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7화 〉 297화 : 바다와의 만남 (3)
* * *
갈매기 절벽은 멸망하리라.
갈매기 절벽에 용사가 찾아오리라.
알스 사제는 무미건조한 말투로 읊은 후,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3주 전에 힐데 사제님이 발견하신 징조의 해석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용사가 찾아왔죠. 그것도 천사의 명을 직접 받아서.”
“……”
“그러니 이 마을은 멸망할 겁니다. 어제까지는 바닷물에 쓸려서 멸망할 거라 생각했지만, 오늘 보니 빗물이나 산사태에 휩쓸릴 가능성도 있겠더군요. 이 비가 계속해서 내린다면 말이죠.
다시 말씀드립니다. 걸리프는 멸망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구할 수 있어요. 그러니 시답지 않은 논쟁은 그만두시고, 마을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살릴지나 생각하시지요.”
낮게 깔린 그의 무거운 목소리에, 누구도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적막이 내리앉은 방 안, 나는 왠지 쏴아아, 하는 빗소리가 들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단단히 닫힌 유리창과, 그를 덮은 두툼한 커튼에 막혀서 들릴 리가 없는데도.
……다른 녀석들은 괜찮을까?
별일 없어야 할 텐데.
특히 블루벨이 비상식량 만드는 거 돕겠다고 나대지 말아야 할 텐데……!
“그 자가 용사라는 증거가 있나요?”
불현듯 울린 얇은 목소리에 이어, 또각또각, 맑은 굽소리가 방 안에 울려퍼졌다.
소리가 난 곳을 보니, 수수한 무늬의 드레스를 입은 소녀가 문 앞에 서 있는 게 보였다.
어깨를 감싸고 있는 비단 가운, 가슴 언저리까지 파인 슈미즈, 그 위를 살포시 덮으면서 끈으로 허리를 단단히 조이고 있는 커틀.
화려한 단추나 레이스 장식은 달려 있지 않지만, 모두 고급 옷감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소녀가 모두의 시선을 한껏 받으면서 한 걸음 더 안쪽으로 내딛자, 테이블에 앉아 있던 기사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영주의 아들조차도 일어난 걸 보면, 역시 저 소녀가 그 열 여섯 살 먹은 마님인 게 분명했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들어온 어린 마님은, 알스 사제와 나를 번갈아 보면서 재차 입을 열었다.
“용사가 찾아오리라는 예언이 실현되었으니, 이 마을의 멸망 역시 이루어질 것이다……. 예에, 일리가 있네요. 둘 중 하나의 예언이 이루어졌으니, 다른 하나도 그대로 실현될 가능성이 크긴 하겠지요.
하지만 사제님, 그 자가 정말 용사라는 걸 어떻게 믿죠? 아니, 애초에 용사라는 게 정말로 존재하는 건가요?”
앳된 얼굴에는 어울리지 않는 싸늘한 목소리로 쏘아붙이면서, 그녀는 우리 쪽으로 서서히 다가왔다.
“소식을 들었답니다. 대언자이자 최고사제이신 율리아 님께서 체포되셨다지요? 이종족과 내통해서 왕국에 혼란을 안겨주었다는 죄목으로.”
“……!”
두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함께 숨을 삼켰다.
율리아 공주가 꼭대기방에 갇혀 있다는 건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근데 그 이유가, 이종족과 짜고 나라를 어지럽혔다는 죄를 물려서 그런 거였다니!
말도 안 돼!
지금 이 대륙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전부 속임수로 보인다고?
한때 대륙을 삼켰던 ‘불구덩이’가 되살아나고, 알곡이 맺히지 않고 새 생명이 태어나지 않는 게, 모두 연극으로 보인다는 거야?!
크나큰 모욕이나 다름없는 말을 들었음에도, 알스 사제의 얼굴엔 어떠한 동요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저 무감정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을 꺼낼 뿐이었다.
“이제 소식을 들으신 모양이군요, 테레지아 님. 예, 맞습니다. 대언자님께선 현재 연금 중이십니다.”
“그것도 아주 순순히 체포에 응하셨다고요? 그건 즉, 죄목을 인정하셨다는 뜻이겠죠. 교단의 권위를 드높이기 위해, 있지도 않은 재앙을 연출하고 있다고 자백하신 거에요. 아닌가요?”
“당연히 아닙니다. 저희가 무엇 때문에 그런 성가신 일을 벌이겠습니까? 권위 따위를 드높여서 무엇에 쓰겠다고요?”
테레지아는 그의 말에 콧방귀를 뀌며 대꾸했다.
“그야 뻔하죠. 왕좌에 앉으시려던 게 아니겠어요? 신의 대리자가 통치하는 나라로 바꾸고 싶으셨던 것이겠죠. 교단의 가장 높은 자리도 유지하면서, 예언 때문에 빼앗겼던 왕위도 차지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잖아요?”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어처구니없는 소리에 곧바로 반박하려 했으나, 알스 사제가 나서지 말라는 듯이 발을 툭툭 치는 탓에 입을 다물어야 했다.
그런 나에게 엷은 쓴웃음을 보낸 후, 알스 사제는 다시 무감정한 얼굴로 테레지아를 보며 입을 열었다.
“흥미로운 고견이군요. 그를 위해 필요하지도 않은 용사를 내세워서 선포식이라는 행사를 벌이고, 이종족들과 연합해서 일부러 왕국민들에게 피해를 주었다? 그리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럼 아닌가요? 전부 다 들었어요. 엘프와 내통한 죄로 여러 고위 귀족들에게 형벌이 내려졌다면서요? 그것도 한둘을 제외하곤 모두 율리아 님을 곱지 않은 눈으로 본 자들이었죠!
여긴 또 어떻고요? 인어의 위협을 받은 데다, 이미 영주님께서 인질로 잡혀가셨지요! 힐데 사제님의 그 예언들도, 당신이 이곳에 온 것도, 전부 이곳을 인어에게 넘기기 위한 것 아니겠어요?!”
테레지아는 두 손을 꽉 쥐면서, 분노 어린 목소리로 날카롭게 소리쳤다.
“이 다음은 뭐죠? 우리의 터전과 목숨을 대가로, 율리아 님의 석방이라도 요청할 건가요? 그리고 알곡이 다시 결실을 맺게 하는 걸 대가로 왕위를 요구하고요? 그게 정녕 창조주의 뜻인가요?!”
무표정을 일관하면서 묵묵히 그녀의 힐난을 듣고 있던 알스 사제는, 마침내 그녀가 씩씩대면서 말을 마치자, 조용히 입을 열고 말했다.
“다하셨습니까?”
“뭐라고요?”
“하실 말씀 전부 하셨는지 여쭈었습니다. 그러시거든 이제 앉으시지요. 차라도 드시면서 마음을 가라앉히시고요. 아직 논의가 안 끝났습니다.”
“사제님……!”
그는 기가 막히다는 투로 자신을 부르는 테레지아를 무심히 내려다보았다.
“테레지아 님께서 무어라 생각하시건 상관없습니다. 좋으실 대로 보고, 듣고, 말씀하십시오. 그걸로 속이 시원해지신다면 그렇게 하시고, 눈앞의 일에 집중해주십시오. 아직 정식 혼례를 올리지 않았다고 하나, 당신은 이미 시클로 가문의 안주인입니다. 영지를 소유한 귀족으로서, 부군을 대신해 의무를 다해주십시오.”
“변명할 생각도 없다는 건가요?! 정말 뻔뻔하군요!”
“……이거 끝이 없겠네. 좋습니다. 딱 한 번만 말씀드릴 테니 잘 새겨들어주십시오.”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관자놀이를 매만진 후, 그는 테레지아를 포함해,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우리는 모두 창조주의 도구입니다. 율리아 님을 포함한 모든 사제들은, 오로지 창조주의 뜻을 구현하기 위해서만 살아갑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우리는 당신들에게 일절 관심이 없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병에 걸려 골골대든지, 배를 곯든지, 추위에 떨든지, 조금도 흥미 없습니다.”
……그의 냉담한 말에, 언젠가 로나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모든 사제는 창조주의 도구이며, 오로지 그를 위해서만 살아간다.
그 눈은 주인을 보기 위해, 귀는 주인의 뜻을 듣기 위해, 입은 주인의 뜻을 대신 전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주인의 뜻대로 쓰여야만 가치가 있으므로, 그 뜻을 거스르려는 생각은 결코 하지 않는다.
그 품을 벗어나는 것이 무엇보다도 큰 불행이다.
사람의 삶을 포기한, 그 맹목적인 헌신과 사랑의 표증(??)이 바로 권능이다.
상처와 독을 순식간에 치유하거나, 외적의 공격을 막아주는 보호막을 펼치거나, 앞날에 일어날 일에 대한 계시를 받는 등의 모든 능력들은, 모두 창조주의 뜻을 따르기 위해 심어진 특수기능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당신들을 돌보고 지키려 하는 것은 단 하나. 우리의 주인인 창조주께서 그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을 사랑하시는 우리의 주인께서, 사람의 영혼을 돌보라고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나, 창조주의 주석(??)된 해석사제 알스가 이 자리에 있는 건! 같잖은 화풀이를 하러 온 인어들에게서! 당신들 사람이 하나라도 더 물고기밥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란 말입니다!”
아마 말하다가 화가 올라온 것이리라.
내내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던 알스 사제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분노가 서렸다.
“권위를 드높인다고요? 세상을 지으신 지고의 창조주를 섬기는 우리가 왜요? 그딴 것 안 해도 창조주보다 더 큰 권위를 가진 분이 이 세상에 어디 있다고요?
율리아 님이 왕좌에 앉아서 나라를 통치하려 한다고요? 삶에 애착이 없는 그 분이 왜 그딴 번거로운 짓을 합니까?!
당신들 사람의 잣대로 우릴 가늠하지 마십시오! 판단하지도 말고, 우릴 이해하려 하지도 마십시오! 제발 좀 부탁드립니다!”
열띤 목소리로 외치며, 그는 얼굴이 파랗게 질린 테레지아를 가리켰다.
“똑똑히 들으셨습니까, 테레지아 아델하이트 로웬하임? 이제 냉큼 자리에 가서 앉으십시오! 의미도 없는 같잖은 망언으로 시간 잡아드시지 말고!”
어린 마님, 테레지아는 앳된 두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영주의 아들 옆에 앉은 그녀가 드레스 자락을 꽉 쥐는 게 보였다.
아마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중이리라.
그녀가 자리에 앉자, 영주의 아들은 물론이고 다른 기사들도 다시 의자에 앉았다.
또 다시 내려앉은 무거운 적막을 쫓아낸 건, 다시금 무미건조한 음색을 되찾은 알스 사제의 목소리였다.
“좋군요. 이제 제대로 논의를 시작하시죠. 마을 주민들을 어떻게 피난시킬 것이며, 그 시간동안 어떻게 버틸 것인지를.”
그는 좌중을 돌아보면서 단호히 말했다.
모욕적인 말을 들은 적도, 격한 감정을 내비친 적도 없다는 듯이.
그 눈은, 스스로 말한 것처럼 정말로 아무런 관심이 없는, 그야말로 무심하기 그지없는 빛을 띠고 있었다.
불편하기 짝이 없는 논의 후, 나는 알스 사제와 함께 부두로 향했다.
조금도 잦아들 기미가 없는 빗속을 걷는데도, 기분이 나빠지긴커녕 오히려 더 상쾌해지는 것 같았다.
휴, 진짜 무시무시한 시간이었어.
내가 그 사람들의 안중에도 없었던 게 천만다행이었다.
“사제님,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내지르신 것 같아요.”
“네? 잘 안 들리는데요.”
……진짜인가?
또 모르는 척하는 건지 알아보고 싶었지만, 지금 후드를 쓰고 있는데다 빗줄기가 너무 굵어서 그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냥 믿어주지, 뭐.난 관대하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배에 약간 힘을 주어서 다시 말했다.
“아까 회의실에서요. 너무 있는 그대로 말씀하신 것 아니에요?”
“아, 그거요? 괜찮아요. 교단의 가르침이거든요. 그럴 기회가 있으면 저희 스스로 말하기도 하는걸요. 다들 귀담아듣지 않아서 그렇지. 왜요, 실망하셨나요?”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무심했다.
내가 실망했다고 대답하더라도, 아마 “아, 그래요?”라는 대답만 돌아오겠지.
그러면 좀 부아가 치밀지도 모르겠다.
그 생각에 홀로 피식 웃으면서, 나는 그에게 대답했다.
“아니요, 그냥 좀 놀랐어요. 사제님이 그렇게 열불을 토하실 줄은 몰랐거든요.”
“안 그래도 시간이 별로 없는데, 자꾸 같잖은 소리를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잖아요. 저도 모르게 욱해버렸죠, 뭐. 근데 실망 안 하신 건 의외이네요.”
“로나에게 한 번 들었거든요. 뭐, 그때도 실망은 안 했어요. 본의는 어쨌든, 사제님들이 사람들을 돕고 계신 건 명백한 사실이니까요.”
신도들의 고해와 고민을 들으며 함께 기도해주고, 고아들을 거두어서 돌보고, 병든 사람이나 다친 사람을 치유해주고 있다.
정기적으로 정결 의식을 열어서 대대적으로 영혼을 정화하기도 하고, 축제를 열어서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선사하기도 한다.
그 모든 일들이 사람이 아닌 신을 위해 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어쨌든 사람에게 이득이 되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사제님들의 주된 일은 신을 섬기는 거니, 실망하는 것도 좀 웃기는 거 같고요.”
“보기보다 냉정하시네요. 충격 받으실 줄 알았는데.”
“냉정한지는 모르겠는데, 아마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그런 걸 거에요.”
나는 그에게, 그 돈독 오른 도시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전했다.
어떤 뒷골목 세력의 우두머리가 들려주었던,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움직이는 고아원에 대한 이야기였다.
“길을 떠도는 아이를 거두어서, 최소한의 의식주를 제공하고, 싹수가 보이는 아이를 길러서 여기저기에 팔아넘긴다고 하더군요.”
“말리스의 고아원이군요. 알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은, 거기 있다가 창관에 팔렸었다고 하더군요. 그 뒤로 좋지 않은 일들을 당했었고요. 그 사람의 과거를 떠나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 자체에 경악했어요. 뭔 미친 곳이 다 있냐고.”
사람을 사고파는 거래가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거래는, 성년을 맞이한 어른들이 일자리나 결혼을 위해 스스로 자신의 몸을 내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그것도 개미 더듬이만큼의 결정권도 없이, 순전히 다른 사람의 의지로 팔려가고 있다니.
그러한 악행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교단의 방침을 들으니, 조금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그 고아원은 어쨌든 애들을 구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요. 그대로 길거리에 있으면, 굶거나 얼어 죽었을지도 모르니까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건, 그 삶이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기 때문이리라.
나는 누군가에게 팔려본 적이 없으니, 그 일을 당했을 때의 심정을 모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알스 사제에게 있는 그대로 이야기할 수 있었다.
사람에게 흥미가 없는 신의 도구이니까.
“물론 저는 어디 팔려가 본 적도 없고, 그 고아원에서의 생활이 실제로 어떤 모습인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 고아원 덕분에 애들이 목숨을 건졌다는 건 변하지 않아요. 상점 일꾼이나 부잣집에 팔려간 애들은 신세가 더 펴졌고요. 맘에 들진 않지만, 마냥 욕할 수는 없더군요.”
그들의 행위를 비난할 수 있는 건, 똑같이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는 교단뿐이리라.
또는 개인적으로 고아들을 거두어서 돌보는 사람만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지.
아마 그래서 그 도시가 교단을 배척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도덕적인 잣대가 존재해서는, ‘뭐든지 거래할 수 있다’는 상인의 이상을 구현할 수 없으니까.
“어쨌든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게 아니니, 사제님들이 실상은 무심하더라도 상관없어요. 신의 사랑이 떠나지 않는 한, 사제님들은 우리 편이라는 거잖아요.”
“네. 그 분이 원하는 대로 당신들을 돌보고, 그 분이 사랑하는 만큼 당신들을 아낄 겁니다. 하지만 사랑하지는 않아요. 우리의 사랑은 오직 주인에게만 향하니까요.
뭐, 근본이 근본인 만큼 개개인별로 조금씩 ‘사람’이 남아있긴 합니다. 사람처럼 보이는 도구라 생각해주세요.”
빗소리를 너무 들어서 귀가 이상해졌나봐.
알스 사제의 말 뒤에, 작은 웃음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뭐, 그럴 리가 없지.
어깨를 으쓱이며 계속 걸었다.
그리고 부두에 도착해, 메린을 비롯한 동료들이 아무 일 없어 보이는 걸 확인하고 안심한 후, 알스 사제와 함께 그 끝에 섰다.
거세게 물결치는 바닷물에 이따금 뺨을 얻어맞으면서, 나는 바짝 긴장한 상태로 여덟 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초조한 심정으로 지켜보던 휴대용 시계의 초침이 정확히 여덟 시를 가리킨 순간, 바다에서 작은 물보라가 피어올랐다.
철푸덕.
빗속을 뚫고 들려온 불길한 소리에, 등줄기에 한기가 서렸다.
……돌아보기 싫어. 가능하다면, 이대로 돌아보지 않은 채 바다를 건너서 이 마을을 떠나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순 없어. 나는 용사이니까.
용사로서, 맹약을 나눈 종족 중 하나인 인어를 만나러 온 거니까.
그러니 돌아보아야 한다.
그 소리의 정체를 가늠하지 않으려 애쓰며, 나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오, 주여.”
우리 두 사람의 바로 뒤에, 불어터진 시체가 떨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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