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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319화 (319/475)

〈 319화 〉 309화 : 네 손이 품은 건 희망이야 (3)

* * *

잠시 후, 문을 긁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출입문에 뚫린 구멍 너머로 잿빛 늑대와 엘프가 보여, 서둘러 빗장을 풀고 문고리를 당기기 시작했다.

으으, 역시 무거워……!위병을 부를까?

아니, 수레마차가 온 것도 아닌데 괜히 시선 끌어서 좋을 거 없지.

그냥 팔 운동하는 셈 치고 혼자 열자.

“영…차……!”

끼이이익—

그래도 늑대가 밖에서 문을 밀어주고 있는지, 생각보다 수월하게 열렸다.

어느 정도 틈이 벌어지자 늑대가 몸을 비틀며 먼저 들어오고, 그 뒤를 따라 블루벨이 한쪽 발을 질질 끌면서 안으로 들어왔다.

떨어지면서 다친 건지, 얼굴 여기저기에는 상처가 나 있는 게 보였다.

“딴 데는 안 다쳤다더니…….”

“……”

시선을 피하는 블루벨의 모습에 작게 한숨을 쉰 후, 문을 닫고 다시 빗장을 걸었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것처럼, 가만히 앉아 있던 늑대가 반갑다는 듯이 꼬리를 흔들며 나에게 몸을 부벼대었다.

“하하, 응, 그래그래, 고마워. 수고많았어.”

쪼그려 앉아서 늑대를 껴안고 마구마구 쓰다듬어주었다.

축축한 털을 헤집으니, 진한 향내가 코를 찌르며 들어온다.

근데 이거……

“어라라,너 어째 풀냄새 난다? 비 맞아서 그런가?”

향기에 이끌리듯이 목덜미에 고개를 폭 박았다.

와…… 꼭 허브밭에 코 박고 있는 거 같아.

털이 젖어서 평소의 그 푹신푹신함은 없어졌지만, 이것도 썩 나쁘진 않은걸? 여전히 따뜻하고.

“히히히……”

“……그쯤 하고 나한테 신경 좀 쓰지?”

“아.”

블루벨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맞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나는 제자리에서 일어나, 어째서인지 블루벨을 노려보는 늑대의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고마워, 테라. 이제 들어가봐도 돼.”

“웡!”

대답 대신 한 번 짖은 후, 늑대는 연기뭉치가 되어 흩어져 사라졌다.

그 연기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지켜본 다음, 나는 계단을 가리키며 말을 꺼냈다.

“거기 앉아 있어. 사제님 부를게.”

“응…….”

블루벨이 발을 절며 계단으로 가는 동안, 예배당의 문을 살짝 열고 위병에게 치유기도를 할 수 있는 사제를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 바로 근처에 사제가 피난민을 돌보고 있었고, 그 덕분에 블루벨은 생각보다 더 빨리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이름 모를 사제의 기도는 로나가 한 번 더 다녀간 뒤에야 겨우 끝났다.

치유 전문인 사제가 이렇게 시간이 걸리다니, 이 엘프 할망구, 발목과 얼굴 말고도 여럿 다쳤던 게 분명해.

“휴우, 됐습니다. 앞으로는 다치지 않게 조심하세요.”

“고생하셨어요. 감사합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그럼 쉬고 계세요.”

사제는 지친 얼굴로 빙긋 웃으며 다시 예배당으로 들어갔다.

그 문이 열리고 닫히는 걸 지켜본 후, 나는 블루벨의 옆에 가서 앉았다.

상처가 전부 없어져서 말끔해졌는데도, 그녀의 얼굴은 바깥 날씨처럼 잔뜩 먹구름이 끼어 있었다.

……잔소리 한바탕 퍼부으려 했는데 안 되겠구만.

표정이 너무 어두워.

그래서 그냥 무던하게 말을 걸었다.

“어쩌다 떨어진 거야? 발이 미끄러져서 그런 건 아닐 거 아냐.”

“그 고래 때문에…….”

“고래? 폭풍고래? 그 놈이 뭐했길래?”

대답하기 전, 블루벨은 코를 한 번 훌쩍였다.

이제 보니 눈이 좀 빨개져 있는데, 모르는 척해주는 게 제일 좋겠지.

“꼬리로 돌벽을 때렸어.”

“……허?”

“진짜야. 그 고래, 길게 울면서 물 속으로 들어간 다음, 물 위로 튀어오르면서 꼬리로 돌벽을 후려치고 있었어. 난 그 충격 때문에 떨어져버렸고.”

그래도 백 년 넘게 수련한 전사답게, 그녀는 거의 본능적으로 몸을 돌려서 착지를 시도했다.

비록 발은 충격을 이기지 못해서 비틀어졌지만, 어쨌든 길을 따라서 데굴데굴 구르는 데에 성공했다는 듯했다.

“나 참, 진짜 큰일날 뻔했잖아. 다음부턴 혼자 있을 때 무모한 짓하지 마.”

“무모한 짓 아니었어! 그 고래가 벽만 안 쳤어도……! 으으…… 말도 안 돼. 그렇다고 내가 자연물에서 떨어지다니……!”

블루벨은 고개를 흔들면서 소리친 후, 무릎에 얼굴을 콕 박고서 훌쩍이기 시작했다.

……아니 뭐, 충격이야 받을 수 있다지만 울 것까진 없지 않나……?

그보다 누가 보면 이거 내가 울린 줄 알 거 아냐.

돌겠네, 진짜.

그녀가 눈물을 빨리 그치길 바라며, 그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뭘 울고 그래?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달리 본 사람도 없을 거 아냐. 너무 낙심하지 마.”

“으으으……!”

“근데 배가 없다는 게 진짜야?”

내 질문에, 블루벨이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돌벽에서 봤어. 벽 너머 바다에 떠다니는 배는 하나도 없어. 혹시나 싶어 마을 쪽을 돌아봤는데도 없고.”

“이미 어디 떨어져서 부숴진 거 아냐?”

“그럼 그 부근에 잔해가 뒹굴고 있어야 하잖아. 그런 것도 없었어. 그 대신인지는 모르겠는데, 해변 쪽에 이상한 게 있더라.”

눈가를 문지르면서 그녀는 말을 이었다.

“뭔가 큰 게 흐느적거리면서 돌아다니고 있던데? 집 하나를 감싸고서 끙끙대고 있는 거 같았어.”

“………뭐야, 그게?”

“몰라. 둥근 대가리 같은 거에 촉수가 여럿 달려 있는데, 두 다리로 걷고 있었어.”

어이씨, 별별 괴상한 게 다 튀어나오네.

그것도 인어라고 쳐야 하나?

“그리고 댁이 또 말할 게 있다고 한 건?”

“아까 말한 거야. 폭풍고래가 돌벽을 부수고 있다는 거. 아직은 부숴지지 않았는데, 물은 조금씩 새는 거 같아.”

“……”

진짜 가지가지 하는구나.

인정한다, 폭풍고래. 넌 지성체가 맞다.

세상에, 꼬리치기로 돌벽을 부수려 하고 있다니……!

“그리고 바깥 바람이 그렇게 세지 않다고?”

“이따금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세긴 한데, 배를 날릴 정도는 아니야. 나무도 안 뽑히고 버티고 있는데, 나룻배도 아니고 고기잡이 배가 어떻게 날겠어?”

“……”

희한하네? 나무도 날아왔었는데 말이지?

그게 바람 때문에 일어난 게 아니면, 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날아온 거야?

집을 감싸고 끙끙대고 있다는 그 괴상한 촉수생물은 또 뭐고?

아니 어떻게 갈수록 뭐가 더 쌓이냐……?

돌겠네, 진짜.

블루벨은 그 외에 더 말할 게 없는지, 코를 훌쩍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난 위에 올라가 있을게……. 아, 그 귀족 아가씨는 아직 있어?”

“아니, 위슨 배낭에 들어가 있어.”

“그래…….”

맥빠진 대답과 함께 힘없이 뒤로 돌아선 후, 그녀가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터벅터벅터벅터벅.

대강 네 개쯤 올라간 다음,

“………잠깐, 뭐? 어디 있다고?!”

곧바로 다시 뛰어내려와서는 내 어깨를 붙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너 이 자식, 그 아가씨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바른대로 말 안 해?!”

“아, 흔들지 마~”

누가 들으면 내가 몹쓸 짓이라도 한 줄 알겠네.

작게 한숨을 쉰 후, 블루벨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주었다.

테레지아가 내 다리를 붙잡고 애걸했다는 건 빼고.

그리고 내가 말을 마쳤을 즈음, 잔뜩 핏발이 서 있던 블루벨의 눈은 제법 건조해져 있었다.

뭐가 마음에 안 드시는 건지, 블루벨은 내 어깨를 놓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어휴, 미친놈.”

“……”

딱 한 마디 던지시곤 계단을 척척 올라가버렸다.

……아니, 어이가 없네.

여기서 가장 안전하고 아늑한 곳에 보관, 아니 잠시 체류하게 한 거구만.

무슨 해가 있는 것도 아닌데 대뜸 미친놈이라니, 하, 기가 막혀서!

역시 살아온 환경이 달라서 그런 걸까?

위슨이나 블루벨이나, 평범과는 거리가 먼 환경에서 살았잖아.

그러니 일반인의 사고방식은 잘 이해가 안 되는 거지.

“후우……”

계단에 앉은 채 긴 숨을 내쉬었다.

다시금 혼자 남게 된 복도에, 바람이 들어오는 소리와 종이 울리는 소리가 한데 섞여서 들려오고 있다.

생각의 늪에 빠지기엔 딱 좋은 상황이었고, 자연히 메린에 대한 생각이 내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메린 녀석, 괜찮을까……?

멍하니 올려다본 구멍 너머는, 여전히 시커멓게 흐려 있었다.

시간이 흘러 로나가 세 번째로 돌아왔을 무렵, 메린이 빈 수레마차와 함께 신전으로 돌아왔다.

“아, 메리,”

휑.

문을 열자마자 메린이 홱 들어오더니 계단 위로 올라가버렸다.

나는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

뭔 일이 있었나……?

메린과 같이 갔던 위병에게 물어보았지만, 그는 별일 없었다며 어깨만 으쓱일 뿐이었다.

“얼른 올라가보세요, 카엘 님! 여긴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어, 응. 고마워, 로나.”

헤실 웃는 로나에게 살짝 손을 흔들어 준 후, 서둘러 계단을 올라가보았다.

예배당 위층으로 올라와 주변을 둘러보니, 메린이 벽 쪽 의자, 테레지아가 앉았던 그 의자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는 게 보였다.

블루벨이 그 반대편 끝자락에서, 잔뜩 긴장한 채 몸을 움츠리고 있는 건 덤이었다.

이거 분위기가 영 좋지 않은데…….

의자에 가까이 가자, 블루벨이 얼굴 만면에 안도감을 띄우며 속삭였다.

“빨리 가서 쟤 좀 달래봐. 뭔 일이 있었냐고 물어도 대답을 안 해. 노려보기만 하고!”

“어, 응. ……아, 블루벨, 댁이 메린 대신에 수레마차 타고 협곡 바깥까지 다녀와.”

“뭐? 겨우 물기 마르기 시작했는데!”

“아, 얼른. 달리 갈 사람이 없단 말야.”

“하……… 알았어. 할 수 없지.”

뾰로통한 얼굴을 하면서도 블루벨은 터덜터덜 계단을 내려갔다.

곧이어 아래층에서 탄식과 발끈해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죄다 깔끔하게 무시하면서 메린의 옆에 앉았다.

“메린.”

“……”

장갑을 벗어 품속에 넣고, 그녀가 아직도 푹 눌러쓰고 있는 후드를 조심스레 벗겼다.

약간 헝클어진 갈색머리에 빗방울이 맺혀 있는 게 보인다.

그 머리에 손을 올리자, 물기와 찬 공기가 어우러진 서늘한 기운과 함께, 희미한 떨림이 손바닥에 전해져왔다.

추위 때문은 아닐 거야.메린은 원래 추위를 잘 안 타니까.

마음 쪽도 싸늘하긴커녕 오히려 고양되어 있어야 할 텐데.

메린이 탔던 수레마차가 돌아왔다는 게 알려지자마자, 예배당이 다시 후끈 달아올랐다.

시간이 지나서 조금 사그라들었긴 해도, 여전히 사람들은 그녀에게 환호하고 있는 것이다.

정작 당사자는 완전히 정반대의 분위기를 내뿜고 있지만 말야.

“메린? 듣고 있지?”

여전히 대답없이 웅크려 있는 그녀의 머리에 이마를 가까이 댔다.

그대로 그녀의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잘했어. 잘 돌아왔어. 무사히 돌아와줘서 기뻐.”

“………”

“여기 너랑 나 둘밖에 없어. 예배당 위이니까 밑에 사람이 있긴 한데, 그래도 안 들릴 거야. 그러니,”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다 해도 돼.

그렇게 말을 맺으려고 했는데, 굳이 그럴 필욘 없었던 모양이다.

아래층에 들리지 않을 거란 말이 떨어지자마자, 곧바로 나에게 와락 안겼으니까.

그리고 그 느닷없는 불의의 습격 때문에, 나는 그녀에게 껴안긴 채 의자 위에 쓰러져버렸다.

천장이 보인다. 뒤통수가 살짝 아프다.

등을 두르며 꽉 붙잡는 억센 팔.

그에 완전히 묶여버린 몸.

메린의 머리카락이, 그녀의 체취가 코를 간지럽힌다.

“……!”

기억이 떠오르면서 감각을 집어삼킨다.

내가 지금 어디에 쓰러졌더라?

의자? 바닥?

둘 다 나무냄새가 나서 모르겠어.

아무튼 쓰러졌어.

또 쓰러뜨려졌다.

메린에게.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강제로.

아직 선명하게 남은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며, 몸이 바짝 굳기 시작했다.

“하……!”

안 돼.

안돼안돼, 안 돼, 또 다시 당할 수는 없어……!

그녀의 두 어깨를 움켜쥔다.

또 다시 당하기 전에 떨어뜨려야……

……아아, 아니야!

아냐아냐, 이건 그런 상황이 아냐!

“윽……!”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릿한 통증과 함께, 비린 내음이 입 안으로 흘러들어온다.

덕분에 그녀를 밀쳐내려는 충동은 억눌러졌지만, 몸이 덜덜 떨리는 건 어찌할 수 없는 듯했다.

그래도……, 지금은 메린이 먼저야.

꽉 잡고 있던 그녀의 어깨를 놓고, 말을 잘 듣지 않는 팔을 움직여서 그녀를 껴안았다.

“괜, 찮아. 응, 괜찮아, 메린.”

그리고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나 자신에게도 들려주듯이 되뇌기 시작했다.

……그래, 괜찮아.이건 달라. 위험하지 않아.

봐, 메린도 그냥 살짝 떨고 있기만 하잖아.

나쁜 기억은 빨리 묻어버리자고.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등을 토닥여주는데,

“……모르겠어.”

갑자기 그녀가 불쑥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모르겠어. 이해가 안 돼. 같은 일을 했는데 반응이 달라. 달라도 너무 달라. 이상해. 이런 거 이상해……!”

“일단 진정해. 나 어디 안 가. 너도 어디 안 보낼 거야. 괜찮아. 급할 거 없으니까 차근차근, 하나씩 하자. 응?”

“……”

잠시 후, 나를 껴안은 팔에서 힘이 빠지는 게 느껴졌다.

그걸 기회 삼아 천천히 몸을 일으킨 뒤, 이번엔 내 쪽에서 그녀를 깊이 끌어안았다.

옷 너머에서도 확연히 느껴지는 온기.

비냄새에 섞여 풍기는 체취.

바짝 들었던 긴장이 차츰차츰 누그러지고, 덜덜 떨리던 몸도 점차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길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을 따라, 그녀도 깊이 호흡하는 게 느껴졌다.

살며시 뒷머리를 쓰다듬자, 그녀의 손이 내 옷자락을 한층 더 세게 쥐었다.

“괜찮아.”

난 진정됐고, 너도 이제 곧 괜찮아질 거야.

그 마음을 담아 속삭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이 녀석이 심은 기억으로 동요한 걸, 이 녀석의 온기와 체취로 도로 잠재우다니.

이게 바로 진정한 ‘병 주고 약 주기’이지 않을까?

씁쓸히 웃으면서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혼란스러움으로 흔들리는 주홍빛 눈동자를 마주보며, 그녀의 두 뺨을 감싸고서 조용히 말했다.

“뭘 모르겠어? 천천히 말해봐.”

“……똑같은 일을 했어. 고향에서도 했던 것처럼, 여기에서도 검을 휘둘렀을 뿐인데. 그런데 사람들 반응이 너무 달라.”

“그러게. 엄청 다르네.”

“왜……? 왜 좋아하는 거야? 왜 칭찬하는 거야? 카엘, 저 사람들 이상해. 내가 멀어지니까 오히려 표정이 안 좋아져. 계속 붙어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처럼……. 이해가 안 돼. 어째서 그러는 거야? 나를 몰라서 그런 거야?”

그건 상관없어.

그렇게 말하려 한 순간, 메린이 먼저 선수를 치며 말을 이어버렸다.

“아냐, 아니야, 그건 상관없어. 그렇지? 처음 보는 사람이라 해도, 내가 검을 쓰면 다들 겁을 내고, 힘을 보이면 주춤거리니까. 그럼…… 그럼 뭐야? 사람 차이야? 저 사람들이 특별하게 이상한 거야? 너처럼?”

“내가 어디가 이상…… 음, 아니야. 이상한 거 맞구나. 너한테 시달렸는데도 널 좋아하니까 말야.”

처음 한동안은 일방적인 술래잡기를 당했다.

내가 도망가고, 메린이 잡으러 오는 식으로.

힘으론 안 되니까 입으로 덤비는 나에게 짜증을 내면서 내 팔을 부러뜨리기도 했지.

뭐, 딱 한 번뿐이었지만 말야.

그 뒤로는 이 녀석이 나에게 물리적인 상처를 입힌 적이 없다.

그렇다고 안 때린 건 아니다.

상처는 안 나지만 타격은 확실히 주는 방식을 취했을 뿐이지.

어휴, 무서운 자식 같으니.

그렇게 실컷 당하면서 살았고, 심지어 지금도 가끔 당하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이 녀석을 좋아하고 있으니 이상한 놈이 맞지.

이거 한정으로는 미친놈이라 해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어.

……하지만 메린, 넌 어떨까?

이 대화가 끝난 뒤에도, 여전히 넌 날 사랑할까?

“저 사람들이 이상한 게 아니야.”

네가 그간 납득하지 못했던 사실을 깨달은 뒤에도, 나를 보는 눈빛이 이전과 같을까?

방금 그 한 마디만으로도 무언가를 알아차린 것처럼 눈썹을 일그러뜨리는 네가, 이 대화 후에 나에게 무슨 말을 건넬까 무서워.

나를 원망할 거 같아서, 무서워.

……그래도 할게.

너에게 사실을 전하는 게 내 역할이자 의무이니까.

“이 마을 사람들은 당연한 반응을 하고 있어. 대단한 일을 해낸 사람이 눈앞에 있으니까 감탄해하고, 그 사람 덕분에 무사하니까 고마워하고, 그 사람이 있으면 안전할 거 같으니까 가까이 있기를 바라는 거야. 하나도 이상하지 않아. 굉장히 일반적이고 자연스러운 반응들이야.”

“이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그럼,”

메린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며,

“그럼, 그 사람들이 이상했던 거야……?”

그녀 스스로 오래오래 묻어 두었던 의문을 입에 올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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