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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305화 (305/475)

〈 305화 〉 295화 : 바다와의 만남 (1)

* * *

다시금 눈을 떴을 때엔, 침대 옆이 텅 비어 있었다.

의식이 또렷해지면서 가장 먼저 들린 건, 후두두둑, 매서운 기세로 천장이 두드려지는 소리였다.

활발한 개 여러 마리가 위층에서 한꺼번에 마구 날뛰고 있는 것 같다.

아니면 팔뚝만 한 쥐 여럿이 뛰어다니거나.

……제길, 괜히 상상했어.

자다가 얼굴에 쥐 떨어졌던 때가 떠올라버렸잖아!

그 덕에 잠이 확 달아나버려서, 도로 잠들긴 그른 것 같았다.

메린도 없고.

아직 어두컴컴한 걸 보니 밤인 거 같은데, 이 녀석은 볼일이라도 보러 갔나…….

부스스 몸을 일으키자, 어깨를 덮고 있던 이불이 아래로 스르륵 내려갔다.

그 순간,

“……?!”

속까지 파고드는 듯한 한기가 느껴지면서 몸이 부르르 떨렸다.

말도 안 돼, 아까는 이렇게까지 춥지 않았었는데?

알몸이면 또 몰라, 얇긴 해도 위아래 다 입고 있구만……!

곧바로 몸을 이불로 꽁꽁 싸매고, 몸을 앞으로 굽혀 엎드린 채 긴 숨을 내쉬었다.

몸이 다시 따뜻해지면서 떨림이 잦아들 무렵, 익숙한 손길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카엘.”

“아, 아니야, 메린. 좀 추워서 그래. 괜찮아.”

“추워? 으응…… 열은 없네. 뭐, 날이 좀 서늘하긴 해. 넌 추위 잘 타니까 추울 수도 있겠다. 일어날래? 어차피 좀 있으면 깨우려 했으니 그냥 일어나라.”

어차피 눈이 완전히 떠졌으니 상관없긴 한데, 여전히 가차없구만.

선택지를 줄 생각을 안 하네.

쓴웃음을 지으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자, 메린은 기특하다는 듯이 내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탁, 탁.

딱딱한 것이 맞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서 작은 불꽃이 일어났다.

곧 따스한 주황색 빛이 피어나, 어두운 그림자 속에 숨겨져 있던 그녀의 옆얼굴이 환히 드러났다.

그렇게 침대맡에 두었던 등불을 켠 후, 그녀는 다시 나를 돌아보았다.

불빛에 반짝이는 그녀의 주홍빛 눈동자 속엔, 나를 염려하는 기색이 살짝 묻어나 있었다.

아마 내가 감기에 걸리진 않을까 싶은 거겠지.

걱정이 많다고 핀잔을 주기엔, 그간 내가 쌓은 업보가 너무 많았다.

“산에 있었던 때만큼 서늘하니, 망토도 걸치는 게 좋겠다. 마침 비도 오고.”

“비? 아, 역시 이거 빗소리구나. 많이 오나보네.”

“어.”

메린은 나에게 옷가지들을 건네며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 퍼붓고 있어.”

그 말을 뒷받침하듯이, 후두두둑, 천장을 두드리는 굵직한 소리가 음울하게 울려퍼졌다.

식당으로 내려가자, 상당히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우리를 맞이했다.

창마다 얼핏 보이는 진한 잿빛 하늘, 그 유리창을 매섭게 두드리고 있는 하얀 빗줄기.

바깥 바람이 꽤 센지, 우우우— 하는 음산한 소리마저 들리고 있었다.

일부러 그 분위기에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테이블은 거의 모두가 텅텅 비어 있다.

어제는 그렇게 북적거리고 소란스러웠는데.

눈부시게 환한 여름햇살이 마구 쏟아져 들어오는 덕에, 따로 조명을 켜지 않아도 됐었는데 말야.

그러나 지금 식당을 밝히는 건, 천장과 벽에 붙여진 촛불뿐이다.

그것도 어떤 테이블 근처의 벽에만 불이 밝혀져 있어, 식당의 다른 공간은 전부 어두침침한 그림자가 껴 있었다.

……그 테이블에 수프와 빵들이 놓여있지 않았다면, 그리고 거기에 아는 사람이 앉아 있지 않았다면, 도로 계단 위로 올라가버렸을 거야.

작은 안도감을 품에 안고서, 유일하게 온기를 내뿜고 있는 테이블로 다가갔다.

우리 둘 외에도 이 여관에 묵은 두 사람, 위슨과 블루벨의 사이에 앉았는데……

음, 어째 이 둘도 분위기가 영 찝찝한 거 같았다.

……어쩌면 메린이 블루벨의 옆자리에 잽싸게 앉아서 그런 건지도 몰라.

자리에 앉자마자 내 눈을 피해서 딴 데 보고 있고 말야.

녀석의 의도가 너무나도 뻔히 보여서, 마음이 약간 심란해진 것이다.

오, 주여. 얘를 진짜 어째야 합니까?

이젠 옆에 앉는 것도 거슬리나봐. 돌겠네, 진짜.

그나마 이 녀석이 블루벨 같은 ‘여전사’에게만 저러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작게 한숨을 쉰 후, 두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둘 다 안녕? 일찍 내려왔네.”

“……”

“눈이 떠져서.”

하나는 몸을 돌린 채로 묵묵부답.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어깨에 앉은 파랑새가 대신 대답하고 있었다.

아아…… 안 그래도 날씨가 안 좋은데……

“고개 처박고 다니기 싫으면 뒷말 잘 골라라. 어젯밤 소리 틀어버린다.”

“너 그거 사생활 침해야, 임마. 이 자식이 이젠 아주 대놓고 협박을 하네? 하, 네가 그러니까 내가,”

“‘넌 내 여자야, 내 거야’,”

“아아아아! 죄송해요죄송해요죄송해요, 안 깝칠게요, 너그럽게 봐주세요, 부디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에코 님!!”

곧바로 납작 엎드렸다!

으아아, 방이 가까웠나?!

왜 진짜로 저 놈이 어젯밤 소리를 기억하고 있는 거야!

서, 설마 위슨이나 블루벨에게도 들렸던 건 아니겠지?!

“걱정 마라, 너네 방 소리는 밖에서 안 들리게 했었으니까. 그렇게 신경 쓰이면 앞으론 소리 줄이든가.”

“아아, 정말 감사합니다, 에코 님! 그거와는 별개로 존나 주둥아리 찢어버리고 싶네요, 진짜로……!”

“오냐, 고마우면 네 빵 1/3 내놔. 한 입에 들어가게 잘게 뜯고.”

“염병…….”

눈물을 삼키며 놈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크흑, 이것도 어제 나 홀로 열등감에 미쳐서 메린을 힘들게 한 죄값이겠지.

아주 그냥 벌을 톡톡히 받는구나.

이젠 진짜 안 그래야지…….

바깥 날씨보다도 한결 더 우중충해진 마음으로 빵을 한 조각, 한 조각 잘게잘게 떼기 시작했다.

그런 나를 보며 소리없이 키득거리는 위슨 녀석과 달리, 블루벨은 눈길 하나 주지 않은 채 여전히 딴 데를 보고 있었다.

시커먼 그림자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식당 저 안쪽을.

………설마 뭐 있어서 보고 있는 건 아니겠지?

“저기, 블루벨, 왜 그러고 있어? 거기 뭐 있는 거야? 아니지? 아무것도 없지? 그냥 날씨가 꿀꿀해서 기분이 안 좋은 거지?”

“………”

“왜 아무 말도 안 하는 거야?! 아무것도 없다고 해줘!”

그러나 여전히 블루벨은 말없이 그쪽만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아니, 귀가 안 들리나?

“야, 걔는 그냥 냅둬. 쪽팔려서 저래.”

“……!”

아, 귀가 움찔거렸다.제대로 들리고 있었군.

근데 뭔 일이 있었길래 아예 등까지 돌리고 있는 거지?

파랑새에게 빵 조각을 먹이며 고개를 갸웃했다.

“어제 뭔 일 있었어?”

“귀쟁이가 기어코,”

휘이잉—

일순, 거센 바람이 테이블을 휩쓸고 지나간 것 같았다.

굉장히 신기하게도, 그 바람은 그릇이나 식기는 일절 건드리지 않은 채,

“……”

내가 빵 조각을 먹이고 있던 파랑새만 깔끔하게 치워버렸다!

우와, 아침부터 별 희한한 광경을 다 보네.

자연히 내 시선은, 그 묘기를 부렸을 가능성이 가장 큰 사람에게 향했다.

숨을 약간 가쁘게 쉬면서 여전히 저쪽을 보고 있던 블루벨은, 천천히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상당히 험악한 얼굴로 나를 매섭게 쏘아보면서 입을 열었다.

“묻지 마. 꼬맹이 너도 말하기만 해.”

“……”

뭔지는 몰라도 상당히 민망한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근데 블루벨과 방을 같이 쓴 위슨은 엄청나게 태연한데……?

녀석은 손가락을 퉁기더니, 여전히 책 페이지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말했다.

“카엘 형, 밤에 저 변태한테 가까이 가지 마요. 목숨이 위험해질 거에요.”

“………뭐? 대체 뭔 일이 있었길래?”

“묻지 말라고 했잖아, 죽여버린다?!”

앗, 블루벨이 새빨갛게 물든 얼굴로 곧바로 발끈했다!

내 멱살이라도 잡으려는 건지, 그녀는 나에게 손을 뻗었고,

“죽인다고? 배짱 좋네. 어디 해봐. 입에 네 내장 쑤셔 박아줄 테니까.”

메린이 곧바로 그 손목을 붙잡아서는, 블루벨과 얼굴을 마주하며 무시무시한 말을 쏟아부었다.

그녀가 지금 어떤 눈초리인지는 몰라도, 엄청나게 무서운 얼굴인 건 분명했다.

블루벨의 얼굴이 점점 파래지고 있었으니까.

으, 아침부터 이게 뭔 꼴이야?

일단 소란은 진정되었으니 메린에게 그만 됐다고 하려던 찰나,

“그래, 어디 한번 해봐, 이 나쁜 년아! 더는 못 참아, 내가 서러워서 진짜……! 애초에 내가 왜 어제 그런 꼴이 됐는데?! 다 너희 둘 때문이란 말야! 이 나쁜 새끼들아아아!”

블루벨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아니, 대체 뭔 꼴이 됐었길래 저러는 거야?

그보다 둘을 말려야 돼!

이러다 진짜 싸움 나겠어!

아마 또 매섭게 번뜩이고 있을 메린의 두 눈을, 나는 뒤에서 손으로 확 덮으면서 말했다.

“아침부터 뭔 지랄들이야, 둘 다 진정해! 메린, 임마, 갑자기 싸움부터 걸면 어쩌자는 거야! 블루벨, 댁도 그만해! 어제 뭔 일이 있었는지 관심 끊을게! 그러면 되지?!”

“……”

털썩, 블루벨은 다시 의자에 앉아서는 몸을 홱 돌려버렸다.

반면 메린은,

“히히.”

“…………”

어째서인지 그대로 나에게 머리를 기대면서 킥킥 웃었다.

아니, 어이가 없네.

헛웃음을 켜며 녀석의 뒤통수를 밀어서 떨어뜨렸다.

그러자 이번엔 두 손으로 턱을 괴면서 나를 향해 싱글싱글거리는 게 아니겠는가?

하하하, 이 녀석 봐라?

아직 정신을 못 차렸네?

귀엽다고 내가 봐줄 줄 알았다면, 아주아주 큰 오산이야.

곧장 녀석의 한쪽 뺨을 잡고 쭉쭉 늘려주었다.

“뭘 잘했다고 웃냐, 이 자식아! 아침부터 남한테 시비나 걸고 말야!”

“아아아! 아파아! 아으, 쟤가 너 죽여버린다니까 나도 모르게 울컥한 걸 어쩌라고오!”

“어휴, 진짜…….”

그래도 본인이 잘못한 건 아는지, 녀석은 아파하면서도 내 손을 쳐내거나 하진 않았다.

한숨을 푹 쉬면서 손을 놓고, 빨갛게 부어올라오는 녀석의 뺨을 슬슬 문질러주며 위슨에게 물었다.

“근데 다 차려놓고 왜 안 먹고 있어?”

따악.

위슨은 대답 대신 손가락을 퉁겼고, 곧이어 그의 어깨 위에 파랑새가 다시 나타났다.

녀석은 나타나자마자 몸을 부르르 털면서 입을 쫙 벌렸고,

“꺄아아악?!”

곧바로 새된 비명과 함께, 의자가 우당탕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역시나 블루벨이 두 귀를 붙잡고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고 있다.

하…… 아침부터 진짜 가지가지 하네.

일어나서 옷 입고 계단 내려온 것밖에 안 했는데 벌써 피곤해죽겠다.

파랑새는 내 시선을 받으면서도,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까닥이며 말했다.

“사제님이 곧 올 거라서.”

“그래……….”

휴대용 시계를 확인해보니 이제 곧 여섯 시 사십 분이 되려 하고 있었다.

오 분 더 지나도 안 온다면, 그땐 그냥 먼저 먹어버려야지.

그렇게 다짐한 순간,

끼이이익……

여관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천천히 열렸다.

하늘에 구멍이 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 시커먼 그림자가 우두커니 서 있는 게 보였다.

끼익……끼익……

누군가 자신을 밟을 줄은 몰랐다는 듯이, 나무바닥이 화들짝 놀라며 삐걱거렸다.

그림자는 그에 조금도 개의치 않고 흐느적흐느적, 불안정한 걸음걸이로 식당 안에 들어섰다.

어둑한 사위,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퍼붓는 비,

그런 빗소리를 뚫고 들려오는 발소리,

촛불의 가냘픈 빛으로는 밝힐 수 없는 시커먼 그림자.

당장이라도 성호를 그으며 메린을 붙잡고 싶은 모습이었다.

……위아래가 좀 길었다면 말야.

그럼에도 몸이 저절로 떨려오는 한기를 느끼면서,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그림자를 향해 말했다.

“야, 로나, 문 닫아. 추워.”

“어라, 저인 거 어떻게 바로 아신 거에요?! 으으, 이게 아닌데!”

“딱 봐도 너구만…….”

이중에 너처럼 키 작은 애가 또 어디 있다고?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여관 문을 닫고 터덜터덜 다가오는 로나를 바라보았다.

로나는 곧 불빛 안으로 시무룩한 얼굴을 드러냈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망토를 빈 테이블 위에 펼친 뒤, 남은 자리에 털썩 앉았다.

“간만에 카엘 님 깜짝 놀래킬 수 있을 줄 알았는데요.”

“안 그래도 돌아버릴 거 같으니까 하지 마, 제발.”

로나는 바로 성호를 그으며 기도를 올렸고, 그게 무슨 신호라도 된 것처럼, 우리는 일제히 스푼을 들어 수프를 뜨기 시작했다.

바닥을 구르고 있던 블루벨도 비실비실 일어나, 혼자 무어라 툴툴대면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다섯이 다 모인 걸로, 어떤 중요한 일이 시작되기라도 했다는 것처럼.

미약한 긴장까지 내려앉은 분위기 속에서, 로나는 평소처럼 헤실 웃으며 밝게 말했다.

“상당히 끔찍한 아침이네요! 비가 어찌나 퍼붓는지, 마을 여기저기에 냇물이 흐르고 있어요! 근데 여관에 왜 아무도 없어요? 주인장은 마을에 남겠다고 했던 거 같은데요.”

“이거 차려주고 나갔어. 가족들 데리고 신전 가겠다던데? 간 지 얼마 안 됐으니, 아마 짐 싸고 있을걸?”

어쩐지 텅텅 빈 것 같다 했어.

진짜로 이 넓은 곳에 우리 넷만 덩그러니 있었던 거구나.

필요 이상으로 스산할 만도 했다.

“신전보다는 다른 데가 더 좋을 텐데요. 뭐, 어쨌든 후딱 먹고, 대담 전에 할 것들 해치우러 가요!”

“뭘 하려고?”

“우물 메우고 제방 쌓고, 사람들 대피시키고, 화살이나 창 꺼내고, 비상식량 만드는 거 도와야죠! 카엘 님은 성에서 논의하시고요. 조금 있으면, 그리로 알스 사제님이랑 위병대장님이랑 도련님 등등이 모일 거거든요.”

“우와…… 뭔 작전회의라도 열리는 거야?”

으으, 그런 곳보단 다른 녀석들이랑 같이 마을 돌아다니면서 도우미 노릇하고 싶은데.

로나는 얼굴을 구긴 나를 향해 방긋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요~ 회의해야죠~ 전쟁 준비이니까요! 뭐, 지금은 수해 대책회의나 다름없지만요.”

전쟁 준비.

그 말에 스푼을 움직이던 손이 일순 멈칫했다.

……역시 희망적으로 볼 수는 없는 걸까?

인어들이 고향을 잃은 분노를 풀고, 대재앙이 끝날 때까지 이곳에서 같이 머문다는 선택지 따위는, 역시 주어지지 않는 걸까?

“다들 비관적이구나…….”

“나쁜 예언만큼 비수에 꽂히는 건 없으니까요! 물론 좋게 풀릴지도 모르지만, 대비는 해두는 게 낫잖아요? 평화롭게 잘 풀린다면, 위슨 씨가 우물을 다시 뚫으면 되죠. 안 그래요, 위슨 씨?”

로나의 말에, 위슨은 어깨를 으쓱였다.

“맨입으론 안 할 건데.”

“아하하, 그야 당연하죠~”

“로나 사제님, 당연하다고 하시면 안 되죠!”

음울하기 짝이 없는 날씨에 지지 않겠다는 듯이, 우리는 가능한 떠들썩하게 아침을 먹었다.

뭐, 일부러 밝은 척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럼 여덟 시에 부두에서 보자고!”

그렇게 굳게 약속한 뒤, 각자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나도 그렇지만, 아마 다들 종종걸음으로 서둘러 걸어갔겠지.

또 다른 한 걸음을 내딛는 시간조차도 아까우니까.

쏴아아아—

물웅덩이를 밟는 소리마저 삼켜버리며, 비는 계속해서 쏟아져내린다.

……어쩌면 이 마을을 가라앉히는 건 바다가 아니라 비일지도 몰라.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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