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289화 (289/475)

〈 289화 〉 279화 : 하늘이 내린 징조, 바다가 보낸 경고 (1)

* * *

알스 사제는 두 여사제에게 일어나라고 한 후, 방 안쪽 계단을 가리키며 말했다.

“올라가서 반성문 쓰세요. 제가 검사할 때까지 두 분 모두 식사는 없습니다.”

“……”

“대답.”

“아, 알겠습니다!”

엘시아 사제가 힐데 사제를 데리고 후다닥 계단으로 향했다.

얼핏 보기엔 엘시아 사제가 더 나이 많은 것 같은데, 실상은 저 남자가 더 우위에 있는 모양이다.

율리아 공주를 모시는 입장이라 그런가?

그는 두 여사제가 계단 위로 사라지는 걸 지켜본 후, 한숨을 푹 쉬었다.

“나 참, 아무리 어쩔 수 없다지만……. 아무튼 앉으세요, 카엘 님. 로나도. 차 드실 거죠?”

“아, 예. 감사합니다.”

쪼르륵, 알스 사제는 찻잔 세 잔을 차례로 채우면서,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예언사제의 역할은 징조를 찾는 것입니다. 잠을 깼을 때의 자세, 옷에 진 주름, 머리카락 상태…… 그 모든 것에서 넌지시 드러나는 창조주의 뜻을 보고 알리는 거죠. 카드나 돌멩이 등으로 점을 치기도 하고요.”

“네, 힐데 사제님께 조금 들었습니다. 점까지 치는 줄은 몰랐네요.”

“점술 역시 일종의 기도이거든요. 여하간 일반인이 보기엔 허무맹랑한 것들을 보고 믿어야 하기 때문에, 예언사제들은 모두 천진난만합니다. 권능을 발현한 순간부터 성장이 멈춘 것이지요.”

철없고 순진한 어린아이.

아침에 예쁘게 만들어진 오믈렛을 보며 ‘오늘은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까르륵 웃는 소녀와 같은 삶.

그것이 힐데 사제와 같은 예언사제가 짊어진 삶이다.

알스 사제는 그렇게 말하면서, 나와 로나의 앞에 각각 찻잔을 두었다.

“그리고 그들이 찾아내는 징조의 의미를 알아내는 것이, 저나 엘시아 사제와 같은 해석사제의 역할입니다. 예언사제가 수수께끼를 내면, 해석사제가 뜻을 풀어내는 거죠.”

“이름 그대로 해석하는 게 일이시군요.”

“맞습니다.”

그 때문에 예언사제와 해석사제는 하나로 묶어서 취급된다.

각 사제의 능력에 따라 약간 다르지만, 대개 예언사제 하나당 해석사제 한 명이 붙는다고 그는 말했다.

“달라진다 해도, 예언은 언제나 한 명이에요. 예언 하나에 해석 둘이나 셋이 붙는 식이죠. 그 반대의 경우는 결코 없습니다.”

“왜죠?”

“예언사제의 수발을 드는 것 역시 해석사제의 일이거든요.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종횡무진 날뛰지 않도록 감시하고 통제해야 하죠. 그런데 능력이 강한 예언사제일수록 영혼이 더 어립니다.”

“아.”

단번에 이해가 갔다.

심신의 나이가 모두 맞는 어린애도 돌보기 힘든데, 정신만 아이인 사람을 돌보는 건 오죽할까?

그 격차가 크면 클수록, 돌보는 사람이 감당해야 할 어려움은 몇 배, 어쩌면 몇 십 배나 더 크겠지.

그렇다는 건,

“애초에 엘시아 사제님이 힐데 사제님을 통제 못하는 게 이상한 거군요.”

“그렇죠.”

그래서 기강 잡는다고 둘 모두에게 그런 괴상한 벌을 내렸던 거군.

나는 알스 사제가 내어준 차를 홀짝이고, 생각보다 맛있는 거에 살짝 놀라면서 그에게 물었다.

“근데 왜 사제님이 징계하시는 거죠?”

“제가 엘시아 사제의 기수 선배이거든요.”

“아, 연공서열.”

……교단 사제들끼리도 그런 거 따지는구나.

신을 모신다고 해도 역시 사람은 사람이구만.

저절로 짧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알스 사제는 그런 나를 못 본 척하기로 한 건지, 지극히 태연하게 찻잔을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제대로 된 해석사제가 예언사제를 통제 못한다니,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겁니다. 그래서 율리아 님이 저를 여기 보내셨죠.”

“그리고 조사했더니, 인어가 여기 있었던 거고요?”

끄덕.

고개를 가볍게 위아래로 흔든 후, 그는 양손으로 깍지를 끼며 말했다.

“로나에게 대강 들었습니다. 엘프의 숲에서 탈타니스가 멸망한 것을 보셨다고요.”

“……네.”

“그게 며칠 전 일인지는 모릅니다만, 카엘 님,”

알스 사제는 어째서인지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건 6월초, 그러니까 선포식이 있던 날로부터 정확히 일주일 뒤에 일어난 일입니다.”

6월초라면…… 부엉이탑에 있을 때였던 거 같은데.

우리가 마녀들과 그 까마귀 악마를 상대하는 동안에 멸망했다는 건가?

“……그럼 대강 두 달 전에 멸망한 거군요. 동맹인데도 전혀 몰랐던 건가요?”

“저쪽이 알리지 않았으니까요.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도, 어떠한 표식도 없었어요. 아마 그런 신호를 보내기도 전에 당했던 것이겠죠.

그들이 여기 있다는 걸 안 것도, 그쪽에서 준 연락을 받아서가 아니라 이상현상을 조사하다가 발견한 것에 가깝습니다.”

알스 사제는 약간 무거운 느낌이 드는 한숨을 쉰 후,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지금으로부터 6주 전, 이곳 걸리프의 북쪽에 있는 한 어촌에서 작은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창조주의 큰 선물을 받은 한 어부가 수도로 떠나기 전에, 이웃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자리였죠.”

“큰 선물……?”

“청새치를 잡았는데, 뱃속에서 황금이 나왔더랍니다. 금화 수백 개는 족히 만들어낼 만한 크기의.”

“허?!”

하마터면 사레들 뻔했다.

청새치라면 턱이 창처럼 삐죽하게 튀어나온 물고기를 말하던 거 같은데.

아무튼 그 괴상한 생선의 뱃속에서 황금이 나왔다고?

세상에, 그거 완전 인생역전이잖아!

젠장, 나도 십 년 넘게 낚시하고 있는데 왜……

……아니, 아무것도 안 나오는 게 당연하군.

거의 고여 있는 거나 마찬가지인 호수에서 낚시하는데, 무슨 신기한 보물이 걸리겠어?

나는 씁쓸히 웃으며 말했다.

“굉장히 부러운 이야기이네요. 근데 작별인사로 잔치를 열다니, 그 어부도 꽤 품성이 좋은 분이군요. 그냥 입 싹 닦고 떠나도 될 텐데.”

“또는 지나치게 큰 행운에 겁이 나서, 작게나마 베푼 것인지도 모르죠. 잔치를 열었을 뿐 아니라, 그 청새치를 통째로 수도의 지하 신전에 예물로 보냈거든요. 기부금과 함께.”

지금은 수도에서 여관을 운영하고 있다더라.

알스 사제는 그렇게 덧붙이며 찻잔에 입을 댔다.

“나중에 기회가 되거든 들러보세요. 생선 요리가 아주 훌륭하다고 정평이 나 있습니다.”

“아, 예…… 근데 그게 인어랑 무슨 관계가 있는 거죠?”

“그 황금은 여왕 인어의 보물상자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피난 가다가 흘린 건가?

그걸 지나가던 청새치가 날름 먹은 거고.

으음…… 아니야, 여왕의 보물상자에서 나온 거라고 했잖아.

황금이 흘러나올 정도로 상자에 큰 구멍이 났다면, 다른 보물들도 바다에 흩뿌려졌을 터.

하지만 알스 사제의 말에 의하면, 발견된 건 커다란 황금뿐이다.

즉, 여왕의 보물상자는 망가지거나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일부러 뿌렸군요. 눈길 끌려고요.”

아니면 여왕의 부하가 황금 빼돌려서 도망가다가 죽었든가.

………에이,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겠지.

알스 사제는 내 말을 듣고 빙긋 웃었다.

“좋은 추론이군요. 이야기가 잘 통할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정답은 아니지만요.”

“그럼……?”

“인어 하나가 빼돌리고 도망가다가 죽었습니다. 그 시신은 남쪽 해안가에 떠내려 왔고요. 가슴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고 하니, 보나마나 청새치에게 당한 거겠죠.”

“아잇, 진짜.”

아니 왜 항상 가장 아닐 것 같은 얘기가 정답이냐?

일부러 나 엿 먹이려는 거야, 뭐야?!

그보다도……

“인어들이 물고기를 조종할 수 있나 보네요.”

“뭍에 올라오면 사람처럼 걸어다닌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로나가 헤실 웃으며 덧붙였다.

사람처럼 걸어다닌다…………

으음, 상상이 잘 안 되는군.

“그러고보니 말로만 인어, 인어 들었지, 실제로 본 적이 없어. 어떻게 생긴 거야? 켄타우로스 같은 식인가?”

“저도 삽화만 봤는데, 상반신은 귀 없는 인간처럼 생겼고, 하반신은 고등어였어요. 알스 사제님은 직접 보신 적 있지 않나요?”

“5년 전, 율리아 님이 정식으로 대언자가 되셨을 때 한 번 봤지.”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계속 말을 이었다.

“대부분의 인어들은, 허리를 기준으로 위는 인간, 아래는 바닷물고기이더군요. 도미, 쥐치, 고등어, 장어, 갈치…… 아, 여왕은 참치였어요.

근데 개중에는 기묘하게 섞였다고 해야 하나…… 여왕의 호위병이 문어 인어였는데, 팔과 다리가 각각 네 개씩이더군요. 전부 빨판이 달려 있었고요. 솔직히…… 그리 오래 보고 싶진 않더군요.”

그 외에도 무수한 다리가 달린 가재 인어나, 얼굴만 약간 인간 비슷하게 생긴 거북이 인어 등등이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아무래도 상반신과 하반신이 딱딱 나뉘어져 있는 건, 물고기 인어만 가지는 특성인 듯했다.

“어, 그럼 물고기 인어가 뭍으로 나오면 꼬리 지느러미로 걸어다니는 거야? 우와.”

“그건 당사자들에게 직접 물어보시라고 하고 싶지만, 가능할 것 같지 않네요.”

그가 중얼거리면서 한숨을 푹 쉬었다.

이번에는 확실히 무거워 보이는 게,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왜요? 혹시 인간을 황금 도둑이라고 규탄하고 있나요?”

“차라리 그런 거라면 낫죠. 선전포고 당했습니다.”

“푸흡?!”

……이번엔 확실하게 사레에 들리고 말았다.

한 어부가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된 지 2주 후, 즉 한 달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청새치 뱃속에서 황금이 발견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율리아 공주는, 그 어촌을 담당하는 사제에게 해당 사건을 면밀히 조사하라고 일렀다.

인어를 목격한 사람이 있는지도 함께.

역시 대언자인 만큼, 바다에서 이상현상이 발견되자마자 곧바로 인어를 떠올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허탕이었어요. 그 어부는 그저 평소와 같이 낚시를 했고, 드물게 큰 청새치를 잡아서 기뻐하던 찰나에 더 큰 보물을 발견했을 뿐이었죠. 옛날이야기에 나올 법한 전개이긴 한데, 정말로 그뿐이었던 겁니다.”

그러나 무언가 일이 벌어진 건 분명했기에, 율리아 공주는 바다를 뒤져보는 걸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잠수부를 모집하기로 결심한 순간, 그녀에게 추가 보고가 올라왔다.

“하나는 해안가에서 발견된 이상한 시신. 그리고 또 하나가 남쪽 바다의 소용돌이였습니다.”

“그 청새치한테 찔려 죽은 인어 시신이군요. 근데 소용돌이가 왜요? 바다에선 흔한 일 아닌가요?”

“아뇨, 흔하진 않아요. 이따금 일어나는 일이지, 심심하면 나타나는 현상이 아닙니다. 이삼 일에 한 번씩, 정해진 시간에 딱딱 맞춰서 일어나는 건 명백한 이상현상이죠.”

……자주 일어나는 게 아니구나.

이야기속 주인공들이 바다에 배를 띄울 때마다, 하나같이 소용돌이에 휘말리길래 흔히 일어나는 줄 알았는데.

말없이 눈을 끔벅이고 있자, 알스 사제가 말을 이었다.

“힐데 사제가 폭주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입니다. 본래 정기적으로 하던 계시 기도 후부터, 징조를 찾아야 한다며 마을 여기저기를 쏘다니기 시작했다고 해요. 그게 진짜 징조라면 좋았겠지만, 대부분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어어, 그건……”

“제가 여기 와서 재차 확인한 거니 틀림없어요. 저는 율리아 님을 모시는 비서이지만, 여기 있는 로나처럼 그분이 세운 ‘특별사제’이기도 해요. 율리아 님을 제외하면, 교단에서 제가 가장 뛰어난 해석사제입니다.”

그 때문에 율리아 공주는 그를 이곳으로 보냈다.

지금은 모든 지성체에게 위기가 닥친 시기인 만큼, 엘시아 사제의 능력으론 풀이할 수 없는 중요한 징조가 나타났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에서였다.

율리아 사제가 일반 예언사제처럼 집중적인 돌봄이 필요 없다는 것, 그리고 알스 사제가 이 근처 마을 출신이라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으리라.

그는 걸리프에 오자마자 힐데 사제가 기록해둔 징조들을 쭉 살펴보았고, 이내 눈앞이 아찔해지는 듯했다.

헛된 수고를 들였다는 허탈함이 아닌, 헛된 수고가 생겨났다는 사실에 대한 아연함으로 인해.

“보장할 수 있어요. 힐데 사제가 찾은 징조들은, 한두 개를 제외하고 전부 무의미한 것들이었습니다.”

“그거 좀 심각한 거 아닌가요?”

“조금이 아니에요. 많이 심각한 일입니다. 창조주께 연결된 예언사제의 ‘촉’을 누군가가 어지럽히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뭐, 그 덕에 카엘 님이 용사라는 사실이 묻힌 것 같긴 하지만요.”

“……그것도 그렇네요.”

힐데 사제가 우리를 가리켜 ‘용사 일행이다’라고 외쳤을 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우리 일행을 보며 수군거렸다.

그러나 던트 위병대장이 ‘이번이 다섯 번째다’라고 하는 순간, 그 수군거림이 일제히 쓴웃음이 되어 사라져버렸다.

즉, 그녀는 본의 아니게 연막 작전을 펼쳐버린 것이었다!

용사의 정체를 숨길 필요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편하니 좋은 걸로 치지, 뭐.

“그래도 한둘은 진짜 징조였다는 거군요.”

“천만다행이게도 말이죠.”

크게 한숨을 쉰 후, 알스 사제는 깍지 낀 손을 풀고 다시 찻잔을 들었다.

빙글빙글, 찻잔 속에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그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하나는 용사가 이곳에 온다는 것. 작고 작은 징조들이 모이고 모여, 오늘에야 겨우 실현된 예언이죠.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거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마세요.”

외부에 발설하지 말라.

그렇게 신신당부하는 모습에 바로 깨달았다.

나쁜 소식이구나.

그것도 엄청나게 나쁜 소식이야, 분명해.

이 마을이 멸망한다…… 그런 소식이 아닐까?

……그래도 막상 들으면 또 사레가 들릴지도 모르니, 나는 아예 찻잔을 내려놓고 그의 말을 기다렸다.

이내 알스 사제 역시 잔을 내려놓은 후, 재차 양손을 깍지 끼며 입을 떼었다.

“이 마을은 멸망할 겁니다.”

“와, 맞췄다.”

“……”

아차.

간만에 예상이 들어맞아서 그만……!

“……예에, 굉장히, 음, 심각한 일이네요. 정말로요.”

“………”

나를 향해 쏟아지는 건조한 눈빛들을 피하며, 조용히 차를 홀짝였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