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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361화 (361/475)

〈 361화 〉 348화 : 방치된 미아 (1)

* * *

문답을 마치고 길게 숨을 내쉬는 남자에게 따끈한 물을 먹여준 다음,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입을 열었다.

“정리하면, 당신은 이 숲 속에 있는 마을에서 사는데, 거미 몬스터에게 쫓기다가 등을 폭 찍혔고, 그 상태로 안 죽고 도망치던 중이었다고요?”

“그렇긴 한데……, 너무 요약하신 거 아닙니까?”

“뭐가요? 중요한 정보는 그게 다잖아요.”

이 남자의 가족이 몇 명인지, 평소에는 뭐 먹고 사는지, 이 숲에 송로버섯이 나는지, 메추라기랑 참새 중에 뭐가 더 맛있다고 생각하는지 등등이 뭐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애초에 내가 그걸 알아서 어디다 써?

이 남자의 이름이 아이작이라는 것도, 땔감 주우려고 나왔다가 이렇게 됐다는 것도 별로 안 중요하고 말야.

그런 내 대답에, 아이작이라고도 하는 잿빛머리 남자는 잠시 넋이 나간 얼굴이 되더니, 이내 황당해하는 얼굴로 소리쳤다.

“아니, 그럼 왜 물어보신 겁니까?!”

“그냥요. 아, 송로버섯은 진짜 궁금해서 여쭌 거에요. 정보 감사합니다.”

“이, 이 무슨……! 아니, 나 참……! 허……! 크허……!”

정말로 기가 막혀버렸는지, 남자는 잠깐 시선을 위로 향한 채 꺽꺽거렸다.

그런 뒤, 기운이 쪽 빠져버린 얼굴로 아주아주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무튼 들으실 건 다 들으셨죠……? 저를 구해주신 분께 제대로 인사도 하고 싶으니…… 이만 풀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중하게 부탁하는 그의 목소리에선 단 한 방울의 기력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대화 좀 한 것 치고는 너무 빨리 지친 것 같은데…….

아, 맞다. 이 사람, 그 거미 몬스터에게 좀 크게 당했었지?

뱃속 내장이 다 보일 정도였다고 했던가?

그렇게 큰 부상을 입었었으니, 약차 정도론 기력이 다 회복되지 않았겠지.

일단 심문을 마치긴 했으니, 원래라면 이 남자를 풀어줘서 푹 쉬게 해주어야 할 터.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네? 아니, 왜요?! 전부 다 대답해드렸잖아요, 근데 왜……!”

인상을 한껏 구긴 남자의 외침엔 억울해하는 심정이 절절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당연히 억울하겠지.

질문에 전부 다 대답하면 풀어줄 거라는 희망이 짓밟혔으니까.

그러겠다고 약속한 적은 없지만, 아무튼.

뭐, 나도 맘 같아서는 풀어주고 싶다.

나쁜 사람도 아닌 거 같으니, 제대로 회복할 수 있도록 뭐 좀 먹이고 약차도 더 주고 싶은데……

들은 이야기들 상태가 영 좋지 않단 말이지…….

나는 바닥에 꽂았던 단검을 품 속에 넣으면서 말했다.

“숲에서 살고 계시니 아마 아시겠지만, 몬스터 중엔 살아있는 먹이 몸 속에 알을 낳는 놈이 있어요.”

그런 번식방법을 가지는 몬스터의 대부분이 다리 많이 달린 벌레다.

일단 벌레가 부화장으로 쓸 생물의 입 속으로 직접, 또는 배나 등을 찔러서 알을 낳으면, 그게 위나 창자에 착 붙는다.

그 상태로 며칠 지나면 알이 부화하고, 거기서 나온 애벌레는 여전히 위장에 착 달라붙은 채 몸 주인의 양분을 쪽쪽 빨아먹으면서 무럭무럭 자란다.

그리고 다 크면…… 숙주의 뱃속을 뚫고 나오는 두 번째 부화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온다.

놈들은 심장에 위장 달린 생물이면 뭐든 숙주로 삼기 때문에, 당연히 사람도 대상이 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숙주가 된 사람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벌레가 낳는 알이 한둘이 아닌 탓에, 건장한 남자도 이틀만에 겨울철 마른 나뭇가지 꼴이 돼버리니까.

그런 사람을 위한 처치법으론, 쑥처럼 더럽게 쓴 약초물을 먹여서 죄다 토해내게 하는 것이 있다.

뭐, 그걸 보는 사람도, 토하는 장본인도 심신에 큰 타격을 입긴 하지만, 확실히 목숨을 건질 수 있는 방법이다.

지천에 널린 게 쑥이니까, 이 사람도 그런 숙주가 된 거라면 같은 조치를 취해줄 수 있긴 한데.

……하지만 방금 했던 심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이 떠오르고 말았다.

남자는 자신이 숙주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소리에, 얼굴이 도로 하얗게 질려버렸다.

“마, 말도 안 돼요! 전 놈의 발톱에……!”

“예, 그렇게 말씀하셨죠. 놈의 발톱에 등이 찍혔다고. 그리고 당신이 묘사한 몬스터의 모습이 이랬고요.”

머리 하나, 눈 여덟 개, 다리도 여덟 개.

그리고 개미처럼 세 덩어리가 아닌, 두 덩어리로 나뉘어진 몸통.

남자는 나에게 일반적인 거미의 모습을 알려준 것이었다.

“근데 제 동료가 그러더군요. 놈의 발이 여러 가락으로 나뉘어져 있었다고요. 사람 손처럼.”

“네……? 아니, 그게……”

“이게 다가 아니에요, 아저씨.”

내가 중간에 잘라먹은 로나의 설명에 의하면, 이 남자는 배가 처참한 꼴이 되어 있었다.

녀석이 그 얘기로 날 놀리려 한 걸 보면, 배보다 더 크게 다친 곳은 없었던 게 분명해.

“당신이 등을 찔린 건 사실일 겁니다. 근데 있죠, 제 동료들이 당신을 봤을 땐 배가 아주 너덜너덜했다고 하더군요.”

“배……요? 제가, 배를……?”

“……”

남자는 뜬금없는 소리를 듣는다는 듯이 멍하니 눈을 끔뻑거렸다.

……정말로 모르는 눈치야.

내가 던진 여러 잡다한 질문에 대답했을 때처럼, 남자의 얼굴에선 거짓말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는 건, 이 숲에는 정말로 송로버섯이 자라고 있고,

“놈이 아저씨의 기억을 건드린 거 같네요.”

의도는 알 수 없지만, 놈은 이 남자를 숙주로 삼고 기억을 조작했다는 뜻이 된다.

“제, 제 기억을요? 대체 왜……?”

“글쎄요.”

보통은 숙주로 삼은 걸 숨기려고 그런 수작을 부리는 것이리라.

그래야 아무 처치도 못하고 부화 겸 사육장이 되어줄 테니까.

하지만 이 남자의 경우는 달랐다.

생김새는 뭐, 경황이 없어서 잘못 기억한 거라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어디를 공격받았는지도 헷갈리는 건 이상해.

아마 등을 찌른 다음, 그대로 독이든 뭐든 써서 제대로 기억을 못하게 만든 뒤에 배를 공격했을 거야.

그러니 등 찔린 것만 기억하지.

메린은 남자가 수풀에서 튀어나왔다고 했다.

그가 몽롱한 상태로 직접 다리를 움직였거나 놈이 냅다 던졌던 것이리라.

그리고 나는 이 대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등을 찌른 게 알을 낳거나 다른 수작을 부리기 위해서라면, 배는 대체 왜 뜯은 거야?

내장이 흘러나올 만큼 배가 찢어지고도 살 수 있는 생물은 거의 없는데.

마침 근처에 우리가 있었기에 살았지.

“……”

팔짱을 끼고 남자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계속 생각해보았다.

혹시 처음부터 숙주로 삼을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닐 거야.

그냥 먹이였다면 굳이 기억을 건드릴 필요가 없으니까.

그럼 대체 왜……?

“저, 저기……”

“네?”

“만약 제가 정말로 그 숙주…가 된 거라면,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되는 거죠?”

어쩌기는 뭐.

나는 흙빛이 된 남자에게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이따 약초 달인 거 드릴 테니 그거 드세요. 놈이 당신에게 알을 낳은 거라면 그걸로 괜찮아지겠지만……”

“지만……? 다른 게 있을 수 있는 건가요?!”

“네. 원리는 모르겠는데 변형시키는 게 있어요. 놈과 똑같은 종류의 몬스터로 변하는 겁니다.”

그 대표적인 놈이 바로 슬라임이다.

놈은 생물을 통째로 삼켜서 가죽까지 죄다 녹여버린 다음, 그대로 몸을 나눠서 또 한 마리를 만들어낸다.

바로 이 특성 때문에, 슬라임은 외견과 달리 무시무시한 몬스터로 분류된다.

핵을 부수지 않는 이상 죽지도 않고, 놈에게 아군을 잃는 만큼 숫자가 불어나버리니까.

또 고향에서 본 건…… 나무귀신 정도인가?

늑대인간은 생식으로 번식하고, 버섯인간은 그냥 버섯이 붙은 거니까.

소문엔 흡혈귀라는 것도 있다고 하는데, 한 번도 못 봤으니 뭐라 할 말이 없다.

그 외에는……

몬스터보단 저주받은 걸로 취급하는 사례밖에 없군.

……내 고향, 놋지빌을 둘러싼 숲 속엔 여름햇살조차 뚫지 못할 정도로 울창한 지역이 있다.

도입구부터 심연이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시커멓기 때문에, 눈이 먼 사람이 아니고서야 절대 실수로 갈 수 없는 곳이다.

그 안에 뭐가 있는지 모르므로 당연히 출입을 금지하고 있는데, 꼭 일 년에 한 번은 호기심과 객기를 주체 못하고 그곳에 들어가보는 사람이 나오곤 했다.

그 무모함의 대가로, 그들은 모두 며칠 내에 몸이 뒤틀리면서 다양한 형태로 변모했다.

두 사람이 하나로 합쳐져서 머리 두 개와 팔 네 개 달린 한 명이 되거나, 눈 네 개 달린 살덩어리가 되는 등, 정말 가지각색의 모습으로 인간을 벗어나곤 했지?

그렇게 만든 놈의 이름은 물론이고, 무슨 특성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는 게 없으니, 점점 더 뒤틀려가는 사람을 구제할 방도도 찾을 수 없다.

그저 변모해가는 과정을 기록하고, 마침내 완성된 모습처럼 생긴 놈이 그 어둠 속에 살고 있으리라 추측한 다음, 이미 사람이 아니게 된 존재를 태워 죽일 뿐.

만약 이전과 같은 사례라면, 확인되자마자 죽이니 고통을 좀 덜 겪는다고 할 수 있겠지.

그러니, 남자를 공격한 그 괴상한 놈이 알을 낳은 게 아닌, 모종의 방법으로 자신처럼 만들려 하는 것이라면……

남자에겐 미안하지만, 나로선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리고 불행히도, 메린이 목격한 모습은 생물을 변형시켜서 번식 아닌 번식을 하는 게 훨씬 더 잘 어울렸다.

사람 손 같은 발이 달린 거미라니, 그딴 건 시커먼 암흑 속에서나 살 법한 놈이잖아!

근데 희한하네…….

지도에서 봤을 땐, 이 숲은 빛 없는 곳이 있을 만큼 크진 않았는데 말이지?

제대로 길도 나 있고.

“그럼…… 어떻게 방법이 없다고요……?”

남자의 말에 상념에서 빠져나온 나는, 고개를 살짝 젓고서 대답했다.

“방법을 모른다는 게 정확해요. 애초에 정말로 당신이 그런 상태가 됐는지도 알 수 없고요. 또 신경 쓰이는 게 있는데요…….”

충격에 휩싸인 남자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나는 여전히 팔짱을 낀 채로 말을 이었다.

“아저씨네 마을은 별 이상이 없나요?”

“네?”

“요즘 몬스터 많다고 하던데, 용케 숲에서 살고 계시네요.”

대륙의 북부와 중부는 완전히 끝장났다고 들었다.

평원에 있는 마을도 대부분 쓸려버렸는데, 숲 속의 마을이 아직 멀쩡하다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혹시 우리 마을처럼 우락부락한 사람들이 모여 있나?

그러면 말이 될 거 같은데.

내 물음에, 남자는 시선을 바닥에 떨구고서 맥없이 대답했다.

“저희 마을엔…… 몬스터를 막는 비기가 있습니다……. 덕분에 작게나마 계속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요…….”

“비기? 어떤 건데요?”

“그건………달.”

“달?”

어…… 설마 밤에 뜨는 달을 가리키는 건 아니겠지?

손에 닿지도 않는 걸로 뭘 어떻게……

아, 주술 같은 걸 한다는 뜻인가?

“달빛을 받아서 무언가 하는 건가요?”

“아뇨. 섬기는 겁니다. 달. 금빛 달. 하늘의 통로. 차가운 빛.”

“어어……”

……분위기가 너무 확 바뀌었어.

절망에 빠졌던 얼굴이 펴진 건 좋은데, 눈 부릅뜨고 넋 나간 얼굴로 날 쳐다보고 있으니 조금 소름이 끼친다.

“지금 밖에 달이 떴어요, 그렇죠?”

“글…쎄요……? 어둡긴 한데…….”

“떴어요. 달, 하늘에 떴다고요. 보게 해주세요. 봐야 해요. 달 보여줘. 달. 달. 달 보게 해달라고! 달! 다아아알!!”

“……”

갑자기 침을 튀기면서 마구 소리치기 시작했다!

이것도 그 몬스터의 영향인가?!

등골이 오싹해지는 걸 느끼면서 남자를 멍하니 쳐다보자, 남자의 발광이 좀더 심해졌다.

달을 보게 해달라고 소리치고,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엄포를 놓더니, 끝에 가선 숨이 넘어갈 정도로 울면서 부탁하기 시작했다.

왜 달을 봐야 하냐고 몇 번이나 물어도, 그저 달을 보게 해달라는 말만 늘어놓을 뿐.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 같았다.

“달. 달. 달. 봐야 해. 뾰족한 달. 차가운 빛을 쐬어야 돼!! 당장! 당장 봐야 한다고, * 같은 새끼야아!! 아아! 으아아아!! 안 들리냐, 씨발놈아?! 아아, 아아아, 말라버려, 말라버려, 빛, 빛이 필요해, 차가운 빛……!!”

“나 참, 돌아버리겠네…….”

부탁대로 밖에 내놓으면 또 다른 지랄이 일어날 거 같다.

그렇다고 계속 이대로 시끄럽게 떠들게 둘 수도 없고…….

“야, 대체 뭘 하길래 이렇게 시끄러운 거야?! 너 또 고문하고 있니?!”

그때, 날카로운 목소리와 함께 블루벨이 천막 안으로 쳐들어왔다.

손에는 스푼을 얹은 넓적한 그릇을 들고 있는데, 아무래도 이 남자에게 먹일 수프를 떠온 듯했다.

그보다 또 고문하냐니, 누가 들으면 내가 맨날 고문하는 줄 알겠네.

절로 헛웃음이 다 나왔다.

“누가 고문한다고? 그냥 대화 좀 했을 뿐이야. 근데 이 아저씨가 갑자기 지랄하잖아. 내 탓 아냐!”

“대화……? 너, 너 이 새끼, 목에 칼 들이대고 위협했구나! 그러니 이 사람이 공황에 빠져서 헛소리를 늘어놓지!”

“절대 아니거든! 내가 그딴 짓 하는 놈처럼 보여?! 고개 끄덕이지 마, 이 할망구야! 아무튼 아냐!”

대체 사람을 뭘로 보고……!

내가 뭐 아무 때나 칼 쓰는 줄 알아?

하, 나 참, 진짜 기가 막혀서……!

“아니긴 개뿔…… 응……?”

한바탕 또 쏟아내려던 블루벨이 멈칫하더니, 포대자루에 묶여 있는 남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힉……?!”

블루벨의 눈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커지는 게 보였다.

자루째 꽁꽁 묶어놨으니 놀랍기도 하겠지만, 그릇을 떨어뜨릴 뻔할 정도는 아닐 텐데?

……그러고보니 방금 전까지 발광하던 남자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소리치다 혀 깨물어서 죽기라도 했나?

뭐, 들을 수 있는 건 다 들었으니 남자가 죽더라도 크게 상관은 없다.

더더욱 매정하게는, 오히려 그 편이 우리에겐 더 좋다고 할 수 있지.

몬스터로 변한 남자에게 습격받을 위험이 없어지니까.

그저 내 마음만 좀 불편해질 뿐이다.

……어쩌면 남자는 그런 내 생각을 읽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질겁한 블루벨을 따라 남자를 돌아본 시야 한가득, 잿빛머리 남자가 만면에 웃음꽃을 피운 게 들어왔다.

두 눈을 부릅뜬 채 입꼬리를 올릴 대로 올린 웃음.

소름 끼치는 환한 미소와 함께, 남자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동족.”

“허……?”

목소리가 달라졌어!

웬 나이 지긋한 여자가 쉭쉭거리면서 이야기하는 것 같아!

어째 몬스터가 아니라 잡귀 들린 것 같은데?

남자는 히죽 웃으면서 나…… 아니, 블루벨을 뚫어져라 보면서 입을 열었다.

“사랑스러운 동족. 저주받을 동족. 기다려라. 피를 따라 네년에게 가겠다. 기대해라. 내 저주를 새겨주마. 함께 썩어가자꾸나!”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던 남자의 머리가 갑자기 부풀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토해내려는 듯이 입을 크게 벌리는 모습에,

“큭?!”

서걱!

나도 모르게 앉은 채로 검을 뽑아서 목을 베어버렸다.

이내 바닥에 투둑 떨어져서 구르는 머리, 그리고 잘려 나간 목에 하얀 불꽃이 넘실거리는 게 보였다.

그 불꽃을 보기 전부터 깨닫고 있었다.

손바닥에 느껴지는 감촉이 명백히 전하고 있었으니까.

지금 내 손에 들린 건, 은빛 검이 아니라 성검이라는 것을.

즉, 남자를 이 꼴로 만든 건 단순한 몬스터가 아니라는 것.

그 사실을 나에게 고하고 있었다.

화르륵.

……이내, 잿빛남자의 몸이 하얀 재가 되어 사라졌다.

그가 입고 있던 튜닉과 바지, 그리고 포대자루만 덩그러니 남은 천막 안에,

“대체…… 뭐야……?”

얼이 나간 블루벨의 목소리가 조용히 가라앉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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