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8화 〉 338화 : 쟤가 성녀라고?! (2)
* * *
힘차게 달리던 수레마차가 멈춘 곳은 영주의 성 앞마당이었다.
내가 바닷속에 끌려가기 전엔 앞마당에 물이 찰랑이고 있었는데, 그동안 물이 다 빠졌는지 질척한 진흙바닥이 드러나 있었다.
성문 근방만 해도 아직 물이 남아있는데, 여기 기반이 높긴 높은가보다.
아마 폭풍이 그친 게 한낮이라는 것과, 지금 시기가 한여름인 것도 물이 빨리 없어지는 것에 한몫 했으리라.
“다 왔어, 내려!”
블루벨은 말이 멈추자마자 짐칸으로 뛰어 건너오더니, 대뜸 나와 메린의 손을 하나씩 잡고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등을 떠밀면서 마구 채근하기 시작했다.
“내려내려내려, 아, 얼른 내리라니까? 이러다 사람들 따라잡을라, 빨리 내려!”
“아, 알았어알았어, 알았다고, 밀지 마!”
뭐가 뭔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우선은 마을 사람들을 피하고 봐야 한다.
하지만 메린은 아직 충격에서 다 헤어나오지 못한 듯했다.
짐칸에서 내려오긴 했지만, 블루벨이 빨리 움직이라고 성화를 부리며 등을 밀어야 할 정도로 터덜터덜 움직이고 있었다.
……안 되겠다.
“블루벨, 이거 좀 들어줘.”
우리 두 사람의 검을 풀어 블루벨에게 맡긴 다음, 메린을 등에 업었다.
어디로 갈지는 모르지만, 십중팔구 위층으로 올라갈 터.
이 성은 한 층을 올라갈 때의 계단 숫자가 꽤 많으니, 메린을 팔에 안아들고 가는 건 조금 심각하게 무리가 있었다.
“어디로 가야 돼?”
“이쪽이야!”
검 두 자루를 들고 앞장서는 블루벨을 따라, 빠른 걸음으로 성 안을 걷기 시작했다.
긴 복도를 걷고, 계단을 빙글빙글 돌면서 올라간 다음, 걷고 또 올라가고 다시 걸어갔다.
그동안 메린은 그저 내 목을 감싸고 있을 뿐,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귓가에 들리는 얕은 숨소리엔 불안해하는 기색이 묻어 있지만, 그래도 조금 전처럼 몸을 떨고 있지는 않다.
아마 그 사람들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아서 좀 진정이 된 거겠지.
“여기 들어가면 돼!”
블루벨이 문 하나를 열고서 얼른 오라며 손짓했다.
왠지 문이 좀 큰 거 같은데…….
아, 몰라, 괜찮겠지!
슬슬 다리가 풀리려 하는 것도 있어서, 나는 서둘러 문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상당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침대였다.
크기가 큰 건 차치하고, 무려 이불에 금실로 자수가 놓여 있었다!
그 다음에 옷장, 커다란 거울, 책상, 티 테이블에 벽난로 등등이 차례로 보였다.
그 외에도 덩굴 무늬가 그려진 벽지가 발라져 있질 않나, 커다란 창엔 두툼한 벨벳 커튼이 달려있질 않나…….
누구 방인지는 몰라도 꽤나 호화스러운 침실이었다.
……아차, 멍청하게 서서 감상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곧바로 침대에 다가가, 메린을 앉혀 주었다.
“휴우…….”
등이 가벼워진 덕에 여유가 생겨, 다시 방을 살펴보았다.
이제 보니 티 테이블엔 음식이 차려져 있고, 옷장 근처엔 우리 두 사람 각각의 배낭이 놓여 있다.
아무리 봐도 여기 묵으라는 분위기인데.
철커덕.
“……?”
왜……
문이 잠기는 소리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에 숨을 삼키며 문 쪽을 돌아보았다.
블루벨이 이마의 땀을 훔치며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한 손에 열쇠를 들고서,
상당히 만족스러운 듯한 웃음을 띤 채.
……그 미소에 바짝 긴장이 들었다.
설마 또 해괴망측한 망상에 빠져 있는 건 아니겠지?
메린이 눈 뜨고 있는데, 여기서 갑자기 또 훌렁 벗으려 들었다간 말 그대로 끝장이야!
“너희 검은 저기 세워 뒀으니 까먹지 말고 챙겨. 자, 여기 열쇠.”
예상외로 블루벨은 무척 평범한 말을 입에 올리며 열쇠를 건네주었다.
이 변태 할망구가 오늘은 왜 이리 멀쩡하지?
……아아, 아니지, 이 할망구는 원래 이랬어.
좀 귀찮은 성격이긴 해도 그럭저럭 멀쩡한 축에 속하는 사람이었잖아.
어제는 날씨가 미쳐 돌아갔던 것처럼, 좀 많이 격하게 맛탱이가 갔던 것일 뿐이야.
기억에 좀 오래 남을 거 같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열쇠를 받았다.
“굳이 잠가야 돼?”
“만약을 위해서야. 물론 우리 말고 다른 사람들은 여기 못 올라오게 막을 건데, 한두 명은 꼭 보초 눈을 피하기 마련이잖니?”
아까 봤던 피난민들을 떠올려 보았다.
음…… 몇몇은 특히나 더 열정적으로 메린에게 환호했던 거 같아.
문을 잠그는 게 낫긴 하겠군.
“근데 댁은 어떻게 나가려고?”
“나? 당연히 테라스이지. 뭘 뻔한 걸 묻고 그러니?”
“하나도 안 뻔하니까 묻지! 하…… 어디 딴데 가서 그런 소리하지 마. 괜히 오해받는다.”
엘프인 블루벨은 돌이나 나무처럼 딱딱한 자연물이라면 각도 상관없이 서 있을 수 있다.
수직으로 곧게 뻗은 돌벽과 나무도, 그냥 평평한 땅을 걷듯이 걸어서 오르락내리락 할 수 있는 것이다.
어째서 생물인 나무에게도 그 특성이 적용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블루벨은 테라스로 나가서 돌벽을 걸어 내려가면 된다고 말한 것이었다.
……근데 방금 그 말을 생판 모르는 사람이 들어봐.
십중팔구 블루벨이 도둑이라서 벽 타는 버릇이 있다고 생각하겠지!
괜한 오해를 받는 것만큼 짜증나는 건 없으니, 말하기 전엔 한 번 더 생각해보고 해야 한다.
그러나 블루벨은 내 말에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내가 그거 구분 못하는 바보인 줄 아니? 쓸데없이 잔소리하지 말고 메린이나 챙겨. 많이 놀란 거 같던데.”
“말 안 해도 할 거다. 근데 블루벨, 그동안 뭔 일이 있었길래 다들 갑자기 저래? 왜 메린을 성녀라고 부르는 거야?”
그녀 역시 이유를 알 수 없는지, 눈썹을 위로 올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몰라. 인간 일이니까 인간에게 물어봐. 키 큰 사제가 점심 즈음에 너랑 의논하러 오겠다고 했으니 그때 물어보면 되겠네.
일단 쟤가 고래를 베는 걸 본 다음부터 분위기가 이상해지기 시작한 건 확실해.”
키 큰 사제…… 알스 사제를 말하는 건가?
달리 키가 크다고 할 만한 사람은 없으니 맞겠지, 뭐.
점심 즈음이면…… 정오에서 오후 한 시 사이에 온다고 생각하면 되겠군.
방에 걸린 벽시계를 보자, 이제 막 오전 다섯 시를 가리키고 있다.
쉴 시간을 넉넉하게 준 건 무척 고마운 일이긴 하다.
근데 티 테이블에 간단한 식사가 차려져 있는 그렇고, 굳이 방에 찾아온다는 것도 그렇고…….
나는 작게 한숨을 쉬며 블루벨에게 말했다.
“사제님이 오실 때까지 쭉 방에 있으라는 거구나.”
블루벨은 나를 따라하듯이 한숨을 푹 쉰 후,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너도 아까 봤잖아. 괜히 나갔다가 안 좋은 꼴만 볼걸? 저 사람들이 메린한테만 그러겠니? 너희 둘이 가까운 사이인 거 다 아는데, 널 가만 두겠어? 네 고질병 고치는 훈련 하고 싶으면 나가든가.”
“……”
“괜히 생고생하지 말고 그냥 여기 얌전히 있어. 피곤도 안 풀렸을 거 아냐. 저기 욕조 있으니까, 그냥 목욕하고 잠이나 자.”
블루벨이 가리킨 쪽엔 길다란 칸막이가 펼쳐져 있었다.
아마 그 뒤에 욕조가 있는 거겠지.
그 근처엔 커다란 항아리가 하나 놓여 있는데, 거기 물을 담아뒀다는 듯했다.
“찬물이겠지만 뭐, 여름이니까 괜찮지?”
“응, 괜찮아. 고마워, 블루벨.”
“난 그냥 들은 거 전했을 뿐이야. 그런 말은 딴 사람한테나 해.”
블루벨은 관심 없다는 듯이 손을 휘휘 내저으며 테라스로 향했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으며, 배웅하듯이 그녀를 따라가며 말을 건넸다.
“아니, 딴 거 말야. 꼭두새벽부터 마차 끌고, 검 들어주면서 방까지 데려와준 거 고맙다고.”
“……흥, 알면 됐어. 그래도 착각하지 마! 나 편하려고 한 거지, 너희 위해서 한 게 절~대 아니니까!”
“그래그래, 당연히 그렇겠지.”
“너나 메린이 이상해지면 나만 괜히 힘들어질 거 같아서 한 거라고! 알아들어?!”
“아, 그럼 물론이지. 아주 잘 알고 말고.”
“……흥!”
그렇게 평소처럼 콧방귀를 뀌면서 고개를 홱 돌린 뒤, 블루벨은 곧장 테라스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나 참, 그냥 솔직하게 감사인사 받고 뿌듯해하면 어디가 덧나나?
꼭 저렇게 괴상한 핑계를 댄다니까.
저것도 고질병이야, 고질병.
‘남 말하긴.’
……시끄러, 임마, 내가 언제 그랬다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속삭임에게 일갈하면서, 메린에게 돌아가려고 발걸음을 막 돌리려 했다.
그러던 찰나, 갑자기 찰칵 소리가 나며 테라스 문이 살짝 열렸다.
그 문틈으로 빼꼼 고개를 내민 블루벨은, 무언가 불만이 있는 것처럼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 까먹었어?”
“……그, 별 건 아니고.”
운을 뗀 뒤에도 한참을 여기저기로 시선을 움직이던 그녀는, 이내 작게 한숨을 쉬더니 바닥을 보면서 웅얼거리듯이 말했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너희 둘 다.”
“……”
“그게 다야. 간다. 잘 쉬어.”
찰칵.
블루벨은 단숨에 말을 쏟아버린 뒤, 곧바로 문을 닫고 모습을 감춰버렸다.
……나 참, 진짜 웃긴 엘프야.
답 인사도 안 듣고 그냥 가버리네.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 발작이라도 나나?
쓴웃음을 지으며, 멀거니 침대에 앉아 있는 메린에게 향했다.
그 옆에 앉아 머리를 쓰다듬자, 메린이 어깨에 기대오면서 중얼거렸다.
“……내가 고래 벤 다음부터 이상해졌대.”
“응. 들었어.”
“……내가 잘못한 거야?”
“절대 아니야. 너 잘못한 거 없어. 그런 생각하지 마.”
메린이 폭풍고래를 베는 걸 다들 어떻게 본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활약을 보고서 저렇게 더 열광하게 된 모양이다.
왜 저 따위가 된 건지는 진짜 이해가 안 되지만.
……어쩌면 생각 좀 하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피곤해서 머리가 잘 안 돌아간다.
아까 졸아서 기운 좀 차렸던 걸, 이 방에 오는 길에 탈탈 털어서 써버린 탓이다.
아마 메린도 비슷하겠지.
너무 놀라고 당황해서 기운이 쪽 빠져버렸을 거야.
그럴 땐 전부 다 때려치고 잠이나 자는 게 최고다.
“메린, 지금은 그냥 쉬자. 딴 생각은 하지 말고, 그냥 저기 차려진 거 좀 먹고, 시원하게 목욕한 다음, 같이 푹 자는 거야. 응? 그렇게 하자.”
어깨에 기댄 메린과 머리를 맞대면서 속삭이자, 이내 그녀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게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일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살짝 엿본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쉬자니까 그러네.
나는 그녀가 길게 땋아 내린 머리의 끝부분, 가닥이 풀리지 않도록 묶어놓은 리본을 풀어버렸다.
그런 뒤, 헐렁헐렁해진 가닥들이 완전히 풀어지도록 손으로 슬슬 빗어주었다.
메린은 내가 하는대로 내버려두면서도 의아한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왜 푸냐고? 쉴 거니까. 굳이 묶고 있을 필요 없잖아?”
대꾸하면서, 곧게 풀어진 머리 한 줌을 손바닥에 담고 쓸어내렸다.
매끄러우면서도 보드라운 감촉이 사르르 흘러내리는 느낌에, 입꼬리가 절로 씰룩였다.
하루종일 만져도 안 질릴 거 같아.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지.
그녀의 머리를 계속 만지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며, 나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다음, 메린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그새 조금 더 마음이 풀어진 건지, 메린의 얼굴은 엷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옷부터 갈아입을래? 저기 배낭 갖다 놨더라.”
“으응…… 아니, 뭐 먹고 할래. 갑자기 엄청 배고파.”
“그래, 그럼.”
곧바로 티 테이블에 마주앉아서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노란 빵 사이에 햄과 치즈를 끼우고 구운 샌드위치, 작은 생선이 꽂혀 있는 괴상한 파이, 옥수수와 으깬 감자로 만든 샐러드. 그리고 고소한 향을 풍기는 옥수수차.
그저께 여관에서 먹었던 음식들과는 또 다른 맛에 감탄하며, 설거지가 필요 없을 정도로 아주 싹싹 긁어먹었다.
그 뒤엔 제법 큰 욕조에서 같이 목욕을 하고, 실내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나란히 침대에 누웠다.
구름 위에 누운 것처럼 푹신한 침대에, 품 안에 담긴 따스한 온기.
잠에 빠지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포근함이 온 몸을 감싸는 듯했다.
완전히 그에 가라앉기 전, 살며시 눈을 뜨고 메린을 살펴보았다.
얼굴에 약간 남아있던 불안감은 잠시 침대맡 협탁에 두었는지, 무척이나 편안한 얼굴로 자고 있었다.
하지만 이따 깨어나면 표정이 다시 흐려지겠지.
자신을 성녀라고 불러대는 미친 사람들 때문에, 도로 불안해하고 어쩔 줄을 몰라 할 것이다.
저지르지도 않은 잘못 때문이라 생각하며 울적해할지도 모르고.
“……괜찮아, 메린.”
그녀가 깨지 않도록, 거의 입만 달싹이는 수준으로 속삭였다.
자느라 듣지 못할 걸 알지만, 꼭 말로 전해두고 싶었다.
“내가 꼭 지켜줄게.”
넌 날 항상 몬스터에게서 지켜줬지.
이번엔 내 차례야.
내가 널 사람들에게서 지켜줄게.
네 마음에 생채기 하나 못 내도록 할게.
반드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러니 안심하고 자.”
속삭이면서 더욱 더 깊이 껴안았다.
곤히 잠든 그녀의 얼굴이 희미하게 미소를 짓는 것처럼 보였다.
한숨 자고 일어난 뒤, 알스 사제가 올 때까지 시간도 때울 겸해서 어제 못한 기록을 하기로 했다.
잠 다 깼으면서도 침대에서 뒹굴거리는 메린에겐, 아직 다 못 읽은 동화책을 읽으라고 시켰다.
이따금 단어 뜻을 묻는 메린에게 답하며 깃펜을 놀리다가 시계를 힐끗 보니, 그새 막 정오가 되려 하고 있었다.
이야, 진짜 시간 빨리 가네.
속으로 감탄하는 동안, 시계의 두 바늘이 12를 척 가리켰다.
똑똑.
그러자 곧바로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이 시간에 찾아올 만한 사람은 딱 하나였다.
“카엘 님, 해석사제 알스입니다. 일어나 계시는지요?”
역시 알스 사제였군.
점심 즈음에 오겠다더니 그냥 정오에 딱 맞춰왔네.미리 도착해선 휴대용 시계 들여다보고 있던 거 아냐?
괜히 율리아 공주를 보좌하던 사람이 아니다 싶었다.
서둘러 문으로 가서 열려는 순간,
똑, 똑또독독.
“카엘 님~ 모래성 쌓을래요~?”
“……”
로나 녀석의 괴상한 호출과 노크에 손이 우뚝 멈춰버렸다.
뭐지? 갑자기 문 열기가 싫어졌어.
왠지 계속 문 꽉 닫아 두어야 할 거 같은 기분이야!
……그래도 열어야지. 할 일을 해야 되잖아.
나 자신을 다잡으며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얏호~ 안녕하, 우읍! 읍읍!”
무언가 인사를 하려던 로나의 입을 틀어막아버리며, 알스 사제가 빙그레 웃는 얼굴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카엘 님. 저희 로나가 헛소리를 해대서 죄송합니다. 철퇴 찾는다고 돌아다니다가 더위를 먹은 모양이에요.”
“저런.”
“푸학, 전투사제는 더위 안 먹거든요?!”
빽 소리지르는 로나의 등에는 아직 전투망치가 짊어져 있다.
아직도 철퇴 못 찾았나보군.
그냥 포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데.
알스 사제는, 옆에서 투덜거리는 로나의 말을 날려버리듯이 손부채질을 하며 나를 보았다.
“귀…가 뾰족한 엘프분이 말씀하셨겠지만, 여러 의논드릴 게 있습니다. 지금 괜찮으신가요? 아니면 좀더 있다가 다시 오죠.”
“아뇨, 괜찮아요. 들어오세요.”
그렇게 말하면서 옆으로 비켜서자, 끼릭끼릭 소리가 나더니 여러 음식이 담긴 카트가 맨 먼저 지나갔다.
그 뒤를 따라 알스 사제, 테레지아, 로나 그리고 위슨이 차례로 문지방을 넘어 안에 들어왔다.
알스 사제는 티 테이블 근처에 카트를 세워두고, 나를 돌아보며 먼저 말을 꺼냈다.
“원래는 이 성의 식량창고나 앞으로의 계획을 상의할 생각이었는데…… 큰 골칫거리 하나가 생겨버렸습니다.”
그는 내가 테이블에 앉을 때까지 기다린 뒤, 자리에 앉지 않고 꼿꼿이 선 채로 이어서 말했다.
“검의 성녀. 그를 열렬히 숭배하는 자가 엄청나게 발생해버렸어요.”
“……”
“어찌 생각하십니까? 카엘 님.”
메린을 힐끗 바라보며 읊조리던 알스 사제의 시선이 다시 나를 향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야 돼.
그의 무감정한 눈길을 마주하며, 무릎에 올린 손을 꽉 쥐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