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5화 〉 256화 : 두근두근! 설렘 가득한 견학! (4)
* * *
뜬금없이 나타난 새로운 인물은, 열심히 항의하고 있는 클라이드의 머리를 두 손으로 눌러버리면서 손등 위에 턱을 얹었다.
“비키라니까 뭐하는 겁니까?!”
“후후, 이 시대의 손님은 진짜 오랜만인 거 같은데? 어떻게 왔어?”
여자는 그렇게 물으면서 싱글싱글 웃는 얼굴을 바로 옆에 있던 블루벨에게 들이밀었다.
그 공세에 흠칫 놀라며, 블루벨이 어물쩍거리듯이 대답했다.
“네? 어, 정문으로 왔는데요.”
“정문? 아아, 그 미로 있다는 동굴? 오다가 좀 들었는데, 거기 뭐가 있길래 대단하다는 거야? 아무튼, 이딴 데는 뭐하러 왔니?”
“잡담하지 말고 비키라고요!”
……말만 하지 말고 그냥 떠밀어버리지.
여자에게 난폭한 짓을 할 수 없다는 신조라도 가지고 있는 걸까?
당연하게도, 여자는 클라이드의 말을 깔끔히 무시한 채 우리를 향해 싱글벙글 웃었다.
“혹시 불로불사의 영약 제조법이라도 찾으러 온 거야? 그거 이 시대에선 못 만드니까 깔끔히 포기해~ 그나저나 여자끼리 다니다니,”
“비켜요.”
신나게 재잘거리던 여자의 목소리를 뚝 잘라버리며 클라이드가 낮게 중얼거렸다.
최후통첩이라는 의도가 다분히 느껴지는 그 말투는, 관장 놈에게 하던 것만큼이나 딱딱하고 싸늘했다.
그러자 싱글거리던 여자의 표정에서 웃음이 싹 사라지더니,
“……재미없어.”
차갑게 툭 내뱉으면서 바닥에 내려와 섰다.
그런 뒤, 블루벨의 도움을 받으며 일어서는 클라이드를 무정하게 내려다보면서 또 다시 입을 열었다.
“정말 이름처럼 꽉 막히고 지겹게 지루하다니까. 기껏 내가 손수 즐거운 분위기 좀 만들어주려 했는데 눈치가 없어. 대체 이런 재수없는 동정 새끼의 어디가 좋다는 건지…….”
“다른 건 몰라도 마지막 건 확실히 부정할 수 있겠네요. 아무튼 당신 볼일이나 보러 가시죠. 손님들을 안내하는 중이라서요.”
“보면 알아, 등신아.”
진절머리 난다는 듯이 쏘아붙인 후, 여자는 다시 우리를 돌아보며 방긋 웃었다.
“있잖아, 내가 대신 여기 구경시켜줄까? 안 그래도 편찬실로 가려던 참이었거든. 저딴 재미없는 놈이랑 다니는 것보단, 여자끼리 다니는 게 훨씬 더 재미있을걸?”
나는 ‘거절하라’는 마음을 담아 블루벨을 바라보았다.
우리 중에 이 괴상한 사람을 그나마 멀쩡히 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생각 같아서는 내가 응대하고 싶었지만……, ‘여자끼리’라는 말에 울컥 솟아오르는 무언가를 막느라 그럴 겨를이 없었다.
나머지 둘은 말할 필요도 없고.
메린?
원래부터 이런 경우가 생기면 나에게 떠넘기는 녀석인 데다, 지금은 특히나 속이 끓는 걸 참느라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헤실거리느라 바쁘시다.
하, 이 녀석이 웃고 있다는 걸 나만 알아볼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빡쳐.
딴 사람들에겐 불안에 떠는 친구를 달래고 있는 걸로 보일 거 아냐!
그리고 로나는 내 손과 자기 손을 대보고 있거나 허벅지를 쿡쿡 찔러보거나 팔뚝을 꾹꾹 눌러보는 등의 추행을 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다.
이 자식이 조금만 더 키가 컸거나 사제복을 입지만 않았더라면, 곧바로 재판관에게 끌려갔을 거야.
아, 신이시여, 왜 하필 이딴 시련을 주시는 겁니까?
내 과업에 대한 시련은 그 드래곤이 있던 사원에서 끝낸 거 아니었어요?
이건 뭐죠, 추가 과제입니까, 씨발?
내 신세가 너무 한탄스러운 나머지, 저절로 한숨이 새어나왔고,
“……뭐야, 너 왜 한숨 쉬어?”
본의 아니게 괴상한 여자의 이목을 끌어버렸다!
하지만 정중하게 사과할 마음도, 그럴 기력도 없었기에, 나는 웅얼거리듯이 말을 꺼냈다.
“그쪽이랑 상관없으니 신경 끄세요…….”
“하? 그 말을 믿으라고? 너 지금 나 보고 한숨 쉰 거잖아. 씨발, 내가 모를 줄 알아? 야, 내가 우습냐? 폰도 안 터지는 시대에 사는 원시인 주제에 감히 날 깔봐?!”
“그만해요, 지금 손님에게 뭐하시는 겁니까! 당신 볼일이나 보러 가세요!”
고향 마을이 생각나는 구수한 입담이군.
여자는 기분이 좀 상한 게 아닌지, 클라이드가 붙잡는 것도 홱 뿌리치면서 나를 사납게 노려보았다.
멱살만 안 잡았을 뿐, 거의 잡아먹을 듯이 얼굴을 들이대고 있었다.
아……
오늘 참 여러모로 힘들다…….
내 처지에 속으로 한탄하며 시선을 떨구자, 여자는 자신을 무시한 걸로 받아들였는지 한층 더 성을 내기 시작했다.
“하, 이젠 말을 씹네? 흙이나 퍼먹고 다닐 촌년이, 좀 잘 대해주려 했더니 기가 막혀서……!”
“그만하시라니까요!”
“……”
……뭐? 촌년?
안 그래도 속이 끓어 뒤지겠는데, 씨발, 너 딱 걸렸어.
나는 두 아가씨에게 붙잡혀 있던 팔을 하나씩 뺀 후, 여자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러는 그쪽은 얼마나 대단하길래 같잖은 걸로 시비를 거시나요? 폰이라는 거 대신에 대가리를 터뜨려드릴까요? 아니, 혀부터 뽑아드릴까, 잡년아? 입 한 번 존나 시궁창 같네, 그게 네 길바닥 손님 취향이냐?”
“……이게 미쳤나!!”
여자가 새된 목소리로 소리치며 손을 움직이려는 순간,
“좋게 말하면 꼭 듣질 않는다니까.”
“꺅?!”
클라이드가 한숨을 쉬며 중얼거리자, 갑자기 여자의 몸이 뒤로 홱 끌어당겨졌다.
그리고는 바닥에 뻣뻣하게 선 채, 자신의 목을 붙잡으며 괴로운 듯이 얼굴을 찡그렸다.
꺽꺽 소리를 내는 걸 보아, 보이지 않는 줄 같은 걸로 목이 조이고 있는 듯했다.
“이름값은 당신이 하는 것 같군요, 밀라 클라운. 징집된 기록자 주제에 함부로 날뛰다니, 이만한 광대 짓은 또 없을 겁니다. 아무래도 목줄만으로는 부족한 모양이네요. 입마개도 채워드릴까요?”
“컥, 끄으……!”
“형기가 늘어나기 싫으시다면 얌전히 일이나 하세요.”
싸늘하게 내뱉으며 그가 손짓하자, 밀라 클라운의 몸이 제자리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그녀는 목을 감싼 채 맹렬하게 기침하면서, 자신을 차갑게 내려다보는 클라이드를 죽일 듯이 쏘아보았다.
“빌, 어먹을 새끼……! 반드시, 케흑, 죽여버리겠어……!”
“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그러시죠. 바라던 바이니.”
“큭……!”
밀라 클라운은 이를 갈면서 비틀비틀 일어난 후, 이번엔 나를 향해 고개를 홱 돌리고는 쏘아붙였다.
“너도…… 네년 얼굴 기억했으니 두고 봐……!”
“내가 뭐 어쨌다고?”
“날 창년 취급했잖아, 개년아! 풀려나기만 해봐, 이 굴욕, 반드시 갚아줄 거야! 각오하라고……!”
악을 쓰듯이 고함치면서, 그녀는 머리에 달린 날개모양 핀을 건드렸다.
그러자 아무런 전조도 없이, 갑자기 모습이 휙 사라져버렸다.
여기에 그 여자가 있었다는 게 꿈처럼 느껴질 정도로 말끔한 퇴장이었다.
“별 미친년을 다 보겠네.”
불쑥 중얼거리자, 블루벨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너랑 비슷한 수준인 거 같은데.”
“웃기고 있네. 내 어디가 저렇다는 거야?”
“맞아. 그 여자랑은 전혀 다르지.”
웬일로 메린이 내 말에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팔짱 끼는 것도 그만해줬으면 더더욱 고마울 텐데.
으으, 제기랄, 언제 도로 낀 거야?!
메린은 내가 팔을 빼려고 몸부림치는 게 재미있는지, 킥킥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 녀석이 한참 더 미쳤어. 좀만 더 있었으면 쌍욕 퍼부으면서 발차기 날렸을걸? 이 녀석 지금 엄청 짜증나 있거든.”
이런 씨발?!
배신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솟구쳐올라왔다!
“야, 이 새끼야, 그걸 알면서 지금 건들고 있냐?!”
“근데 안 징그럽다면서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거냐? ……아, 이건 낯설어서 그래? 그럼…….”
드디어 팔을 놓는가 했더니,
덥썩.
“꺄악?!”
이번엔 뒤에서 날 껴안았다!
“와~ 뭔가 푹신해.”
“야, 이거 놔, 새끼야! 다들 보는 데서 뭐하는 거야, 좀 하지 말라고!”
“부드럽고, 따뜻하고……. 끌어안는 건 여자일 때가 훨씬 좋구나~ 히히, 야, 오늘 계속 이러고 다니면 안 돼?”
“되겠냐, 씨발, 놔! 놓으라고! 차라리 팔짱을 껴라!”
“어, 그래~”
“………”
내 말대로 도로 팔짱을 끼는 메린이었다.
씨발, 내가 왜 저딴 말을 입 밖으로 내버린 걸까?
어째 이 녀석에게 당한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그럼 골칫덩이도 치웠겠다, 배포실로 먼저 가시죠.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클라이드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중앙에 놓인 계단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역시 인간의 적응력은 무시무시하군.
나는 천천히 계단을 올라가면서, 그리고 계단 때문에 내 팔을 놓고 시무룩해진 로나에게 어처구니없다는 시선을 보내며 클라이드에게 물었다.
“아까 그 밀라 클라운이라는 여자도 기록자인 거죠? 징집됐다고 하신 거 같은데, 보통과는 다른가봐요?”
“아, 네. 일반 기록자들은 권유를 받아서 일하게 됩니다. 대부분 원래부터 글을 쓰던 사람들이죠. 영혼이 지상을 떠날 때에 권유를 받는다더군요.”
“죽을 때……? 우와, 그럼 전부 유령이에요?!”
그런 거 치곤 그림자도 제대로 있었고, 바닥이나 뒷사람이 슬쩍 비쳐 보이지도 않았는데!
클라이드는 놀란 나를 향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 비슷한 걸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무튼 그들은 정식 취업한 거니, 그만두고 싶으면 언제든 그만둘 수 있고, 특별보상 같은 것도 가끔 나와요. 저희 사서들과 그럭저럭 좋은 관계를 맺기도 하고요. 결혼 같은 건 못하지만요.”
……그와 관련된 어떤 기억이라도 있는지 그의 입에 씁쓸한 웃음이 떠올랐다.
그러나 다음 말이 이어진 순간, 그의 얼굴에는 조금 전에 보였던 싸늘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하지만 퇴직이 자유로운 만큼 일손이 항상 부족한 터라, 죄인들을 징집해서 보충하고 있습니다. 본 직업이 무엇이었건 상관없이, 저지른 죄에 대한 형벌로서 기록자의 일을 하게 하는 거죠. 밀라 클라운도 그 중 하나입니다.
제가 처음부터 강하게 제압했어야 하는데……, 하, 불편하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에스트레야 씨.”
“신경 쓰지 마세요.”
미안해하는 그의 목소리에 대답한 건, 내가 아니라 메린이었다.
“이 녀석은 오히려 화풀이할 기회가 사라졌다고 아쉬워하고 있을걸요? 죄송해하실 거 없어요.”
“………”
내가 너냐?
……라고 대꾸할 수 없는 게 굉장히 원통했다.
제길, 어떻게 알았지? 이 녀석, 역시 날 너무 잘 알고 있어……!
그보다 왜 남의 말을 가로채는 거야?
어이가 없어서 녀석을 쏘아보자, 메린은 평소처럼 고개를 갸우뚱거리거나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뭐 불만 있냐고 묻는 대신, 그런 내 뺨을 쿡쿡 찌르며 실실 웃었다.
하…… 이거 하루종일 이 녀석 장난감 신세겠구만.
근데 내가 여자가 된 게 그렇게 재미있나?
내가 무슨 반응을 하든, 아니면 그냥 무시해버리든 재미있다는 듯이 히죽거리는 탓에, 나는 녀석에게 짜증을 내려고 해도 낼 수가 없었다.
속에서 울컥 솟아오르려 해도, 녀석의 웃음을 보자마자 도로 수그러들었으니까.
좋아하는 게 죄이지, 망할.
로나한테도 평소에 이랬을 거 같진 않고……
……아, 설마 여자한테 더 끌리는 성향인 건 아니겠지?
이윽고 한 층을 다 올라와 복도를 걷기 시작했고, 나는 로나에게 팔을 다시 붙잡힌 탓에 도로 울적해져서 질문을 계속할 수 없었다.
블루벨은 그런 나를 잠시 불쌍하게 쳐다본 후, 나를 대신하듯이 클라이드에게 물었다.
“형벌이 끝나면 어떻게 되는데요? 아까 그 여자는 복수할 것처럼 굴던데, 되살아나기라도 하나요?”
“설마요. 예정대로 하늘 위로 올라가서 다른 생명이 되거나, 형기 중에 심연 아래 거주자에게 영입당해서 졸개가 됩니다. 어느 쪽이든 지금의 인격은 없어져버리죠. 밀라 클라운이 한 말은 헛소리이니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
뭐, 헛소리가 아니더라도 나와는 별 상관없다.
이 얼굴은 내일이면 사라질 거니까.
그 뒤로, 우리 여섯 명 사이에 침묵이 잠시 찾아왔다.
물론 입만 다물었을 뿐, 행동은 우리를 지나치는 사람들처럼 제법 부산스러웠다.
내 옆구리를 간지럽히는 로나 녀석의 다리를 걸려는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을 무렵, 클라이드가 어느 커다란 문 앞에 서서는 나를 돌아보았다.
“그러고보니 에스트레야 씨, 그 이름, 본명이신가요?”
“네? 아뇨, 가명이에요. 제 원래 이름이…… 굉장히 남자다워서…….”
“아………”
그는 내가 관장 놈에게 뭔 짓을 당했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굉장히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왜요?”
“여기선 좀 유명한 사람 이름이거든요. 맨 처음에 기록자가 된 후로, 아직까지도 현역으로 일하는 괴짜이죠. 죄인들을 징집해서 기록자로 써먹자는 의견을 냈을 만큼 희한한 사람이에요.”
괴짜라……
‘유쾌한 사람’이라고 했던 관장 놈이 제정신 나간 놈이었으니, ‘괴짜’는 진짜 상종을 하지 않는 게 좋을 정도로 미친 성격이겠군.
나는 한숨을 쉬었다.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하하, 출장 중이니 걱정 마세요.”
그렇게 말하며, 클라이드는 문고리를 잡고 쭉 끌어당겼다.
육중한 소리와 함께 안에서 후끈한 기운이 흘러나오면서, 커다란 소각로가 여럿 놓여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각 소각로 앞에는 사서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종이를 태우고 있는데, 불 속에 종이가 던져질 때마다 뿌연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선 천장으로 죄다 빠져나가고 있었다.
“여기가 배포실입니다.”
“……”
쓰레기 소각장이겠지.
턱까지 올라온 그 말을 겨우겨우 꾹 눌러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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