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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330화 (330/475)

〈 330화 〉 320화 : “실현되니까 예언인 겁니다.” (1)

* * *

그냥 입맛이 없어서 대강 끼니 때우려고 과자 먹은 건데, 생각보다도 더 기운이 샘솟는 것 같았다.

역시 피곤할 땐 단 게 최고라니까.

입이 즐거워진 덕분인지, 무겁고 울적하고 침울하던 기분도 조금 가벼워졌다.

여전히 상황은 절망적이고, 이걸 타파할 길은 저 하늘의 햇빛만큼이나 안 보이지만.

“죄다 위슨 배낭에 넣어버리는 것도 방법은 방법이겠지?”

“야, 이 미친놈아, 저 숫자를 언제 다 넣고 꺼내냐? 그보다 위슨이 인신매매범 같잖아, 안 해!”

이미 하나 넣고 있는 마당에 뭘 새삼스럽게…….

그리고 사람 하나하나를 넣고 꺼내기 힘들다면, 어느 집에 다 몰아넣고서 집까지 몽땅 집어넣으면 되지!

뭐, 그 다음에 집을 어떻게 꺼낼 지가 또 문제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막 던지다 보면, 뭐 기발한 게 떠오르지 않을까?”

“축제 기획하냐, 기발한 걸 왜 찾아? 정 방법이 없으면 지금이라도 걸어가든가. 위슨이 절벽 앞에서 흙으로 계단 만들어서 올라가게 하면 되지 않냐?”

“……메린, 네 다리가 트롤처럼 튼튼하다고 딴 사람도 그런 게 아니야. 저기 성 꼭대기랑 맞먹는 높이를 계단으로 올라간다고? 다들 다리 부숴질걸.”

그보다 기발한 걸 왜 찾냐고 해놓고, 자기도 평범한 거랑은 천지 차이가 나는 걸 꺼내네.

이 자식, 그럴 거면 난 왜 깐 거야?

“아쿠아 등에 사람들을 태우는 건 어때요?”

거북이 등에 태운다…….

비교적 현실적이군.

그러나 이번엔 위슨이 로나를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숫자가 많잖아. 안전하게 가려면 저 폭풍고래만큼 커야 할걸?”

“그럼 안 되지.”

“히잉.”

곧바로 침몰되고 말았다.

그치만 어쩔 수 없는걸.

거북이가 그만큼이나 거대해지면, 이 마을을 멸망시키는 주범이 폭풍고래가 아니라 우리가 되는걸!

어휴, 그런 오명을 뒤집어쓸 순 없지.

그래도 최후의 최후의 최후의 최후의 방법으로는 쓸 수 있을 듯했다.

“그 엘크가 사람들을 죄다 절벽 위로 올리는 건? 바람의 정령이니까, 돌풍이 불어도 제어할 수 있을 거 아냐.”

“그리고 위슨은 내일까지 눈 못 뜨겠지, 한두 명이 아니니까! 그보다 그걸 누가 좋다고 나서겠냐?”

블루벨의 나름 진지한 제안도 기각시킨 후, 위슨은 황량한 눈길로 우리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근데 왜 죄다 위슨, 정확하게는 우리 정령 얘기만 나오냐, 이 새끼들아. 작작 좀 부려먹어!”

“그만큼 망한 상황이라는 거지.”

지금 이 상황은, 순수한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범위를 한참 넘어서 있다.

마법이나 정령처럼 어떤 초월적인 힘 없이 이걸 어떻게 헤쳐가?

지금 예배당에서 차와 수프로 몸을 녹이고 있는 사람들을 피신시키는 것도 그렇고, 특히 저 폭풍고래를 없애는 건 더더욱!

옛날처럼 누가 갑자기 짜잔~ 나타나서, 저 고래 놈의 대가리를 박살내주면 얼마나 좋을까?

작게 한숨을 쉬는데, 돌연 예배당 쪽에서 한 꼬마가 휘적휘적 물살을 헤치면서 바깥으로 나오는 게 보였다.

로나보다도 더 키가 작아서, 길을 걷는다기보단 거의 헤엄을 치고 있다.

그냥 답답해서 나온 건가?

하지만 자세히 보니, 꼬마는 이따금 우리를 향해 고개를 들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치마자락을 물에 둥실 띄운 채로.

우와, 우리한테 오고 있는 거야? 저러다 넘어지면 큰일인데!

황급히 수레마차를 내려가 꼬마에게 다가갔다.

그런 뒤, 아이를 번쩍 안아 들고 내가 방금까지 걸터앉아 있던 수레 가장자리에 앉혔다.

“세상에, 꼬마 아가씨가 엄청 용감하시네! 그래도 숙녀가 혼자 나오시면 안 되죠, 에스코트 받으셔야지!”

“에헤헤.”

방긋 웃는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물었다.

“근데 왜 나왔어? 무지하게 멋지고 예쁜 검사 언니 보러 온 거야?”

“으응, 이거 주려고.”

꼬마는 허리에 묶여 있는 주머니를 풀더니, 그 안에서 푸른빛 돌을 꺼냈다.

촘촘한 구멍이 송송 뚫려 있으면서 중간중간 하얗게 띠가 그려져 있는데, 단순한 조약돌은 아닌 것 같았다.

일단 색깔도 연한 파란색이고.

“와, 신기하게 생겼네. 이런 거 처음 봐. 이게 뭐야?”

“산호! 헤헤, 예쁘지? 오빠 가져.”

“엥? 나? 이 언니가 아니고?”

메린을 가리키며 묻자, 꼬마는 고개를 붕붕 저은 뒤 함박웃음을 지었다.

“사제님이 그랬어. 아까아까 그 문어 같은 거, 오빠가 없애줬다고.”

“그거? 나 혼자 한 거 아니야, 이 언니랑 같이 했지. 힘 많이 쓴 것도 이 언니이고.”

“그래도 나 봤어! 오빠가 예배당에서 그 길쭉한 문어 다리 같은 거 자르는 거! 그리고, 그리고~ 아까도 무서운 아저씨들 앞에 서줬고.

나랑 엄마랑 되게 무서웠는데, 오빠가 앞에 있으니까 하나도 안 무서웠어! 헤헤, 그니까 이거 줄게. 고맙습니다~”

…………아, 이거 좀 센데.

울컥 막혀버린 목을 열심히 가다듬으면서, 꼬마가 내미는 돌을 조심스레 받아들었다.

“이거, 크흠, 이거 엄청 귀한 거 같은데. 정말 나 줘도 돼?”

“응, 또 주우면 돼! 오빠 진짜 멋있었어! 나중에 크면 오빠랑 결혼할래!”

“푸흐읍!!”

“……”

주변 사방에서 무언가 힘차게 내뿜으며 켁켁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중에 한 놈은 수레마차를 짚으면서 폭소를 터뜨리기까지 하고 있다.

누구인지 몰라도 두고 보자!

나는 평정을 유지하려 애쓰며, 눈앞의 맹랑한 꼬마 아가씨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미안해요, 꼬마 아가씨. 난 이미 좋아하는 사람 있어서 아가씨랑 결혼 못해요.”

“에엥? 진짜? 누구?”

“여기 예쁜 언니.”

또 한 번 메린을 가리키며 말하자, 꼬마가 녀석을 향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몇 번 깜빡였다.

메린은 처음 잠깐은 덤덤하게 그걸 마주보다가, 곧 부담스러워졌는지 시선을 슬쩍 피해버렸다.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꼬마는 또 다시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구나! 응, 언니 예쁘고 멋있으니까 양보할게! 난 오빠 같은 사람 또 찾아서 결혼하면 되니까!”

“……”

폭소하는 놈이 셋으로 늘었다.

그 중 두 명은 거의 숨 넘어가기 직전까지 몰린 듯했다.

나쁜 자식들, 코에 빗물 들어가라!!

속으로 저주를 걸면서, 나는 싹수가 제법 심상치 않은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배시시 웃는 꼬마에게 나지막히 물었다.

“아빠가 어떤 분인지 몰라도 실망하겠는걸? 귀여운 딸이 아빠 같은 사람을 안 찾아서.”

“그치만 아빠 싫은걸! 맨날 술 냄새 나고 엄마 때려. 나빠. 어젯밤엔 집 오자마자 막 욕하더니, 다시 나가고 안 돌아왔어. 이제 안 올 건가봐. 그래서 너무 좋아! 엄마 이제 안 아파도 되니까! 근데 엄마는 아빠 없어서 슬픈가봐. 기운이 없어.”

뭐, 거지 같은 남편이어도 자식까지 본 사이이고, 게다가 집안의 가장인데 갑자기 사라졌으니 막막하겠지.

하지만 정작 꼬마는 아빠가 없어진 걸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이 애한테도 막 대했나보군.

그러고보니 얘 머리카락이 노랗네.

문득 어젯밤에 치웠던 그 미친놈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에이, 아니겠지. 그런 쓰레기 같은 놈에게 처자식이 있을 리가 있나.

쓴웃음을 지으며 그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휙 던져버린 후, 꼬마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꼬마 아가씨, 이름이 뭐에요? 전 카엘이라고 합니다.”

“모니카!”

“응, 그래. 모니카, 엄마가 기운이 없어서 슬프지? 그럴 땐 맛있는 거 먹는 게 최고야. 자, 이거 엄마 꼭 드려.”

사탕 서너 개를 모니카의 주머니에 넣고서, 물에 젖지 않도록 허리가 아닌 목에 걸어주었다.

그런 뒤, 사탕 하나를 더 꺼내 모니카에게 직접 먹여주었다.

달다며 방긋방긋 웃는 어린 아가씨.

주위는 어두컴컴한데, 어째서인지 눈앞이 무척 환히 밝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맛있다! 우응, 근데 선물 주려고 온 거였는데.”

“괜찮아, 괜찮아. 산호라고 했나? 네가 너무너무 귀한 걸 줘서, 그냥은 못 받겠거든. 그래서 주는 거야.”

사실은 돌보다도 더 귀하고 큰 선물을 받아서 주는 거지만.

고맙다는 말도, 그리고 그걸 표현하겠다고 혼자서 여기까지 나오는 그 마음이 무척이나 귀했다.

……멋있다든가 나 같은 사람이랑 결혼할 거라는 말 때문이 아니야!

절대 아니라고!!

“그럼 이만 들어가자, 감기 걸리겠다. 엄마도 걱정하실 거고.”

“응!”

모니카는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짐칸에서 폴짝 뛰어내리더니, 또 혼자 뒤뚱뒤뚱 가려고 했다.

나 참, 이 아가씨도 어지간한 말괄량이구만.

어릴 적의 메린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모니카~ 아가씨는 혼자 다니는 거 아니라니까? 데려다 줄게.”

“와아! 에스코트!”

까르륵 웃는 모니카를 다시 번쩍 안아 올린 후, 예배당으로 향했다.

왠지 엄마 몰래 나왔을 거 같은데.

아니나다를까, 계단을 올라가자마자 한 여인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다가왔다.

모니카의 어머니일 거 같아서 아이를 내려놓자, 역시나 모니카가 환히 웃으며 여인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엄마아~ 에헷!”

“모니카, 혼자 다니면 안 된다고 했잖니! 아아, 정말 감사합니다. 얘가 말썽을 피웠죠? 정말 죄송해요.”

“아뇨, 전혀요. 이런 상황에도 씩씩한 걸 보니 오히려 기운이 나는걸요.”

나는 제 엄마의 손을 꼭 잡은 아이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러자 모니카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응, 오빠도 있고, 엄마도 있으니까 안 무서워! 그리고 사제님이 그랬어. 배가 올 거라고!”

“배?”

“응! 힐데 사제님이 그랬어! 여기 없어질 때 배가 올 거라고. 그니까 물이 막 올라와도 안 무서워. 배가 오면 타면 되니까!”

아, 그래.힐데 사제가 그런 예언도 했었다고 했지.

배라…… 진짜 오려나?

일단 모니카의 어머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그녀는 무척 당황해하면서 환히 웃고 있는 딸의 손등을 착착 쳤다.

“얘가 무슨 말을……! 죄송해요, 애가 이상한 소리를 해서.”

“네? 아아, 아니에요. 그거 힐데 사제님의 예언이라면서요?”

“네, 맞아요. 하지만…… 솔직히 진짜로 배가 올 것 같진 않아요. 아니, 애초에………

………어머, 내 정신 좀 봐. 으음,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튼 모니카를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나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돌아서려다, 다시 고개를 돌려 여인을 바라보았다.

딸을 찾아서 안도하고 있음에도, 그 얼굴엔 여전히 그늘이 끼어 있다.

저 하늘만큼 짙거나 어둡진 않지만, 확연한 체념의 빛이 엿보이고 있었다.

……막돼먹긴 했어도 일단 남편이었던 놈은 없어지고, 남은 건 그녀가 손을 꼭 잡고 있는 어린 딸뿐.

그 놈팽이가 가출하면서 재산을 다 가져갔을지도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도 있으니 함부로 여인을 도울 순 없다.

그래서 대신,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다 잘될 거에요.”

“……네?”

“여길 무사히 빠져나가고, 또 새로운 곳에 무사히 정착할 수 있을 거에요. 모니카도 별탈 없이 무럭무럭 예쁘게 자라서 좋은 남자 만나고, 아주머니께 손주 안겨드릴 거고요.”

“어어……”

여인은 내 말에 당혹해하고 있었다.

젊은 놈이 대뜸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그래도 나는 그녀를 격려하고 싶었다.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다고.

그녀가 손을 잡고 있는 어린 딸아이도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았으니까.

“꼭 그렇게 될 테니 믿으세요. 믿지 않으면 될 것도 안 되지 않겠어요?”

여인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힘주어 말하자, 그녀는 곧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네, 그러네요. 이 애도 이렇게 꿋꿋한데, 엄마인 제가 약해져선 안 되죠. 거듭거듭 고맙습니다.”

고개를 숙이는 그녀에게 마주 인사를 건넨 후, 다시 예배당 바깥으로 나왔다.

여전히 수레마차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내 동료들이, 저마다 얼굴에 기묘한 표정을 띄우며 나를 쳐다보았다.

“뭐, 이 자식들아. 이상한 소리하기만 해봐. 바로 딱밤이야.”

“이야, 청혼도 받으시고 좋으,”

따악!

아아, 이 얼마나 맑은 소리인가?

빗소리까지 뚫는 그 울림을 듣자, 속이 한층 더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사람은 모름지기 자신이 내뱉은 말을 지켜야 하는 법이다.

특히나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헛소리를 하는 녀석에겐 더더욱 자비를 보일 순 없지.

“하으아아아……!”

“하여간 말을 안 들어요, 말을.”

짐칸에 엎드려서 바들바들 떠는 로나를 내려다보면서 한숨을 푹 쉰 다음, 다른 녀석들을 돌아보았다.

하나같이 내 눈을 피하며 입을 꾹 닫는 게, 로나가 훌륭한 본보기가 되어준 것 같아서 뿌듯했다.

이거 징조가 좋은걸?

나는 어처구니없다는 눈으로 로나를 보고 있는 알스 사제에게 물었다.

“알스 사제님, 힐데 사제님이 ‘배가 올 것’이라 예언하신 거 아시나요?”

“알죠. 왜요?”

“……정말로 배가 올까요?”

모니카의 어머니에겐 믿으라고 했지만, 솔직히 나도 ‘배가 온다’는 건 믿기지 않는다.

옆 마을의 수장이 갑자기 이곳에 대한 동정심이 마구마구 샘솟을 리도 없잖아.

게다가 배를 쓰려면 반드시 바다에 띄워야 한다.

폭풍고래가 신나게 날뛰고 있는 저 바다에.

그런데도, 힐데 사제와 같이 일하는 엘시아 사제처럼, 예언을 해석하는 능력을 지닌 알스 사제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올 겁니다. 그게 진짜 배이든, 아니면 구원을 상징하는 다른 것이든 반드시 올 거에요. 예언은 반드시 이루어지거든요. 실현되니까 예언인 겁니다.”

“……나쁜 예언도요?”

“물론이죠. 예언은 불길할수록 더 의미가 있어요. 본래 자신과 주위를 돌아보고 환기하라고 알려주는 거거든요. 피하고 깨부수라는 게 아니라.”

‘흑발의 왕이 태어나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는 예언이 내려졌다고 하자.

만약 당대의 왕이 그걸 듣고,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아이들을 모조리 색출해서 죽이라고 했을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사람이 하는 일이니 반드시 구멍이 생깁니다. 누군가는 살아남는 거죠.”

졸지에 불행과 고난의 삶을 살게 된 아이는, 자신을 그렇게 만든 왕에게 복수심을 품을 터.

아이는 모진 세월 끝에 큰 세력의 수장이 되어 왕에게 칼을 겨누고, 자연히 왕국은 큰 혼란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다.

그렇게 예언은 결국 이루어진다.

흑발의 왕, 즉 검은 머리칼을 지닌 어느 세력의 우두머리에 의해 왕국이 혼란에 빠지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당대의 왕이 그 예언을 듣고, 자신의 잘못된 치정이 문제라고 보고 내정에 힘쓴다면 어떻게 될까요? 물론 흑발의 왕은 찾아오고, 왕국은 혼란에 싸일 거에요. 예언이 내렸으니까.

하지만 그 흑발의 왕은 처음 예시로 든 아이가 아닌, 다른 아이일지도 몰라요. 복수가 아니라, 야심으로 일으킨 반란일수도 있고요.”

“음…… 즉, 세부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

“맞습니다. 예언은 명제일 뿐, 그 내용을 채우는 건 결국 사람이에요. 뭐, 내용까지 세세하게 정해버린 것도 있긴 해요. 하지만 그건 예언이 아니라 운명이고, 절대로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죠.”

……예언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그러나 세부적인 사항은 정해져 있지 않다.

배가 올 것이라는 예언은 내려졌지만,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지는 것 말고는 이곳에 배가 나타날 리는 만무하다.

아니면 돌풍이나 그 촉수생물체가 던져서 날아오거나.

………설마 그 예언, 아까 여기로 날아와서 메린에게 쪼개진 배를 가리킨 건 아니겠지?

아니어야 하는데.

일말의 불안을 한숨과 함께 뱉어버린 후, 나는 과자를 먹고 눈이 똘망똘망해진 위슨을 향해 물었다.

“야, 위슨, 배 만들 수 있냐?”

“배? 웬 배?”

“여기 사람들을 전부 태울 수 있을 만한 배.”

“보통 그거 나무로 만들지 않냐? 나무는 생명이야, 정령이 뭐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그의 정령들이 힘을 발휘하고 다룰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자연뿐.

게다가 그가 기운을 덜 쓰려면 특수한 힘을 더하지 않아도 발을 디딜 수 있는 자연물이어야 한다.

그 중 가장 구하기 쉬운 게 흙이나 돌인데, 흙은 물이 새고 부숴지니 안 되고, 돌은 안이 꽉 차 있어서 물에 뜰 수 없다.

“하지만,”

위슨의 파랑새가 그를 대신해서 재차 입을 뗀 순간, 갑자기 빗줄기가 더 굵어지면서 한층 더 매서운 기세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고래가 불러온 폭풍이 다시 기세를 회복해버린 것이다.

……결국 힐데 사제가 한계를 맞이했구나.

마음이 도로 무겁게 내리깔리는 듯했다.

쏴아아아—

우르르릉……!

그러나 천둥번개마저 치기 시작한 그 빗속에서, 위슨은 태연하게 두 팔을 벌렸다.

“하지만, 여기 더 많은 게 있지.”

“더 많은 거?”

“물.”

파랑새 덕분일까?

시끄럽게 때리는 빗소리에도 위슨의 목소리는 매우 또렷하게 들리고 있었다.

지금 이곳에는 흙보다 물이 더 많은 건 사실이지만, 그걸로 배를 만들려고 하면 기운을 막 써야 하지 않나?

물을 딛고 설 수 없으니까.

“정확하게는 물에서 비롯되는 거다. 아주아주 딱딱~하게 굳힐 수 있거든.”

“딱딱……? ……아, 설마.”

내 머릿속에, 물의 정령인 거북이가 오늘 보여준 능력이 떠올랐다.

확실히 그거라면 배를 만들 수 있긴 해.

문제가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일단 가라앉을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잠깐 겨울을 빌려오자고.”

눈을 크게 뜬 나를 마주보며, 위슨이 빙긋 웃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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