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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333화 (333/475)

〈 333화 〉 323화 : 그것이 사명이기에 (2)

* * *

머리를 때리는 빗소리.발이 물을 파헤치는 소리.

멀리서 울리는 고래의 울음소리.

그리고 희미하게 들리는 절규.

그 모든 소리를, 단 하나의 목소리가 전부 덮어버리고 있었다.

“못 들었어?! 돌벽 뚫리고 있대잖아! 그 커다란 놈이 곧 쳐들어온다는 거 아냐!! 근데 뭘 돌아가, 돌아가긴! 뒤지고 싶어서 환장했냐?!”

“누가 죽고 싶대?! 힐데 사제님도 데려와야 한다는 거지! 저기 있으면 죽을 게 뻔하잖아! 근데 그걸 어떻게 두고 봐?!”

“왜 못 봐!!”

“……!”

곧바로 튀어나온 고함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메린이 단 일 초도 주저하지 않고 대꾸하는 거에 경악한 건 아니다.

늘 있던 일이니까.

내 입을 막아버린 건 그녀의 목소리.

어떠한 감정을 싣고서, 거의 새된 비명 수준으로 내지르는 그녀의 외침이었다.

“네가 죽을 판인데 그걸 왜 두고 못 봐! 넌 못 봐도 난 봐! 아주 실컷 볼 수 있어! 네가 뭐라고 지랄하든 내 알 바 아냐! 네 목숨이 위험해진다면, 그 사제님이든 누구든 죄다 버려버릴 거야!!

내가 우선할 사람은 너 하나밖에 없으니까!!”

“메린…….”

“시끄러, 입 닥쳐! 이번엔 절대 안 들어줄 거야!! 꼬우면 담아뒀다가 나중에 나 죽이면서 풀어, 등신아!!”

“……”

그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을 단호하게 내버릴 거라고 소리치는 걸 타박할 수도, 내 부탁을 단칼에 거절하는 걸 원망할 수도 없었다.

그녀가 평소처럼 덤덤하게 내 말을 무시했다면 그럴 수 있었을 텐데.

매정한 녀석이라고, 야박한 자식이라고 울분을 쏟아부었을 텐데.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메린이 내 말을 그대로 곧이듣고서 맹렬하게 화를 내고 있는데.

내 등을 붙잡은 그녀의 손이, 내 옷자락을 꽉 쥔 채 미세하게 떨고 있는데.

평소와는 너무나도 다른 그녀를, 내가 어떻게 평소처럼 대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손으로 얼굴을 덮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

뱃속의 내장이 뒤엉켜서,

절절 끓는 거 같아.

그 진득한 감정을 속으로 삼키고 또 삼켰다.

그러지 않으면 메린에게 쏟아버릴 것 같았다.

아무 잘못도 없는 메린이, 그저 나랑 지금 가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걸 뒤집어쓰게 할 순 없었다.

……어느 정도 예상했어.

내가 아무리 애걸하고 애원한다고 해도, 이 녀석을 설득할 순 없을 거라고 말야.

메린에겐, 내 목숨을 위험에 빠뜨리면서까지 힐데 사제를 구해야 하는 이유가 없으니까.

위슨이 정령을 써서 배를 만들 때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참담하게 가라앉은 시선을 들어 앞을 보니,힐데 사제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아마 예배당 안쪽으로 뛰어간 것이리라.

그보다 더 앞쪽에, 작은 파도를 일으키며 뛰고 있는 사제가 보인다.

물 위를 걷는 능력이라도 있나, 생각보다 덜 첨벙거리고 있다.

그러고보니 메린도 아까보다 더 빨리 뛰고 있는 것 같은데……?

멀거니 그런 생각이 들었을 무렵, 돌연 시야가 위로 점점 올라가면서 다리와 등에 한기가 느껴졌다.

“큭……!”

이윽고 메린이 나를 내던지듯이, 아니 진짜 말 그대로 깔개 위에 나를 내던졌다.

곱게 내려주면 헛짓거리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거겠지.

……하지만 내 의욕은 이미 꺾여버린 뒤였다.

메린이 나를 여기 데려오고, 뒤이어 알스 사제가 엘시아 사제를 들쳐업은 채 배에 올라온 시점에서 이미 끝난 거나 다름없었다.

아마 메린도 그걸 알아챈 게 분명했다.

내가 배 가장자리로 터덜터덜 다가가는데도 막으려 하진 않았으니까.

“어째서……?”

저 앞의 신전을 바라보았다.

아직 계단을 오르고 있는 건지, 종탑의 종 근처에는 아무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절로 고개가 떨구어지며, 배 난간 너머의 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고요히 찰랑이던 물이 한쪽으로 흐르면서, 그 높이가 확연히 줄어들고 있었다.

폭풍고래의 힘찬 함성이 들려온다.

……정말로, 이젠 손을 쓸 수 없는 것이었다.

“어째서……!”

“카엘 님.”

가까이 다가온 알스 사제의 옷자락을 붙들었다.

얼마든지 뿌리칠 수 있을 텐데도, 그는 내가 하는대로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그대로 난간 밖으로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그에게 소리치는 것으로 대신하며 쏟아붓기 시작했다.

“어째서 그럴 수 있는 거죠?! 어떻게 단 일 분도 고민하지 않을 수가 있냐고요! 사명이 중요한 건 알아요! 힐데 사제님이 들은 게 하늘이 점지한 운명이라는 것도 이해했어요, 전혀 납득은 안 되지만!!”

“……”

“왜……! 왜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데요?! 마을이 멸망할 거라는 것도 그렇고, 자신이 죽을 거라는 것도 그렇고! 왜 그냥 수긍하는 거에요, 왜 불평하지 않는 거냐고요!!”

왜 이곳이 멸망해야 돼?

왜 힐데 사제가 목숨을 버리고 종을 쳐야 되는 거야?

왜, 어째서……

“왜……”

그런 일이 일어날 걸 알려주기만 하는 거야……?

“왜…… 그냥 보고만 있는 거냐고요……!”

……비단 이번 일만이 아니다.

심연 아래, 지옥의 주민인 악마는 신나게 돌아다니면서 밑작업 존나 열심히 하는데.

그 반대쪽에 있는 존재들은 그저 손 놓고 가만히 있었다.

그들이 그걸 몰랐을까? 아니, 알았을 거야.

엘프의 숲에서 천사를 불러냈을 때, 그 천사는 우리가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상황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을 쏟아냈다.

하늘 아래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전부 보고 듣고 알고 있는 게 틀림없어.

그런데도 그냥 내버려두었다.

부엉이탑과 엘프들이 타락하고 영락하는 건 물론이고, 심지어 당신의 대언자인 율리아 공주가 연금되는 것도 막지 않았다.

대언자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다는 까마귀가 옆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어째서 천상의 존재들은, 이 모든 일에 아무 개입도 하지 않고 방관만 하는 거야?

정말로 이 세상 피조물들을, 사람을 사랑하긴 하는 것인가?

……어느새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얼음 갑판의 냉기가 얼굴을 쐬며, 차가운 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게 느껴진다.

뜨겁지 않은 걸 보니 빗물이다.

머리를 식히라는 듯이 무정하게 내리는 비가, 얼굴에 마구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내 머리를 털어주듯이 쓸면서, 알스 사제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카엘 님, 지고의 창조주께선 방관하고 계시지 않아요. 항상 당신들을 굽어 살피고 계시죠. 당신이 쥔 성검이 무엇보다도 큰 증거가 아닙니까? 아트라토스에게 맞설 수 있는 힘을 주셨잖아요.”

“그것부터 말이 되지 않아요……! 정말로 놈에게 맞서라고 준 거라면, 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어야 돼요! 몸도 마음도 저보다 강하고 굳건해서, 저처럼 지금 이렇게 잔말 지껄이지 않는 사람에게 시켰어야 한다고요!”

그러나 정작 용사가 된 건 나였다.

더럽게 약하고 징징대는 나.

대재앙을 물리치는 영웅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나.

이런 놈의 손에 칼을 쥐어주고 싸우러 가라고 등을 떠밀다니, 사실 이 세상이 멸망했으면 하는 거 아냐?!

“당신이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겠지요. 그게 무엇인지는 성검을 내린 자 외엔 아무도 모르지만, 당신에게 자격이 있었으니 주어진 겁니다. 힘이 부족한 건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를 보충하기 위해 동료들이 있는 것 아닌가요?”

“애초에, 검을 내릴 게 아니라 직접 나섰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원래 천상에 있던 놈이라면서, 왜 우리가 처리해야 하는 거죠?”

“지상에 내려온 순간부터 놈은 지상의 존재가 되었어요.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지상의 존재가 처리해야 해요. 정도를 넘어선 개입은 질서를 깨뜨릴 뿐입니다.”

타이르듯이 말을 잇는 알스 사제의 얼굴엔 잔잔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전지전능한 창조주는 질서와 법칙 그 자체이시니, 직접 움직이는 대신 수족을 부리세요. 그냥 보고만 있다? 천만에요. 누군가의 입에 말을 심으시고, 누군가의 손을 들어 등을 밀거나 앞을 막으십니다. 그 개입은 결코 작지 않아요. 굳이 그러셔야 할 이유가 없는 분이, 피조물을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움직이시는 것이니까요.

그 최대한의 개입이 바로 저희 사제들입니다.저희에게 내리신 힘 덕분에, 인간은 아트라토스의 첫 난동을 이겨내고, 놈을 봉인한 후에 숱하게 일어난 고난들을 극복할 수 있었어요.”

비록 이 왕국 하나를 제외하고 모두 잿더미로 변했을지라도.

초대 국왕의 이름도, 이 왕국의 본래 이름마저 그 잔해에 함께 파묻혀버렸다 할지라도.

인간은 살아남았다.

대재앙보다 작은 드래곤들의 불길 가운데에서도, 거인들의 발길질에서도, 악마의 수작질조차 버티며 이겨낸 것이다.

“카엘 님, 대가 없이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오히려 헐값에 넘겨주고 계신걸요.”

“헐값……? 그게요……?”

“미미하게나마 감정을 남겨주시고, 저희가 스스로 생각도 할 수 있게 허락하셨어요. 심지어, 저희 중엔 도구로서의 역할을 다하면 다시 사람으로 살 수 있기도 하고요. 인격을 버리지 않아도 기적을 발현할 수 있는데, 엄청 수지맞는 거죠.”

“……”

이해가 안 돼. 조금도 되지 않는다.

그게 큰 대가가 아니라고?

미미한 감정밖에 남지 않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신 외엔 다른 것을 사랑하지 못하게 되는데.

사명이란 것에 얽매여, 자신의 목숨까지도 아무 거리낌없이 버리게 되는데.

그리고 그렇게 헌신해도, 힘을 잃으면 가차없이 폐기되는데.

근데 그게 수지맞는 거라고?

그런 희생을 치러야만 인간이 존속할 수 있는 이 세상이 이상한 거 아니야?

그런 수고를 들이는데도, 전부 음모 아니냐고 지랄하는 인간들이 밉지 않은 거야?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지고 있는 거 아냐?

……이해할 수 없어. 전부 다 미친 거 같아.

신의 힘을 받아 행사하려면, 완전히 돌아버려야 하는 거야?

“……왜 이런 놈들을 위해 개고생해야 되냐고 원망한 적도 없으신가요?”

“없습니다. 뜻이 통하지 않아서 답답하고 화가 나긴 하지만, 원망은 안 해요. 사람에겐 의심이 허락되어 있으니, 그 자유를 행사하는 것뿐이니까요.”

“……왜 사제가 되신 거죠?”

“제 천직이니까요. 다른 삶을 택해봤자, 세상에 그리 큰 영향력을 주지 못할 게 뻔하기도 했고요.

제가 고아이거든요. 바다가 제 부모님을 모두 삼켜버렸죠. 뭐, 저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제가 고아원 출신입니다.”

신전의 고아원에서 자란 사람들이 전부 다 사제가 되는 건 당연히 아니다.

대부분의 고아들은 나이가 차면 고아원을 떠나지, 수도사가 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그는 굳이 신전에 남기를 택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

그에겐 사제가 될 자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그뿐……?”

“제 경우엔 그렇습니다. 각자 소질에 맞는 일을 하는 게 최선이잖아요? 저는 그게 사제 일이었을 뿐이에요.”

“하지만……!”

“하하, 저희를 이해하실 필욘 없어요. 당신들이 어떻게 보건, 저희는 이 삶을 마치기까지 행복하니까요. 그러니 일어나세요, 카엘 님. 저희 자매의 자랑스러운 끝을 지켜봐주세요.”

알스 사제는 말을 마친 후, 내 어깨를 붙잡고 일으켜 세웠다.

내 눈이 신전을 향하도록 몸을 돌렸다.

종탑의 종 근처에서 손을 흔드는 그림자가 보인다.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기까지 하고 있다.

아마 얼굴에 웃음꽃을 한가득 피운 채 까르르 웃고 있겠지.

조금 전, 마지막으로 본 그 모습 그대로.

……그리고 그보다 멀리서, 시커먼 동산이 떠오르며 흙먼지와 파도가 마구 일어나고 있었다.

틈없이 쏟아지는 비, 함성을 지르듯 울리는 고래의 울음소리.

큰북을 두드리듯 진동하는 천둥소리. 그 전진을 장식하는 파도소리.

그 소리들에 묻힌 채, 땅이 서서히 깎이고 무너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대앵—

종소리와 함께, 그 소리들을 꿰뚫는 목소리가 잔잔하게 울려왔다.

“들리시나요? 바람 좀 많이 부는 거 같긴 하지만 들리시죠? 으응…… 어차피 나 혼자 떠드는 거니 상관없나?”

“힐데 사제님……? 어떻게……?”

“권능이에요.”

알스 사제가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녀의 저 큰 목청도 신의 힘이라는 건가.

정말 별별 능력이 다 있군.

멍하니 그렇게 생각하는 내 귀에, 힐데 사제의 목소리가 들렸다.

“둘에게 전할 말이 있었는데 깜빡했지 뭐에요! 일단 엘시아, 미안해. 저번에 마구마구 발견한 징조들, 그거 전부 뻥이었어!”

“……”

옆에서 마구 기침하는 소리가 들렸다.

힐데 사제와 그간 함께해온 세월이 떠올라서 목이 메인 거겠지.

기가 막혀서 사레가 들린 건 절대 아닐 거야.

아무튼 그럴 거다.

“그치만 어쩔 수 없었어! 마지막으로 마을 보고 싶은데, 그냥 나가면 네가 화낼 게 뻔하니까! 그래서 징조 찾았다고 뻥쳤어, 미안해!”

“끝까지…… 화딱지 나게시리……!”

잔뜩 얼굴을 찌푸린 채로 엘시아 사제가 중얼거렸다.

어깨와 꼭 깨문 입술은 바르르 떨리고 있지만 시선만큼은 곧게 뻗어 있었다.

그 눈 속에 무슨 감정이 담겨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걸 채 살펴보기도 전에,

“그리고 카엘 님!”

“……!”

힐데 사제가 나를 불렀으니까.

대앵—

종소리가 또 한 번 울렸다.

그에 화답하듯 울음소리가 울려퍼진다.

바다에 둘러싸인 시커먼 둔덕이 물 속에 한 번 잠기기 직전, 그 눈동자가 번뜩이는 게 보였다.

“여기 와 주셔서 감사해요! 성검은 멀어서 잘 못 봤지만, 그래도 꿈에서 본 그 빛을 또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덕분에 엄청 좋은 사탕도 먹었고요! 화낼 거 같으니까 다른 건 고맙다고 안 할게요!”

“사제님……!”

“당신의 사명도 무사히 마치기를 바랄게요! 카엘 님은 저랑 달리 사람이니까, 역할을 마쳐도 별 탈 없을 테니 그냥 쭉쭉 가세요! 창조주의 빛이 당신의 길을 밝혀주시기를!

아, 슬슬 준비해야겠네.”

저 멀리 바다 위에 떠오른 시커먼 둔덕이 서서히 커져온다.

빗속을 진동하는 웅장한 울음소리에 맞서듯, 사제의 목소리가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아마 그 권능이라는 것을 해제하는 걸 까먹은 거겠지.

그 덕에 이 배 위에까지 그녀의 기도 소리가 닿고 있었다.

“나의 주께 바라오니! 나의 손을 통하여 역사하소서! 주의 자녀들을 위협하는 자들로 하여금, 주께서 그 뒤에 엄존하심을 깨달아 알게 하소서!”

내리쏟아지는 빗줄기를 꿰뚫고, 금빛 반짝임이 하나 떠오른다.

불빛 하나 없는 어둠 속, 수많은 뱃사공과 나그네를 인도하던 별빛이 지상에 내려오기라도 한 듯이.

“주의 힘을 맛보아 알지어다! 주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니! 이것이 곧 승리의 함성이 될지라!”

그를 집어삼키려 시커먼 그림자가 달려든다.

그럼에도, 사제는 조금도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외쳤다.

“대적자는 물러나라아아아!!”

대애애앵——!!

머리부터 발끝까지 떨리는 진동과 함께, 짙은 그늘이 하늘에 드리워졌다.

자연히 고개가 위로 들린다.

시야 한가득, 시커먼 어둠이 뒤로 물러나는 게 보였다.

이윽고 그 거대한 형체가 물 속에 잠기면서 거대한 파도가 일어났다.

어쩌면 저 성까지도 집어삼켜버릴지도 모르는 크나큰 물결이, 뒤로 날려간 폭풍고래의 분노를 표하듯이 몰아쳐온다.

……이걸 말한 거였나?

힐데 사제가 노린 건, 이 물결이었던 건가?

“온다! 다들 꽉 잡아!”

종소리의 잔향 속에서 위슨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내 뒤에 서 있던 알스 사제 대신, 메린이 한 팔로 내 허리를 감싸며 다른 손으로 난간을 꽉 쥔다.

곧 찾아올 충격을 생각하면 고개를 숙여야 할 터.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바닥이 요동치고, 눈앞이 일순 빙글 돌더라도.

이미 사라져버린 금빛의 반짝임을 찾아 이곳저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 덕에 볼 수 있었다.

사제가 울린 종의 잔향에 맞추어, 물 속에서 은은히 빛나는 빛을.

……그리고 시커멓고 거대한 채찍이, 종탑을 무참히 후려치는 모습을.

그 모습을 본 내 귓가에 울리는 건, 쉴 새 없이 쏟아지고 휘몰아치는 비와 물결의 소리뿐.

권능 따위 없는 내 목소리는 물방울 하나도 뚫지 못했다.

……그저 가슴속에서 울리며, 나를 붙드는 손에 그 떨림을 겨우 전할 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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