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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248화 (248/475)

〈 248화 〉 239화 : 생각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바라는 대로…… (1)

* * *

동굴이란 어떠한 곳인가?

대개 사방이 딱딱한 바위로 되어 있는 곳이며, 바깥보다 공간이 엄청나게 좁은 곳을 말한다.

그래서 아무리 소리를 작게 내더라도, 그 소리가 귀 바로 근처에 울리는 탓에, 평소보다 굉장히 크게 들리게 된다.

그리고 그런 곳의 바닥을, 지금 발굽 열 넷이 마구 두들기고 있었다.

딱다다닥다다닥다다다

“……….”

나도 알아. 이 미로는 입구에 비하면 굉장히 좋은 환경이지.

무려 두 사람과 말 두 필이 나란히 걸을 수 있을 정도로 넓고, 내가 힘껏 야광석등을 던져야 겨우 천장이 보일 정도로 높으니까.

그래도 동굴이야!

동굴인 건 변하지 않아!

사방이 뻥 뚫린 바깥에 비하면 더럽게 시끄럽다고!!

이런 망할! 누구야, 여기 말 끌고 오자고 한 거?!

누구긴 누구야, 카엘, 바로 너지, 이 멍청아!

그치만……!

그치만 어쩔 수 없었는걸!

거기서 말을 두고 왔다간 잃어버릴 것 같은 예감이 팍팍 들었는걸!

게다가 이 미로도 생각보다 좀 긴 것 같고!

‘참 혼자 잘 논다니까.’

시끄러!

안 그래도 귀 울려 죽겠구만, 속에서도 잡음을 내고 있네!

……아무튼 발굽 소리가 굉장히 시끄러운 탓에, 빗방울 하나 떨어지지 않는 실내에, 뭔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미로 속인데도 후드를 꽉 눌러써서 귀를 보호해야 했다.

블루벨은 아마 귀마개까지 하고 있을 거다.

나 참, 이게 대체 뭔 꼴……음, 아니야.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비록 귀는 징징 울릴 정도로 딱다닥거리긴 하지만, 내가 말을 끌고 가는 것보단 덜 시끄럽잖아.

그리고 이렇게 뭘 타고 가고 있으니 내 다리로 직접 걷지 않아도 되니 덜 피곤하고, 진행 속도도 월등히 빠르지?

“근데 역시 앉은 느낌은 말이 더 나은 거 같다.”

“엉? 떨궈 달라는겨?”

“아니, 말도 못하냐? 솔직히 네 뿔이 엄청 신경 쓰여서 불편해, 임마. 위슨은 어떻게 멀쩡히 타고 다닌대?”

물론 엘크의 뿔은 머리 옆으로 퍼져 있기 때문에, 등에 올라탄 나를 찌를 일은 없다.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그래도 이 녀석이 고개를 움직일 때마다 흠칫흠칫 놀라게 된다.

다리 몇 번 쿡 찔린 것 같기도 하고!

“그럼 내려서 걷든가.”

“싫어, 귀 아파.”

단칼에 거절해주었다.

……아니, 처음엔 물론 말을 끌면서 걸어가려 했지.

미로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말야.

하지만 처음 세 걸음을 걷자마자, 나는 곧바로 어마어마한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여덟의 신발 굽과 열 여섯의 발굽이 자아내는 천둥소리를, 내 귀가 버틸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마침 사람이랑 짐승 각각 넷이겠다, 각자 말과 엘크를 타고서 두 명씩 두 열로 나란히 걸어가기로 한 것이었다.

“저짝이구만.”

“그래, 그래…….”

알아서 갈림길에 남겨진 표식을 읽고 걷기 시작하는 엘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나는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길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하…… 네 발 짐승이 빠른 걸음으로 장장 한 시간을 걷고 있는 것 같은데,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위슨의 표식 덕분에 길을 헤매지도 않고 있고, 심지어 전투조차 치르지 않고 있는데!

아니 이거 대체 얼마나 긴 거야?

나는 엘크의 등에 축 늘어지며 물었다.

“……야, 위슨이랑 아직도 연락 안 되냐?”

“안 돼. ……근디 형씨, 지금 걷고 있는 건 나잉께 말여. 뻗어도 내가 뻗어야 되는 거 아녀? 왜 형씨가 뒤지려고 한디야?”

“하……. 배고파서 그런다, 임마…….”

으으, 배가 등가죽에 붙어버린 것 같아…….

지금 상태론 슬라임이 튀어나와도 제대로 못 잡을 거다.

위슨 녀석, 왜 하필 저녁 먹으려는 때에 실종되어 가지고……!

슬슬 저녁 준비하려는 즈음에 녀석이 없어졌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 때문에 동굴 맨 안쪽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 직후에 리캠 어쩌고 라는 이름의 진흙괴물이자 숲 슬라임을 잡았지?

그것도 슬링 힘껏 던져서.

그리고 그대로 물 한 모금 입에 대지 않은 채 미로에 들어섰고,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난 것이다.

어쩌면 내가 듣고 있는 이 천둥 소리는, 말과 엘크의 발굽 소리가 아니라 내 뱃속에서 울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으으…… 근데 진짜 배고파……!

빵이 아직 한두 덩이 남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거라도 뜯어먹을까……?

근데 내 배낭은 저 뒤에 있잖아.

블루벨한테 빵 던져 달라고 할까?

아니지, 메린도 빵 있잖아.

나는 엎어진 채로 고개만 옆으로 돌려서 메린을 쳐다보았다.

“메린…… 빵 좀 주라…….”

“빵? 왜, 배고프냐?”

“응…….”

“흠, 지금은 안 될 거 같은데.”

“………”

엄청나게 깊고 어두운 감정이 마구 솟구쳤다.

저 녀석이 그 사원에 남겠다고 했던 것 다음으로 크고 깊은……

……아아, 이게 나의 절망인가?

저 아래 땅 속으로 꺼져버릴 듯한 심정에 젖은 나를, 메린은 무척이나 건조한 눈으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누가 안 준댔냐? 이따가 줄 테니 좀 참아라, 등신아. 저 앞에 뭐 있단 말야.”

“엉……?”

비실비실 일어나서 앞을 내다보았지만, 내 눈에 보이는 건 엘크의 뿔에 걸어 둔 야광석등이 아직 밝히지 못한 어둠뿐이었다.

“뭐가 있다는 거야…….”

“벽이랑 문.”

“허?”

웬 문?

고개를 갸웃하는 동안, 내 눈에도 문의 형태가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커다란 문고리가 달린 나무 문인데, 뿔이 큰 엘크도 고개를 돌리지 않고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폭이 넉넉해보였다.

꼭 성벽에 달린 문 같아.

근데 이런 데에 왜 문이 달린 거지?

고개를 갸웃하며 바닥에 내리는 나를 따라, 다른 세 사람도 말에서 내려왔다.

“뭐지? 들어가도 되는 건가?”

“달리 길이 없는데, 뭐.”

“그렇긴 한데…… 야야야, 메린, 아직 열지 마, 임마! 안에 뭐가 있을 줄 알고!”

냅다 문고리를 잡으려 하는 녀석의 손을 낚아챈 후,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블루벨에게 물었다.

“블루벨, 이 안에서 무슨 소리 들려?”

“으음…… 아무 소리도 안 나는 거 같은데.”

문에 열쇠 구멍이 있는데도 엘프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다는 건, 안에 아무것도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해도 되겠지?

나는 문고리를 노리는 메린의 또 다른 손도 마저 잡아버린 다음, 이번엔 로나를 돌아보았다.

“저기, 로나………너 뭐해?”

로나는 말 옆에 서서 멀거니 천장을 바라본 채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처음에 물었을 때 돌밖에 없다고 하더니, 뭐 다른 게 보이나?

내가 두 번을 더 부른 뒤에야 그녀는 흠칫 놀란 눈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뭐 있어? 아까는 돌밖에 없다며.”

“지금도 돌밖에 없는데요……. 음, 뭔가 기묘한 기운이 떠도는 것 같아서요.”

기묘한 기운……?

혹시나 싶어 검을 뽑아보았으나, 검집 밖으로 나온 건 룬이 새겨져 있는 은빛 검신이었다.

일단 악마 관련은 아니군.

나는 검을 거둔 후, 표정을 살짝 찡그리고 있는 로나에게 말했다.

“로나, 일단은 여기 안에 들어가려고 하거든? 혹시 괜찮을지 알 수 있어?”

“흠……”

그녀는 문을 스윽스윽 만져보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문인 것 같은데요.”

“그래?”

일단 위험은 없다고 봐도 되겠군.

나는 고개를 끄덕거린 후, 은근슬쩍 손을 빼서 문고리를 잡으려는 메린을 옆으로 슬슬 밀어버렸다.

그리고 살짝 뾰로통해진 그녀에게 준비나 하라고 손짓한 다음, 그녀를 따라 나도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런 뒤 다른 손으로 문고리를 잡고, 뒤에 서 있는 다른 녀석들에게 말했다.

“연다.”

천천히, 문고리를 당기기 시작했다.

끼이이익 묵직한 소리와 함께 문이 서서히 열리는 와중에, 또 다시 배가 난리를 치는 게 들렸다.

“하…… 잔칫상이라도 짠 나타나면 좋겠다.”

“말이 되냐.”

“나도 배가 고프긴 해…….”

이 안에 위험한 게 없다면 반드시 빵 먹을 테다.

그렇게 굳게 다짐하며 문을 연 순간,

“……허?”

음식이 한껏 차려진 커다란 테이블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내가 헛것을 보고 있는 건가?

근데 굉장히 향긋한 냄새가 마구마구 풍기고 있고, 갓 구운 고기가 기름에 지글거리는 소리가 마구 들리고 있는데.

너무너무 배가 고픈 탓에, 눈코귀가 한꺼번에 맛이 간 걸까?

나는 가만히 뒤를 돌아보았다.

아마 나는 지금 메린과 블루벨, 이 두 사람과 완벽하게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겠지.

머리가 뱃속보다도 더 깔끔하게 비워져서, 말 그대로 아무 생각없이 멍하니 입만 벌리고 있는 표정.

지금 보고 있는 상황이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 말야.

“……나 있잖아, 지금 저 안에 엄청나게 큰 쇠고기 통구이 접시가 있는 게 보이거든? 그 옆엔 갓 구운 파이가 있고, 솥도 있고, 이단케이크도 있어. 나만 보이는 거 아니지?”

나랑 다른 걸 보고 있으면 어쩌지?

그런 생각이 얼핏 스쳐 지나갔지만, 다행히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 응. 나도 보여…….”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여전히 검을 손에 든 채, 나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 맞은편에는 또 다른 커다란 문이 달려 있다.

천장에는 멋들어진 샹들리에가 반짝이고 있고, 바닥에는 푹신푹신한 카펫이 깔려 있다.

테이블엔 금빛 실로 화려하게 수놓은 흰 보자기가 씌워져 있는데, 그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들이 한가득 놓여 있다.

“세상에, 말 구유도 있네.”

기가 막히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블루벨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정말로 방 안쪽에 사료가 가득 부어져 있는 구유가 보였다.

“히힝!”

“와앗!”

그러자 블루벨이 끌고 있던 내 말, 조지가 기쁜 듯이 울며 그녀의 손을 뿌리치더니, 곧바로 구유에 뛰어가서 대가리를 처박았다!

……저 놈도 배고팠구나.

픽 쓰러지지 않는 걸 보니, 일단 저 사료는 괜찮은가보군.

“너도 가서 먹어.”

엘크의 등을 툭툭 두드리며 말해주자, 그는 고개를 살짝 까닥이더니 다른 말 두 마리와 함께 구유로 가서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이 요리들인데……

쇠고기 통구이에 생크림케이크, 파이, 그리고 건더기가 듬뿍 들어간 스튜가 한 솥 가득 있다.

그 외에도 양고기 꼬치구이에 생선찜에 훈제 닭구이에……

포도주가 가득 들어 있는 디캔터까지 있다.

“이거 진짜 잔칫상인데……?”

뭐지? 신께서 굶어 죽어가는 나를 불쌍히 여기신 건가?

아니면 누군가가 우릴 엿보고 있다가, 우리가 여기에 오는 때에 맞추어서 음식을 차린 건…… 전혀 말이 안 되는데?

창조주의 기적이라고 하는 게 훨씬 낫겠군.

“……이거 먹어도 되나?”

배가 엄청나게 고프긴 하지만, 뜬금없이 나타난 진수성찬에 곧바로 손을 뻗을 정도로 이성을 잃진 않았다.

냄새는 무지하게 좋고, 보기에도 엄청나게 맛있어 보여서 침이 흘러 넘치기 직전이지만, 안전을 생각하면 손을 안 대는 게 가장 낫겠지.

으으…… 이 진수성찬을 앞에 두고 마른 빵이나 뜯어먹어야 하는 건가?

왠지 다른 종류의 절망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런 내 귀에, 그새 스튜 한 스푼을 떠 먹은 로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음…… 독은 없는 것 같아요.”

“……!”

나도 모르게 로나를 향해 홱 고개를 돌렸다.

독이 없다고? 그럼 먹어도 되는 거 아냐? 응?

먹어도 되는 거지?!

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

간절함을 한껏 담은 내 시선에, 로나는 헤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이상한 느낌도 들지 않으니 먹어도 될 것 같아요. 아, 그래도 혹시 모르니, 제가 축복기도를 올린 다음에 드시죠.”

“오, 주여, 감사합니다……!”

로나가 테이블 위에 손을 펼치고 기도를 올리는 것과 별개로, 나는 곧장 바닥에 엎드려서 감사 기도를 올렸다.

흑흑, 그래도 신께서 나를 돌보긴 하시는구나.

물론 이 잔칫상이 어떤 함정이나 계략일 수도 있지만 그딴 게 지금 대수냐, 배고파 죽겠는데!!

잠시 후 시작된 저녁식사는, 그야말로 감격과 감탄과 경탄이 어우러진 최고의 순간이었다.

입맛에 맞지 않은 요리는 단 하나도 없었고, 심지어 와인마저도 무척이나 향기로웠다.

배가 엄청나게 고팠던 덕택일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 무도회에서 먹었던 화려한 음식들보다도 훨씬 맛이 있었다!

“근데 진짜 이거 누가 차린 걸까?”

크림과 생딸기가 가득 들어간 케이크를 크게 덜어 메린 앞에 놓으며 의문을 던지자, 그녀가 차를 가득 따른 잔을 내 쪽으로 밀며 어깨를 으쓱였다.

“보통 사람이 아닌 건 분명해.”

“그야 그렇겠지.”

이 방 안에는 부엌이 없다.

그런데도, 막 화덕에서 꺼낸 것처럼 김이 펄펄 나는 상태로 요리들이 차려져 있었다.

약간 식어서 뜨끈한 게 아니라, 조심히 먹지 않으면 입이 홀라당 다 델 정도로 뜨거운 상태였던 것이다.

물론 사람의 손으로도 할 수 있다. 일손이 엄청 필요해서 그렇지.

그러나 블루벨은 분명히 말했다. 안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

사람들이 일을 마치고 일제히 사라져버린 게 아닌 한, 발소리 하나도 내지 않고 떠나는 건 불가능하다.

……무엇보다도 수상한 건, 딱 네 명분으로 상이 차려져 있었다는 것이다.

방 안쪽의 구유도, 딱 네 마리 몫이 준비되어 있었고.

“……진짜로 누가 우릴 보고 있는 건가?”

보고 있다면, 대체 어디서 어떻게……?

왜……?

아직 온기가 남은 사과푸딩 한 조각을 메린 앞에 두면서 중얼거리자, 블루벨이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

“이 미로 자체가 수상한걸? 물기가 덜 마른 뼈다귀들은 여럿 굴러다니는데, 정작 그걸 만든 몬스터는 하나도 없어. 게다가…… 느낌도 좀 그렇고.”

“느낌이라니?”

아까 로나도 기묘한 느낌이 든다고 했던 것 같은데, 비슷한 종류인가?

버터크림파이를 잘라 메린의 접시에 놓으며 되묻자, 블루벨이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대답했다.

“무어라 콕 집어서 말할 순 없는데……. 뭔가 기묘한 흐름이 느껴져. 지난번에 귀인을 불렀던 동굴 기억나?”

“귀인…… 아, 천사? 천사를 불렀던 그 동굴 말하는 거지? 물이 막 둘러쳐져 있던…….”

“응, 거기. 거기보다 약하긴 한데, 조금 더 탁한 공기가 차 있는 느낌이야.”

음, 모르겠어.

그치만 난 일반인이라서 아무 느낌도 안 드는걸.

동굴이라서 약간 습하다는 것만 느껴질 뿐이다.

나는 젤리푸딩을 두 접시 덜어서 하나를 메린 앞에 두고, 다른 하나를 내 자리에 두며 물었다.

“로나, 너도 같은 느낌이야?”

“비슷한데요……. 으음, 아직 확실하지 않아서요. 하나만 더 확인하면 될 거 같은데 말이죠…….”

무언가 짐작이 가는 게 있긴 한 모양이군.

흠, 사실 여기가 저승으로 가는 길목이고, 우리가 먹은 것도 저승의 음식이었다는 해괴한 결말만 아니면 좋겠는데.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치즈케이크 한 조각을 메린 앞에 두자, 맞은편에 앉은 블루벨이 질색해하는 얼굴로 말했다.

“아니, 너 대체 걔 앞에만 지금 몇 접시를 두는 거야? 말 안 하려 했는데 진짜 끝이 없네?!”

“엉? 왜, 댁도 뭐 덜어줘? 진작 말하지. 딸기케이크 줄까?”

“아니거든?! 메린이 아무리 힘을 엄청 쓰는 애라 해도 그렇지, 그걸 혼자서 다 어떻게 먹는다고…………엥?”

끝소리가 벙벙한 걸 보니, 그녀도 본 모양이다.

감동 따위 조금도 안 한 것 같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벌써 내가 건네준 후식들의 절반을 먹어치운 메린의 모습을……!

나는 스콘 몇 개를 집어 메린과 내 접시에 나눠 담고 어깨를 으쓱였다.

“얘 후식에 환장해.”

따로 안 덜어주면 혼자 다 처먹어버릴 정도로 말이지.

그런데도 충치 하나 없다니 완전 사기야, 사기.

아트라토스의 그릇은 충치도 면역인 모양이다.

“그래……, 그런 것 같네…….”

머나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눈으로 중얼거린 후, 블루벨은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화려하고도 푸짐한 저녁식사 후, 다시 떠날 채비를 하는 내 팔을 쿡쿡 찌르면서 로나가 물었다.

“카엘 님, 혹시 말이에요. 이게 함정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엉?”

뜬금없네…….

뭐, 먹을 거 실컷 다 먹었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잔칫상 자체가 함정일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좋겠지.

먹기 전에 로나가 기도를 올렸으니, 독에 걸릴 가능성은 아예 없을 거고.

그래도 이게 함정이라면……

“음, 우리가 신나게 먹는 동안, 바깥에 자신의 부하들을 쫙 늘어놓았겠지.”

신비한 힘으로 이런 진수성찬을 순식간에 준비할 수 있는 자이니……

사람이 아닌 걸 부하로 두겠지?

“예를 들면요?”

“글쎄…… 일단은 동굴이니까…… 가고일?”

“가고일……. 흠, 그럴싸하네요. 그럭저럭 지능도 있으니까요. 날아다니니까 귀찮고.”

이따금 불을 뿜는 놈도 있으니, 이런 좁은 곳에서는 특히나 상대하기 번거로울 터.

그보다 더 성가시다 못해 치가 떨린다는 놈은 따로 있지만, 이런 데에 있을 것 같진 않아서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그 밖에는 뭐, 거미나 이런 걸 풀어놓지 않을까?”

“흠흠, 그렇군요. 가고일에 거미라, 괜찮은데요?”

“………괜찮다니 뭐가?”

“적당히 상대하기 괜찮잖아요.”

“……아, 그래.”

오오, 다행이다.

귀여워서 좋다는 소리가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야!

올해 우리 고향 마을의 봄맞이축제에 거미가 마스코트가 뽑혀서 진짜 정신 나가는 줄 알았는데!

세상에, 그 눈 많고 다리 많은 게 어디가 귀엽다는 거야?

내 고향이지만 진짜 돌아버린 것 같아.

아무튼 그런 이유로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나머지 세 사람이 출발할 준비를 마친 것을 확인한 후, 입구 반대편에 있던 문의 문고리를 잡았다.

……하하, 진짜로 가고일에 거미가 쫙 깔려 있진 않겠지.

로나 녀석, 뜬금없이 왜 그 소리를 해서 괜히 신경 쓰이게 하는 거야?

홀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후, 힘차게 문고리를 당겨 문을 열었다.

“키리리리리릭…….”

“그우우우…….”

“………”

반쯤 열린 틈으로 보인 바깥엔, 가고일과 거미 떼가 통로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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