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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352화 (352/475)

〈 352화 〉 342화 : 바다와 갈매기에게 작별을 (1)

* * *

호로록.

달그락.

꽃향기가 담긴 따끈한 물 한 모금을 마시니, 쪼그라졌던 얼굴이 다시 펴지는 느낌이 들었다.

뒤이어 입에 넣은 옥수수과자의 달콤함이 몸 속에 퍼지자, 잃어버렸던 활기가 다시 솟구치는 것 같았다.

아, 진짜 농담 아니고 살 거 같아…….

역시 기운 없을 땐 달콤한 게 최고야.

“와, 이 과자 꿀 무지하게 넣었나봐. 왠지 기운이 나는 거 같지 않냐?”

“………”

그렇게 재잘대면서 나를 보는 메린의 눈은 살짝 가늘어져 있었다.

녀석이 나를 향해 아랫입술을 삭 핥는 걸 보자, 곧바로 등골이 오싹해졌다!

히익, 창조주님, 살려주세요, 쟤가 날 말려죽이려고 해요!!

“갑자기 왜 떨고 그러세요? 혹시 추우신가요?”

“아뇨…… 한여름인데 추울 리가요……. 아무것도 아니니 신경 쓰지 마세요…….”

테레지아에게 애써 태연하게 답하며 찻잔을 기울였다.

따뜻한 찻물을 넘기니 조금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역시 마음이 요동칠 땐 차를 마셔야 돼.

그보다 나 이따가 괜찮을까……?

근데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네.

아니, ‘하루종일 몸 섞으면 까먹을래야 까먹을 수가 없지 않겠냐’더니 진심으로 한 소리였냐고.

그리고 왜 오늘따라 이렇게 막 달려드는 거야?

요전에만 해도 내 쪽에서 붙었는데!

혹시 이제서야 그런 욕구에 눈을 떠버렸나?

아니면 블루벨처럼 여러모로 불끈거리는 시기인가?!

녀석이 날 원하는 거 자체는 기쁜데, 어젯밤에 이어서 세 번이나 연속으로 요구해오니 마냥 기뻐할 수가 없다.

……근데 메린은 왜 멀쩡한 거지?

기초체력이 워낙 차이가 나서 그런가?

으으, 왠지 분해.

작게 한숨을 쉰 후, 미묘한 웃음을 짓고 있는 알스 사제에게 물었다.

“그래서, 암시가 잘 정착된 거 같다고요?”

“대부분은 그런데, 몇몇은 아직 더 봐야 합니다. 자기주장이 강한 분은 저항이 좀 있거든요.”

달그락.

알스 사제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위슨 씨를 저희랑 같이 보내셔도.”

“영영 보내는 것도 아닌데요, 뭐. 말씀드린 것처럼, 위슨은 혼자서 여러 전력을 낼 수 있으니 많은 인원을 지키는 데엔 제격일 겁니다. 호위로 팍팍 쓰세요.”

영주에게 버림받은 사람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에 대해 알스 사제와 테레지아가 내린 결론은, 그들을 전부 이끌고 다른 성으로 피난을 가는 것이었다.

그것도 테레지아의 이름을 내건 채로.

즉, 그들은 이제 테레지아의 백성이나 다름없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대략 마흔 명쯤 되는 사람들을 받아줄 만한 곳이, 여기서 북동쪽으로 오륙일은 걸리는 공작령밖에 없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몬스터가 강해진 이 시기에 사제 일곱만으로 주민 마흔 명을 지키는 건 무리가 있을 터.

그래서 내가 위슨을 호위로 데려가라고 제안했다.

“어쩌면 암시를 한 번 더 걸어야 할지도 모르니, 위슨이 가는 게 가장 낫죠. 본인도 동의했고요. 근데 이 녀석이 동굴 비슷한 곳을 보면 돌진하는 괴벽이 있거든요? 그건 좀 주의하셔야 할 겁니다.”

“무슨 위험물 취급받는 기분인데요.”

투덜투덜대면서도 부정은 하지 않는 위슨이었다.

빈말이라도 ‘그딴 짓 안 한다’고 해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돌겠네, 진짜.

“……아무튼 조심해. 사람들한테 물약 먹이지 말고, 가능하면 술도 먹지 마. 다른 애들 교육에 안 좋으니까. 합류하기로 한 마을 잘 찾아오고.”

“걱정 마요. 딴 건 몰라도 길 잃어버릴 일은 없어요.”

뭐, 그렇겠지.

길 찾기 힘들 때는 땅의 정령에게 물어보면 그만이니까 말야.

하, 진짜 사기적인 능력이야.

“흠, 어쩌면 카엘 님께서 그 마을에 한동안 체류하실 수도 있겠군요. 마침 잘됐네요. 이거 받으시죠.”

알스 사제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갑자기 주머니 하나를 테이블에 툭 올려놓았다.

주머니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는데,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약간 묵직해보였다.

“뭔데요?”

“금화 다섯 닢입니다.”

“네? 이걸 왜 주세요? 어, 저희 돈 많아요.”

지나가던 도적들에게 받은 피해보상금 덕분에 원래도 넉넉했지만, 율리아 공주의 단짝인 까마귀가 금화를 쉰 닢이나 줘서 엄청난 부자가 된 상태였다.

그 돈은 배낭 안에 따로 보관 중인데, 여기서 한 닢이나 쓸까 모르겠다.

먹고 자는 걸 빼면 옷 수선과 무기 관리에나 돈을 쓰는데, 그것도 전문가에게 안 맡기고 우리가 직접 하니까 재료비만 좀 들 뿐이다.

식량도 채소나 소금만 좀 사지, 고기는 사냥이나 낚시로 보충하고 있어서 가게를 기웃거릴 필요가 없다.

그나마 많이 사는 게 종이랑 잉크인데, 그것도 엄밀히 따지면 푼돈이고 말야.

그래서 알스 사제가 꺼낸 돈주머니를 도로 밀어내려는데, 그가 억지로 내 손에 꽉 쥐여버렸다.

도저히 뿌리칠 수 없을 만큼 억센 힘으로!

“힐데 사제님이 용사님 몫이라고 따로 빼둔 거라고 하더군요. 그러니 카엘 님이 꼭 가져가셔야 합니다.”

“그래도 저보단 피난민들이……”

“사람들 위해서 쓸 것도 넉넉히 있으니 걱정 마세요. 어차피 저들에겐 돈보다 식량이 더 절실할 겁니다.”

하긴, 지금은 대대적으로 식량이 부족한 상황이다.

그나마 이 마을은 전통적으로 옥수수를 많이 먹어서 좀 나은 편이지, 다른 마을은 밀이나 보리가 부족해서 허덕이고 있을지도 몰라.

어쩌면 감자나 순무 같은 채소도 구하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그 때문에, 나는 이 성에 비축되어 있던 식량 대부분을 알스 사제 쪽에 넘겼다.

인원도 그쪽이 훨씬 많은 데다, 우리는 아직 식량이 넉넉하니까.

“근데 테레지아 님이 그 사람들을 이끌겠다고 하실 줄은 몰랐어요. 혹시 동병상련인가요?”

“그렇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귀족은 그런 사사로운 감정만으로 움직여선 안 된답니다.”

테레지아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서 말을 이었다.

“저와 그 사람들은, 걸리프의 새 영주인 로버트 시클로의 폭거에 목숨을 잃을 뻔한 사람들이에요. 창조주께서는 그런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천사를 보내주셨고, 그렇게 우리는 목숨을 건지게 되었죠.

이걸 대대적으로 공표하면 아주 볼 만할 거에요. 시클로 가문의 명예는 아주 땅에 떨어지겠지요! 날 삼류귀족의 여식처럼 다룬 걸로 모자라, 진상품 비슷한 걸로 취급하려 한 것, 똑똑히 후회하게 만들어줄 거에요……!”

음, 왠지 큭큭 웃는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설마 고개를 숙이고 있는 저 귀족 아가씨가 내고 있는 건 아니겠지?

잠시 후, 웃음소리가 뚝 그치면서 그녀가 다시 고개를 들고 우아하게 찻잔을 기울였다.

방금 들린 음울한 웃음소리 따위 전혀 모른다는 듯이.

……나랑 메린이 바닷속에 끌려가 있는 동안, 영주의 기사가 테레지아를 데려가려 했다는 건 어제 들었다.

근데 진상품이라니……

자신들이 몸을 피하려는 성의 영주에게 테레지아를 바칠 생각이었나?

뭐, 어때. 이미 다 끝난 일인데.

나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처럼 그냥 옥수수과자만 우물거렸다.

“이게 다 용사님 덕분이에요. 당신이 그때 그 엘프분을 보내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그리고 절 욕보이려 했던 그 놈도 처치해주셨죠? 정말 감사드려요.”

“당신 때문에 한 거 아닌데요.”

“상관없어요. 어쨌든 전 은혜를 입었으니까요. 그 답례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이거 받아주세요.”

이번엔 테레지아가 작은 상자를 꺼내어 나에게 내밀었다.

나 참, 그 어린 여자애부터 시작해서 다들 뭔가 자꾸 주려고 하네…….

일단 뭔지 보기나 하자.

떨떠름한 심정으로 상자를 열어보았다.

“반지……?”

일단 금반지인 것 같았다.

중앙엔 연한 녹색빛의 보석이 하나, 가장자리엔 눈곱만 한 하얀 보석들이 쭉 박혀 있고, 나머지 표면엔 무언가 글자와 문양이 새겨 있는 금반지.

부모님이 끼던 낡은 결혼반지 말곤 금반지 구경을 못한 평민 중의 평민으로서, 곧바로 손이 떨릴 만큼 굉장히 고급스러운 반지였다!

어째 생긴 건 리구리아가 준 팔찌보다 더 화려한데?

근데 이걸 나를 준다고?!

“어, 음, 저기, 이건 그……”

“좀 수수하게 생겼죠? 그래도 기원이 담긴 부적반지랍니다.”

이게 수수하다고……?

수수……수수하다는 게 무슨 뜻이었더라……?

그간의 상식이 전부 부정당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게 바로 귀족과 평민의 격차인가?

이 아가씨 눈엔, 내가 메린에게 줬던 펜던트나 우리 부모님의 결혼반지는 애들 장난감처럼 보이겠군.

“그, 이건 제가 받기엔 너무 값나가는 거 같은데요…….”

“어머, 부담 가지지 마세요. 그래도 제가 가진 것 중에 가장 저렴한 거 드리는 거에요.”

“……”

이게 가장 저렴한 거면,가장 비싼 건 어떻게 생긴 거야?

사람 눈알만 한 다이아몬드가 막 달려 있기라도 하나?

어우씨, 진짜 사는 세상이 다르구만.

고개를 살짝 흔들어 정신을 다잡은 후, 나는 반지를 빤히 쳐다보며 테레지아에게 물었다.

“부적반지라 하셨죠? 뭘 위한 부적인데요?”

“사악한 존재를 막아주는 부적이에요. 그 녹색 보석은 페리도트라고 하는데, 달빛 아래에서도 밝게 빛나거든요.

용사님의 상대는 대재앙이잖아요? 단순한 부적일 뿐이지만, 그래도 이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으면 해요.”

보호의 뜻이 담긴 부적을 둘이나 얻었다.

팔찌와 반지……

둘 다 주로 여자가 쓰는 거지?

물론 마법사가 만든 부적이 아니니, 효과가 있어도 굉장히 약한 수준일 거다.

그래도 아예 없는 것보단 나을지도 몰라.

………하나는 상당히 부담스럽지만!

본능적으로 덜덜 떨리는 손으로 상자를 닫은 후, 나는 테레지아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귀한 선물 감사합니다, 테레지아 님. 수수하고 저렴한 거라 하셨지만, 저 같은 사람에겐 평생 꿈도 못 꿀 보물이에요. 굉장히 부담스러워서 속이 좀 울렁거리지만, 아무튼 감사히 받겠습니다.”

“감사하신 것 치곤 말이 기시네요. 아, 그리고 또 한 가지.”

샐쭉한 표정으로 대꾸하던 테레지아는, 돌연 빙그레 웃으면서 찻잔을 내려놓았다.

“페리도트는 있죠. 부부의 행복도 의미한답니다. 대강 크기 맞을 거 같으니, 여기 계신 메린 씨에게 끼워주시면 딱 좋을 거에요!”

“쿠흡……?!”

입 안에 아무것도 없었는데 숨이 막히면서 사레가 들려버렸다!

부, 부부라니, 그런 뜻이 있으면 메린에게 섣불리 줄 수 없잖아, 물론 메린 말고 딴 여자는 생각할 수도 없지만, 아니 그래도……!!

“어차피 메린 씨에게 주시려고 했죠? 아아, 부러워라~ 나도 누군가에게 열렬히 사랑받아봤으면 좋겠는데~”

“우훠억, 컥! 콜록콜록콜록!!”

……한동안 기침하느라 허리를 펴지 못했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귀족 아가씨의 눈길에선 즐거움이 한가득 느껴지고 있었다.

율리아 공주도 그렇고, 귀족 아가씨들은 왜 다 이 모양인지, 원!

속으로 툴툴대며 호흡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떠들썩한 티 타임이 끝나고, 이제 세 사람이 떠날 시간이 찾아왔다.

알스 사제는 품속에서 시계를 꺼내어 슬쩍 들여다본 다음, 메린과 함께 문 앞에 선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내일은 새벽에 출발할 거라, 일곱 시 정도에 수프를 배급하고 취침할 예정입니다. 대충 두 시간 뒤인데……. 두 분 몫도 준비할까요?”

“아뇨, 괜찮아요. 엄청 단 과자를 먹었더니 배가 안 고플 거 같아요. 출출하면 남은 거 먹으면 되고요.”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은 못할 테니, 지금 작별 인사를 드려야겠네요.”

알스 사제는 빙그레 웃으면서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기꺼이 맞잡자, 신의 말씀을 머리가 아닌 주먹으로 풀어주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굳은 힘이 느껴졌다.

“카엘 님, 여러모로 힘을 써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어째서 대언자님이 당신에게 그리 신경을 쓰시는지 이해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함께하고 보니 조금은 알 것 같네요. 로나가 저리 따를 만해요.”

“네? 그게 무슨……?”

“그런 게 있습니다. 본인은 모르는 법이죠.”

무슨 뜻인지는 알려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는 마주잡은 손에 약간 더 힘을 주면서 살짝 흔든 뒤, 손을 놓고 성호를 그었다.

“제 주인의 자녀이자 대행자인 용사님, 부디 끝까지 마음을 잃지 마십시오. 여태 그리하신 것처럼 당신 자신으로서, 사람으로서 길을 나아가고 선택하세요. 그럼 그 결과가 무엇이건, 창조주는 기꺼이 허하실 겁니다.”

“어…… 용사로서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게 그거에요. 당신은 사람의 대표로 세워진 것이니까요.”

뜻밖의 말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내가 사람을 대표한다고……?

놀라서 눈만 끔뻑거리고 있는데, 그 틈을 타 잡음들이 마구 들려왔다.

“이딴 게 대표라니 망했네.”

“그러게요. 잘못 뽑은 거 아닐까요?”

‘가끔 그런 생각이 들긴 하지만 웃기니까 됐어.’

“시끄러, 이 자식들아!”

애인에 동료라는 것들이 편은 안 들어줄 망정……!

그보다 저 속삭임 놈은 이제 아주 자연스럽게 끼어들고 있네.

이젠 숨을 생각도 없다, 이건가?

젠장, 진짜로 미친놈 취급받을 게 뻔하니 누구한테 말할 수도 없고!

씩씩대는 나를 보는 알스 사제의 웃음이 한층 더 밝아졌다.

역시 이 사람도 성격이 좀 비뚤어져 있는 게 분명해.

어째 내 주변엔 멀쩡한 사람이 하나 없네. 왜지?

“여하간, 당신이 무사히 사명을 마치길 기도하겠습니다. 용사 카엘, 당신에게 창조주의 빛이 항상 함께하길.”

“……네, 감사합니다, 사제님. 무사히 공작령에 도착하시길 바랄게요. 테레지아 님도요. 계획이 잘 되길 바라겠습니다.”

테레지아는 내 말에 놀란 듯이 눈을 살짝 크게 떴다가, 이내 엷게 웃으며 드레스자락을 잡고 우아하게 몸을 굽혔다.

“고마워요, 용사님. 대재앙과 맞서기로 하신 그 용기가 끝까지 꺾이지 않기를 바랄게요. 그리고 꼭 무사히 돌아오셔서, 로웬하임으로서 은혜를 갚게 해주세요.”

“그건 됐다니까요.”

“아무튼 건투를 빌어요. 결혼식 날짜 정해지면 꼭 알려주시고요!”

“아잇, 진짜.”

사람 실컷 놀려대고서 입을 가리고 호호 웃는 귀족 아가씨였다.

어휴, 사악한 아가씨 같으니.

좋은 남편 만나서 영지 가득 채울 정도로 애 실컷 낳고 잘 살아라!

속으로 그런 저주를 퍼붓는데, 이번엔 위슨이 손을 흔들면서 말을 꺼냈다.

“여자들한테 둘러싸여서 지내는 일주일, 행복하게 보내세요~”

“헛소리 말고 몸조심이나 해라.”

“아니, 저보단 형이 해야 될걸요?”

그렇게 말하는 녀석의 눈길은, 내가 아니라 내 옆의 메린을 향하고 있었다.

……메린 때문에 몸조심해야 될 거라고? 왜?

그러나 위슨은 그 이상 말하지 않고, 며칠 뒤에 다시 보자는 말로 인사를 마쳐버렸다.

다른 두 사람도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고 복도를 뒤로 하기 시작했다.

철컥.

문을 열쇠로 잠그고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동안에도, 나는 계속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몸조심……

뭔 뜻으로 말한 걸까…….

그때, 등 뒤에서 메린이 말을 걸었다.

“다들 갔네?”

“그러네.”

“이제 아무도 안 오겠네?”

“그러겠지. 저녁도 안 먹겠다고 했으니.”

본인도 다 아는 걸 굳이 왜 묻는 거람?

꼭 확실하게 못 박는 것처럼………

“………”

………설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 머릿속에 스친 생각 때문일까?

어쩌면 메린이 내 어깨에 손을 턱 얹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과연 둘 중에 어느 이유 때문일까?

아아, 그딴 거 알게 뭐야, 어차피 그게 그거인데!

예상이냐, 현실이냐, 그 정도 차이밖에 없다고!

“히히, 히히힛……!”

녀석의 손이 내 팔을 붙든다.

저항할 틈도 없이 질질 끌려간다.

발에 힘을 주고 버티거나 할 생각은 처음부터 들지 않았다.

그치만 그렇게 버텨도 아무 의미없는걸…….

괜히 힘만 빠지는걸…….

그래도 아직 포기는 안 했어!

몸이 안 되면 입으로라도 저항하는 게 나다.

비록 거의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지만, 아무튼 더럽게 추하더라도 끝까지 발버둥치는 게 내 신조라고!

거의 발악하는 심정으로, 나는 나를 침대에 앉히고 신발을 벗기는 메린에게 말을 걸었다.

“얌마, 너 아직도 부족해?! 진짜 나 죽일 셈이야?! 내 얼굴 못 봤냐, 완전 퀭해졌잖아!”

“아닌데? 과자 먹고나서 다시 펴졌던데? 역시 기운 없을 땐 단 게 최고지~”

아아아아!

이런 망할, 그 되살아나는 듯한 느낌은 그냥 기분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아니, 왜 바로 효과가 나오는 건데?!

“아냐, 메린, 그거 일시적이야! 애초에 겨우 회복한 걸 왜 도로 빼려는 건데?!”

“말했잖아. 절대 잊지 못하도록 네 몸에 날 새겨주겠다고.”

“이미 새겨졌어, 이제 절대 안 까먹을게, 맹세해! 야, 메린, 야아…… 진짜 이제 더 못한다니까……!”

“아까도 그렇게 말해놓고, 내가 먼저 나가떨어질 때까지 마구 해댔잖아.”

투덜거리듯이 말하는 그녀의 얼굴엔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가늘게 뜬 눈동자 속에 진득한 열기를 품은 채, 엷게 미소지으며 침대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에 맞추어서 의미도 없이 뒤로 슬슬 물러나는 나를, 그녀는 네발로 기어오면서 서서히 몰아세우고 있었다.

이윽고, 더 도망칠 곳이 없게 된 나는 그녀에게 붙잡혀버렸다.

이미 처음부터 정해진 운명이나 다름없었다.

“햐읏?!”

근데 대뜸 물건 잡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아니, 다 큰 아가씨가 진짜 민망한 줄을 몰라!

그보다 잡힌 게 좋다고 바로 커지지 말라고, 돌겠네, 진짜!

“내가 가버리든 말든, 이걸로 계속 쿡쿡 쑤셔댄 주제에.”

“그건 그냥 본능으로……! 아으, 아, 메린, 진짜 안 된다니까! 히잇, 벗기지 마아! 으아아, 싫어요, 안 돼요, 손대지 마세요! 하으아아, 안 돼애앳! 꺄아아으읍!”

……그녀의 입 속으로 들어간 내 비명은, 이윽고 뜨거운 한숨이 되어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죽는 순간까지 사랑하고 싶지, 사랑을 나누다가 죽고 싶은 게 아닌데 말이지?

속으로 내뱉으며, 또 다시 입을 맞춰오는 그녀를 꼭 껴안은 채 반 바퀴 굴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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