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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321화 (321/475)

〈 321화 〉 311화 : 네 손이 품은 건 희망이야 (5)

* * *

넌 이상하지 않다.

그 말을 들은 메린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런 눈초리를 하는 것조차 신경에 거슬려서, 나는 한층 더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낮게 소리쳤다.

“넌 그냥 좀 많이 특이한 사람이야! 어느 마을에나 하나나 둘은 있는 괴짜!

그래, 예전엔 사람 같지 않았어. 존나 인정하기 싫지만 그게 사실이야, 인정해! 하지만 지금의 넌 달라. 지금은 그냥 심각하게 힘이 세고, 극도로 냉정하면서 눈치는 더럽게 없는 사람일 뿐이야!”

“결국 이상한 거잖아.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거 아냐.”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어디 있냐? 어느 곳이건 다른 사람보다 무언가 특출나게 뛰어나다고 알려진 사람이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야! 우리 마을은 그게 너였고, 네가 다른 사람보다 월등히 한참이나 더 뛰어났을 뿐이지!

그건 잘못이 아니야, 메린. 네가 강한 게 드래곤이 수를 써서 그렇다 해도, 그게 잘못이 아니라는 건 변하지 않아. 네가 스스로를 이상한 애라고 몰아세우고, 그래서 사람들이 널 피하는 게 당연하다고 할 게 아니라고……!”

망연히 나를 보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으며 호소했다.

……이후로 이 녀석이 고향을 원망하게 되더라도 상관없어.

솔직히 그래도 되잖아?

이 녀석이 진탕 저지르긴 했지만, 그들도 이 녀석에게 한 게 있는데.

햇수로 따지면, 메린이 말썽을 피운 것보다 마을 사람들이 이 녀석을 냉대한 게 더 크다고.

하지만 내가 그걸 유도하고 싶은 건 아니다.

나는 그저 이 녀석이 자신을 탓하지 않았으면 할 뿐이야.

최근까지도 그런 대우를 받은 게, 순전히 이 녀석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닫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 우리 고향 사람들은 이상한 짓을 한 게 아니야. 너에게서 자신들을 보호하려고 했을 뿐이지. 그건 사실이야. 하지만 처음에 말했지? 그 사람들은 이상한 게 아니라, 잘못한 거라고!”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며? 근데 그게 왜 잘못이야?”

“시간이 지나도 널 이해하려 하지 않고, 여전히 널 멀리하면서 무서워하기만 했으니까. 네가 차츰차츰 나아졌고, 앞으로도 점점 더 나아질 거라는 걸 믿지 않았으니까……!”

그녀가 더는 위협이 아니라, 적을 치는 검이자 자신들을 지키는 방패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무시했다.

그녀 덕분에 많은 사람이 목숨을 건지고 있었는데도, 그 공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메린 소더가 사람의 행동을 배우기 전에 저지른 일들에 사로잡혀, 지금의 모습을 믿지 않았다.

언제 그 껍데기가 벗겨질지 모른다고 항상 두려워했다.

메린을 믿어주지 않은 것.

위협 요소라고 찍었던 낙인을 지울 고려조차 하지 않은 것.

그것이 그들의 잘못이다.

“넌 저주받은 게 아니야! 네가 엄청나게 강한 거랑 아기였을 때 부모님을 몽땅 잃은 건, 전부 그 거대 도마뱀 새끼가 수작을 부려서 그런 거랬잖아! 순전히 외부의 개입으로 이뤄진 건데, 그게 어떻게 저주가 되냐?

네가 저주받았다고? 웃기지 마, 네가 아니라 나야! 매년 겨울마다 꼬박꼬박 앓아 눕는 내가 저주받은 거라고!”

단 거 퍼먹으면서 충치 하나 안 걸리고, 이때까지 감기 한 번 안 걸려본 녀석이 저주는 개뿔!

내 말에 곧바로 표정을 찡그리는 그녀가 입을 열기 전에, 나는 그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재차 입을 열었다.

“메린, 제발 그런 말하지 마. 네 힘엔 아무런 잘못이 없어. 예전에 네가 잘못 휘둘렀을 뿐이지, 힘 자체가 잘못된 게 아니야……! 네가 오늘 그 힘으로 뭘 했는지 알아? 여기 사람들의 목숨만 구한 게 아니야. 너는 그 배를 부수는 걸로, 여기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어.”

“희망……?”

“그래, 희망. 그냥 무력하게 전부 잃을 거라고 절망하던 사람들이, 네 검 덕분에 다시 일어섰어. 여전히 위험하긴 하지만, 네가 있으면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믿기 시작했다고.”

그 일을 해낸 그녀의 오른손을 살포시 감싸 쥐고, 그 손 안쪽을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이 손, 네 오른손이 그 불씨를 피운 거야. 메린, 너에게 담긴 건 저주가 아니야. 여기, 네 손이 품고 있는 건 희망이야. 어떤 강적이든 쳐부수고, 어떤 난관이든 헤쳐갈 수 있다는 희망.

아무리 상황이 불리하더라도, 네가 있으면 마지막의 마지막엔 이길 거라고 믿을 수 있어.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어왔어. 그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단 말야……. 전에 말했지? 네가 있어서, 내가 어디로든 갈 수 있다고.”

“……”

“그러니 네 자신을 탓하지 마. 네가 미움 받은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마. 생각을 고치려고 하지도 않은 그 마을 사람들이 잘못한 거야……!”

그렇게 말하며, 나도 모르게 그녀의 오른손을 꽉 잡았다.

……그녀의 손바닥에 군데군데 배겨 있는 굳은살이 느껴진다.

살짝 까끌까끌하기까지 한 이 손은 여자로서는 흉일 터.

하지만 이건, 그녀가 가슴을 펴고 자랑해야 할 훈장이다.

이건 메린이, 그냥 주먹질을 하고 싶은 걸 참고, 검을 통해서만 힘을 보이고자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이루어낸 결실이니까.

그녀 스스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고자 애썼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용서할 수 없어. 널 끝까지 받아들여주지 않은 그 사람들, 절대로 용서 못해. 평생 안 할 거야.”

죽는 날까지 용서하지 않을 거다.

그들 역시 평생 뉘우치지 않을 테니까.

만약 기적이 일어나서 우리가 다시 산을 내려가서 고향으로 돌아간다 해도, 그들은 겉으로만 너를 환대하겠지.

널 냉대했던 일 따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할 거야.

속으로는 여전히 거리를 두고 널 무서워하면서 말야.

보장할 수 있어.

내가 직접 겪은 거니 믿어도 돼.

물론네 경우와는 방향성이 완전 다르지만 말야.

……그대로 잊어버릴 줄 알면 오산이다.

나나 이 녀석에게 한 말들, 저지른 짓들.

전부 다 기억하고 있어.

절대 잊지 않아. 절대로.

네가 설령 용서한다 해도, 내가 절대 안 할 거야.

“그리고 나 자신도 용서 안 할 거야.”

의아한 눈으로 나를 보는 그녀에게 쓴웃음을 지으며, 그녀가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을 내 죄를 고백했다.

“나도 너한테 고맙다고 잘 안 했잖아. 네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누구보다도 알면서 말야. 무엇보다도…… 네가 잘못된 대우를 받는 걸 알면서도 그 마을에 붙잡아 놨어.”

메린에게 목숨을 빚진 걸 갚겠다는 건, 어디까지나 내 사정일 뿐이다.

내 개인적인 욕심으로 그녀를 옭아맨 거다.

그녀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서.

……어쩌면 마을에서 쭉 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을지도 몰라.

연심은 어쨌든, 이 녀석이 있으면 내가 안전하니까 말야.

아니면 이 연심조차도 그녀를 붙잡기 위한 수단일 뿐인지도 모른다.

그 생각이 미치자, 그녀의 뺨을 감싸던 손이 저절로 떼어지고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 상태로 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고해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정말로 널 위한다면, 네가 그곳을 벗어나도록 도왔어야 했어. 혼자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게 됐을 때, 여기서 달아나도 된다고 알려줬어야 했어. 어디든 가서 자유롭게 살아도 된다고 했어야 했는데.”

그러나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니, 그런 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없었지.

“……네가 힘들어하는 걸 알면서도 계속 거기 있게 한 거. 그게 내 잘못이야. 내 탓인 거야.”

고향을 나오고, 이렇게 여행을 하고서야 그걸 깨달았다.

이 대륙 어딘가에, 메린이 좀더 편하게 살 수 있는 데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아니, 분명 있을 거야.

대륙은 꽤 넓고,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리고 나는 그녀가 그 행복을 잡을 기회를 빼앗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나를 용서할 수 없어. 너도 용서하지 마. 사과도 안 할 거야.”

“응, 안 할게.”

“……그래, 하지 마.”

무자비할 정도로 시원시원한 대답이군.

조금 울고 싶어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내가 응당히 받아야 할 벌이니 감수해야지.

아마 이젠 날 보더라도 그리 좋은 감정은 내비치지 않을 거야.

어쩌면 얼굴 보기도 싫을지도 몰라.

울적해진 마음을 누르며, 시선만을 들어 그녀를 힐끗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내 눈에 비친 그녀의 주홍빛 눈동자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정확하게는 해달라고 해도 못하는 거지. 잘못한 게 없으니까.”

“뭐……?”

멍하니 그녀를 마주보았다.

내가 잘못한 게 없다니, 얘가 내 말을 이해 못한 걸까?

내 표정에서 무언가를 읽은 건지, 메린은 키득 웃은 후 다시 입을 열었다.

“너 맨날 나 대단하다고 말하고 있었어. 눈으로.”

“눈?”

“내가 뭔가 할 때마다 엄청 눈 빛내던데? 시선 마주치면 금방 없어졌지만 말야. 네 눈 파랗잖아? 꼭 호수에 햇빛 비쳤을 때 같더라.”

“………”

누, 눈을 빛냈다고?

호수 같았다고……?!

그런 적 없어, 몰라, 기억 안 나, 내가 언제 그런 눈으로 쳐다봤다는 거야?!

근데 이 녀석이 없는 소리할 리도 없고……!

고개가 저절로 아래로 숙여졌다.

왠지 모르게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서, 그녀의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러자 이번엔 자신의 차례라는 듯이, 그녀가 내 얼굴을 감싸더니 자신을 마주보도록 들어올렸다.

시선을 피하고 싶은데, 그녀가 자신을 보라는 듯이 뺨을 쓰다듬어서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쫓아가면 겁먹고 도망가고, 화를 내고 짜증을 내는 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데, 내가 힘을 쓰면 눈을 막 반짝이면서 쳐다보는 거야. 당장은 화를 내더라도, 일이 끝난 뒤엔 꼭 그러고 있더라. 그게 이상해서 재미있었던 거 같아. 그래서 더더욱 널 쫓아다녔던 거 같고.”

“……으.”

“너밖에 없었어. 나를 그렇게 보는 건, 그 마을에서 너 하나뿐이었어. 그래서……”

그녀는 잠시 말을 끊더니, 한층 더 깊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참을 수 있었어. 머리 아픈 것도, 이해 안 되어서 짜증나는 것도 전부.”

“……”

“다른 데에 가면, 거기에 너는 없잖아. 넌 거길 떠날 생각이 없으니까, 나 혼자 가야 되잖아. 근데 거기에 너처럼 이상한 놈이 또 있을 거란 보장이 있냐? 없지.

그러니 네가 나한테 다른 더 좋은 데로 가라고 했어도 안 갔을 거야. 아마 나가더라도 다른 마을로는 안 갔을걸? 적응하기 귀찮으니 그냥 혼자 살았겠지.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고, 여기도 휑한 채로.”

자신의 왼쪽 가슴 위에 손을 올리며 중얼거린 후,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며 나를 보았다.

여전히 미소를 띠고서.

“그러니 잘못 자체가 안 돼. 아예 일어날 리가 없는 일이니까, 가끔 네가 하는 헛소리나 다름없어. 여기 안에 있는 게 답답한 나머지 맛탱이가 가서 주절거리는 거지.”

“……너도 가차없구나.”

“난 원래 이랬는데?”

태연하게 맞받아치는 목소리와 함께, 그녀의 손이 다시금 내 얼굴을 감쌌다.

손가락이 드러나 있어서 그런지, 장갑을 낀 손임에도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냥 화끈거리는 내 얼굴의 열이 옮은 건지도 모르지만.

“방금 나한테 그랬지? 내 탓하지 말라고. 너도 네 탓하지 마. 네가 그 마을에 날 붙잡은 게 아니야. 내가 그냥 거기 남아있던 거지. 으응…… 네 눈 때문에 남았던 거니, 너한테 붙잡혀 있었다고 해도 틀린 건 아닌가?”

“………”

“와, 엄청 뜨거워~ 야, 너 이렇게 열나면 안 되는 거 아니냐? 근데 왜 빨개지는 거야? 뭐가 쪽팔리다고?”

“………말 안 해.”

나한테 붙잡혀 있었다니.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막 내뱉고 말야.

진짜로 모르고 하는 건가?

사실 다 알면서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거 아니야?!

“아, 아무튼……! 여기 사람들이 이상한 게 아니야. 너도 전에 비하면 그럭저럭 행동 좋아져서 이상하지 않고.그러니 그냥 평소대로 해. 누가 말 걸 때 대답하고 싶으면 대답해주고, 싫으면 하지 마. 어차피 오래 볼 사람들도 아니고, 우리 일은 사람들 돌보는 게 아니라 적이랑 싸우는 거니까.”

“응, 알았어.”

“……”

“……”

……왜 손을 안 떼는 거지?

이야기는 다 끝났는데, 왜 날 놓아주긴커녕 뺨을 만지작거리는 거야?

어째 계속 실실 웃고 있고……!

“야, 야아, 그만 놔. 지금 이렇게 노닥거릴 때가 아니잖아…….”

“그건 아는데……. 야, 카엘, 여기 아무도 못 듣지?”

“어? 뭐, 큰소리 내지 않는 이상, 밑에 안 들리겠지…….”

내 말에, 그녀가 킥킥 웃더니 귓가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서 나지막이 속삭였다.

“기분 좋은 거, 할래?”

“뭐……?! 야, 무, 뭐, 그, 그게 대체 뭔……?!”

“쉬이잇~”

느닷없는 기습발언에 눈앞이 어지러워진 내 입을, 그녀의 입술이 조용히 덮었다.

아, 여기 예배당인데……!

반사적으로 고개를 뒤로 당기려 했지만, 그녀의 손에 붙잡혀 있는 탓에 불가능했다.

메린이 입술을 포갠 채, 당혹감에 떨고 있는 내 입술을 혀로 스윽 핥았다.

“후으……!”

움찔거리는 나를 어르듯이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손.

마치 그걸 이어받듯이, 몇 번이고 내 입술을 매만지며 포개는 그녀의 촉촉한 입술.

그 입술이 멀어질 때마다, 쪽, 가벼운 물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떨어져가는 그녀의 입술을 쫓아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결코 깊지는 않다.

타액을 흘려 넣지도, 숨결을 들이마시지도 않고, 그저 서로의 입술을 쓰다듬으며 포개기만 하고 있는데.

그보다 더 깊어지려고 해도, 그녀가 내 얼굴을 잡은 채 고개를 뒤로 빼며 허락하지 않고 있는데.

그런데도 왜 이렇게 열이 올라오는 걸까?

머릿속이 뿌옇게 흐려져서, 눈앞에 있는 메린밖에 생각할 수 없다.

좋아.

기분 좋아.

메린.

메린…….

좋아한다, 사랑한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좋아.

뭐라고 해야 충분할지 모를 정도로 좋아해.

“메린…… 메리인………”

그녀를 느낄 수 있어서 기쁜데, 이 이상은 다가갈 수 없다.

내 마음을 다 전할 수 없다.

그게 너무 답답하고 애가 타서 미칠 거 같아서, 무언가를 조르듯이 그녀의 이름을 연이어 불렀다.

“우음…… 후후, 있잖아, 카엘. 나 지금 네 눈도 좋다? 후으…… 어때? 더 좋은 거 할래? 소리 안 내면, 안 들키는 거 아냐?”

멍한 머릿속에 울려퍼지는 그녀의 속삭임.

달콤한 유혹을 담은 목소리가 귓속으로 흘러들어오며 온 몸을 휘감는 게 느껴진다.

맞아…….

소리 안 내면 안 들키겠지…….

나나 메린만 입 다물면, 아무도 모를 거야…….

고혹적인 웃음을 흘리며 뺨을 쓰다듬는 그녀의 그 목을 껴안고, 그 어깨에 얼굴을 대고서,

“하겠냐……! 멍청아……!”

온 힘을 다해 그 유혹을 뿌리쳤다.

“아하하.”

“웃지 마, 임마……!”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정말로 유쾌한 듯이 웃는 그녀가 얄미워 죽겠다.

이 자식, 일부러 꼬시기나 하고……!

진정하라고 등 토닥여주면 다야?!

이거 완전 병 주고 약 주는 꼴이잖아!

한껏 올라버린 열기가 한시라도 빨리 가라앉기를 애타게 바라며, 그 어깨에 기대듯이 그녀를 껴안은 채 긴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럭저럭 열이 가신 덕에 몹쓸 장난질을 한 메린의 두 뺨을 쭉 잡아당기고 있는데,

쿠웅—!

여태껏 울린 것보다 한층 더 큰 진동음과 함께, 창문이 깨지면서 유리파편이 우수수 떨어지는 게 보였다.

“꺄아아악!”

“이쪽으로 모이세요! 얼른!!”

드디어 깨지지 않은 창문이 박살난 걸 감안하더라도, 아래층에서 들리는 소리는 지나치게 다급했다.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난간으로 다가가자,

“끄르르륵……”

“……!”

깨진 창문으로, 촉수다발을 가진 작은 민둥머리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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