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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311화 (311/475)

〈 311화 〉 301화 : 폭풍을 헤치며 (1)

* * *

쟤가 또 저러네.

메린의 말을 듣자마자 그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잊을 만~하면 저렇게 중요 단어를 숭숭 빼먹는단 말야?

알스 사제를 슬쩍 돌아보니, 어리둥절한 얼굴로 눈만 끔뻑이고 있다.

나도 처음 몇 주는 맨날 저렇게 벙벙해했었지.

왠지 그리운걸.

씁쓸한 웃음을 띄우며, 자신 있게 눈을 빛내고 있는 그녀에게 톡 쏘아붙였다.

“야, 제대로 말해. 못 알아먹겠잖아. 그거가 뭔데.”

“성물. 고래뼈 칼.”

“………뭐?”

이번엔 나까지 벙벙해졌다.

얘가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러니까, 지금 그 뼈칼을 써서 고래를 잡자고 하는 건가?

“세상에, 메린…….”

비통한 심정으로 그녀를 껴안았다.

“아까 머리 부딪쳤구나. 아니, 숨을 너무 오래 참았던 거야……!”

“갑자기 뭔 소리냐, 미친놈아.”

“크흑…… 괜찮아, 메린. 네가 어떤 상태이더라도 내 마음은 변하지 않아. 설령 네가 말 타고 풍차를 향해 돌진하거나 허공에 욕하면서 칼질한다고 해도, 난 끝까지 네 옆에, 컭.”

……복부를 급습한 묵직한 통증 때문에 말을 끝맺지 못했다.

순식간에 온 몸의 힘이 쭉 빠져나간 탓에, 그대로 녀석의 어깨에 축 늘어져버렸다.

녀석은 그런 나를 바닥에 엎드리게 하더니,

“미친놈 눈엔 미친놈만 보인다지? 불쌍한 새끼 같으니, 아까 바닷물을 너무 많이 처먹었구나. 그러니 지병이 심해졌지.

야, 빨리 뱉는 게 좋겠다. 내가 아주! 팍팍 도와줄 테니까! 죄다 뱉으라고!!”

한 팔로 내 배를 감싸고는 꽉꽉 누르면서 등을 퍽퍽 쳐대기 시작했다!

“크헉, 아니, 악, 아니에요, 메린 님! 안 먹었어요! 커윽, 미안! 미안해미안해, 내가,끄억,내가잘못했어어어!!”

전심을 다해 외치자 녀석이 팔을 홱 풀었다.

철푸덕, 바닥에 턱을 부딪치면서 그대로 엎어졌는데 그다지 아프진 않다.

배와 등의 욱신거림이, 턱의 통증과는 비교도 안 되게 컸으니까……!

와, 씨, 진짜 내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가는 줄 알았어……!

“으어어어…….”

“잊을 만~하면 깝쳐요. 야, 너 혹시 맞는 거 좋아하냐? 그런 취향이야?”

“절대 아니거든……!”

이 녀석의 정신머리는 일단 멀쩡한 걸로 치자. 더 걱정했다가는 죽겠어.

나는 비실비실 몸을 일으킨 후, 아직 김이 나고 있는 물잔 속 차를 홀짝인 다음, 황량한 눈초리로 나를 보는 메린에게 말했다.

“후…… 네가 이상한 소리하니까 어디 잘못된 줄 알았잖아. 얌마, 그 뼈칼이 얼마나 긴지 봤으면서 그런 소리가 나와? 너 다섯을 쌓아도 닿을락말락할 텐데, 그걸 어떻게 쓰냐?”

“그건 네가 생각해야지. 돌대가리 아니라며? 굴려봐. 머리 굴려서 증명해봐.”

“아잇, 진짜.”

실현 불가능한 문제를 멋대로 던지고 있어!

기가 막혀서 헛웃음을 켜는데, 문득 나를 빤히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알스 사제가 벙벙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왜요?”

“그……, 카엘 님, 평소에도 그러고 지내세요?”

“네? 뭐, 그렇죠?”

“……”

착각인가?

왠지 그의 눈빛에 연민이 담긴 것 같은데.

큭, 아니야, 난 불쌍하지 않아!

내 팔자가 상당히 더럽긴 하지만 불행하진 않다고!

난 행복해!

나는 행복…하다고…….

……갑자기 이유 모를 울적함이 밀려오는 바람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그대로 잔을 기울이는데, 블루벨이 의문에 찬 목소리로 말을 거는 게 들렸다.

“그 뼈칼이란 게 그렇게 길어? 아무튼 그거 아니면 다른 방법이 있는 거야?”

“전설을 따르는 거지. 머리뼈를 부수는 거야.”

“없구나.”

“……”

어깨를 으쓱이며 물잔을 기울이는 블루벨이었다.

음, 1/3 정도는 진담이었는데.

………물론 그게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건 알고 있다.

전설을 재현하기엔,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 있으니까.

이곳에 창조주의 대언자는 없다.

올 수도 없고.

흉내라도 내볼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러나 눈을 뜨지 못하고 있는 로나를 보는 즉시 싹 사라져버렸다.

“……”

가만히 그 앞에 다가가 앉아, 여전히 잠들어 있는 로나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그나마 보호막이 있었기에 기절하는 걸로 끝났지.

아니었으면 십중팔구 죽었을 거야.

하지만 로나가 공격 태세를 취할 때는 그런 거 전혀 없을 터.

정말로 될지도 확실하지 않은데, 괜히 이 녀석이 목숨을 걸게 할 순 없어.

아니, 그 놈을 확실히 보낼 수 있다 해도 안 돼.

로나가 나서게 두면 안 된다.

차라리 내가 검 들고 돌격하는 게 낫지.

그렇게 생각하며 로나의 이마를 쓰다듬는 순간,

“우으…….”

굳게 닫혀 있던 눈꺼풀이 떨리며 잿빛 눈동자가 서서히 드러났다.

로나는 그 상태로 멍하니 두 눈을 깜빡이다가, 별안간 눈을 크게 뜨면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런 뒤, 곧바로 나를 홱 돌아보면서 소리쳤다.

“역시 저승에 온 건가요?!”

“아니니까 앉든가 눕든가 해라.”

역시는 또 왜 붙는 거야.

희한한 데서 비관적이네.

로나는 앉아 있기를 선택한 건지, 몸을 일으킨 채로 얼굴을 찡그리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역시 아직 어지러운 모양이군.

그냥 누워있으라고 하려던 차에, 갑자기 로나가 세차게 고개를 흔들더니 자신의 뺨을 세게 착착 때렸다.

그런 뒤, 양쪽 뺨에 하나씩 손자국이 새겨진 채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 엄청난 놈이었어요! 막 대애앵 하고 울리는 게, 제 자신이 종이 된 거 같더라니까요!”

“나 참, 그 얘길 웃으면서 하는 건 너밖에 없을 거다. 말하는 거 보니 멀쩡하네. 뺨 말고 다른 데 아프거나 그렇진 않지?”

헤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로나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툭툭 두드렸다.

한결 더 환하게 웃은 뒤, 로나는 이리저리 주위를 둘러보다가 또 다시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제 철퇴는 어디 있어요?”

“글쎄?”

어깨를 으쓱이며 블루벨을 가리켰다.

자연히 로나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고, 정면으로 그 눈길을 받은 블루벨은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너 받을 땐 이미 없었는데?”

“안 돼애애애!!”

로나는 크게크게 절규하면서 철푸덕 엎어지고는 일어나지 못했다.

앓는 소리를 내면서 바닥에 엎어진 채 흐느적거리는 저 모습……

방금 전까지 철철 넘치던 기운이 단번에 싹 사라진 게 분명하다.

설마 철퇴가 동력원이었던 건가!

“우으으…… 내 단짝…… 윌…… 위이일…… 미안해요오오…….”

“……”

이름이 있었구나.

돌겠네, 진짜.

마치 소중한 인형을 잃어버린 소녀처럼 구슬피 우는 로나를 바라보며,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로나도 깨어났겠다, 이제 다시 움직일 차례였다.

윌…이라는 철퇴를 잃어버린 탓에 도로 축 늘어졌지만, 눈은 뜨고 있으니 됐지, 뭐.

어깨를 으쓱이며 여관 문을 열자, 문턱까지 물이 차올라 있는 게 보였다.

여기 머문 지는 삼십 분밖에 안 된 거 같은데.

벌써 이만큼이나 찬 건가?

발목까지 올라오는 물을 보며 착잡해 있는데, 위슨이 묻는 게 들렸다.

“어디로 갈 거냐?”

“성. 아까 논의했던 게 싹 날아갔거든.”

그렇게 대답하면서 알스 사제를 힐끗 돌아보니, 그 역시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또 다시 위슨의 거북이 등에 올라타서 성으로 향하는 동안, 자꾸만 바닷가 쪽을 보게 되었다.

“우우우우—”

우르르릉……

콰과앙—!

“………”

아잇, 저 울음소리 때문에 자꾸 소름 돋아서 죽겠네.

괜히 천둥번개까지 쳐서 쓸데없이 분위기가 오싹해!

귀를 막는다면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겠지.

하지만 바람에 휘날려가지 않도록 몸을 낮추고 있느라 귀를 막을 수가 없다.

파랑새에게 부탁한다면, 아마 귀찮다는 툴툴거림과 빵 1/3을 값으로 요구하면서 저 소리가 들리지 않게 해줄 테지만……

그런 능력을 쓸 땐 위슨의 기력도 같이 소모된단 말이지.

오늘 하루가 얼마나 길지 모르는데, 쓸데없이 힘을 쓰게 할 순 없어.

지금도 거북이의 힘을 빌린 덕분에 비를 맞지 않고 있는데, 더 많은 걸 바라선 안 된다.

괜히 기운을 썼다가, 정작 중요한 때에 나서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러니 그냥 참자.

내 얼마 없는 특기를 써먹자고.

그렇게 다짐한 후, 이따금 움찔움찔 몸서리를 치면서 성에 도착했다.

고개를 살짝 들자, 던트 위병대장이 다른 위병들과 함께 성문 앞에 서 있는 게 보였다.

창살이 내려진 문 뒤에 수레가 여럿 놓여 있는 걸 보니, 처음에 계획했던 대로 주민들을 피난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근데 날씨가 이 꼴이 됐단 말이지…….

그래도 그때 일단 주민들을 성으로 모으기로 정했었으니, 대장이 부하들을 데리고 그 작업을 했던 것이리라.

거북이가 근방에 멈춰 서자, 그들이 흠칫 놀라는 게 보였다.

우리가 그 등에서 내려오니 한두 명이 몸을 움찔거리기까지 하고 있었다.

바닷가에서도 ‘사람을 태우는 거북이’가 꽤 진귀한 생물라는 걸 알게 된 순간이었다.

아무튼 지금은 현황 파악부터 해야지.

바람을 헤치며 그들에게 다가가자,

“왔군! 잡아라!!”

“엥?!”

위병대장이 우리, 아니 나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일순 오싹한 느낌이 감돌면서 뒷목이 서늘해졌다.

반사적으로 걸음을 멈추고 검을 뽑아 휘둘렀다.

귀를 울리는 쇳소리는 빗소리에 잡아먹혀 들리지 않았다.

창을 들이밀었던 두 위병의 놀란 소리도, 그들이 물러나면서 내는 첨벙거림도 귀에 닿지 않았다.

그럼에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는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은빛 칼날이 어떤 단단한 것에 맞부딪치며, 검자루를 쥔 손에 진동을 전해주었으니까.

……도적이었다면 이대로 공세에 들어갔겠지.

하지만 이들은 적이 아니다.

아직은 아니야……!

나는 검을 든 채로 뒤로 물러나면서 소리쳤다.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내 고함소리가 무슨 신호라도 된 것처럼, 대장의 뒤에 서 있던 다른 창병들이 일제히 창을 꼬나쥐고 나를 겨누었다.

비 때문에 잘 안 보이는데, 대략 열 명쯤 되는 것 같다.

한꺼번에 덤빈다면 당해낼 수 없어.

……나 혼자였다면.

“칠 거야?”

검을 뽑은 채로 내 옆에 서면서 메린이 물었다.

위기감 하나 느껴지지 않는 덤덤한 목소리에, 왠지 긴장이 약간 풀리는 것 같았다.

“……아직. 먼저 저 양반 대답을 들어야 돼.”

검자루를 꽉 쥐고 계속 경계하며, 나는 재차 대장을 향해 소리쳤다.

“안 들려요?! 뭐하는 거냐고 묻고 있습니다!”

“……”

“지금 이럴 때가 아니라는 거 모르세요?! 대체 뭔 생각으로 이러시는 거죠!”

여전히 묵묵부답.

아무래도 대답해줄 마음이 없는 모양이군.

젠장, 이딴 일로 시간 낭비할 때가 아닌데!

“테레지아 님입니까?”

그때, 알스 사제가 우리와 병사들의 중간으로 걸어 들어와, 확신이 담긴 목소리로 위병대장에게 물었다.

“인어에게 용사의 목을 바치고 목숨을 건지자고 하신 겁니까?”

“………”

“침묵은 곧 긍정이라고 봐도 되겠지요? 대장님, 긴 말하지 않겠습니다. 물러나세요.”

“……그럴 순 없습니다.”

이를 악문 듯한 말투로 중얼거린 후, 위병대장은 허리춤의 칼을 뽑아 들었다.

그런 뒤, 나와 알스 사제를 번갈아 겨누면서 열띤 목소리로 외쳤다.

“저희 모두가 들었습니다! 대언자와 용사의 목이 떨어지고, 그 피가 흘러야만 인어들이 분노를 멈출 것이라고! 저도 지켜야 하는 가족이 있고, 무엇보다도 이 마을을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

마을이 멸망을 피할 확실한 방법이 있다면 그를 취할 뿐,개인적인 원한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만용사님, 목을 내어주십시오!”

“………”

아니 뭐, 언젠가 이런 비슷한 말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어.

용사가 나타난 이후로 이런저런 일들이 생기고 있잖아.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 용사 때문이다’ 하고 원망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

그들은 그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았을 뿐이다.

나처럼 말야.

그나마 난 직접적인 관계자라도 됐지, 다른 사람들은 그것도 아니잖아.

원흉인 드래곤을 보지도 못한 채, 삶을 계속 이어가거나 마칠 것이다.

너무 멀리 있어서 보이지 않는 적보다는, 가까이에 있는 아군을 원망하는 게 더 쉬운 법이지.

그러니 누군가가, 용사 때문에 괜히 죽는다고 원망하더라도 어쩔 수 없어.

그럴 땐 대머리에 고자나 되라고 작은 저주만 걸어주자고.

……그렇게 미리미리 나 자신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근데 말야………

죽어달라는 소리를 듣게 될 줄은,

정말 조금도 생각 못했는데.

“……이거 참, 뭐라고 해야 될지 모르겠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아닌데, 어째서인지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렇게 비가 퍼부어서 참 다행이야.

저 사람들에겐 들리지 않았을 테니까.

……허탈한 웃음이 떠나간 뒤, 곧바로 분노가 끓어올라 그 자리를 채워버렸다.

“다들 병신이십니까?!”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들은 것보다도, 그딴 소리를 비장하게 해대는 꼴이 더 열받아……!

진짜로 이루어질 거라 믿는 꼴이 빡쳐 죽겠어!!

“제 목을 받으면 마을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확증이라도 받았답니까?! 직접 거래한 것도 아닌데 뭘 믿고 나서는 거죠! 놈들이 원한 건 저랑 대언자의 목입니다, 저 한 사람이 아니에요! 저를 죽인 다음엔 수도로 쳐들어가기라도 하시겠단 겁니까!”

“……”

“다 들으셨다고 했죠! 그럼 제가 인어들을 배신자라고 한 것도 들으셨겠네요! 전부 쳐죽일 거라고 한 것도……!

제발 이러지 마세요! 이딴 명령 같은 건 그냥 씹고 물러나세요! 제 적은 인어만으로도 충분하다고요!”

위병대장의 표정은 비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저 사람도 자신의 부하들처럼 명령을 받고 따를 뿐일 터.

그러니 그 얼굴에 고뇌가 떠올라 있으면 좋을 텐데.

그가 검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게 보인다.

낙담이 올라오기 시작한 와중에도, 그 칼날이 나를 겨누지 않을 거란 희망이 머릿속을 맴돈다.

……그러지 않을 거야.

양식 있는 사람이니, 어린애나 할 법한 이 따위 억지주장을 진심으로 믿었을 리가 없어.

명령에 따르기 위해 억지로 납득했을 거야.

그러니 절대로 날 겨누지 않을 거다.

그래서는 안 돼.

검을 겨누지 마, 공격 명령을 내리지 마!

제발 검을 거둬줘!

간절히 되뇌는 동안에도 하늘을 향해 뻗어 있던 위병대장의 검은,

서서히 아래로 내려와,

“…………”

그대로 땅을 가리켰다.

이내 그가 허리춤에 검을 꽂아넣는 걸 본 뒤에야, 나는 참았던 숨을 길게 내뱉었다.

………진짜로, 다행이다.

“모두 물러나라!”

던트 위병대장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리자, 위병들이 곧바로 창을 위쪽으로 들면서 그의 뒤로 물러가, 다시 다섯 명씩 두 줄로 섰다.

그 발걸음이 왠지 모르게 경쾌해보이는 건, 나 자신의 안도감이 불러온 착각이겠지.

크게 한숨을 쉬면서 검을 다시 검집에 넣었다.

메린도 나를 따라서 검을 거두기는 했지만, 경계하는 눈초리만큼은 여전했다.

뭐, 그래도 일단 안심해도 될 거다.

방심하게 하려고 일부러 무기를 거두고 부하들을 물린 건 아닐 테니까.

다시금 한 발짝 나아가서 말을 걸려는 순간,

“뭣하는 겁니까, 던트 대장!!”

머리 위, 한참 먼 곳에서부터 앙칼진 목소리가 들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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