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0화 〉 310화 : 네 손이 품은 건 희망이야 (4)
* * *
대륙의 북쪽, 왕국령의 가장 끝에 위치한 곳.
주변을 둘러싼 숲에 삼켜진 채,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작은 마을.
하루 온종일 몬스터 한 마리 나타나지 않으면 오히려 불길하다고 수군대고, 여자애들조차 바느질보다 무기 다루는 법을 먼저 배우는 곳.
자신의 이름을 쓸 줄 모르는 것보다, 활을 쏠 줄 모르는 걸 더 부끄러이 여기는 곳.
……어제를 넘지 못한 자들을 기억 속에 묻어버리며, 그저 오늘을 살아가고자 애쓰는 곳.
그게 바로 놋지빌, 우리 두 사람의 고향이다.
강한 자를 사랑하고 약한 자를 경시하는 곳이면서, 세상에서 가장 강한 메린을 냉대했다는 모순을 보인 곳이다.
……그리고 메린은, 열 아홉 살 생일을 맞이하고도 반 년이 더 지난 지금에야, 겨우 그에 의문을 품은 것이었다.
“단 한 번도 없었어.”
그녀는 멍하니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거대 멧돼지를 죽였을 때도, 마을에 내려온 곰을 없앴을 때도, 늑대인간이나 트롤의 목을 땄을 때도……. 아무도 안 했어. 고맙다, 대단하다, 굉장하다, 멋있다, 나도 커서 누나처럼 되고 싶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오히려 반대였다.그녀를 더욱 꺼려했다.
그녀가 가까이 가는 만큼 뒷걸음질을 치고, 눈이 마주치면 긴장부터 했다.
그리고,
“저주받은 년. 다들 그렇게 욕했는데.”
“……”
“내가 저주받아서 부모님이 죽었고, 그 피값으로 힘이 세진 거라 했는데. 사람들이 웃고 울고 화내는 이유를 모르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했는데. 다들 그렇게 말하니까 그런 줄 알았는데.”
그러나 이곳, 고향과는 반대편에 있는 곳에서 처음으로 환호를 받았다.
탄성을 듣고, 경탄 어린 시선을 마주하고, 찬사를 받았다.
이제껏 알고 있었던 ‘당연함’에 의문이 드는 순간이었고,
“근데 그게 아니었다고……? ‘여기’가 자연스럽고 당연한 거라고……?”
“그래. 여기 사람들은 지극히 당연한 반응을 했을 뿐이야.”
바로 지금, 내가 못을 박음으로써 그 ‘당연함’이 완전히 깨부숴지고 있었다.
그리고 메린은 그 충격에 몸을 떨며 감정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예전이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아니, 어쩌면 그 무덤덤한 때에도 조금씩 쌓였을 울분을 쏟아내었다.
“그럼 거긴 뭐야……? 나한테 왜 그랬던 거야? 왜 미워한 거야? 저주받아서 그런 거라는 거짓말까지 하면서 왜?!”
“메린.”
“내 덕에 집을 지켰으면서. 사지 멀쩡할 수 있었으면서. 배 채울 수 있었으면서……! 내가 없었으면 다 죽었을 거면서……!”
“메린.”
가만히 그녀와 이마를 맞댔다.
솟구쳐올라온 감정으로 그녀의 호흡이 가빠진 게 느껴진다.
앞을 향한 채 부릅떠진 그녀의 두 눈동자가 격정에 흔들리고 있는 게 보인다.
……그걸 보고 있으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누가 찌르기라도 한 것처럼 속이 아려온다.
당장이라도 그녀를 힘껏 껴안고서 그 놈들 전부 쓰레기 같은 새끼들이었다고 외치고 싶다.
그러한 충동을, 나는 눈을 질끈 감으며 흘려버렸다.
참아야 해.
지금 내가 전해야 하는 건 사실이지, 내 감정이 아니야.
들끓는 무언가를 마른 침과 함께 삼켜버린 후, 그녀의 뺨을 어루만지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진정해, 응? 일단 숨부터 고르자. 그러다 진짜 숨 넘어가겠다.”
“하아, 하앗, 케흑! 켁! 읏, 하아……!”
“괜찮아. 나를 봐, 메린. 차분하게, 숨을 고르면 돼. 알지? 자,천천히…… 천천히……”
잔기침까지 내뱉기 시작한 그녀를 달랜 후, 나는 서서히 그리고 깊이 숨을 들이쉰 다음, 아주아주 조금씩 길게 내쉬었다.
그녀가 들을 수 있도록, 일부러 크게 소리내면서.
이내 메린은 나를 따라서 숨을 크게 쉬기 시작했다.
“흐으읍…… 후우우……”
그렇게 나와 함께 여러 번 심호흡을 한 뒤, 그녀는 한결 차분해진 목소리로 재차 입을 열었다.
“나쁜 사람들이었던 거지……?”
살짝 가늘게 뜬 눈을 한 번 깜빡이고 읊조리기 시작한 말 속엔,
“별 이유 없이 미워한 거야. 아니면…… 그래, 질투한 거야. 내가 자신들보다 세고, 검도 더 잘 다루니까 샘이 났던 거지. 그리고 나는 편들어줄 부모가 없으니까, 살면서 쌓인 화를 나한테 실컷 푼 거야.
그런 거지? 전부 나쁜 사람들이었던 거지? 잘못되고 이상한 건 내가 아니라, 거기 사람들이었던 거야……!”
미약한, 그러나 확연히 뜨거운 열을 품은 분노가 담겨 있었다.
……아, 메린.
내가 그냥 고개를 끄덕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네 말이 다 맞다고, 우리 고향 사람들 전부 개 같은 놈들이라고, 네 뜻에 동조해줄 수 있다면 너나 나나 무척 행복했을 텐데.
하지만 안 돼. 그럴 순 없어.
나는 온전한 네 편이 되어줄 수 없어.
네 말은 사실이 아니니까.
“놋지빌 사람들이 죄다 널 미워했다고?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럼 아니라고?!”
“어. 아니야. 난 너 미워한 적 없으니까.”
흠칫, 그녀의 눈꺼풀이 살짝 커지는 게 보였다.
나는 그녀와 맞대던 이마를 떼고, 그 눈을 들여다보듯이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 엄마는 물론이고, 아버지도 너 미워한 적 없을 거야. 근데 너에겐 다르게 보였나보다?”
“내 말은, 그게 아니라……!”
“네가 방금 그랬잖아. 고향 마을 사람들이 전부 나쁜 사람들이라고. 이유 없이 다들 널 미워했다고. 넌 지금 그러지 않은 사람까지 통틀어서 나쁘다고 비난한 거야. 그게 옳다고 생각해? 그게 이치에 들어맞는 걸까?”
“………”
주홍빛 눈동자는 내 시선이 불편하다는 듯이 아래를 향했다.
아랫입술을 살짝 앙다물고, 미간을 찌푸리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옳지 않다고. 그것은 부당한 것이라고.
그녀 자신이 겪었던 일들 중 일부처럼, 불합리한 덮어씌우기라고.
뭐, 어쩌면 내가 말꼬리 잡는다고 짜증내고 있을 뿐일지도 모르지.
나는 찡그려진 그녀의 미간을 엄지손가락으로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
“메린, 이런 건 확실히 해야 돼. 말해봐. 나나 우리 부모님이 너 미워했던 거 같아?”
“……아니.”
“다른 사람들은? 우리 가족 말고는 다 너 미워했어?”
내 물음에, 메린은 여전히 시선을 깐 채로 천천히 고개를 저은 후, 조용히 읊기 시작했다.
“전대 검술 사범님, 이번 검술 사범님, 슐 언니, 밀렌 언니, 자경단장님……. 나 안 미워했어.”
“응? 사제인 줄 알았던 그 영감탱이는? 너한테 잘해주지 않았나?”
“그 노인네? 내가 싫었어. 맨날 나 보면서 싱글거리는 게 왠지 징그러웠거든.”
“저런.”
사제인 척하던 그 악마는 메린에게 유일하게 차인 놈이 되고 말았다.
악마라서 다행이지, 그냥 사람이었다면 좀 동정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우리 가족까지 여덟 명인가?”
“아마도.”
“………적네.”
열 명도 안 되는 건가.
진짜 글러먹은 곳이었구나.
입 밖으로 그 말을 내지 않았지만, 얼굴이 대신해서 불만을 표시한 모양이다.
메린은 가만히 손가락을 뻗어, 내가 했던 그대로 내 미간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나 참, 서로서로 미간의 주름을 펴주고 있네.
이거 누가 보면 되게 웃길 거 같은데.
머릿속에 한 번 떠올려봤다.
“푸흡.”
그리고 곧바로 웃음이 터져나왔다.
내가 킥킥거리는 게 옮은 건지, 메린도 곧 나를 따라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예전에 비하면 한결 더 자연스럽고, 훨씬 더 부드러운 웃음이다.
두 달 조금밖에 지나지 않았건만, 그녀가 이렇게나 달라졌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그녀의 미간을 매만지던 손으로, 내 이마를 문지르는 그녀의 손을 감싸 쥐고서 손가락에 입을 맞추었다.
메린은 간지럽다는 듯이 키득 웃은 뒤, 살짝 눈길을 내리깔며 입을 열었다.
“거의 대부분…… 나쁜 사람들이었던 거지?”
“넌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괜히 널 미워하고 싫어하던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거야?”
“……아니야?”
그렇게 묻는 그녀의 얼굴엔 조금 그늘이 져 있었다.
스스로도 그에 대한 답을 알고 있는 거다.
내가 자신의 말에 동의해줄 지도 모른다는, 그 일말의 가능성에 기대고 있을 뿐이지.
그리고 나는 그 기대를 들어줄 수 없다.
허울좋은 거짓말로 그녀를 안심시킬 순 없다.
아마 메린도 그걸 알고 있겠지.
내가 얼버무리면서 좋게 넘어가지 않을 거란 걸 알면서도 물은 것이다.
어쩌면 내가 확실하게 못을 박아주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난 그 바람대로 할 뿐.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녀에게 상처가 될 게 뻔한 사실을 그대로 들이밀 뿐이다.
나는 내 손 안에 감싸인 그녀의 손을 바라보며, 그 손등을 엄지로 매만지면서 입을 열었다.
“아니야, 메린. 그 사람들도 이상하지 않아. 그저 잘못했을 뿐이지.”
“……”
“옛날 이야기를 할까? 넌 대여섯 살 때 거대 멧돼지를 잡았어. 그것도 주먹으로. 그때 너, 돌진해오는 멧돼지를 피하긴커녕 오히려 달려들었다면서?”
그리고 틈을 파고들어서 배에 주먹을 날렸다.
그 일격에 멧돼지는 피를 토하며 쓰러졌고, 그대로 절명했다고 소문이 쫙 퍼졌다.
나 역시 그 현장을 잠깐 봤는데, 빨간 꼬마애 하나가 내장을 줄줄 흘리는 거대한 멧돼지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이 녀석이 멧돼지의 뱃가죽을 찢었던 게 아닐까 싶다.
뱃속이 궁금해서.
……그런 짓을 태연하게 저지르는 어린애를, 누가 사람으로 볼까?
“그리고 피범벅이 된 채로 며칠 돌아다녔고. 너 그때 머리도 산발이었잖아. 그 꼴로 다니는데 누가 안 피해?”
“……”
“그 뒤로 넌 나랑 알게 될 때까지 숲만 돌아다녔다고 했지. 그때도 이미 곰이든 고블린이든, 처음 해치운 것들은 죄다 뱃속 구경했다며? 칼을 배운 뒤엔 대가리도 갈라보고 말야. 그것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엔, 그저 확실히 숨통을 끊기 위해서 그런 건 줄 알았다.
그러나 요전에 그녀가 엘프의 숲에서 직접 말했다.
신기해서 그랬다고. 껍데기 안에 우글우글 모여 있는 게 신기해서 까봤다고.
생물 내장이 거의 엇비슷하게 생겼다는 걸 안 뒤에도, 그녀는 여전히 처음 보는 몬스터나 짐승을 해치운 뒤엔 배를 갈라보았다.
그녀와 함께 숲을 순찰한 자경단원이 술집에서 망연한 얼굴로 토로한 적이 있으니 확실하다.
“그리고 나 괴롭히려 붙잡은 애 떼어낼 때 나무에 집어던졌지. 그 놈은 운이 좋아서 그 충격으로 머리가 좋아졌지만, 보통은 머리 깨져서 죽어.”
“……”
“또 있지? 넌 드라우너에게 잡혀서 계곡에 빠진 아이의 어머니 앞에서 이런 말을 했었어. ‘뭐 하러 들어가? 이미 다 찢어져서 뼈도 안 남았을 텐데. 애초에 금지구역에 간 게 잘못이지, 그게 왜 드라우너 탓이야?’”
무려 자식을 잃은 어머니가 듣는 데서 그런 말을 한 거다.
그 여인은 당연히 온갖 욕을 내뱉으며 달려들었고,메린은 그 손을 태연히 꺾어버리기까지 했다.
……그런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존재를, 그 누가 사람이라 여기겠는가?
그게 몇 살 때 일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부모님이 교육을 맡기로 한 뒤에 일어난 건 분명하다.
그 바로 다음에, 우리 엄마가 메린의 뺨을 때렸으니까.
그 전까지는 메린이 무슨 괴상한 언행을 일삼던, 심지어 내 팔을 부러뜨려도 화 안 내고 차분히 타일렀었는데.
그러나 그때 그 순간은 어떠한 말 한 마디 없이, 싸늘한 눈으로 메린의 뺨을 양쪽 다 한 번씩 후려치셨다.
그게 너무 충격적이라서 그 다음에 어떻게 됐는지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
중요한 건, 그 뒤에도 메린은 우리 엄마를 잘 따랐다는 거다.
어떻게 잘 끝났던 거겠지.
“그게 너였어. 병아리가 잡아먹혀도 불쌍해하지 않고, 남의 아이가 태어난 게 기쁘지 않고, 남이 죽은 게 슬프지 않은 애.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애.
몬스터이든 짐승이든, 겁을 먹지도 않고 거리낌없이 죽여버리는 애. 손에 걸린 놈을 정신을 잃을 때까지 두들겨패는 애.
……그리고 그럴 때 외에는 웃지 않는 애. 표정이 아예 없는 애. 그게 마을 사람들이 본 너야, 메린.”
그 중에 내가 부정할 수 있는 건 마지막 것밖에 없다.
메린은 피를 볼 때 외에도 웃었다.
술래잡기를 하면서 웃고, 내가 얼굴을 찡그리는 걸 보면서 이따금 웃었다.
사탕과 젤리를 먹을 때도 웃었고, 내가 부모님에게 혼난 이야기를 들을 때는 배를 잡고 뒹굴기까지 했다.
그뿐인가?
울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어이없어 하기도 했지.
골치 아프다며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고.
그녀에게도 표정이 있었고, 단순하긴 해도 또렷한 감정이 있었다.
그 하나만큼은, 다른 사람들과 똑같았던 것이다.
그저 그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했을 뿐이지.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설사 메린이 평범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들은 그녀를 배척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너에게서 위협을 느꼈어. 같은 말을 쓸 뿐, 뜻은 통하지 않으니까 몬스터나 다름없는 위험 분자로 여겼지. 너도 그걸 부정하진 못할 거야. 그러니 그 사람들은 이상한 게 아니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을 취했을 뿐이지.
왜 여기 사람들과 반응이 다르냐고? 간단해. 넌 여기 사람들을 한 번도 위협한 적이 없기 때문이야.”
그래서 순수하게 기뻐할 수 있는 것이다.
그 힘이 자신들에게 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겠지.
하지만 고향 사람들은 다르다.
그들에겐, 어린 메린이 통제 불가능한 위협요소로 보였다.
수틀리면 언제든 자신들을 해칠 수 있는, 사람처럼 생기고 사람의 흉내를 내는 무언가라 생각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해가 안 돼.”
그녀는 눈썹을 아래로 구부리며, 내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그 의문을 입에 담았다.
“처음부터 달랐어. 멧돼지를 잡은 건 그 사람들과 엮이기 전이었잖아. 여기 사람들처럼 내가 어떤 애인지 알기 전이었다고. 그런데도 반응이 다른 건 뭔데.”
“글쎄…… 이건 내 추측인데, 그때 네가 주먹으로 잡은 게 문제였을 거 같아. 만약 네가 그때도 이번처럼 검을 썼다면 다르지 않았을까? 검은 사람의 무기이니까.”
어째서 검과 같은 날붙이가 만들어졌는가?
인간의 손발톱은 무언가를 자르기엔 무르기 때문이다.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칼이고, 다른 생물보다 더 우위에 서기 위해 칼날을 길게 빼서 검을 만들었다.
스스로의 힘이 모자람을 인정하고, 그 한계를 극복하고자 외부의 능력을 가져와 제 힘으로 삼은 것.
그것이 무기를 비롯한 도구이고, 그를 사용하여 위에 올라서는 건 지성 있는 생물만이 보일 수 있는 모습이다.
즉, 검을 쓰는 건 사람이라는 최소한의 증명인 것이다.
아무리 태생적인 힘의 차이가 있다 한들, 자신도 검…… 도구를 써야만 진정한 힘을 낼 수 있는, 너희와 같은 사람에 지나지 않다고.
“덤으로 겉모습도 말끔했다면 더 나았겠지. 아까도 말했듯이, 넌 그때 산발이었잖아. 거의 야생아였다고. 마을 사람이 아니라 늑대인간 새끼라고 해도 믿었을걸?”
“……너 정말 가차없구나.”
“사실을 숨김없이 전하는 게 내 장점 아니겠냐?”
특히 너에겐 더더욱, 가급적 숨기지도 참지도 말고 전부 말해주자고 다짐했었지.
그래야 눈치 없는 네가 마을에서 사는 법을 배울 수 있었으니까.
“거기 사람들도, 여기 사람들도 이상한 게 아니라면…… 결국 뭐야? 그냥 내가 이상한 거고, 여기 사람들은 그저 그걸 모를 뿐인 게 되나?
아, 이상하긴 하구나. 내가 아직 뱃속에 있을 때, 드래곤이 이런저런 손을 썼었다며? 저주받았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네, 뭐.”
메린은 납득할 거 다 했다는 듯이, 홀로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마쳤다.
……그녀의 웃음 중 유일하게 내 맘에 들지 않는, 그 텅 빈 미소를 지으면서.
아마 그 때문일 거다.
“그것도 아니야, 이 멍청아……!”
생각보다 더 날카로운 목소리가 내 입에서 튀어나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