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266화 (266/475)

〈 266화 〉 257화 : 두근두근! 설렘 가득한 견학! (5)

* * *

배포실.

내가 아는 ‘배포’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나눠주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는 정반대의 뜻으로 쓰고 있는 모양이다.

대강 봐도 글씨가 한가득 적혀 있는 종이들을 신나게 태우고 있으니까.

밤낮으로 소각로를 떼우는 건지, 방 안에는 어떤 조명도 달려 있지 않다.

우리가 서 있는 곳과 소각로 사이엔 거리가 꽤 있는데도, 내 얼굴에까지 후끈한 열기가 느껴지고 있다.

그럼 저 소각로는 엄청 뜨겁다는 건데, 그 바로 앞에 있는 사서들은 팔만 걷어붙인 채 종이를 집어넣고 있다.

……저것도 마법의 힘인가?

“이쪽입니다.”

클라이드는 우리를 내부의 또 다른 작은 방으로 데려갔다.

동그란 테이블에 의자 세 개가 정갈하게 놓여 있는 방인데, 벽에 달린 투명한 창 너머로 소각로와 사서들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창문의 맞은편 벽의 선반엔 깨끗해보이는 수건들이, 테이블에는 물동이와 물잔 여러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여기서 일하는 사서들을 위한 거겠지.

클라이드는 그물동이에서 물을 한 잔씩 따라 우리에게 나눠주었고, 모두들 잔을 받자마자 곧바로 입에 대고 기울였다.

시원한 물이 목구멍 안으로 넘어가면서, 은근히 배어 있던 땀들이 사악 식어가는 게 느껴졌다.

“덥죠? 저 안에선 냉기나 바람으로 열을 식힐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어요. 소각로의 불이 약해지거나 하면 안 되거든요. 대신, 가끔 이렇게 휴게실에서 물을 마시죠.”

“혹시 잿더미를 나눠준다는 의미의 배포실인가요?”

내 말에, 클라이드가 빙그레 웃었다.

“그럴 리가요. 연기를 나눠주는 곳입니다.”

“……”

“하하, 농담이 아니에요. 지금 저기서 태우고 있는 종이들은 있죠, 기록자들이 기록한 것들의 사본입니다. 저 소각로는 종이에 적힌 글자들을 연기로 바꾸고 있죠.”

그는 투명한 창 너머, 소각로들이 희뿌연 연기를 뿜어내는 모습을 가리켰다.

“천장으로 연기가 나가는 게 보이시죠? 저렇게 빠져나간 연기들은 온 세상으로 흘러가, 보이지 않는 비가 되어 세상 사람들에게 흩뿌려집니다. 설령 실내나 지하에 있더라도 그 비를 피할 수 없죠. 지금과는 다른 시대, 이곳과는 다른 차원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영락없습니다.”

“……지식과 이야기들을 비로 뿌린다고요? 그걸 맞으면 어떻게 되는데요?”

“사람이 영감을 받고, 무언가를 만들어내요. 새로운 기계장치, 새로운 도구, 새로운노래나 그림, 연극, 또는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어떤 현상과 힘, 이론 등등…… 어떠한 형태로서 결실을 맺게 됩니다. 당신이 들고 있는 물잔도 그 중 하나에요.”

자연히 물잔으로 시선이 내려갔다.

그러니까 이 물잔이 만들어진 게…… 저 소각로에 태운 어떤 종이가 보이지 않는 비가 되어서…… 그걸 맞은 누군가가 영감을 받아서 만든 거란 거지?

……그게 진짜 가능하다고?

시간대가 맞지 않는데?

“잘 믿기지 않죠?”

“네…… 여기 장서관이 생겼을 땐 이미 물잔이 있었잖아요. 근데 그게 어떻게…….”

“장서관이 마법 연구소에서 모든 지식의 보관소로 변모한 순간, 이곳은 모든 지식과 이야기의 원점이자 기원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세상에 새겨졌고, 그 때문에 보편적인 시간선에서 벗어나게 되었죠. 여러분이 이렇게 정문으로 여기 들어오는 건, 원래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그럼에도 그게 가능했던 것은, 그 문이 아직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 문틈으로 장서관 안으로 세월이 흘러 들어올 수 있도록, 일부러 문을 닫지 않고 내버려두고 있다.

클라이드는 그렇게 말하며 가만히 소각로를 바라보았다.

“왜요?”

“그래야 저희 사서들이 수명을 마칠 수 있거든요.”

그게 굉장히 기쁜 일이라는 것처럼, 그는 활짝 웃었다.

“저희에게 주어진 자비이자, 희망입니다.”

오이스 관장은 자신의 마법을 완성하기 위해 그야말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금단의 지식을 모으는 것이었고, 그 때문에 관장뿐 아니라 장서관까지 세상의 역사에 머무를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다들 읽어버렸거든요. 궁금해서.”

“……”

사서라 불리고 있지만, 그들의 본질은 세상의 비밀을 탐구하는 마법사였으니까.

새로운 지식이 보이면 일단 손을 뻗고 마는, 그런 종족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금단의 지식을 얻어버린 마법사들 역시, 본래라면 관장처럼 영구히 세상과 격리되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이 그런 지식을 얻은 건 순전히 수장을 잘못 만났기 때문이었으므로, 전능자는 그들을 벌하는 대신 제안했다.

“‘사서로서 일하라. 그 삯으로, 너희에게 영역 안에서의 자유를 허하겠다.’ 그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자유요?”

“네. 이 일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 빼면 아무런 제약이 없어요. 여전히 연구할 수 있고, 여전히 이 시대의 존재로서 살다 죽을 수 있죠.”

당연히 그 제안을 거절한 마법사는 단 한 명도 없었고, 여태까지 그 선택을 후회하는 사람도 전혀 없다.

조금 일이 늘어났을 뿐, 그들의 삶 자체는 평소와 거의 같았으니까.

무엇보다도, 그들은 태어나고 자라온 시대의 시간에 따라 수명을 마칠 수 있다.

언젠가 찾아올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

그보다 더한 축복이 어디 있겠는가?

“저희 사서들이 전부 죽은 뒤에야, 이곳은 모든 시간선에서 완전히 벗어날 거에요. 누가 책을 관리하고 찍어내고 태울지는 모르겠지만요.”

“음…… 그럼 손님도 안 오겠네요?”

“글쎄요? 별들이 진동할 만큼 간절히 지식을 구하는 자에겐 문이 열릴지도 모르죠. 지금 오는 손님들이 그렇거든요. 뭐, 저희 중에 엘프가 껴 있으니, 문이 닫히려면 꽤 걸릴 겁니다.”

그렇게 말한 후, 클라이드는 물잔을 단숨에 비우고 싱긋 웃었다.

“계속 가실까요?”

물을 마신 덕분인지, 소각장, 아니 배포실에서 나오는 길은 그렇게 뜨겁지 않았다.

……팔은 다른 사람의 체온 때문에 따뜻하지만 말야.

그나마 다행인 건, 로나가 더 이상 나에게 들러붙지 않아서 팔 하나가 자유를 찾았다는 것이다.

아마 싫증난 거겠지.

자연히 나는 여전히 내 팔을 붙잡고 있는 메린에게 물었다.

“넌 안 질리냐……?”

“어.”

“하………”

아니, 일 초도 고민하지 않네.

그러면서 한숨을 쉬는 내 뺨을 살짝 잡아당기며 배시시 웃고 있었다.

진짜 돌아버리겠구만…….

“음음, 역시 저걸 보는 게 훨씬 더 재미있어요~”

“……꼬맹이 너도 참 특이하구나. 난 전보다 더 보기 징그러워졌는데.”

“어라라, 근친상간하시는 분이 의외로 까다로우시네요? 남에게만 엄격한 성격이신가봐요.”

“누가 근친이야, 근친 아니거든?!”

뒤쪽에서 블루벨이 속삭이듯이 고함을 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마 얼굴이 나처럼 빨갛게 달아올라 있겠지.

이유는 전혀 다르겠지만.

아무튼 그 뒤로도 우리는 클라이드를 따라, 장서관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기록자가 적어온 내용을 다시 한번 더 정리하는 편집실, 그리고 편집을 마친 기록물들을 책으로 엮는 편찬실을 찾아갔다.

……편찬실에 들어가기 전, 혹시라도 아까 만났던 그 미친년을 또 보는 거 아닌가 싶어 살짝 긴장했는데, 다행히 그 여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는 나를 보며 쓴웃음을 지은 후, 클라이드는 편찬실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 뒤, 종이와 잉크 등등의 여러 물품들을 보관해둔 비품창고를 둘러본 후, 우리는 휴식실로 안내를 받았다.

휴식실이라는 이름답게, 널따란 공간 여기저기에 테이블 세트가 놓여 있고, 양쪽 벽에는 다양한 종류의 과자와 차가 마련되어 있다.

내가 테이블 중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자, 먼저 이곳저곳에 앉아 제각각 과자와 차를 즐기고 있던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내왔다.

그 시선들을 애써 흘려버리며, 나는 과자들이 진열되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을 빛내며 꺅꺅거리고 있는 두 아가씨와 그 사이에 껴서 난처한 듯이 웃고 있는 한 남자.

……딱 봐도 작은 쪽은 뭔 과자냐, 그리고 큰 쪽은 얼마나 먹어도 되냐고 동시에 묻고 있구만?

가엽기도 하지.

나는 실시간으로 넋이 나가고 있을 클라이드를 위해 묵념했다.

그런 뒤, 내 건너편에 앉아 기운이 빠진 얼굴로 팔걸이에 턱을 괴고 있는 뾰족귀 아가씨에게 물었다.

“근데 댁은 왜 저기 안 끼고 여기 있어? 과자 싫어해?”

“먹을 게 없어서.”

“엉? 종류 꽤 많던데? 한입 크기로 잘린 치즈도 있던 거 같더만.”

“술이 없잖아.”

“……”

……왜 휴게실에서 술을 찾는 거지?

그것도 뻔한 걸 뭘 묻고 있냐는 말투로……?

나도 술을 먹긴 한데, 진짜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야.

말문이 막힌 채로 이 어처구니없는 엘프를 쳐다보고 있자, 블루벨이 짧은 한숨을 쉬더니 입을 열었다.

“그러는 넌 왜 안 가는데?”

“잡히기 싫어서.”

사실 나도 진열대에 가서 이것저것 고르고 싶다.

그러나 이 자리를 뜨는 순간, 나는 곧바로 메린에게 붙잡히겠지.

안 봐도 뻔해.

그런 데서 아까운 정신력을 소모할 순 없어.

저 녀석이 과자 접시 가져오는 순간부터가 본판이니까 말야.

잠시 후, 나는 또 하나의 크나큰 시련을 마주할 것이다.

그런 예감이 팍팍 들고 있어.

곧 맞이하게 될, 메린이 나에게 과자를 먹인다는 시련을 이겨내려면, 가급적 정신력을 아껴두어야 해……!

내 대답을 들은 블루벨은, 안타까움과 질색함이 섞인 눈으로 나를 잠시 쳐다본 후, 한숨을 푹 쉬었다.

“마법이 대단하긴 하네. 처음엔 위화감 장난 아니었는데, 이젠 원래 이랬던 거 아닌가 싶어. 야, 내일 마법 풀리면 또 낯설어질 거 같은데, 그냥 이대로 사는 게 어때?”

“뭐요, 씨발?”

술기운 떨어져서 고장 났나, 난데없이 시비를 걸고 있네.

아, 혹시 욕해달라는 건가?

자신의 피학성향을 정신적인 면 쪽으로 확장시키려는 거야?

저런…… 애인을 고향에 두고 온 탓에 좀 힘든 모양이군.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 블루벨……. 댁이 외로운 건 이해하지만 그런 쪽은 내가 못 도와줘. 일단 메린이 날 죽일 거고, 설령 저 녀석이 허락한다고 해도 내가 못해. 미안.”

어떤 이유이든 사랑하는 사람을 배신할 순 없다.

영웅이라면 둘 다 마음에 품거나 ‘이건 이거, 그건 그거’라는 대담한 선택을 하겠지만, 난 영웅이 아닌 만큼 한 명으로도 버겁다.

“그러니 욕구는 딴 사람이랑 풀어. 비밀은 지켜줄게.”

“갑자기 뭔 개 같은 소리야? 대체 대가리에 뭐가 들었길래 그딴 망상이 숨 쉬듯이 나오는 거니? 야, 너 클라이드랑 상담 좀 해봐. 이 기회에 네 지랄병 고쳐버리자. 이거 농담 아냐.”

진지하게 말해줬더니 진지한 눈으로 헛소리를 하고 있다.

하, 정말 어이가 없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쓸데없이 진중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엘프에게 대꾸했다.

“뭐야, 일부러 욕 먹고 싶어서 지랄한 거 아니었어? 그럼 아가리 닥쳐, 이중변태야, 귀 깎아버린다. 이대로 사는 게 어떠냐니, 씨발, 지금 그딴 걸 질문이라고 하냐?

하, 그나마 댁이니까 이 정도로 참는 줄 알아.”

“욕할 거 다 해놓고 뭘 참았다는 거야, 미친놈아.”

생판 남이었으면 혓바닥 뽑아버렸을 텐데, 말만으로 끝났으니 많이 참은 거 아닌가?

속으로 고개를 갸웃하는 나를 향해, 블루벨은 기가 막히다는 듯이 짧게 헛웃음을 켰다.

그런 뒤, 무심한 눈을 깜빡이며 재차 입을 열었다.

“아무튼, 메린도 네가 여자가 되니까 더 잘해주고 있잖아. 너한텐 지금이 훨씬 좋은 거 아냐? 동성끼리 사귀는 사람도 버젓이 있는걸, 뭐. 난 징그러워서 싫지만.”

“응, 아니야, 이 근친성애자야. 씨발, 난 남자라고. 내 몸이 이럴 리가 없는데 실제로 이 따위로 되어 있어서 지금 환장하겠구만…….”

“아, 그래? 네가 메린이 집적대는 거 좋아하고 있길래 적응 다 된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어디를, 어떻게 보면, 내가 그걸, 좋아하고 있는 걸로, 보이는 거야……?”

뿌리치고 싶어 뒤지겠는데 그럴 수가 없어서 당하고 있구만!

치밀어오르는 빡침을 억누르며 겨우겨우 대꾸하자, 블루벨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너 쟤가 건드릴 때 처음에만 몸 비틀고, 그 다음엔 가만히 있잖아. 얼굴은 완전 빨개져 있고. 부끄러워서 앙탈부리는 걸로밖에 안 보이던데?”

“…………”

머릿속에서 누군가가 오르간을 쾅 내려친 것 같았다.

아니, 속에 바위산 하나가 쿵 떨어져 앉은 기분이야.

이런 씨발, 딴 사람 눈에 그렇게 보였다고……?

내가 메린이 장난치는 거에 두근거리고 있다는 게 다 티 났다는 거 아냐?!

그럼 아까부터 이 엘프랑 저 안내인이 날 보던 눈은, 억지로 추행당하는 걸 불쌍해하는 게 아니라……

여자끼리 지랄하고 있는 걸로 보여서 아니꼬워하는 눈이었단 거 아냐!

“아으으아아아………”

철푸덕.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테이블에 엎어졌다.

그런 내 머리를 슬슬 쓰다듬으며, 블루벨이 쓸데없이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괜찮아, 뒤늦게 성향 찾고 그럴 때도 있어. 아무튼 메린을 좋아하는 거잖아. 그럼 된 거 아냐?”

“되긴 씨발…… 아냐…… 난 남자야…… 반드시 내일 원래 몸으로 돌아갈 거라고……!!”

“그래, 그렇겠지. 내 말은, 만약 그 관장이 심술을 부려서 못 돌아가더라도 너무 상심하지 말라는 거야. 보기 그렇더라도, 친구로서 응원은 해줄게.”

“불길한 소리하지 마, 이 나쁜 년아!”

가급적 소리를 죽이면서 고함을 지르자, 블루벨이 입에 손을 대며 화들짝 놀란 시늉을 했다.

“어머머, 세상에! 아가씨가 그런 나쁜 말을 써서 되겠어요? 교양 있게 고운 말을 쓰셔야죠, 에스트레야 양!”

“우으으으……!!”

이 자식이 이때다 하고 신나게 놀려먹고 있어?!

분한 마음을 이기지 못한 내 눈에 물기가 맺힌 순간,

쾅!

갑자기 눈앞에 쟁반이 힘차게 떨어지더니, 접시에 올려져 있던 과자 하나가 내 코앞으로 굴러왔다.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들자, 메린이 싸늘한 시선으로 블루벨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그런지, 그녀의 주홍빛 눈동자가 그림자 속에서 번뜩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

아, 과자 가지고 온 거구나.

좀더 고개를 돌려서 메린의 뒤쪽을 보니, 로나가 쟁반을 들고 있는 클라이드를 붙잡고 선 채 굉장히 흥미진진한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다.

뭔 연극 구경이라도 하는 얼굴이군.

딱밤 먹이고 싶다.

“……야, 엘프.”

메린이 블루벨을 똑바로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너……, 이 녀석 괴롭혔냐?”

시선만으로 나를 가리키며 천천히 묻는 그녀를, 블루벨은 놀란 토끼처럼 멍하니 올려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뒤, 살짝 미세하게 떨리는 미소와 함께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녀석이, 네가 왜 집적대는지 모르겠다고 하길래, 네 눈에 귀엽게 보여서 그런 거 아니겠냐고 했더니 이러네. 많이 부끄러운가봐.”

“………진짜냐?”

나를 빤히 내려다보며 확인하는 그녀의 눈동자를 마주보았다.

……블루벨이 메린의 기세에 눌려서 대강 둘러대긴 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거짓말인 것은 아니다.

나는 이 녀석이 왜 여자가 된 내게 끈적대는 건지 모르겠고, 그 행위가 존나 쪽팔려 죽을 거 같으니까.

그래서……

무어라 말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 나는 그냥 시선을 돌려버렸다.

“……몰라.”

“아, 그래.”

코를 훌쩍이며 대답했더니, 메린이 곧바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내 옆에 앉았다.

당장이라도 테이블을 엎어버릴 것 같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희한하네.

모른다고 했는데 왜 넘어간 거지?

평소라면 똑바로 말 안 하냐고 다그쳤을 텐데.

더 희한한 건, 자리에 앉고서도 곧바로 과자를 집어먹거나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지, 그녀는 쟁반 위 접시에 수북이 쌓인 과자를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야, 에스트레야,”

그녀는 로나와 클라이드가 느지막하게 자리에 앉고, 내 앞에 차가 놓이고서야 겨우 입을 열었다.

“네가 귀여운 건지는 잘 모르겠어. 아니, 애초에 ‘귀엽다’는 게 뭘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여태 그거 생각한 거냐?”

”어.”

고개를 끄덕인 후, 메린은 과자를 하나 집어먹었다.

그런 뒤, 또 하나를 집고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재차 말했다.

“다른 이유를 댈 수 있긴 한데, 그건 나중에 말해줄게.”

“………왜?”

“여기서 말하면 너 또 쪽팔리다고 울 게 뻔하니까. 자.”

“………”

그러면서 이 녀석은 왜 과자를 내 입가에 들이미는 걸까?

어째서 손으로 받으려 하면 그걸 피하는 거고?

그것도 다른 녀석들이 뻔히 보는 앞에서 말야.

그보다 이걸 진짜 하고 있네.

왜 이딴 예상만 그대로 적중하는 거야?

……아까 관장실에서 그랬던 것처럼, 과자를 받아먹을 때까지 이러고 있을 게 뻔했다.

할 수 없이 입을 작게 벌리자, 메린이 그 틈으로 과자를 살며시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희미하게 웃으며, 과자를 우물거리는 내 머리를 톡톡 토닥였다.

“달지?”

“………응.”

“아까 내가 이러는 거 싫으냐고 물었을 때, 아니라고 하지 않았냐?”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뜨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된 거 아냐? 뭐가 문제야?”

“……넌 진짜 아무렇지도 않아?”

“어.”

여전히 일 초도 고민하지 않고 대답하는 그녀의 시원스러움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너무 까다로운 건가?

아니면 이 녀석이 특이하게 둔감한 건가?

“자.”

“그냥 내가 먹을…………하, 됐다…….”

어차피 말해도 소용없겠지.

또 다시 내밀어진 과자를 주춤거리며 받아먹자, 그녀는 헤실헤실 웃으며 자신의 입에도 하나 넣었다.

……정말로 달긴 해.

입 안에서 사르르 녹고 있는 과자도,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는 이 녀석의 웃음도.

온 몸을 떠돌고 있는 위화감과 혼란스러움조차 잠시 잊어버릴 만큼, 무척이나 달콤하다.

그렇게 잠시, 너무나도 달아서 눈앞이 아찔해질 거 같은 티타임을 가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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