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1화 〉 252화 : 내 업적이야 (2)
* * *
처음부터 거절하려고 했다.
아쉬워하는 기색은 조금도 없이 그렇게 말하는 위슨의 모습에,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왜? 내가 허락 안 할 거 같아서?”
[설마요. 형 말마따나 드래곤 물리치고 여기 오면 되는데요, 뭐. 형이랑은 상관없어요.]
“그럼 왜?”
[별 의미가 없거든요.]
빙그레 웃으며, 그는 이어서 말을 띄웠다.
[관장님이 만든 물약으로 목을 고쳐봤자, 저는 그저 목소리를 되찾을 뿐, 그 마법을 익힐 수 없을 거에요.]
“제조법이 나올 거 아냐. 근데 못 익힌다고?”
[네. 못 익혀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그의 눈엔 굳은 확신이 담겨 있었다.
[제조법대로 약을 만든다 한들, 저 스스로 그 효과를 체험할 순 없어요. 이미 목이 나아버렸으니까. 그럼 그만큼 효능에 대한 확신이 줄어들겠죠.]
설사 동일한 재료와 방법으로 물약을 만들지라도, 그는 그게 같은 효험을 낼 거라고 완전히 확신할 수 없다.
일말의 불안감을 씻어내릴 수 없다.
[왜냐하면, 저는 관장님이 아니니까요.]
혼자만의 힘으로 미친 마법을 만들고 사람의 경계를 넘어선 존재에 비하면, 그는 고작 열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애송이에 불과하니까.
아무리 자신감을 가지려 해도, ‘정말 똑같이 될까?’라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감기약이나 자양강장제과 달리, 다른 피험자를 찾기도 힘들고요.]
“야, 환자라고 해라.”
[그러니 완전히 체득하는 건 불가능할 거에요. 제 손으로 피험, 아니 환자를 만들면 또 몰라. 근데 그러긴 싫거든요.]
그렇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연구한다면, 그 끝에 어떠한 결말을 맞이할 것인가?
그 해답은 바로 눈앞에 있다.
[정확하게는, 이렇게 되기 싫네요.]
그 말을 띄우며 위슨이 향한 곳에 자리한 것은, 그가 맞이할지도 모르는 미래의 모습이 자리해 있었다.
마법을 완성하고자 하는 욕망만으로 심연에 가라앉은 자.
사람이길 저버린 형벌로서 세상과 완전히 격리된 존재.
대체 무엇 때문에 그 지경이 되도록 성별전환 마법에 목을 매게 된 건지 궁금해지는 마법사, 오이스 이스터 관장은 위슨의 말을 읽고 씨익 웃었다.
“정말로 괜찮겠어요? 당신처럼 유약한 성미로는 평생 완성하지 못할지도 모르는데.”
[그럼 어쩔 수 없는 거죠.]
“잘 생각하는 게 좋아요. 당신의 마음이 바뀌어서 여정을 마친 후에 다시 여기를 찾아온다 해도, 저는 당신을 만나지 않을 거거든요.”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오이스 관장은 여전히 미소를 거두지 않은 채 계속 말을 이었다.
“용사님처럼, 당신 역시 사명을 마친 후엔 저에게 아무 의미도 없어요. 육백 년 만에 찾아온 새끼 부엉이라는 가치도 없는 당신 따위를 내가 왜 만나겠어요?”
후후후, 어딘지 질척한 느낌이 드는 웃음을 흘리면서, 관장은 입맛을 다시듯 자신의 입술을 슬쩍 핥았다.
“만약 당신이 사서가 되어준다면…… 후후, 저와 맹약을 나눈다면 또 모르겠지만요.”
[걱정 마세요. 생각이 바뀔 일은 없을 거에요.]
무던한 표정으로 버터 비스킷 하나를 입에 넣은 후, 위슨은 관장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또 다른 말을 띄웠다.
[저도 마법을 다루는 자이니까요. 만약 신의 자비를 받는 기적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제 마법으로 소망을 이루는 기적을 따낼 거에요.]
……문득, 부엉이탑을 떠나기 전에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때가 떠올랐다.
나와 메린, 그리고 로나를 따라 여행을 나서기로 했다고 하면서, 그는 네이멜에게 들었던 말을 알려주었다.
목의 상처가 너무 오래된 탓에 약으로는 고칠 수 없으니,신의 자비를 받는 게 더 빠를 것이라 했다던가?
……마법에 불가능은 없다고 말한 장본인이, 어째서 그런 모순을 입에 올린 것일까?
오이스 관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섬에서 연구한다면 충분히 고칠 수 있었는데.
“……”
그 의문에 이어, 그가 세계를 보고 싶다는 말을 띄우며 하늘을 올려다보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 가득 차 있던 반짝임까지도.
……수장이 되기 전의 네이멜은 그의 스승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위슨의 꿈을 들은 적도 있겠지.
동경으로 한껏 빛나는 그의 눈을 보기도 했을 것이다.
그 기억들이, 마일린의 기억을 찾은 뒤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던 게 아닐까?
……아니, 분명 전부 다 기억하고 있을 거다.
내가 기억을 찾기 전의 네이멜에게 한 일도 알고 있었으니까.
즉, 네이멜은 위슨이 여행을 떠날 결심을 굳히려고 그런 모순 어린 말을 전한 것이다.
그가 꿈을 이루도록 등을 밀어준 것이다. 겸사겸사 맹약도 지키고.
뭐,‘목을 치료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말은 안 했으니, 딱히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다.
[관장님이 그런 제안을 주신 것 자체로 충분해요. 이건 제 과제이니, 제가 해결할 겁니다.]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위슨이 그렇게 선언하자,
“후후…… 우후후후……!”
관장은 어깨를 떨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거무칙칙한 분위기 하나 섞이지 않은, 진심으로 유쾌해하는 웃음이다.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하면서 한참을 웃은 후,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을 꺼냈다.
“좋아요! 아아, 바로 그 자세에요, 위슨 씨! 마녀의 손에 자란 것 치고는 제법 훌륭한 마음가짐이군요. 역시, 그래야 대현자님의 직계 제자라 할 수 있죠. 맘에 들어요.”
“……”
“후훗, 까마득히 먼 후배가 이리도 대견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선배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네요. 특별히 오늘 하루, 교습을 해드릴게요.
아, 걱정 마세요. 따로 대가를 요구하진 않을 거에요. 이건 선배로서 내리는 포상이니까요.”
아무래도 정말로 위슨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교습이 어떤 걸 말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선배를 자칭하면서 한 말이니 이상한 짓은 하지 않겠지.
대답을 구하듯이 나를 보는 관장을 향해,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본인이 좋다면 괜찮습니다.”
내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위슨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 모습을 본 관장의 눈은 한층 더 깊은 곡선을 그리며 가늘어졌다.
……이상한 짓은 안 하겠지.
흠, 그럼 우린 밖에 나가 있어야 하나?
오이스 관장은 이 안에서는 세월이 흐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니 ‘장서관’ 바깥으로 나가면 위슨이 금방 따라 나오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무심코 관장을 보았더니, 그가 위슨을 힐끗거리면서 히죽 웃고 있는 게 보였다.
“………”
여기서 묵어야겠다.
갑자기 마음을 바꿨다면서 위슨을 계속 붙잡아둘지도 몰라!
‘하루만 더’가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되는 법이니까!
“그럼 저희는 교습이 끝날 때까지 장서관 안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어머, 제가 위슨 씨를 계속 잡아두기라도 할 것 같다는 말씀으로 들리네요? 이런이런, 제가 그렇게 미덥지 못한가요?”
“뭐, 그것도 있는데요. 기왕 온 건데, 둘러보지도 못하고 나가는 건 아쉬워서요.”
내가 이곳의 정식 손님으로 초청받지 않는 이상, 내가 다시 여길 오려면 그 괴상한 미로를 통과해야 할 것이다.
절대 못하지. 암, 그렇고 말고.
즉,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방문인 것이다.
나 자신은 마법과는 아무런 연이 없지만, 그래도 견학할 수 있는 곳이 있지 않을까?
내 말에, 관장은 턱을 문지르며 잠시 생각에 잠긴 후,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뭐, 어때요. 문제가 될 것 같으면 알아서 막든가 하겠죠.”
“……?”
“후후, 물론 여기 머무셔도 돼요. 자유롭게 다니셔도 되고요. 음, 하지만 용사님이 그 모습 그대로 여길 다니시는 건 조금 위험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오이스 관장은 방긋 웃는 얼굴로 고개를 살짝 갸우뚱거리더니,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손뼉을 크게 마주쳤다.
짝, 하는 맑은 소리와 함께, 내 머리 위에 검푸른색 마법진이 나타났다!
“잠깐, 당신 뭐하려고……!”
“어머어머, 걱정 마세요~ 해를 끼치려는 게 아니니까요. 오히려 도움을 드리려는 것뿐이랍니다!”
그런 거 치고는 굉장히 즐거워하는 듯한 목소리인데 말이지?!
왠지 모르게 더 불안해지고 있어! 예감이 안 좋아!
그러나 어째서인지 자리를 벗어날 수 없다.
다리를 무언가가 꽉 붙잡고 있는 것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의자에서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는 내 머리 위로, 관장의 높다란 웃음소리가 쏟아져내렸다.
“아하하하! 소용없어요, 용사님! 이미 마법은 시동되기 시작했으니까요!”
“뜬금없이 뭐하는 거냐고요! 로나, 도와줘! 몸이 안 움직여!”
이중에서 유일하게 나를 구할 수 있는 사제님을 향한 내 간절한 외침은,
“해로운 느낌은 없으니 괜찮겠죠~ 히히, 비스킷 진짜 맛있다.”
버터 비스킷에 막혀 허망하게 흩어져버리고 말았다.
그 모습에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힌 틈을 타, 관장이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향해 손을 뻗더니,메아리가 섞인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기 시작했다.
“해와 달. 하늘과 대지.”
……저거 주문 외우는 거지?
망했다. 진짜 조졌네.
좌절과 절망으로 멍해져가는 중에, 관장이 주문을 외우는 소리가 귀로 흘러들어왔다.
“여름과 겨울. 동쪽과 서쪽. 찾으라, 뒤집으라, 덮으라.”
연주가들의 곡조를 이끄는 것처럼, 관장의 손이 허공에 물결을 그려간다.
때로는 강하게, 또는 약하게 움직이면서 무언가를 만들듯이 손짓하고 있었다.
“서쪽은 동쪽을 향하고, 겨울은 여름을 그리어, 대지가 하늘에 손을 뻗으니,
달이 해의 부름에 응해 나타나리.”
말을 맺은 후, 관장은 나를 향해 손바닥을 뻗은 다음,
“베트랜스!”
뒤집었다.
“……!”
그러자 내 머리 위에 떠 있던 마법진에서 빛이 비처럼 쏟아내리기 시작했다!
그 빛이 내 전신을 뒤덮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아무 느낌도 없네.
아니, 어디라고 말은 못하겠는데 왠지 허전한 기분이 드는 것 같기도 하다.
또 다른 곳은 약간 무거워진 것 같기도 하고?
조심스럽게 눈을 뜨자, 오이스 관장이 굉장히 만족스러워하는 얼굴로 나를 보며 방긋방긋 웃고 있다.
자연히 나머지 사람들에게 향한 내 눈에 잡힌 건, 하나같이 충격에 휩싸인 채 굳어 있는 모습.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잊은 채 아연실색해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 내가 뭔가 이상해진 모양이구나.
본능적인 깨달음에 저절로 몸이 떨리는 걸 느끼며, 천천히, 나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자,
있을 리 없는 두 개의 언덕이 봉긋 솟아올라 있었다.
“………”
어라, 이게 왜……?
더블릿을 입고서도 자기주장을 할 정도로 살이 찌진 않았을 텐데?
그보다 바로 오 분 전까지만 해도 평지였는데 말이지?
어, 그럼 이 허전한 느낌은, 설마……?
그럴 리 없다고 열띤 목소리로 부정하는 한편, 나 스스로 그게 맞다는 걸 깨닫고 미리 체념하고 있었다.
그래서 덜덜 떨리는 손이 샅에 닿으며, 오 분 전과 달리 빈 곳이 느껴지는 순간,
역시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성과 감정은 언제나 별개로 움직이는 법.
무엇이 생기고 없어진 건지 깨닫자마자, 온 몸에 피가 싹 얼어붙는 듯한 공포가 몰려오며,
“꺄아아아아아아악!!!”
태어났을 때 이래로 가장 큰 목소리가 입에서 터져나왔다.
우당탕타다다당!
의자가 구르는 소리 따위 아무래도 좋았다.
나 자신이 바닥을 구르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하찮게 느껴졌다.
왜냐면 이거 내 몸 아닌 게 분명하니까!!
근데 이 눈에 보이는 이 몸뚱이, 내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잖아!
그럼 내 몸이라는 소리인데, 아니, 그게 말이 되냐고, 이게 어떻게 내 몸이야?!
나는 남자라고!
남자가 가슴이 이렇게 나올 리가 없잖아, 다리 사이에 아무것도 없을 리가 없잖아?!
“이런 씨발, 이게 뭔 개짓거리야, 으아악, 내 목소리는 또 왜 이래?!”
“우후후후!! 성공, 대성공이네요! 아핫, 꺄하하하하!!”
“개새끼가……!!”
곧바로 테이블을 뛰어넘으며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며 웃어제끼는 놈의 얼굴에 발차기를 날린 다음, 멱살을 잡고 흔들어대었다.
“아하하하핫! 그걸로 절 어쩌진 못해요, 용사님~! 캬하하핫!”
“쳐웃지 말고 똑바로 말해, 미친 새끼야, 나한테 뭔 짓 한 거야?!”
“크히히히히, 뻔한 걸 뭘 물어요? 제 주특기 마법을 걸어드렸죠! 성~별~저언~화안~!
우훗, 우린 이제 동료랍니다♡”
“꺄아아아아악!! 당장 되돌려어어!!”
놈은 고개가 바닥에 처박히기 직전까지 흔들리면서도, 진짜 아무 영향도 없는 것처럼 마구 웃어대고 있었다.
씨발, 이걸 죽여버릴 수도 없고……!
그리고 마침내 내 팔이 지쳤을 무렵, 관장은 부드럽게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 존나 패고 싶다.
“후후후, 너무 그렇게 열내지 말아요. 정말로 도와드리려는 것뿐인걸요.”
“이게 어딜 봐서 돕는 거에요?!”
“무척이나 타당하고 합리적인 도움이죠! 용사님의 외양을 숨기려면 이게 가장 완벽한 방법이니까요!”
“지랄 마, 씨발놈아아아아!!”
자신 있게 말하는 관장에게 고함치며, 다시 놈의 고개를 흔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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