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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351화 (351/475)

〈 351화 〉 341화 : “몸에 새겨야지.”

* * *

미안해,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피곤해서 그렇다고 핑계 댄 것도 아니야.

나도 그것밖에 생각이 안 나서 그래.

왜 네가 가까이 오는 걸 막았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

알고 한 거 아니야. 정신이 드니까 그러고 있었어.

정말이야, 믿어줘.

너한테 싫증이 난 건 절대 아니야.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런 말들이 머릿속에 마구 떠오르고 있었다.

그걸 목으로 옮겨서 소리를 담고, 혀를 움직여서 말로 빚어낸 다음, 그대로 입 밖으로 내보내기만 하면 되건만.

나는 그 간단한 작업조차 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

바로 전까지 잘만 움직이던 혀가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키스를 퍼붓는다면 내가 차가워진 게 아니라는 게 바로 증명될 텐데, 몸이 얼어서 손끝도 까딱할 수 없다.

메린이 위에 올라타서 내려다보고 있는 것도 아니고,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높인 것도 아닌데.

“말하라니까? 그새 혀 말렸어? 말하는 거 까먹었냐?

……아하, 내 말에 찔렸구나? 그렇지? 그래서 말이 안 나오는 거야.”

말이 안 나오는 대신 고개라도 젓고 싶은데, 얼굴이 붙잡혀 있는 탓에 그럴 수도 없었다.

빨리 대답을 해야 돼.

안 그러면 메린이 더 무서워진다고……!

“아, 아니, 아니야. 아니야, 메린.”

“어. 네가 지금 거짓말하는 게 아닌 거 알아. 그러니까 왜 그러냐고 묻고 있잖아. 근데 왜 대답을 안 해?

야, 카엘, 네가 자꾸 이렇게 나오면 내가 뭔 생각할 거 같냐?”

눈동자에서 점차 온기가 사라져간다.

안 돼, 점점 화가 쌓이고 있어!

제발 목소리 좀 나와, 이 녀석이 혼자 더 오해하기 전에!!

“네가 몰라서 그렇지, 나한테 싫증이 나 있다고 보지 않겠냐고.”

“자, 잠, 잠깐. 잠깐만, 메린. 진, 으, 진정, 진정 좀 하게 해줘. 제발.”

겨우겨우 목소리를 짜내어 말을 전하자, 그녀가 눈을 깜빡였다.

“……뭐? 진정 좀 하게 해달라고? 보통 나보고 진정하라고 하지 않냐?”

“……”

그러게. 생각해보니까 좀 웃기네.

내가 지금 좀 진정이 필요하긴 한데, 그렇다고 그 말을 그대로 읊다니, 내가 진짜 정신이 나가 있긴 한가보다.

“너 진짜 이상해. 혹시 아프냐? 으응…… 열은 안 나는데.”

메린이 내 이마에 손을 짚으면서 중얼거리자,

­­열은 안 나는 거 같은데……. 낚시는 됐고, 그냥 쉬어.

……어제 꾸었던 꿈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바람이 살랑이는 숲 속에서, 메린이 아닌 메린에게 무릎베개를 받으며 깊이 입을 맞추었던 행복한 악몽.

메린을 배신했던 그 시간이 눈앞에 다시 펼쳐지고 있었다.

배신자. 넌 배신자야.

가슴속이 짓눌리는 듯이 아파왔다.

방금 들린 목소리가 나에게 속삭이면서 내장을 쥐어짜버리고 있는 듯했다.

배신자…….

그래, 난 배신자야.

내가 자신에게 싫증난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날 걱정해주는 애를, 눈앞에서 대놓고 배반한 쓰레기라고.

하지만 그건……

이유가 무슨 상관이야?

배신은 배신이잖아.

그래도……

가짜가 변신한 거란 걸 바로 못 알아차렸어.

사랑한다며? 그럼 바로 눈치챘어야지!

나는……

자격이 없어.

그녀 옆에 있을 자격도, 걱정을 받을 자격도, 사랑을 받을 자격도 없어.

전부 없어.

호흡할 자격 따위 없어.

네 옆에 살아있을 자격이 없어……?

정말 그런 걸까……?

“카엘? 엉? 갑자기 왜 울어?”

“……”

메린의 눈에 당황한 기색이 비치고 있었다.

내가 울 거라는 건 예상 못했던 모양이다.

괜찮아, 나도 몰랐어.

나도 지금 엄청 당황스러운데 얘는 오죽할까?

녀석은 나를 일으켜 앉히고는 양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고 물었다.

“내가 무섭게 한 거야? 아니면 나한테 미안해서 그래? 야, 말 좀 똑바로 해봐, 그래야 내가 알 거 아냐. 답답해 죽겠어.”

“메린…… 나……”

“응.”

눈물이 목으로 들어가서 윤활제가 된 모양이다.

힘을 들이지 않아도, 조금 전처럼 쉽게 입 밖으로 말을 빼낼 수 있었다.

“나 죽어야 되나봐…….”

“뭐? 왜?!”

“널 배신했으니까…….”

“배신? 네가 날 배신했다니, 그게 뭔 소리야?”

황당해하는 표정으로 날 보던 메린이, 일순 얼굴을 홱 찌푸리면서 말을 이었다.

“……너 나 몰래 블루벨이랑 떡쳤냐?”

“뭔 개소리야, 임마……. 여기서 그 할망구가 대체 왜 나와…….”

다른 이유로 눈물이 핑 돌았다.

진짜 돌아버리겠네.

메린이 블루벨을 질투하는 이유는 전에 들었다.

블루벨은 능력적으로 이 녀석과 역할이 비슷한데, 메린과 달리 전사로서 지극히 효율적인 몸매를 가지고 있다.

나이 많은 엘프 고유의 특수능력도 있고.

그 때문에 이 녀석은 블루벨을 경쟁상대로 보고, 내가 가까이 갈 때마다 눈에 불을 켜는 것이었다.

그러나 메린은 블루벨에게 절대 자리를 빼앗기지 않을 거다. 내가 안 내줄 거니까.

내가 메린을 버린다니, 그보단 드래곤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는 게 더 있음직한 일일 거야.

근데 어떡해? 본인이 계속 그럴 거라 보고 이렇게 말을 안 들어처먹는데에에!!

아니 진짜 통나무 몸매는 내 취향이 아니라고 대체 몇 번을 말해야 되는 거야?!

도대체 왜 내가 그 엘프랑 놀아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어, 아니야? 걔가 너한테 몸매 보여주겠다느니 그랬던 거 같은데…….”

“……”

이번엔 좀 근거가 있는 편이었다.

세상에, 잠결에 그걸 들은 거야?

근데 그때 내가 귀 막았던 거 같은데.

전혀 소용없었군.

“꿈이었나……?”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갸웃하는 메린.

엄연히 실제 현실에서 나왔던 말이지만, 나는 그냥 침묵을 지키기로 했다.

굳이 더 난장판을 만들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안 그래도 개판인데.

“암튼 블루벨이 아니면 뭔데?”

“세이렌…… 환상…….”

“세이렌?”

그 이상은 말을 잇지 못했다.

눈물이 목까지 차오른 탓에 숨이 막혀버렸기 때문이다.

메린은 그런 나를 달래듯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시선을 옆으로 둔 채 잠시 침묵했다.

이윽고, 그녀가 눈을 살짝 동그랗게 뜨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아, 그 바닷속에서 너 덮쳤던 몬스터? 배신이라는 게 그거야?”

“……”

“몬스터한테 공격받은 거잖아. 그게 왜 배신이야? 아, 생긴 게 여자라서?”

절레절레.

아무리 내가 너그러워도 그걸 여자로 보지는 않는다.

난 그런 놈이 아니야……!

“아니라고? 그럼……… 아, 환상. 어어, 그러니까…… 블, 아니, 딴 여자가 나온 환상을 보고 있었구나. 그렇지?”

“너…….”

“나? 내가 나왔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메린의 눈길이 멍해졌다.

사람들에게 성녀라고 불렸을 때처럼 큰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근데 왜 배신이야……? 어쨌든 넌 나랑 그랬던 거잖아.”

“하지만, 흑, 네가 아니었어…….”

“……”

“가짜인 것도 모르고, 네 눈앞에서…… 우읏, 기분, 좋다고……!”

그러니 자격이 없어.

메린에게 입맞출 자격이 없는 거다.

아니, 그게 아니어도 지금은 못해.

메린이 얼굴을 가까이 댔을 때 입 안에 맴돈 그 향……

그건 분명 세이렌이 남긴 자취일 터.

양치질 때 썼던 세이지의 향에도 덮이지 않을 만큼 진득하게 자취가 남아있는데, 이딴 더러운 입을 어떻게 메린에게 대?

……아, 혹시 그래서 메린이 다가오는 걸 막은 건가?

가끔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머리보다 몸이 더 빨리 움직인 거지.

“흐음………”

메린은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았다.

왠지 그 눈을 마주하기가 힘들어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실망하고 있겠지?

어쩌면 내가 그걸 왜 배신이라 하는지 이해가 안 돼서 고민 중인지도 모르겠다.

“그랬구나.”

마침내 생각을 마친 건지, 메린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옷소매로 내 얼굴을 닦았다.

이 다음에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기분 좋았었구나. 괜찮아. 나보다 좋진 않았을 거 아냐.”

“어……?”

“나랑 키스하는 게 더 좋았을 거 아니냐고.”

“그건……….”

“……얼씨구? 그 년이 더 좋았던 거냐? 그런 거야?”

“모, 모르겠어…….”

진짜로 알 수 없었다.종류가 너무 달라도 달랐으니까.

메린과의 입맞춤은 항상 편안하고 감미로웠고, 세이렌이 불어넣은 입김은 농익어서 썩기 시작한 과일처럼 진득하게 달았다.

요령 좋은 사람이라면 ‘네가 더 좋았다’고 속삭이면서 마음을 풀어줬겠지.

하지만 난 그런 건 잘 하지도 못하는데다, 메린에겐 그런 소리 해봤자 통하지 않을 거다.

“모르겠다고……? 아니, 나랑 키스한 게 한두 번이 아닌데 그걸 몰라?”

“……미안해.”

“그래, 뭐, 어쩔 수 없지. 너 기억력 별로 안 좋잖아. 그러니 몸에 새겨야지, 안 그래? 다신 까먹지 않도록.”

“………뭐? 그게,”

그게 무슨 뜻이야?

그렇게 전하려 했는데 도중에 끊겨버렸다.

아니, 몸이 뒤로 넘어가면서 단단히 막혀버렸다.

뒤통수가 거세게 바닥에 부딪쳤지만 통증은 없었다.

미리 안배라도 한 듯이 그 자리에 베개가 놓여있던 덕분이다.

그러나 깃털 가득 담긴 베개로도, 시야가 흔들려서 생기는 어지럼증까지는 어쩔 수 없는 듯했다.

……아니, 시야 때문이 아니라 숨이 모자라서 어지러운 건가?

그녀의 매끄러운 혀가, 목구멍까지 틀어막을 기세로 내 입 안을 휘젓고 있었으니까.

내 위에 올라탄 채로, 날 내려다보면서.

사나흘 전에 그랬던 것처럼.

“으……!”

아직 채 지워지지 않은 두려움이 한꺼번에 밀려들어왔다.

발끝까지 꼼짝없이 얼어붙은 몸을 달달 떨면서 메린의 어깨에 손을 댔다.

떨어뜨려야 돼. 지금 내 입은 더럽단 말야.

아니, 당장 밀어내야 돼.

안 그러면, 또 당해버릴 거야……!

………근데 난 당해도 싸잖아.

요령 좋게 달랠 줄을 몰라서, 결국 이 녀석을 화나게 만들었으니까.

그래……이건 벌이야.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준 벌.

그러니 달게 받아야지.

어깨를 붙잡은 손을 내려, 침대의 시트를 꽉 쥐었다.

그러지 않고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흣… 으읍……”

입술 뒤, 입천장, 어금니.

그야말로 구석구석을 거칠게, 그러면서도 부드럽게 쓰다듬듯이 휘젓는 게 느껴진다.

더러울 텐데, 그런 거 전혀 모르는 것처럼 열정적으로 핥고 있다.

그때마다 몸이 멋대로 움찔거리면서 기뻐하는 게 정말 어이가 없다.

아니, 벌을 받는 건데 왜 좋아하는 거야?

내가 누구처럼 그런 취향이 있는 것도 아닌데.

“……?”

그때, 시트를 꽉 쥔 손을 따스한 온기가 감싸는 게 느껴졌다.

잠깐 입술이 떨어진 틈에 그쪽으로 시선을 향하자, 메린이 내 손을 살포시 쥐고 있는 게 보였다.

그대로 나를 달래듯이, 엄지손가락으로 손등을 쓸고 있는 것도.

다시 마주한 그녀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그때처럼 격정이 비추고 있지도, 나에게 화가 난 기색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안심하라는 듯이, 부드럽게 미소짓고 있었다.

어째서 그렇게 웃는 거지……?

나한테 화났을 텐데……?

그 의문을 입에 올리기 전에, 그녀의 얼굴이 다시 나를 덮었다.

내 손등을 토닥이듯 가볍게 두드리는 그녀의 손길에, 바짝 들어있던 긴장이 차츰차츰 풀려가는 게 느껴졌다.

내 입술을 핥고, 또 다시 안으로 들어오는 혀.

잔뜩 겁을 먹은 나를 달래듯이, 내 혀를 나직이 감싸고는 슬슬 쓰다듬는다.

츄릅, 츄르르, 물기를 마시는 소리가 들려온다.

쪽, 쪼옥, 입술을 핥고 빠는 소리가 귀에 울린다.

더욱 더, 몸 안에서부터 열이 끓어올라온다.

“읏… 으읍……!”

그와 동시에, 그녀가 내 손등을 덮던 손으로 이번에는 내 머리를 빗기 시작했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머리 깊숙이 두피를 쓸어가자, 간지러우면서도 찌릿한 느낌이 등줄기를 타고 온 몸에 퍼져갔다.

어깨가 작게 들썩거린다.

얼굴이 점점 더 뜨거워지면서 숨이 더더욱 가빠져온다.

그때, 그녀가 혀를 강하게 얽어오면서 머리를 깊이 쓸어올리자, 나도 모르게 허리가 살짝 튕겼다.

“후으…! 흣, 하아……!”

기분 좋아. 뜨거워.몸이 녹아내리는 거 같아.

머릿속에 수증기가 가득 찬 것 같다.

허리 아래 부분이 답답해지기 시작한다.

……근데 이건 벌이잖아.

기분 좋다고 느끼면 안 되는 거 아냐?

그때처럼 아프고 힘들어야 할 텐데.

하지만 무리였다.

그녀가 손을 대는 곳마다 기쁘다고 환호하고 있으니까.

부드러운 손길들이 두피를 살짝살짝 누르면서 쓸고, 뺨을 쓰다듬으면서 이따금 뒷목을 간지럽히는 게 견딜 수 없이 좋다.

그녀의 혀가 타액을 흘려보내면서 혀뿌리 아래나 어금니 뒤까지 핥을 때마다, 등줄기가 찌릿하면서 어깨가 움찔거리고 있었다.

시트를 잡는 걸로는 그 쾌감을 다 흘려버릴 수 없어, 두 팔을 둘러 그녀를 꽉 껴안았다.

메린이 날 강제로 넘어뜨리고 올라타 있다는 건, 이미 아무래도 좋았다.

“후후, 눈 풀린 거 봐. 귀여워. 으응… 히히, 그렇게 좋아?”

“하아, 하… 좋아…기분, 좋아……!후읍.”

“후우… 당연히 그렇겠지. 어디를 만져야 네가 느끼는지 내가 다 아는데.”

메린은 웃음을 흘리면서 내 목덜미에 입을 맞추고, 그대로 할짝 혀를 움직였다.

찌릿하는 느낌에 고개가 뒤로 젖히면서 소리가 새어나왔다.

“아… 큿……!”

“그 년처럼 네 고간 더듬지 않아도 기분 좋게 해줄 수 있는데. 이보다 더더욱 기분 좋게 해줬었잖아. 근데 어떻게 그걸 까먹냐?”

“미…안…, 읏, 크으……!”

그 말대로 그녀의 손은 여전히 상반신, 특히 얼굴 근처에서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달아오르는 건, 그 손길에 사랑이 담겨 있기 때문이리라.

……그래, 그녀는 지금 나를 사랑해주고 있었다.

내가 큰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항상 그랬던 것처럼.

“우으… 흡… 하읍……”

꿀꺽.

타액이 흘러들어오는 대로 목 뒤로 넘긴다.

그윽한 달콤함이 머릿속까지 퍼진다.

더. 더 원해.

보채듯이 그녀의 등을 쓸어내리며 입을 움직이자, 그녀가 작게 소리내어 웃는 게 들렸다.

“괜찮아, 카엘. 용서해줄게. 네가 그 년한테 속아서 헤벌쭉했던 것도, 내가 해줬던 걸 까먹은 것도 전부 다. 그 년은 원래 그렇게 꼬리치는 걸레년이잖아? 작정하고 덤비니 속을 수밖에 없지. 애초에 넌 그 년 죽이려 했었고, 또 지금 나한테 하는 것처럼 그 년 껴안거나 몸 쓰다듬지도 않았잖아?그러니 봐줄게.

하아… 그 대신 이제 까먹지 마. 널 가장 기분 좋게 만들 수 있는 건 나야. 널 속속들이 알고 있는 나라고.”

“우으…… 메리인…….”

“쉬잇, 울지 마. 아무튼 이제 넌 나한테 용서받은 거야. 그러니까 이제 쓸데없이 자책하거나 나 꺼리지 마라. 알았지?”

말로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감정이 막 북받쳐 올라와버린 탓에, 입을 열면 곧바로 오열이 터져나올 것 같았으니까.

메린이 울지 말라니까 참아야지.

나도 이 이상 더 한심한 꼴을 보이고 싶지 않다.

하지만 눈물이 흐르는 것까진 막을 수 없었다.

휘몰아친 감정의 파도가 너무나도 커서, 눈 밖으로 새는 것까지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도 그럴 게, 난 그녀가 용서해줄 거라고는 아예 생각조차 못했으니까.

“울지 말라니까.”

“……”

메린은 살짝 퉁명스럽게 말하면서도 여전히 빙긋 웃고 있었다.

입가에 미소를 띄운 채, 내 눈가에 입을 맞추었다.

그런 뒤, 그녀는 자그마한 물줄기를 따라가듯 내 뺨에 입술을 대고 살짝 핥은 다음, 다시금 입술을 포개어왔다.

소금기 어린 맛이 그녀의 달콤한 숨결에 섞여 입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후으…… 나 참, 지 잘못도 아닌 걸 갖고 끙끙 앓고 말야……. 너 진짜 웃긴 놈이야, 알아?”

“하… 메린… 더… 더어……!”

“안 들리는구나? 진짜 키스 좋아한다니까……. 하음… 야, 카엘.”

머금듯이 내 입술을 덮고 잘근거리던 그녀가, 돌연 얼굴을 살짝 떼었다.

그대로 내 귀에 입을 대고서 작게 속삭였다.

“더 기분 좋은 거, 할래?”

“……”

……그저께였던가?

신전에서 비슷한 유혹을 받았었지.

그땐 온 힘을 다해서 참았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여긴 우리 둘밖에 없는 침실이고, 또 달이 휘영청 떠 있는 밤이니까.

나를 내려다보는 가늘게 뜬 눈도, 내 뺨을 쓰다듬는 손도, 나에게 참지 말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메린……!”

안 참아.

그때 꾹 눌러 참았던 몫까지 더해서 전부 탈탈 털어버릴 거야.

유혹을 걸어오는 얼굴을 끌어와, 서로의 타액으로 한껏 젖어 있는 입술을 포갰다.

깊이 이어진 입 안에서, 그녀의 부드러운 웃음소리가 잔잔히 울렸다.

다음날, 여름해가 중천에 뜨는 걸 넘어 서쪽으로 드러눕기 시작하는 오후 네 시.

가벼운 노크 소리에 문을 열자, 위슨과 알스 사제, 그리고 테레지아가 바깥에 서 있었다.

진짜 일 초도 어긋나지 않고 찾아오는구나.

알스 사제의 칼 같은 시간관념에 내심 혀를 내둘렀다.

“말씀드린 대로, 마지막으로 같이 차 한 잔 하십사 하고 왔는데……….”

알스 사제는 말끝을 흐리더니 내 뒤를 힐끗 본 후, 연민이 가득 담긴 눈으로 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제가 당신을 맹수 우리에 넣어버린 모양이군요.”

“………”

뭘 말하는 건지 단박에 이해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더 좌절스러운 건, 내가 그 말에 단 한 마디도 반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메린 녀석, 설마 점심 때까지 마구 짜낼 줄이야……!

자고 일어나서 뭔가 먹고, 쭉 짜인 다음 지쳐서 도로 잠들고, 깨어난 다음 또 뭘 먹여지고……

그야말로 퇴폐와 행복, 그리고 목숨의 위기가 철철 흘러 넘치는 시간이었다.

……그나마 고급 침대에서 쉬었으니 망정이지, 여관 침대였으면 아직도 못 일어났을걸?

치유사제가 몸 속 독기를 빼준 덕도 있겠지.

그렇다고 얼굴이 초췌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위슨은 내 얼굴을 이리저리 뜯어보더니 어깨를 으쓱이며 물었다.

“정력제 만들어줄까요?”

“안 돼……!”

녀석의 어깨를 꽉 붙잡았다.

그딴 거 먹었다간 진짜 말 그대로 하루종일 쭉쭉 짜일 거야!

바싹 말린 생선처럼 쪽 빠져버릴 거라고!!

“절대 안 돼……! 기력회복제도 주지 마. 그냥 날 이대로 내버려둬……!”

간곡히 청하는 나를 보는 세 사람의 시선은, 그야말로 저 바다처럼 깊은 동정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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