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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273화 (273/475)

〈 273화 〉 264화 : 위법의 값 (1)

* * *

미친 광대 아가씨의 공연을 끝내려면, 세 가지를 처리해야 한다.

하나는 문 바깥에 있는 기계장치들.

이건 저 광대를 떼어내는 순간 해결되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그걸 어떻게 해야 되는지가 두 번째 문제이지만.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기계장치가 문 바깥으로 더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

정확하게는 미로 안에 있을 셰인과 네이트를 찾아서 빼내는 것이다.

솔직히 앞의 두 문제에 비하면 마지막 건 식은 죽 먹기다.

그만큼 죽을 확률도 천지차이이고.

그래서 나는 작전을 개시하기 전, 마지막으로 터크에게 물었다.

“진짜 되는 거죠?당신이 못 미더워서 그런 건 아닌데 말이죠…….”

“그럼요. 원래는 이 녀석 없이 저 혼자 해도 됩니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서 껴주는 거지.”

진짜인가…….

뭐, 마법도 다른 학문처럼 연구를 주로 하는 것 같으니, 나이가 많을수록 실력이 더 높다고 봐도 되긴 하겠지.

근데 이건 순발력이 좀 필요하단 말이지.

이 터크라는 사람의 눈가엔 잔주름이 자글자글하다.

딱 봐도 신체 나이가 마흔은 족히 넘었을 거 같은데 진짜 괜찮나?

“걱정 마세요, 에스트레야 씨.”

클라이드는 빙그레 웃으며 확신 있게 말했다.

“터크 씨는 이런 일에 전문이시거든요. 오히려 제가 발목을 잡지 않을지 걱정이에요.”

“겸손 떨긴. 손님, 밖에서 이런 놈을 만나거든 조심 또 조심하세요. 속은 아주 시커머니까!”

“이 상황에 뭔 소리하시는 거에요!”

터크는 발끈하는 클라이드를 보며 킬킬 웃은 후, 눈을 감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이윽고 다시 눈을 뜬 그의 얼굴엔, 마법사보다는 사냥꾼이 더 어울릴 법한 날카로운 빛이 떠올라 있었다.

“준비됐습니다.”

“저도요!”

로나 역시 헤실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터크와는 상반된 표정이지만, 쟤는 원래 저러니 뭐…….

그럼 이제 나만 각오하면 되겠군?

“후……”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동안,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대부분은 곧 벌어질 일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다.

평소보다 근력도 담력도 약해져 있는데, 내가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터크나 클라이드의 마법에 오차가 생기면 어쩌지?

저 광대가 사실 다 눈치채고 있으면 어떡하지?

……그런 쓸데없는 생각이 마구 떠오르면서,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에 땀이 맺힌다.

역시 이런 긴박한 상황은 나랑 맞지 않는 거 같아.

뭐, 고향부터 나랑 안 맞지만 말야.

용사라는 이 역할은 또 어떻고?

사명을 짊어진 것도, 이렇게 여행을 다니는 것도 어울리지 않지?

그 중에서 가장 안 맞는 게 메린 아냐?

마을에서 누구보다도 약한 내가, 누구보다도 강한 그녀를 마음에 품는 것도 모자라 두 팔에 안았잖아.

그건 과분한 수준이 아냐.그야말로 천지가 뒤집어질 일이지.

솔직히 나에게 맞는 건 필경사라는 직업밖에 없을 거야.

‘그래서 못하겠어?’

설마.

가장 안 맞는 일도 이미 하고 있는데, 이보다 덜한 일을 못할까?

슬며시 들려온 속삭임에 속으로 자조하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하죠.”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터크와 로나의 모습이 사라졌다.

언제나 그랬듯이, 내 작전은 무척이나 간단하다.

“이래서 판타지가 싫어! 이제 그만 좀 죽, 아얏!”

“어머, 미안해라! 멍청하게 서 있는 게 꼭 그 쇳덩어리 같아서 손이 미끄러졌네?”

“저 씨발년이 진짜……! 이 깡통은 언제까지 계산하고 있을 거야?! 그냥 대충 쏴 버…… 뭐야?”

어리석은 광대 아가씨, 밀라 클라운.

그녀는 블루벨의 도발에 펄펄 성을 내며 고개를 돌리다가 우뚝 멈추었다.

이제야 알아차린 모양이지?

메린이 검 한 자루로 수십의 기계장치를 쇳조각으로 만들면서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말도 안 돼! 저 년, 저 년부터……!”

“이쪽 먼저 신경 쓰는 게 좋을걸?!”

“?!”

불현듯 울린 남자의 목소리를 따라, 그녀가 고개를 하늘로 쳐들었다.

그 눈에 무엇이 비치고 있을까?

붉은 옷을 입은 사제?

아니면 자신을 향해 떨어지는 쇳덩어리?

어쨌든 그녀는 그 자리에서 움직여야 할 것이다.

곤죽이 되기 싫다면.

“히이익?!”

콰아아앙—!

귀를 찢는 굉음이 울리며, 하얀 부스러기가 섞인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이 다음에 일어날 일은 뻔하다.

지금 저 앞에 보이고 있을 풍경도 쉽게 상상이 가.

아마 자욱히 낀 흙먼지 속에, 작은 그림자가 서 있겠지.

마치 처음부터 거기 있었던 것처럼, 붉은 옷의 사제가 등을 펴고 꼿꼿이 서 있을 거다.

땅에 박힌 철퇴의 자루를 꼭 쥔 채로.

사제의 등 뒤에 있는 건 활짝 열려 있는 문.

하얀 군단을 끊임없이 토해내는 커다란 구멍일 것이다.

비록 그 문을 막기엔 몸집이 한참 작지만, 사제를 감히 제치고 나올 기계장치는 단 한 대도 없을 터.

왜냐?

보이지 않는 벽으로 막아버렸으니까.

그렇게 바위보다 더 단단한 벽이 된 로나는, 흙먼지로도 감추지 못하는 금빛 눈동자를 부릅뜨고 소리 높여 외칠 것이다.

“메린 님! 블루벨 씨! 이쪽으로!”

그 두 사람이 움직이는 데엔 그걸로 충분하다.

아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로나에게 달려가겠지.

그렇게 될 거란 확신이 든다.

세 사람은 언제나 그랬듯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 해내겠지.

그러니 지금은, 그들이 아니라 나 자신을 신경 써야 한다.

“자, 갑시다!”

“네!”

로나가 흙먼지를 만들자마자 나타난 터크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몸이 살짝 쏠리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바닥에 드러누운 단발머리 여자가 눈앞에 나타났다.

실상은 정반대이겠지만, 아무튼 대충 손을 뻗어서 그 여자를 붙잡았다.

살짝 물컹하면서 딱딱한 감촉이 느껴지며, 여자가 숨이 막힌 것처럼 컥 소리를 낸다.

아무래도 목을 잡은 모양이었다.

정말 본의 아니게.

“잡았어요!”

소리치는 순간, 또 한 번 몸이 쏠리는 느낌이 들면서 먼지 하나 묻지 않은 맑은 풀밭이 보였다.

손에 잡혀 있는 건 살아있는 사람의 목.

눈앞에 있는 건 나에게 목이 졸려선 몸부림치는 단발머리 여자, 밀라 클라운이다.

터크는…… 역시 없네.

아마 뒤처리를 하러 갔겠지.

지금쯤이면 이동마법으로 로나의 옆에 간 클라이드가, 그 세 사람을 데리고 돌아올 때를 재고 있을 테니까.

그나저나 그 아저씨, 연속으로 이동마법을 쓰는 것 따위 간단하다더니 진짜였네.

원래 뭐하던 사람이었을까?

눈빛을 보니 뭐 잡고 다니던 것 같긴 한데.

“아얏.”

손등이 찌릿하게 아려왔다.

그쪽으로 시선을 향하자, 밀라 클라운이 내 손등을 마구 할퀴고 있는 게 보였다.

그래봤자 소용없는데.

그보다 정신이 들어 있구나.

“기절하는 게 나았을 텐데.”

목을 쥔 손에 힘을 주면서 그녀의 몸 위에 올라타 짓눌렀다.

그러자 그녀가 한 손으론 바닥을 긁고, 다른 손으로는 자신의 목을 쥔 내 손을 세게 쥐었다.

셔츠 소매가 짧았다면 손톱이 파고들어서 꽤 아팠겠지.

그녀가 발악하는 대로 내버려둔 채, 품속에서 단도를 꺼냈다.

손이 하나 묶인 탓에, 칼집을 입에 물고서 칼을 빼내야 했다.

눈부신 여름햇살을 받고 번뜩이는 칼날을, 미치광이 광대가 잘 볼 수 있도록 눈앞에 살살 흔들어주었다.

“하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니다? 그쪽이 깨어 있어서, 할 필요가 생겼을 뿐이야.”

그렇게 말해주자, 그녀의 눈이 커질대로 커지면서 입이 달싹거렸다.

소리가 안 나서 모르겠는데, 뭐, 욕한 거겠지.

저리 비켜, 개년아.

이런 거 말야.

개년. 개년이라……

하, 내가 원래 남자인 걸 모르고 한 거겠지?

그러나 그걸 감안해줄 수는 없다.

날 죽이려 한 적인데 왜 봐줘?

누구처럼 조금이라도 어울렸다면 또 몰라.

그보다 개년이라니, 미친놈이라고 불렸을 때보다 수십 배는 더 빡치는데?

“내가 개년으로 보이지? 그러니 소원대로 개년이 되줄게……!”

광대의 목을 조르면서 단도를 치켜들고, 내리쳤다.

파샥, 뺨에 뜨뜻한 물이 튀는 게 느껴졌다.

단도를 칼집에 넣었을 무렵, 여러 사람의 발소리와 함께 기겁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가지각색의 표정이 이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냥 웃는 얼굴이 하나, 덤덤한 얼굴이 둘, 질색해하는 얼굴과 파랗게 질린 얼굴이 각각 하나.

빠진 사람은 없구나. 다친 사람도 없는 것 같아.

계획대로 잘된 것에 안도하며, 나는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다들 무사해보이네요. 다행이에요.”

“네, 다녀왔습니다!”

로나는 한층 더 밝은 얼굴로 대답한 후, 종종걸음으로 다가와서 물었다.

“뭐하셨어요?”

“어깨 힘줄 끊고 발목 꺾었어.”

밧줄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손을 댄 거지, 피 보고 싶어서 한 건 아니다.

어깨에 첫 방 갈길 땐 감정이 실렸던 거 같기도 하지만.

사실 손을 조져버리는 게 가장 나은데, 손바닥은 걸레짝을 만들어봤자 효과가 별로란 말이지.

그렇다고 손가락을 꺾어버리기엔, 지금의 난 힘이 모자라서 못하고 말야.

결국, 나에겐 어깨를 손댄다는 선택지밖에 없었다.

발목도 힘줄을 끊는 게 가장 확실하지만, 여긴 잘못 건드리면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죽을 수 있다.

여기서 죽더라도 나중에 장서관에 다시 나타난다지만, 지금 당장 정보를 얻어야 하는 만큼 죽게 할 순 없다.

그래서 안전하게 뼈만 똑 꺾어준 것이다.

로나는 붉게 물든 밀라 클라운의 어깨에 손을 대며 물었다.

“목에 손자국 있는데…… 아, 꺾이진 않았네요. 솔직히 좀 걱정했는데, 살아있으니 다행이에요. 그럼 치유할게요~”

“응, 수고해.”

인사하고 일어나려다, 밀라 클라운의 입이 아직 막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비명 듣기 싫어서 모자 구겨 넣었었는데 빼는 걸 깜빡했네.

침 범벅이 된 모자를 바닥에 휙 던져버린 후, 나는 일어나서 기지개를 켰다.

그런 나와 교대하듯이, 터크가 기도를 올리는 로나의 맞은편에 쪼그려 앉는 게 보였다.

로나가 기도를 마친 후에 세 번째 문제를 해결하러 가면 되겠군.

나는 밀라 클라운의 머리를 만지작거리는 터크에게 물었다.

“그 여자랑 친하셨나봐요?”

“설마요. 머리카락 뽑을 거 고르는 거에요. 나중에 기억 봐야죠. 클라이드, 장서관에 연락 넣어라. …………클라이드?”

터크를 따라 고개를 돌리자, 클라이드가 나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멀거니 서 있는 게 보였다.

무언가 큰 충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완전히 얼이 나가 있었다.

피 보고 놀랐나?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한 발짝 다가가자, 그가 흠칫 놀라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정확히 같은 길이만큼, 나와 거리를 벌린 것이다.

아마 의식적으로 움직인 건 아닌 거겠지.

뒷걸음질친 장본인이 더 놀라서 시선을 떨어뜨리고 있으니까.

“……”

……근데 이거 묘한 기분이네. 누가 나를 보고 피한 건 태어나서 처음이야.

조금 억울하고, 약간 어처구니가 없고, 상당히 씁쓸하다.

메린 녀석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근데 피할 만도 해. 내 손, 완전히 빨개졌잖아.

사서들은 싸움에 익숙하지 않다고 했으니, 피 보는 걸 꺼리는 게 당연하지.

나는 씁쓸한 마음 그대로 웃으며 말했다.

“놀라셨죠? 죄송해요. 저 여자가 도망 못 치게 해야 하는데 밧줄이 없어서요.”

“……네, 알아요. 알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에스트레야 씨. 도와주신 건데…….”

“아뇨, 괜찮아요. 솔직히 보기 좋은 짓은 아니니까요. 메린, 수건 같은 거 없어? 블루벨, 댁은?”

둘 다 고개를 저었다.

어이씨, 나도 없는데 이걸 어쩐다?

미친 척하고 로나 옷에 닦을까? 빨간 색이니까 눈에 안 띌 거 아냐.

근데 신성한 옷에 뭐하는 짓이냐고 철퇴로 때릴 거 같아!

으, 이거 마르면 잘 안 지워질 텐데.

게다가 피비린내도 엄청 나고.

젠장, 코가 빨리 마비되길 바라는 수밖에 없나?

“……그, 손 내밀어주시겠어요?”

“네? 아, 네.”

손바닥을 하늘로 향한 채 앞으로 내미니, 클라이드가 내 손바닥 위의 허공에서 마치 소금이라도 뿌리듯이 손가락을 서로 비볐다.

그러자 그의 손가락 끝에서 작은 구름이 하나 생기더니 가느다란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꼭 물뿌리개를 맞는 것 같아.

작은 구름이 쏟아낸 빗물에 손이 흠뻑 젖으면서, 손에 잔뜩 묻어 있던 핏물이 싹 쓸려내려갔다.

특유의 비릿한 냄새도 같이 없어졌는지, 손에선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와, 감사합니다.”

역시 마법 대단하구만.

속으로 감탄하며 감사를 전하자, 클라이드는 얼굴에 씁쓸한 웃음을 띄우며 물었다.

“세수도 하시겠어요?”

“네? 아뇨, 별로 안 튀었을 텐데요, 뭐.”

“아니, 너 엄청 튀었어. 볼래?”

메린이 끼어들더니, 손거울을 들고 내 앞에 마주섰다.

작은 거울에 비친 건, 붉은 주근깨가 가득 박혀 있는 여자의 얼굴이었다.

……아니, 주근깨가 아니라 피잖아!

세상에, 이 꼴로 웃으며 인사했으니 클라이드가 뒷걸음질을 치지.

나는 한숨을 푹 쉬며 그에게 말했다.

“……부탁드릴게요.”

“하하.”

그의 도움으로 얼굴을 닦은 후, 나는 동굴이 있을 바위벽을 돌아보았다.

문 근처에 주르륵 서 있던 기계장치들의 모습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그 자리에 검은 연기만 조용히 피어오르고 있다.

문은 지금도 활짝 열려 있지만, 무언가 조치를 취한 것 같았다.

기계장치가 문지방을 통과하는 족족 검게 물들더니 그대로 가루가 되고 있다.

저대로 두어도 이 이상 문제가 생기진 않겠지만……

역시 안에 들어가서 완전히 끝내는 게 좋지.

그렇게 생각하며 조금 긴 숨을 내쉬는데, 터크가 일을 마쳤는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클라이드, 정신 잡았으면 이 년 구속하라고 연락 넣어라.”

“네? 아아, 네! 죄송합니다, 터크 씨.”

그는 클라이드의 어깨를 두드려준 후, 내 옆에 서서 팔짱을 끼었다.

“에스트레야 씨라고 하셨죠? 아는 사람이랑 이름이 똑같아서 기분이 묘하네요. 아무튼, 네이트를 구하러 저 안에 가실 거죠?”

“네.”

“하지만 녀석은 이미 죽었을 겁니다. 클라이드 녀석은 애써 부정하고 있지만, 가망이 없다는 건 저 녀석 스스로 알고 있을 거에요. 그래도 들어가실 건가요?”

“네.”

“고민도 안 하시네요. 왜죠?”

무미건조한 목소리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시신 수습해야죠. 한 조각이라도 있는 게, 완전히 없는 것보단 나아요.”

“……그렇기는 하죠.”

그는 약간 쉰 목소리로 대답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 걸까?

일반 사람보다 몇 배는 더 오랜 세월을 쌓는 삶이니까, 없는 게 이상할지도 모르지.

터크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생각에 잠겨 있다가, 별안간 다시 입을 열었다.

“네이트 녀석이 죽었더라도, 시신은 고스란히 남아있을 겁니다. 저렇게 계속 나오는 걸 보면, 녀석을 재료로 써서 놈들을 가동시킨 건 아닌 거 같아요.”

“그렇군요.”

“저 광대 아가씨의 기억을 읽고, 완전히 사태를 파악한 후에 가는 게 가장 좋겠죠. 그런데 그건 조금 힘들어요. 저 문에 걸어둔 마법을 유지해야 되거든요.

클라이드 녀석은 화가 올라 있으니 실패할 게 뻔하고요.”

기억을 읽는 게 아니라, 거기 연결된 영혼을 태우거나 저주를 할 것이다.

터크는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푹 쉬었다.

“근데 무작정 가기에도 난감하단 말이죠. 저 미로 안이, 말 두세 마리도 나란히 걸을 수 있을 만큼 널찍하거든요. 문이 작아서 하나씩 나오고 있는 거지, 안은 바글바글하다 이겁니다.”

“혹시 지금 겁주시는 거에요?”

“정확한 판단을 위한 정보를 제공하는 거죠. 사서이니까요.”

사서인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 같았지만, 굳이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그보다 이거, 위험하니까 들어가지 말라고 만류하는 것처럼 들리는데?

나는 그의 친절함에 어깨를 으쓱인 후, 메린과 블루벨을 돌아보았다.

두 사람은 의식을 잃은 채 쓰러져 있는 광대를 멀뚱히 내려다보다, 내가 부르는 소리에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아까 그 기계들이 저 안에 득시글거린다는데, 역시 위험할까?”

“아니?”

“아무 문제없는데?”

일 초의 지체도 없이 들려온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다음, 다시 터크를 보았다.

“그렇다는데요.”

“하하, 이거 참…….”

잔주름이 나 있는 중년의 사서는, 감탄과 기막힘이 뒤섞인 웃음을 돌려주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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