어도 다 알겠다.

그렇게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면서, 경직된 얼굴로, 손을 꼼지락거리며 말하고 있는데, 그게 거짓말이 아니란 걸 누가 믿겠어?

정말 어이가 없군.

고개를 좌우로 살짝 흔든 후, 나는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나랑 같이 다니기 싫다고? 아, 그렇겠지. 그러니까 여기 남겠다고 하는 걸 테니까.

아트라토스를 죽이면 헤어질 생각이었고, 그 때문에 글공부를 다시 했다고? 그래, 좋아. 좋다고. 믿어줄게.

……근데 뭐? 그 이유가 내 뒤치닥꺼리 하기 싫고, 내가 진절머리가 나서 그렇다? 거짓말하지 마, 이 자식아. 그거 때문에 그런 거 아니잖아.”

쾅!

테이블을 내려치며 그녀가 눈을 부릅떴다.

“누구 맘대로 거짓말이래?! 네가 인정하기 싫은 말은 다 거짓말이냐, 졸렬한 새끼야!”

“누구 맘이긴! 너! 메린 소더, 네 마음이다, 이 멍청아! 네 눈, 네 얼굴, 네 손! 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가 그게 거짓말이라는 걸 나한테 알려주고 있어!

널 그렇게 보고도 모르냐고? 그 말 그대로 돌려주마, 이 자식아!

내가 이제껏 거짓말은 단 한 번도 안 해본 자식한테 속아 넘어갈 정도로 멍청한 줄 아냐?!”

“……읏!”

덜커덩, 의자를 엎어뜨릴 기세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그녀는 몸을 홱 돌리며 테라스로 도망쳐버렸다.

산맥에서 가장 높은 산의 꼭대기라서 그런지, 벌컥 열어젖힌 문으로 들어오는 공기는 초겨울처럼 싸늘했다.

“야, 임마!”

아직 다 낫지도 않은 녀석이 얇은 차림으로……!

곧바로 그 뒤를 따라 테라스로 나가자, 그녀가 난간을 짚은 채 등을 보이고 서 있었다.

“야, 메린, 너 또 앓아 눕고 싶어?! 바보 같은 짓하지 말고 들어와! 춥잖아!”

팔을 붙잡고 안으로 끌고 오려고 했는데, 그녀가 몸을 돌리며 내 손을 홱 뿌리쳐버렸다.

그런 뒤, 나를 매섭게 쏘아보며 목이 터져라 소리치기 시작했다.

“거짓말 아니야, 아니란 말야!! 너랑 같이 다니기 싫어! 난 여기 남고 싶다고!”

“누가 그게 거짓말이래?! 진짜 이유를 말하라고 했지! 일단 들어와, 이 자식아!”

“싫어!!”

내가 내민 손을 철썩 쳐버리며, 그녀는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나 좀 그만 내버려둬!! 너랑 같이 다니기 싫다는데 왜 자꾸 붙잡고 늘어지는 거야?! 제발 신경 좀 꺼! 네 일이나 신경 쓰란 말야!”

“지금 하고 있잖아!”

“개지랄 떨지 마, 이 새끼야! 네 일은 북쪽 산에 있는 드래곤 잡는 거잖아, 이 미친놈아!

넌 용사야! 용사답게 드래곤 잡는 거나 신경 써! 나 같은 짐덩어리는 버려버리라고, 등신 새끼야!!”

이 자식이 진짜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고 있었구나……!

울컥 솟아오른 분노를 참지 못하고, 나는 그녀의 두 어깨를 거세게 붙잡으며 소리쳤다.

“너나 개지랄 그만 떨어! 네가 왜 짐덩어리야? 네가 어떻게 짐덩어리야! 어떤 새끼가 그딴 개소리를 지껄였어?!”

“나다, 이 새끼야! 내가 나를 보니까 짐덩어리라는 결론이 나왔다, 어쩔래?! 힘만 무식하게 세고, 도움되는 거 하나 없는 년이잖아! 그게 짐이 아니면 뭐야?!”

“드디어 기억력 떨어지기 시작했냐?! 말했잖아, 네가 있어줘서 내가 안심할 수 있다고! 내가 나 자신으로 있을 수 있다고!”

“거짓말!!”

밤공기를 뒤흔들 정도로 크게 외치며, 그녀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거짓말하지 마! 맨날 내가 뭔 일 저지르는 거 아닌지 걱정하는 주제에! 골치 아파하는 주제에 뭔 안심을 해?! 그 좋아하니 뭐니 하는 것 때문에, 툭하면 평정심 잃으면서 뭔 너 자신으로 있을 수 있다는 거야?!

안 그래도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있으면서! 억지로 검을 잡고 휘두르고 있으면서! 왜 계속 나 같은 짐덩이를 떠안으려고 하냐고!”

“넌 짐덩이 같은 게 아냐! 내가 좋아하는 여자이지!”

“난 그딴 거 몰라! 그 탓에 네 욕구를 푸는 것도 못해주고 있잖아! 제대로 지켜주지도 못하고 있고……!

아무 도움도 안 되고 힘들게만 하고 있는데, 왜 계속 끌고 가려 하냐고……!”

몸부림을 쳐서 내 팔을 뿌리치더니, 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감싸며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왜 자꾸…… 그 사실을 보게 만드냔 말야……! 더는…… 싫어……!”

“………”

고개를 떨군 채 어깨를 떠는 그녀를, 나는 그저 멀거니 내려다보았다.

그녀가 쏟아낸 말들을 이해하는 데에 온 정신이 쏠린 탓에,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말로는 안심된다고 하면서 걱정하고,골치 아파하고 있다.말과 행동이 다르니 믿을 수 없다.

이해도 안 되는 감정을 이유로, 내가 동요하는 게 싫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그녀 자신은 해결해줄 수 없다.

그 사실이 코앞에 들이밀어지는 게 싫다.

……더는 그걸 견딜 수 없다.

그것은 한 줌의 거짓도 섞이지 않은 그녀의 진심이었다.

그게 다 누구 탓일까?

……당연히, 나지.

결국 내가 그녀를 힘들게 만든 거야.

그녀의 거짓말들은, 그 점 하나에선 진실이었다 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놔주지 않을 거야?

무슨 자격으로?

“……”

휘청거리는 몸이 바닥에 내려앉도록 내버려둔 후,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두 손을 잡았다.

“……메린,”

한 마디 뗄 때마다 속에서 북받쳐오르는 걸 꾹꾹 눌러 참으며, 묻고 싶지 않은 말을 애써 입에 올렸다.

“솔직……, 솔직히 말해줘. 내가, 이렇……, 이렇게 가까이 있는 게…… 끔찍해……?”

“……읏.”

“전에, 네가 그랬지? 내가 옆에 있으면, 꿈도 안 꾸고 푹 잔다고. 이젠…… 이젠 안 그래? 내가 있으면, 오히려 불편한 거니?”

“나……는……”

“나는…… 나는 있잖아……,”

한 손으로 그녀의 뺨을 어루만지며, 그 고개를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이미 몇 방울의 눈물을 흘린 두 눈동자를 바라보며, 가만히 말을 이었다.

“너 없으면…… 이제, 잠도 제대로 못 자…….”

그녀의 눈동자를 보며 말을 전한 탓인지, 힘껏 억누르고 있던 감정이 한결 더 거센 기세로 치솟아 올라와, 결국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말았다.

“네가 옆에 없으면, 불안해서 미칠 거 같아…….”

네가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

네가 내 손을 잡아주고, 내 등을 밀어주니까 계속 걸을 수 있었어.

……하지만 그게,

“너에겐, 부담이었어.”

“……아, 니야……”

“나는, 널 옭아매는, 가시 같은 존재인 거야.”

나는 그녀에겐 그저 방해물에 지나지 않는다.

나 홀로 조용히 품고 있던 그 생각은, 그녀가 직접 꺼내들며 완전한 사실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래도,

그녀를 놓고 싶지 않아.

가슴이 파이는 듯한 아픔에 울면서, 그녀의 손을 세게 붙잡았다.

“미안…… 미안해, 메린. 나, 그래도 너랑 같이 있고 싶어. 나, 내가 밉지? 괜찮아. 미워해. 욕하고 원망해도 돼. 네가, 읏, 네가 아트라토스가 된다고 해도, 설령 지금 이 자리에서, 네가 날 죽인다 해도 상관없어.

그래도 난, 네 옆에 있고 싶어……!”

그러니까 부탁이야. 나와 같이 가줘.

……그렇게 말을 이으려는 순간,

“아니야! 아니야, 아니란 말야!!”

그녀가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외쳤다.

“네가 불편할 리가 없잖아! 네가 부담이 될 리가 있겠냐! 나는 네가 밉지 않아! 그러니 원망 안 할 거야! 절대로, 절대로 안 죽일 거라고!

나도…… 나도, 네 옆에 있고 싶단 말야……!!”

“……!”

“하지만 내가 있으면 네가 힘들잖아……! 걱정하느라, 신경 쓰느라, 참느라 힘들잖아! 지금도 나 때문에 울고 있잖아……!”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 넘쳐, 그녀의 뺨을 온통 적시고 있다.

그것으로는 모자라다는 듯이, 그녀는 속에서 무언가를 토해내는 것처럼 허리를 굽히며 말을 쏟아내었다.

“네가 우는 게 싫어! 네가 힘들어하는 것도 싫고, 네가 아파하는 것도 싫어……! 네가 죽는 게, 무엇보다도 싫은데……! 내가 있으면, 결국 넌 날 죽이면서, 그것들을 다 겪을 거 아냐! 내 손으로 널 죽일지도 모르고!!

그러니까…… 난 여기 있어야 돼……. 나 같은 이상한 년은 잊어버리고, 다른 멀쩡한 여자 만나면 되잖아……! 블루벨이든 슐 언니이든, 아니면 네가 잘 따르던 밀렌 언니이든! 누구든 만나서 행복하게 살란 말야, 이 멍청아아아!!”

목이 터져라 외친 후,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오열하기 시작했다.

돌바닥에 그녀의 눈물이 고이며 만들어진 웅덩이에, 무릎이 젖어가는 게 느껴졌다.

온 몸을 떨며 울음을 터뜨리면서도, 내 손을 잡은 채 놓지 않는 그녀를, 조용히 품 안에 담았다.

또 다른 감정으로 두 눈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며, 나는 눈을 감았다.

아아……

이건 착각이 아니야.

그녀는……

“내가 있으면, 불행해질 뿐이야……. 그러면 안 되잖아……. 너는, 행복해져야, 한단 말야……. 그러려면, 흐윽, 떨어져야 한다고…….”

“……”

“놔……, 저리 가아……. 흐윽, 우으읏……! 떨어져야……하는데……!”

“메린…….”

“싫어…… 싫어어…… 떨어지기, 싫어……! 쭉, 같이 있고 싶어……!”

매달리듯이 내 등에 팔을 두르는 그녀를 더욱 깊이 끌어안으며,

“……나도 사랑해.”

속삭이듯이, 그녀의 마음에 답했다.

“사랑해, 메린.”

목놓아 울기 시작한 그녀의 등을 토닥이는 내 얼굴엔, 눈물 젖은 웃음이 떠올라왔다.

……아아, 평생 받을 수 없으리라 여긴 그녀의 마음을, 이렇게 받았다.

바라는 것조차 과분한 기적이 내려왔다.

이제, 더 바랄 것은 없어……!

그녀와 함께 있자.

두세 달이든, 일주일이든 같이 힘껏 살고 죽는 거야.

……끝까지, 함께 하는 거야.

테라스를 고요히 내려다보는 달을 바라보며, 그렇게 굳게 다짐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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