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8화 〉 259화 : 본의 아닌 함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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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앉아 있는 동료, 눈이 빨갛게 부은 채 훌쩍이고 있는 여자의 본명을 기억하는가?
그 물음이 떨어지자마자, 내 옆에 앉아 있는 메린은 무던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다른 두 사람, 로나와 블루벨은 의아해하는 것도 잠시, 곧 눈을 휘둥그레 뜨며 충격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이게 어떻게……?!”
넋 나간 얼굴로 중얼거리며, 로나는 나와 메린을 번갈아 본 후, 마지막으로 클라이드를 올려다보았다.
“어떻게 된 거죠? 여기까지 오면서 아무 느낌도 없었는데요! 게다가 저만 그런 것도 아니고, 엘프인 블루벨 씨까지……!”
“짐작되는 게 있긴 합니다. 일단 진정하시죠.”
클라이드는 아까처럼 팔짱을 끼면서, 한손으로 턱을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
“에스트레야 씨는 본래 남성분이셨죠. 본래 이름도 따로 가지고 계시고요. 하지만 우리가 계속 마주하고 있는 건, 관장님의 마법으로 여성이 된 모습과 ‘에스트레야’라는 가명이에요.
이 분이 본래 가지고 있던 남성의 모습과 본명은, 저 아래 묻힌 거라 해도 좋을 거에요.”
그가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블루벨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그래서 잊어버린 거라고요?”
“그런 거였다면 문제 축에도 끼지 않아요. 작은 계기만 던져주면 알아서 기억이 다시 떠올랐을 테니까요.
에스트레야 씨는 훨씬 골치 아픈 상황이었습니다. 정보가 덮어씌워지고 있었어요.”
덮어씌워지고 있었다……?
내가 본래 ‘카엘 에스트렐이란 이름을 가진 남자’라는 게, ‘에스트레야라는 이름의 여자’라는 걸로 덮어씌워지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인 거 같은데.
말은 정리가 됐지만, 당연하게도 이해는 되지 않았다.
……그보다 진짜 이젠 기억이 잘 나네.
메린이 상기해주기 전까지는 기억이 전혀 안 나서, 숨이 막힐 정도로 무서웠었는데 말야.
지금은 그게 혹시 꿈이었던 건가 싶을 만큼, 굉장히 또렷하게 내 본명과 원래 성별을 떠올릴 수 있다.
그 탓에 몸을 볼 때 느꼈던 위화감이 도로 엄청나게 강해졌지만, 뭐, 원래 이게 맞는 거겠지.
“본래 있던 사실을 밀어내고, 다른 사실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고요? 어떻게 그런 일이…… 아, 설마.”
로나는 무언가 번뜩였는지, 눈을 살짝 크게 뜨며 말을 이었다.
“곁가지의 정보를 불러와서 끼얹어버린 건가요? 관장님의 마법은, 이 위상 안의 투영을 틀어버린 게 아니었군요!”
“음…… 그거 교단 용어인가요? 같은 의미일지 조금 자신이 없으니 그냥 설명해드릴게요.”
그는 옆 덤불에서 작은 나뭇가지를 꺾어, 그것으로 허공에 무언가를 슥슥 그리기 시작했다.
나뭇가지 끝에서 은은한 빛이 나왔다가 없어지길 수차례.
곧 굉장히 간단명료한 그림이 완성되었다.
……무엇을 그린 건지는 말할 것도 없다.
손가락, 발가락은 물론이고 표정 하나 그려져 있지 않았지만, 클라이드가 허공에 그린 건 남자와 여자가 각각 서 있는 모습이었다.
“이게 본래의…… 음, 그냥 A 씨라고 할게요. 이게 이 세계, 즉, 바로 몇 시간 전까지 존재하고 있던 A 씨입니다.”
클라이드의 손에 들린 채 남자 그림을 가리키고 있던 나뭇가지는, 이번에는 옆의 여자 그림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이건 평행세계의 A 씨입니다. 본래부터 여성으로 태어나서 자라신 모습이죠. 원칙적으로는, 이 두 A 씨는 서로에게 간섭할 수 없어요. 여성 A 씨가 지금 이 시간에, 여기 이 자리에 서 계신다 해도 우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거죠.
그런데 여기서 관장님의 마법이 등장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클라이드는 두 남녀 그림 위에 맨들맨들한 머리에 꿈틀꿈틀한 벌레 같은 수염이 달린 얼굴을 하나 그렸다.
……저거 오이스 관장, 그 새끼 그린 거지?
설마 저게 본 모습인 건가?
클라이드는 잠시 그 얼굴을 건조한 눈으로 쳐다보며 고개를 저은 후,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관장님의 마법은, 이 여성 A 씨의 겉모습을 따서, 우리 세계의 남성 A 씨에게 씌운 겁니다. 보이지 않는 옷을 입힌 거나 다름없죠. 추측이긴 하지만, 이게 가장 가능성이 높아요.”
“왜죠?”
로나의 반문에,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미 다른 차원의 통로를 열어봤으니까요. 이계의 문을 여는 거에 비하면, 평행세계를 엿보는 것 따위 어린애 장난이에요.
게다가 엄밀히 따지면 그 사람 자신을 따오는 거니, 세부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없어서 손을 덜 타고요.”
즉, 관장은 다른 세계에 있는 ‘나’의 가죽을 본 따서, 여기 있는 나에게 씌운 것이다.
클라이드는 그렇게 말한 후, 심각한 표정으로 이어 말했다.
“……문제는 그 가죽이 점차 동화되려 했다는 거죠. 그대로 있었다면, A 씨는 이 세계에서 ‘남성으로 태어난 A 씨’가 아니라 ‘여성으로 태어난 에스트레야 씨’가 되었을 겁니다. 세상의 기록에도 그렇게 바뀌어 있었겠죠.”
“왜 이름까지 바뀌는 건데요?”
“인식력을 원동력 삼아서 가죽이 동화되고 있는 중에, 같이 영향을 받았을 거에요.”
인식력.
사물을 구분하고, 알아보아 판단을 내리는 능력을 뜻한다.
그 범위는 단순히 곧은 길인지 굽은 길인지, 사과인지 블랙베리인지 등의 형태를 구분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맞았을 때, 그것을 이슬이나 비, 아니면 지나가던 새나 벌레의 선전포고 중 하나로 규정하는 것 역시 포함된다.
즉, ‘이것’과 ‘그것’, 그리고 ‘저것’이 무엇인지 감정하는 힘이다.
“모든 생물이 이 힘으로 먹고 살고 있죠. 그러나 지성체가 이 힘을 발휘할 때는, 단순히 감정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아요. 이미 있는 걸 변화시키고, 없는 걸 만들어내기도 해요.”
“………아아, 그런 것이군요.”
그 설명으로 전부 파악이 된 듯이 중얼거린 후, 로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괘씸한 마법이네요. 추가 형벌감이에요.”
“개인적으론 그냥 영구소멸 됐으면 하는데, 저래도 어디 쓸 데는 있나봐요. 계속 가둬두기만 하는 걸 보면.”
클라이드는 돌덩이처럼 무거운 한숨을 내쉰 후, 로나를 뺀 나머지 우리 셋을 향해 말을 꺼냈다.
“아무튼, 지성체의 인식력은 보기보다 꽤 강해요. 믿는대로 세상을 틀어버리거든요.
음, 예를 하나 들까요? 옛날 사람들은 요정이 비를 내린다고 믿었습니다. 진짜로 날씨의 요정이 존재했거든요.그러던 어느 날, 요정을 볼 수 없는 사람이 ‘땅의 물이 하늘로 올라가 구름에 담겼다가 떨어지는 것’이 비라는 주장을 제기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열심히 연구했는지, 그는 작은 시연까지 벌였다.
주전자에 물을 담고 모닥불에 올려 끓이는, 굉장히 간단한 시연이었다고 한다.
“그게 먹힌 거에요?”
내가 묻자, 클라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요? 아니 실제로 요정이 있는데 어째서……?”
“요정을 볼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하지만 물이 끓어서 생긴 수증기가 다시 물방울이 되고, 그 물방울이 땅에 떨어지는 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다 볼 수 있죠. 남은 건 모닥불과 주전자를, 각각 해와 대지로 넓혀서 생각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요정은 어떻게 됐죠?”
무언가 예상되는 거라도 있는지, 블루벨이 약간 그늘진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클라이드는 잠시 뜸을 들인 후, 마침내 입을 열었다.
“사라졌어요.”
“……!”
경악한 나와 달리, 블루벨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한숨만 쉴 뿐이었다.
그는 그 모습에 쓴웃음을 지으며, 나를 향해 말을 이었다.
“비가 오는 건 요정 때문이 아니라, 주전자 뚜껑…… 즉 구름이라는 이야기가 널리 믿어진 순간, 날씨의 요정이 지닌 존재의미가 흩어져버렸어요. 그 이후로, 구름이 뭉쳐서 잿빛이 되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말도 안 돼.”
“물론 반대의 예시도 있어요. 밤의 숲을 다니는 아이들을 잡아먹는 괴물들이나, 벽장 문 안 닫으면 튀어나오는 괴물처럼, 사람의 상상력이 탄생시킨 존재도 있죠. 이게 바로 사람의 인식력이 가진 힘입니다.”
……그러고보니 로나도 지난번에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세상의 주인이니 어쩌니 하는 말이었던 것 같은데.
“그리고 그걸 이용한 방어마법이 여기 일대에 펼쳐져 있어요. 여러분이 지나온 미로는 그 일부입니다.”
“아, 그거……. 그러고보니 그거 어디부터 시작되는 거에요?”
클라이드는 내 말에 빙긋 웃었다.
“갑자기 비가 막 퍼부었었죠? 그것도 엄청난 장대비가요. 거기부터에요.”
“허……?! 근데 여기 바깥엔 비가 안 오던데요!”
“하하, 그야 이 앞마당엔 설치되어 있지 않으니까요. 참고로 실제로 비를 뿌린 건 그 입구밖에 없답니다. 나머지는 환상이에요.”
“네? 환상?! 말도 안 돼, 엄청 차가웠는데요?!”
누구보다도 오래 그 비를 퍼맞은 사람으로서 보장할 수 있다.
그 비는 환상 따위가 아니라 진짜였다는 것을……!
그러나 내 앞에 선 사서는 유쾌한 듯이 웃으며 손을 저었다.
“인식을 이용한 환상이에요. 영역에 발을 들였을 때, 여러분의 머리 위로 비가 뿌려졌을 겁니다. 사실 그 비 자체는 오 분도 채 내리지 않아요. 하지만 비를 맞은 순간, 여러분은 장대비가 쏟아진다고 생각하셨겠죠. 그 일대에 뿌려져 있는 마력이 그에 반응하여, 비가 쏟아지는 환상을 펼친 겁니다.”
“……”
“자연히 여러분은 비를 피할 곳을 찾게 되고, 그 동굴로 향할 수밖에 없죠.
자, 바깥에는 비가 퍼붓고, 동굴 안은 깜깜하고 축축합니다. 비 때문에 주변 소리도 차단되니, 여러모로 좋지 않은 생각이 들겠죠. 갑자기 바깥에서 거대한 곰이 뛰어들어오는 거 아닌가 하고 걱정하거나, 고향에서 들은 무서운 옛날 이야기가 생각나거나 하는 식으로요.”
그리고 그 두려움대로 마법이 발동되어, 정말로 거대한 곰이나 이야기 속에 나오는 무서운 존재가 쳐들어온다.
걱정과 우려가 현실이 된 순간, 사람은 더욱 더 좋지 않은 방향으로 생각을 굴리는 버릇이 있기 때문에, 결국 싸움은 끊이지 않는다.
“대부분은 거기서 죽습니다.”
“……”
“일부는 거기서 싸우다가 더 깊은 안쪽으로 도망치기도 하겠죠. 그럼 막다른 길에 다다르고, 그곳이 무덤이 될 겁니다. 그 중에 또 일부는 미로에 다다르고요.”
‘이 바위 뒤가 갑자기 떡 열리면서 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한 자만이 들어올 수 있는 미로.
그곳에 자리하고 있는 건 바라마지 않던 구원이 아닌, 더 깊은 공포와 절망뿐이다.
설사 혼자가 아닌 여러 명, 심지어 군단이라 할지라도 그 미로를 통과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노련한 사람이라 해도 통과할 수 없어요. 의심하는 그 모든 것이 구현될 테니까요. 이 일대에 펼친 방어마법은, 모르는 새에 스스로의 목을 졸라 죽게 한다는 설정으로 짠 거랍니다.”
“악취미이네요.”
“하하, 그래도 방어효과는 끝내줘요. 그거 설치한 후론 드래곤도 여길 건드리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여러분이 대단하시다는 겁니다.
아무튼, 에스트레야 씨가 곤란을 겪으셨던 것도 그 인식력 때문이에요.”
그게 그 이야기이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관장실을 나온 후부터 지금까지 스쳐 지나갔던 모든 사람들은, 나를 ‘에스트레야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으로 인식했을 것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여자의 모습이고, 에스트레야라는 이름만 줄창 불리고 있었으니까.
“……그 사람들의 인식력 때문에 가죽이 동화되면서, 저를 포함한 세 사람의 기억을 비틀어버린 거군요.”
“음, 조금 달라요. 가죽이 동화되면서 당신 스스로의 인식이 비틀렸어요. 로나 씨나 블루벨 씨의 기억은 그를 따라갔을 뿐이에요.”
그래야 모순이 발생하지 않고, 마법이 완전히 정착하게 되기 때문이다.
클라이드의 말에 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인 후, 한숨을 쉬면서 좌우로 흔들었다.
“그래도 너무 빠른 거 아니에요? 아니 어떻게 반나절도 안 되어서…….”
“장소가 나빴어요. 지성체 중에 인식력이 가장 강한 것이 바로 저희처럼 마법을 다루는 사람이거든요. 그 다음이 일반 인간들이고요.
그런데 에스트레야 씨가 지금 있는 곳은, 마법과 신비가 철철 넘쳐흐르는 장서관이에요. 변화가 빠를 수밖에 없죠.”
……즉, 여기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빨리 영향을 받지 않았을 거란 말이군.
그 관장 놈, 다 알고 한 거겠지?
일반 사서인 클라이드도 알고 있는 걸, 그 놈이 모를 리가 없으니까.
“내일 베어버릴까…….”
“뭐, 일반 검으로는 안 죽을 테니 분이 풀릴 때까지 베셔도 상관없을 겁니다.”
일반 검 아닌데. 성검인데.
놈의 꼬라지가 그 모양이니, 십중팔구 성검이 튀어나올 터.
만약 놈에 대한 어떤 규칙 때문에 죽이지 못한다면, 팔 하나라도 예쁘게 썰어줘야지.
그렇게 다짐하고 있는데, 로나가 그에게 묻는 소리가 들렸다.
“그럼 이제 괜찮은 거에요? 에스트레야 님의 기억을 고정시키셨다고 하셨는데요.”
“네. 에스트레야 씨 본인의 인식이 비틀리지 않을 테니, 가죽이 이제 동화되진 않을 겁니다. 메린 씨가 확고하게 기억하고 계시니 더 괜찮을 거고요.
근데 정말 놀랍네요. 왜 혼자 영향을 받지 않으신 걸까요?”
아마 이 녀석이 딴 사람 눈치 따위 하나도 안 보는 성격이라 그런 게 아닐까?
누가 보건 말건, 지금도 내 어깨를 감싸 안고 얼굴에 뺨을 부비적대고 있으니까.
참고로 내가 그 밀알 비슷한 걸 삼킨 뒤부터 쭉 이러고 있다.
아니 왜 더 진해진 거야?
진짜 지가 고양이인 줄 아나.
“얘가 계속 이러는 거에 어떤 문제도 없는 건가요?”
“네, 없어요. 오히려 에스트레야 씨가 ‘이래봬도 남자인데 부끄럽고 두근두근거려서 죽겠다’고 의식하게 되시니까 더 좋죠?”
“……”
이런 썅, 나쁘긴커녕 오히려 더 좋다고?
저거 지금 더 하라고 권장하는 거잖아!
“히히, 더 좋다니 잘됐네.”
“하, 씨발……”
“푸히히.”
실실거리며 뺨을 부비적대는 녀석을 밀어낼 수 없어, 나는 그저 얼굴만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내심 좋아서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녀석이 안 밀려나서 그런 거다.
이 자식, 내가 몸을 비틀 때마다 더 세게 안고 있어……!
“그럼 우리도 이 녀석 본명을 기억해두는 게 낫지 않나요?”
그런 우리를 굉장히 마뜩잖은 눈으로 보며 묻는 블루벨을 향해, 클라이드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방에서 쉬시기 직전에 들으시는 게 나을 거에요. 잘못하면 마법이 풀릴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정체를 감추실 필요가 있으셔서 이렇게 되신 것 같은데요. 아닌가요?
좀 문제는 있었지만, 본 모습을 숨기기엔 성별 바꾸는 게 가장 확실하긴 해요. 기왕 이렇게 된 거 오늘 하루만 참으시죠. 가는 길에 갑자기 마법이 풀려도 곤란하잖아요?”
“하아아…………”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한숨을 쉬는 나에게 쓴웃음을 지은 후, 클라이드는 표정을 밝게 지으면서 우리 모두를 향해 말했다.
“문제도 일단락됐고 마침 시간도 점심 조금 넘었으니, 슬슬 식당으로 갈까요? 에스트레야 씨도 맛있는 걸 드시면 기운이 조금 나실 거에요. 식사하시면서 이후의 일정을 어떻게 할지 이야기 나누시죠.”
“더 볼 데가 있나요?”
“아뇨, 특별한 곳은 없습니다. 조금 전에 안내드린 곳을 더 둘러보셔도 되고, 방에서 책을 읽으셔도 됩니다. 아니면 오락시설 이용허가를 받아서 즐기실 수도 있겠죠. 뭐, 거긴 제가 동행해야 되겠지만.”
달리 말하면, 그는 흘러가는 상황에 따라 정말로 우리와 하루종일 같이 있어야 한다는 게 된다.
그런데도 싫은 기색 하나 보이지 않는 그에게,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바쁘시지 않나요? 너무 시간을 뺏는 거 같은데…….”
“신경 쓰지 마세요. 손님을 응대하는 것도 일이니까요. 음,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여러분 덕분에 다른 일을 안 해도 되어서 저는 오히려 더 좋답니다. 하하, 그러니 사양 마시고 제 시간을 더 써주세요.”
……역시 인기 있을 만한 사람이야.
넉살 좋게 웃는 그를 따라, 나 역시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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