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4화 〉 외전 5) 어느 여름날 아침 ~ Party Banter ~
* * *
높고 높은 산꼭대기의 사원에서 나온 뒤, ‘끝없는 장서관’이 있다는 곳으로 향한 지 어언 이틀.
어느 빈 동굴 앞에 세워진 천막 안에서, 메린은 차가운 물에 담근 수건을 꼭 짜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앞엔 한 청년이 담요를 덮은 채 힘없이 드러누워 있다.
청년의 이름은 카엘. 대략 십 년간 소꿉친구로 지내다가 이틀 전에 그녀의 연인이 된 사람이자, 두 달도 더 전에 용사가 된 사람이다.
그런 그가 얼굴을 찡그린 채 한 마디 툭 내뱉었다.
“염병………”
“어, 그래, 염병 떨지 마라. 새삼스럽게 뭘 그래? 고향에선 늘 있던 일인데.”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일축한 후, 그녀는 물기를 짠 수건으로 카엘의 얼굴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고향 나오고부터 여태껏 한 번도 드러눕지 않았다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거 아니냐? 이게 너다운 거지.”
“너…… 딴 사람 앞에서 그런 소리하지 마라……. 싸움 난다…….”
“엥? 그냥 사실을 말한 건데.”
“알아…… 근데 사람들 대부분은 비웃는 줄 안다고…… 그러니까 하지 마…….”
말을 마친 그가 긴 숨을 내쉬었다.
몸에 쌓인 열을 조금이라도 밖으로 내보내기 위한 본능적인 한숨이다.
한차례 얼굴을 닦아준 후, 그의 이마에 손을 얹은 메린의 입에서도 곧 짧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열기 대신 체념을 한껏 담은 한숨.
지극히 자율적이면서 이성적인 한숨이라 할 수 있었다.
그걸 뒷받침하듯, 메린은 덤덤히 판정을 내렸다.
“점심까지 보류이구만.”
“아냐, 조금만…… 한두 시간만 쉬면 돼……!”
“아니, 한숨 자야 나을 거 같은데.”
곧바로 얼굴을 구기며 애걸하는 그와 달리, 어깨를 으쓱이는 메린의 얼굴은 지극히 무던하다.
그저 사실을 전할 뿐이라는 그 태연한 모습이, 그의 눈엔 무척이나 냉랭하게 비쳤다.
아무튼 그 결정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조금 열이 난 걸로 점심까지 머무르겠다는 것도 속이 터질 지경인데, ‘보류’라니.
상황에 따라서는 이대로 오늘 하루 더 묵겠다는 소리 아닌가?
‘그건 절대 안 돼.’
그들은, 용사인 카엘 에스트렐은 절대로 시간을 낭비해선 안 된다.
언제 또 다른 세계멸망의 징조가 나타날지 모르는데, 고작 열 따위에 누워 있을 순 없는 것이다.
나약한 자기 자신에 염증을 느끼면서, 카엘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냐……, 아니라니까……? 물약 마시면 움직일 수 있어…… 그러니까……!”
“같잖은 고집 피우지 말고 쳐자라, 미친놈아.”
“……!”
돌연 쏟아진 신랄한 말투가 카엘의 말문을 막아버렸다.
곧이어 파다닥, 작은 날갯짓소리와 함께, 파란 새 한 마리가 천막 안으로 날아들어왔다.
파랑새는 그의 이마에 앉아 작은 밀알 같은 검은 눈을 깜빡이면서 입을 열었다.
“한두 시간 같은 소리하고 있네. 네가 뭐 기운 없어서 뻗었냐? 너 몸살이야, 등신아. 해열제만으로는 안 돼. 퍼질러 자야 된다고.”
“그래도……!”
“자꾸 지랄하면 콱,”
펑.
말을 잇던 파랑새가 갑자기 연기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이윽고, 긴 머리를 뒤로 묶은 소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안으로 들어왔다.
[콱 기절시켜버리겠다니, 환자에게 뭔 짓인지, 원.]
“위슨…….”
[그냥 수면제도 같이 먹여버리면 되는데 말이죠. 내일 깨어나게 되겠지만.]
“……”
위슨은 다른 의미로 말문이 막힌 카엘을 향해 쓴웃음을 지었다.
[형은 지금 쉬어야 돼요. 몸살에 그거 말고 다른 약은 없는걸요.]
“………”
위슨은 그의 표정이 한층 더 어두워진 것을 알아차렸다.
아마 ‘다른 사람은 다 멀쩡한데 혼자 몸살로 뻗었다’고 낙심한 것이리라.
소리의 정령인 파랑새의 도움 없이도 훤히 들여다볼 수 있을 만큼, 그의 속내는 은근히 단순하고 뻔하다.
[서두르는 건 알지만 안 돼요. 억지로 움직이다간 진짜로 쓰러질걸요. 그럼 누나한테 죽을 거 같은데.]
“어. 죽일 거야. 열에 익어서 죽는 걸 볼 바에야 내가 죽이고 말지. 저번에 분명히 말했어. 시치미 뗄 생각 마라.”
“……알아. 안 까먹었어.”
대략 3주 전의 일인데 까먹을 리가 없지.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 때를 다시 떠올렸다.
……엘프의 숲에서, 감당할 수 없는 참상에 큰 충격을 받은 그를 다독여주던 그녀의 모습.
이번엔, 내가 너, 죽여버릴 거야.
그러니까, 무리하지 마.
그가 또 다시 열병 때문에 고비를 맞거든, 제 손으로 죽이겠다고 말하던 그녀의 얼굴.
모두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만약 그가 또 다시 큰 열병을 앓게 된다면, 메린은 정말로 그의 목숨을 끊으리라는 것을.
“………그건 안 되지.”
‘내가 널 죽여야 하는데.’
자신의 맹세이기도 한 뒷말을 삼켜버린 후, 대신 다른 말을 입 밖에 내놓았다.
“알았어…… 얌전히 잘게…….”
“진작에 그럴 것이지.”
톡 쏘아붙이면서, 그녀는 흐트러진 그의 앞머리를 정돈해주었다.
가시가 돋친 말투와 달리, 그 손길은 무척이나 부드러웠다.
위슨이 몸살 환자에게 해열제를 먹이고 나오자, 수프를 홀짝이던 로나가 곧바로 입을 떼었다.
“어때요?”
[죽지는 않을 거야.]
“그럼 됐네요.”
그런 뒤 정말로 태연하게 다시 수프를 마시는 그녀의 모습에, 블루벨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켰다.
“너 정말 사제 맞니? 안 죽으면 다가 아니잖아. 아프다는데 걱정도 안 돼?”
“더 심한 것도 말끔히 나으셨었는데요. 그때에 비하면 그냥 늦잠 자는 거나 다름없는데, 굳이 걱정을 왜 해요? 그런다고 낫는 것도 아닌데요.”
“그래~ 너 잘났다~ 야박한 꼬맹이 같으니.”
블루벨은 툭 내뱉듯이 말한 후 수프를 휘적거렸다.
어쩐지 심통이 난 것 같은 그 모습을 의아히 여기며, 로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블루벨 씨는 걱정되세요? 카엘 님이 당장 죽으면 어쩌나, 조바심이 나고 막 그래요? 그럼 메린 님이랑 같이 간병하시지 그러세요?”
“내가 미쳤니? 너희 둘 같은 매정한 꼬맹이들만 있으면 또 몰라, 메린이라는 애인이 버젓이 옆에 있는데 내가 왜 해?”
호로록, 그릇을 기울여 수프를 마신 후, 블루벨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따끈한 국물 때문이라기에는 표정에 살짝 그늘이 져 있었다.
“……근데 얼마나 아프길래, 메린이 ‘점심까지 보류’라고 하는 거야? 심각해?”
엘프 특유의 뾰족한 귀는, 천막에서 메린이 중얼거린 목소리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주워담은 모양이다.
위슨은 그 예민한 청력에 내심 감탄하면서 대답했다.
[그냥 몸살이에요. 푹 쉬면 나을걸요.]
“몸살…… 역시 어제 너무 힘들었나?”
“트롤 넷이랑 싸운 다음에 바르그 몇 마리가 튀어나왔잖아요. 카엘 님은 전사가 아니니까 힘들 만하죠. 길도 꽤 험했고요.”
물론, 말들이 못 지나갈 정도로 험한 길은 아니었다.
그저 위아래로 굽이진 길이 계속 이어졌을 뿐.
다리 튼실한 말조차도 지쳤으니, 일반인보다 체력이 낮은 편인 카엘이 나가떨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일부러 동굴에 묵은 보람이 없네. 사실은 별로 효과가 없던 건가?]
“아뇨아뇨, 동굴에 묵었으니까 그나마 저 정도인 거에요. 밖에 묵었으면 훨씬 심했을지도 몰라요.”
[그렇겠지?]
“그럼요. 그 증거로, 어제까지 쭉 산 타면서 단 한 번도 탈이 난 적 없잖아요. 다 위슨 씨 덕분이에요.”
[겸사겸사였는데, 뭐.]
뜻 모를 대화를 나누며 마주 웃는 두 소년소녀의 모습에, 블루벨의 눈썹이 위로 추켜올라갔다.
“일부러 동굴에 묵은 거라고? 아니, 그보다도 그거랑 카엘 녀석이랑 무슨 상관인데?”
[몰라요?]
“모르니까 묻는 거 아냐.”
자신을 놀리는 것으로 받아들인 것일까?
블루벨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약간 날이 선 말투로 대꾸했다.
위슨은 그런 블루벨을 향해 어깨를 으쓱인 후, 천막을 슬쩍 가리키면서 글자를 띄웠다.
[동굴에 묵으면 저 둘이 껴안고 자잖아요. 천막 펴고 따로 잘 때보다 훨씬 더 푹 쉬는 것 같길래 일부러 동굴 찾았죠.]
“……그거 저 녀석이 알면 엄청 날뛸 거 같은데.”
잘 익은 체리처럼 얼굴을 완전히 빨갛게 물들인 채, 쓸데없는 개짓거리 하지 말라면서 마구 소리를 질러댈 게 뻔하다.
블루벨은 이 여정에 합류한지 얼마 안 되지만, 이미 비슷한 꼴을 몇 번 봐온 터라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위슨 역시 그 모습을 떠올려본 게 분명하다.
일순 굉장히 질색해하는 표정을 지은 후, 그는 무척 단호한 표정으로 블루벨을 바라보았다.
[그러니 비밀로 해야죠.반드시.]
“……”
[으으, 잔소리 듣기 싫어.]
몸서리를 칠 정도로 싫은 모양이었다.
블루벨 역시 카엘의 잔소리에 질색하는 건 마찬가지였기에, 그 심정을 충분히 알 것 같았다.
“그렇지요~ 남에게 싫은 소리 하나 못하게 생기셨는데, 잔소리 엄청 심하시단 말이죠~”
로나가 한숨을 푹푹 쉬면서 그릇을 비우자, 곧바로 위슨이 뚱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사제님은 잔소리 들을 만해서 듣는 거잖아. 툭하면 고문하려고 들질 않나, 다른 사람 도발하질 않나.]
“에엥? 위슨 씨가 그런 말씀을 하세요? 툭하면 약재료 찾겠다고 뛰쳐가시질 않나, 물약 실험하시질 않나, 카엘 님한테 몰래 차랑 약 먹이시면서.”
[아니, 마지막 건 사제님도 공범이잖아.]
“아닌데요? 전 그저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요?”
[알면서 가만히 있는 거니 공범이지?!]
건조한 눈으로 로나를 보며 큰 글씨를 띄우는 위슨.
뾰로통한 얼굴로 그를 마주하는 로나.
블루벨은 그 두 사람을 잠시 아연히 바라본 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수프를 마셨다.
“카엘 녀석도 불쌍하네. 이런 문제아들이 동료라니…….”
“밥도 못하는 술꾼 엘프도 한 골칫덩이 아니에요?”
[근친에 피학성애에 쓸데없이 튕겨대는 변태 귀쟁이 때문에 두통 앓는 것도 있을걸? 없을 리가 없지.]
“시끄러, 꼬맹이들아, 난 술꾼도 근친성애도 피학성애도 괜히 튕기는 귀찮은 성격도 아니야! 밥도 할 수 있거든!”
[오, 역시 엘프네요. 기억력 좋네.]
발끈하는 블루벨을 보면서 두 소년소녀는 키득키득 웃었다.
투닥투닥거린다 싶더니 곧바로 합세해서 자신을 공격해대고 있다.
그 어처구니없는 모습에 블루벨마저 살짝 두통이 오려는 찰나,
“너네 좀 시끄럽다. 소리 좀 낮춰.”
뚱한 표정의 메린이 천막 바깥으로 빼꼼 고개를 내밀며 투덜거렸다.
곧바로 입을 다문 세 사람은, 그녀가 다시 안에 들어가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메린은 그대로 천막을 빠져나와 그들이 모여 있는 모닥불가로 다가왔다.
“카엘 님은요?”
“자.”
거의 속삭이듯이 묻는 로나에게 짤막하게 대답한 후, 메린은 솥에 걸린 국자를 떠서 빈 그릇에 담았다.
잠에서 깨자마자 카엘을 돌본 탓에, 아직 아침을 먹지 못했던 것이었다.
[해열제야 빈 속에 먹어도 상관없긴 한데, 뭐 안 먹여도 돼요?]
“억지로 먹여봤자 토하기만 하지. 이따 깨어나면 먹여보려고.”
[그때 되면 알려주세요. 플레마한테 수프 데우라고 할 테니.]
“그래.”
말을 마친 후, 메린은 수프를 먹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스푼을 움직이는 그녀를 힐끗 바라보며, 블루벨은 작은 의문을 품었다.
‘아무렇지도 않나?’
물론 두 사람이 한 동네 사람이었다는 것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다.
몸살기가 나버린 카엘을 보고서도 차분하게 대처하는 걸 보면, 메린은 그를 간병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는 게 분명하다.
아마 고향에 있을 때 자주 돌본 것이겠지.
하지만, 그건 단순히 소꿉친구였을 때가 아닌가?
지금은 그보다 더 깊으면서도 다른 관계, 즉 서로 연인 사이가 됐으니 조금은 다를 법도 한데.
그러나 여전히 메린의 얼굴은 지극히 덤덤하다.
엘프의 정밀한 눈으로도, 그 얼굴에 묻어 있을 법한 ‘염려’는 찾아낼 수 없었다.
“왜?”
시선을 들지도 않은 채, 메린이 불쑥 물었다.
“네?”
“아니, 블루벨. 왜 쳐다봐?”
뚫어져라 본 것도 아닌데 지명을 당했다.
그 사실에 블루벨은 살짝 소름이 돋아버렸고, 덕분에 말을 꺼내기 전에 먼저 목을 가다듬어야 했다.
“아니, 걱정 안 되나 싶어서.”
“걱정? 카엘? 그다지?”
그다지 걱정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석한 블루벨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재차 물었다.
“왜? 사귀는 사람이잖아. 괜찮을 줄 알면서도 괜히 걱정되고 그러기 마련일 텐데.”
“그냥 그쪽이 걱정 많은 편인 게 아니고? 뭐, 어쨌든 난 별 생각 없어. 그간 본 것 중엔 가장 가벼운 편이니까.”
“그렇게 자주……, 아니, 그렇게 크게 앓았던 거야?”
점점 더 커지는 의문을 나타내듯, 블루벨의 눈 또한 놀라움으로 크게 떠졌다.
‘말도 안 돼.’
……손을 대자마자 화들짝 놀라며 뗄 정도로 이마가 뜨거웠는데, 그게 가장 가벼운 편이라니.
“어렸을 땐 툭하면 드러누웠고, 두세 달 전까지만 해도 조금 무리하면 하루 그냥 날렸는데?”
“허……”
그런 약한 몸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게 놀랍고, 그 이야기를 굉장히 태연하게 이야기하는 이 여자도 경악스럽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가 막힌 건, 그런 연약한 자가 용사로 선택되었다는 점이었다.
‘전사도 아니고 팔팔하지도 않은 놈에게, 드래곤을 물리치라고 시켰다고?’
절대자이자 전능자는, 사실 이 세상이 멸망하길 바라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한 허황된 의심이 들 만큼 어이없는 인선이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안 뻗은 게 기적이지.”
그렇게 중얼거리는 메린의 목소리는, 아주아주아주 약간 낮아져 있었다.
표정은 여전히 덤덤하지만, 블루벨의 귀는 그 중얼거림 속에 미세한 감정이 들어 있다는 걸 감지해냈다.
‘그래도 울적해지긴 하는구나.’
‘연인 사이라서’ 느끼는 건 아닐 터.
그래도, 메린 역시 소중한 사람이 괴로워하는 걸 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가지고 있는 듯했다.
……어쩌면 이 인간 여자는, 생각보다 그렇게 무시무시한 사람은 아닐지도 모른다.
블루벨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짐짓 태연한 목소리로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그럼 금방 일어나겠네. 점심이 되기 전에 멀쩡해지겠지, 뭐.”
“그래요, 메린 님. 기운 내세요.”
“나 기운이 없진 않은데.”
눈을 멀뚱거리면서 대꾸하는 메린에게, 로나가 헤실 웃으며 말했다.
“의욕을 더 내시라는 뜻이에요. 카엘 님이 푹 쉬시도록 꼭 껴안고 자장가를 불러주는 식으로요.”
[사제님, 그러다 또 형한테 딱밤 맞는다.]
“이건 전부 사명을 위한 것인걸요. 카엘 님의 딱밤은 저에게 내려진 시련인 거죠……! 절대로 지지 않아요……!”
[이상한 데에 힘쓰고 있지 않아?]
위슨이 메마른 표정으로 딴죽을 거는 동안, 메린은 천천히 수프를 오물거리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단숨에 그릇을 비우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자장가 아는 거 있어. 아주머니가 부르던 거니까 효과 좋을 거야.”
“네네~ 여긴 걱정 마시고 얼른 가서 시행하세요~”
“응. 고마워.”
희미한 미소를 돌려준 후, 메린은 종종걸음으로 다시 천막에 들어갔다.
잠시 후, 블루벨은 천막 안쪽에서 나지막이 들리기 시작한 노랫소리에 이루 말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메린이 웃는 걸 본 건 처음이긴 한데, 어휴, 난 어떻게 되도 모른다.”
“시련이에요……!”
[용사를 돕는 사제의 시련이 이딴 거라니.]
한숨을 쉬는 엘프, 어째서인지 비장한 표정을 지은 사제, 그리고 소리없이 킥킥 웃으면서 책을 펼치는 마법사.
그들의 작은 휴식은, 정확히 네 시간 후,
“로나 너 이 자식, 진짜!!”
“아얏!!”
사제의 이마에 빨간 혹을 남기며 훌륭하게 끝을 맞이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