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3화 〉 333화 : 수확의 밤 (3)
* * *
노랫소리가 들린다.
단 하나의 글자에 온갖 가락을 담은 노래.
지성이 아닌 본능이 자아내는 노래가 들리고 있다.
들어서는 안 되는 노래를, 들어버리고 말았다.
“아… 크윽……!”
아아— 아아아아—
본능적으로 귀를 틀어막는다.
그러나 이미 귀에 들어와버린 노랫가락이, 머릿속을 마구 뒤흔들고 있다.
저주를 들려주마.
메아리 낀 속삭임과 함께, 눈앞이 순식간에 검게 흐려졌다.
다시 밝아진 시야 한가득, 평원이 펼쳐져 있다.
머리 위의 하늘처럼 붉게 물든 땅에, 타다 남은 잔해가 잿가루를 날리고 있다.
무심히 널부러진 몸뚱이들이, 속에 품고 있던 진득한 물을 아낌없이 쏟아내고 있다.
그 덕에 평원의 붉은 빛이 검게 변하지 않고, 아직도 이렇게 선명한 것이리라.
그러한 끝없는 수고를 쏟는 시체를 내려다본다.
허름한 갑옷.
도적이라 하기엔 순박한 얼굴.
……알고 있다.
그들이 누구의 밑에 있던 자들인지, 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저주를 들려주마.
빛이 꺼진 눈동자들이 일제히 나를 향하고, 파리가 점령해버린 입이 한꺼번에 꿈틀대기 시작한다.
만들어질 리가 없는 말소리들이 평원에 크게 울려퍼진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아이들을 구하고 있었는데.
어째서 끼어든 것이냐? 왜 죽인 것이냐?
네놈이 없었다면 지금도 살아있을 것을. 네놈 때문에 이제 집에 돌아가지 못한다.
어느새 발목이 붙잡혀 있다.
하얀 뼈가 드러난 손가락이 바짓가랑이를 꽉 움켜쥐며 매달려온다.
살려내. 살려내. 살려내.
그게 안 된다면, 네놈도 이곳에서 피를 쏟아라. 살점을 내놓아라.
죽어. 죽어. 죽어버려……!
……싫어.
오해했던 건 미안하지만, 죽어줄 순 없어.
댁들이 너무 충실하게 도적 흉내를 낸 탓도 있다고.
고개를 저은 후, 구더기가 들끓는 대가리를 걷어찬다.
다리에 들러붙은 손들을 잘라서 떼어버리고, 뻗어오는 팔을 밟아 부순다.
원성 어린 신음이 잔해 사이사이로 퍼져간다.
마침내, 이전보다 더 처참한 몰골이 된 채 조용해진 시체들을 내려다본다.
절로 입에서 기나긴 한숨이 새어나오며, 그 입김이 두 어깨를 무겁게 짓누른다.
……핏빛 하늘 위로, 가냘픈 노랫소리가 울려퍼진다.
무심코 움직인 발끝에, 무언가 툭 걸리는 느낌이 든다.
시선을 내리자, 나무통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그 하나뿐만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나무통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다.
대체 어느 틈에 풍경이 바뀐 건지, 나는 지금 습기가 가득한 지하창고에 서 있다.
벽이나 천장을 받치는 기둥 하나 없는 방 중앙에 선 채, 나를 에워싼 나무통 중 하나에 시선을 던진다.
통 위에, 읽을 수 없는 단어와 날짜인 듯한 숫자가 같이 적혀 있는 게 보인다.
……알고 있어.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이 숫자와 글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그리고 이 통들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저주를 새겨주마.
나무통에서 흙이 새어나오기 시작한다.
이대로는 지하가 메워지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쏟아져 나온다.
흙 속에서, 가냘픈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파… 아파아… 무서워어… 엄마아…….
집에 가고 싶어… 하지만… 다들 불타버렸는걸……?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엄마아… 빨리 데리러 와줘어…….
푸드드득.
통들이 쓰러지면서 부숴진다.
썩어 문드러진 살들이 꿈틀거리며 나에게 다가온다.
보았을 리가 없는 얼굴을 만들어내며 입을 연다.
왜 더 빨리 오지 않은 거야……?
왜 밥을 먹은 거야…? 왜 잠을 잔 거야…? 그 시간에 길을 갔으면, 나 안 죽었을 텐데…….
오빠가 구해주지 않아서 죽었어. 형이 늦어서 죽었어. 오빠가, 형이 죽인 거야.
………미안해.
정말 미안해.
입이 흙 속에 묻혀서 말로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전해진 모양이다.
아이들이 부드럽게 웃으며 재잘거리기 시작한다.
그럼 같이 가자. 그럼 용서해줄게.
……미안해.
미안하면 같이 있어줘. 여기 심심해. 쓸쓸해. 추워. 그러니까 여기 남아줘.
그래줄 거지? 같이 묻혀줄 거지?
……그럴 수 없어.
비실비실 몸을 일으킨다.
저 앞에 보이는 출구를 향해 비틀비틀 걸어간다.
발이 붙잡히는 느낌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이들은 그저 아쉬움이 담긴 시선을 던지며, 한숨을 쉴 뿐이다.
가버리는 거야? 치사해.
……난 어른이니까.
어른은 원래 치사한 법이야.
근처 벽에서 빛나고 있는 횃불을 집어, 무수히 쌓인 채 투덜거리는 흙더미를 향해 던진다.
화르륵, 새빨간 불꽃이 흙들을 집어삼키며 타오른다.
말없이, 고요하게.
벽에 기대고 있던 몸이 바닥으로 스르르 내려앉는다.
물기를 전부 짜내어 말라버린 두 눈이 스르르 감긴다.
……재밖에 남지 않은 지하실 안을 채우려는 듯이, 노랫소리가 크게 울려퍼진다.
저주를 내려주마.
아아아— 아— 아아아아—
귀를 파고드는 구슬픈 가락이, 통곡으로 바뀌어 머릿속을 마구 헤집는다.
눈이 따갑고 목이 아프고 온 몸이 얼얼하다.
머리 위에서, 시선들이 쏟아져 내린다.
경멸 섞인 눈초리들이 아무런 거리낌없이 비웃음을 퍼붓고 있다.
멀리서 들리는 듯한 통곡 소리는, 아무래도 내 입에서 나오고 있었던 모양이다.
겨우 이 정도로 못 일어나냐? 그런 주제에 글자 좀 안다고 우리 아빠 앞에서 잘난 척하긴……!
너네 엄마아빠, 네 약값 때느라 맨날 일만 한다며? 그렇게 꾸역꾸역 살고 싶니? 나 같으면 그냥 죽겠다. 넌 양심도 없구나?
쓸데없이 돈 잡아먹는 귀신~! 푸하하, 야, 너 여태 얼마나 처먹었냐? 뱃속에 막 금덩어리 있는 거 아냐? 한 번 토해봐! 혹시 알아? 금화가 튀어나올지! 그럼 너네 엄마아빠도 좋아할걸!
뱃속이 억지로 비워지자, 놈들이 그걸 보고질색해하며 황급히 달아난다.
지들이 해놓고 정말 어이가 없다.
벽에 기대어 앉은 채, 잔기침을 내뱉으며 골목 바깥을 쳐다본다.
건너편 가게 옆에 앉아 있던 어른이 힐끗 이쪽을 보더니, 곧바로 시선을 돌리며 아예 몸을 틀어버린다.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
약한 녀석이 짓밟히는 건 당연한 거니까.
게다가 놈들 중 둘은 촌장님 자식인 데다, 그 중 하나는 말년에 겨우 얻은 아들이다.
섣불리 손을 댔다간 촌장부인의 분노가 튈 터.
그 여자가 데리고 다니는 아낙네들에게 시달리기 싫으니, 다들 못 본 척하는 것이리라.
대강 입가를 닦은 뒤, 비틀비틀 골목을 빠져나온다.
길가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던 두 아낙네가 나를 보더니, 얼굴을 찌푸리며 작게 속닥거린다.
그 들릴 리가 없는 중얼거림이 귓가에 울린다.
저 애가 그 애이지? 외부인 피가 섞인 애.
맞아. 내 친구 아들이야. 저주 때문에 저런 걸 알면서도 꾸역꾸역 살리려 하고 있다니까? 그게 부질없는 짓인 걸 왜 모르나 몰라! 고생하는 거 보면 딱해죽겠어.
뭐, 저 꼴을 보니 올 겨울에 가겠네.
다음 애는 더 튼튼해야 할 텐데.
말소리들을 흘려버린다.
기억 속에 자리하기 전에, 한 귀로 전부 쏟아내 버린다.
이 이상은 무리야.
……숲 속의호수로 낚시하러 가자.
요정들이 귀찮게 하며 방해하겠지만, 적어도 이 이상 다른 사람 눈에 띄진 않겠지.
오늘은 더 이상 경멸 어린 시선들을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하지만 길이 너무나 멀다.
걷고 또 걸어도, 좀처럼 숲에 도착하지 않는다.
지나쳐가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데, 걸음을 옮길 때마다 속삭임이 들려온다.
내 목소리를 빌려서.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 차라리 뱃속에서 죽었어야 했어.
부모 등골을 빨아먹는 것밖에 못하는 버러지.
어차피 죽을 거 빨리 죽는 편이 서로 좋잖아. 왜 아직 살아있는 거야?
……이건 너무 뻔한데.
좀더 참신한 내용은 없어?
내 불평이 통했는지, 이번엔 다른 목소리가 속삭이기 시작한다.
작아져 있던 발이 다시 크게 자라 있는데도, 숲으로 가는 길은 여전히 멀기만 하다.
응? 에스트렐 씨댁 아드님이네. 이번에 성년식 치르는 것 같은데, 에스트렐 씨도 내심 감격스럽겠어요. 그 병약했던 애가 저렇게 다 컸으니.
그럼 뭐하겠어요? 올해 시작하자마자 또 앓았다는데. 이번엔 진짜 초상 치를 뻔했다던걸요?
어머, 그래요? 저런…… 역시 저주는 어쩔 수 없나보네요. 가엾은 에스트렐 씨, 부인을 잃은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조만간 아들까지 잃게 생겼네.
……이런 이야기를 내가 들었던가?
조금 긴가민가한데.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두 아낙네는 계속해서 속닥거린다.
빨리 결혼해서 손주라도 남기면 그나마 낫겠지만…… 어느 부모가 딸을 시집보내겠어요? 일찍 과부 될 게 뻔한데.
아, 그 소름 끼치는 애랑 결혼시키지 않을까요? 둘이 옛날부터 가깝게 지냈다고 하잖아요.
메린이요? 요즘은 딱히 그렇지도 않은가봐요. 아마 가망이 없다고 본 거겠죠. 그 애도 과부는 되기 싫을 테니까요.
내용은 조금 다른 것 같지만, 어쨌든 들었던 이야기이긴 하군.
근데 나랑 메린이 요즘 찰싹 달라붙어 있다는 걸 저 사람들이 알면, 그때는 또 뭐라고 할까?
그럴 줄 알고 있었다고 떠들어대겠지?
지긋지긋한 능구렁이들 같으니.
홀로 고개를 저으면서 계속 발걸음을 옮긴다.
또 다시 들려오는 조롱 섞인 말들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호숫가에 있을 그녀를 생각하며 부지런히 걷는다.
나와 이렇게 되기 전에도, 이따금 약속도 안 했는데 먼저 호수에 와서 같이 놀곤 했으니까.
마침내 도착한 숲 속을 걷는 와중에도, 노랫소리는 여전히 들려오고 있다.
분노라도 담긴 듯이, 점점 더 선율이 격해진다.
어째서 꺾이지 않는 거지?!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으니까.
내가 몇 번이나 그 꿈들을 꾸고, 이 기억들을 떠올렸다고 생각하는 거냐?
이 정도 악몽에 꺾일 거였으면 벌써 옛날에 목 매달았어, 등신아.
하, 내성이 있다는 건가? 퍽이나 자랑스러운 인생이구나!
그래, 좋아. 네놈에겐 특별히 진창 같은 행복을 선물해주마.
……노랫소리가 다시 커져간다.
진득한 선율이 몸 속을 꿈틀거리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마구 헤집어대는 느낌에, 또 다시 눈앞이 핑 도는 것 같다.
중심을 잃고 기울어지는 몸을, 돌연 나타난 억센 힘이 꽉 붙들어 세우는 게 느껴졌다.
빙빙 도는 시야를 가까스로 가다듬자, 나를 걱정스레 올려다보는 메린의 얼굴이 바로 보였다.
괜찮아? 얼굴빛이 안 좋아. 열은 안 나는 거 같은데……. 낚시는 됐고, 그냥 쉬어.
늘 그랬듯이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메린은 자신의 무릎 위에 내 머리를 눕히더니, 손을 뻗어 내 눈을 덮었다.
그 손바닥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싱그러운 향을 품은 바람이 살랑거리며, 뺨을 부드러이 쓰다듬고 지나간다.
무척이나 편안한 기분인데……
나한테 이런 기억이 있을 리가 없는데 말이지……?
또 쓸데없는 생각하고 있네. 슐 언니한테 이른다? 데이트 중에 딴 생각했다고.
데이트……?
그게 뭔…….
아~아, 그래, 넌 그냥 낚시하러 온 거지. 진짜 변하질 않는다니까.
투덜거리는 듯한 목소리 뒤에, 메린은 작게 웃으면서,
……그래서 좋아.
귓가를 간지럽히듯 속삭인 뒤, 가볍게 입술을 포개어왔다.
달콤한 향취가 입 안으로 흘러들어와, 머릿속에까지 자욱이 퍼지는 듯했다.
너는……
손가락 틈으로 비치는 얼굴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야릇한 미소를 띄웠다.
내가 뭐? 후후…….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 같다.
생각을 제대로 붙잡을 수 없다.
마주 포개어진 입술에서, 아니, 그녀의 입술이 닿는 곳마다 열이 피어나서 온 몸으로 퍼져간다.
힘이, 점차 빠져간다.
소리 참는 거야? 어차피 여기 아무도 안 오는데. 너랑 나 둘밖에 없잖아.
웃음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나를 더듬던 손길이 점점 아래로 내려간다.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자, 그녀가 재미있다는 듯이 쿡쿡 웃으며 한결 더 깊은 입맞춤을 해온다.
……이건 아니야.
잘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위험하다고 직감이 마구 외치고 있다.
그와 함께, 그냥 이 행복에 몸을 맡겨버리라고 유혹하는 속삭임이 들려온다.
상반된 속삭임이 한데 울려와, 머릿속이 더더욱 몽롱해진다.
그녀가 혀를 얽어오는 감촉에 등골이 저릿해지며, 나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린다.
기분 좋지? 괜찮아. 걱정하지 마. 아무도 방해 안 할 테니까. 아니, 이젠 걱정할 게 아무것도 없구나. 전부 다 끝났으니까 말야.
끝났다고……?
아니, 아직 여행이……
무슨 소리야? 여행 다 끝난 지가 언젠데? 용사로서 할 일 다 끝내고 다시 돌아왔잖아. 나 참, 지난주에 결혼식까지 올려놓고! 어…… 진짜 어디 아픈 건 아니지? 그냥 잠깐 까먹은 거지?
타박하던 그녀의 목소리에 염려가 섞인 게 느껴진다.
나지막이 내 머리를 쓰다듬는 그녀의 주홍빛 눈동자는, 오로지 내 얼굴만을 비추고 있다.
용사의 일을 전부 다 끝내고 다시 돌아와서……
결혼식을 올렸다고……?
그렇게 되뇌는 순간,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던 것처럼 기억들이 하나하나 떠오르기 시작했다.
고향으로 돌아온 우리를 환영하는 사람들,신부복을 입어 한층 더 아름다워진 그녀, 신방에서 새로이 맞이한 달콤한 밤…….
아 참, 그랬었지.
그렇게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고 싶을 만큼 선명한 장면들이었다.
………그렇구나.
이건……
가만히 손을 뻗어, 걱정이 가득 담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뺨을 쓰다듬는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그대로 손바닥에 전해진다.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내 손바닥에 얼굴을 부비는 그녀는, 여전히 귀엽기 그지없다.
……사랑해, 메린.
응. 나도 사,
푸욱.
풀어져 있던 그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그 입은 채 끝맺지 못한 말을 마저 자아내는 대신, 벌컥벌컥 피를 뿜기 시작한다.
달빛 서린 바다와 같은 검푸른 피를 토하며, 그녀가 멍하니 시선을 내린다.
자신의 가슴을 꿰뚫고 있는 널찍한 성검의 날을, 그리고 그 자루를 잡고 있는 나를 차례로 바라본다.
어…째서……?
어째서, 속지 않는 거지……?!
……이거 내 꿈이잖아.
내가 죽는 순간까지 꿀 꿈.
그리고 메린은 그런 말 안 해, 등신아.
‘나도 사랑해’라니…….
아무리 꿈이라 해도 그렇지, 가짜 주제에 감히 그 말을 먼저 입에 올리려 해?
이건, 네놈이 바라마지 않는 꿈일 터……!
그런데 어째서 거부하는 것이냐……!
어떻게 뿌리칠 수 있느냔 말이다……!
쩌적.쩌저적.
금이 가는 듯한 소리가 울리기 시작한다.
지겹게 들려오던 노랫소리는, 어느새 뚝 그쳐 있었다.
어째서어어……!
……이건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절대로 이룰 수 없고, 이루어져서도 안 되는 꿈이니까.
그를 위해 그녀와 약속했고, 나 자신과 굳게 맹세했다.
마지막 순간, 이 손으로 그녀를 죽여주리라고.
고마워, 카스피 왕녀.
좋은 연습이 되었어.
네놈……!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부릅뜬 채, 검게 물들어가는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나는 입을 열었다.
“꿈에서 깨어날 때다.”
파아아—!
무언가 산산조각이 나는 소리와 함께, 환한 빛이 눈을 덮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