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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336화 (336/475)

〈 336화 〉 326화 : 전설을 재연하라 (3)

* * *

그 후, 두 사람이 더 빠진 상태에서 계획을 다지기 시작했다.

한 명은 전투에 대해선 문외한인 테레지아.

그리고 또 하나는,

“이히히히~”

나를 껴안은 채 헤헤거리고 있는 메린이었다.

무슨 말을 걸어도 헤벌쭉한 얼굴로 고개만 움직이는 걸 보니, 뼈칼 쓰게 된 게 너무 좋아서 진짜 맛탱이가 가버린 게 틀림없었다.

돌겠네, 진짜.

뭐, 그래도 이야기 자체는 다 듣고 있었던 듯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계획들을 정리할 때, 깜빡하고 빠뜨린 부분들을 죄다 지적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고래사냥 계획이 완성되었다.

뼈칼을 써서 놈을 썰어버린다는 미친 계획,

그게 실패하면 놈의 눈알로 쳐들어간다는 무모한 계획,

그리고 마지막 발악이라는 심산에서 짠 엉성한 계획까지 더해, 총 세 가지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근데 마지막 건 아무리 발악이라 해도 너무 어설픈 거 아니니? 세상에, 고래 옆구리살을 파고 들어가겠다니…….”

탐탁지 않다는 듯이 고개를 젓는 블루벨에게,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못 자르는 건 뼈이지, 살이 아니니까 이론상 되긴 되잖아.”

“그야 그렇지만……”

“사실 두 개만 있으면 허전해서 짠 거야. 실제로 할 일은 없을걸.”

“……”

블루벨의 눈빛이 상당히 건조해졌다.

쓸데없는 데에 왜 수고를 들이게 만드냐고 불평하는 게 분명했다.

하, 이 엘프가 뭘 모르는구만.

혀를 차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계획이란 건 있죠, 블루벨 씨. 원래 C까지 세우는 거에요. 주 계획인 A랑 그 대안인 B만 있으면 안 된다고요, 블루벨 씨. 그런 건 후퇴가 무조건적으로 허용될 때나 할 수 있는 거에요, 블루벨 씨.”

“너 혹시 깐족대지 않으면 혓바닥에 가시 돋니? 그딴 거 그냥 확 뽑아버려. 내가 특별히 해줄게.”

“……또 대안의 대안을 실행해야 할 때면 완전히 몰린 상태라는 거잖아? 그럴 땐 머리 잘 안 돌아간다고. 그러니 무지무지 간단하고 직선적인 계획이 딱이지.”

덤으로 ‘이거 실패하면 죽는다’는 사실 때문에, 세 번째 계획을 실행할 땐 반드시 성공시키려고 젖 먹던 힘까지 짜내게 된다.

그러니 머리가 아닌 힘을 쓰는 방향으로 정하는 게 최선인 것이다.

“물론 두 번째 계획도 망하면 후퇴할 거야. 근데 상황에 따라서는 그게 안 될지도 모르잖아? 혹시 올지도 모를 그 이판사판의 때를 위한 거지.”

“흐음…….”

블루벨은 진지한 표정으로 내 말을 들은 후, 뭐가 마뜩잖은 건지 눈을 가늘게 떴다.

“……너 그런 건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너희 마을엔 학교 같은 것도 없다면서.”

“아버지한테 들었지.”

“뭐하는 분이시길래?”

“엉? 필경사. 글씨 쓰는 일.”

“……하, 됐다, 됐어.”

그녀는 한층 더 표정을 찡그리면서 손을 내저은 뒤, 그대로 입을 다물어버렸다.

뭐가 맘에 안 들어서 저러는 건지 모르겠네.

아무튼 계획도 정해졌으니 곧바로 출발하기로 했다.

나는 피난민들과 함께 남을 세 사람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럼 다녀올게요. 블루벨, 여기 잘 지키고 있어줘.”

“네가 말 안 해도 잘 지킬 거야. 얼른 가기나 해.”

“블루벨 씨 말씀대로 여긴 걱정하지 마세요. 무사히 성공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퉁명스럽게 쏘면서 내쫓듯이 손을 휘휘 터는 블루벨과, 그런 그녀를 보며 쓴웃음을 짓는 알스 사제.

“……무사히 돌아오세요. 약속 꼭 지켜주셔야 하니까요.”

그리고 두 손을 모은 채, 살짝 그늘 진 얼굴로 무사를 빌어주는 테레지아.

그 세 사람의 배웅을 받으며, 나는 메린과 로나를 데리고 절벽으로 향했다.

쏴아아아—

협곡 부근에 들어서자마자 다시금 비가 세차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뜨거운 햇살을 받은 탓인지, 얼굴에 흐르는 빗물이 아까보다 더 차가워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거세게 몰아치는 바람 속을 걷고 걸어, 절벽 끝에 다가가 그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

물이 성벽 가까이에서 찰랑이는 게 보인다.

성문이 꽉 닫혀 있지 않은 만큼, 절벽 바로 앞에도 어느 정도 물이 고여 있다.

폭풍고래가 물 밖으로 튀어오르고 다시 잠기면서 파도가 일어나고, 그 거센 물살이 성벽에 부딪치면서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었다.

아직은 바다와 멀리 떨어져 있어서 파도가 성벽을 넘지 못하고 있지만, 그것도 시간문제이겠지.

……아니, 놈이 육지를 깎으면서 땅 속의 물길이 드러나면 그걸로 끝이겠구나.

인어들이 곧바로 바닷물을 역류시킬 테니까.

그 생각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리고 그 다음, 물 속에서 흉측하게 생긴 생선대가리가 바깥으로 나왔다가 도로 들어가는 걸 본 순간, 내 얼굴이 아주 확 구겨지고 말았다.

……역시 돌아다니고 있었구나.

어쩌면 저 생선대가리들이 우물이 있던 자리를 파고 있을지도 모르겠어.

생각보다 좋지 않은 상황에,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메린 님, 그 뼈칼이 어디에 있어요?”

“저~기 둥근 지붕 보이지? 저 안에 있어.”

메린이 가리킨 곳을 보자, 물 바깥으로 높이 솟은 채 비를 맞고 있는 둥그런 지붕이 보였다.

그 주변에 있는 건물들은 죄다 잠겼는지, 성물 보관소 근처에는 오로지 물뿐이었다.

즉, 폭풍고래가 만드는 파도를 막아줄 방패막이 하나도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도 저렇게 멀쩡히 서 있다니 놀랍기 그지없었다.

쏴아아아—!

마침 또 한 번 파도가 몰아치며 둥그런 지붕과 그 아래의 벽을 덮어버렸다.

이윽고 물살이 잠잠해지자, 성물 보관소의 지붕과 벽이 차례로 다시 나타났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신기하네.

신전처럼 깎은 돌로 쌓은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안 무너지고 있는 거지?

성물이 무슨 가호라도 내뿜고 있나?

어쨌든 입구로 들어가는 건 꿈도 못 꾸겠군.

십중팔구 생선대가리들이 덤벼올 거다.

그럼 꼭대기 올라가서 지붕을 뜯는 수밖에 없는데.

근데 하나하나 뜯다가는 파도에 휩쓸릴 거 아냐.

그렇다고 명색이 성물 보관소인데 부수기엔 좀…….

“하아…… 정말 아깝네요.”

지붕을 빤히 보며 입가를 두드리는데, 로나가 갑자기 한숨을 푹 쉬며 중얼거렸다.

“아깝다니? 뭐가?”

“철퇴가 있으면 저 지붕 깔끔하게 부술 수 있을 텐데요……. 전투망치로도 되긴 하지만, 손에 착 안 붙으니까 좀 지저분하게 될 거란 말이죠……. 하아…… 윌…….”

“……아, 그래.”

정작 지붕을 부숴야 할 장본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저 안에 있을 성물이 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안 하겠군.

폭풍고래의 뼈는 썩지도 않고, 쇳물에도 안 녹는다고 했으니까.

“그럼 다음 파도가 친 뒤에 가자고. 벤투스, 때 되면 부탁할게.”

옆에 선 엘크를 쓰다듬으며 말을 건네자, 녀석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나야 상관없는디……. 형씨, 참말로 괜찮것소?”

“뭐가?”

“거시기하잖여.”

………거시기가 뭐지?

웬만한 말은 감으로 알아먹을 수 있겠는데, 방금 그건 진짜 모르겠어!

어리둥절한 채 눈을 깜빡이고 있자, 이번엔 로나가 나를 툭툭 건드리더니 말을 걸었다.

“아직 안 늦었어요, 카엘 님. 그냥 물을 건너가는 방법도 있잖아요. 속에서 뭐가 튀어나오든, 저랑 메린 님이 있으니 괜찮을 거에요. 겁도 많으신데, 굳이 바람 타고 날아가실 거 없잖아요?”

“맞아. 너 아까 배 날았을 때도 엄청 쫄았잖아. 용케 기절 안 했다 싶었는데…….”

두 아가씨의 말을 듣고 나서야 엘크 녀석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녀석들은 내가 절벽 끝에서 성물 보관소까지 바람 타고 휭 날아가자고 한 걸 걱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왜냐?

내가 쫄보이니까.

……날 신경 써주는 게 고마운 동시에, 이런 중요한 순간에 그런 걸 신경 쓰게 만드는 나 스스로가 한심해서 울적해졌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어쩔 수 없잖아!!”

다른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서럽기 그지없었다!

“저 고래 새끼가 파도 일으키는 간격이 그리 짧지도 않은데다, 물 속 저 생선대가리들 말고 또 뭐가 있을지 모르잖아! 저 놈들 상대했다간 고래 새끼 눈에 띌지도 모르고!

괜찮겠냐고? 당연히 안 괜찮지,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 그치만 후딱 가려면 이 방법밖에 없는 걸 어떡해! 어흐윽……!!”

“아, 그려.”

엘크가 시큰둥한 목소리로 대꾸하는 걸 한 귀로 흘려버리면서, 나는 메린의 어깨를 꽉 붙잡았다.

옆에서 꺄아,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저 멀리서 폭풍고래가 우는 것도 무시하며 녀석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너 반드시 성공해야 돼……. 알았어? 내 희생을 헛되게 하지 말라고……!”

“엉? 이것도 희생이냐?”

“당연하지, 짜샤!! 뒤지게 하기 싫은 걸 하는 거잖아, 이게 희생이 아니면 뭔데?!”

“아, 그래, 그래. 알았으니까 진정이나 해.”

“크흑……!”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한 뒤, 메린은 곧바로 내 머리를 슬슬 쓰다듬기 시작했다.

덕분에 마음은 조금 가라앉았지만, 시커먼 그림자가 바다 위를 튀어오르고 다시 잠기는 걸 보는 순간, 손끝이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괜찮을 거란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으으, 머리론 알고 있어도 속이 안 따라주는 걸 어떡해?

메린의 손을 잡아도 좀처럼 안심이 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 녀석의 손을 잡으니 더 떨리는 것 같아.

이 손이 그동안 날 몇 번이나 공중에 날렸다는 걸, 몸이 기억하고 있는 게 분명해!

………그럼에도 해야 한다.

더럽게 하기 싫은 일이더라도, 반드시 해야 한다면 이 악물고 눈 딱 감고 해야 되는 것이다!

이윽고 물이 잠잠해지자, 나는 메린과 맞잡고 있는 손을 꽉 쥐며 소리쳤다.

“지금이야!!”

뻣뻣하게 굳은 다리가 곧바로 움직이며 앞으로 내달렸다.

멈춰야 한다, 미친 짓이다.

그런 생각이 마구 머릿속을 울리며 다리를 세우려 하고 있었다.

……하하, 내가 그럴 거 같아서 메린의 손을 잡았지.

이 녀석은 설령 내가 무서움을 못 이기고 멈추라고 해도 안 멈출 테니까.

그렇게 우리는 절벽으로 내달렸고, 그 끝에서 저 멀리 있는 수평선을 향해 크게 뛰었다.

그 다음 순간,

후우우웅—!!

“우읏……!”

거센 힘에 등이 마구마구 떠밀려지면서 세찬 바람이 얼굴을 사정없이 때렸다!

발에 닿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느낌.

바닥이 몸 속의 내장들을 모두 끌어당기는 탓에, 가슴속이 철렁 내려앉으며 소름이 돋는 느낌.

절대로 익숙해지지 않는 그 느낌에 공포가 밀려오면서 숨이 턱 막혔다.

……죽을 거야. 아니, 괜찮아.

마침 물 밖으로 지붕 나왔잖아. 저기 부딪치면 죽을 거야, 완전히 산산조각이 날 거라고!

아니아니, 안 죽으려고 도움을 받는 거잖아!!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어 어지러워지려는 찰나, 쏜살같이 날아가던 몸이 멈추면서 서서히 아래로 내려갔다.

발바닥이 단단한 것에 닿는 느낌이 든 후에야, 나는 참았던 숨을 길게 토해낼 수 있었다.

“하으으으……….”

“그래, 그래, 애썼다.”

“허이고, 참……. 그럼 난 저짝 갈 텡께, 또 필요하면 부르쇼잉.”

엘크는 투레질을 하듯이 고개를 흔들고서, 그야말로 바람처럼 휘잉 흩어지듯이 사라졌다.

아마 위슨이 있는 데로 돌아간 거겠지.

나는 메린의 팔을 지팡이 삼아 몸을 가눈 채, 굉장히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로나에게 말했다.

“힘 좀 써줘…….”

“네에~!”

로나는 몸을 숙여서 지붕 가운데를 똑똑 두드린 후, 뭔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 뒤, 한 발짝 물러나서 전투망치를 두 손으로 든 다음,

“열려라, 참깨애애!!”

……괴상한 함성을 지르면서 망치를 내려쳤다.

뭐지? 저것도 기도인가?

뭔지는 몰라도 효과는 확실히 있는 듯했다.

콰직!

망치에 닿자마자 지붕이 걸레짝이 되어버렸으니까!

중앙에 구멍이 뚫린 건 좋은데, 가장자리까지 금이 쩌저적 가버려서 섣불리 움직였다간 우지끈 무너질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본 로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쉬면서 중얼거렸다.

“하…… 철퇴였으면 깔끔하게 구멍만 냈을 텐데요…….”

“뭐, 이것도 썩 나쁘진 않아. 어디 보자…….”

조심조심 구멍으로 다가가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흠흠, 뼈칼 손잡이가 꽤 가까이에 있군.

그 아래로는 뻥 뚫린 창문과 찰랑찰랑 흔들리는 물이 보이고 있었다.

신전이 그랬던 것처럼, 알 수 없는 신비한 가호가 창문까진 보호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저 뼈칼, 손잡이가 꽤 굵네.

내가 쥐어도 손가락이 다 덮지 못할 거 같은데?

아니, 최초의 대언자님은 손이 사람 얼굴만큼 크셨나, 뭐 이리 두껍게 깎았대?

“……야, 메린. 진짜 저거 휘두를 수 있겠어? 손에 다 안 잡힐 거 같은데.”

“통나무도 휘두르는데 저까짓 거…….”

“아, 그래.”

지가 괜찮다는데 내가 더 무어라 할 수 있으랴?

그저 고개를 살짝 흔들며 얕은 숨을 뱉을 뿐이로다.

그럼…… 이제 이걸 어떻게 뽑는다?

일단 손은 안 닿을 거 같은데.

턱을 문지르며 뼈칼을 쳐다보는데,

“음?”

불현듯, 저 아래 물 속에서 무언가가 빼꼼 고개를 내미는 게 보였다.

뭐지? 내 눈엔 잘 안 보이는데.

“아, 생선대가리다.”

눈 좋은 메린이 중얼거렸다.

보관소 입구가 열려 있었던 모양이군.

뭐, 그래도 지붕과는 거리가 꽤 머니 저 놈이 우리를 뭘 어쩌진 못할 거다.

살짝 안도하는데, 메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뭔가 꺼냈네. 으응…… 종인가?”

“종? 웬 종?”

뜬금없는 단어에 눈꺼풀이 살짝 더 열리는 순간,

짜라라라라랑——!!

“?!”

온 몸의 털이 곤두설 정도로 큰 방울소리가 마구 울려퍼졌다!

종이 아니라 방울이잖아,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이거, 경보다!!

“젠장!”

고래 놈이나 카스피 왕녀가 보초를 세워둔 건가?!

빌어먹을, 당장 뛰어들든가 슬링 던져서라도 저걸 멈춰야 돼!

안 그러면……!

“우우우우—!”

“……!”

……늦었다.

바짝 굳어버린 내 머릿속에, 그 한 마디만이 조용히 떠올라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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