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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314화 (314/475)

〈 314화 〉 304화 : 폭풍을 헤치며 (4)

* * *

인어들의 맹렬한 돌진은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아마 선발대가 죄다 나자빠지는 걸 보고 몸을 사리는 거겠지.

그 대신, 놈들은 가까이에 붙어서 삼지창을 마구 찔러대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입을 쫙 벌리고 고함치면서, 주먹을 날리거나 발길질을 하는 놈도 있었다.

“……”

그리고 알스 사제는 그러한 난장판을 무심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놈들이 삼지창을 들이대든 머리를 부딪쳐대든, 심지어는 빗물이 눈에 들어가는 것도 전혀 개의치 않아 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신의 보호가 깨지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라 믿고 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저 생선대가리들이 아무리 생난리를 쳐도, 지금 우리를 감싼 채 은은하게 빛나고 있는 막을 뚫지 못하리라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뭐, 자신 있을 만도 하지.

삼지창, 주먹, 발길질, 머리를 신나게 들이대고, 심지어 돌멩이를 던지거나 물을 뱉고 있는데도 끄떡도 안 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알스 사제의 담력 자체도 상당한 것 같았다.

로나의 보호막은 사방으로 약 3m 정도의 범위였는데, 그의 경우엔 조금 더 짧았다.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전방 1m 정도의 거리를 막고 있는 것 같다.

완전 코앞은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열 몇의 인원이 적의와 살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달려들고 있는 거다.

그의 한 발짝 뒤에 서 있는 나나 위병들도 이따금 움찔움찔 놀라는 만큼, 우리 앞에 선 사제에겐 더 큰 압박이 가해지고 있을 터.

그러나 그는 미동조차 하지 않고 꼿꼿이 서 있었다.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리오.’ 그 기도말에 대해 스스로 본을 보이고 있었다.

로나처럼 전투를 전문으로 하는 사제도 아니고, 태생이 겁을 안 먹는 성격인 것도 아닐 텐데.

그 의연한 모습 덕분일까?

바짝 얼어 있던 몸이 조금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두려움에 떨 필요가 없어.적어도 지금 당장은 말야.

깨지지 않는 방패가 앞에 서 있으니, 겁먹은 토끼처럼 굳어 있지 말고 내 할 일을 해야 한다.

“후우……”

크게 심호흡을 한 후, 고개를 돌려 옆을 보았다.

마구 성질을 부리고 있는 생선대가리 너머로, 커다란 문이 굳게 닫혀 있는 게 보인다.

그 주변을 감싸고 있을 은은한 빛의 막은……

어라, 희한하네. 조금도 안 보이는데?!

산맥 아래의 그 신전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다.

거긴 신전 종탑 꼭대기를 중심으로 보호막이 둥그렇게 감쌌었는데.

아,혹시 너무 약해서 안 보이는 건가?

산맥 아래 마을의 신전은, 보호가 주 능력인 사제가 담당하고 있었잖아.

여기 걸리프의 담당사제님은 예언이 주된 능력이니, 보호 쪽에는 힘이 조금 약하게 발휘되는 건지도 몰라.

……아니면 진짜로 아무 보호막도 안 치고 있거나!

어이씨, 돌겠네. 이거 어떻게 확인하지?

냅다 뚫고 갔다가 보호막 안 쳐져 있는 걸로 밝혀지면 완전 낭패잖아.

장대비에 물안개까지 피어 있으니, 놈들이 달려들 때 제대로 대응하기 힘들다고.

메린은 별 문제없겠지만.

게다가 잘못하면 인어들이 신전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물론 시야가 확보되는 만큼 막을 수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피해가 생길 터.

무언가 놈들을 쫓아 보낼 확실한 방법이 있으면 좋겠는데……!

………그러고보니 위슨 녀석은 어디 있지?

신전에서 보자고 하더니, 안에 있나?

귓가에 꽂혀 있는 깃털에 손을 대고서 녀석을 불러보았다.

“위슨, 에코, 둘 중 누구든 대답해. 여보세요~”

대답이 없다. 이거 혹시 효과가 끊겼나?

귓가에 꽂힌 채로 안 떨어지는 걸 보면 아직 유효한 거 같은데…….

“위슨? 안 들려? 미성년자인 주제에 독주 퍼먹고 취하지도 않는 천연 술꾼 위슨!”

[누가 퍼먹는다는 거냐, 미친놈아!]

아, 드디어 대답했군.

연락에 응하는 걸 보니 일단 무사한 모양이다.

“너 지금 어딨어? 신전 안이냐?”

[어. 도착했냐?]

“문 앞에 있는데 인어들이 쪼아대서 못 움직인다. 지금 신전이 보호막으로 싸여 있는 거야?”

[잠깐만.]

……갑자기 귓가에 냇물 흐르는 소리와 함께 악기연주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무도회에서 들었던 음악 중 하나 같은데, 뜬금없이 이게 왜 나오는 거야??

벙벙한 채로 눈만 끔뻑이고 있는데, 불현듯 연주가 뚝 끊기더니 다시 파랑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호막까지는 아니고, 외벽을 감싼 거란다. 벽이랑 문을 못 뚫도록.]

“그럼 함부로 문 열면 안 되겠군. 거기 사제님들 중에 보호막 펼칠 수 있는 사람 없어?”

[있긴 있는데, 전방의 한 뼘 정도 거리만 막을 수 있단다.]

사방이 아니라 전방이야?

게다가 거리도 한 뼘…….

그럼 안 되겠군. 너무 짧아.

영주의 기사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협곡 바깥까지 나가고도 조금 더 가야 폭풍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 번에 수레마차 두 대밖에 못 움직이는데, 개중에 한 대는 아직 집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태우러 다녀야 한다.

즉, 한동안은 신전에 피한 사람들을 수레마차 한 대로만 바깥으로 내보내야 한다!

그러는 동안 신전의 문은 수차례나 열고 닫힐 텐데, 그 틈을 인어가 뚫어버리기라도 하면……

으으, 진짜 뭐 없나?

놈들을 확실하게 쫓아버릴 방법이 어디 없을까……?

이 비라도 좀 덜 오면 좋겠는데!

젠장, 아까 성검이 나타났을 때처럼 날씨가 확 개여버렸으면 좋겠다.

그러고보니 그때 목소리가 뭐랬더라?

신의의 열매는 축복이라고 했나?

그럼 왜 나는 안 줘, 여기까지 불평 별로 안 하고 성실하게 왔잖아!

나도 줘요, 축복!날씨 좀 어떻게 해줘요!

아까처럼 찬란한 햇살로 이 놈들 눈 좀 맛탱이 가게 해달라고!

뭐, 그때 참치 년은 성검의 빛을 직격으로 보고도 아무런 타격은 없었던 거 같지만.

오히려 빛이 아니라 다른 걸로 괴로워했었지.

아주 그냥 얼굴을 잔뜩 구겨서는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아.”

…………어쩌면 그게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코앞에 모인 놈들의 얼은 잠깐 빼놓을 수 있겠지.

나는 번뜩 떠오른 생각을 위슨에게 전했다.

“위슨, 사제님에게 종을 치라고 전해줘. 소리 끊기지 않도록 계속!”

[종탑 거 말하는 거지? 오냐.]

“종이 울리자마자 내가 가서 문 두드릴 테니 열어줘. 혹시 메린에게 전할 수 있냐? 종소리가 나면 신전 문 앞을 막으라고.”

[………어. 전했다.]

약간의 뜸을 두고 그 말이 들리는 순간,

대앵—! 대앵—! 대앵—!

빗소리마저 삼켜버릴 만큼 큰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내 앞에서 주먹을 휘둘러대던 인어가 일순 바짝 굳어버리는 게 보였다.

갑작스러운 큰 소리에 얼이 나간 게 분명해!

지금이다!

곧바로 달려나가면서 검을 뽑았다.

놈의 동그란 눈이 나를 채 확인하기 전에, 그 대가리를 몸에서 떨어뜨리려 검을 휘둘렀다.

비늘이 붙은 목을 베는 널찍한 검신.

그리고 놈의 목을 타고 올라가 머리 전체를 삼키는 하얀 불꽃.

악마나 움직이는 시체, 또는 악마에게 영혼을 판 놈들 등등,

‘그런 쪽 관련자’를 조져버릴 때나 성실하게 나타나는 성검이 모습을 드러내자,

“……!”

인어들이 갑자기 얼굴 양옆을 손으로 막으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는 그저 큰 소리에 놀라서 바짝 얼었을 뿐이었는데?

아, 몰라, 이유 따위 나중에 생각해!

지금은 신전 문을 여는 게 먼저야!

메린은 내 부탁대로 먼저 문 앞에 서 있었다.

바닥을 구르며 괴로워하는 인어를 노려보면서 고민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재빨리 문에 다가가서 쾅쾅 두드렸다.

아무리 종소리가 커도 이건 들리겠지!

다행히 전해졌는지, 커다란 문이 안쪽으로 열리면서 사제와 위슨이 서 있는 게 보였다.

나는 그 안으로 한 발짝 내딛으면서 뒤를 향해 외쳤다.

“메린! 위병들을 불러와! 놈들이 아직 못 움직이면 끝장내라고도 전하고!”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확인한 후, 다시 앞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위슨, 말소리가 사람들 귀에 들리게 해줘! 혹시 모르니 종소리는 작게라도 계속 들려야 돼!”

이내 귀에 울리는 종소리가 작아지면서, 신전 안에 들리는 웅성거림이 또렷하게 들렸다.

좋아, 완벽해!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위슨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이거 유지하려면 위슨은 여기 있어야 돼. 못 나간다.”

“어. 괜찮아. 사제님, 힐데 사제님 어디 계세요? 엘시아 사제님이라도 상관없어요.”

이름 모를 사제는 말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는 거에 놀랐는지, 눈을 살짝 크게 뜨면서 깜빡였다.

그것도 잠시, 사제는 다시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두 분 다 제단 쪽에 계세요. 힐데 사제님은 기도 중이시니 엘시아 사제님께 말씀하시지요.”

고개를 끄덕인 후, 나는 일단 성검을 다시 넣으려 했다.

그러자 조금 전처럼 성검 전체가 하나의 빛덩어리가 되어 내 손을 떠나서는,

검집이 아니라 뒤쪽으로 날아갔다!

“뭐시여?!”

이 시점에서 탈주를 한다고?!

저 새끼가 돌았나!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 움직임을 보고 있자, 빛덩어리가 신전 바깥, 문 앞의 바닥에 내려앉는 게 보였다.

이내 빛은 다시 검의 모습을 취하더니 땅바닥에 폭 꽂혔다.

“……”

아니, 저거 진짜 웃기는 놈이네.

평소에 적을 골라서 나오는 것도 어이없구만.

와, 이젠 검집에 들어가지도 않고 맘대로 저리 가선 대기를 타고 앉아 있네.

저딴 게 성검……?그냥 귀신 들린 검 아니야?

아니, 귀신 들린 거면 차라리 낫지. 그건 뭔가 말이라도 들릴 거 아냐.

저건 뭐, 말은커녕 무언가 다른 걸로 뜻을 내비친 적도 없으니, 나 원…….

하…… 아니다, 탈주만 안 하면 되지.

어차피 누가 훔쳐가지도 못하는데, 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제단으로 향했다.

빛을 형상화한 성광(?光) 조각 좌우로 촛불이 피워져 있는 제단 앞에, 힐데 사제가 납작 엎드려선 기도를 올리고 있다.

엘시아 사제는 그 주변에서 덜덜 떠는 아낙네를 다독이거나, 흐느껴 우는 아이를 달래는 등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엘시아 사제에게 가까이 갔을 때엔, 마침 그녀가 한 아이를 부모에게로 돌려보내는 참이었다.

그녀는 내 기척을 느꼈는지 시선을 돌려 나를 본 후, 곧바로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먼저 입을 열었다.

“어서오세요, 카엘 님. 동료분께 들었어요. 위병들과 같이 오셨다면서요. 성에서 오신 거죠? 무언가 계획이 잡힌 건가요?”

“네. 사람들을 마을 밖으로 피신시키기로 했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성에서 결정한 사항들을 들려주었다.

우선 신전의 종을 경보 삼아서 계속 울린다.

그리고 수레마차 하나로 주택가를 돌며, 남아있는 주민들을 태워서 신전에 내린다.

또 다른 수레마차는 지금 신전에 피해 있는 사람들을 태워서 바깥으로 나간다.

모든 주민들이 신전에 모였다면, 이제 주택가를 돌던 수레마차로도 협곡 너머에까지 사람들을 이동시킨다.

그 일련의 내용을 들은 엘시아 사제는, 곰곰이 생각에 잠긴 얼굴로 잠시 침묵을 지킨 뒤, 이내 손가락을 까닥이면서 말을 꺼냈다.

“우선 기도부터 바꿔야겠군요.”

기도를 바꾸다니?

내가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사이에, 엘시아 사제는 힐데 사제의 어깨를 흔들며 말했다.

“힐데 사제님, 기청(??)의 기도를 올리셔야 해요!”

“…………응? 기청의 기도? 진짜??”

고개를 들고서 의아한 눈을 깜빡이는 힐데 사제를 향해, 엘시아 사제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이 여길 나가서 성 바깥으로 피하기로 했어요.”

“아, 그렇구나. 그럼 비가 조금이라도 적게 와야지. 응응, 알았어요!”

그 말만으로 납득한 건지, 힐데 사제는 곧바로 다시 엎드려서 무어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엘시아 사제는 신전 안을 돌아다니는 사제 한 명을 부른 후, 나를 따라가라고 지시를 내렸다.

“주택가를 다니신다고 하셨죠? 사제가 같이 가서 말을 거는 편이 훨씬 나을 거에요.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을 피난시키는 건 바로 시작하는 거죠?”

“네? 어어, 네.”

“알겠습니다. 저희가 처리하고 있도록 하죠. 다만,”

엘시아 사제는 조금 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서두르셔야 해요. 이 신전은 이제 안전하지 않아요. 돌풍은 기청(??)의 기도로도 막을 수 없으니, 언제 여기에 피해가 올지 몰라요.”

“제단에 두 기도를 올릴 순 없는 건가요?”

“집중이 흐트러져서 효과가 떨어져요. 안 하느니만 못하죠.”

아무래도 옆 사람의 기도 소리가 들려서 집중하기 어렵다는 듯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엘시아 사제가 붙여준 사제와 함께 신전을 나서려 했다.

“아, 카엘!”

그때, 위쪽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올렸다.

블루벨이 예배당 위층 난간에 몸을 내밀고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저 엘프가 여기 있다는 건……

“……용사님.”

아니나다를까, 테레지아가 그 옆에 모습을 드러내며 그늘진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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