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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356화 (356/475)

〈 356화 〉 외전 6) 너에게 좋은 기억을 (Side : Merin) (3)

* * *

사람은 한 번 내뱉은 말을 지켜야 한다.

그게 카엘과 그의 아버지인 엘리아스가 그녀에게 가르친, 사람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도리 중 하나였다.

그러니 ‘하루종일 몸을 섞겠다’고 한 말을 그녀가 지키는 건 당연했다.

아침식사 후에 관계를 가진 두 사람이 다시 깨어났을 땐 벌써 오전이 다 지나고 점심시간이 되려 하고 있었다.

그렇게 배를 채운 다음엔 다시 침대로 향했고, 그 다음엔 티 타임을 가지고서 또 침대로 들어갔다.

자고 일어나도 피로가 확연히 남아있는 카엘과 달리, 메린은 신기하게도 아주 약간 나른하기만 할 뿐, 움직이는 데엔 아무런 지장도 없었다.

그녀 자신도 몸을 움직이고, 심지어 관계 뒤엔 카엘보다도 더 축 늘어져서 기절하듯이 자고 있었는데도.

그 탓에, 밤을 맞이했을 즈음엔 사람과 시체가 하나씩 나란히 누워 있는 꼴이 되고 말았다.

하루종일 흘린 땀을 씻으려고 함께 목욕하던 메린은, 욕조 안에 거의 가라앉기 직전인 그를 보며 키득키득 웃었다.

“완전히 늘어졌네.”

“너 때문이잖아……. 아니, 어떻게 진짜로 하루종일 할 수가 있어……? 그보다 넌 왜 멀쩡한 거야……?”

“나? 나도 좀 졸린데.”

“아니, 어떻게 그냥 좀 졸리기만 하냐고……. 그렇게 보냈는데 어째서……?!”

카엘은 납득이 안 된다는 듯이 머리를 부여잡고 신음했다.

그 점에 대해선 그녀도 무어라 답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저 어깨만 으쓱일 뿐이었다.

“하…… 오늘 글공부 못했네…….”

“대신 더 좋은 시간 보냈잖아. 안 그래?”

“………”

“안 좋았어?”

“…………아니.”

기어가는 목소리로 답하면서 물 속에 고개를 처박는 카엘.

그가 그런 모습을 보이니까 그녀가 계속 놀리는 것이란 걸 모르는 게 분명하다.

그러니 그녀의 말을 그냥 흘려버리지 않고 일일이 반응하는 것이리라.

‘헛똑똑이.’

키득키득 웃으면서 그녀는 그를 껴안았다.

곧바로 몸을 움찔하는 그의 모습에 더 큰 웃음소리를 내면서, 메린은 빨갛게 달아오른 그의 뺨을 톡톡 두드렸다.

“좋은 기억이지?”

“………응.”

“평생 안 까먹겠지?”

“머리 다치지 않는 한 못 잊지…….”

“히히.”

정말로 그렇다면 성공이다.

메린은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욕조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녀를 따라 나와 몸의 물기를 닦는 그에게 제안을 하나 던졌다.

“야, 내가 안마해줄까?”

“……”

그는 대답 대신, 무어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표정을 돌려주었다.

사람의 표정을 읽기 힘든 그녀도 바로 알 수 있을 만큼, 의심과 의혹이 상당히 진하게 칠해져 있었다.

“왜 그렇게 보냐? 안마가 이상한 짓인 것도 아닌데. 딴 짓 안 할 거야.”

“………”

정말로 순수하게 그의 몸을 풀어줄 의도로 던진 제안이다.

인어 때문에 본의 아니게 이틀간 강행군을 한 그의 몸은, 산처럼 쌓인 피로로 뻣뻣하게 굳어져 있었다.

거기다 그녀의 막무가내에도 어울려버렸으니, 이대로는 이후의 여정에 지장이 생길 게 뻔했다.

“너 움직이는 거 좀 굼떠졌잖아. 그거 어깨랑 등이랑 뭉쳐서 그런 거니까 풀어줘야 된다고.”

“됐어.”

‘왜 거절하는 거지?’

분명 몸 여기저기가 뭉쳐서 욱신거리고 아플 텐데.

그녀는 그가 한사코 거절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나 잘한다고 칭찬받았다니까? 해줄게~”

“아, 됐다니까 왜 자꾸, 꺄악?!”

하여간 잔말이 많다.

메린은 침대 위에 풀썩 엎어진 카엘을 보고, 어떤 후련함을 느꼈다.

“너 이 자식…… 자꾸 사람 던질래……?아주 그냥 재미 들려가지고……!”

“그러게 좋은 말할 때 들으면 됐잖아. 왜 뻗대냐?”

“안 받아도 되니까 안 받겠다는 걸 왜, 끄아아악?!”

아주 살짝 어깨를 주물렀을 뿐인데, 카엘은 자지러지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침대를 굴렀다.

그녀 역시 손에 느낀 감촉에 화들짝 놀라고 있었다.

‘우와, 완전 골렘 어깨잖아!’

말 그대로 돌덩이나 다름없는 감촉이었다!

대체 그간 무슨 생활을 한 건지 의문스럽기 그지없었다.

“하으아아아……!”

“거봐, 엄청 뭉쳤잖아! 닥치고 엎드려, 네가 뭐라 지랄하든 풀 테니까!”

“컥.”

몸을 가눌 생각이 없는 듯한 그를 굴려서 철푸덕 엎드리게 한 후, 베개 하나는 그의 가슴팍에, 또 하나는 이마에 댔다.

그대로 그의 위에 올라타고서 두 어깨를 건드리기 시작했다.

“아와와와왁!”

“아니, 이것도 아프다고? 너 뭐 어떻게 살았길래 몸이 이 모양이냐?!”

힘을 거의 빼고 손가락으로 문지르는 수준이 되어서야, 카엘은 비명을 지르는 대신 이따금 짧은 숨을 내뱉었다.

“괜찮지?”

“참을… 윽, 참을 만해…….”

“너 평소에 체조도 안 하지? 그러니까 이렇게 뭉쳤지.”

“해……. 대충 하는데도 이런 걸 어쩌라고…….”

“대충하지 말고 똑바로 해야 될 거 아냐, 임마.”

메린은 툭 쏘아붙이면서 계속 손을 움직였다.

잠시 후, 거의 바위 수준이었던 그의 어깨가 조금 부드러워진 듯했다.

이제 조금 세게 해도 괜찮을 듯해서, 그녀는 손가락에 힘을 조금 더 주며 본격적으로 살살 주무르기 시작했다.

“후으…….”

“아파?”

“아니, 괜찮아…….”

긴 숨을 내쉬면서 대답하는 그의 목소리엔 잠기운이 한껏 묻어나오고 있었다.

이제 아픔은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오늘 뭉친 근육을 전부 푸는 건 불가능하다.

밤새 주무른다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너무 오래 자극하면 풀어지긴커녕 괜히 더 상하기만 할 수도 있다.

‘이거 매일 해야겠구만.’

일주일만에 북쪽 산에 갈 리는 없으니, 매일매일 자기 전에 조금씩 안마를 해준다면 드래곤 앞에 가기 전에 전부 풀어줄 수 있으리라.

메린은 아직 자신이 그를 위해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이 기쁘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없어진 뒤의 그가 조금 걱정스러웠다.

아무리 꼼꼼한 여자라 해도, 자신만큼 그를 잘 알지 못할 테니 분명 빈틈이 있을 터.

그녀조차 그의 근육이 이렇게 뭉친 걸 몰랐는데, 다른 여자는 어떻겠는가?

그가 겁을 먹거나, 감정이 몰려와서 울려는 걸 알아채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럼 행복해지지 못할 텐데.’

그녀가 계속해서 그의 옆에 있는 게 최선이지만, 그건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그리고 쉬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기적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달리 말하면, 기적은 일어나는 게 이상한 현상인 것이다.

그러니 그에 기대는 건 어리석을 뿐이다.

그걸 알면서도, 메린은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 자체를 지울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계속 바라게 되었다.

‘뭐, 내가 있는 동안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줘야지.’

작게 한숨을 쉬면서, 그녀는 어깨에서 팔로 쭉 내려가며 주물렀다.

그런 뒤, 한손으로 그의 뒷목을 살살 매만지기 시작했다.

얼마간 그렇게 주무르는데, 갑자기 그가 손을 허공에 휘저으면서 말했다.

“메린…… 이제 됐어…….”

“뭔 소리야, 더 해야 되는데.”

“잠 오니까…….”

“졸려? 자.”

“아니, 그건 좀……. 너 손도 아프잖아…….”

“안 아픈데.”

메린은 나머지 손으로 그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면서 말을 이었다.

“이거 어느 정도는 풀어줘야 돼. 너 오늘 기운 많이 써서 피곤한 거 알아. 괜찮으니까 먼저 자.”

“후으……”

긴 숨을 내쉬는 그의 옆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눈이 거의 감긴 거나 다름없었다.

메린은 평소에 그가 하듯이 정수리에 입을 맞춘 뒤,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면서 속삭였다.

“잘 자, 카엘. 오늘 수고했어.”

“………”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곧바로 고른 숨소리가 들린 걸 보면, 그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잠에 든 게 분명했다.

그런 그의 머리를 한 번 더 쓰다듬은 후, 메린은 엄지로 등 이곳저곳을 살짝살짝 눌러주기 시작했다.

이내 나지막이 들리던 그의 숨소리가 점점 더 길고 깊어졌다.

한층 더 깊이 잠들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이전에 그녀의 안마실력을 칭찬했던 전대 검술 사범처럼, ‘시원하다’는 걸 느끼고 있는 것이리라.

‘이것도 좋은 기억이 됐으면 좋겠는데.’

슥슥, 그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준 다음, 메린은 등에서 그의 발까지 쭉 내려가면서 이곳저곳 주무르고 눌러주었다.

그런 뒤, 엎드려 있는 그의 몸을 살며시 안아들고 똑바로 눕혀주었다.

곤히 잠든 그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저절로 웃음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맨날 이 얼굴을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일순 스쳐 지나간 생각에 살짝 마음이 가라앉는 걸, 메린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뜨는 것으로 흘려버렸다.

밤에는 감상적이 된다더니, 감정이 별로 없는 그녀도 예외가 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나도 자야지.’

이불을 끌어와, 카엘의 어깨를 덮어주면서 그 옆에 누웠다.

똑바로 눕혔으니 이번엔 그의 심장 소리를 들으면서 잠들 수 없는 게 못내 아쉬웠는데,

“우응……”

“……!”

카엘이 돌연 몸을 돌리면서 그녀의 등에 팔을 둘렀다.

언제나 그랬듯이 머리에 입을 대고서 크게 숨을 들이켜곤, 굉장히 만족스럽다는 듯이 헤죽 웃으면서 그녀를 좀더 깊이 끌어안았다.

잃어버린 물건을 다시 찾았을 때처럼, 그는 굉장히 밝게 웃고 있었다.

“카엘.”

그 웃음에 가슴속이 포근해지는 걸 느끼며, 메린은 거의 소리가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그리고 그의 가슴에 얼굴을 대고,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들으면서 속으로 말을 이었다.

‘나, 네가 좋아. 세상 무엇보다도 제일 좋아.’

그게 남녀 사이의 ‘좋아함’인지는 모른다.

그가 입에 담는 것처럼, 이게 사랑인지 아닌지는 더더욱 알 수 없다.

애초에 사랑이라는 게 어떤 느낌인지, 사람을 사랑하면 어떠한 생각이 드는지도 알지 못한다.

카엘은 그녀가 자신과 같은 마음을 품고 있다고 믿고 있으나,그녀 자신은 도통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좋아한다’는 말을 그에게 전할 수 없었고,‘사랑한다’는 말은 아예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 말은 함부로 해선 안 되는 것이라고 배웠기에, 더더욱.

그 때문에 메린은 알 수 없었다.

카엘 에스트렐의 곁에 있고 싶다.

어디를 가든 함께 가고 싶다.

함께 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이하고 싶다.

‘너와 같이 살아가고 싶어.’

그러한 소망을 불러일으키는 감정의 이름을, 메린 소더는 여전히 알지 못했다.

“잘 자.”

지금 유일하게 입에 담을 수 있는 말을 전한 뒤, 메린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오늘 하루 그가 만들어준 좋은 기억들을 하나하나 되새기면서 다시금 바랐다.

자신과 함께 한 오늘이, 그에게 좋은 기억……

행복한 기억으로 새겨졌기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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