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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264화 (264/475)

〈 264화 〉 255화 : 두근두근! 설렘 가득한 견학! (3)

* * *

누가 그랬던 것 같다.

얼만큼 참담하고 암담한 비극일지라도, 저 멀리서 보면 그저 조금 소란스러운 희극에 불과하다고.

지금 나랑 클라이드의 상황이 딱 그런 거 같다.

차이가 있다면, 나는 지금 정신적으로 너덜너덜해져 있고, 클라이드는 물리적으로 처참한 상황에 처했다는 것 정도……?

보통 이럴 땐 자신이 더 힘들다고 주장하기 마련이지만, 그의 처지를 바로 옆에서 보고 있으니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음? 허허어~ 클라이드 너 이 자식, 이 선배님도 못해본 걸 감히……! 여자 둘도 아니고 넷을 데리고 다니다니, 에라, 이 건방진 놈아!”

선임 사서가 껄껄 웃으면서 등을 퍽퍽 쳐대질 않나,

“관장님한테 불려갔다고 동정한 내가 병신이지! 클라이드 이 새끼, 아주 복이 터졌구만?!”

친구 사서가 부러워죽겠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멱살을 잡고 흔들어대질 않나,

“우와, 클라이드 씨, 그렇게 안 봤는데…….”

“저게 왜 기록감이 아닌 거지? 클라이드가 여자를, 그것도 넷이나 데리고 있잖아! 이건 기록해야지!”

“클라이드 씨가…… 클라이드 씨가 여자를……. 아앗, 내……, 내 그림이……!”

지나가던 기록자들의 경멸과 흥미,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비탄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여기 유명인사인 모양이군.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심문을 받고서 지친 듯이 한숨을 쉬는 그에게 말했다.

“고생이 많으시네요.”

아직도 적응이 안 되는 목소리에 얼굴을 찌푸리는 나를 무척이나 안쓰럽게 바라보며, 클라이드는 고개를 저었다.

“당신에 비해선 아무것도 아니죠. 저는 제 자신 그대로이니까요.”

“………”

그래, 씨발, 역시 내가 더 불행하지!

솔직히 이 사람은 아무것도 잃은 게 없잖아!

하지만 나는……!

크흑……!

아아, 다리 쪽에서 느껴지는 이 공허감과 상실감이란…….

시간이 좀 지났음에도 여전히 내 가슴 속까지 시리는 것 같다.

그러면서 겉부분은 또 더럽게 답답하고 말야!

메린 녀석은 자신에 비해선 덜 싸매고 덜 세게 묶은 거라고 했지만, 원래 아무것도 안 했던 가슴에 뭐가 묶여 있으니까 심각하게 불편하다.

으으으, 그러니까 메린은 평소에 이거보다 훨씬 더 꽉 싸매고 다닌다는 거지?

그래서 가슴이 거의 평지나 다름없는 블루벨을 부러워했던 거구나.

이제야 이해가 될 것 같다.

근데 씨발, 이딴 거 평생 이해하고 싶지 않았어!

……아무튼 그런 암울한 상태로 클라이드를 따라, 장서관의 최중요시설이자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서고’를 둘러보는 중이었다.

그의 마법으로 두둥실, 공중에 뜬 상태로.

“일반적인 사서는 책의 관리가 주 업무이지만, 저희는 다릅니다. 실시간으로 생겨나는 책을 서가에 꽂고, 손님에게 꺼내드리고, 다시 정리하는 게 일이죠.남는 시간엔 각자 연구하고요.

일부는 연구에 치중하느라 사서 일을 소홀히하고 있어서 좀 그렇지만요.”

그렇게 말하며 그가 슬쩍 가리킨 곳엔, 사서 한 명이 주변에 여러 책을 둥실 띄운 채 책꽂이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러다 찾던 걸 발견했는지 손짓으로 책을 꺼낸 뒤, 책들과 함께 그대로 뿅 사라져버렸다.

그 외에도 이곳저곳에 비슷한 행색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둥실둥실 돌아다니고 있다.

아까 저 아래 바닥에서 올려다봤을 때 얼핏 보이던 점들은, 전부 손님을 위해 책을 꺼내거나 정리 중이던 사서들이었던 모양이었다.

“마법사…… 아니, 사서들도 마법 재능이 있는 사람에게 초대장을 보내서 오는 건가요?”

“예전엔 그랬죠. 지금은 충원하고 있지 않아요.”

허?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없다고?

아무리 마법사가 일반인보다 오래 산다지만, 결국은 수명이 다해 죽을 운명인 건 매한가지일 텐데……?

……아, 맞다.

그 관장 놈이 그랬지?여긴 세월이 흐르지 않는다고.

그럼 늙어 죽을 일은 없겠네.

그러나 내 말을 들은 클라이드의 눈이 의아함으로 차오르는 것을 보고,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세월이 흐르지 않는다고요? 누가 그래요?”

“여기 우두머리요.”

“하아아아………….”

피로가 잔뜩 느껴지는 긴긴 한숨 후, 클라이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관장님 특기가 빛을 발했군요. 그 준악마는 말을 잘 꼬아서 하거든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곳도 세월에 영향을 받습니다. 장서관 내부의 하루는 바깥의 하루와 같아요.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새끼 부엉이가 육백 년 만에 찾아왔다’는 말을 할 수 있겠어요?”

“허? 그럼 그 새, 음, 그 분이 거짓말을 한 건가요?”

“그건 또 아니라는 게 골치가 아프죠.”

재차 한숨을 쉰 후, 그는 무척이나 씁쓸하고 떫은 미소를 지었다.

“관장실이 있는 그 복도 기억하시죠? 그 공간 내부에선 세월이 흐르지 않습니다. 그곳에서 십 년을 지냈더라도 여기선 단 하루만 흘렀을 수도 있고, 거기서 한 시간만 앉아 있다 나왔는데 바깥은 십 년이 지나 있을 수 있죠.

관장님은 그런 거 재미없으시다면서, 다른 사람이 방에 있을 때엔 바깥과 시간이 동일하게 흐르도록 동기화시키고 계시지만요.”

……즉, 내가 가끔 로나에게 하는 것처럼 ‘거짓말은 아니지만 제대로 다 이야기하지도 않는 것’을 시전한 거군?

젠장, 그럼 다른 것도 하나하나 다시 따져봐야 하잖아!

하, 아무튼 여기도 세월의 영향을 받는다는 거군.

그럼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지 않는 건 큰 문제 아닌가?

“그럼 다들 수명을 마치면 여긴 어떻게 되는 거죠? 그 관장 혼자서 운영하게 되는 건가요?”

“글쎄요……. 여기가 문을 닫진 않을 거 같은데, 적어도 관장님이 서고를 관리해서 그렇진 않을 겁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관장님은 방 밖으로 못 나오시거든요.”

“………장서관 밖으로 못 나오는 게 아니고요?”

클라이드는 다시금 나를 안쓰러운 눈으로 보며 고개를 저었다.

오이스 이스터, 이 개 같은 새끼!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그 복도 안에 있는 건 관장님과 그 직속 제자들입니다. 대죄를 지은 벌로 거기 갇혀 있죠.”

“대체 뭘 했길래……?”

“음, 동료분이 걱정되실 테니 자세한 건 말씀드리기 어렵네요. 일개 인간이 스스로 마(?)가 될 정도로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고만 말씀드리죠.

아, 걱정 마세요. 관장님은 그래도 아직 자신이 ‘사서’라는 자각이 있으신 분이니, 정말로 진지하게 동료분을 가르치고 계실 겁니다.”

그 말은 즉, 다른 자들은 그러한 자각조차 사라진 상태라는 것이다.

그게 얼마나 끔찍한 건지 일반인인 나로선 알 수 없다.

지금 이렇게 온화하게 이야기하는 클라이드가 신경질을 마구 부렸었다는 거에서 어느 정도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지.

“그럼 여기에 그 기록도 있나요?”

로나의 질문에 그는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있죠. 관장님의 대죄는 장서관이 이렇게 변모한 시작점이니까요. 하지만 그다지 권장하고 싶진 않네요. 읽고 나서 며칠간 꿈자리가 사납더라고요.”

“변모…… 원래는 이런 곳이 아니었나요?”

“구조는 비슷하지만, 서고엔 마법에 대한 책밖에 없었어요. 이론서, 주문이나 의식을 정리한 책, 약초도감이나 곤충도감 등등이 있었지, 지금처럼 뭐든지 있진 않았죠. 천장도 잘 보였고요.”

그러나 관장 놈과 그 제자들이 대죄를 저지른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서고엔 마법뿐 아니라 역사나 철학 같은 전문분야부터 시골 할머니의 닭고기 수프 요리법까지, 온갖 지식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온갖 지식이자, 세상의 모든 지식을 보관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범위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뿐 아니라 까마득히 먼 과거와 미래도 들어 있으며, 심지어 우리가 범접할 수 없는 차원까지도 포함하고 있었다.

“차원…이요……?”

“뭐, 간단히 말하면 이계의 지식입니다. 이 세계의 주민은 열람할 수 없어요. 음…… 읽고 싶어도 존재 자체를 모르니 찾을 수도 없겠네요.”

그럼 이 세계의 주민이 아닌 존재는 읽을 수 있다는 거군?

또, 그런 괴상망측한 존재들이 손님으로 찾아온다는 거고.

근데 정작 이 장서관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우리 세계의 주민들은 이곳을 모른다.

산맥 깊은 곳에 있는데다, 그런 위험한 덫까지 깔려 있으니 찾아오고 싶어도 찾아올 수 없고 말야.

아니 손님 가려받는 것도 아니고…….

“그럼 서고는 이쯤으로 하고, 다른 곳으로 갈까요?”

그가 양손으로 원을 그리고 아래로 긋자, 공중에 떠 있던 몸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미로도 그렇고, 역시 마법은 굉장하다.

“아, 맞다.”

다시 땅에 발을 디딘 순간, 나는 문득 떠오른 것을 그에게 말했다.

“저희가 요 밖에 있는 미로에서 이것저것 했는데 괜찮나요?”

“네? 미로? ……………허? 설마 정문 앞에 설치했던 덫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정문이라니 그럼 뒷문도 있다는 건가, 그딴 덫은 정문이 아니라 뒷문에 둬야 하는 거 아닌가 등등, 순식간에 떠오르는 여러 독한 말들을 삼켜버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클라이드의 눈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거길 통과해서 오신 거에요?! 말도 안 돼, 대체 뭐하시는 분들이세요?!”

“……여행 다니죠.”

그 외엔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보다 이제 슬슬 목소리가 적응이 된 것 같아.

제기랄.

클라이드는 기가 막히다는 듯이 고개를 젓다가, 무언가 떠올랐는지 별안간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 새끼 부엉이가 있었죠. 그럼 구조를 알았을 테니 통과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긴 한데, 그래도 대단하시네요. 다섯 분 모두 멀쩡하게 여기까지 오시다니.”

“예에, 뭐, 이 녀석들이 좀 특이해서요. 아무튼 거기 입구라고 해야 하나? 동굴 맨 안쪽에 있던 바위 부숴버렸는데 괜찮나요? 그리고…… 그 부엉이 녀석이 길 알려준다고 마력이랬나? 뭐 그걸로 표식 새기고 그랬는데.”

예로부터 ‘매도 빨리 맞는 게 낫다’고 했다.

여기가 적진이 아닌 걸 안 이상, 우리가 잘못을 저질렀다면 얼른 자백하고 수습해야 한다.

괜히 숨겼다가 나중에 일이 커지면 몇 배로 골치 아프니까.

다행히 클라이드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무던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 문제없습니다. 그 덫은 침입자의 두려움을 겨냥한 것이니까요. 그 표식이 오히려 더 큰 덫이 될 수도 있죠.

바위는…… 음, 사실 필요없는 건데, 설계자가 ‘길이 막힌 줄 알았는데 갑자기 바위가 움직여서 알 수 없는 공간으로 떨어지는 거 못 참지’라면서 끼워 둔 거니 신경 쓰지 마세요.”

애초에 그 동굴도 마법 영역 안에 있으니, 누군가가 ‘길이 막혔을 것’이라 생각하면 알아서 막힐 것이다.

그는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그렇게 덧붙였다.

……어쨌든 그냥 내버려둬도 된다는 거군.

휴우, 별 것 아니어서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클라이드를 따라 서고를 나서는데,

덥썩.

“……”

갑자기 메린이 팔짱을 걸어왔다.

팔을 감싸는 뭉클한 느낌에 흠칫 놀라며 녀석을 쳐다보자, 오히려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의아스럽게 바라보았다.

……미치겠네.이 녀석이 아까부터 왜 이러지?

클라이드의 안내를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계속 팔짱을 걸어오고 있다!

하필이면 이 녀석이 ‘여기선 안 싸우겠지’라면서 가슴을 꽉꽉 싸매던 속옷을 고쳐 입은 지금……!

덕분에 팔은 굉장히 호강하고 있지만, 내 머리는 열이 식을 줄을 모르고 있었다.

“야……, 너 오늘따라 왜 이리 들러붙냐?”

팔에서 느껴지는 포근함과 푹신함과 따스함.

평소보다도 더 가까이에 있는 주홍빛 눈동자.

코를 간지럽히는 향기.

그 탓에 심장이 마구 죄여들어서, 나는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만 겨우 낼 수 있었다.

다행히 메린은 그걸 제대로 주워들었는지, 고개를 옆으로 살짝 까닥이며 대답했다.

“여자끼리 친하면 이러는 거 아니냐?”

“아닌데.”

“엥? 예전에 어떤 언니 둘이 그러고 다니길래 물어보니까, 엄청 친해서 그런 거라고 했었는데?”

“………”

세상에, 우리 마을에 동성애자가 있었다니……!

아버지 심부름으로 술집에 맥주 사러 자주 갔었는데, 그런 소문은 단 한 번도 못 들었는데 말이지?!

우와, 누구인지 몰라도 엄청 꼭꼭 숨어 있나보네!

뭐, 교단에서 금지하고 있진 않으니 들킨다고 신전에 끌려가진 않는다.

그저 마을에서 추방되거나 평생 손가락질 받으면서 살 뿐이지.

어쩌면 사회에서 이미 예부터 금기시하고 있기 때문에, 교단이 구태여 금기로 지정하지 않고 있을 뿐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메린이 본 건 숨은 연인이지, 엄청나게 친밀한 친구 둘이 아니다.

내 필사적인 설명을 들은 메린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엉? 그럼 더 상관없는 거 아니냐? 너랑 나 사귀잖아.”

“그, 그건 그렇지만……! 으으…… 나 지금 이런 꼴이잖아, 기분 이상하다고……!”

“흐음…… 아, 여자가 되어서 내가 가까이 있는 게…… 그래, 징그러워진 거냐? 지금은 나 안 좋아해?”

“아니, 그건 아닌데…….”

메린에 대한 내 감정은 여전하다.

아까 이 녀석에게 업혔을 때도 무척이나 편안했고, 팔짱 낀 게 싫기는커녕 오히려 내가 껴안고 싶을 정도로 좋다.

밀착한 것 때문에 여러모로 두근거려서 심장 터질 것 같은 건 물론이고.

……그런 걸 보면, 나는 여전히 그녀를 이성으로서 사랑하는 게 분명하다.

난 남자니까, 여자인 메린을 사랑하는 건 당연한 거니 이상할 거 하나 없지.

근데…… 내 몸은 지금 여자이다.

몸만 그렇게 변한 거면 모르겠는데, 지금도 눈물부터 고이려 하는 걸 보면 감성까지 어느 정도 여자가 되어 있는 게 틀림없어!

아무리 내가 겁쟁이에 감수성이 풍부하다고 해도, 쪽팔려 죽겠다는 이유로 눈물 글썽거리진 않았다고!

그런데도 나는 메린을 사랑하고, 그녀에게 두근거리고 있는 거다.

내 정신이 남자라서 그런 거라면 다행이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같은 여자로서 그녀에게 매력을 느끼는 거라면……?!

……어쩌면 ‘나는 원래 남자다’라는 기억만 남아있을 뿐, 정신까지 이미 여자가 되었을지도 몰라.

그런 가능성이 있다는 게 너무나도 무섭다.

이런 식으로 메린이 계속 나를 건드렸다간, 둘 중 어느 쪽인지 깨닫게 될 거야……!

그러니 평소처럼 조금 떨어져줬으면 하는데,

“그럼 그냥 쪽팔려서 그런 거구만, 뭐. 아무 문제없네.”

“아, 으……!”

이 녀석은 왜 더 들러붙는 건지 도대체가 알 수가 없다!

“근데 진짜 별일이야. 평소엔 손도 별로 안 잡았었으면서 지금은 찰싹 붙으려 하니 말야.”

그런 우리를, 블루벨이 못마땅하다는 눈으로 쳐다보면서 톡 쏘아붙였다.

그러자 메린이 눈을 멀뚱멀뚱 깜빡이더니,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질투하냐?”

“아니거든! 여자 둘이 찰싹 붙어있는 모양이 보기 좀 그래서 그런 거거든?!”

속삭이는 듯한 크기로 소리를 빽 지른다는 어려운 일을 해낸 블루벨에 이어,

“근데 진짜 신기하긴 해요. 혹시 지금의 카엘 님이 더 예쁘장해서 가까이 있고 싶으셔서 그런 건가요?”

로나가 방실 웃는 얼굴로 쓸데없는 말을 더하면서 물었다.

“예쁘장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감촉이 좋아서.”

“감촉이요?”

“어. 이 녀석 지금 가슴 나와 있잖아. 말랑해서 꽤 좋아. 로나 너도 해볼래?”

메린은 말을 마친 후, 로나가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그녀를 한 팔만으로 자신의 키만큼 들어올리더니, 남은 손으로 그녀와 내 팔을 얽었다.

꽈악.

“……오, 납득했어요.”

“그치?”

“납득하지 마, 새끼들아!”

작게 소리치며 팔을 비틀어 빼냈지만, 키득키득 웃는 메린에게 곧바로 다시 잡혀버렸다.

……그런 내 뒤통수에 느껴지는 두 사람 몫의 시선엔, 은은한 연민이가득 차 있었다.

서고에서 다시 커다란 홀로 나온 후, 클라이드는 잠시 멈춰 서서 턱을 문질렀다.

……필사적으로 나를 보지 않으려고 하는 그의 배려 아닌 배려가 고마운 한편, 내 처지가 너무나도 처량하게 느껴졌다.

지금 나는 메린과 로나에게 팔 하나씩 얽혀 있는 상태로, 거의 연행되다시피 하고 있으니까.

……엉덩이랑 허벅지도 부드럽고, 무엇보다 팔 자체가 말랑해서 좋다.

그딴 거지 같은 감상을 대면서 로나까지 들러붙은 것이었다!

클라이드는 블루벨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가만히 중얼거렸다.

“서고 다음엔 편찬실이나 배포실이 좋긴 한데……. 어디를 먼저 가는 게 좋을지 모르겠네요…….”

“당연히 편찬실이지!”

“우악?!”

갑자기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리면서 클라이드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누가 잡아줄 새도 없이 바닥에 엎어진 그의 등에는, 어디서 나타난 건지 모를 단발머리 여자가 다리를 꼰 채 앉아 있었다.

튜닉처럼 보이는 펑퍼짐한 웃옷에, 후드가 달린 두툼한 망토…처럼 보이는 특이한 옷을 걸치고 있다.

앞쪽에만 챙이 있는 모자, 뻣뻣해보이는 파란색 바지, 높은 굽이 달린 구두.

그야말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난생 처음 보는 독특한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낯익은 건 단 하나, 여자의 모자에 달린 날개모양 핀뿐.

심지어 머리 모양까지 특이한 탓에, 여자에게선 어떤 위화감이 강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안녕, 여러분~”

빨리 비키라고 닦달하는 클라이드의 말을 무시하며, 여자는 우리를 향해 싱긋 웃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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