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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259화 (259/475)

〈 259화 〉 250화 : 경계를 넘은 자 (2)

* * *

마법으로 초월적인 존재가 된 유일한 사람.

그게 누구인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최초의 마법사이자, 부엉이탑의 마법사들이 어머니로 모시던 대현자 마일린이겠지.

……딴 사람 몸에 들어간 지금도 여전히 그 영역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관장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 경지에 도달하기 전에 멈춰 버려요. 끝까지 필멸자로서 남기를 바라는 것 같더군요.”

……마치 그 경계 너머를 마주하기가 두렵다는 듯이, 역대 관장들은 모두 일정 경지에 오르게 되면, 위를 보고 있던 시선을 내려 아래를 살폈다.

마법의 길을 막 걷기 시작한 자들을 돌보고, 어떠한 벽에 막혀 나아가지 못하는 자들에게 조언하는 등, 후학을 기르는 데에 전념했다.

그런 그들의 시선이 다시 위를 향하는 일은 없었다고 말하며, 관장은 조용히 찻잔을 한 번 기울였다.

“옛날엔 그게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직접 경계를 넘고 나니 이해가 되더군요. 필멸자의 경계를 넘어버리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세상에 간섭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었어요.”

“간섭…이요?”

되묻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관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 마법이 완성된 순간, 저와 사서들 일부는 ‘장서관’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게 됐어요. 참 곤란하게도 말이에요.”

“왜요?”

“저야 모르죠. 천상에 계신 분들의 생각을 어떻게 알겠어요? 단순히 성별을 바꾸었을 뿐인데, 그 때문에 영원히 죽지도 못하고 이곳에 갇히다니……. 참 너무하지 않아요?”

“타당하다고 보는데요.”

관장의 투덜거림에 정면으로 맞선 것은, 역시나 로나였다.

그녀는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앉은 채, 살짝 얼굴이 경직되어 있는 관장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타당하다니, 대체 어디가……”

“적어도 당신에 대한 징벌은 굉장히 타당하네요. 거짓말쟁이 마법사님.”

웃음기 하나 없는 무감정한 잿빛 눈동자에, 일순 날카로운 빛이 감돌았다.

“여자가 된 순간에 비인간으로 판정됐다고요? 성별전환 마법을 완성한 순간에 여기 갇혔다고요? 거짓말 마세요, 오이스 관장. 다른 사람 눈은 속여도, 저는 못 속여요.”

전투사제인 로나는 거짓말을 알아차릴 수 있다.

‘거짓을 말한다’는 죄 때문에 영혼이 상처를 입고, 그로 인해 부패하는 냄새를 맡을 수 있다…고 했던 것 같다.

아무튼, 로나는 관장의 그 두 말에 거짓이라는 판정을 내렸다.

그렇다는 건……!

“성별을 바꿀 수 있는데도 인간이라고? 아니 뭔 판정이 그래?!”

자유자재로 성별을 바꿀 수 있는데 어떻게 인간이야?!

불가능한 걸 이룩했으니 인간을 벗어난 초월적인 존재인 거잖아!

세상에 자신의 성별을 바꿀 수 있는 존재가 어디 있다고!

기가 막혀서 따지자, 위슨이 살짝 손을 흔들어 내 주의를 끌더니 말을 꺼냈다.

“너 개구리 알지?”

“어.”

“걔네 가끔 지들끼리 성별 바꿔서 알 깐다.”

“?!?!”

그다지 알고 싶지 않은 지식이 늘었다!

충격에 빠져서 멍하니 입을 살짝 벌리고 있자, 메린이 그 틈으로 버터 비스킷을 하나 밀어넣었다.

……이 녀석은 내가 입만 벌리고 있으면 뭘 자꾸 집어넣네.

보면 뭔가 넣고 싶어지나?

과자를 우물거리면서 그녀를 빤히 쳐다보자, 왜 보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어이가 없네.

보복으로 그녀가 과자를 먹으려고 할 때, 그걸 낚아채고 입에 손수 넣어준 후 턱을 닫아주었다.

“근데 왜 거짓말을 하신 거죠?”

옆에서 쏘아대는 뚱한 시선을 무시하며 관장에게 물었다.

그러자 오이스 관장은 굳은 표정으로 시선을 내리깐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거짓말이 아니에요. 저는,”

“본명 오이스 이스터, 수도 근방의 작은 마을 잡화상의 아들. 여자를 멀리하는 모습으로 ‘성직자’라는 별칭을 가진 자.”

“……!”

무자비할 정도로 딱딱한 말투가 로나의 입에서 흘러나와, 관장실 안에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관장의 굳은 표정을 꿰뚫듯이 바라보는 붉은 사제의 두 눈동자는, 어느새 금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놀라셨나요? 저는 창조주의 검, 5798번째 전투사제 로나입니다. 이곳에 한해, 당신에 대한 정보는 곧바로 얻을 수 있어요. 그러니 돼먹잖은 짓은 그만두시죠.”

“……”

“우리는 당신의 시답잖은 연극에 어울려주러 온 게 아니에요. 이곳에 있는 정보를 얻으러 왔죠. 그러니 이쯤에서 본론으로 들어가는 게 어떨까 하네요. 이 이상은 서로 껄끄러워지기만 할 테니까요.”

로나의 말투는 끝까지 높낮이 하나 없이 평탄했다.

게시판에 걸린 공고문을 읽는 듯한 담담한 목소리였는데, 관장에게는 어떤 선고처럼 들렸던 모양이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다 못해 아예 하얘져 있었다.

그 상태로 얼마간 굳어 있던 관장은, 속에 켜켜이 쌓였던 무언가를 토해내듯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뒤,

“윗분들은 이게 문제라니까요? 나 참, 분위기를 깨는 것도 정도가 있지.”

삐딱하게 앉으며 투덜거렸다!

조금 전까지 감돌고 있던 나긋나긋한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채, 관장은 비스킷 가루가 묻은 손가락을 핥으며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일순 느껴진 그윽한 눈길에, 나도 모르게 시선을 돌려버렸다.

“우후후, 정말정말 아까워요! 간만에 즐길 수 있을까 했는데 말이에요.”

“밤 상대는 다른 사서들에게나 요청하시죠. 당신의 앞에 있는 이 자는 용사입니다. 손댈 생각 마세요.”

“어머, 무서워라. 물론 해를 끼칠 생각은 없어요. 그랬다가는 ‘용사의 적’이 되어서 결국 소멸될 게 뻔하니까요. 잠시 즐기고 싶었을 뿐이에요.”

가늘게 뜬 눈으로 한가득 미소를 지으며, 관장은 자신의 입술을 슥 핥았다.

“몸만 여자인 남자를 안으면서 느낄 혼란, 동정심이라 해도 다른 여자를 안아버린 것에 대한 죄책감, 거기서 느낀 쾌락으로 인해 생겨나는 ‘사랑’에 대한 회의감…….

후후, 용사님은 성실하신 만큼 그런 감정들을 듬뿍 보여주시겠죠. 이 육체에 전해질 쾌감은 물론이고요. 아~ 정말 아깝기 그지없어요!”

“………”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군.

우리를 안내하던 줄무늬 로브 남자의 표정 때문에, 나는 여기 관장이 이상한 사람일 줄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 본성을 마주한 지금, 그게 전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눈앞에 있는 이 관장은 이상한 사람이 아니다. 사악한 생물이지.

아니, 죽음에서 벗어났다고 했으니 생물도 아니야.

굳이 따지자면 악마라 해야 할 것이다.

……부엉이탑의 마법사들은, 거기 봉인되어 있던 어느 잡놈 까마귀의 농간으로 타락하여 마녀가 되었다.

혹시 이 사람도……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간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마치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말을 던지며, 관장은 키득키득 웃었다.

“천만에요! 이 마법을 만들 때의 그 마음은, 내가 품었던 사랑은 다른 누구의 손도 타지 않았답니다! 마녀 같은 열등종들과 같은 취급을 하시면 곤란해요.

그 멍청한 년들은 속아서 떨어진 거지만, 저는 스스로 내려간 거니까요. 뭐, 이렇게 마(?)가 되는 게 목표였던 건 아니지만요.”

적어도 자신이 뒤틀린 존재라는 건 인지하고 있는 듯했다.

이걸 양심적이라고 평가해줘야 하나?

“후후, 위슨 씨, 오랜만에 만난 새끼 부엉이인 당신에게, 아득히 먼 선배로서 하나 조언해드리죠.”

오이스 관장은 싱글거리는 얼굴로 위슨을 돌아보며 말했다.

“마법이 당신을 어디로 이끄는지 항상 주시하도록 하세요. 추락과 비상은 한 끗 차이니까.”

“……”

그 말을 들은 위슨은, 관장에게서 시선을 돌려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이 찻잔 속을 바라보았다.

마법으로 저 하늘 위까지 도달한 대현자 마일린과, 정반대로 심연에 잠겨버린 오이스.

마법이라는 수단으로 각각의 끝에 있는 자를 만난 거다.

여러모로 생각할 게 있긴 하겠지.

……추락과 비상은 한 끗 차이라고 관장은 말했다.

그럼 그걸 가르는 경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오이스 관장은 그걸 인지하고 있었던 걸까?

그 호기심을 한데 뭉쳐서 만든 물음은, 의외로 굉장히 단순한 것이었다.

“관장님, 당신과 마일린의 차이는 뭐죠?”

내 질문을 들은 관장은 빙그레 웃으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양 태연히 대답했다.

“그분은 사랑하는 남편과 자식을 잃고서 그대로 땅에 묻어버렸어요. 하지만 나라면 되살렸겠죠. 그 차이뿐이에요.”

“……”

그렇게 대답한 후 관장은 찻잔을 기울였다.

호로록, 찻물을 마시는 소리가 어쩐지 무겁게 방 안에 가라앉는 것 같았다.

“……?”

문득 기척이 느껴져 힐끗 시선을 옮기자, 메린이 옆에서 내 입가에 비스킷을 내밀고 있었다.

받으려고 손을 뻗으니 휙 피해버리고는, 또 다시 내 입 가까이에 내밀었다.

……뭘 하라는 건지는 살짝 감이 오긴 했는데, 갑자기 왜 이러지?

물론 메린은 눈치가 없다.

진지한 분위기에서도 작디 작은 장난을 걸어올 정도로, 주변에 신경을 쓰지 않는 녀석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갑자기, 그것도 두 손 멀쩡한 나에게 뭘 먹여주려 할 녀석은 절대 아니었는데.

하지만 내가 받아먹을 때까지 계속 비스킷을 내밀고 있을 것 같아, 나는 할 수 없이 소원대로 입을 벌려주었다.

입 안에 버터 향이 퍼지는 동시에, 주변에서 보내오는 시선으로 살짝 열이 오르는 게 느껴졌다.

“……이 상황에 뭐하는 거야?”

비스킷을 우물거리면서 툴툴대듯이 묻자, 메린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달지?”

“아니 달긴 한데……”

“가라앉을 땐 단 게 최고야.”

“………”

그렇게 말하며 비스킷을 우물거리는 그녀의 모습에, 입 안에 퍼져 있던 버터와 꿀의 맛이 순간 사라진 듯했다.

……표정이 어두워보이는 나를 북돋아주려 했다는 그 대답, 그 마음, 그리고 그녀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

그것들이 한자리에 모여, 과자 따위는 범접할 수 없는 달콤함을 내뿜고 있는 탓이다.

……미치겠네.

이 녀석, 얼마나 나를 더 빠지게 할 속셈인 거야?

차라리 이게 계략이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맞이할지도 모르는 최후를 피하려고, 메린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수작부리는 거였으면 좋겠어.

그러면 겉은 어쨌든, 속으로는 코웃음치면서 넘겨버렸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 그녀가 던져온 감정엔 그런 의도는 조금도 섞여 있지 않다.

정말로 단순하게, 순수하게 나를 위해준 것이다.

내 얼굴에 저절로 웃음이 떠올라 있는 게 그 증거라 할 수 있다.

……그냥 메린에게 푹 빠져서 그런 거 아니냐고 지적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자조하며 힐끗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의 입가에 비스킷 가루가 묻어 있는 게 보였다.

칠칠맞기는.

톡톡, 어깨를 두드려 그녀를 부른 후, 손으로 살살 털어주었다.

“한 입 깨물 때마다 손수건으로 닦는 건 안 바라는데, 그래도 닦기는 해라, 좀.”

“잔소리쟁이.”

“그게 내 일이잖아.”

투덜거리는 그녀에게 대꾸하면서 가루가 옮겨 묻은 손가락을 핥았다.

다른 사람이 없었다면…… 음, 손이 아니라 다른 걸로 닦아줬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주위가 왜 이리 조용하지?

다른 사람들을 슬쩍 둘러보자, 여전히 찻잔 속을 바라보고 있는 위슨을 제외하곤 모두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왜들 그렇게 보시죠?”

“왜냐니,”

의아한 눈을 깜빡이며 묻는 내게 대답한 건 블루벨이었다.

그녀는 조용히 차 한 모금을 마신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몰라서 묻니?”

“모르니까 묻지.”

“그렇구나…….”

“……?”

뭘 혼자 납득한 건지, 블루벨은 혼자서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고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이유 말해주려고 하던 거 아니었어?

어이가 없네.

블루벨에게 캐물으려는 순간, 정말로 땅이 꺼져버린 게 아닐까 싶은 큰 한숨 소리가 들렸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오이스 관장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버터 비스킷을 쉴 새 없이 입에 집어넣고 있었다.

그러다 꼭 술잔을 비우는 것처럼 차를 벌컥벌컥 마셔버리더니, 다시 잔을 채우면서 투덜거렸다.

“염병. 이게 벌이었구만. 여기 갇힌 건 징벌 축에도 안 끼는 거였어. 하, 빌어먹을.”

“??”

“그래서, 정보를 얻으러 오셨다고요? 뭘 찾으시나요? 뭐든 알려드릴 테니 얼른 말씀하시고 빨리 나가주세요.”

“……”

……갑자기 쌀쌀해졌네.왜지?

아까 내가 던진 질문에 대한 불쾌함이 뒤늦게 찾아오기라도 했나?

뭐, 아무튼 이걸로 진짜 본론에 들어갈 수 있겠군.

나는 조용히 심호흡을 한 후, 어째서인지 건조해진 관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저희에 대해 알고 계시니, 위슨의 상황도 어느 정도 아시겠죠. 이 녀석의 목을 고쳐야 하는데, 도와주실 수 있나요?”

“그게 왜 도움이 필요하죠?”

정말로 뜻밖이라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관장은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였다.

“물약 먹으면 되잖아요.”

“……”

뭐지? 심술 부리는 건가?

어쩌면 다른 여자들도 매달 맞이한다는 그 손님이 방문해 있는 탓에, 기분이 들쑥날쑥한 건지도 모른다!

“그걸로 됐으면 여기 왔겠냐, 등신아.”

무던한 표정으로 찻잔을 살살 돌리고 있는 위슨을 대변하듯, 테이블 위에서 비스킷을 쪼아먹던 파랑새가 톡 쏘아붙였다.

“……아하~ 그렇구나.”

무언가 알아차린 건지, 관장은 눈을 가늘게 뜨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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