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8화 〉 269화 : 위법의 값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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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탁한 소리가 두 번, 숨이 막혀 꺽꺽대는 소리가 한 번.
놈의 얼굴에 날린 주먹은 아리고, 놈에게 붙잡힌 팔은 꽉 죄여서 욱신거린다.
몸이 여자가 된 게 한스럽고 분해 죽겠다.
본래 내 모습이었다면, 놈이 팔을 붙잡든 말든 대가리를 깨뜨려버렸을 텐데……!
아니면 코를 박살내거나!
“꼴에 얻어맞긴 싫냐, 개새끼야?! 네가 저지른 거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인데, 그만큼도 당하긴 싫다, 이거냐?! 양심 뒈진 오크 사생아 새끼가……!!”
“난 그냥 그간의 설움을 갚았을 뿐이야!! 복수한 거라고!! 놈이 내게 저지른 짓을 갚아줬을 뿐이야!!”
“지랄하지 마, 개새끼야!! 네가 머리가죽 벗겨졌었냐? 뱃속이 전부 파였었어? 조각조각 나뉘어져서 옷걸이에 걸렸었냐고!”
처음 방에 막 들어왔을 때는 몰랐다.
블루벨이 터뜨린 쓴 가루가 방 안에 가득 퍼져, 꼭 안개가 낀 것처럼 시야가 뿌얘졌으니까.
건너편 문을 열어젖힌 뒤, 다시 돌아봤을 때도 눈치채지 못했다.
메린이 검을 휘두르는 모습과, 이상하게 생긴 구조물에 눈길을 빼앗겼으니까.
그래서 뒤늦게 알아차리고 말았다.
클라이드가 꺼버린 커다란 장치의 맞은편, 이 방의 반대편 안쪽에 커다란 테이블이 하나 있다는 것을.
주변에 의자 하나 놓여 있지 않은 그 높은 테이블에는, 접시나 찻잔이 아닌 사람이 차려져 있다는 것을.
그것도 팔다리가 죄다 뽑혀 있는 사람이 눕혀져 있었다.
……단지 그뿐이었다면 이렇게 화가 치솟지는 않았겠지.
정말로 참담한 광경은 테이블 위가 아니라 주변 바닥에 있었다.
사람 한 명으로는 절대로 만들 수 없는 참상이 거기 있었던 것이다.
……한 사람에게 얻을 수 있는 눈과 귀는 각각 두 개이다.
눈코입을 다 합친 얼굴로 따지면 하나밖에 안 나오고.
오른다리도, 왼팔도 각각 하나씩만 달려 있지.
세상에 오른발이 두 개 달린 사람이 어딨어?
물론 여기선 그게 불가능하진 않다.
똑같이 생긴 얼굴 두 개를 떼어낼 수 있다.
이 방의 다른 구석에, 똑같이 생긴 사람이 수두룩하게 쌓여 있으니까.
그러니 누구든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저 바닥에 널려 있는 조각들을 모아서 꿰매면, 몇 사람이나 만들어질까?
저 텅 빈 뱃속에 있었던 내장들은 어디로 간 걸까?
저 구석에 널부러진 채, 배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사람들의 입가가 붉은 거랑 상관이 있나?
그리고 그 끝엔, 이 생각을 하게 되겠지.
……왜 저런 짓을 한 거지? 라고.
나에겐 그 답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고 생각해봐도,저 짓을 했어야 할 이유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 풀리지 않는 의문이 머릿속에 자리한 순간, 속에서 어찌할 수 없는 분노가 솟구쳐올라왔다.
……그리고 지금 놈이 같잖은 이유를 지껄인 탓에, 머리에 더 큰 열이 올랐고!!
“생니 하나 안 빠진 새끼가, 머리 한 줌도 안 뽑힌 새끼가 저 지랄을 떨어?! 멀쩡한 두 눈깔을 부라리면서, 멀쩡한 혓바닥으로 복수를 입에 올리냐?! 복수는 네가 당한 만큼을 되돌려주는 거다, 미친 새끼야!!”
물론 알고 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을 짓밟는 놈들도 있다는 건,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아.
둘 다 저지르는 개 같은 새끼가 더 많지만 말야.
그러니 이 미친놈이 네이트에게 복수하고 싶었다는 것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
죽이고 싶었다는 말에도 고개 끄덕여줄 수 있어.
상처의 심각성을 따질 수 있는 건 상처를 받은 사람이지, 그 상처를 낸 사람이 아니니까.
근데 씨발, 이건 아니지?
사람을 조각조각 내고 가죽을 벗겨버리는 게 무슨 복수야?!
몸뚱이에 팔 대신 다리 끼워 놓는 게 어떻게 복수가 되냐고!
가족이 끔찍한 꼴을 당했거나, 사람이 아닌 분풀이인형 비슷한 취급을 받은 게 아니라면 절대로 인정할 수 없는 악업이다!
“하지만 안 당했잖아, 다 알아!! 넌 네이트를 엄청 평범하게 대하고 있었어!! 벌벌 떨긴커녕 말대꾸까지 존나 꼬박꼬박하게 했지! 네놈 꼬라지를 보면 절대 연기가 아니었어!!
네가 한 짓은 복수가 아니야, 셰인 글렌!! 도살이고 도축일 뿐이야!!”
멈출 줄 모르고 솟아오르는 분노를 목소리에 담아, 놈의 얼굴에 쏟아부었다.
아, 근데 이 새끼 면상 진짜 열받네.
주먹 두 방을 먹였는데 뺨이 좀 붓기만 하고 별 타격이 없는 거 같아.
빌어먹을, 평소라면 이빨 몇 개 털어버렸을 텐데……!
그 탓에, 나는 놈이 휘어진 안경을 쓴 채로 킬킬 웃는 꼴을 봐야 했다.
“크, 크크, 그래, 도축했다. 기계장치의, 동력원으로 써야 했거든! 생명활동이 가능하면, 좀더 효율이 올라간다고 하니 손 좀 댔지. 그 작업하다가 좀 즐겼을 뿐이야. 그게 뭐, 어떻다는 거냐!”
“……즐겨? 즐긴 게 뭐 어떻냐고? 하, 그래, 잘 알았어.
넌 사람이 아니야, 셰인 글렌. 사람이길 저버린 그냥 인간이지.”
“아, 끄으윽……!”
무릎으로 놈의 목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내 팔을 붙잡고 있던 놈의 손이 떨어져가는 게 보였다.
나는 점점 파랗게 질려가는 놈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단도를 꺼내 들었다.
“메린, 이 새끼 손발 분질러줘. 잘라도 상관없어.”
“어.”
“끄, 끄르으으으윽!!”
으스러지는 소리가 나지 않은 걸 보니 잘라버린 모양이다.
그 편이 확실하긴 하지.
뼈가 가루가 된 손이나 발로도 마법을 쓸 수 있을지 누가 알겠어?
대항수단을 완전히 잃어버린 셰인 글렌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선 입에 거품까지 물고 있다.
손발이 잘렸는데도 의식을 잃지 않은 걸 보면 그럭저럭 끈기는 있는 것 같다.
잘됐네.
아주 좋은 태도야.
나에겐 불행한 조짐이지만.
“내가 왜 널 죽이려는 걸 막았는지 알아?”
“크어, 어흐, 으르르으으윽……!”
“값이 부족하거든.”
……메린이 흘린 셰인 글렌들의 피는 바닥에 고여 웅덩이가 되어 있다.
그럼 놈이 흘려버린 네이선의 피값은, 이걸로 다 치러진 걸까?
이 마지막 남은 셰인 글렌의 목을 쳐버리는 걸로 끝내도 되나?
‘천만에.’
마음속의 내가 단호히 부정한다.
이걸로는 한참 부족하다고, 이 놈 하나만으로는 다 치를 수 없다고 냉랭히 판정한다.
당연히 모자라겠지. 우리가 마주한 기계장치가 몇 대인데?
한 사람의 목숨으로 몇 대의 기계장치를 움직이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약 스무 명의 셰인 글렌으로는 턱없이 부족할 터.
그렇다 할지라도,
‘상환은 진행되어야 한다.’
높이 들린 저울대에 조금이라도 무게를 더해야 한다.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진 천칭을, 조금이라도 수평으로 돌려야 한다.
피와 몸뚱이로 부족하다면, 소리라도 짜내고 짜내야지.
뭐, 놈이 죽을 때까지 비명을 지른다 한들 평형이 되진 못할 거다.
나머지는 놈이 죽은 다음에 갚게 되겠지.
“대부분의 경우, 지옥 주민들에게 장난감이 되는 걸로 갚게 돼. 피는 이미 죽어서 안 나오니 고통에 젖은 비명으로 대신하는 거지. 사제님한테 들은 이야기이니 아마 맞을 거다.”
그것이 창조주가 세운 법칙이며, 기울어진 천칭을 수평으로 돌리는 순리이다.
……그 이야기를 들려주던 로나의 엄숙한 표정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그러니 가능한 크고 길게 질러. 의식을 놓지 말고, 가능한 오래오래 고통을 느끼는 게 좋을 거다.”
“끄, 으, 하아아……!!”
놈의 목에서 무릎을 치워주었다.
보라색으로 질려가던 놈의 얼굴에 다시 혈색이 돌고, 핏발 선 눈이 파르르 떨며 나를 쳐다보았다.
“왜, 왜 네가 나서서……!”
아무 상관도 없는 제3자 주제에, 왜 남의 피값을 받아내려 하고 지랄이냐?
아마 그렇게 묻고 싶은 거겠지. 타당한 지적이라 할 수 있다.
“왜냐고? 달리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
……터크나 클라이드는 셰인 글렌을 처단하기로 결정했으니 불가능하다.
단숨에 놈의 생명을 끊어서는 수지가 맞지 않아.
이 방의 벽과 바닥, 천장에 스며들었을 고통의 값이 전혀 치러지지 않으니까.
네이트 자신이 직접 받아내는 것도 불가능하다.
쇠스랑에 찔린 상처까지 복제된 건지, 당장에 움직일 수 있는 ‘네이트’가 단 한 사람도 없으니까.
그러니 제3자인 나라도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눈에 띈 이상 그냥 지나칠 순 없어. 내 성격이 그래.”
그 탓에 누구누구가 틈만 나면 호구 등신이라고 욕하지만, 내 성미가 그렇게 생겨먹은 걸 어쩌겠는가?
“특히 잘못을 저질러놓고 입 싹 닦으려는 새끼는 절대 두고 못 보거든!”
‘……그것이 대행자의 역할. 택함을 받은 용사의 의무일지니,’
죄에는 처벌을, 고난에는 구원을 돌려주어라.
도움의 손길에는 감사로, 들이밀어진 이빨엔 칼날로 답하라.
‘천칭을 맞추어라.’
균형을 깨뜨린 자를 멸절하라.
그것이 용사의 사명이다.
……그런 속삭임이 마음속 한구석에서 들려오는 걸 느끼며, 나는 단도를 쳐들었다.
“게다가 넌 이런 짓을 저지른 시점에서 이미 사람이 아니지? 사람 아닌 놈이 흘린 사람의 피값을, 같은 사람으로서 받아내야겠다……!”
“아, 아아, 으아아아아아!!”
귀를 찌르는 비명소리. 내 다리 아래에서 파닥거리며 떠는 몸뚱이.
공포에 미쳐 돌아가버린 눈동자. 칼자루를 통해 느껴지는 여러 촉감들.
하나하나 뽑히는 이빨, 하나하나 잘리는 귀, 조금씩 도려내지는 살점.
그 과정에서 얼굴에 튀기는 뜨뜻한 붉은 물.
전부전부 다 불쾌하다.
먹으려고 잡은 짐승을 도축하는 것도 가끔 속이 불편한데, 껍데기가 나랑 같은 종족인 놈은 오죽할까?
……가장 기분이 좋지 않은 건, 역시 등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일 것이다.
무슨 표정일지는 조금 상상이 가.
아까 밀라 클라운에게 손을 댄 나를 봤을 때보다 수 배는 더 질겁해하고 있겠지.
뭐, 나라도 그럴 거다.
한숨을 푹 쉬면서, 자루까지 붉어진 단도를 대강 닦고 칼집에 넣었다.
그런 뒤, 이제 움직이지 않는 셰인 글렌의 몸에서 일어났다.
비틀.
“윽……!”
시야가 크게 흔들리며 몸이 휘청거렸다.
이곳저곳을 딛어서 중심을 잡으려고 애를 썼다.
몸이 흔들리는 대로 발이 움직이고 있는데, 새로 생긴 시체에 걸려 넘어지지 않은 건 거의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겨우겨우 중심을 잡고, 아무것도 없는 맨 바닥에 멈춰 섰다.
머릿속이 빙빙 도는 느낌에, 고개를 푹 숙인 채 숨을 고르려 애썼다.
그런 내 귀에, 메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냐?”
“아니…….”
지독한 피로감이 느껴졌다.
자꾸만 감기려는 눈꺼풀을, 온 힘을 다해서 들어올렸다.
……으으, 비명을 너무 많이 들었나봐.
손도 질척거리고, 코에는 피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다.
그에 더해, 몸은 아직도 꿈을 꾸듯이 붕 떠 있는 느낌이 들고 있으니 여러모로 죽을 맛이었다.
“영차.”
갑자기 발이 땅에서 떨어졌다.
이내 포근한 온기가 가슴에 닿으면서, 굉장히 든든한 힘이 무릎 안쪽을 받치는 게 느껴졌다.
눈을 살짝 뜨니, 그녀의 목덜미와 귀가 바로 가까이에 있다.
……아, 또 메린에게 업혔구나.
“피……, 묻을 텐데…….”
“빨면 되지. 피 묻는 게 하루이틀도 아니고. 아, 토하진 마라.”
“안 해…….”
속이 메슥거리기는 하지만, 울컥 올라올 기미는 없다.
입 밖으로 끌어올릴 힘도 없나봐.
……나 그렇게 힘줘서 저질렀나?
“……에스트레야 씨,”
메린의 어깨 너머로 클라이드의 옷자락이 보였다.
……표정이 안 보여서 다행이야.
지금 그의 얼굴을 마주하는 건, 여러모로 견디기 힘들 것 같았다.
“……아, 맞다. 메린, 저기 괴상하게 생긴 거, 부숴야 돼.”
“뭐? 재조립기인가 뭔가 하는 기계? 네가 저 놈 해체할 때 부쉈어.”
해체라니, 누가 들으면 뼈라도 바른 줄 알겠네.
혀랑 귀랑 성기 자르고, 이빨 뽑고, 코 파내고, 양쪽 허벅지에 세모로 살점 도려내기만 했구만.
그 이상은 셰인 글렌의 목숨이 끊어진 탓에 할 수가 없었다.
시체에 이런저런 짓을 해봤자 아무 의미 없으니, 거기서 멈춘 것이다.
……아무튼 그 괴상한 구조물을 부쉈다면,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건 더 없는 거군?
크게 한숨을 쉬고, 눈을 감은 채 클라이드에게 말했다.
“그럼 클라이드 씨……, 나머지는 알아서,”
“에스트레야 씨,”
내 말을 뚝 잘라버리는 모습에, 마음이 한층 더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너무 지나쳤다,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잔인할 수가 있냐,
놈은 그래도 사서이니 자신이 처단했어야 한다……
뭐, 그런 식으로 비난하려는 거겠지?
……그러나 이어진 그의 말은, 내 예상을 아득히 초월한 것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고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엔 부드러운 미소가 걸려 있다.
그저 형식적으로 인사한 걸로 치부하기엔, 그는 무척이나 온화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엉? 이 사람, 지금 진심으로 수고했다고 하고 있는 거야?
“네이트나 저를 대신하시느라 고생하셨어요. 거기까지 수고를 끼치게 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어……”
“나머지는 저와 터크 씨에게 맡기시고 쉬세요.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개미 발톱만큼도 기대하지 않은 말을 나에게 전하며, 클라이드는 돌연 내 머리에 손을 올리고는 쓰다듬었다.
이 양반이 결국은 나를 완전 여자로 보게 됐구나……!
내일 엄청나게 후회할 텐데!
그러한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같은 남자가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으려는 찰나,
“……그대에게 깊은 평안과 안식을.”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리면서 의식이 뚝 끊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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