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8화 〉 288화 : 같은 이유, 다른 마음 (3)
* * *
여자의 분노는 지옥불보다도 더 뜨겁다고 했다.
그럼……
초점을 잃은 눈으로 나를 보던 그녀는, 대체 무슨 감정을 품고 있었던 걸까?
“메린, 메린, 진정해! 제발, 이러지 마!”
지금 다짜고짜 바지를 벗기려 드는 그녀를 말리려면,
“괜찮아, 할 수 있어. 방법은 대강 들은 적 있으니까.”
“그 얘기가 아니잖아! 메린, 제발……!”
내 말이 닿지 않는 그녀를 진정시키려면,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당장은 내 바지를 내리려고 하는 그녀의 손을 붙잡고 호소하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다.
다리를 오므리거나 몸을 비트는 거?
아예 꿈도 못 꾸지.
메린이 내 허벅지를 깔고 앉은 채, 제 머리로 내 가슴을 누르고 있으니까.
발버둥치는 것조차 용납되지 않는 절체절명의 상황.
그래도 포기할 순 없어.
메린을 말려야 돼……!
“하지 마, 메린, 제발! 안 돼, 안 된다니까! 이래선 안 된다고!”
“후후, 후후후…… 심장, 두근거리고 있어. 히히…… 쪽팔리냐? 너랑 나 사이에 새삼스럽지 않아? 히히, 걱정 마. 괜찮아. 그러니까,”
“윽!”
……하지만 얼마 안 가, 말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못하는 등신이 되어버렸다.
그녀가 내 양손목을 한꺼번에 잡고서 머리 위로 치워버린 것이다.
그것도 손 하나만 써서.
“긴장 풀고, 가만히 있어.”
그런 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다른 한 손으로 내 바지를 쭉 내려버렸다.
속옷까지 한꺼번에.
하하, 역시 메린이야.
한 방에 끝장내버리는구만. 빌어먹을.
……그래도 포기할 수 없어.
이대로 체념하고 동조해버리면, 메린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할 거야.
절대 그렇게 둘 순 없어!
“안 커져 있네.”
“그야 당연하지, 내가 무슨 변태인 줄 아냐?! 메린, 아직 안 늦었어. 제발 그만둬. 난 이런 거, 으읍?!”
그녀의 입이 또 다시 내 말을 삼켜버렸다.
시끄럽다는 거겠지.
아, 이젠 말도 못하는 병신이 됐군.
아주 약간의 틈도 용납하지 않는, 깊은 입맞춤이 또 다시 이어졌다.
물컹하고 매끄러운 침입자가 입 안에 밀려들어와, 바닥에 숨어 있던 혀를 휘감았다.
그 격한 포옹에 몸이 저절로 움찔거리는 거에, 아주 약간 부아가 치밀었다.
염병할 본능 새끼 같으니, 눈치 더럽게 없네.
몸이 마음을 배신한다는 게 이런 건가?
그런 내 모습이 만족스러운지, 메린은 흐릿한 두 눈에 웃음을 띄웠다.
……그렇게 좋아할 일이 아니야, 멍청아.
네가 지금 하려는 건 섹스가 아니란 말야.
강간이야, 강간. 겁탈이라고!
그러니까 그만해.
제발 멈춰. 손을 떼어줘.
네 마음만 더 아파질 거란 말야!
눈으로라도 그렇게 전하고 싶었는데, 메린이 도중에 눈을 감아버렸다.
내 의사 따위 살펴볼 가치도 없다는 듯이.
그와 동시에,
“흐읍……?!”
가느다란 손가락이 고간을 슥 훑었다.
뿌리부터 끝까지, 길쭉한 모양을 따라 쓸어내려가더니 살포시 쥐는 게 느껴졌다.
그냥 녀석의 혀를 깨물어버릴까?
………아냐, 안 돼. 그건 최악의 수야.
메린을 상처 입히기 싫은 것도 있지만, 내가 자신의 몸마저 거부했다고 생각할 거야. 분명해!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끔찍한 일이 벌어질 거란 불길한 예감이 뒷목을 서늘하게 식히고 있었다.
“하아…… 후후, 후후후…… 봐, 커지고 있어. 제대로 하고 있나보네.”
“윽, 메린, 손 떼……! 큭, 으읏!”
“왜? 별로야? 딱딱해지는 거 보면 아닌 거 같은데.”
“만지지, 말라고……!”
“왜? 너도 내 거기 만지잖아. 손가락 넣고 쑤시기까지 하면서.”
퉁명스럽게 핀잔을 놓으며, 녀석이 위아래로 기둥을 슥슥 문질렀다.
이따금 손아귀에 살짝살짝 힘을 주면서 주무르거나, 끝부분을 손끝으로 스윽 쓸기까지 하고 있다.
그렇게 손을 놀리는 와중에도, 그녀의 눈동자는 나에게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거침없는 손길에, 원하지도 않는 쾌락이 밀려와 정신을 못 차리면서도, 나는 그녀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마치 관찰받는 거 같아.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메마른 시선이 느껴지고 있었다.
평소에 들러붙을 때나, 어제 여자 몸이었던 나를 만질 때엔 즐거워하는 기색이 만연했는데.
그래도 메린이 내 아랫도리를 봤을 때, 발기가 안 되어 있던 건 불행 중 다행이었어.
조금이라도 서 있었다면, 역시 내가 좋아한다며 그녀가 더 심각하게 착각했을 테니까.
그게 다 그녀가 웃옷을 덜 벗은 덕분이다.
튜닉과 가슴속옷이 그녀의 풍만한 가슴을 꽁꽁 숨겨준 덕에, 눈이 미혹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자지 만져지고 있는 시점에서 이미 글렀지만, 그래도 ‘카엘이 덮쳐지는 거 좋아하더라’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는 안 나오겠지.
그 명예라도 지킨 게 어디냐?
“읏……!”
또 다시 끝부분이 건드려졌다.
터져나오려던 신음은 이를 악물어서 참았지만, 허리가 튕기는 건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아무리 본능이라지만, 젠장, 진짜 돌아버리겠네.
쾌감 같은 거 느끼고 싶지 않은데!
“이게 제일 반응이 크네. 후후, 아하핫…….”
그런 내가 재미있다는 듯이, 그녀는 웃음을 터뜨린다.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자지 끝을 문지르며, 내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그녀가 어느새 내 손을 풀어주고 있었다는 걸, 나는 그제서야 알아차렸다.
“움찔움찔거리는데, 쌀 거 같냐?”
“으, 안…돼……!”
“그렇겠지. 넣고 싶을 테니까. 잠깐만.”
인질이라도 잡는 것처럼 기둥을 쥔 채, 그녀는 한 손으로 자신의 브리프를 벗었다.
아직 속옷 안 벗고 있었구나.
어질어질한 머릿속에, 그런 사소한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도로 스르르 가라앉았다.
역시, 끝까지 할 셈이야……!
“메린…… 그만…그만해…… 제발……!”
“……왜?”
간절히 애원하자, 그녀가 낮게 읊조리듯이 물으며,
“끄악!”
자지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쾌락에 젖었던 머리가 번쩍이며, 곧바로 정신이 돌아올 만큼 강렬한 통증이 온 몸을 휘감았다.
다행히 그녀가 금방 힘을 푼 덕분에, 로나에게 치유 기도를 받을 필요는 없었다.
격통 때문에 마구 흔들리던 초점이 다시 맞춰진 후, 나는 물기가 일렁이는 시야 속에서, 메린이 나를 싸늘하게 쳐다보고 있는 게 보였다.
“왜 그만하라는 거냐? 내 몸 좋아한다며. 내 보짓살이 감싸서 기분 좋다며. 그것도 거짓말이었냐?”
“아냐, 아니야, 메린, 그래서 그런 게 아니라……!”
“아, 맞아. 몸은 거짓말 못하지? 그렇게나 보지 안을 마구 찌르고 휘젓고서, 몇 번이나 안에 싸댔는데, 안 좋으면 그런 거 못하잖아. 하마터면 오해할 뻔했네. 미안.
……그새 취향이 바뀐 게 아니라면 몰라도.”
마지막에 도로 목소리가 내리깔리며, 인질을 붙잡은 손이 점점 더 거세어졌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말을 부정했다.
“아니야……, 아윽! 절대 아냐, 취향 안 바뀌었어……!”
“그렇지?”
메린은 빙그레 웃으며 손에 힘을 푼 뒤, 내 뺨을 쓰다듬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럼, 닥치고 즐기기나 해. 기분 좋게 해준다는데, 왜 자꾸 뻗대냐?”
“메린……!”
“아직도 부끄러워? 나 참…… 뭐, 그게 너답긴 해.”
……이건 꿈이야.
그것도 아주 지독한 악몽.
메린이 내 말에 조금도 귀를 기울여주지 않다니.
듣고 싶은 말만 골라서 듣고, 나머지는 죄다 무시하거나 꼬아서 듣다니 말도 안 돼.
아무리 크게 화가 났더라도 말은 들어줬었는데.
제멋대로 왜곡하거나 하지 않았었는데……!
메린…… 정말 미쳐버린 거야?
아니지? 지금 잠깐만 그런 거지?
그냥 질투심에 사로잡혀서, 잠깐 머릿속이 흐려진 거야.
이성을 잃었을 뿐, 넌 여전히 내가 아는 메린이야. 그렇지?
그렇다고 해주라.
이게 끝나면 다시 평소대로 돌아올 거라고 해줘.
제발…….
“메린……”
기어코 기둥을 잡고 자신의 안에 직접 넣으려 하는 그녀를 보니, 눈물이 솟아나올 것 같다.
나를 보고 있지만, 나를 보지 않고 있는 메린.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도, 그녀가 너무나도 멀리 있는 것 같아서 가슴이 아려온다.
무심코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나 메린은 내 손을 잡더니, 침대 위에 살포시 놓아버렸다.
내던지지 않은 걸 고맙게 여겨야 하는지도 몰랐다.
“괜찮으니까 가만 있어. 으응……… 잘 안 들어가네……. 그래도, 윽, 들어는 가니까……”
설마 억지로 넣으려고……?!
안 돼, 그것만은 절대 안 돼!
설령 그녀가 내 물건을 짜부라뜨리고, 그 탓에 고자가 된다 해도 상관없어.
그녀가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억지로 넣는 것만은 반드시 막아야 돼!
몸을 반쯤 일으킨 후, 황급히 손을 뻗고 휘휘 내저으며 소리쳤다.
“안돼안돼안돼, 메린, 멈춰! 그러지 마!”
“가만히, 흐으, 있으라고,”
“네가 아파하는 모습 따위 보기 싫어! 그딴 거 하나도 안 좋다고!”
“……”
필사적으로 외치자, 메린은 얼마간 나를 멍하니 바라보더니, 엷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맞다. 넌 그런 거 못 보는 성격이었지? 그리고…… 그래, 젖어 있는 편이 움직이기 좋을 테니까…….”
그녀는 한 손으로 내 가슴을 누르며 도로 눕힌 후, 다른 손으로 자신의 사타구니를 희롱하기 시작했다.
어떤 기억을 더듬어가듯이, 고개를 조금 갸웃거리면서.
“으응…… 이렇게 했던 거 같은데…… 앗, 흐읏… 후으……”
“………”
충격에 할 말을 잃었다.
세상에, 그 메린이, 내 눈앞에서 자위하고 있어……!
아마 구멍에 손가락을 넣은 거겠지.
그녀는 손목을 깔짝이다가 이따금 어깨를 움찔거렸다.
이내 그녀의 뺨에 홍조가 돌면서, 질척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읏, 흐응, 후읏…… 하아, 하아…. 이 정도면, 됐겠지…….”
그런 뒤, 메린은 다시 내 물건을 잡고 그 끝을 가랑이에 대었고,
“앗, 하아……!”
“큭……!”
아까보다는 확연히 매끄럽게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뿌리 끝까지, 단번에.
하……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뭐라고 할까…….
제대로 반항도 못하고 당해버리는 게 비참하다고 해야 하나…….
“다, 들어갔어. 후후, 후후후……!”
해냈다는 듯이 웃는 그녀가 안타깝다고 해야 하나…….
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는데도, 속살이 자지를 감싸며 조물거리는 거에 찌릿찌릿한 쾌감을 느끼는 게 기가 막히다고 해야 하나…….
아, 모르겠다. 내가 지금 기분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어.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돼서, 빨리 끝났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어쩌면, 드디어 체념해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이 다음엔, 위아래로…… 아앗… 하아… 후으……”
그녀가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퍽, 퍽.
살이 맞부딪치는 소리와, 그녀가 신음을 내뱉는 소리만이 방 안에 조용히 울렸다.
“어때……? 기분, 좋아……?”
“……”
“별로야……? 아차, 위에 아직 안 벗었구나. 어쩐지 덥더라.”
내 침묵을 좋을 대로 해석한 모양이다.
그녀가 튜닉을 벗어던지고, 속옷마저 풀어서 던져버렸다.
천 조각 뒤에 숨겨져 있던 커다란 봉우리가 해방되면서, 가볍게 출렁거렸다.
그 광경이 눈에 들어오자, 가슴이 크게 두근거리며 고간이 한층 더 뜨거워졌다.
돌겠네, 진짜.
“아흣! 히히, 역시, 좋아할 줄 알았어. 자, 실컷 만져.”
그녀가 허리를 움직이면서, 내 손을 잡아 자신의 가슴에 대게 한 후, 이리저리 움직였다.
……이래선 내가 주무르는 건지, 아니면 그녀가 그냥 자위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기둥과 끝부분을 눅진히 감싼 채 꾹꾹 누르는 그녀의 속살.
그 매끄러움을 증명하듯이, 안팎을 오갈 때마다 점점 더 번들거리는 자지.
찔걱찔걱 하는 점성 어린 소리.
사타구니끼리 부딪치는 마른 소리.
그녀의 입에서 점점 더 크게 터져나오는 교성.
위아래로 크게 출렁이는 젖가슴.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
완전히 상기된 얼굴.
남자로서 여러모로 참을 수 없는 풍경이긴 하다.
메린이 눈만 탁해져 있지 않았다면, 벌써 두 번은 족히 쌌겠지.
그러나 지금은 그다지 참고 있지 않은데도 사정감이 무척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몸과 마음이 완전히 따로 노는 건 아닌 모양이야.
“하앙, 앙, 앗, 흐으읏…!”
……적어도 메린은 즐기고 있는 듯했다.
채 삼키지 못한 타액을 흘리며, 점점 더 빠르게 허리를 움직이고 있다.
그래…… 기분 좋아 보여서 다행이다.
이걸로 네 기분이 풀린다면 좋겠는데.
점점 더 격해지는 움직임에, 뿌리 쪽에서 점점 무언가 터질 듯한 감각이 올라왔다.
이제 슬슬 끝나려는 모양이다.
이윽고 그녀가 허리를 파르르 떨며, 자지를 쥐어 짜려는 듯이 강하게 압박했고, 그대로 그녀의 안에 욕구를 배출했다.
“하아…… 하아……”
……끝났네. 지금 생각해보면,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게 다행이었던 거 같아.
아예 반응을 안 했다면, 아마 메린이 더 심각한 오해를 하면서 처참한 일이 벌어졌을 테니까.
본의 아니게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가만히 메린을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몸을 바들바들 떨며 내 위에서 내려와, 바로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 뒤,
“흑, 우읏, 흐윽, 아아, 아아아아……!”
얼굴을 감싼 채 울부짖기 시작했다.
“왜, 어째서……! 저번보다 약하긴 해도 가버렸는데! 왜…… 왜, 따뜻해지지 않는 거야? 왜 더 추워지는 거야!”
“메린……”
“아아, 아파…… 아프다고……!”
그녀가 왼쪽 가슴 위, 심장이 있는 곳을 누르며 호소하듯이 말을 이었다.
“여기가, 아파. 마구 찌르는 거 같아. 아까부터 산산조각 나는 거 같아서, 아파서 미칠 거 같아……! 근데 지금은 춥기까지 해……! 어째서, 대체 왜!!
섹스한 건 마찬가지인데, 어째서 이렇게 다르냐고……….”
말을 마친 후, 메린은 그대로 앞으로 무너지듯 엎드려서 어깨를 떨기 시작했다.
……일어나서 달래주고 싶은데, 생각보다 더 세게 당했는지 움직일 기력이 별로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닿겠지.
천천히 손을 뻗어, 무성의하게 내팽개쳐져 있는 그녀의 손등을 잡았다.
눈물로 엉망이 된 그녀의 얼굴이, 나를 향하는 게 보였다.
“메린,”
생각보다 차분하게 말이 나오는 거에 내심 놀라며, 다른 쪽 손도 그녀를 향해 내민 후,
“……이리와.”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그녀를 불렀다.
그러자 늘 그랬듯이, 그녀는 한층 더 굵은 눈물을 흘리며 나에게 안겨왔고, 나는 그때마다 항상 했던 대로 그녀의 등을 힘껏 껴안았다.
……거봐. 네 마음만 더 아파질 거라 했잖아.
그래서 말린 건데, 네가 듣지 않았지.
뭐, 이미 저질러진 건 어쩔 수 없지만.
“괜찮아. 다 괜찮아.”
괜찮아, 메린. 일차적인 잘못은 다 나에게 있어.
그러니까, 내가 책임지고 널 보듬어줄게.
네가 울음을 그치고 마음을 추스른 다음엔, 평소처럼 말씨 험하고 눈치 없지만 웃는 얼굴이 정말 예쁜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말야.
“카엘…… 카에엘……”
“응, 메린. 나 여기 있어. 괜찮아, 어디 안 가.”
그렇게 속삭이면서, 나는 또 다시 내 튜닉을 적시며,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리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고보니 난 끝까지 윗옷 안 벗었네.
어린애처럼 튜닉 한 장만 걸치고 있는 게 왠지 우스워, 속으로 헛웃음을 켜며 그녀를 달래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