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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323화 (323/475)

〈 323화 〉 313화 : 바다에서 올라온 무언가 (2)

* * *

대문을 굳게 닫은 후, 곧바로 오른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놈이 깨뜨린 창문은 입구 기준으로 오른쪽에 있었으니, 이 모퉁이 너머에 놈이 있을 터……!

그러나 놈은 그곳에 없었다.

그 자리에 있는 건 커다란 발자국과, 처참하게 부숴진 채 둔덕처럼 쌓여 있는 집뿐이었다.

그것도 윗부분, 즉 굴뚝을 낸 지붕이 붙어 있는 반쪽짜리 집이.

그 잔해를 보고 깨달았다.

이 미친 대머리 새끼, 집을 던진 거였어?!

블루벨이 말했던 그,집을 감싼 채 끙끙대고 있었다던 이족보행 촉수생물체가 이 놈이었나……!

아, 오늘 하루종일 상식이 마구 헤집어지는 기분이다.

폭풍을 불러오는 고래랑 이족보행 생선이 있다는 것도 골치가 아픈데, 잘리면 마구마구 분열하는 촉수생물체에 집을 쳐맞아도 튼튼한 신전까지…….

음, 아니야. 일단 신전은 ‘이상한 거’에서 빼자.

신을 섬기는 곳이니 어떤 가호라도 내려진 거겠지.

근데 이 정도로 튼튼하면, 메린 녀석이 아까 배 안 쪼개도 됐을 거 같다.

“숙여!”

“?!”

갑자기 메린이 크게 소리치면서 내 머리를 콱 내리눌렀다.

어리둥절한 머리 위로 바람이 후웅 불면서, 무언가가 휙 지나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메린이 내 팔을 잡고는 앞으로 쭉 내달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할 틈 따윈 조금도 없다.

하지만 일단 안 뛰면 뒤진다는 건 알겠어!

이내그 추측에 확인도장을 찍어버리듯이, 뒤쪽에서 크게 땅이 울렸다.

“힉……?!”

방금 발이 공중에 뜬 거 같은데!

예상 못한 현상에 놀란 몸이 중심을 잃고 기우뚱거렸다.

메린이 잡아주지 않았다면 바닥 한 번은 굴렀겠지.

나는 자세를 가다듬고, 감사의 표시로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주면서 몸을 돌렸다.

“……!”

우르르릉—

천둥이 울리며 번개가 번쩍였다.

그 빛을 등진 채, 신전의 예배당 지붕보다 약간 낮은 키의 그림자가 빗속에 서 있다.

거대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창문으로 충분히 얼굴을 들이밀 수 있을 정도로 높고, 우리 두 사람을 손으로 쉽게 터뜨릴 수 있을 정도로 크다.

맨들맨들한 머리의 아래쪽엔, 수염처럼 길다란 촉수들이 놈의 허리까지 축 늘어진 채 꾸물꾸물 움직이고 있다.

바람에 휘날리는 게 아니라, 그냥 저 혼자서 뱀이나 벌레처럼 꿈틀거리고 있는 거다.

두 팔과 다리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는데, 이런 생물이 두 발로 걸어다닌다는 것 자체가 소름이 끼쳤다.

주위는 놈의 몸뚱이 색깔만 겨우 구분될 만큼 어두컴컴하다.

그러니 노란색으로 빛나는 게 있으면 어둠을 밝혀주는 불빛이 나타났다고 기뻐해야 할 텐데, 저 앞에 보이는 두 개의 호박색 빛은 되려 마음을 더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놈이 나를 보고 있다.

거리가 떨어져 있어서 보이지 않지만, 놈의 눈동자가 나를 주시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놈이 내 손에 들려 있는 검을 노려보고 있다는 확신과 함께, 가슴이 크게 덜컥 내려앉았다.

“끄르르르……!”

들끓는 소리를 내며 놈이 두 팔을 들었다가 내리쳤다.

방금 전까지 놈의 손에 자리하던 다섯 손가락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 덩굴 같은 촉수가 꿈틀거리는 게 보였다.

꾸물꾸물.

흐느적흐느적.

질척질척.

……빗물에 섞여 뚝뚝 떨어지는 진득한 액체.

지독하게 코를 찌르는 썩은 풀냄새.

아까 그 촉수덩어리보다도 더 진한 비린내가 풍겨온다.

“돌겠네, 진짜.”

속이 뒤집어지려는 걸 꾹 참으며 나지막이 내뱉었다.

블루벨은 이 놈이 해안에 있었다고 했다.

아마 바닷속에서 걸어나온 다음, 저 촉수를 써서 벽을 넘어온 거겠지.

저딴 게 바닷속에 살고 있다니.

바다는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무시무시한 곳인지도 모르겠다.

쿵. 쿵.

놈이 두 팔을 흐느적거리며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기 시작했다.

“내가 시선을 끄는 틈에 칠래?”

“아니, 저 놈 촉수가 한둘이 아니어서 별 소용없을 거 같은데.”

네가 위험해지는 게 싫어.

가장 큰 이유를 마른 침과 함께 삼켜버리고, 지극히 합리적인 이유를 대며 거절했다.

아까 예배당에서도 여러 촉수가 제각각 움직였다.

하나는 사제를 붙잡고, 또 하나는 나를 후려치려고 날뛰었고, 다른 것들은 메린과 위슨이 싹둑싹둑 잘라서 얼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미끼를 쓰거나 양동을 펼치는 건 아무 의미도 없어.

놈의 촉수들을 정면에서 베고 피하고 난리를 치면서 접근하는 것 외엔 길이 없다……!

긴장으로 떨리는 손에 힘을 주며 검자루를 꽉 쥐었다.

메린의 검이 소용없는 지금, 내가 정신차리고 놈을 처리해야 돼……!

“그럼 기동력이 필요하군.”

메린이 대뜸 덤덤하게 중얼거리더니, 돌연 내 앞으로 와서 등을 보이며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그 상태로 뒷걸음질을 치면서 내 다리 사이로 비집고 들어왔다!

“너, 너너너, 이런 상황에서 뭐하는 거야?!”

메린은 기겁해하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내 양쪽 다리를 붙잡더니, 그대로 자신의 어깨에 올리면서 벌떡 일어섰다!

으어어, 뭐야, 이거 목마 태우기 아냐!

아아, 안 돼, 이 자세는……!

“히익?!”

이거 봐, 닿고 있잖아아!닿고 있다고오!!

두 다리는 어쨌든, 상당히 중요한 부위가 녀석의 뒤통수에……!!

“꺄아아아악! 내려줘내려줘내려줘, 내려줘어어! 빨리 내려달라고, 이 자식아! 이게 뭔 해괴망측한 짓이야, 얼른 내려줘어어어!!”

“에엥? 왜? 내가 너보다 달리기 빠르니까, 이러면 저 놈에게 접근하기 쉽잖아. 응? 어라, 어째 점점 딱딱……”

“내리라고오오오!!”

피를 토할 기세로 소리치자, 그녀가 툴툴대면서 나를 내려주었다.

그 와중에 놈이 휘두르는 촉수를 피하느라, 나를 안은 채로 뛴 건 덤이다.

“아니, 이 상황에도 그게 반응하는 거냐? 진짜 시도때도 없구만.”

“시끄러, 임마, 이건 원래 건드리면 반응하게 되어 있어! 상황 이전의 문제라고!”

소리치면서 옆으로 몸을 굴렀다.

나를 노리고 날아온 촉수가 빈 땅을 때리며 흙탕물을 튀기는 걸 보자마자, 그에 가까이 붙어서는 수직으로 검을 내려쳤다.

파르르 떨며 도망가는 촉수를 대신하듯, 곧바로 다른 두 줄기가 서로 다른 방향에서 나를 후려치려고 날아온다.

그 중 하나를 메린이 반대편으로 걷어차면서 투덜거렸다.

“그냥 좀 참으면 안 되냐? 솔직히 너 혼자 가면 저거 쳐맞고 날아갈 게 뻔하잖아.”

참으라고?

아니, 말이 쉽지!

나머지 한 줄기를 밑에서 사선으로 올려베며 대꾸했다.

“어떻게 참아! 딴 사람도 아니고 네가 건드리는 걸 참을 수 있겠냐!”

“자랑이다, 새꺄! 결국 네가 발정난 거잖아!!”

일갈하며 보란듯이 내 뒤로 빠지는 메린.

“안 났어, 이 자식아! 누가 들으면 내가 욕구에 미친놈인 줄 알겠다! 자극이 가면 반응하는 게 정상이고! 그 주체가 좋아하는 여자라서 효과가 더 클 뿐인데, 뭐가 발정이야, 웃기지 마, 짜샤!!”

그리고 나는 그녀를 쫓아 뻗어온 촉수들을 마구 썰어버리면서 소리쳤다.

그런 뒤, 민머리 놈의 대가리를 노려보며 성검을 고쳐잡았다.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대머리 새꺄! 뒈져!!”

끔찍한 면상을 향해 허공을 베듯 크게 성검을 두 번 휘둘렀다.

검신이 번쩍이며 그 자리에 남겨진 빛의 궤적이,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놈에게 날아갔다.

내가 그런 공격을 할 줄은 몰랐겠지.

놈은 당황한 듯이 몸을 들썩이며 옆으로 급히 틀었고, 그 탓에 성검의 빛은 놈의 이마가 아닌 수염만 썩둑 자른 채 하늘 저편으로 날아가버렸다.

“끄롸아아아—!!”

놈이 입에서 거품 같은 액체를 뚝뚝 떨어뜨리면서 포효했다.

수염 역할을 하던 촉수 가닥들이 하얀 불꽃에 휩싸여서 마구 들썩거리는 게 보였다.

기나긴 포효 후, 놈이 별안간 앞쪽으로 몸을 굽혔다.

그새 손가락을 다 잃어버린 팔로 몸을 받치더니,

“그워어어어—"

입을 쫙 벌리며 촉수덩어리들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꿀럭꿀럭.

울컥울컥.

진득거리는 녹빛 액체 속에서, 촉수들이 하나 둘 꾸물거리면서 흐느적거린다.

어우씨, 속 울렁거려……!

그렇다고 이거 눈 돌릴 수도 없고, 진짜 돌아버리겠네!

일순간에 답답해진 가슴을 툭툭 두드리면서, 나는 뱉을 거 다 뱉고 몸을 일으키는 놈을 쏘아보았다.

놈이 쩍 벌린 입을 다무는 와중에, 그 입 안에서 촉수덩어리 하나가 흐물거리며 나오더니 대롱거리다가 툭 떨어졌다.

그리고 그게 나에게 결정타를 날려버렸다.

“우워어억………”

저절로 고개가 옆으로 돌아가면서 뱃속이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제기랄, 겨우겨우 참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마지막에……

끄아아, 생각하지 마, 괜히 속만 더 뒤집어지잖아!

한차례 쏟아냈는데도 속은 가라앉지 않는다.

시큼한 냄새를 타고 몰아치듯이, 드디어 흐름이 왔다는 것처럼 속이 더더욱 신나게 꿀렁거렸다.

아아……, 그래도 비가 많이 와서 다행이야…….

적어도 눈은 무사하잖아…….

망연히 생각하는 내 귀에, 메린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렸다.

“아잇, 씨발! 안 그래도 존나 엿 같구만, 거기에 양념을 치고 지랄이야! 나까지 속 안 좋아지잖아, 새꺄!!”

“케헥! 컥! 윽…… 이런 썅,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야, 이 나쁜 년아……, 내가 뭐 일부러……! 우욱……”

“토하지 말고 앞이나 봐!”

아니, 나는 뭐 이러고 싶은 줄 아나……!

그렇게 내뱉으려는 순간, 갑자기 몸이 붕 뜨더니 저절로 이리저리 휙휙 움직여졌다.

뭐지? 돌풍 때문에 몸이 뜬 건 아닌 거 같은데.

근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으아아, 안 돼애……! 시야가 막 흔들려……!

또 다시 스멀스멀 속이 올라오는 느낌에 눈을 질끈 감았다.

차가운 비와 바람을 맞으며 크게 심호흡을 하자, 마침내 요동치던 뱃속이 겨우겨우 잠잠해졌다.

그 동안에도 내 몸은 혼자서 열심히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주로 팔이. 그것도 두 팔 한꺼번에.

“……”

고개를 드니, 내가 무슨 기도라도 하는 것처럼 두 손을 서로 겹친 채 검자루를 쥐고 있다.

그리고 그 손을, 어디서 많이 본 손이 꽉 붙잡고 있다.

그러고보니 허리도 뭔가 든든한 걸로 휘감겨져선 꽉 붙들려 있는 거 같은데.

고개를 한층 더 높이 들었다.

눈에 익은 턱선과 함께, 갈색의 땋은 머리가 흔들리는 게 보였다.

“…………”

그렇구나. 메린 녀석이 날 통째로 들고서는 성검 써먹고 있는 거야.

한 팔로는 내 허리를 안아들고, 다른 팔로는 내 오른팔을 붙잡고서 말야.

마침 성검이 촉수덩어리를 밑에서 위로 가르고 있었다.

말끔하게 양단된 단면이 화르륵 하얗게 타오르면서, 그대로 재가 되어 사라져간다.

“꾸르르!!”

“키이이—"

촉수덩어리들이 소름 끼치는 소리를 지르면서 녹색 액체를 뱉었다.

메린은 그걸 뒤로 뛰어서 피하는 대신, 도리어 신전 쪽으로 크게 뛴 다음, 벽을 박차고서 놈들에게 달려들었다.

휘익. 휙. 스윽.

한 놈당 한 번씩 휘두른 다음, 그 결과도 보지 않은 채 곧바로 몸을 돌린다.

그새 깨진 창문을 다시 기웃거리는 민머리 생물체에게 뛰어가, 놈의 발목에 검을 찔러넣고는 그대로 앞으로 내달렸다.

“끄롸아아아—!!”

놈이 끓는 소리로 비명을 내지르며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발목을 향해 입을 벌리더니, 진득한 녹색 액체를 뱉었다.

그러자 하얀 불꽃이 꺼지는 것도 모자라, 성검에 베인 상처가 사라지며 살이 도로 붙어버렸다.

“이야, 저런 재생법은 난생 처음 보는데.”

“나도 이런 취급받는 건 난생 처음이거든……?”

감탄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메린에게 대꾸했다.

“너 말야……, 너무한 거 아니냐……? 아무리 내가 너에 비하면 잡졸이라 해도 그렇지……. 이렇게 대놓고 검자루로 써먹냐……?”

……나도 알아.

나보다는 메린이 성검을 쓰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는 거.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 녀석처럼 움직일 순 없으니까 말야.

방금 녀석이 보인 건 실로 찬사를 받기에 합당한 움직임이었다.

예배당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이 모습을 봤다면, 한차례 더 뜨겁게 열광하겠지.

역시 메린은 대단하다.

큰 짐덩어리를 든 채로도 이렇게 가뿐하게 움직이고, 남의 팔을 제 팔처럼 다룰 수 있으니까.

정말 굉장한 녀석이야.

……그래서 울고 싶어졌다.

아니, 어쩌면 빗물에 섞여서 이미 한두 방울 떨어뜨렸을지도 모르겠다.

딱히 활약하고 싶은 건 아니다.

그저 메린이 아까처럼 도와주면, 내 힘으로도 저 놈을 쓰러뜨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뿐.

……근데 가망이 없다고 봤나봐.

그러니 직접 나서서 이렇게 통째로 들고 휘두르지.

메린은 성검을 직접 쓸 수 없으니, 내 몸을 들어서 간접적으로 쓰기로 한 거다.

아아…… 아까 불에 타던 그 촉수덩어리처럼 사라져버리고 싶어.

이런 걸 두고 비참한 기분이라고 하는 거겠지?

“그래……, 이게 훨씬 낫지……. 난 이거 들 수 있다는 거 말곤 쓸데없는 놈이니까…….”

“뭐? 어어, 아, 아냐! 저 놈들이 덤벼들려고 하는데 네가 비실대고 있으니까 할 수 없이……!”

“맞아……, 이런 상황에 비실대기나 하고……. 난 역시 쓸모없는 놈이야……. 성검 없으면 아무 가치도 없는 놈……. 흑.”

“아니, 그게 아니라 일단 급한 불부터 끄자 싶어서 그런 거야! 다른 뜻은 없었어, 진짜야!”

드물게 어쩔 줄을 몰라 하면서 말을 늘어놓고 있지만, 그동안에도 착실히 내 팔을 써서 놈의 발목을 완전히 잘라버리는 메린이었다.

놈이 우리를 짓뭉개려고 내리치는 팔을 한 조각 썰어내는 것은 덤이었다.

“급한 불이 참 오래 가네…….”

“어, 아니, 마침 기회가 보이니까……!”

“아냐……, 그냥 해……. 저 놈 죽이는 게 더 먼저이지, 내 처지가 길바닥 돌멩이나 다름없는 게 뭐 그리 중요하겠어……?”

“아, 아냐아냐아냐! 지, 지금 내려줄게!”

“됐다니까……”

메린은 여태껏 본 적 없을 정도로 허둥지둥해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신선하면서도, 나 때문에 괜히 그녀가 불편해졌다는 사실이 마음을 한층 더 무겁게 내리눌렀다.

그냥 가만히 닥치고 있었으면 됐을 것을, 왜 괜히 입을 털어서…….

안 그랬으면 지금쯤 메린이 저 민머리 놈을 해치웠을 거 아냐.

놈이 발목이랑 팔뚝 잘린 고통으로 허우적거리는 지금, 기세를 몰아서 공격해야 하는데.

내 괜한 말 한 마디 때문에 기회를 놓치기 직전이다.

……그래서는 안 되지.

내 자존심 따위가 뭐 얼마나 중요하다고.

성검 거치대가 뭐 어때서?

그 역할이라도 있는 거에 감사해야지!

착각하지 마, 카엘 에스트렐.

네 처지는 원래부터 길바닥 돌멩이, 아니 그보다도 못한 흙먼지였어!

어째서인지 가슴이 시큰거리는 걸 꾹 참으며 메린에게 진짜로 괜찮다고 하려는 순간,

“끄르롸아아—!!”

콰앙—!

민머리 놈이 괴성을 지르면서 뭉툭한 팔로 신전 모퉁이를 세게 후려쳤다.

그러자 벽이 깨지면서, 머리만 한 파편이 우리를 향해 날아왔다!

“?!”

메린은 날 내려놓으려다가 황급히 도로 안아들었다.

타의적인 움직임으로 파편을 피해 그 자리를 벗어나는 동안, 나는 방금 본 광경으로 등골이 오싹해지는 걸 느꼈다.

신전의 벽이 깨졌다.

집을 들이받아도 끄떡없던 벽이, 놈이 후려치는 걸로 금이 가면서 부숴졌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가호가, 깨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걸 민머리 놈이 놓칠 리가 없었다.

아니나다를까, 놈의 호박빛 눈이 부숴진 신전의 벽으로 향하더니, 곧 끄륵끄륵거리면서 어깨를 들썩였다.

두 뭉툭한 팔을 하늘로 쭉 뻗으면서 크게 포효했다.

마침내 됐다고, 환호성을 지르는 것처럼 보였다.

“……메린,”

“어? 아, 아니야, 이건 피하려고……!”

“상관없어. 이대로 가! 나를 써, 메린!”

“어어, 뭐? 어, 진짜……?”

메린은 내 말을 듣고도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듯이 허둥지둥 당황해하고 있었다.

나는 왼손을 빼어, 아직 내 오른손을 덮고 있는 메린의 손등에 얹었다.

“나를 써서, 놈을 없애……!”

그 손을 꽉 잡으면서, 당혹감에 흔들리는 주홍빛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힘껏 외쳤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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