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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260화 (260/475)

〈 260화 〉 251화 : 내 업적이야 (1)

* * *

쿡쿡, 손으로 입을 가리며 가볍게 웃음을 흘린 후, 오이스 관장은 검지로 입술 아래를 스윽 문지르며 말했다.

“당신, 망설이고 있군요?”

“……”

찻잔을 돌리던 위슨의 손이 우뚝 멈추었다.

그는 천천히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얼굴 가득 미소를 짓고 있는 관장을 무던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위슨은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가볍게 퉁겼다.

비스킷을 쪼아먹던 파랑새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그의 머리 위에 글자가 떠올랐다.

[상상력이 풍부하시네요,할아버지. 역시 나이는 못 속이는군요.]

“……”

………할아버지라는 단어에 강조까지 하다니.

표정은 되게 무던한데, 관장의 말이 굉장히 거슬렸던 모양이다!

후, 마침 입 안에 아무것도 없어서 망정이지.

차든 과자이든, 뭔가 들어 있었으면 엄청 시원하게 뿜었을 거야.

관장은 위슨의 말에 표정이 일그러지긴커녕, 오히려 더 환하게 웃었다.

개구리를 노리고 던진 돌에 물고기가 맞기라도 한 것처럼, 예상보다 더 큰 수확을 얻은 것을 기뻐하고 있는 듯했다.

……예감이 좋지 않아.

순순히 도와줄 생각이 없는 것 같은데, 그냥 얘기를 끊고 일어나야 되나?

“우후후훗! 네에, 나이를 먹긴 했지요! 덕분에 채 스물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의 마음 따위는 단번에 꿰뚫어볼 수 있답니다.

후후후, 할아버지라니, 후후후후……! 기껏 이 모습으로 있는데, 할머니도 아니고 할아버지라니……!”

……기뻐하는 게 아니라 울컥해하는 거였다.

역시 사람 얼굴만 보고 감정을 파악하는 건 참 어려워.

그보다 관장의 저 말은, ‘할아버지’가 아니라 ‘할머니’라고 했으면 빡치지 않았다는 뜻인 걸까?

170살이나 먹은 어떤 엘프와 달리, 자신이 나이를 많이 먹은 존재라는 걸 인정하고 있는 듯했다.

음음, 어른이군.

한참을 음울하게 웃은 후, 관장은 위슨을 향해 재차 입을 열었다.

“상상력이라고 했나요? 네에, 상상이 되네요. 눈앞에 지금 떠올라 있는 것처럼 굉장히 선명하게 말이에요.

후후, 당신도 마력을 다루는 자이니 잘 알 텐데요? 마법을 실현하는 데에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신의 마음이라는 걸.”

“……”

“당신이 쓰고 있는 그 글자마법. 굉장히 정교하게 짜여 있군요? 당신이 생각한 것이 그대로 나타나는 게 아니라, 당신이 하고자 하는 말만 골라서 띄우고 있네요.그것도 당신의 눈이 닿지 않는 머리 위에, 아무런 흔들림도 오류도 없이…….

대단한 성과에요. 분명 만들 때 무진장 애를 많이 쓰셨겠죠.”

관장은 양 팔꿈치를 테이블에 올리고 양손에 깍지를 낀 다음, 자신의 턱을 그 위에 얹었다.

……본래 남자라는 걸 알고 있어서 그런지, 관장의 그 모습을 보니 살짝 닭살이 돋으려 했다.

그녀…… 아니, 그는 여전히 미소를 거두지 않은 채 위슨을 마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 실력을 가진 것도 모자라 정령의 사랑을 받는 당신이, 마력이 철철 넘쳐 흐르는 그 땅에서 아직도 목을 고치지 못했다? 후후후, 그거야말로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그 이유는 단 하나. 당신 자신이 목이 치료되기를…… 아니, 목소리를 낼 수 있기를 바라지 않다는 것 말고 무엇이 있겠어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아뇨아뇨아뇨, 당신은 망설이고 있어요!”

쾅, 테이블을 내려치며 대꾸하는 위슨의 말을 자신의 목소리로 흩어버리며, 오이스 관장은 정말로 즐겁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푸흐흐흐! 스스로도 깨닫지 못할 정도로 아주아주 뼛속 깊이 박혀 있죠! 그 성분은 뭘까요? 본래 목소리가 이상할지도 모른다는 귀여운 염려? 앞으로는 자신이 내뱉는 말에 직접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 아니면 단순히, 당신을 키운 그 마녀에게 해코지를 당할 거라는 두려움?

후후, 후후후……! 당신은 그 마녀와 같은 상태에 빠져 있어요, 위슨 씨! 당신을 온전한 소녀로 바꾸기를 원했던 그 미친 마녀처럼 망설이고 있답니다!”

마녀의 이야기가 나온 순간, 격정으로 굳어 있던 위슨의 어깨가 서서히 풀어졌다.

그에 대해 홀로 생각하던 게 있었던 모양이다.

……솔직히 이해는 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기 자신의 목을 고치는 건데, 왜 망설이지?

그 때문에 다른 누군가가 피를 흘려야 하는 것도 아닐 텐데.

어쩌면 관장이 비아냥대듯 열거했던 이유들 때문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마지막 거, 그 미친 마녀에게 또 해코지를 당할 거라는 두려움은 정말로 있었을 테니까.

관장은 빙긋 웃으면서, 힘없이 고개를 떨군 위슨을 향해 나긋나긋이 말했다.

“……그리고 동시에, 정말로 이루어진다는 걸 믿지 못하고 있어요. 그렇죠?”

“……”

“이해해요. 신의 기적을 행사하는 사제들의 입에서 ‘고칠 수 없다’는 말을 들었잖아요. 확신이 없는 것도 당연하죠. 이해하고 말고요. 아아, 이 세상에 저만큼 그 마음을 이해하는 자는 없을 거에요!”

그 말대로, 위슨은 신전에 목을 치유할 수 있을지 물어보러 갈 때마다 고개를 젓는 걸 보아왔다.

비록 그 신전들이 하나같이 작은 곳이었다 할지라도, 아무튼 ‘목을 고칠 수 없다’는 말을 여러 번 듣고 있는 거다.

……어쩌면 그 말들은, 물안개가 옷을 적시는 것처럼 위슨의 마음에 스며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후후, 단순히 도움만 드리는 걸로는 부족할 것 같네요.

이건 어때요, 위슨 씨? 제가 그 목을 고쳐드릴게요.”

“……!”

놀라움에 가득 찬 시선들을 받는 관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일순, 무척이나 만족스러워하는 듯한 빛이 감돈 듯했다.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는 걸로 그치지 않고, 아예 목을 낫게 해주겠다.

그런 파격적인 제안을 들었으니, 위슨의 눈이 휘둥그레진 것도 당연했다.

……그러니 더더욱 내가 나서야 했다.

위슨 녀석이 아직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나는 재빨리 한 발 앞서서 입을 열었다.

“조건이 뭐죠?”

내 질문에, 오이스 관장의 눈썹이 미세하게 위로 움찔거렸다.

그는 천천히 나를 향해 눈길을 돌린 후, 고개를 살짝 기우뚱거리며 말했다.

“어머, 놀라워하거나 뛸 듯이 기뻐하실 줄 알았는데, 어쩐지 경계하시는 것 같네요?”

“세상에 대가 없이 받을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으니까요.”

뭐, 일반적인 교단 사제라면 이 말 뒤에 ‘그러나 창조주께선 아무런 대가 없이 무조건적으로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하겠지.

그런 면에서, 로나는 역시 일반적인 사제가 아니다.

내 말에 눈살을 찌푸리거나 무어라 하긴커녕, 깊이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으니까.

전투사제란 대체…….

……아무튼 무언가를 얻으려면, 무언가를 대가로 내놓아야 한다.

돈이나 물건 등의 물리적인 것이든, 아니면 시간이나 언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든, 그 무언가의 가치에 상응하는 값을 치러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적의보다 더 위험한 건 호의라고 배웠습니다. 특히나 베풀 이유가 없는 호의는 더더욱.”

“저런저런, 누구에게 그런 쌀쌀맞은 지혜를 얻으신 건지 모르겠네요.”

“저희 고향 마을이 교훈을 배우기엔 여러모로 좋은 곳이거든요.”

뭐, 정확하게는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숲이지.

지성의 유무와 상관없이, 몬스터들은 먹이감을 구하고자 여러 술수를 부린다.

요정도 그렇고.

함정을 파는 놈들, 유혹하는 놈들, 속임수를 쓰는 놈들……

그런 놈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숙지하고 있어야 하는 교훈 중 하나인 것이다.

“어쨌든 당신도 무언가 바라는 게 있으니 그런 말씀을 하신 거겠죠. 뭘 원하는 겁니까?”

“그저 어린 후배의 도움이 되고 싶을 뿐……이라고 하면요?”

“관장님 성격에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 같은데요.”

다른 사람이 고뇌하는 모습이나 속마음을 파는 걸 즐기는 사람이, ‘고맙다는 말로 충분하다’는 등의 마음을 가질 리가 있나.

대가로 더럽게 힘든 노동을 시키면 또 모를까.

내 단호한 말에, 관장은 뺨을 부풀리며 토라진 듯이 고개를 홱 돌렸다.

남자를 버리지 않았다면서 어떻게 저딴 짓을 태연하게 하는 건지 정말 알 수가 없다.

“정말 너무하시네요. 제가 그렇게 비정한 여자로 보이나요?”

“아니요. 배배 꼬여 있는 사람이죠. 애초에 사람도 아니지만.”

일단 생긴 건 여자인데다 스스로 여자라고 하고 있으니, 그 점은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내 톡 쏘아붙이는 말투에 빈정이 상한 듯, 관장의 관자놀이 부근에 작게 핏대가 서는 게 보였다.

“……후후후, 생각보다 거침이 없으시네요. 제가 당신에게 해를 끼치지 못한다는 걸 알고 그러시나본데, 그거 아세요?”

잠시 말을 끊은 후, 관장은 활짝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사명을 마친 뒤의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일개 인간일 뿐이죠. 그리고 저는 굴욕을 잊지 않는 여자랍니다. 그러니 조금은 조심하시는 게 어떨까 싶네요.”

……아, 자꾸 개기면 드래곤을 없앤 다음에 앙갚음하시겠다?

참 잔잔한 협박이로군.

나 역시 그를 향해 빙그레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하하,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해야 한다는 게 제 신조거든요. 또, 받은 건 반드시 돌려줘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고요.

지금은 제가 이 일행의 대표라서, 여기 네 명에 대한 일에 끼어들지 않을 수가 없어요. 제 일이나 마찬가지이니까요. 그러니 조건을 말씀해주세요, 오이스 관장님.”

얼토당토않은 조건을 제시한다면, 설사 그게 위슨의 목을 고칠 수 있는 확실한 길이라 할지라도 엎어버릴 생각이었다.

목소리를 되찾겠다고 그보다 더 중요한 걸 바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니까.

내 의도가 전해진 건지, 오이스 관장은 얼마간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나 참, 용사님도 눈치가 없으시네요. 원래 이런 건, 무조건 기뻐하다가 제가 ‘대신 조건이 있다’고 하면, ‘뭐든 들어주겠다’는 멍청한 대답을 하셔야 되는 건데.”

“소설을 너무 많이 보셨네요. 그래서 조건이 뭐냐니까요?”

“어차피 안 들어주실 게 뻔하지만, 뭐, 밑져야 본전이죠. 제 조건은, 제가 물약을 완성할 때까지 여기 남는 거에요.”

“안 됩니다.”

곧바로 거절해주었다.

관장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손을 내젓는 중에, 블루벨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에게 물었다.

“고민도 안 하고 바로 거절하는 거야? 적어도 얼마나 걸릴지 묻기라도 해야 되는 거 아냐?”

“하루이틀만에 나오지 않을 게 뻔한데 뭐하러 물어봐? 위슨을 여기 두고 갈 순 없어.”

“일말의 희망을 걸고 말씀드리는 건데,”

그렇게 입을 뗀 관장의 얼굴엔 밀알만큼의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끝까지 말을 꺼내려는 그 집념에 살짝 감탄했다.

“여기 ‘장서관’ 안에선 세월이 흐르지 않아요. 이 안에서 몇 년을 보내든, 바깥에선 하루도 채 지나지 않은 상태가 되죠. 그러니 잠깐 바깥에 나가 계시면, 곧 목이 고쳐진 위슨 씨를 만나시게 될 거에요.”

“안 됩니다.”

그래서 재차 딱 잘라 거절해주었다.

위슨이 여기 남아서 목을 고친다면, 이후의 여정이 더 편해질 건 자명하다.

하지만 위슨 그 자신에겐 좋지 않은 선택이겠지.

사람이길 버린 존재 옆에 남아서 뭐가 좋겠어?

목소리는 확실하게 되찾겠지만, 그 탓에 다른 중요한 걸 잃어버리게 될 거야.

일단 다른 사람의 감정을 가지고 노는 걸 즐기는 변태가 될 게 분명하다.

또, 목을 고치는 데에 몇 십 년이 걸릴 수도 있잖아.

들어갈 땐 열 다섯이었는데, 밖에 나올 땐 쉰 다섯이나 일흔 다섯일수도 있는 것이다!

안 되지, 안 돼.

목 고친다고 그 세월을 그냥 흘려버리게 둘 순 없다.

내 단호한 대답에 관장이 또 한 번 한숨을 쉬는 순간, 짤랑, 위슨이 글자를 띄울 때 울리는 방울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위슨이 머리 위에 글자를 띄운 채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카엘 형, 만약 내가 남고 싶다면 어쩔 거에요?]

“설득할 건데?”

어느 아가씨에게 신나게 했던 것처럼.

뒷말을 삼킨 채 어깨를 으쓱이자, 그는 또 다른 말을 띄웠다.

[그래도 듣지 않는다면요?]

“드래곤 잡은 다음에 가라고 해야지.”

[그래도 안 통한다면요?]

……응?

왜 이리 물고 늘어지지?

역시 좀 혹했나?

의아함에 눈을 깜빡이면서도, 나는 있는 그대로 대답해주었다.

“너네 수장한테 이를 거야. 용사 도우라고 보냈더니 딴 길로 샌다고.”

[아, 그건 좀 사양하고 싶네요.]

녀석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후, 뚱한 표정으로 비스킷을 우적거리는 관장을 돌아보았다.

[아무튼 그 제안은 사양할게요. 저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들었으니, 나머진 제가 알아서 하죠.]

“마일린에게 혼쭐나긴 싫으신가보네요.”

[네이멜이에요. 그리고 애초에 제가 그분에게 혼이 날 가능성은 전혀 없었어요.

처음부터 거절할 생각이었거든요.]

그런 말을 띄우면서 찻잔을 기울이는 그의 표정은 여전히 무던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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