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9화 〉 329화 : 내 알 바 아냐 (1)
* * *
……부글부글, 거품이 이는 소리가 들린다.
희미하게 아른거리는 시야 속에, 익숙한 등이 꼿꼿하게 서 있는 게 보인다.
“와봐, 생선 새끼들아!! 모조리 포 떠줄 테니까!!”
잔뜩 날이 서 있는 목소리가 윽박지르고 있다.
그게 허풍이 아니란 걸 이미 보여준 건지, 지느러미 달린 대가리가잘게 썰린 살점들 사이를떠돌며 입을 뻐끔거리고 있다.
부릅뜬 눈의 초점이 흐린 걸 보니, 자신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도 잘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다.
그러게 술 작작 먹었어야지.
………아, 맞다.
생선은 원래 눈이 흐릿하지?
미안, 내가 아는 술꾼이랑 착각했네.
바깥으로 목소리가 안 나가는 것 같아, 일단 속으로 사과해두었다.
나중에 다시 만나면 제대로 미안하다고 해야지.
그런데 이런 정신활동에도 기운이 들어가는 걸까?
아른거리던 시야가 도로 검게 물들며, 눈꺼풀이 서서히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에……! 카………!”
소리가 멀어서 뭐라고 하는 건지 모르겠어…….
그보다 이 거품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
…………
사라라라락.
몸이 끌려가고 있는 듯하다.
물이 흐르는 소리가 귀를 울려대서 거슬려 죽겠다.
갑자기 가슴이 꽉 눌리는 느낌에, 몸이 저절로 들썩거리며 기침이 터져나왔다.
부글부글거리는 거품이 되어서.
……어라? 왜 내 입에서 거품이 나와?
상식을 넘어도 한참 넘은 현상에 충격을 받은 탓인지, 겨우 떠올랐던 의식이 도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당황해하는 목소리가 들리며 어깨가 흔들리고 있었지만, 이미 깊이 잠기기 시작한 의식을 건져올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차려……! 카………! ……바……!”
아니,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니까……?
메……
………
……
……사방이 시커멓게 칠해진 공간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눈 좀 떠봐…….
어울리지 않게 힘없는 목소리.
평소 모습에선 개미 다리털만큼도 상상할 수 없는 가냘픈 음색.
마치 또래 여자애들처럼 웅얼거리면서, 녀석은 내 머리카락을 매만지고 있었다.
녀석의 말이 아니어도 눈을 뜨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데, 눈꺼풀을 풀로 붙여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떼어지지 않는다.
누가 흔들고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지진이 난 것도 아닌데, 온 몸이 마구 덜덜 떨리고 있다.
왜……?
왜 떨고 있지?
……추우니까.
왜 추운 거지?
……얼음물에 빠졌으니까.
왜 빠진 거지?
……그 개 같은 새끼가 내가 낚은 물고기 빼앗을 때 밀쳐버렸으니까!
그럼 거기서 어떻게 나온 거지?
어떻게 침대까지 온 거고?
물론 그 의문들도 금방 풀 수 있다.
기억은 전혀 안 나지만,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이니까.
나 심심해……. 얼른 일어나서 놀자…….
아니, 추워서 얼어 죽기 직전인 사람한테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넌 항상 그런 식이지.
내 기분은 코딱지만큼도 신경 안 써.
그러면서 지 기분 상했다고 코빼기도 안 비치고 말야.
같이 얼음낚시 가기로 했으면서.
넌 진짜 나쁜 자식이야.
……어떻게 사과할 기회도 안 주냐고.
너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나만 두고 어디 가버린 거야?
……너까지, 나 저버리는 거야?
이 어두운 공간에 나 홀로 둥실 떠 있다는 게 무섭다.
조만간 이 의식도 꺼져버릴 거 같아서 겁이 난다.
추워. 차가워.
온 몸이, 뼛속까지,
전부 꽁꽁 얼어버릴 거 같아.
카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와 함께 느껴지는 건, 목을 감싸는 팔이 지닌 따스한 온기.
뺨을 비비는 말랑하면서 보드라운 감촉.
코끝에 잔잔히 풍기는, 햇볕과 풀의 냄새가 섞인 봄의 향취.
몇 번이나 닿으며 느껴온 그 감각들이 온 몸을 감싸며, 이제 안심해도 된다고 속삭여온다.
……여기 있는 거구나. 그럼이제 됐어.
이제 누구도 위협해오지 않을 거야.
위험도 없을 테니, 더는 겁먹지 않아도 돼.
그날 네 등 위에서 느꼈던 것처럼, 이제 안전하니까.
네가 옆에 있는 한, 나는 어디에 있든 무사할 수 있으니까.
그렇지?
메린.
카엘……
메린…….
카엘……!
목소리가, 점점 커져온다.
“……엘……! 카엘……!”
아득했던 소리가 가까워진다.
보글보글, 거품 소리가 귀를 간지럽히고, 따스한 온기가 목을 휘감고 있는 게 느껴진다.
“정신 차려……! 흑, 제발 눈 좀 떠봐아……!”
특유의 향기는 풍기지 않지만, 목소리와 온기만으로도 그 주인을 떠올리기엔 충분했다.
……내가 목숨을 빚진 사람.
내 목숨보다도 소중한 사람.
내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
그 이름을 입에 올리며, 아른거리는 시야 속에 나풀거리는 갈색 머리카락에 손을 얹었다.
“메…린…….”
숙이고 있던 고개가 홱 들리며, 딱딱하게 굳은 주홍빛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았다.
“아…… 으, 카엘……!”
이내, 그녀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나를 부르며 이마를 맞대왔다.
내 뺨을 어루만지는 두 손끝이 덜덜 떨고 있는 게 느껴졌다.
“눈, 떴어……! 흑, 우읏… 카엘…, 흐윽……!”
“이제 괜찮아…… 메린…….”
잘은 모르겠지만, 이 녀석 덕분에 또 눈을 뜰 수 있었다는 건 바로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또 빚이 느는구나.
네 덕에 목숨을 건진 게 이걸로 몇 번째일까?
이거 진짜 죽어서도 다 못 갚을 거 같은데?
보글보글, 자그마한 거품이 뺨을 간지럽히며 흩어지는 게 보인다.
재차 내 목을 감싸면서 눈물 없이 흐느끼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일렁이는 공간 속에서, 그녀의 땋은 머리 가닥이 하늘하늘 나부끼고 있다.
이 풍경도 그렇고, 기묘하게 붕 뜬 듯한 느낌…….
……혹시 지금 물 속에 있는 건가?
그런 거 치곤 숨 잘 쉬어지는데?
멍하니 고개를 갸웃하며, 그녀의 등을 가만히 토닥였다.
잠시 후, 의식이 좀더 또렷해지면서 머릿속이 약간 맑아지는 것 같았다.
눕혀져 있던 몸을 일으키고, 나를 껴안은 채 훌쩍이는 메린을 계속 토닥이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벽과 천장이 모두 돌로 되어 있는데 한쪽이 뻥 뚫려 있는 걸 보니, 지금 동굴에 있는 것 같군.
구석에는 휴대용 야광석등이 굉장히 힘찬 빛을 뿜고 있고, 훤히 열려 있는 입구 앞엔 파란 덤불이 살랑살랑 흐느적거리고 있다.
……근데 말이 덤불이지, 가지가 아니라 뿔처럼 생겼는데?
내 평생 저렇게 생긴 건 진짜 처음 본다.
뭐야, 저거?
그건 그렇고, 진짜 물 속에 있긴 한가봐.
저런 괴상한 게 돋아나 있기도 하고, 몸이 둥실둥실 떠 있는 느낌에, 숨을 쉴 때마다 잔거품이 나오고 있는 걸 보면 말야.
근데 어떻게 숨을 쉴 수 있는 거지?
메린에게 물어보려는 찰나, 사라락 하는 소리와 함께 눈앞에 거북이가 떠올랐다.
“정신이 드나? 꽤 오~래 의식 잃고 있었는데.”
“어…… 아쿠아?”
“허허~ 이 늙은이도 잘 기억하는 걸 보니 아주 멀쩡하구먼!”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바닥에 내려앉는 거북이를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저게 진짜 위슨의 정령인 그 거북이라고?
말이 엄청나게 빨라졌는데!
“뭘 그리 보나? 새삼 신기해?”
“말…… 엄청 빨라졌네……?”
“거북이니까.”
“아, 그래.”
대뜸 날아온 대답에 그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하긴 뭐, 거북이가 원래 뭍에서는 느려터지지만, 물 속으로 들어가면 엄청 빨라지잖아.
아마 그런 거겠지.
“……응? 근데 저번에 그릇에서 물장구 치고 있을 땐 똑같았지 않았어?”
“머리가 안 잠겨 있었잖나.”
“이상한 데서 세밀하네……. 뭐, 그건 그렇고, 여기 바닷속이지? 네가 우리 숨 쉬게 해주고 있는 거야?”
내 질문에, 거북이는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숨쉬는 것 말고도 몸이 납작해지지 않게 하고도 있지. 자네는 모르겠지만, 물 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아주 꽈~악 눌려버려. 이 깊이라면…… 내장이 죄다 터져버리겠구먼.”
“히익……!”
“허허허! 걱정 말게, 바닷속은 마력으로 가득하니까. 자네 기운을 쓰지 않아도, 자네들 둘의 호흡과 몸을 지킬 수 있다는 소리이지.”
“그렇구나.”
이 안을 다니다가 내가 탈진할 일도, 그 때문에 숨이 막히거나 몸이 콱 눌려서 죽을 일도 없단 거군?
진짜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훌쩍임이 멎었는데도 여전히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있는 메린에게 물었다.
“메린, 말해줄 수 있어? 어떻게 된 건지 듣고 싶은데.”
“그게…… 아, 우읏……!”
“이런.”
기억을 되짚다가 눈물이 다시 솟구친 듯했다.
그만큼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거겠지.
나 때문에 말야.
가슴이 아리는 걸 느끼며, 도로 어깨를 떨기 시작한 메린을 꼭 껴안아주었다.
이제 괜찮다고 속삭이면서 입술과 뺨에 입을 맞추고 등을 살살 두드리자, 이내 그녀의 흐느낌이 잦아들면서 다시 훌쩍이기 시작했다.
……완전히 진정되기 전까진 그냥 내버려두는 게 낫겠군.
괜히 울다 지칠라.
그래도 다행히 이 자리엔 물어볼 사람…이 아니라 존재가 하나 더 있다.
나는 메린의 뒷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면서, 입구에 나 있는 괴상한 덤불을 향해 눈을 끔벅이고 있는 거북이에게 물었다.
“아쿠아, 어떻게 된 거야?”
“짧게 할까, 아니면 길게 해줄까?”
“적당히 알맞게.”
“까다롭구먼.”
거북이는 짧게 한숨 쉬더니 쭉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바닷속으로 끌려들어가는 걸 메린이 잡아서 따라왔다는 것.
그렇게 카스피 왕녀 앞까지 같이 끌려갔고, 거기서 메린이 검을 뽑아 저항하면서 나를 데리고 빠져나왔다는 것.
그리고 몸집을 키운 거북이가 우리 둘을 데리고 이 동굴까지 온 것이라고 말을 마치며, 거북이는 넉살 좋게 허허 웃었다.
뭐…… 같이 그 얘기를 듣게 된 메린은 쓴웃음도 안 나오는 것 같지만 말야.
또 다시 기억이 떠오른 탓에 내 옷자락을 꽉 잡으며 떠는 메린을 달랜 후, 왠지 모르게 우리를 보며 빙긋 웃고 있는 듯한 거북이에게 말했다.
“놈들이 그냥 내버려뒀을 리는 없고…… 추격을 따돌렸나보네. 여긴 괜찮아?”
“허허, 다 자네 덕분이야. 뒤쫓는 놈들을 여기 아이들이 방해해줬거든. 지금 우리가 있는 데를 소개해주기도 하고.”
“어…… 물고기가? 왜?”
“에코가 말했잖나, 숲이 자네를 돕는다고.”
바다도 숲이다.
거북이는 그렇게 말하며 껄껄 웃었다.
산호라는 이름의 덤불이 있고, 미역이라는 풀도 나 있다.
탈 수 없는 말이 물 속을 거닐 뿐 아니라, 심지어 뱀도 물살을 헤치며 다닌다.
여러 형태의 거북이가 있으니, 네발 달린 짐승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고.
바다는 털 대신 지느러미와 비늘이 달린 짐승들의 보금자리이자, 그야말로 물 속의 숲이었다.
“근데 물고기들이 놈들을 방해했다고? 조종이라고 해야 하나…… 인어들의 말을 듣는 거 아니었어?”
“귀쟁이들과 비슷해. 축복이 거두어진 탓에, 더 이상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아. 뭐, 그래도 그 머저리보단 신세가 좀더 나은 편일걸?”
“……낫지 않아요.”
“……?!”
불현듯 끼어든 구슬픈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흠칫 놀라며 뒷걸음을 쳤다.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긴 양갈래 머리를 한 여자가 바깥 입구에 서서 침울한 표정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 여자의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메린을 내 등 뒤로 돌리고서 허리의 검자루를 잡았다.
여자가 어디에서 온 누구인지 알아야 할 필요는 전혀 없을 듯했다.
여자의 허리 아래쪽은 지느러미와 비늘이 달린 물고기 모습이었으니까!
거북이 이 영감탱이, 추격은 따돌렸다더니……!
메린은 지금 제 상태가 아니야.
저 인어는 내가 혼자서 해치워야 한다!
인어는 그런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말했다.
“경계하지 마세요. 저는 두 분을 모시러 왔을 뿐이에요.”
“네 동족이 나랑 이 녀석을 여기 끌고 왔는데, 그 말을 지금 나보고 믿으라고?”
“동족이 아니에요.”
울적하게 중얼거리는 인어의 목소리엔 한탄이 한껏 묻어나 있었다.
얼굴에도 짙은 그늘이 끼어 있는데, 특이하게도 두 눈엔 경멸하는 빛이 짙게 일렁거리고 있다.
한 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복잡한 표정을 띄운 채, 인어가 재차 입을 열었다.
“왕녀는 물론이고, 그를 따르는 백성들은 저와 제 주인의 동족이 아니에요. 예전엔 같았지만…… 이제 아니게 되었죠. 그러니 걱정 마세요. 저와 제 주인은 당신의 적이 아니니까요.”
“……”
두 팔을 살짝 벌리며 말하는 인어에게선, 아무런 적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완전히 경계를 풀 순 없어서, 검자루에서 손만 떼고 인어를 계속 노려보았다.
그러자 인어는 이해한다는 듯이, 가만히 어깨를 으쓱이며 나를 빤히 마주보고 섰다.
“뭐, 이렇게 말씀드려도 당연히 믿지 못하시겠지요. 하지만 제가 말씀드린 건 전부 사실이에요. 저들은 이제 저와 제 주인과는 다른 종족이에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갑자기 종족이 바뀌기라도 했답니까? 인어가 아니면 뭔데요?”
“일부는 하찮은 형태로. 일부는 저주를 받아 지성 없는 몬스터로. 그리고 왕녀와 일부 인어는……”
인어는 잠시 말을 끊고서 깊은 한숨을 쉬더니,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들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인어가 인어이기 전, 하늘 위에 좌정한 존재와 약속하기 전의 모습으로.”
“그게 뭔……”
“세이렌.”
내 말을 뚝 잘라버리며, 인어는 그늘 진 얼굴을 돌려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바다의 마녀. 노래하는 물귀신. 사람을 잡아먹는 몬스터, 세이렌이요.”
음울하기 그지없는 인어의 목소리가, 동굴 안을 조용히 울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