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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337화 (337/475)

〈 337화 〉 327화 : 전설을 재연하라 (4)

* * *

폭풍고래가 신전까지 오는 데에 얼마나 걸렸더라?

오 분? 아니면 십 분?

이 성물 보관소는 신전보다 더 안쪽에 있긴 한데, 그 거리가 얼만큼의 시간을 벌어줄 수 있을까?

십 초? 아니면……

아냐, 아냐아냐아냐, 지금은 그런 계산할 시간도 아까워!

당장 물러나야 돼!

숙이고 있던 고개를 쳐들고서 거북이의 이름을 불렀다.

“아쿠아!”

“난 아직………여기 있구먼………….”

느릿한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절벽에서 여기까지 바람에 날아오는 동안에도 계속 붙어있었던 모양이다.

어, 그럼 나 계속 머리에 거북이 달고 있었던 거야?

그거 좀 웃기게 보였을 거 같은데……

아니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정신차려, 카엘, 등신아!!

제자리에서 몸을 일으키고 두 아가씨를 돌아보며 외쳤다.

“메린, 로나,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자!”

“네? 왜요?” “엥? 왜?”

……어라? 내가 뭐 이상한 소리라도 했나?

둘 다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날 쳐다보고 있네?

여기 그대로 있으면 저 고래 놈한테 치여 죽는 거밖에 더 되나?

그러니 피해야 되는 거 아냐?

머릿속에 물음표가 파도처럼 마구 밀려들어오는 듯했다.

그 중 하나가 생각을 퍼 올리던 도르래에 턱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갑자기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딱 좋은 기회인데 왜 빠져나가?”

“그러게 말이에요~ 절호의 기회인데요~”

기회라고……?

이게……?!

놈의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만큼 가슴이 크게 철렁거리는 것 같았다.

이 녀석들이 쌍으로 미쳤나?!

“둘 다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잔말 말고 가자, 너네랑 말싸움할 시간도 없다고!!”

“어. 나도 말싸움할 생각 없어.”

메린은 그렇게 툭 내뱉더니 나를 향해 씨익 웃었다.

간만에 보는 그 미소는,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유형의 웃음이었다.

녀석이 저렇게 웃을 때마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으니까 말야.

무척 짜증나게도, 그 예감은 단 한 번도 빗나가지 않았고!

“메린!”

“아핫.”

내가 손을 뻗는 것과 거의 동시에, 녀석이 몸을 돌리면서 크게 도약했다.

아마 내가 자신을 붙잡을 거라 예상했던 거겠지.

그 덕에 내 손은 또 다시 허공을 휘저었고, 녀석의 갈색 머리카락은 지붕 중앙의 구멍 속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황급히 그 안을 들여다보자, 메린이 뼈칼 손잡이를 붙잡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게 보였다.

“대체 뭔 생각이야, 정신 나갔어?! 빨리 안 올라와?!”

“올라갈 거야~ 아쿠아! 나 좀 도와줘!”

“헛허~”

느긋한 웃음소리와 함께, 머리 위에서 무언가 폴짝 뛰어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내 거북이가 메린을 지나쳐 물 속으로 퐁당 빠지는 게 보였다.

뭘 하려는 거지?

“거기 젊은이! 고개 치워라!”

“?!”

물 속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터져나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빼고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때, 뒤쪽에서 분노에 찬 울음소리가 귀를 매섭게 때려왔다.

심장이 바짝 죄이는 걸 느끼며 뒤를 돌아보니, 시커먼 그림자가 거센 파도를 거느리며 돌진하고 있는 게 보였다!

“윽……!”

……아직은 괜찮아. 시간이 있어.

완전히 늦은 건 아니야.

하지만 그 유예는 시시각각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제기랄, 메린을 두고 갈 수도 없는데……!

로나만이라도 먼저 보내야 하나?

하지만 그것도 안 될 거야.

로나는 제 몸을 방패 삼아서 저걸 막을지언정, 절대로 혼자 피하진 않을 테니까.

내가 먼저 피하라고 말을 꺼내면, 메린처럼 오히려 나서서 물 속으로 뛰어들고 남을 애라고!

울고 싶을 정도로 갑갑한 느낌에, 고개가 저절로 아래로 떨궈지면서 눈이 감겼다.

눈꺼풀이 꽉 닫히고 시야가 캄캄해진 바로 그때,

푸슈우우—

……물이 솟아오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눈을 다시 뜨며 고개를 들자, 지붕 중앙에 뚫린 구멍 바깥으로 굵직한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게 보였다.

하늘에 닿을 기세로, 아주 높이높이.

“와~ 짠 비가 내리네요.”

“너 진짜 태평하구나?!”

어떻게 이렇게까지 느긋할 수가 있지?

지금 저 뒤에서 폭풍고래가 돌진해오고 있는데!

아무튼 갑자기 땅 속에서 물이 터져나왔을 리는 없다.

빗물에서 짠맛이 느껴지기 시작한 걸 보면, 이 기둥 같은 물줄기는 거북이의 작품이겠지.

그럼 메린은……?

바로 그 자리에 있었을 텐데……?

마치 내 의문에 답하는 것처럼, 물기둥의 끝자락이 제법 빠른 속도로 내려왔다.

이윽고 하늘 높이 들려 있던 내 고개가 앞을 향했고, 메린이 싱글벙글 웃으며 평평한 얼음판 위에 서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 두 손에 들린 건, 끝이 한눈에 보이지 않는 우윳빛 긴 막대기.

이 건물 바닥에 박혀 있던 성물인 고래 뼈다귀 칼이었다.

“히힛.”

메린은 한 손으론 뼈칼의 손잡이를, 다른 손으론 몸체 부분을 잡고서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그러다나와 눈이 마주치자, 두 손으로 손잡이를 잡으며 자세를 취했다.

“어때?”

“와와, 생각보다 꽤 멋있네요! 근데 안 무거우세요?”

“어. 보기보다 가벼워. 나중에 너도 한 번 들어봐!”

“아싸!”

……이 녀석들, 진짜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알고 있는 걸까?

저렇게 꺅꺅대며 노닥거릴 때가 아니지 않아?

혼자 이 분위기를 못 따라가고 있는 내가 이상한 거야?!

“카엘~ 어떠냐고~”

“………”

내가 반응이 없는 게 불만족스러운지, 메린은 얼굴을 살짝 찡그리며 입을 비죽거렸다.

그러다 내 뒤쪽을 슥 보고는 고개를 끄덕끄덕거린 뒤, 나와 로나를 번갈아보면서 말했다.

“너네 둘은 피해 있어.”

“넌……?”

“난 저거 썰어야지. 얼른 가.”

“아니, 그게 무슨……!”

“말싸움할 시간 없잖아, 얼른 가라니까? 어휴, 안 되겠다. 아쿠아~! 벤투스 좀 불러줘!”

메린이 아래를 향해 소리치자, 바람이 한 번 휘감듯이 불더니 엘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왜 불렀냐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그에게, 메린이 나와 로나를 턱으로 가리키면서 입을 열었다.

“저 둘 좀 멀리 데리고 가.”

“엥? 댁은 우짜고?”

“난 저거 썰어버릴 거야. 얼른!”

엘크는 녀석의 손끝을 따라 뒤를 힐끗 쳐다보더니, 호탕하게 웃어젖히면서 발을 까닥거렸다.

“핫하! 참말로 대범한 처자시구마이! 암, 걱정 마소! 요 방해꾼들은 내가 확~실하게 치워드릴텡께!”

따닥. 닥.

엘크가 가볍게 뛰면서 나와 로나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그러자 바람이 몸을 감싸는 듯한 느낌과 함께, 발이 저절로 바닥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 잠깐, 메린……!”

“이따 봐~”

“으……!”

태평하게 손을 흔드는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닿을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필사적으로,

방긋 웃는 그녀를 붙잡으려 손을 힘껏 뻗었다.

……메린, 제발.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이렇게 위험을 감수하면서 하지 않아도 되잖아, 다음 기회를 노려도 되는 거 아냐……!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십 마디의 말을 제치고 내 입 밖으로 나온 건 단 한 마디.

평생 불러도 부족할, 그녀의 이름이었다.

“메린—!!”

휘이잉—

바람이 몰아치는 소리가 귀를 울렸다.

몸이 하늘로 솟구쳐오르며, 얼음판 위에 서 있는 메린의 모습이 순식간에 작아졌다.

“메린…….”

녀석이 방긋 웃으면서 손을 흔들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알아.그게 마지막이 아닐 거란 건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어.

조금 뒤에 다시 만나서,

그 환하게 웃는 얼굴을,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을 거라 믿고 있다고.

하지만……!

“벤투스 씨, 옆으로요, 옆! 옆에 세워주세요!! 여긴 각도가 좀……!!”

“엥? 각도? ……푸핫, 워째 처자들이 더 화끈하구마이! 아, 우리만 보는 것도 아까웅께…… 흐흐, 아주 좋은 그림이 될 거여!”

“…………”

……어이가 없다 못해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아니, 이 새끼들은 뭐 이리 신나 하는 거야?

까딱 잘못하면 메린을 다시 못 볼지도 모르는데.

물론 당연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메린이 무사할 거라 믿고 있어서 그런 거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거 아냐, 걱정도 안 되는 거야?!

“우우우우—!”

“……!”

확연하게 커진 폭풍고래의 울음소리.

그에 이끌리듯, 절로 고개가 돌아갔다.

벽과 둥그런 지붕이, 바닷물에 감싸인 채 홀로 꼿꼿이 서 있다.

그 신비로운 견고함을 장식하듯이, 지붕의 중앙에는 물기둥 하나가 위풍당당하게 세워져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위에, 사람 한 명이 우윳빛의 길다란 막대기를 쥔 채 몸을 살짝 낮추고 있었다.

머리색이 갈색인 것도, 그걸 한 가닥으로 땋아내리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는데, 얼굴 표정만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 웃고 있는지 긴장으로 굳어 있는지 전혀 보이지 않는데도, 내 눈앞에 선명히 떠오르고 있었다.

그녀가 지었던 여러 표정들이, 방금 전에 본 환한 미소가 생생하게 되새겨지고 있었다.

그 잔영을 지워버리겠다는 듯이, 시커먼 그림자가 튀어오르면서 몸을 돌린다.

끝이 벌어진 굵직한 꼬리가 그대로 채찍이 되어 벽을 향해 날아간다.

콰아아앙—!

“……!!”

……부숴졌다. 가루가 되어서 사라졌다.

눈앞에 맴돌고 있던 그녀의 잔영도, 둥그런 지붕도, 그곳에 자리하고 있던 물기둥도.

전부,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눈을 돌리지 못했다.

벽이 부숴져 내리며 파문을 일으키고, 폭풍고래의 커다란 눈동자가 만족스러운 듯이 가늘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잔해밖에 보이지 않는 그 광경으로부터,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믿고 있어.

넌 이렇게 허망하게 없어질 애가 아니야.

네가 나 말고 다른 놈에게 죽을 리가 없어.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날 리가 없어……!

“카엘 님, 위에요, 위!”

로나가 들뜬 목소리로 외치며 하늘을 가리켰다.

……빈틈없이 낀 먹구름 아래,

캄캄하게 드리워진 그림자 속에서,

은빛 별이 하나,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폭풍고래는 하늘에 무엇이 떠 있는지 모르는 듯했다.

유유히 몸을 돌려서 그 자리를 떠나려는 놈을 향해, 하늘에 떠올라 있던 은빛 별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놈이 무언가를 느꼈는지 몸을 멈칫했다.

눈동자가 위로 올라가가더니 놀란 듯이 홱 좁혀졌다.

곧이어 놈의 고개가 휙 틀어지면서 위를 향했다.

달려 있는 건지 의문스러웠던 입이 크게 벌어지는 게 보였다.

그 순간,

“……?!”

갑자기 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귀가 징징 울리면서 가슴이 마구 두근거리고 있었다.

이거, 그 빨간 드래곤이 내지르던 포효 비슷한 건가?!

“메린……!”

속삭이듯이 그 이름을 부르며 눈을 부릅떴다.

은빛 별은 계속 아래로,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그게 공격을 위한 건지, 아니면 그저 추락하고 있을 뿐인지는 모른다.

내 눈은, 반짝이는 별빛 속까진 닿지 않으니까.

그러니 그저 믿을 뿐이야.

그녀가 저 빛 속에서, 놈을 향해 칼을 겨누고 있을 거라고……!

“메린!!”

네가 그랬었지?

검으로 못 베는 건 없다고 말야.

그 말을 증명해줘.

이 눈에 똑똑히 새겨줘.

저 시커먼 고래 놈, 징그럽게 비바람을 쏟아붓는 이 폭풍.

그리고 널 잃었을 거라고 한구석에서 질질 짜고 있는 내 한심한 마음까지도……!

“전부, 베어버려어어어!!”

목이 터져라 외쳤다.

들릴 거라고는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내 마음 한켠에 자리한 불안을 내쫓기 위한 것이었을 뿐.

……그럼에도,

그녀는 내 목소리에 응해주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

은빛 곡선이 번쩍였다.

위에서 아래로, 거의 반원으로 그려진 궤적에 눈길을 빼앗기는 것과 동시에,

“아……!”

강렬한 빛이 사방에 쏟아져 내렸다.

잿빛 바다가 파랗게 물들며 별을 품기라도 한 것처럼 반짝이는 게 보였다.

저절로 위로 올라간 시야를 가득 메운 건,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수평선을 통해 바다에 녹아드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새파랗게 개인 하늘이었다.

……아아, 드디어 폭풍이 끝났구나.

귓가를 때리는 환호성과 박수 소리 속에서,

그 생각만이 고요히, 잔잔하게 떠올라왔다.

엘크는 우리를 영주의 성에 있는 발코니에 내려준 뒤, 다시 위슨에게로 돌아갔다.

공간도 넓고 또 성문 쪽을 향해 만들어져 있는 걸 보니, 주민들에게 연설을 하거나 손을 흔들어주는 곳인 듯했다.

그럼 이 안은 알현실이나 홀로 이어질 테니, 식당도 같은 층에 있을 터.

그 근처엔 부엌이 있을 거고, 거기서 가까운 곳엔 식자재를 보관해둔 창고가 있을 거다.

치즈나 빵, 훈제고기처럼 잘 상하지 않는 음식이나 식재료는 하나도 없겠지.

그 대신, 채소나 날고기 같은 건 많이 쌓여 있을 거야.

지금 여긴 버려진 집이나 마찬가지이니, 이것저것 챙겨갈 수 있겠다고 좋아할 거다.

……그러니 빨리 와, 메린.

난간에 엎드려 파란 물결을 빤히 바라보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 시선 끝자락엔 폭풍고래가 입이 두 갈래로 쪼개진 채, 하늘을 향해 배를 보이고 있는 모습이 자리하고 있다.

미동도 하지 않는 몸뚱이 근처엔 검붉은 물이 넘실거리며, 서서히 바다를 향해 흘러가고 있다.

아마 조금 있으면 물 속에 잠긴 마을도 다시 모습을 드러내겠지.

로나는 다시 자신의 철퇴를 찾을 수 있겠다며, 조금이라도 빨리 물이 빠지기를 빌고 있었다.

사아아—

물살이 벽에 부딪치는 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왔다.

파도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더니 순 거짓말이었잖아.

“하……”

……메린 녀석, 대체 뭘 하길래 아직도 안 오는 거야?

혹시 폭풍고래 고기 캐고 있나?

설마 뱃속 궁금하다고 까보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딴 건 다 나중에 하면 되잖아.

시체가 좀 큰 게 아니니, 일이 끝난 뒤에도 고스란히 남아있을 거라고.

그러니 그만 기다리게 하고 얼른 와, 메린.

“……보고 싶어.”

끝까지 속에 담지 못하고 바깥으로 넘쳐버린 말을 받듯이,

갑자기 눈앞에 물줄기가 솟아올랐다.

소금기 담긴 물이 얼굴에 튀며 뺨을 타고 흐르고,

시야 한가득 그림자가 끼어 어두워지면서,

“카에엘~!”

“……!”

절대로 잘못 들을 수가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뒤이어, 바닥을 두드리는 맑은 소리와 함께 몸이 무언가에 부딪치며 뒤로 쓰러졌다.

두 바퀴쯤 데굴데굴 구른 뒤, 나를 향해 방긋 웃는 주홍빛 눈동자와 마주했다.

울컥.

여럿 뒤섞인 짙은 감정이 속에서 마구 치솟아 올라왔다.

“읏……!”

격정에 그대로 몸을 맡겼다.

품 안에 가두듯이 두 팔로 몸을 꽉 껴안고, 하얀 목덜미에 입맞추듯 얼굴을 묻었다.

지독하게 그리웠던 따스한 온기.

은은한 체취.

보드라운 머리카락.

언제나 나를 사로잡던 주홍빛 눈동자.

“메린…… 메린……!”

……그리고 두 번 다시 입에 담지 못할까 두려웠던 이름.

그 모든 것을 하나하나 다시 새기듯이, 손 안에 품고 내 눈 속에 담았다.

“봤냐? 봤지? 거봐, 내가 뭐랬냐? 할 수 있다고 했지? 이히힛!”

“응……. 봤어. 진짜, 대단해.”

내가 얼마나 걱정한 줄 아냐, 제발 그딴 무모한 짓 좀 하지 마라, 나 쓰러져 죽는 꼴 보고 싶은 거냐.

그런 잔소리를 잔뜩 퍼부어주려 했는데, 막상 녀석이 내 품에 돌아오니 깡그리 잊어버리고 말았다.

“고마워. 무사히 돌아와줘서……!”

“엉? 뭘 새삼……… 아…… 히히, 응. 기다려줘서 고마워.”

부드럽게 웃는 그녀와 입술을 포개고, 다시 힘껏 껴안았다.

여기가 성의 발코니라는 것은 물론이고, 그녀가 내 위에 올라타고 있다는 것, 심지어 가까이에 로나가 있다는 사실조차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기뻤다.

……그저, 그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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