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2화 〉 332화 : 수확의 밤 (2)
* * *
햇빛의 축복을 받는 존재들이 밤을 두려워하는 것은, 사방에 드리운 검은 장막이 눈을 가려서 그런 게 아니다.
검푸른 그늘 속에서 달과 별빛을 의지하며 사는 존재들과, 그 서늘한 빛조차 닿지 않는 깊은 그림자에 자리한 정체 모를 존재들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큰 공포는, 우리 스스로는 끝없이 펼쳐진 밤의 장막을 완전히 걷을 수 없다는 무력감에서 비롯된다.
불을 피워도 그 주변만 조금 밝아질 뿐, 여전히 어둠은 존재하니까.
아무리 크고 밝은 불빛일지라도, 하늘에 뜨는 해처럼 온 세상을 밝힐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 미약한 불빛이 ‘밤의 자녀’들의 눈을 멀게 해주기만을 바랄 뿐.
동쪽 하늘에 눈을 떼지 못한 채, 다시금 해가 떠오르기를 손꼽아 기다릴 뿐이다.
그럼에도 이 세상엔 어둠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으리라.
하나는 아직 그 막강함을 모르는 어린애이고, 다른 하나는 애초부터 두려운 것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왜냐? 갑자기 뭐가 튀어나오든 다 없애버릴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러한 사람이 바로 곁에 있다는 게 이렇게 다행일 수가 없었다.
아무 거리낌없이 유유히 물 속을 헤엄치는 메린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내 결정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안도했다.
그와 별개로 ‘들키면 성가시니 불 끄고 다니자’는 헛소리를 지껄인 나 자신을 패버리고 싶긴 하지만.
쿠르르르르……
“……”
정체를 알 수 없는 으르렁거림이 들려왔다.
이 바다 어딘가에서 거품이 터져나오고 있는 걸까?
어쩌면 정말로 거대한 괴수가 위협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신전을 습격했던, 그 촉수생물체 같은 놈일지도 몰라……!
그 상상이 막 떠올랐을 때, 주변에서 사라락 하는 물소리가 들리더니 무언가가 얼굴을 스윽 스치고 지나갔다.
“……!”
소리를 내지 않은 나 자신, 칭찬해!
하지만 가슴이 쿵 내려앉는 듯한 공포 탓에 다리가 얼어붙어버렸다.
급작스럽게 튀어나온 포식자를 보고 굳어버린 토끼처럼.
원래라면 그대로 잡아먹혔겠지만, 다행히 내 몸은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지금 물살을 헤치고 있는 건, 내 팔다리가 아니라 거북이의 네발이기 때문이다.
그보다 훨씬 더 다행스러운 건, 그 정체 모를 존재가 나에게 그리 큰 관심이 없다는 거고 말야.
아니면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놈이거나.
아무튼 뒤를 쫓아오거나 내 발을 잡아당기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뺨에 느껴지는 미끌미끌한 느낌 때문에 소름이 돋는 게 멈추지 않고 있었다.
이내 그 불쾌한 느낌이 물살이 씻겨 사라진 뒤에야, 나는 속으로 크게 안도하며 거북이의 등껍질을 꽉 쥐고 있던 손의 힘을 조금 풀 수 있었다.
사락.
자그마한 물소리가 들리더니 거북이가 제자리에 멈추었다.
내 눈엔 잘 안 보이지만, 아마 앞서 가고 있던 메린이 움직임을 멈춘 것이리라.
뭐가 있나……?
서걱.
“……”
없어졌습니다.
……왠지 좀 허망한데.
뭐, 이족보행 생선 몬스터나 그런 비슷한 게 있던 거겠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거북이의 등에 매달린 채, 산호의 빛 뒤에서 둥실둥실 춤추고 있는 둥그런 그림자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조금 우스운 이야기지만, 나는 지금 우리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 건지 모른다.
선두에 있는 메린은 알 테지만, 녀석에게 소리를 내어 물어볼 수는 없다.
지금 우리는 밤을 틈타서 몰래 습격하는 중이니까.
내가 아는 건 딱 하나, 우리가 인어들의 임시 거주지 안에 들어와 있다는 것뿐이다.
나와 메린을 등에 태운 채 쏜살같이 질주하던 거북이가, 갑자기 ‘근처에 왔다’면서 우뚝 멈췄던 것이다.
그 이후부턴, 지금처럼 내가 거북이의 등에 매달린 채 메린의 뒤를 졸졸 따라가는 형국이다.
카스피 왕녀가 있는 곳을 대략적이나마 기억하는 건 메린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밤눈도 좋고, 주변 감각도 뛰어나기 때문에, 자연히 녀석이 맨 앞에 서게 되었다.
그 반면, 나는 밤눈이 그리 좋지 않고 감각도 둔하다.
그런 내가 직접 메린을 쫓아가려 하면 여러모로 속도가 느려질 게 뻔하니, 물의 정령인 거북이에게 매달려서 가기로 했다.
거북이도 시력 자체는 별로 좋지 않지만, 그래도 정령인 만큼 메린의 움직임이 만드는 물결을 읽고 따라갈 수 있다는 점에서 착안한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기묘한 행진 중에 보인 광경은, 이곳이 인어들의 임시 터전이라는 내 생각을 더 단단히 굳혀주었다.
이전까지 무성하게 자라 있던 빛나는 산호들이 겨우 한두 줄기만 바닥에 나 있는데, 그것도 굉장히 부자연스럽게 박혀 있었다.
마치누가 일부러 심은 것처럼.
그리고 메린은 그 지점에 다다를 때마다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그 근방에 인어가 있었다는 것밖에 더 되겠는가?
달리 말하면, 인어들은 빛나는 산호를 조명으로 쓰고 있었다는 게 된다.
아마 그래서 메린이 산호 줄기에서 또 다른 산호 줄기를 향하고 있는 거겠지.
정신을 잃은 나를 데리고 빠져나올 때, 바닥에 꽂혀 있는 산호 줄기들을 기억해둔 듯했다.
후…… 진짜 대단한 녀석이야.
탈출하느라 정신없는 와중에도 그걸 보고 기억하다니.
……근데 메린이 보았던 산호 가지들 중, 여왕이 있는 곳도 포함되어 있진 않겠지?
여왕이니까 지붕 있는 구조물 안에 있을 거라 믿고 싶다.
아무리 그래도 가는 길에 그냥 서걱 썰리는 결말은 좀 그렇잖아?
명색이 여왕인데.
그건 그렇고, 야습이 너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서 오히려 불안하다.
설마 단 한 놈도 깨어 있지 않을 줄이야.
그에 더해, 메린이 가는 길목에 있는 인어…가 아니라 몬스터의 목을 톡톡 떨어뜨리고 있는데도, 누구 하나 깨어나지 않고 있다.
누군가가 나다니는 물소리가 들리고, 물결이 느껴지고 있을 텐데.
아마 피냄새도 풀풀 풍기고 있을 거고.
내 코는 바다 냄새밖에 못 맡고 있긴 하지만, 원래 바닷속에 사는 주민들이니까 좀 다를 거 아냐.
스으윽.
“………”
또 다시 미끌미끌한 것이 얼굴을 스쳤다.
이번엔 양쪽 뺨을 동시에……!
멀리서 또 괴상한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아으, 이거 진짜 죽겠네.
아직 더 가야 되나?
그보다 뭐가 자꾸 만져대는 거야, 확 불 켜버릴 수도 없고……!
하…… 진짜 거북이 등에 매달려서 가기로 하길 잘한 것 같아.
내가 바짝 겁을 먹었든 말든, 계속 앞으로 쭉쭉 가고 있으니까 말야.
속으로 중얼거리며, 등골에 살얼음이 끼는 것 같은 느낌을 열심히 흘려버리려 애썼다.
……하지만 그 저항도 오래가지 못했다.
잊을 만하면 다가오는 미끌미끌한 손길과 괴성 때문에, 나는 결국 앞을 보는 걸 포기하고 등껍질에 이마를 대어버렸다.
아…… 역시 사람은 낮에 다녀야 돼.
밤엔 그냥 자는 게 최고야, 최고.
내 주제에 야습은 무슨……!
으으, 그치만 이런 건 빨리 끝내야 된다고 했어!
안 그러면 적이 다시 태세를 정비할 게 뻔하니까!
물론 인어 여왕과 협조했다면 좀더 빨리 수월하게 일을 마칠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여왕이 왕녀를 없애려 한다는 것을, 왕녀 자신이 모르고 있다면 절호의 기회이긴 하다.
근데 만약 알고 있다면?
그 참치 년의 머릿속이 텅텅 비어 있지 않는 한, 여왕이 우리에게 접촉을 시도할 거라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여왕의 시녀가 우리를 찾아온 걸 보면, 아예 문을 막고서 지키고 있진 않은 듯하지만, 그래도 주변에 숨어서 계속 감시하고 있을 터.
그 시녀를 따라 여왕의 침소에 발을 들인 순간, 여기저기 숨어 있던 병사들이 우르르 튀어나왔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여왕이 천장이나 바닥에 직접 병사를 숨겼을지도 모르고.
제 주인에게 충성스러운 그 인어는 끝까지 부정했지만, 이미 자포자기한 여왕이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신에게 엿을 먹이고 죽겠다’며 날 죽이려 들지도 모르는 거 아냐!
그런 위험천만한 제의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차라리 내가 겁을 좀 먹고 말지.
으, 그래도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등껍질에 얼굴을 묻은 채 속으로 간절히 빌고 있는데, 문득 거북이가 움직임을 멈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도착한 건가……?
고개를 들고 앞을 내다보자, 주변 바닥과 벽에 산호 줄기가 여럿 꽂혀 있는 구조물이 있었다.
딱 보기에도 중요한 사람이 있을 것 분위기를 풀풀 풍기고 있었는데,
쿠르르르르…… 으으…… 흐으으…… 아아아………
“………”
안쪽에서 상당히 좋지 않은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설마 이거 아까부터 들리던 그 괴상한 소리인가?
여기서 나오고 있던 거야?!
어, 여기 들어가야 되는 건 아니겠지?
제발 아니라고 해줘!
“이 안이야.”
“…………”
절망했다! 아예 못을 박아버리는 메린의 말에, 저 안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이 현실에 절망했다아아!!
“거기 색시, 젊은이가 엄청 떨고 있는데?”
“냅둬.”
그리고 메린은 무정하게 내뱉으며, 심연의 입구처럼 시커먼 문 안으로 훌쩍 들어가버리는 것이었다.
거북이 역시 나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주지 않은 채로, 무심하게 그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와, 진짜 매정한 자식들이야……!
나는 그 싸늘함에 한차례 몸을 떨며, 암흑을 떼어 붙인 듯한 문을 향해 그대로 끌려갔다.
그렇게 속으로 절규하면서 구조물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방금 전에 들었던 그 커다란 괴성이 또 한 번 귓속을 파고들 듯 울려퍼졌다.
심장이 오그라드는 느낌에 소리가 나오려는 걸 꾹 눌러 참는 나와 달리, 메린은 무척이나 태연한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여기서부턴 불 켜야 돼.”
“켜, 켜도, 되는 거야……?”
“어차피 출입구는 이거 하나밖에 없어. 이 안에 다른 방이 있는 것도 아니고.”
녀석의 말에 화답하듯이, 으르렁거림과 흐느낌이 뒤섞인 그 목소리가 또 다시 울려왔다.
저 앞쪽에서부터 진동이 퍼지면서, 이 구조물의 천장까지 웅웅 울리고 있는 느낌이다.
진짜 다른 방은 없나보군.
“그럼 아쿠아, 문 좀 막아줘.”
억지로 손을 떼면서 거북이에게 말한 후, 나는 허리의 벨트가방에서 휴대용 야광석등을 꺼내 들었다.
그대로 크게 심호흡을 한 후, 야광석등의 뚜껑에 손을 대고서 작게 중얼거렸다.
“불 켠다.”
“어.”
눈을 질끈 감고서 뚜껑을 열었다.
보글.
딸깍 대신 울린 거품 소리에 고개를 갸웃하는 동시에, 온통 시커멓던 눈꺼풀 뒤가 일순 빨갛게 물들었다.
그와 동시에,
“캬아아아아아!!”
“……?!”
상당히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내 귀를 찢어버리려고 마구 달려들었다!
그 충격 탓에, 나도 모르게 눈을 번쩍 뜨고 앞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대로, 눈을 깜빡이는 것도 잊은 채 망연히 서 있었다.
눈이 타버릴 것처럼 밝은 빛이 비추는 방, 그 맨 안쪽에 괴수 하나가 등을 돌린 채 몸을 웅크리고 있었으니까.
허리 아래는 여왕의 시녀처럼 물고기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상반신은 완전히 딴판이었다.
괴수의 온 몸엔 자그마한 조개 같은 것이 박혀 있고, 우리를 마주하고 있는 등 한가운데엔 커다란 지느러미가 돋아나 있었다.
그것도 등뼈 같은 가시가 잔뜩 달려 있는.
“아아아……! 크르르, 으르르륵……! 밝아, 밝다고, 아아, 싫어, 치워, 빛 따위 저리 치워버려!!”
이미 엉망이 된 머리카락을 쥐어뜯듯이 헝클어뜨리면서, 괴수가 부글부글 거품 섞인목소리로소리쳤다.
“끔찍해, 끔찍해, 이런 거 몰라, 이런 건 말도 안 돼!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긴 거야, 그냥 전설이었을 텐데 어째서 이렇게 된 거야, 어째서 내가 이렇게 끔찍한 꼴이 된 거냐고!!
아아, 아아아……! 누구야, 당장 여기서 나가, 빛 치워, 보지 마, 나를 보지 말란 말이야!!”
비명과도 같은 고함을 지르며 괴수가 몸을 홱 틀자, 몸만큼이나 흉측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위아래로 찢어진 눈구멍, 그 안을 채운 검은 눈.
뭉개진 걸 넘어 아예 짓눌려버린 듯한 코에, 귀 대신에 달린 가시 달린 지느러미.
마구잡이로 솟아 있는 뾰족한 이빨.
그리고 몸에 있는 것과 같은 그 작은 조개 비슷한 것이, 이마와 눈가, 뺨, 턱 등등에 박혀 있다.
군데군데 살점이 떨어져 나간 것처럼 패여 있기도 한 그 얼굴은, 흉측하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끔찍하고 처참했다.
“어라? 그 년이 없고 딴 녀석이 있네. 장소는 여기가 맞는데…….”
저 괴수는 왕녀가 아니야.
메린은 그 뜻이 담긴 말을 중얼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을 바꿨나봐. 어쩌지? 이 바깥을 다 뒤져봐야 하나?”
“……아니, 안 그래도 돼.”
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야광석등을 바닥에 내려놓은 뒤, 천천히 검을 뽑으면서 말을 이었다.
검집보다 더 널찍한 검신을 자랑하는 성검이 모습을 드러내며, 은은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여기 맞아. 제대로 찾아왔어.”
“엥? 아니, 딴 녀석이라니까? 아까는 저런 몬스터 없었어. 처음 보는 녀석이라고.”
“……아니야, 메린. 저거 왕녀야. 우리가 잡으러 온 카스피 왕녀라고. 저 목걸이랑 티아라, 낮에 본 거랑 똑같아. 확실해.”
“어……?”
메린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녀석이 왕녀를 못 알아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원래 장신구에 관심이 없는 녀석이니, 주로 얼굴이나 몸 형태 같은 겉모습을 기억했을 테니까.
나 역시 여자들의 장신구는 잘 모르지만, 왕녀의 장신구들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창조주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 수도 있어.
저 괴수는 인어 여왕의 딸, 카스피 왕녀이다.
애초에 저렇게 장신구를 주렁주렁 차고 있다는 것 자체가, 저 괴수가 본래 높은 신분이었음을 증명하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내 말이 틀려? 왕녀 카스피. 모습이 바뀐 김에 자기소개나 다시 해보시지?”
당장이라도 눈을 돌리고 싶은 욕구를 눌러 참으면서 묻자, 괴수가 나를 향해 눈을 부릅뜬 채로 입을 열었다.
“용사…… 인간……! 끄르르륵……! 이건 전부, 전부 네놈들 때문이야……!! 네놈들이 내 손에서 달아나서 이렇게 된 거야! 네놈들이 죽어주지 않아서 내가! 내 백성들이 비참해졌어!!
저주받을 놈들! 저주스러운 놈들! 네놈들이 태어나지만 않았어도, 우린 이 꼴이 되지 않았다!!”
“억지 부리지 마, 네 스스로 저주를 자초했잖아! 먼저 전쟁을 걸었던 건 너야! 내 마지막 물음에 힘차게 답한 것도 너고! 너와 네 백성을 멸망으로 이끈 건 너야, 카스피 왕녀, 바로 너!”
“아아아, 아아아아!! 닥쳐, 닥쳐닥쳐닥쳐, 닥쳐어어어!!”
“윽?!”
공간이 그리 좁은 것도 아닌데, 머릿속까지 마구 울리는 것 같아……!
메린은 괜찮나?!
한쪽 귀를 틀어막으면서 메린을 힐끗 쳐다보자, 녀석은 오히려 나를 멀뚱멀뚱 보면서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음, 엄청 괜찮은 것 같군.
근데 왜……? 메린이 나보다 귀 더 예민한데 어째서……?
포효 같은 거에 면역일 리도 없는데?
“크흐, 키히, 이히히히……! 아아, 그래, 네놈도 사내였지. 하하, 아하하하!! 케흐흐흣! 그래, 죽여주마. 이렇게 된 거, 네놈에게 저주를 한껏 담은 노래를 들려주지!!”
“누가 얌전히 들어준대?!”
호령하듯 외치며 왕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마른 땅에 서 있을 때보다는 느릴지라도, 거북이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상태였을 터.
그러나 왕녀가 제자리에 가만히 선 채로 입을 벌리는 속도를 이길 순 없었다.
작은 조개가 박힌 왕녀의 목을 향해 성검을 휘두르려는 찰나,
애처로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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