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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295화 (295/475)

〈 295화 〉 285화 : 폭풍전야 (5)

* * *

룰루랄라, 그 말이 곧바로 생각나는 경쾌한 발걸음.

원래 산책을 좋아하는 건지, 힐데 사제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면서 길을 걷고 있었다.

“히히, 오늘은 날씨가 굉장히 좋네요! 바람이 없어서 좀 덥지만요! 아, 여기가 바로 걸리프 최고의 살구파이를 만들던 찻집이랍니다. 사흘 전에 문 닫고 떠났지만요!”

문 안쪽이 텅 비어 있는 집을 가리키면서 킥킥 웃는 그녀의 모습엔, 아쉬워하거나 슬퍼하는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여관에 모여 술을 퍼먹고 있던 그 사람들처럼 억지로 웃는 게 아닌, 진짜 웃음이 얼굴에 떠올라 있었다.

그곳에 살던 사람과의 재미있는 일화가 생각나서 그런 걸까?

하지만 그 뒤에도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는 일은 없었다.

빈 집이 군데군데 있는 주택가,

아무도 돌아다니지 않는 골목길,

몇 명만 나와서 일을 하고 있는 공동경작지,

그리고 밧줄에 매인 배들이 힘없이 흔들거리고 있는 부두.

그 어느 곳을 보더라도, 그녀는 밝게 웃으면서 재잘거렸다.

소중한 걸 잃은 슬픔을 겪은 적이 없는 어린아이처럼.

생전 처음보는 바다보다도, 그녀의 그 모습이 더 내 눈길을 끌었다.

“하아~ 역시 좋다! 마지막은 역시 바다이죠, 바다!”

아무래도 부두가 이번 안내의 종착지인 모양이다.

마침 조용하니 잘됐네.

그렇게 생각하며 계속 품고 있던 의문을 담으려는 순간,

“으앗, 짜!”

“……”

부두 끝에 쪼그려 앉아 있던 메린이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뭐야, 바닷물 먹어본 거야?

아니 진짜 어이가 없네.

“얌마, 촌뜨기 티 내지마! 바닷물이 짠 건 상식이잖아, 그걸 왜 먹어봐?!”

“보기엔 호숫물이랑 똑같잖아, 진짜 짠가 했지! 으으…… 근데 진짜 장난 아니야, 소금을 들이부은 거 같아!”

“……그 정도냐?”

어지간한 일엔 미동도 않는 저 녀석이 난리를 피울 정도로 짜다고?

어디……

손가락 하나를 바닷물에 담근 후, 혀 끝에 살짝 대보았다.

“윽?!”

우와, 짜다!

정신 나갈 정도는 아니긴 한데 그래도 짜!

염장고기보다는 안 짠데 그래도 짜!

세상에, 이러니 그 모험가 동료가 먹고 죽었지.

혀에 살짝 댔는데도 마르는 것 같은데, 그걸 퍼먹었으니……!

“아하하핫! 바다는 처음이신가봐요?”

“으으, 네……. 야, 메린, 사탕 하나 물자. 아, 사제님도 드실래요?”

“와, 고마워요!”

아까 성물 보관소 근처에서 산 알사탕을 하나씩 사이좋게 입에 넣었다.

휴, 살 거 같네…….

긴 숨을 내쉰 후, 나는 히히 웃고 있는 힐데 사제에게 물었다.

“원래 웃음이 많으신 건가요?”

“네?”

미소를 입에 건 채,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을 안에선 조용하던 바람이 불며, 그녀의 베일과 로브 자락이 살짝 물결쳤다.

끼룩끼룩하는 괴상한 새 소리가 들려서 그렇지, 부두는 무척이나 평화로운 분위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에게 되묻는 내 목소리는 나 스스로도 약간 놀랄 정도로 차분했다.

“지금도 그렇고…… 아까 마을 사람들이 떠난 자리를 봐도 잘 웃으시길래 궁금해서요. 그, 슬프지 않나요? 마을이 많이 비었던데.”

“네. 전혀 슬프지 않아요. 모두 살아있으니까요.”

해맑게 웃으면서, 힐데 사제는 말을 이었다.

“물론 가게가 없어진 건 아쉬워요. 맛있는 살구파이도, 사람들의 머리를 재미있게 만들던 이발사도 없어졌으니까요. 하지만 그분들이 다른 곳에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무척 기뻐져요! 좋은 분들이었거든요!”

……아예 관점이 달랐었구나.

그녀는 빈 집을 보면서 그곳에 살던 사람들의 앞일을 그리고 있었다.

어딘가 다른 곳에 무사히 정착한 모습, 단지 뒷배경이 조금 달라졌을 뿐인 일상을 상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웃음이 나올 수밖에.

그리고 지금 그녀는 사탕의 달콤함에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나 역시 입 안에서 담뿍 피어나는 소소한 행복에 미소가 절로 나왔다.

아마 메린도 웃고 있겠지.

그새 도로 등을 돌린 채 쪼그려 앉아 있어서 얼굴이 안 보이지만.

다 큰 어른 셋을 웃게 만든 아주머니의 솜씨에 감탄하면서, 문득 생각난 또 다른 의문을 입에 올렸다.

“어떤 아주머니에게 들었어요. 배가 올 테니 기다리라고 하셨다면서요?”

“네. 엘시아는 아니라면서 엄청 화냈지만 틀림없어요. 배가 올 거에요.”

……엥?

엘시아 사제가 해석하는 사람 아니었나?

근데 그 사람이 틀렸다고?

내 표정을 본 힐데 사제는 키득키득 웃은 후, 별안간 뽐내듯이 가슴을 쭉 내밀며 말했다.

“엣헴! 저는 해석의 권능도 함께 가지고 있답니다! 예언 쪽이 더 강해서 예언사제가 됐죠! 헤헷, 굉장하죠~?”

“허? 그런 게 가능한가요?”

“그럼요! 말씀을 직접 받는 사람이 스스로 그 뜻을 깨닫는 일이 왜 없겠어요? 물론 흔히 있는 일은 아니에요. 그리고 예언사제가 되어서, 이제 해석 쪽의 수련은 안 하니까 좀 약해요.”

“그런데도 엘시아 사제님이 틀렸다고 하시는 거에요? 굉장한 자신감이시네요…….”

어쩌면 어린애 특유의 감인지도 모르겠다.

가끔 그런 일이 있지.

어떤 일에 대해 아이가 뜬금없는 소리를 하면서 맞다고 우길 때가 있다.

당연히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어도 조리 있는 대답이 돌아오진 않으니 ‘모르면서 그냥 박박 우긴다’고 무시하기 마련이다.

근데 나중에 돌아보면 그 아이의 말이 전부 맞았다는 소름 돋는 결과가……!

막상 그때가 되면, 그 아이 자신을 포함해서 다들 진작에 그 일을 잊어버린 뒤이니 아무 의미도 없지만.

아마 힐데 사제도 그러한 직감이 움직인 것이리라.

어쨌든 감성은 어린애나 마찬가지이니까.

“엘시아가 틀렸을 수밖에 없어요. 다른 여러 징조와 함께, 그 뜻까지 직접 마음속에 새겨졌거든요.”

……문득 알스 사제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누군가가 그녀의 ‘촉’을 어지럽혔다고, 그녀가 쏘다니면서 발견했던 징조들의 대부분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고.

혹시 그녀가 발견한 ‘배가 올 것’이라는 징조도……?

“카엘 님,”

“어, 네?”

불현듯 이름을 불린 탓에, 나는 흠칫 놀라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살랑거리는 바람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힐데 사제가 나지막이 말을 꺼냈다.

“걸리프를 대강 돌아보셨는데, 소감이 어떠세요?”

“어어…… 글쎄요, 조금 많이 쓸쓸해진 상태라서 무어라 말하기 힘드네요. 음, 그래도 무척 좋은 곳이었을 거 같아요.”

그간 읽었던 이야기속 풍경들로 군데군데 나 있는 구멍들을 대강 메꾸면서 상상해보았다.

매일 동이 트기 전에 부두에 모이는 어부들.

둥실 떠오른 아침해와 함께 돌아온 어선엔 물고기가 한가득 실려 있고, 그 물고기들은 나무통이나 상자에 담겨 여기저기로 옮겨간다.

어린애들은 그물이나 낚시대를 가지고 놀고, 어부들은 잠시 술집에 모여서 한 잔 걸치며 어획량이 어쩌고 하는 대화를 나눈다.

광장에는 바다를 즐기러 온 관광객이, 시장에는 그 관광객들과 점심 식재료를 사러 나온 아낙네들로 북적거리겠지.

어쩌면 성물이 있던 그 건물이 북적일수도 있고.

“그리고 쨍쨍하게 내리쬐던 해는,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왔다가 서쪽으로 기우는 거죠. 여긴 바다가 있으니까, 아마 저 안으로 가라앉겠네요.”

몇 시간 뒤면 나도 그 광경을 보게 되겠지.

아마 무척 아름다울 거야.

지금처럼,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아래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모습도 무척 아름다우니까.

내 말에, 힐데 사제는 한층 더 환한 미소를 지었다.

“네, 굉장히 아름답고 살기 좋은 마을이에요. 3주 전까지는 전혀 몰랐지만요.”

“그 전까지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으셨던 거에요?”

“거의 안 나왔어요. 기껏해야 축제 때마다 광장에서 감사 기도 올린 정도일까요?”

“그러고보니 바깥에 거의 나오지 않는다고 하셨었죠? 음…… 혹시 금지되어 있나요?”

“네. 여러 사람 고생시키니까요.”

일말의 주저없이 대답하며, 힐데 사제는 말을 이었다.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제들은, 가장 먼저 ‘함부로 밖에 나가지 말라’는 것부터 배운다.

호기심과 충동에 이끌려 길을 잃어버리거나, 교단에의 인질로 삼으려고 납치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설사 그런 일이 일어날 턱이 없는 평화로운 마을일지라도, 그들은 절대 혼자서 신전 바깥을 나갈 수 없다.

‘조금 많이 똑똑하지만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어린애’가 혼자 돌아다니면, 반드시 말썽이 벌어지니까.

방긋방긋 웃는 얼굴로 이야기를 마친 힐데 사제는, 천천히 몸을 돌리더니 바다와 마주 섰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요. 엘시아나 위병대장님을 고생시킨다는 걸 알면서도, 저는 바깥으로 나가야 했어요.”

“왜요?”

“알고 싶었거든요. 십오 년간 살아온 이 마을이 어떤 모습인지,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사는지, 꼭 보고 싶었어요.”

창문으로 내다보기만 했던 집들을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 그 끝자락에 살짝 발을 담가보고 싶었다.

특유의 향취를 품은 바람을, 다른 사람들과 같은 높이에서 느껴보고 싶었다.

그 말을 한 후, 그녀는 다시 살짝 나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그거 아세요? 여기서 저~기 골짜기를 보면, 능선이 갈매기 모양이랍니다.”

그녀의 말에 곧바로 몸을 돌렸다.

성벽 너머로, 우리가 지나왔던 골짜기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약간 옆쪽에서 보는 거라 두 언덕이 서로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덕분에 골짜기가 하늘에 그리고 있는 선도 조금 다르게 보였다.

……가운데가 불룩 솟은 긴 곡선 두 개가 서로 딱 붙어 있는 모습.

저게 갈매기라는 새의 모습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잘 보면 새처럼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여기가 ‘걸리프’인 거에요. ‘갈매기 모양의 절벽’이라서 걸리프랍니다.”

“그렇군요.”

“……이곳에 부임한지 십오 년이나 지나서야 겨우 눈에 담았어요.”

씁쓸함이 담긴 말투에, 나도 모르게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힐데 사제의 고개는 이미 바다를 향하고 있어,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쪼그려 앉아 있던 메린은, 어느새 부두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있었다.

녀석의 검과 신발이 옆에 놓여 있는 걸 보니,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듯했다.

뭐, 아마 물장구 치고 있겠지.안 봐도 뻔해.

“그게 오늘이 아니라서 다행이네요.”

여전히 고개는 바다를 향한 채, 메린은 그 모습에 어울리는 느긋한 말투로 말했다.

“3주 전에 나오길 잘했네요. 텅텅 빈 데가 생기기 전이니까.”

“………그렇네요.”

기지개를 켠 후, 힐데 사제는 무척이나 후련한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정말로, 더 늦기 전에 보아서 다행이었어요. 엘시아에겐 미안하지만, 헤헷, 후회는 요만큼도 없네요!”

“그런 말씀하시면 또 엘시아 사제님께 혼나실 거에요~!”

뒤쪽에서 들려온 태평한 목소리.

고개를 돌리자, 로나가 뒷짐을 지고서 척척 걸어오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뒤쪽, 부두가 시작되는 해안가엔 창을 든 병사 몇 명이 이쪽을 지켜보고 있다.

……무슨 일이 생겼나?

절로 이마가 찡그려졌다.

“로나, 뭔 일 있는 거야?”

“별일은 아니고요, 던트 대장님이 저기 골짜기에 사는 벌레 좀 잡아 달라고 하셔서요.”

“벌레? 어, 설마 그 데굴데굴 구르던……? 그게 또 나타난 거야? 별일이잖아!”

“아뇨아뇨, 나온 걸 잡으러 가는 게 아니라 땅에 박혀 있는 놈들을 끌어내서 잡으려는 거에요. 메린 님이 아까 두 마리 잡으셨잖아요? 세 마리가 아직 근처에 있을 거라고 도와달라시네요.”

아무래도 그 미친 벌레는 다섯 마리씩 몰려 다니는 모양이었다.

갑자기 튀어나오기 전에, 미리 불러내서 없앨 작정이구만?

할 수만 있다면 그게 좋긴 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녀석들도 찾아야겠네.”

“아뇨아뇨, 저랑 메린 님 둘이면 충분해요. 성에서 내려다보니 부두에 계신 게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데리러 왔어요. 메린 님, 괜찮으시죠?”

“난 상관없는데…….”

메린은 말끝을 흐리면서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가도 되냐고 묻는 듯한 그 시선에, 나는 미소를 띄우며 입을 열었다.

“다녀와. 생채기 개수만큼 젤리 먹어버릴 테니까, 다치지 않게 조심하고.”

“끈 건들기만 해라. 남은 젤리 개수만큼 딱밤 맞을 줄 알아.”

약간의 살의마저 담긴 목소리로 으름장을 놓은 후, 메린은 신발을 다시 신고 허리에 검을 찼다.

“끝나면 여관으로 갈 테니까, 옥수수과자나 먹으면서 기다려. 다 먹지 말고!”

“어~”

대충 대답하며, 로나와 함께 부두를 떠나는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게 못 미더웠는지, 메린은 뒤로 걸으면서 나를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분명히 말했어! 남겨놓으라고 했다! 다 먹기만 해봐!”

“알았다고, 임마! 조심하기나 해!”

아니 과자 못 먹고 죽은 귀신이 붙었나, 어이가 없네.

그냥 녀석이 올 때까지 안 풀고 냅둬야겠군.

한숨을 쉰 후, 나는 킥킥 웃고 있는 힐데 사제를 향해 말했다.

“신전으로 돌아가실 거죠? 길은 알고 계세요?”

“그럼요. 어, 근데 왜 물으세요? 저 혼자 돌아가라고 하시려고요?”

“설마요.”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하며 부루퉁해진 그녀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었다.

“당연히 신전까지 같이 가려는 거죠.”

“와~”

“그래야 제가 여관에 돌아갈 수 있거든요. 여기선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네요.”

“와……”

힐데 사제의 얼굴이 환해졌다가 곧바로 뾰로통해졌다.

역시 어린애 감성이구나.

감정기복이 참 심하군.

입을 비쭉 내민 채 혼자 투덜거리는 그녀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여관 방에 돌아와 짐 정리를 한 후, 시간도 때울 겸, 오늘 둘러본 마을의 모습을 수첩에 적기로 했다.

고향에 있을 땐 되도록 안 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나오니까 틈만 나면 깃펜 잡게 되네.

내가 봐도 참 희한하다.

그래도 검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잡고 싶지 않단 말이지.

내 영혼의 상당수는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닐까?

마녀식으로 따지면, 그릇 이름이 ‘평화’인 거지.

……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이고, 그냥 겁이 많아서 그런 거겠지, 뭐.

딱밤 놓고 슬링 던지는 놈이 그런 그릇을 가질 리가 있겠어?

나는 자조하면서 종이를 채워갔다.

스윽, 슥.

펜 끝이 종이를 살살 긁는 소리를 음미하며, 머릿속에 아직 선명하게 남아있는 풍경을 조금씩 꺼내어 글로 옮겨간다.

이미 완성되어 있는 걸 옮겨 적는 일보단 확실히 재미있는 작업이야.

가끔 뭐라고 쓸지 머리 긁적이게 되지만.

그리고 이렇게 적다 보면, 막 펜을 들었을 땐 떠오르지 않던 일이 생각나곤 한다.

메린과 했던 고기파이 약속도 그렇게 다시 떠올랐지.

하, 진짜 말이나 한 마디 해줄 것이지.

……그런 의미에서 약간 뒤숭숭한 기분이 들었다.

뭐 까먹은 게 있는 거 같은데.

뭐가 있었나……?

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깃펜을 놀리고 있는데, 별안간 똑똑,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누구지? 주인 아저씨인가?

“카엘……? 나야, 블루벨.”

블루벨? 방에 있었나보네.

펜을 놓고 일어나 문을 열자, 블루벨이 약간 딱딱한 표정을 지은 채 서 있었다.

모아 잡은 두 손을 꼼지락거리고 있는 게, 왠지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뭐지? 왠지 불안한데.

설마 술기운 떨어져서 불안하다고 술 사달라고 하려는 건 아니겠지?

“왜? 무슨 일 있어?”

“……할 말 있어서. 들어가도 되지?”

와, 다행이다, 술 얘기가 아니구나!

속으로 크게 안도하며 문을 열어주었다.

블루벨은 한 걸음, 두 걸음, 주춤거리며 방 안에 들어오더니, 곧 가슴을 쓸며 긴 숨을 내쉬었다.

“메린은 없구나.”

“엉? 어. 로나랑 같이 벌레 잡으러 갔어.”

“그래? 그럼 좀 걸리겠네. 여기 앉아도 되지?”

그리고는 창가에 놓인 의자를 가리키며 묻자마자 털썩 앉았다.

……처음부터 대답 들을 맘이 없었구만?

어이가 없네.

“할 말이 뭔데?”

책상 앞 의자에 앉아서 묻자, 블루벨이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맞은편 의자를 가리켰다.

“이쪽으로 와. 뭘 그렇게 떨어져서 앉고 그래?”

“여기나 거기나 뭐 얼마나 된다고. 그냥 말해.”

“여기 오면 할게.”

“……”

아잇, 진짜.

이 할망구가 갑자기 또 왜 이래?

“빨리 오라니까? 중요한 얘기란 말야. 아, 얼른!”

“하………….”

돌겠네, 진짜.

할 수 없이 그녀가 가리킨 의자로 옮겨 앉았다.

“됐지? 아니 뭐 얼마나 중요한 이야기이길래 그래?”

“굉장히 중요한 얘기야. 저 하늘과 땅만큼.”

장난스러운 말을 쓰고 있었지만, 블루벨의 얼굴엔 농담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심각하기까지 한 얼굴로, 진지하게 나를 보고 있었다.

“……뭐 고민이라도 있는 거야?”

“아니, 너한테 묻고 싶은 게 있어.”

“뭔데……?”

조심스럽게 물은 후, 턱을 괴고서 그녀가 대답하기를 기다렸다.

블루벨은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고서 뜸을 들이더니, 이내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카엘 너, 나 요리 가르쳐줄 맘은 있어?”

“?!”

의자에서 미끄러질 뻔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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