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349화 (349/475)

〈 349화 〉 339화 : 쟤가 성녀라고?! (3)

* * *

하나같이 ‘성녀’라 부르더니, 정식 명칭은 ‘검의 성녀’인 모양이다.

메린의 주 특기를 그대로 담은 호칭이긴 한데, 왜 하필 성녀야?

달인이라 해도 되고, 좀더 멋을 들여서 여제라 해도 되잖아.

왜 하필 성녀라고 부르면서 저렇게 열광을 하냐고.

신의 기적을 보인 적은 단 한 번도 없는데!

조용히 심호흡을 한 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은 알스 사제에게 대답했다.

“전혀 이해가 안 돼요. 왜 쟤를 성녀라고 생각하는 거죠?”

“메린 님은 폭풍고래를 물리치셨죠. 그게 이유입니다.”

알스 사제는 담담하게 말하면서, 카트에 실린 요리들을 티 테이블로 하나하나 옮기기 시작했다.

노란빛의 납작한 빵, 노란빛의 수프, 노릇노릇하게 구운 이름 모를 생선, 커다란 찻주전자에 노란빛 쿠키.

생선 빼고 죄다 노란색인 점심 식사메뉴에, 눈을 두 번쯤 크게 끔뻑거려야 했다.

뭐, 배를 채울 수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지.

게다가 지금은 밥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 상황이다.

나는 그를 도와서 테이블 구석에 쌓아둔 빈 접시들을 치우면서 입을 열었다.

“……블루벨에게 듣기는 했어요. 메린이 폭풍고래를 베는 걸 다들 본 다음부터 이상해졌다고. 애초에 그걸 저 사람들이 어떻게 본 거죠?”

피난민들은 전부 평범한 인간이다.

고래 잡으러 가려고 우리가 뛰어내렸던 그 절벽 끝에 오지 않는 이상, 메린이 고래를 베어버리는 광경을 보는 건 불가능해.

게다가 놈을 베겠다고 결심하고서 실행에 옮기기까지는, 오 분도 채 안 걸렸어.

사람들이 앉아 있던 곳에서 절벽까지 오는 데만 십 분은 족히 걸릴 거야.

애초에 ‘메린이 곧 굉장한 업적을 이룬다’고 알릴 수도 없었고!

그런데도 사람들은 녀석의 활약을 목격했다.

어떻게?

­­아, 우리만 보는 것도 아까웅께…… 흐흐, 아주 좋은 그림이 될 거여!

그때 그 자리에 있던 엘크가 낄낄거리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던 게 기억이 난다.

위슨의 정령인 엘크가 말이지……!

나는 태평하게 노란빛 빵이 쌓인 접시를 돌리고 있는, 굉장히 낯짝이 두꺼운 마법사를 빤히 쳐다보았다.

“정말로…… 어떻게 봤을까……?”

“……지금 시선으로 압박하는 거에요? 형, 눈매 엄청 더럽네요.”

범인 녀석은 표정을 약간 찡그리면서도 자신 몫의 빵을 뜯기 시작했다.

빵 조각을 입에 문 채로 수프를 덜기도 하는 등, 상당히 편안하게 식사를 즐기고 계셨다!

……후후후, 저렇게까지 당당할 줄이야. 진짜 크게 될 녀석인걸?

너무 감탄스러워서 머리가 막 지끈거리는 거 같아.

그보다 딱밤 한 대만 딱 때렸으면 좋겠어. 왠지 약올라!

“하…… 됐고, 불기나 해.”

“일단 전 진짜 혼자 보려고 했어요. 맹세할 수 있어요.”

위슨은 나보고 마음에 새기라는 듯이 힘주어 운을 떼고서, 이번 사건의 경위를 쭉 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등장한 건 역시나 엘크였는데, 그가 좋은 구경이 있다면서 자고 있던 위슨을 깨운 것이었다.

그래서 위슨은 물과 불의 힘을 빌려, 엘크의 시야를 그대로 비추는 거울을 만들어냈다.

근데 그걸 지나가던 한 아이가 봐버렸고, 그게 바로 이번 사건의 발단이었다.

아이는 위슨에게 그게 뭐냐고 물었고, 그는 별 생각없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알려준 다음, 아이와 함께 메린의 활약을 지켜보았다.

아이는 잔뜩 흥분한 채 부모에게 돌아가서 자신이 본 걸 전했는데, 평원에 메아리가 울릴 정도로 소리가 꽤 컸다는 듯했다.

그리고 잠시 후, 어른 여럿이 위슨을 찾아와서는 아이의 말이 사실인지 물었다.

녀석은 눈을 멀뚱거리면서도, 메린이 고래를 잡은 게 맞다고 확인해주면서 폭풍고래 사체를 보여주었다.

얼마 안 가, 나무그늘에 모여 앉아 있던 사람들 사이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잠깐 끊겼어요. 병사들이 찾아왔거든요. 그리고 에코가 그러는데, 그때까지는 굉장하다는 말밖에 안 나왔대요.”

“그럼 언제 ‘굉장한 검사’에서 ‘검의 성녀’로 바뀐 거야?”

“사제님이 알스 사제님에게 이야기한 다음부터요.”

위슨의 고갯짓을 따라, 자연히 로나에게 눈길이 돌아갔다.

수프에 빵을 적셔서 오물거리던 로나는, 내 눈길을 받고서 어깨를 으쓱였다.

“왜요? 알려야 되잖아요.”

“너 설마 고래 잡은 얘기까지 다 한 거야? 나랑 쟤가 끌려간 것만 말하면 되잖아.”

“그치만 메린 님이 폭풍고래 벤 건 정말 멋졌는걸요! 그걸 어떻게 이야기 안 하고 배겨요? 카엘 님이라면 참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아니.”

절대 못 참지.

당시엔 메린이 잘못될까봐 조마조마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진짜 장난 아닌 광경이긴 했어.

어째서인지 별처럼 빛나는 커다란 뼈칼을 들고, 시커먼 산 같은 폭풍고래가 입을 쩍 벌리고 있는 걸 그대로 쫙 쪼개버린 거다.

그걸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다 봤으니, 나였어도 주변 사람 붙잡으면서 자랑하고 떠들었을 거야.

인정할 건 솔직히 인정해야지.

아무튼 수수께끼는 풀렸군.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평화롭게 빵을 먹고 있는 두 애새, 아니 두 소년소녀에게 빙긋 웃었다.

“어쨌든 너네 덕에 큰일이 난 거였구나. 참 잘했다, 새끼들아.”

“헤헤, 뭘요.”

“……사제님, 그러다 또 딱밤 맞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헤실헤실 웃으며 수프를 호로록 마시는 로나는, 어처구니없는 걸 넘어서 귀엽기까지 했다.

이마에 혹으로 된 탑을 쌓아주고 싶을 정도로.

뭐, 나중에 그럴 기회는 얼마든지 있겠지.

지금은 두 녀석이 피운 불씨가 이렇게까지 큰 불길이 되어버린 원인을 파악하는 게 더 먼저야.

로나와 위슨이 발단이긴 하지만, 그래도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게 아니었으니까.

로나는 이야기에 쓸데없이 군살을 붙일 성격이 아니야.

말투는 몰라도, 내용엔 아무 과장도 들어있지 않았을 거다.

……그래서 더 모르겠어.그 사람들이 뭘 장작으로 삼고서 활활 불타고 있는 건지.

대체 로나의 이야기에서 뭘 찾아낸 거야?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가닥을 잡을 수 없어서, 나는 알스 사제를 다시 바라보았다.

“도무지 모르겠어요. 폭풍고래를 잡은 게 대단한 건 알아요. 근데 그게 어떻게 쟤가 성녀라는 결론이 나온 거죠?”

말을 마치면서 힐끗 쳐다본 메린은, 침대에 걸터앉은 채 빵을 와작와작 씹고 있다.

펑퍼짐한 실내복 차림에, 남자처럼 한쪽 다리를 접어서 발을 무릎 위에 올린 채로.

진짜 다들 단체로 환각버섯이라도 처먹은 거 아냐?

대체 저 녀석의 어디가 성스럽다는 거야?

물론 저렇게 입가에 빵 부스러기 묻어 있는 얼굴도 귀엽고, 조금만 꾸미면 내로라하는 미녀들이 죄다 숨어버릴 만큼 엄청 예쁘긴 하지만, 성스러운 거랑은 모래알과 바위산만큼이나 차이가 있다고!!

……아, 설마 성적 매력이 넘친다고 성스럽다고 말장난 깐 건 아니겠지?

왠지 한둘은 그딴 생각하고 있을 거 같아.

걸리기만 해봐, 대가리 쪼개버릴 테다……!

굳게 다짐하는 내 귀에, 알스 사제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슈아 님과 똑같은 일을 해냈기 때문입니다.”

“………네?”

최초의 대언자와 같은 일을 해내서 그렇다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 분은 돌려차기로 대가리를 깨부숴버렸잖아.

메린은 검, 정확하게는 그 분이 깎아 놓은 뼈칼로 썰어버린 건데, 그게 어떻게 같아?!

“아니아니아니, 그게 왜 같은 취급을 받아요?! 조쉬 님은 진짜 불가능을 이루는 기적을 보인 거고, 메린은 어쨌든 이론상 가능한 일을 한 건데!”

“네, 맞아요. 절대 같은 선상에서 볼 수 없는 일이죠.”

작게 한숨을 쉬면서, 알스 사제는 작은 접시에 구운 생선살을 덜어서 나에게 건넸다.

얌전히 받아들고 생선살을 덥썩 입에 넣자, 그가 살짝 누그러진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근본적으론 두 위업이 동일하긴 하거든요.”

“근본……?”

“두 분 다, 일반인은 할 수 없는 방법으로 폭풍고래의 머리를 노려서 물리쳤어요. 게다가 메린 님이 쓰신 뼈칼은 성물이었습니다. 그걸 자유자재로 휘둘렀으니, 이렇게 생각할 법도 하죠.”

최초의 대언자인 조슈아처럼, 창조주의 선택을 받은 것이 아닌가?

그러니 아무나 쓸 수 없는 성물로, 저 사악한 짐승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녀 혼자서만 그렇게 막강한 힘을 지닌 걸 설명할 수가 없다.

스스로를 납득시킬 방법이 없는것이다.

“또, 메린 님은 이미 전적이 있죠? 신전으로 날아오는 어선을 검으로 쓱싹 자르는 걸로 힘을 보이신 적이 있으니, 더더욱 믿을 수밖에요.”

“아니, 그게……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그래도 어떻게……!”

“사람의 사고방식은 꽤나 재미있어요. 사고의 골자가 ‘의심’이라서, 개개인을 납득시키려면 애를 좀 써야 하죠. 하지만 이게 집단이 되면, 설득의 난이도가 대폭 내려가버립니다.”

집단일수록 설득하기 쉽다고?

왜……?

“그리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에요, 용사님.”

고개를 갸웃하는 나에게 답한 건, 조용히 수프를 마시고 있던 테레지아였다.

“사람들은 주변이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면 ‘그게 옳다’고 생각하기 마련이에요. ‘다들 그러더라’는 말처럼 쉬우면서 강력한 설득은 몇 안 된답니다. 일단 그렇게 설득되어버리면, 아무리 확실한 근거를 들이대더라도 ‘내 이웃이 거짓말했을 리가 없다’면서 믿지 않고요.”

그리고 귀족들처럼 그 힘을 적극 활용하는 족속은 없다.

테레지아는 그렇게 덧붙이면서 일순 험악한 표정을 지었지만, 금방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조용히 수프를 마셨다.

아무래도 사람들의 입방아 때문에 고생한 적이 있는 듯했다. 가엾기도 하지.

아무튼 알스 사제와 테레지아의 말대로라면……

“……누군가가 메린이 창조주께 선택받았다고 떠든 게, 사람들 사이에 퍼진 거다?”

“어쩌면 더 가벼웠을 수도 있어요. ‘왠지 그 대언자님이 생각나지 않아? 왜, 있잖아. 돌려차기로 폭풍고래를 물리친 분.’ 같은 식으로요. 소문의 시작점은 항상 하찮은 법이에요.”

“………”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테레지아가 콧소리를 내며 남이 말하듯 연기한 게 경악스러워서 그런 건 아니다.

그러면?

상식을 넘어선 괴현상에 기가 막혀서?

……아니, 반대야.

이 일이 극도로 상식적인 범위에서 일어난 거라는 사실에 등골이 오싹해져서, 말문이 얼어붙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 아마 그렇게 일이 흘러간 걸 거야.

가까운 사람끼리 떠든 가벼운 농담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부풀려진 거지.

계속 사람들 틈을 돌면서 점점 살이 붙고 확신이 더해진 끝에, 결국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확고한 진실로서 완성돼버린 것이다.

“……”

……일순 눈앞이 핑 도는 듯한 느낌에, 하마터면 접시를 떨어뜨릴 뻔했다.

눈두덩이를 누르며 찻물로 목을 축인 후,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다시 말을 꺼냈다.

“알스 사제님……사제님은 이게 큰 골칫거리라고 하셨죠. 율리아 님에게 그렇다는 건가요?”

“천만에요. 주민들 스스로와 메린 님에게 문제가 됩니다. 처음에 언급했듯이, 저들 대다수가 진심으로 메린 님을 성녀라 믿고 숭배하기 시작했거든요.”

알스 사제는 빵 조각에 뭐가 묻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빤히 쳐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당신들 사람은 저희 사제들의 주인인 창조주의 자녀입니다. 창조주께선 사람에게, 이 세상을 좋을대로 바꿀 수 있는 권한과 힘을 주셨지요. 개개인의 힘은 크지 않지만, 한데 모이면 꽤 위력적입니다.”

세상을 좋을대로 바꿀 수 있는 힘.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장서관에서 들었던 게 떠올랐다.

나에게 걸렸던 끔찍한 마법의 원리를 설명할 때였었지.

그때 나를 도와줬던 친절한 사서……

마법사는 그 힘을 ‘인식력’이라 불렀었다.

­­지성체가 이 힘을 발휘할 때는, 단순히 감정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아요. 이미 있는 걸 변화시키고, 없는 걸 만들어내기도 해요.

믿는대로 세상을 틀어버린다.

마법사는 그에 대한 예시로, 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주 먼 옛날엔 요정이 날씨를 임의대로 바꾸고 만들 수 있었는데, 요정을 볼 수 없는 사람이 ‘날씨는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진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그 주장이 먹혀들면서 사람의 인식이 바뀌었고, 결국 날씨의 요정은 그 존재가 찢겨서 세상에 흩어져버리고 말았다는 이야기였다.

모든 지식이 모이는 장서관이기에 알 수 있는, 세상의 숨겨진 진실 중 하나이리라.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살짝 놀란 눈으로 본 것도 잠시, 알스 사제는 담담한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저들의 신심은 아직 변화를 일으킬 수준은 못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안심할 순 없어요. 이대로 저들이 다른 마을 사람들을 만난다면, 소문이 사라지긴커녕 전 왕국에 퍼져버릴 테고, 자연히 힘이 더 쌓일 겁니다.”

“초기에 진압했다면…….”

“소문은 절대 못 막아요.”

알스 사제는 무겁게 한숨을 쉬면서 내 중얼거림을 뚝 잘라버렸다.

“목격한 게 있고, 기반 지식이 있었습니다. 저들은 메린 님의 힘을 목격했고, 성물인 뼈칼로 폭풍고래를 물리쳤다는 걸 보거나 들었고, 먼 옛날에 창조주가 택한 대언자님이 폭풍고래를 물리쳤다는 걸 알고 있어요.근거 없는 뜬소문과는 차원이 다른 겁니다.게다가 소문은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더 강하게 퍼지고요.

카엘 님, 그나마 저희가 제어하고 유도해서 ‘창조주가 보낸 성녀’로 그친 겁니다. ‘태양의 힘을 가진 여신’이나 그 무녀, 또는 구세주가 될 수도 있었어요.”

……그거 완전 이단이잖아?!

여기 바로 앞에 앉아 있는 빨간 사제님을 부르는 안건 아냐!

자연히 던진 내 시선을 받고, 로나는 헤실 웃으며 말을 꺼냈다.

“오해하지 마세요~ 저희 전투사제는 다른 신을 믿는 걸 단죄하는 게 아니에요! 그 신을 경배한답시고 다른 사람을 사냥하고, 산제물로 바치는 걸 처단하는 거랍니다! 근데 그런 ‘만들어낸 신’을 섬기는 사람들은, 대개 악마의 속삭임을 듣게 된단 말이죠~”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순간, 조용히 숨어서 신앙을 이어가던 이단은 사교가 되어 바깥으로 썩은내를 풍기기 시작한다.

이윽고 그 악취를 맡은 창조주의 검이, 완전히 곪아버린 상처를 도려내러 찾아온다.

만들어낸 신의 자리를 차지한 악마와, 그에 홀린 신도들을 처단하러 오는 것이다.

……자칫하면 메린이 그 중심에 섰을 거라는 생각에, 목이 죄여서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그럼…… 저대로 내버려두면 어떻게 되는 거죠? 메린에게…… 진짜로 신성이 붙기라도 한다는 건가요?”

“신앙이 더 퍼지면 그럴 수도 있죠.”

“어떻게 방법이 없는 건가요?”

“예에, 물론 있습니다. 그걸 말씀드리고, 당신의 선택을 들으러 온 겁니다.”

호로록, 알스 사제가 차를 마시는 소리가 조용히 방 안에 울려퍼졌다.

왠지 모르게 초조해지는 그 잔향을 지워버리려, 나는 아주 약간 더 목소리를 키워서 말했다.

“제 선택이요? 제가 하자는 대로 하실 거란 건가요?”

“물론이죠. 당신은 용사, 즉 저희들의 주인이 세운 대행자이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알스 사제의 얼굴엔, 조금도 안심이 되지 않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